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의 소유권 인정에 대한 근거는?

오늘날 사람들은 인간유전자에 지적재산권이 있다는 사실을 의심없이 받아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상 인간유전자에 소유권을 인정할 것인지 말지에 대해서는 오랜 논쟁의 역사가 있고, 그 논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두갑은 그의 논문 「유전자와 생명의 사유화, 그리고 반공유재의 비극: 미국의 BRCA 인간유전자 특허 논쟁」 (『과학기술학연구』 , 12(1), 2012년)에서 미국에서 일어난 두 인간유전자에 대한 특허 무효소송을 계기로 더 불거진 인간유전자의 사유화 문제를 둘러싼 복잡한 논의를 역사학자의 입장에서 다루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BRCA 유전자 관련 특허 소송은 “지적재산권의 정의와 그 범주, 그리고 이의 소유권을 둘러싼 논쟁이 공공의 이익, 과학과 의학 공동체의 창조적 지적활동과 환자들의 인권과 윤리의 문제가 복잡다단하게 얽혀”있는 사건이다. (1쪽) 더불어 이 논문은 켜켜이 쌓인 인간유전자에 대한 지적재산권 논의의 역사를 되짚는다는 점에서 여전히 유효한 가치가 있다.
미국의 인간유전자 특허법
형성의 역사
최근 논란중인 소송을 설명하기에 앞서 미국의 인간유전자 특허를 둘러싼 정책의 형성과정,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저자는 논문의 전반부에서 “1980년 이후 생명공학의 발전으로 등장한 유전자조작 생명체(genetically-engineered organisms)에 관한 특허 논쟁을 시작으로 1990년대 인간유전체사업(Human Genome Project)을 통해 밝혀진 인간유전자 염기서열에 대한 사적소유의 논쟁에 걸쳐 나타난 여러 법적, 윤리적 쟁점”을 잘 정리하고 있다. 이 과정을 통해 21세기에 인간유전자가 자연물이 아닌 화학물질(chemical compounds)로 재정의됨에 따라 생명공학 산업의 신세계가 열렸다.
우선, 저자는 인간유전자에 대한 특허 논쟁의 시작을 1970년대 말, 생명 형태의 여러 물질들에 대한 사적소유를 인정하는 법적 토대를 만들어준 차카바티 소송을 시작으로 보고 있다. 당시 GE의 연구원이었던 미생물학자 차카바티(Ananda Chakrabarty)는 석유를 분해할 수 있는 특정 박테리아의 조합군에 대한 특허를 신청했다. 법원은 초심에서 박테리아가 자연의 산물이라 특허권을 인정해줄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지만, 1980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다시 박테리가아 미생물학적 조작을 통해 만들어진 인간의 제조물이기 때문에 지적재산권을 인정해줄 수 있다고 판결했다. 차카바티를 시작으로 지적재산권의 범위가 확장된 특허청은 아후 생의학 연구기술들과 시약, 각종 세포 등의 생의학 물질들에 대한 사적 소유권 역시 광범위하게 인정하기 시작했다. 생명과학, 분자생물학 연구에 필수적인 PCR, DNA Chip 등과 같은 분석 기술 뿐 아니라 암유발 유전자를 지닌 실험용 생쥐에도 특허권이 생겨났다.
대상이 화학적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자연상태에 존재하는 산물인지는 특허권을 부여할 수 있는지 여부의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특허청은 “생명공학기술에 의해 인공적으로 제조된 새로운 형태의 생명체에 제한해” 사적소유권을 인정했다. 박테리아나 생쥐 사례에 적용되는 생명에 대한 특허권 인정은 조금 뒤에 인간유전자로까지 확대되었다. 특허청은 1982년과 1987년 각각 합성 인간인슐린 유전자와 합성 인간성자호르몬 유전자가 자연에 존재하는 형태가 아닌 DNA 염기서열의 합성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이란 이유로 특허권을 인정했다. 반면 DNA 단편 조각들의 서열에 대한 특허 신청은 그 정보만으로 유용성을 인정받지 못해 기각되기도 했다. 1990년대 들어서는 유전자염기서열(DNA sequences)을 화학물질로 간주해 특허권을 인정, 이후 유전체학의 발달로 많은 인간유전자에 특허가 부여되었다. 이 때 특허가 있는 유전자에 대해 응용할 수 있는 일체의 권리 역시 소유권자에 부여되어 특정 유전자와 관련한 여러 질병들 역시 사유화돼 버렸다.
