SNS의 정치적 영향력은 얼마나 될까?

SNS는 실제로 정치적 동원력을 얼마나 행사하고 있을까? 지난 번에 필자가 리뷰했던 논문인 「2012년 대선과 대중매체의 정치적 효과」에 이어 실제로 SNS가 정치적 영향력을 얼마나, 어떻게 행사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박창문, 조재욱 교수의 「SNS의 정치적 동원 기능에 관한 비판적 고찰: 18대 대선에서 트위터를 중심으로」(『한국정당학회보』 12(2), 2013)를 살펴보려 한다.
SNS의 정치적 동원 기능
지난 논문은 TV나 라디오, 신문 등 구 매체(old media)와 SNS, 유튜브 등의 신 매체(new media) 사이에서 투표자들의 정치적 선택에 매체들이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기 위한 논문이었다면 이번 논문은 트위터에 한정하여 실제로 SNS가 선거에 어떤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지 알아보기 위한 고찰이다. 18대 대통령 선거는 트위터가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던 대선이었으므로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SNS는 오늘날 우리의 일상 속으로 파고들어 많은 이들이 관계를 맺고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실제로 그것이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한다. 그러나 전체 인구비율로 따져보았을 때 SNS로부터 정보를 습득하고 정치적 선택을 위한 통로로 활용하는 인구는 그렇게 많지 않다. 더욱이, SNS가 정치적 동원에 있어서 긍정적 효과를 미치는지는 파악하기 더욱 어렵다. 많은 논자들이 SNS를 통한 ‘소통의 혁명’을 말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SNS야말로 게토화될 가능성이 제일 높은 공간이라고 본다. 본 논문을 살펴보는 것은 SNS가 가지는 위력이 실제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리라 생각한다.
SNS의 법칙? 트위터의 특성과 정치적 동원 기능
SNS가 긍정적 효과를 가지느냐, 아니면 부정적 효과를 가지느냐에 대한 수많은 논의가 오고갔다. 실제로 SNS가 등장한 이후 SNS는 지속적으로 확대 추세에 있으며 정치인들 역시 이러한 SNS를 유용한 플랫폼으로서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실제로 정치적 동원 기능을 충실하게 수행할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이다.
트위터는 어떻게 작동할까? 닐슨은 ‘1:9:90의 법칙’을 주장한다. 이것은 1%의 기여자(heavy Contributor)들만이 컨텐츠와 정보를 생산하고, 이렇게 생산된 정보를 리트윗이나 댓글을 통해 확산시키는 9% 간헐적 참여자(intermittent Contributors)가 있으며, 나머지 90%는 방관자(Lukers)로 1%와 9%에 의해 생산되고 재생산된 정보들에 관심을 보이지 않거나 관망한다는 것이다(Nielsen 2006).
뉴미디어, 특히 트위터는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을까. 그것을 뽑아보자면 크게 네 가지를 들 수 있다. (1) 먼저 트위터는 개방성을 가진 매체로 일반인들의 접근이 쉽고 따라서 이것은 정치적 무관심층이 정치인 개인들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 개방해줄 수 있다. (2) 신속한 전파력 역시 트위터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다. (3) 또한 SNS 상의 커뮤니티는 단결된 하나의 공동체라기보다는, 각자가 자신이 원하는 사람만을 골라 특정 커뮤니티를 구성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자기중심적 커뮤니티를 구성할 수 있다. (4) 마지막으로 연결의 편의성은 SNS가 다양한 미디어와의 조합을 통해 손쉽게 연결될 수 있는 일종의 매개체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말한다.
만일 SNS가 정치인과 지지자 및 무관심층 사이의 연계성을 높이고 친밀도를 강화시켜 이들의 정치참여를 확대할 수 있다면, SNS는 정치적 효능감을 증대시키는 효과를 발휘할 수 있고 그럼으로써 지지자들의 결집과 동원, 투표율 제고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것이 SNS가 가지는 정치적 동원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다섯가지 한계
그렇다면 트위터는 지난 18대 대선에서 이러한 동원 기능을 충실히 수행했을까. 논문저자들의 결론은 “아니다”이다. 그 이유로 논문 저자들은 다섯 가지의 한계를 지적한다.
첫째, 공급자 트위터의 소통이 대단히 부재했다. 쉽게 말해 트위터를 통해 정보를 생산하고 공급하는 역할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 모두 SNS를 중심으로 선거 캠페인을 진행했지만, 이러한 각각의 채널들이 담당하고 있는 역할이나 그 채널들이 공략하고자 하는 구체적인 타겟을 설정하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이들은 자연스레 비슷한 내용만을 여러 차례 반복 게시하는 선전매체로서만 기능할 뿐, 연령, 세대, 직능 등 여러 관심분야에 포진한 다양한 유권자를 공략함으로써 한 곳으로 집결시키지는 못했다.
