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청소년들은 어떻게 경쟁하는가?

현대 한국사회에서 청소년은 대체로 단일한 경쟁, -학업-을 공통적으로 겪고, 경쟁의 결과는 위계화, 서열화되어 분명하게 드러난다는 특징을 가진다. 김연숙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객원교수는 「경쟁사회와 감정의 작동방식: 웹툰 <패션왕>에 나타난 청소년 문화를 중심으로」(『국어국문학』 178, 2017)에서 웹툰 <패션왕>을 통하여 알 수 있는 문제의식을 고찰하였다.
청소년과
경쟁
저자가 다른 세대보다 청소년과 경쟁을 긴밀하게 여기는 이유는, 청소년들의 경쟁이 상대적으로 경쟁이 단일하고 경쟁의 결과가 성적이나 진학 등으로 가시화되어 나타나기 때문이라 보았다. 나아가 청소년들의 경쟁 구조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작용하는 감정은 ‘시기심’이라 하였는데, 특히 평등/공정의 가치는 부각되지만 실제로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시기심’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저자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사회관계 속에서 시기심이 어떻게 순환되고 유통되어 구조화되었는지, 또 지배적 권력 관계는 시기심을 어떻게 구성하고 활용하는지 주목한다.
웹툰 <패션왕>과
청소년 문화
<패션왕>에서 다루는 경쟁 소재는 ‘패션’이다. 이는 성적으로 주목받지 못하여 주변부로 밀려난 학생들이 경쟁하는 분야이다. 주변부로 밀려난 학생들은 ‘성적’으로 경쟁을 펼칠 수 없기 때문에 ‘패션’으로 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저자는 여기서 ‘패션’보다 ‘패션을 가지고 하는 경쟁’에 초점을 더 맞추고 있다. 그것이 청소년 문화의 경쟁구조와 시기심을 살펴보기에 더 적절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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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패션왕>의 한 장면. ‘시기심’은 감정이 세계에 대한 ‘태도’를 포함하며, 세계를 ‘감지하는 활동’이라는 의미이다. 출처: 리뷰 아카이브 |
경쟁이 불가능한
경쟁이라는 역설
<패션왕>에서 나타나는 경쟁은 ‘패딩’에서 시작된다. ‘패션’이란 자기정체성을 드러내는 방식이며 청소년은 자기정체성이 형성되는 첫 단계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드는 의문은, 교복으로 획일화된 문화에서 패딩은 규율화된 교복 위에 추가된 형식이다. 즉 패딩의 비교로는 근본적인 패션 경쟁이 무의미하다. 그렇다면 왜 ‘패션’은 경쟁 소재가 될 수 있었을까?
저자는 “청소년들의 패션경쟁은 다양한 경쟁을 자유롭게 할 수 없는 획일화된 현실에서 그 규율을 암암리에 수용한 가운데, 표면적으로 경쟁을 가장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191쪽)라고 하고 있다. 이는 즉 경쟁이 불가능한 경쟁을 하는 역설인 것이다. 이러한 역설은 ‘체육복 패션 대결’에서 더욱 극단적으로 나타난다. 집단적으로 구별되는 교복으로 패션 경쟁을 한다는 것 자체가 기본적으로 경쟁이 불가능한 것으로 경쟁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경쟁 자체가 무의미해지게 된다.
구별짓기와
관계맺기
저자는 <패션왕>의 경쟁이 구별짓기와 관계맺기를 넘나드는 특징이 있다고 본다. 현대사회에서 소비와 문화의 다양성은 단순한 차이로 존재하지 않는다. 계급에 따른 차별화와 과시의 욕구를 보여주는 식으로 존재한다. <패션왕>에 나타난 캐릭터들의 패션경쟁이 이러한 ‘구별짓기’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나만의 ‘간지’를 추구함으로써 구별짓기의 욕망발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구별짓기’는 개성의 차이에서 나오는 것인가? 아니다. 바로 그 차이들이 수렴되는 ‘유행의 코드’ 위에서만 작동가능하다.