공유재의 비극(the tragedy of commons) vs.
반공유재의 비극(the tragedy of anticommons)
주지하다시피 인간유전자에 대한 특허는 생명체에 사적소유권을 부과하고 상업화를 합법화하는 게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동물권익활동가들, 환경단체들, 종교계와 의학의 발전과 생의학 기술의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필수불가결한 일이라 주장하는 생명공학산업계와 의학계의 충돌을 야기시켰다. 미국에서는 이 논쟁이 1990년이 지나서도 합의점을 이루지 못한채 표류하다, 2001년 미국 특허청이 인간유전자 특허를 정당화하는 공식 입장을 발표하며 일단락 되었다. 특허청에 따르면, 인간유전자 염기서열은 “단순히 자연이 있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기술한 것이 아니라, 새롭고 유용한 물질을 발명하거나 발견했다고 간주될 수 있다는 측면”을 근거로 특허 대상으로 볼 수 있었다. 특허청의 인간유전자에 대한 화학적 재정의는 이후 쏟아지는 인간유전자 특허에 법적, 윤리적 정당성을 부여한 셈이었다.
논문의 저자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1970년대 이후 미국이 처한 정치경제적 맥락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인간유전자 특허의 허용과 확대의 기저에는 1970년대와 1980년대 지식경제의 부상을 거치며 등장한 지적재산권의 범주에 대한 확장적 이해와 특허의 독점권에 대한 새로운 경제학적 재해석이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시카고 학파와 공유재의 비극 테제가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1970년 이전에는 지적재산권이 한 기업의 시장독점지배를 가능케 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팽배했지만, 197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등장한 시카고학파의 법경제학자들은 지적재산권에 논의를 새로운 국면으로 이끌었다. 그들은 하딘(Garrett Hardin)의 주장을 빌어 “공유재의 비극”을 설명하며 공적 지식의 사유화를 법률적으로 정당화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딘이 설명한 공유재의 비극은, 환경문제의 원인을 공유재산으로 인한 시장의 실패를 설명하는 준거 틀이었는데, 시카고 학파는 이를 근거로 공공재의 사유화를 통해 공공재가 사회적으로 효율적으로 분배, 이용되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주장한 것이다. 당시는 미국이 경제 불황기를 거치며 대학들 역시 대학 내 공적지식에 대한 지적재산권 관리에 관심을 기울였던 시기로, 시카코 학파의 특허제도를 통해 혁신과 경제적 발전을 가능케 한다는 주장은 빠르게 받아들여지며 오늘날의 지적재산권 관련 법률체제를 완성시켰다.
지식의 사유화가 생명공학의 탄생과 발전에 기여한 공헌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 특허를 통한 독점권 행사가 유일한 성공 방향으로 설정된 산업 구조 내에서 상당수의 제약회사들은 장기간에 걸친 대규모 투자를 필요로 하는 신약개발 성공의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파산하고, 소수가 독점하는 주요 기술 특허의 높은 비용 때문에 연구의 진입장벽에 높아지는 등 여러 문제가 속출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98년 헬러가 주장한 ‘반공유재의 비극’ 테제는 공공재와 지식의 사유화가 사회 전반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주장들과 함께 등장하였다. 헬레는 생명공학과 관련된 여러 지적재산권, 특허를 가진 이들이 그들이 가진 독점적인 지위를 이용해 시장을 지배하거나, 연구에 필요한 비용을 증대시키는 폐해를 낳는다 지적하며, “사적소유가 시장을 통한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막고 공공의 이익에 반할 수 있다”는 ‘공유재의 비극’을 비판하였다. (19쪽) 다음에서 등장하는 BRCA 특허에 대한 소송은 1990년대 이후 헬러의 주장과 함께 대두된 지나친 사유화가 공공의 이익에 저해된다는 인식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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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들이 그들이 가진 지식을 공유하길 꺼려한다는 내용을 표현한 일러스트 (출처: 위키피디아) |
