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원자력

정부가 ‘위험’커뮤니케이션을 주도한다?

contamination_of_the_smoke_web_chimneys_elektrownia_p_tn_w_konin_power_station_lake_gos_awice_poluation-888958
상공에서 촬영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현장.

logofinale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발생 후 원자력 발전소의 안전성에 대한 관심은 여느 때보다 높아졌지만 이 문제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강윤재「원자력을 둘러싼 과학기술 시티즌십과 위험커뮤니케이션의 관계에 대한 일고찰」 (『과학기술학연구』 , 15(1), 2015)에서 원자력 발전에 관한 언론의 위험커뮤니케이션 지형이 어떤지를 살펴보고, 시민들의 설문조사 분석을 통해 원자력에 대한 시민 인식을 정리한다.

 

원자력 위험 커뮤니케이션의 지형:
과학자와 시민을 대체하는 정부기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언론에서는 연일 사건의 추이, 한국에 미칠 영향, 원전의 안전성 여부 등에 대한 기사를 쏟아냈다. 논문의 저자는 언론매체를 “다양한 사회적 행위자들이 자신의 입장과 주장을 전파하고 확산하여 자신에게 유리한 의사결정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공간이자 통로로서, 사회적 각축장(social arena) 또는 그 일부”라고 하며 언론 분석을 통해 원전을 둘러싼 여러 이해관계 행위자들이 만들어내는 위험커뮤니케이션의 지형을 확인할 수 있다 하였다. (47쪽) 이를 위해 그는 우선 언론에 등장하는 ‘공동출현 핵심어’의 빈도수를 측정하여 분석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언론 텍스트가 단순히 정보의 나열이 아닌, 관련 행위자들이 독자들을 설득하기 위한  활동 공간으로 이해해 본다면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핵심어의 출현 빈도수가 높아지고 낮아지는 추이를 통해 해당 시기 위험 커뮤니케이션의 지형을 이해할 수 있다. 아래 그래프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난 2011년 3월부터 5월까지 ‘방사능’을 포함한 기사수는 급등했다.

 

이제 저자는 방사능과 연관성이 높은 것으로 선별한 200개의 핵심어들의 빈도수를 분석하여 각 단어의 빈도수를 후쿠시마 사건 이후 1)지속적 상승, 2)상승 후 하강, 3)하강 후 상승, 3)지속적 하강 이라는 4가지로 분류하였다. 우선, 원전 사고 이후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핵심어들은 ‘논쟁’, ‘책임성’, ‘소비자’, ‘원자력안전위원회’, ‘그린피스’ 등이 있었는데, 이는 “정부와 일본의 책임성에 대한 요구가 계속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었다. (52쪽)

 

두 번째 분류로, 상승한 후 하강한 단어들로는 ‘우려’, ‘피해’, ‘방사능 공포’, ‘음식’, ‘확산’, ‘편서풍’ 등이, 행위자 측면에서 ‘한국원자력안전위원회(KINS)’, ‘기상청’이 있었다. 기상청을 포함한 관련 단어들은 원전 사고 방사능이 한반도에 미칠 영향이 어떠할지에 대한 논란이 심해진 와중에 출현 빈도수가 높아졌고, KINS 역시 원전과 방사능 피해의 안전성에 대한 논란을 잠재우기 위한 언론 홍보를 계속했다. 이후 기상청의 노출 빈도수는 정부의 ‘안심 전략’으로 시민들의 우려가 잠잠해지자 감소세에 들어선다.