저자는 이를 보드리야르의 ‘무개성론’에 비추어 파악한다. 현대사회에서 개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사회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개성이 존재화되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는 개개인이 만들어 내는 척도 위에서 서열화되며 ‘모델’로 수렴된다. 즉 자신을 타자와 구별하는 것은 다른 유사 선상에 있는 모델 및 양식의 결햡형태에 근거해서 자신을 특징짓는 것이다. 이로 인해 구별짓기의 욕망 또한 (사회와) 관계맺기 욕망, 인정욕망일 뿐이라는 역설이 있는 것이다.
[su_quote]사람들은 소비를 통해 ‘다른 존재’임을 부각시키려고 하지만 동시에 ‘너와 같은 트렌드(trend)’에 속해 있음을 증명하려고도 한다. 예를 들어 소비문화를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명품이 개성의 강조보다는 다른 사람과 어울리기 위한, 집단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한 ‘MUST HAVE 아이템’으로 광고된다는 사실에서도 그러하다. 따라서 타인의 시선을 통해 역설적으로 자존감을 획득하는 과정인 셈이다. 패션으로 표현되는 스타일은 나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지만 내가 너와 다르지 않음을, 곧 같은 무리임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194-195쪽)[/su_qu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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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을 자극하는
시기심
그러면 <패션왕>에서 경쟁에서 나타난 시기심을 어떻게 처리되는가? 시기심은 등장인물을 변화시킴으로써 처리된다. 우월한 친구를 보며 ‘비교-선망-시기심’으로 전개되기도 하며, 반면 ‘비교-열등감-시기심’으로 자기 향상을 꾀하게 된다. 두 방향 모두 긍정적 시기심의 면모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다양한 에피소드에서 알 수 있듯이 “경쟁적인 시기(emulative envy)는 우리를 자극하여 자기향상을 이루도록 한다는 Krista K. Thompson의 주장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198쪽)
한국 청소년들의
소비와 시기심
1890년대의 미국에서는 소비상품과 소비문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많은 교육가들의 부정적 우려도 있었으나, 소비상품의 구매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시기심은 자기발전을 이끄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였다. 즉 이제는 시기심이 풍요의 과실을 향한 열망, 곧 당연한 민주주의적 권리와 연결된다.
한국 사회는 어떠한가? 한국사회에서 자기계발은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위한 계발이라기보다 ‘남 만큼’, ‘남보다 더’라는 비교를 전제한다. 즉 자기 자신의 개성을 사회적인, 타인의 기준에 맞추기가 강요된다. 저자는 <패션왕>이 ‘시기-자기계발-결과(성공)’의 등식이 환상임을, 자기주문에 지나지 않는 것임을 문제 삼는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고 보고 있다. 작중 등장인물들의 경쟁은 일회적으로는 성공하나 그 이후 밝지만은 않은 미래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패션왕>에서 성공과 실패하는 이분법적 방향 대신 제3지대의 존재의 가능성을 암시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흥미로운 시각을 가지고 있다.
한국 사회의
한계
<패션왕>은 환상적인 경쟁의 결과가 현실과 거리가 멀다는 결말을 보이며, 그 해결책으로 자기세계 혹은 자기정체성을 제시하시만, 그 내용은 모호하다. 그러나 이 모호성은 사회 현실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즉 단일한 경쟁을 강요받는 청소년의 현실에서 개인의 자유경쟁 자체가 허락되지 않으며, 경쟁을 위한 시기심이 정당하다고 강조하는 현실 이면에는 자기계발의 폭력적 성격이 있음을 암시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결국 <패션왕>을 읽고/보는 일은 경쟁사회 속에서 시기심이 관리되고 있음을 자각하게 해주었고, ‘시기’의 정치적이고도 도덕적인 효용가치 즉 주체의 감정적 변혁을 다시 요청하게 하는 것이었다.
*함께 읽으면 좋은 논문
「국내 웹툰 <패션왕>에 나타난 패러디 분석」
김종은, 2012, 『한국애니메이션학회 학술대회지』, 6, 33-34.
「시기심과 감사-타자의 부정과 수용: 멜라니 클라인을 중심으로」
박선영, 2006, 『라깡과 현대정신분석』, 8(1), 157-190.
최종원 리뷰어 zwpow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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