BRCA 유전자 특허소송
2009년 미국의 시민권 자유연맹(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 이하 ACLU)과 공공특허재단(Public Patent Foundation)은 여러 과학 및 의학단체들을 대표하여 두 개의 인간유전자인 BRCA1, BRCA2(이하 BRCA)에 부여된 특허권을 무효해줄 것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 두 인간유전자는 돌연변이가 발생할 경우 암 발병 확률이 증가한다고 알려져있고, 특히 여성의 유방암과 난소암의 발병에 연관된 유전자로 이후 이 유전자들의 변이를 검사하는 여러 검사법들이 개발되었다. BRCA에 대한 권한은 1990년대 말 미리아드사(Myriad Genetics, Inc.)가 취득한 이후 관련된 매우 제한적인 기초연구를 제외한 모든 연구의 권한을 독점적으로 유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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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BRCA 유전자 1, 유전자 2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
ACLU가 BRCA 특허권에 대한 무효 소송을 제기하며 든 주요 근거는 다음의 두 가지이다. 우선, 미국특허법상 특허 가능한 대상에 인류 공동의 소유물인 자연의 산물(products of nature)이나 자연에 대한 법칙(laws of nature)은 포함될 수 없는데 인간유전자 역시 이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 논거는 “인간유전자 관련 특허를 허용한 특허청의 결정은 미국 수정헌법 제1조항이 보장하는 자유로운 정보소통과 개인의 자유권에 대한 여러 권한을 침해한다”는 주장이다. (3, 23쪽) 즉, 소수에게만 부여된 인간유전자에 대한 독점권이 과학지식의 자유로운 교환과 발전을 저해하거니와, 개인의 유전자 정보를 독점하는 가능성을 여는 측면에서 특정인의 건강을 침해할 여지가 있다 해석한 것이다.
“기존의 지적재산권 옹호자들이 공적지식의 사유화를 통해 공적이익을 추구할 수 있음을 역설했다면 ACLU는 인간유전자 자체에 대한 특허와 같은 지나친 사유화가 의학발전을 가로막고, 환자들의 권익을 침해하며 창의적 연구활동을 저해하는 등 공공의 이익에 반하는 결과를 낳을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26쪽)
ACLU은 ‘반공유재의 비극’에 대한 논의를 적절히 활용하며 인간유전자를 인류공동의 자산으로 재정의하고, 특허청 또는 정부의 역할을 시장의 논리에 기반한 상업화 추구가 아닌 공공의 이해와 공적 투자를 통한 창의적인 연구에 대한 지원으로 바꿔야 할 필요를 주장하였다. 더불어, 두 인간유전자에 대한 특허가 관련된 새로운 연구나 치료법을 지나치게 제한함으로써 환자들의 생명권을 위협한다는 윤리적 문제까지 상기시켰다. 즉, “ BRCA 소송을 통해 ACLU는 인간유전자 특허와 이 폐해들에 대한 지적하고 이에 바탕해서 지적재산권의 확대와 지식의 사유화의 광범위한 추구가 생명공학과 의학의 발전을 가져올 것이라는 특허청의 정치-경제적 입장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28쪽)
“(BRCA를 둘러싼 소송은)… 21세기 과학기술사회에서 지적재산권의 정의와 그 범주, 그리고 이의 소유권을 둘러싼 논쟁이 단순히 특허법상의 기술적인 문제를 넘어, 지식의 사적소유와 공공의 이익 추구, 과학과 의학 공동체의 창조적 지적활동과 환자 들의 인권과 윤리의 문제가 복잡다단하게 얽혀있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33쪽)
저자는 이 논문에서 인간유전자 특허 문제가 단순히 특허로 인정될 수 있는지 없는지의 기술적 판단의 문제 뿐 아니라, 과학기술을 둘러싼 광범위한 법적, 정치경제적, 윤리적 문제들로 둘러쌓여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인간유전자에 대한 사유권을 인정하는 매 과정에서 자연의 산물 또는 화학 물질에 대한 범위가 재정의되었고, 이 과정은 법적이고 윤리적인 정당성을 필요로 했음은 물론이거니와 이를 가능케한 각 사회의 정치경제학적 맥락이 뒷받침되었음을 기억해야겠다.
문지호 리뷰어 lunatea3@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