둘째, 트위터 사용자 규모의 한계로 인해 생산주체가 대단히 한정적이었다. 앞서 말한 1:9:90 법칙을 적용한다면 트위터 가입자를 약 600만 명 정도로 추산할 때 6만여명이 적극적 기여자로서 활동하고 약 54만명 정도가 이에 멘션을 달거나 리트윗을 하지만 나머지 540만은 방관자들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또한 트위터의 타임라인은 그 정보의 방대함으로 인해 팔로워의 수가 많다면 단지 몇 분 동안에도 수십개의 트윗이 올라가고 만다. 이 과정에서 이용자들은 정보를 놓치고 지나쳤을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해 장덕진과 김기훈(2011)이 분석한 자료를 논문 저자들이 제시한다. 그들에 따르면 한국 트위터리언의 75%가 상위 1%의 유명인을 팔로잉하고 있으며, 유명인의 메시지가 전체 트위터 메시지의 85%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요컨대, 트위터 이용자들의 규모와 그 적극성의 정도로 말미암아 트위터가 실제로 정치사회적 연대와 동원을 이끌어낼만한 유의미한 효과를 가진다고 보기 어렵다.
셋째, 파워 트위터리안에 의한 정보와 여론의 독점화와 부정적 이슈의 확산으로 인해 트위터는 실제로 정치적 동원과 연대를 창출해내기보다 정치적 신념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드러나고 있다. 특히 선거가 가까워질수록 일반인들의 트윗보다 파워 트위터리언들의 트윗이 더욱 빠르고 광범위하게 확산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트위터 안에서 제기되는 문제는 ‘의혹’, ‘비리’, ‘네거티브’ 등의 이슈어로 부정적 표현어들로 표상되는데, 이것은 트위터 공간 안에서 구체적인 정책과 공약에 대한 후보자 검증 과정이 아니라 상대 후보의 과거 문제와 연결지어 비판적 내용을 반복함으로써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간다고 말할 수 있겠다.
넷째, 친야권 인사의 큰 영향력으로 인한 이념적 편향성이 심화되었다. 트위터 공간 안에서는 보수 인사들보다는 야권 인사들이 더욱 많은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말이다. 다음 표에서 트위터 내 정치인들의 영향력 순위를 살펴보면 트위터 안에서 친야-반여 성향의 인사들이 더욱 더 큰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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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문, 조재욱(2013)에서 발췌 |
마지막 다섯째, 자발적 캠페인이 침체되어 있는 것 역시 한 몫을 담당하고 있다. 지난 18대 대선은 2030세대의 투표율이 중요한 변수였고 따라서 그들의 투표율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 절대적으로 요구되었던 선거였다. 그렇다면 야권 인사들이 투표율을 제고하기 위해 적극적은 투표참여 캠페인을 펼쳤으리란 점은 쉽게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살펴본 결과 투표 이슈 자체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큰 이슈로 부각되지 못했다. 그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가장 쉽게 예측할 수 있는 것으로는 투표 이슈가 그렇게 큰 흥미를 끌지 못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논문저자들은 트위터에 열심히 참여하고 적극적으로 정보를 생산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미 투표를 할 의향을 가진 적극적 투표 참여층으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투표 독려 캠페인이 정치적 효능감을 유의미하게 발생시키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형태의 투표 독려 캠페인이 필요하다고 논문 저자들은 지적한다.
결과적으로 18대 대선은 높은 투표율을 보이긴 했지만 트위터에서 형성된 투표 독려 캠페인은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또한 SNS 상에서 전개된 캠페인 역시 세대별 갈등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빼놓아서는 안되겠다. 2040세대는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통해 투표참여를 독려하지만, 5060세대는 비교적 쉽게 만질 수 있는 카카오톡을 통해 보수 성향의 유권자들의 투표를 독려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여기의 현실에서부터
SNS가 갈수록 활성화되면서 SNS가 일종의 담론 공간으로 기능하지 않을까, SNS가 일종의 정치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 섞인 주장들을 종종 접하다보면 나는 항상 “정말?”이라는 질문을 던지곤 했다. 물론 그런 희망을 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실제로 그것이 현실 속에서 어떻게 드러나느냐를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래 전, 모 교수가 던졌던 농담을 떠올리게 된다. “여러분, 세상은 키보드 밖에 있어요.” 우스갯소리이지만 나는 이 말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라는 공간이 만들어내는 환상도 부지기수이지만, 그 중에서 가장 좋지 않은 것은 바로 선거나 선거결과에 대한 환상을 품게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실제로 SNS가 가져온 힘을 그렇게 크지 않았고, 이 글을 쓰고 있는 2017년 현재에도 과연 SNS가 영향력을 유의미하게 발휘할 수 있을지는 다소 회의적이다.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땅 위의 현실은 온라인 속 가상에 펼쳐진 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온라인의 세계는 언제든 현실을 왜곡할 위험을 안고 있고, 또 그렇게 왜곡된 현실을 마치 실제의 세계처럼 포장해서 보여주기도 한다. 누군가는 SNS를 통한 전자민주주의(?)를 말하기도 하는데 나는 그러한 주장들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SNS가 실제로 정치적 동원 효과를 가지려면, 정치적 무관심층으로 하여금 정치에 관심을 가지도록 유도해야 하고 또 그럴만한 유의미한 캠페인이나 기타 유인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 무관심층이 SNS를 통해 정치에 참여하게 된다는 증거는 아직 찾아볼 수 없다.
물론 미래는 알 수 없는 법이다. 혹시 아는가, 미래에 정말 휴대기기를 활용한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정치참여를 활성화할 수 있는 새롭고 혁신적인 계기가 마련될지. 그러나 그것은 다만 희망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 희망은 차라리 유보하는 게 낫다. 지금의 현실이 어떤지부터 보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최태준 리뷰어 xowns518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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