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역사학

동북공정 종료후 10년, 중국 학계의 동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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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ofinale이승호 동국대 사학과 강사가 쓴 2007년 이후 중국의 고구려 종교·사상사 연구 동향(『고구려발해연구』 , 57, 2017)은 동북공정이 공식적으로 종료되고 10년이 지난 지금까지의 중국 학계의 동향을 살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결론은 ‘위험’ 사인이다. 10년에 가까운 세월이 지났지만, 중국 학계에서는 여전히 고구려를 중국 중앙왕조의 지방정권·소수민족정권으로 간주하고 고구려사를 중국사의 일부분으로 서술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이와 같은 시각은 고구려의 종교·사상 관련 연구에서도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나는데 해당 주제에 대한 치밀한 학술적 분석보다는 종교·사상의 기원이 중국에 닿아 있고, 국가 성립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중국 문화의 직접적인 영향 아래 놓여 있었다는 주장이 큰 흐름을 이룬다는 분석이다.

양적으로 확대되는 반면 한국과 일본의 연구 성과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매년 비슷한 연구 주제와 주장이 저자를 달리해서 반복된다는 점도 큰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학술 발표회에 참석중인 리러잉 박사(중국사회과학망http://www.cssn.cn)

 

동북공정은 계속된다

2007년 이후 중국학계의 고구려 종교·사상 관련 연구 성과를 살펴보면, 박사논문 1편과 석사논문 1편을 포함해 대략 40여 편이다. 여기서 특히 주목되는 성과는 ‘고구려 종교 신앙’을 다룬 리러잉李樂營의 박사논문 「고구려 종교 신앙 연구」(둥베이사범대, 2008)다. 필자는 이 논문을 집중 분석하고 있는데 과연 무엇이 문제일까.(리러잉은 2016년 현재 퉁화사범학원通化師範學院 고구려연구원 원장으로 재직중이다.)

일단 이 논문은 폭넓게 종합적이면서도 체계적으로 고구려의 종교와 사상을 다루고 있다. 분석이 용이치 않은 주제에까지 연구 범위가 미치는 등 미덕도 있다고 필자는 말한다. 하지만 주요 내용을 보면 우리로선 기함할 부분이 많다. 아래의 인용을 보자.

1) 고구려는 우리나라 고대 동북 지역의 일개 변경 소수민족 정권이었다. 한대漢代부터 당대唐代의 역사에 이르기까지 고구려의 종교신앙은 시종 중국과 함께 했다.

2) 또 고구려의 종교신앙은 중국 고대 사회의 전반적인 변화를 큰 배경으로 하여 발생하고 변화했다.

3) 유교화와 도교화가 진행되었음을 밝혔다.

4) 종교는 고구려 사회의 발전과 중국고대사의 발전 과정 중 일부이자 불가분의 구성요소로서 중요성을 가진다.

 

고구려 문화는 ‘중국문화의 하위’라인 인식

필자는 가장 먼저 고구려의 문화를 중국 문화에 종속된 위치에서 파악하는 관점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문화전파론’과 ‘사회진화론’적 연구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고구려의 원시종교가 중국의 유가사상을 수용하면서 보다 규범적으로 발전했다”는 식의 주장이 대표적이다. 또한 고구려의 건국신화에 기반을 둔 시조신앙에 대한 외면은 큰 결함이라고 비판했다. 시조신앙은 물론 고유의 토착 신앙(수신隧神, 천天 관념, 하백河伯 등)의 발생 배경과 자체적 발전과정에 주목하기보다는 이들 신앙을 “초기의 원시적인” 것으로만 치부하는 시각도 문제점이고 말한다. 결국 당시 외래종교와 병존했던 토착신앙에 대한 무관심은 반쪽짜리 연구결과를 내놓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게 필자의 논평이다. 면밀한 사료 비판이 선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초기 사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점도 보완 논의가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다음으로는 고구려의 중국 유가사상 및 도가사상을 수용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 류웨이劉偉의 연구를 분석하고 있다. 류웨이 또한 중국의 일방적 전파 강조, 중국의 고급 종교와 사상이 고구려의 문화 발전을 촉진시켰다는 주장을 일관되게 되풀이하고 있다. 또 「고구려본기」 초기 기록에 대한 사료 비판을 결여한 채, 기록에 나타나는 유가적 색채를 그대로 당대의 사실로 신빙하는 점도 문제다. 후대 고구려인의 관념이 반영될 소지가 다분함에도 이를 외면하는 것이다.

한편, 필자는 비록 초보적 단계이지만 중국 학계가 고구려 불교 문화로부터 유교·도교로까지 연구를 확장하는 것에 비해 한국 학계는 아직까지 이 부분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없다는 점을 우려했다.