세 번째인 ‘하강 후 상승’ 유형의 핵심어들은 원전 사고 당시 이슈의 중심에서 밀렸다 다시 회복세를 보인 단어들로 ‘북한’, ‘방사성(능)폐기물’, ‘환경운동’, ‘NGO’ , ‘과학자’ 등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원전사고와 긴밀한 연관이 있을 것 같은 ‘환경운동(반핵운동)’, ‘과학자’와 같은 단어가 이슈의 중심에서 밀렸다는 건 선뜻 이해하기 쉽지 않다. 저자는 이에 대해 언론이 시민 단체나 과학자보다, 정부의 전문기관인 ‘KINS’나 ‘기상청’의 발표로 문제를 논의하며 정부기관이 과학자의 전문성까지 대체했다 여겼다. 즉, 언론이 더 많은 발언권을 환경단체나 과학자들보다는 정부기관에 주었다는 것인데, 이는 당시 위험커뮤니케이션이 정부에게 유리하게 진행되는 구조를 갖고 있었음을, 사실상 정부가 언론의 논조를 주도했다고도 볼 수 있었다.

 

시민들의 인식은?:
모순적 태도 또는 합리적 선택

대안이 부재한 상태로 정부로 기울어진 언론의 지형은 친 원자력 정책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럼에도 시민들이 그 정보를 어떻게 수용하고 유통시키는가에 따라 그 영향력은 달라질 수 있었다. 저자는 2014년 실시된 <과학기술에 대한 시민의식 조사> 결과를 분석하여 원자력을 둘러싼 과학기술 시티즌십의 현주소를 파악하고, 원자력 거버넌스의 작동방식을 이해하고자 했다.

우선 원자력발전과 핵폐기물의 안전성 여부에 대한 질문에서는 원전이 안전하지 않다고 대답한 시민들이 51.4%였지만, 그 필요성에 동감하는 시민들은 80.6%에 이르렀다. 그들은 필요성은 인정하여 없앨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지금보다 더 늘릴 필요는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시민들은 원자력발전의 문제를 인식하지만 소극적인 차원에서 학습하고 소통할 뿐, 적극적인 사회적 참여를 통한 문제해결에는 나서지 않는 것으로 나왔다. 한편, 그들은 전문가에는 높은 신뢰도를 보인 반면 정부정책에 대해서는 신뢰도가 낮았지만, 정부보다는 시민단체의 역할에 대해 더 낮은 기대를 갖고 있었다.

한편, 정부의 정책을 불신하면서도 정책 결정 과정에서 시민단체보다 정부와 전문가의 역할을 더 중요하게 보고, 정책결정 과정에서 시민의 참여가 필요하다 하면서 직접 참여할 의향은 보이지 않는 이중적 태도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저자는 이런 모순된 시민의식을 두고 “선택의 여지가 제한된 현실 속에서 이루어진 합리적 선택”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62쪽) 그들이 원자력을 전문성의 영역으로 보고 있고, 위험하지만 존속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 때문에 신뢰도와 상관없이 정부의 역할을 중요하게 보고 있는 셈이다. 이는 또한 시민들이 “원자력 문제의 해결주체로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다는 징후”이기도 했다. (62쪽)

원자력이 고도의 과학기술적 ’전문성’을 요하는 분야라는 사회적 인식이 만연하고 이런 인식은 위험커뮤니케이션의 지형 역시 전문성에 의해 좌우될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시민들의 자발성과 주체성으로 대항전문가들과 연대하며 전문가들과 토론-경합하고, 대안지식이 생산되고 유통되는 ‘아래로부터의 과학기술 시티즌십’이 정부 중심이 대안부재 담론 구조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거라 제안한다.

문지호 리뷰어  lunatea3@gmail.com

<저작권자 © 리뷰 아카이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문학이 되살리는 후쿠시마 원전 참사

jotaro2_1

logofinale 체르노빌은 박제가 된 사건이다. 31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언제든 사건의 경과와 파장, 피해 규모에 대한 상세한 자료와 기록을 구해 읽을 수 있지만, 그 정보들을 더 이상 충격이나 불안감 따위의 감각에 생생히 연결시키지는 않는다. 이제 그 사건은 ‘우리 시대의 현실’이 아닌 ‘역사적 사실’이 되어 있다.

정보를 감각에 연결시키지 않게 됨으로써 우리는 체르노빌이라는 사건을 더 객관적이고 총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일까? 그 질문에 대해서는 자신 있는 대답을 내놓을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체르노빌이라는 이름이 가졌던 이미지들이 생명력을 잃고 박제가 되는 현상 자체는, 그와 같은 사건이 극히 예외적이며 원자력 발전은 여전히 안전하고 경제적이고 친환경적이라고 주장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논쟁의 지형이 유리하게 주어지도록 기여한다는 것이다.

체르노빌에 비하면 극히 최근의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역시 그와 같이 박제된 기억이 되고 있는 듯하다. 후쿠시마라는 사건이 갖는 현재성을 하루 빨리 제거하고 그것을 역사적 사건으로 박제화하려는 일본 정부의 노력은 ‘먹어서 응원하자!’ 캠페인 같은 엽기적인 형태로 나타나 한국의 네티즌들에게 비웃음거리가 되기도 하지만, 한국 역시 동해안 남부 지역에 많은 수의 원자력 발전소를 밀집시키고 있고 또한 해당 지역에서 최근 몇 차례의 지진이 발생해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있음에도, 많은 수의 한국 대중들 역시 여전히 후쿠시마의 충격을 ‘우리의 현실’로 생생히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은 듯하다.

그러할진대, 체르노빌 사고보다도 15년 전인 1971년부터 원자력 발전이 갖는 위험과 불안의 감각을 끊임없이 문학의 주제로 삼아 온 시인이 있다는 사실은 의미가 작지 않다.

와카마쓰 조타로(若松丈太郎)는 일본 후쿠시마 현 미나미소마 시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오랜 기간 재직하면서 활동해 온 시인으로서, 스스로를 “핵재해 난민”으로 규정하는 후쿠시마 사고의 당사자다. 이같은 당사자성과 현장성을 추동력으로 삼아, 시인은 체르노빌 이전과 이후, 그리고 후쿠시마 사고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끈질기게 원자력 발전에 점령당한 후쿠시마의 현실을 다양한 각도로 고발해 오고 있다.

와카마쓰에 관한 기존 연구(야스모토 다카코, 2015)가 와카마쓰 특유의 방법과 시론을 중심으로 분석한 데 비해, 이번 리뷰에서 읽어보고자 하는 김경인 씨의 논문 「시인의 ‘상상력’과 원자력村의 ‘想定 外’ – 와카마쓰 조타로(若松丈太郎)의 詩를 중심으로」(한국일본어문학회, 『일본어문학』, 2016.6, 189-212)는 서문에서 “와카마쓰의 시들을 통해 일본의 원전과 원전사고의 실체를 살펴보는 데 중점을 두고자 한다”며 대담하게 연구 취지를 밝히고 있다.

김경인 씨는 또한 “이러한 작업을 통해 시를 비롯한 문학의 ‘상상력’이, 사실전달에 주안점을 두는 르포르타주나 통계자료와는 달리, 원자력공해를 비롯한 공해사건들에 있어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고찰”하고자 한다는 구상을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본 리뷰 역시 이에 따라, 우선 와카마쓰의 시에서 묘사되는 후쿠시마의 사건들을 시간 순서로 재정리하면서 후쿠시마 사고가 위치하는 맥락들에 대해 잠시 훑어보고자 한다. 그런 뒤에 사회 속에서 문학만이 고유하게 가질 수 있는 역할에 관한 생각을 짧게나마 조심스럽게 풀어보려 한다.

와카마쓰의 문학 자체를 소개하고 그의 시가 가진 매력을 전달하는 것은 이 짧은 리뷰에서 하기에 적절한 일은 아니라고 판단된다. 따라서 본 리뷰에서는 와카마쓰 시의 직접 인용은 되도록 삼갈 것이기 때문에, 독자들이 김경인 씨의 논문을 직접 읽어보면서 논문에 소개된 와카마쓰의 시를 음미해 보기를 희망한다.