또한 논문은 근래 중국학계에서는 고구려의 제사·의례 문화와 관련해서도 연구가 진행되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이 또한 중원 문화의 일방적 영향을 전제로 이뤄지고 있다.『의례儀禮』 『주례周禮』 『예기禮記』 등에 기반을 둔 중국의 예학적 전통이 고구려에 영향을 미쳐 고구려의 의례 규범을 진전·완성시켰다는 관점을 바탕으로 고구려의 제사의례, 혼인의례, 상장례 등이 검토되고 있다.

 

고구려의 종교와 신화를
고대 중국문화와 연결

그러나 대체로 문헌에 보이는 고구려의 제사 및 기타의례 관련 기록을 하나하나 나열해가며 피상적으로 논하는 수준이라는 게 필자의 지적이다. 특히 고구려 왕릉 묘제와 왕실 제사체계는 상호 밀접한 관련 속에서 변화·발전해 갔는데,35) 아직 중국학계에서는 여기에 대한 천착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은 한계로 지적할 수 있다. 또 억지로 중국과 연결시키려다보니 고구려 후기에 나타나는 ‘가한신可汗神’에 대해 당시 ‘천가한天可汗’의 칭호를 가졌던 당태종일 가능성을 제기하는 등 다소 무리한 주장도 일부 확인된다고 말했다.

필자는 이를 포함해 주몽신화 등 건국신화에 대한 중국 연구자들의 집중된 연구의 허점도 파헤쳤는데 이 부분은 대동소이한 지적들을 받고 있어 생략한다. 결론적으로 지난 10년 중국 학계의 고구려사 연구의 공통된 문제점은 아래의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고구려 종교·사상사 분야에 대한 중국학계 연구의 양적 확대가 확인되며, 다양한 주제로 연구 범위의 확장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특히 건국신화와 기타 전설, 유교·불교·도교 등 전통적인 연구 분야뿐만 아니라 제사와 의례, 법률사상, 샤머니즘 등 다양한 주제로 연구가 확장되는 경향은 주목할 만하다. 따라서 한국 학계에서도 이에 발맞춰 고구려의 종교·사상사 분야에 대한 폭넓은 연구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특히 그동안 깊이 연구되지 못했던 고구려 유교·도교 문화에 대한 연구 확장이 요구된다. 중국학계의 주장에 대한 단순한 비판 및 대응논리 마련에 골몰할 것이 아니라, 세밀하고 체계적인 연구를 통해 중국으로부터 받아들인 유교·불교·도교 등의 문화를 고구려가 어떻게 그들 문화에 녹여갔으며, 자기화해나갔는지 적극적으로 검토될 필요가 있다.

둘째, 고구려의 종교와 사상 및 신화·전설의 연원을 고대 중국 문화에서 찾고자 하는 경향이 강하게 확인된다. 물론 중국 문화가 고구려 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음을 부인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고구려 주몽신화 속 난생설화나 하백녀 신화, 신마 전설과 황룡 승천 전설 등 고구려 고유의 신 관념이 포착되는 여러 신화 및 전설의 주요 모티프가 중국 문화의 영향 속에서 형성되었다는 일방적인 시각은 앞으로 여러 논쟁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 전망된다. 결국 이러한 학문적 괴리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한·중 학계의 지속적인 학술 교류를 통해 상호 간에 견해의 간극을 좁혀나갈 필요가 있다.

셋째, 관련 분야에 대한 한국·일본학계의 연구 성과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고 있는 점은 큰 약점으로 지적되어야 할 부분이라 생각된다. 특히 고구려의 불교문화나 건국신화와 관련해서는 이미 한·일 학계에서 상당한 연구의 축적이 이루어져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중국 학계의 연구 성과를 검토하다보면, 근래까지도 관련 연구에 대한 한·일 학계의 선행 연구를 충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 학계 내에서도 비슷한 연구 주제와 주장들이 매년 저자를 달리해서 반복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현상도 확인된다. 이와 같은 연구의 중복현상을 피하기 위해서는 관련 분야의 선행 연구 성과에 대한 체계적인 정리와 집적이 이루어지는 한편, 이를 학계 간 교류의 활성화를 통해 꾸준히 중국학계에 소개할 필요가 있다.” (53쪽)

강성민 리뷰위원  paperface@naver.com

<저작권자 © 리뷰 아카이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학자들도 경험이 대단히 중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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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_frame] DBpia Report R이 논문저자 인터뷰 두번째로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이기웅 교수를 만났습니다. 이기웅 교수는 2016년 한해  역사학분야 DBpia 논문 이용 1위, 「젠트리피케이션 효과」 의 저자입니다. 논문의 주요 내용과 젠트리피케이션 논의의 현재, 평소의 연구방법 등에 대해 이기웅 교수의 생각을 들어봤습니다. 이기웅 교수의 인터뷰는 총 2부에 걸쳐 게재됩니다.
 