 

쓰나미가 휩쓸고 지나간 후쿠시마 현 미나미소마 시 하라마치 구의 참상. 출처: 위키미디어(Flickr : after Tsunami, by Jun Teramoto)
식민지로서의 후쿠시마

시인 와카마쓰의 잃어버린 고향인 미나미소마 시는 후쿠시마 현에 속하는 해안 도시로, 원래 이름은 하라마치 시였다가 2006년에 이웃한 몇 개의 행정 구역을 합병하여 미나미소마 시가 되었다. 2011년 후쿠시마 사고가 발생한 후타바 군을 바로 남쪽에 두고 경계를 맞댄 인접 도시로서, 원자력 발전소로부터 30km 반경 이내에 시의 영역 대부분이 포함된다. 미나미소마 시와 후타바 군 등을 포함하는 후쿠시마 현 동부 해안 지역은 하마도리 지방으로 불리는데, 이 지역의 공간성, 역사성이 와카마쓰 시들의 무대를 형성한다.

와카마쓰가 인식하는 하마도리는 ‘식민지’이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1~4호기가 위치했던 곳인 후타바 군 오쿠마 정(町, 쵸 : 한국의 읍 정도에 해당하는 일본의 기초자치단체)은 태평양전쟁 발발 직전인 1941년부터 육군비행학교가 위치해 있던 곳으로서, 해당 비행장 시설은 전쟁 말기인 1945년에는 자살특공대원을 양성하는 곳으로 쓰이다가 미 공군의 집중 공격으로 초토화된 뒤 텅 빈 땅으로 방치되어 있었다.

1960년도에 후쿠시마 현이 원자력 발전소 유치를 추진함에 따라 해당 토지는 도쿄전력에 판매되었고, 1961년에는 후타바 군의 후타바 정과 오쿠마 정에 원자력 발전소 유치가 결정된다. 두 마을의 주민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1966년을 전후하여 갑자기 미국인들이 나타나 마을을 형성하는 것을 보게 된다. 미국인들은 후쿠시마 제1원전 1호기를 건설하러 온 GE사 직원들 및 그 가족들로서, 이들이 모여 살던 마을을 주민들은 “GE촌”이라고 부르게 된다.

미국인들에 의해 초토화된 땅에 미국인들이 와서 발전소를 짓는 아이러니의 감각은 “아메리카도래(渡来)”라는 시어로 거듭 강조된다. ‘아메리카도래’란 우리말의 어감으로 옮기자면 ‘미국산’, ‘미제(美製)’ 정도가 될 것인데, 후쿠시마 사고 이후 쓰인 시 <마을이 멜트다운되고 말았다(町がメルトダウンしてしまった)>에서 와카마쓰는 ‘아메리카도래의 핵발전’, 즉 ‘미국산 원자력 발전’이 마을을 파괴했음을 강조함으로써, 원자력 산업을 지역 사회의 외부로부터 강요된 ‘낯선 것’의 이미지로 묘사하고, 후쿠시마 사고가 일종의 식민지적인 현실 속에서 벌어진 사건임을 역설하고 있다.

주의해야 할 부분은 와카마쓰가 인식하는 후쿠시마 지역의 ‘식민지화’란 미국을 식민 모국으로, 일본 정부와 국민을 묶어 피해자로 설정하는 우익적 도식이 아니라는 점이다.

와카마쓰에게 있어 후쿠시마의 식민지화는 와카마쓰가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낸 이와테 현 오슈 시의 마을 공동체가 붕괴되어 간 모습과 겹쳐져 묘사된다. 시 <마을이 멜트다운되고 말았다>에서 오슈 시의 마을은 두 차례의 붕괴 과정을 겪는데, 첫째는 태평양전쟁 말기의 군국주의적 일본 정부가 제창한 여러 운동, 구호, 제도들, 예컨대 “일억총동원체제”나, “국민개병이니 <도나리구미(隣組 : 주민들을 5~10가구씩 묶어 상호 감시토록 한 일종의 오가작통법)>니 애국부인회니 하는 것”들에 따른 동원 및 착취가 가져온 붕괴였고, 둘째는 “미국도래의 대형마트”에 의한 파괴였다.