“‘젠트리피케이션’ 용어는 한국에서도 사용될 수 있어요”
“학자들도 경험이 대단히 중요해요”[/su_frame]

 

logofinale연구문제를 어떻게 정하시는지요? 어디에서 영감을 얻으시나요?

 연구주제는 철저하게 경험에서 나와요. 또 저는 점점 더 많은 경우가 ‘선행연구’에서 나와요. 선행연구에서 해결되지 못했던 부분들, 연구를 진행하면서 새롭게 궁금해졌던 부분들. 그리고 연구를 하면서 어느 정도 알게 되었는데, 이 논문에서 커버할 수 없었던 부분들. 그 연구들을 중심으로 연구주제가 결정되죠. 같은 연구자들끼리 나누는 대화, 토론에서도 주제가 형성되는 경우도 있고요. 일단 주제가 결정되면 그 다음에 해야 할 것은 조사, 현지조사죠. 저 같은 경우는 규모가 큰 설문조사를 안 하기 때문에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고, 관찰하고 경험합니다.

 

연구를 이어나가게 만드는 동력은 무엇인지요?

[su_pullquote align=”right”]책에서 새로운 무엇이 더 이상 나오는 시대는 아닌 것 같아요.[/su_pullquote]

지적호기심이에요. ‘알고 싶다’는 욕구요. 그것이 없어지는 것은 연구자로서 죽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경험이 중요해요. 요새는 책에서 새로운 무엇이 더 이상 나오는 시대는 아닌 것 같아요. 그런 저작에 대한 학계의 평가도 예전만 못하고요. 물론 아주 잘 만들면 가치가 있겠지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주 잘 만들지 못하기 때문에, 순수이론적이고 추상적인 영역에서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은 그 부분에 특화된 두뇌를 가진 사람들이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요. 제 분야의 학자들은 자신들이 가진 경험들을 어떻게 학문적으로, 이론적으로 가공해서 내놓을 것이냐가 관건이고 그것을 해내는 논문일수록, 연구일수록 굉장히 가치가 크다고 봐요.

 

[su_youtube url=”https://youtu.be/XnkmWeP8Zz8″ width=”420″ height=”280″]

 

경험이 대단히 특별하고 유별난 경험이 아닐 수도 있는 거죠?

[su_pullquote align=”right”]자신들이 가진 경험들을 어떻게 학문적으로, 이론적으로 가공해서 내놓을 것이냐가 관건…[/su_pullquote]

아닌 경우가 많죠. 사실 특별하고 유별난 경험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그렇지만 우리 사회가 고도로 분화된 사회이기 때문에 한 영역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다른 영역의 사정을 몰라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또 그 안에서 어떠한 소우주가 형성이 되는지, 그 소우주가 어떻게 작동을 하는지 전혀 모르기 때문에 그런 사정들을 바깥 세상에 알려주는 것 자체가 커다란 가치를 지닌다고 봐요.

 

영감을 얻고 난 후, 저술이 나오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시나요? 

첫 순서는 조사죠. 조사하면 데이터가 쌓이잖아요. ‘그 데이터를 어떻게 가공할 것이냐’ ‘어떠한 개념과 어떠한 이론적 프레임을 갖고 그 데이터를 학문적으로 의미있는 담론으로 만들것이냐’가 중요해요. 그것을 위해 독서, 토론도 하고 다양한 방법들로 생각도 해보고 그러한 과정이 동시병행적으로 진행이 되는 거죠. 한편으로는 데이터 수집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 그 데이터를 가공하는 다양한 도구들을 동원해서 정합한 체계를 만드는 과정을 거칩니다.

 

저술이 완성되실 때까지 좀 오래 걸리시는 편이신가요? 경우에 따라 다른가요?

물론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저는 완성될 때까지 힘을 좀 많이 빼는 스타일이에요.

 

최근에는 어떤 연구를 진행하고 계세요? 관심 가는 연구주제나 분야가 있으신지요?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해서 논문도 발표도 하고 책으로 출간돼서 북콘서트, 인터뷰도 많이 했는데, 그 때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이 ‘대안은 뭐냐’라는 것이었어요. 물론 대안이 뭐냐는 것에 대해 굉장히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할 수가 있죠. 외국 사례는 어떤 것이 있으며, 한국에서 현재 정책적인 대안들이 어떻게 마련돼 시행되고 있는가를 알아보고 그런 것들에 대한 평가나 비판을 하는 것. 그러나 그런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기본적인 출발점은 ‘대안이 없다’는 것이에요. 정해져 있는 대안은 없고 대안은 만들어가야 한다는 겁니다. 대안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제가 관심을 갖고 연구하는 분야는 젠트리피케이션과 관련해서 어떠한 방식의 사회운동, 도시운동이 진행되고 있는지, 어떠한 단체들이 어떠한 활동을 하고 있는지, 또 그들은 누구인지에 관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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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뒷부분을 보면, 대안과 관련된 얘기가 나오는 것 같습니다. 대안적 경제, 사회적 경제운동이라든지, 아예 공간을 공동으로 임대해 새로운 방법을 모색한다든지 이러한 대안이 나와있는데, 그것과 맞닿아 있는 것인가요?