와카마쓰의 또다른 시 <바닷가에서 온 편지(海辺からのたより) 9>는 또다른 각도에서 후쿠시마의 식민지화를 고발하고 있다. 그 시에서는 “전기 먹는 괴물”인 도호쿠 신칸센에 공급되는 전기가 후쿠시마 현 동부 하마도리 지방의 원자력 발전소에서 생산되는데, 정작 하마도리 지방에는 도호쿠 신칸센이 지나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이 사실은 흡사, 한국 동해안 남부 지역의 원자력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를 대구, 서울 등 대도시에 보내기 위한 송전선 건설로 인해 마을 공동체가 파괴돼버린 밀양의 사례를 떠올리게 한다.

이처럼 와카마쓰가 인식하는 후쿠시마의 식민지화란 다양한 주체들에 의해 다양한 측면에서 자행되는 것임을 이해할 수 있다. 일본의 군국주의적 야욕에 의해, 미국 자본의 침투에 의해, 또한 일본 정부의 “경제제일주의”적이고 대도시 중심적인 정책 방향에 의해 지방 소도시와 농촌에 강요되는 희생과 마을 공동체의 파괴. 이 모든 것들이 와카마쓰에게 있어서 ‘식민지로서의 후쿠시마’라는 이미지 속에 응축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진행중이었던 사고

1978년 11월 2일, 제1원전 3호기에서는 제어봉 5개가 떨어져 임계 상태(방사성 물질이 일정 질량 이상 모여 핵분열 연쇄반응이 시작된 상황)에 돌입했다. 일본 최초의 임계 사고로 기록된 이 상황은 7시간 30분간이나 지속됐는데, 도쿄전력은 이러한 사고가 있었다는 사실을 2007년 3월에야 인정했다. 원자력 사업장의 모든 사고들을 즉시 보고하도록 하는 규정이 2007년이 되어서야 발효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유사한 제어봉 탈락 사고는 1998년까지 4차례 더 발생했고, 1984년에는 제1원전 2호기의 압력부하 실험 도중 임계 상태로 인해 긴급 정지가 이루어진 사례도 있었다. 이 모든 사실들은 2007년 이전까지 3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은폐되어 왔다. 와카마쓰의 시 <남풍 부는 날(みなみ風 吹く日)>에서 건조한 어조로 고발되고 있는 이 같은 사실들은 원자력 사고가 우리에게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일상적이라는 것, 그리고 그 일상적인 사고들은 대중과 사회의 감시와 관리를 벗어난 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체르노빌의 참사는 1986년에 발생했다. 1994년 5월, 와카마쓰는 체르노빌을 방문한 뒤 <행방불명된 마을(神隠しされた街)>이라는 시를 쓴다. 이 시에서, 시인의 상상력은 다양한 각도에서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사이의 겹침을 발견한다. 체르노빌 사고로 인해 고향을 잃은 주변 지역 마을들 주민들의 수는 공교롭게도 시인이 사는 하라마치 시(현 미나미소마 시)의 인구와 비슷하다. 시인은 체르노빌의 모습 속에서 후쿠시마를 발견하고, 후쿠시마의 주민들 역시 원자력 발전소가 가져올 참사로 인해 고향을 떠나야 하게 될 것을 예감한다.

시인의 불안한 예감은 2007년 7월에 발생한 ‘니가타 현 주에쓰 오키 지진’으로 인해, 시 <두려움 속에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恐れのなかに恐るべかりけるは)>에서 더욱 뚜렷해진다. 지진으로 인해 가시와자키 시에 위치한 세계 최대 규모의 원자력 발전소는 멜트다운 직전의 위험한 상황에 처했고, “9만 베크렐의 방사성물질을 함유한 물이 바다로 유출”되었다.

니가타 현과 경계를 마주하는 후쿠시마 현의 사토 유헤이 지사는 “상정 외의 것을 상정하는 것이 원전의 안전안심에 있어서 중요하다”며 정부와 도쿄전력의 대응을 비판했다. 사고 이듬해인 2008년 도쿄전력은 높이 15.7m의 쓰나미가 원자력 발전소를 덮치는 상황을 가정하여 피해 규모를 추산했으나 대책은 마련하지 않았고, 2010년 10월 원자력안전·보안원은 “자연재해가 원자력재해를 일으킬 가능성은 거의 0에 가깝다”고 발표했다. 후쿠시마를 초토화시킨 역사상 최악의 원자력 참사로부터 불과 5개월 전의 일이었다.

2012년 아사히신문의 보도로, 니가타 현 지진보다도 더 전인 2006년에 이미 도쿄전력은 20m 규모의 거대 쓰나미가 원자력 발전소를 덮치는 상황에서 발생할 피해 규모와 그에 대비하기 위한 비용을 추산해두었음이 알려졌다. 80억 엔의 예산을 투입해 방조벽을 설치하면 참사를 예방할 수 있음을 알고 있었음에도 실제 대책 마련에는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이다.

2011년의 사고 이후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은 후쿠시마를 덮친 쓰나미가 “1000년에 한 번 발생할까 말까” 한 것으로서 “상정 외(想定外)”의 것, 즉 예상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것이었다고 주장하며 끊임없이 책임을 회피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참사의 당사자인 후쿠시마 주민으로서 오랜 시간 후쿠시마의 원자력 발전 문제를 추적해 온 시인 와카마쓰의 눈은 그들 “원자력村”, 즉 일본판 원전 마피아들의 거짓말을 뼛속까지 해부해내고 있다.

 

합리성의 ‘상정 외’를 극복하는 문학의 ‘상상력’

온갖 과학적, 전문적 수사를 동원해 사고의 위험성을 일축했던 ‘원자력촌’의 ‘상정’이 후쿠시마 사고를 예방하는 데 끔찍하게 무능했던 데 비해, 후쿠시마의 당사자이자 시인인 와카마쓰의 ‘상상’은 원자력 사고의 위험과 참상을 놀랍도록 정확하게 예견해냈음을, 김경인 씨는 “상정 외”“상상력”이라는 두 단어의 대비를 통해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상상력(imagination)이란 현실에 없는 가상의 무언가를 떠올려내는 능력이라기보다, 현실 속의 모습과 경험들을 어떤 이미지 내지 감각에 연결하는 능력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와카마쓰의 시 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들은 순전히 후쿠시마 현지의 당사자들이 실제로 겪고 느꼈던 우려와 불안감, 그들의 삶이 그들 자신의 의사에 의해 통제되지 않는 데 대한 억울함과 분노의 감각일 뿐이다. 후쿠시마 주민으로서의 당사자성은 와카마쓰의 문학적 상상력을 구성하는 거의 전부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정보를 감각에 연결시키지 않게 됨으로써 우리는 후쿠시마라는 사건을 더 객관적이고 총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될까? 자본과 이윤이 주도하는 사회의 합리성의 언어가 현장과 당사자들의 작고 주관적인 감각의 언어들을 간과하고 배제해 온 결과가 오늘날 후쿠시마의 참상이라면, 그 사건을 더 ‘총체적’이고 온전하게 이해하고 또 그와 비슷한 사건이 다시 벌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오히려 감각과 이미지들을 되살려내고 우리의 언어 속으로 다시 불러들이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그 일에는 아마도 문학과 예술만이 고유하게 담당할 수 있는 영역이 있을 것이다. 문학과 예술의 역할이 사회에 대한 참여 만으로 환원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반대로 사회에 필요한 참여적 실천들 가운데는 불가피하게 반드시 문학과 예술에 맡길 수밖에 없는 일들이 존재한다. 김경인 씨가 논문 끄트머리에서 인용하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처럼, 우리 사회가 더 이상 “타인의 고통을 ‘상정’하지 않고 상상력을 상실한 채 효율성만 앞세우는” 곳이 아닐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와카마쓰와 같은 예술가들의 역할은 끊임없이 요청될 것이다.

 

*함께 읽어볼 만한 논문

후쿠시마원전사고와 전문가 윤리 – 공학윤리적 관점에서」
이재숭, 2014, 『철학논총』, 76, 573-593.

「후쿠시마 원전을 통해 생각하는 전후 일본」
가이누마 히로시 외, 2011, 『역사비평』, 97, 190-221.

강병준 리뷰어  iyyaggi@gmail.com

미세먼지를 해결할 또다른 재앙, 중국 원전

chinese_nuclearpowerplant2_1

logofinale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전 세계가 핵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지진이 많은 나라의 사람들일수록 이런 심리는 더하다. 일부 국가에서는 후쿠시마 이후 원전 개발 중단한 나라도 있다. 그렇게 되면 에너지 연구는 대체에너지의 상용화에 대한 개발로 나아가게 된다. 반면 원전이 계속 증가 추세인 나라도 있다.

대표적인 나라가 중국이다. 중국은 현재 나라의 전력 75퍼센트를 석탄에 의존하고 있다. 그 결과는 엄청난 양의 스모그다. 자국 국민은 물론 타국에까지 이 스모그는 엄청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국을 여행해본 사람들이라면 이 스모그의 위력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스모그는 삶의 질을 현저히 떨어뜨리는 매우 중요한 환경오염임이 분명하며, 이는 중국 정부 또한 인식하고 있는 바다. 그런데 그 해결책이 삶을 ‘재앙’에 빠뜨릴 수 있는 원전 층축으로 나아간다는 점이 아이러니다.

나영주 한국민족연구원 연구원이 발표한 중국의 원자력 발전 증가와 원자력 안전에 관한 국제 협력(『국제정치연구』, 18, 2015)에 따르면 중국의 원전 추진의 현황을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다. 아래는 논문의 핵심 부분만 요약한 것이다.

2007년 중국 국무원은 ‘2005-2020년 원자력 중장기 발전 계획’을 발표하고 2020년까지 원자력 설비용량을 4천만 kw로 늘리고 원자력 설비용량 비중을 4%로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체 전력 생산에서 석탄의 발전 비중을 75%에서 과감하게 축소하겠다는 것다.

2015년 3월 전국 인민대표대회가 폐회될 무렵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리커창 총리는 “지난해 정부는 스모그와의 전쟁을 선포할 만큼 결연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인민의 높은 기대치를 충족시키기엔 모자라다”며 “올해는 환경 보호법을 손질해 결코 솜방망이가 되지 않도록 하겠다. 법을 어긴 기업은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하고 환경문제를 에너지 문제와 함께 국정과제의 우선 순위로 다루겠다”고 말했다.

IAEA의 자료에 의하면 2015년 현재 중국이 가동 중인 원자로는 27기이며, 건설 중인 원자로는 23기다. 중국이 2014년 생산한 전력량은 원자력을 포함하여 총 546만3천800GWh이며, 원자력 발전은 13만580GWh로 전체 전력 생산의 2.39%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2011년 3월 곧바로 당시 원자바오 총리 주관 하에 새로운 원전 승인을 중단하고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대대적인 안전 점검을 한 바 있다. 그 과정에서 내륙의 원전 계획은 12.5 계획 기간 중 중단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2014년 12월 4일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NRDC)는 구체적으로 지역을 명시하지 않았으나 중국의 동해안을 따라 원자력발전소를 개발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런데 2015년 전국인민대표대회 기간 중에 흘러나온 소식에 의하면 중국의 원전 전문가들은 중국의 전력 수요와 이산화탄소 배출 이행 계획 때문에 해안의 원전만으로는 이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하지 않아 내륙의 원전 건설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중국 공산당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08년 중국 국무원은 후난 성의 타오후아장桃花江, 장시 성의 펑저彭澤, 후베이 성 시엔닝咸寧의 다판大畈 원전 등 3기의 준비 작업을 승인한 바 있었는데 13.5 계획이 시작되는 2016년도에는 내륙의 원전 건설을 시행할 것을 민간 원자력업체들이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원자력 발전소 숫자가 압도적이다.

에너지 수입국의 경우 원자력은 대외의존도를 낮추고, 국제시장의 에너지 가격 변동에 노출되는 것을 막아준다. 또한 원자력은 이산화탄소 배출을 감축하고 동시에 기저부하base load 발전을 제공하거나 다른 형태의 기저부하 발전을 대체할 수 있는 발전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타의 국가들은 원자력을 미래 대안으로 고수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는데, 2040년까지 원자력 발전량 증가에서 중국은 45%를 차지하고 인도, 한국, 러시아 등이 합해서 30%, 미국의 원자력 발전은 16%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원자력 발전 전망 속에 중국 국무원은 ‘2014~2020년 에너지 발전전략 행동계획’에서 “원자력의 과학적 보급과 핵안전 지식 선전을 강화하여, 2020년에는 원전 설비용량이 5800만Kw에 도달하며, 건설 중인 용량이 3천만kw 이상에 도달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아무리 안전을 강조한다 해도 천재天災를 막을 기술력이 현재로서는 없다는 점이다. 중국의 원전 설치 지역이 지진과 화산대에서 자유롭지 않다.

[su_quote]수심이 깊은 대만이나 일본 오키나와 해역에서 지진이 발생하면 수심이 낮은 서해로 바닷물이 한꺼번에 밀려들면서 쓰나미가 발생할 수도 있다. 중국은 2008년 쓰촨대지진과 2010년 칭하이성 위수玉樹대지진의 악몽을 경험하는 등 큰 지진의 피해가 잦은 나라다. 그럼에도 지진 위험 지역인 쓰촨성 등지의 지역에서조차 원전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 안후이 성에서 산둥 성을 거쳐 만주, 연해주로 이어지는 ‘탄루 단층대’는 강력한 지진이 발생할 수 있는 중국의 대표적인 곳이다. 중국과 한반도 사이 서해는 1억2000만 년 전에 만들어진 분지로 지반이 연약해 판 경계부의 에너지가 전달되면 역시 지진이 발생할 수 있는데 중국의 신설 원전들은 바로 이 탄루 단층대에 가깝게 위치하고 있다. 또한 중국 원전 시설이 들어설 백두산 인근의 지역도 화산 분화 및 지진 발생의 가능성 큰 지역이다.(320쪽)[/su_quote]

중국에서 원전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력은 즉각적이다.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편서풍에 의한 방사능의 확산이다. 원전의 특성상 많은 냉각수(바닷물)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대다수의 중국원전이 해안에 위치해 있다. 만약 중국에서 원전사고로 인해 방사능이 누출 시 3일째 되는 날 한반도 전역이 요오드 131로 오염될 것이다. 연평도에서 서쪽으로 200km 지점인 산둥 성 웨이하이 시의 롱청榮成에 만들고 있는 중국의 최대 원자력 발전소인 스다오완石島灣발전소에 불의의 사고가 있을 경우에는 방사능이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확률이 높다.

하지만 중국으로부터의 핵 위협 뿐만이 아니다. 한국도 2035년까지 원자력 발전의 비중을 현재의 26.4%에서 29%로 늘리고, 원자력 발전소는 41기까지 늘릴 것으로 예정되어 있다. 이렇듯 동북아 3국에 원전이 밀집되어 있어 핵 사고가 발생할 경우 그 규모에 따라서는 돌이킬 수 없는 핵 재앙이 될 것으로 우려된다.

강성민 리뷰위원  review@bookpot.net

<저작권자 © 리뷰 아카이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