네, 바로 그거죠. 그 논문에서 길게 다루지 못했는데, 그것을 좀더 본격적으로 다룰 생각입니다. 그 논문은 일종의 예고편이라고 할 수 있었던 거죠.

 

지금 막 시작하려는 젊은 대학원생에게 하고 싶은 조언이 있으신지요?

학부생까지는 기본적으로 학생이거든요, 배우는 사람. 대학원생이 된다는 것은 더 이상 학생일 수만은 없다는 것입니다. 본인이 연구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는 얘기죠. 연구자라는 것은 선생님, 교수님들이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의 문제의식을 갖고 자기가 관심 있는, 호기심 있는 지적인 분야들을 발굴해내고 그 속에서 지식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지식생산자로서의 자세가 중요하다고 보고요. 그러니까 학교에서 배우는 것만 가지고 답습하려고 들지 말고 나만의 어떤 것을 새로 만들 생각, 만들어야겠다는 의지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봐요.

학생에서 연구자로의 전환은 굉장히 큰 도약이거든요. 그 도약을 이루기 전에 자기 성찰이 필요해요. 내가 과연 이러한 길을 걷기에 적합한 소양을 갖고 있는지. 내가 ‘알고 싶다라는 호기심’, ‘궁금하다라는 호기심’, ‘알아야겠다는 지적 굶주림’이 왕성한가. 학자로서의 길을 걷는 게 상당히 힘들고 고달프거든요. 단기적으로는 모르겠는데, 장기적으로 자기가 평생 이 길을 걷는다는 것은 상당히 희생이 많이 따르는 일이에요. 그러니 호기심, 지적 욕구가 없으면 상당히 버티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나의 지적 호기심이 충분한가를 점검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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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사와 박사를 준비하는 자세는 많이 다른 건가요? 아니면 지금 말씀하셨던 선상에 있는 건가요?

많이 다르지만, 근본적으로는 같은 선상에 있는 겁니다. 다만, 석사는 단기적이고 박사에 비해 요구되는 연구의 깊이가 깊지 않기 때문에 본인에 대한 테스트로 해볼 수 있어요. 석사를 해보고 결과에 만족을 하고 흥미를 느끼고 내 인생을 이 분야에 바칠 수 있는 의미를 찾는다면, 박사과정에 진학해도 좋고요.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박사를 하면 안되죠. 박사를 한다는 것은 굉장히 중대한 결정이에요. 그래서 보다 신중하게 결정을 해야 하는 것이고요. 그러한 고민 없이 박사과정을 가게 되면 여러모로 힘든 문제들이 발생을 하게 되는 거죠. 기본적으로 소질이 있어야 해요.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 축구선수 되고 싶다고 해서 제가 지금부터 10시간씩 연습해서 축구선수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마찬가지로 학자가 된다는 것도 학계에 진출한다는 것도 자기 나름의 소질이 있어야 되는 것인데, 제가 생각하는 가장 큰 소질은 바로 ‘지적 호기심’입니다.

“‘젠트리피케이션’ 용어는 한국에서도 사용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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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_frame] DBpia Report R이 논문저자 인터뷰 두번째로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이기웅 교수를 만났습니다. 이기웅 교수는 2016년 한해  역사학분야 DBpia 논문 이용 1위, 「젠트리피케이션 효과」 의 저자입니다. 논문의 주요 내용과 젠트리피케이션 논의의 현재, 평소의 연구방법 등에 대해 이기웅 교수의 생각을 들어봤습니다. 이기웅 교수의 인터뷰는 총 2부에 걸쳐 게재됩니다.
 
“‘젠트리피케이션’ 용어는 한국에서도 사용될 수 있어요”
“학자들도 경험이 대단히 중요해요”[/su_frame]

 

 

logofinale젠트리피케이션 효과’ 논문은 2016년 역사학 논문 1위였습니다. 또 2016년 4월 이래 역사학 논문 중 이용순위 상위 1% 논문이기도 했고요. 소감이 어떠신지요?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최근 몇 년 동안 굉장히 뜨거웠던 주제였습니다. 현 정치상황 때문에 젠트리피케이션 문제가 좀 가려지긴 했지만, 정치상황이 좀 안정이 되면 한국에서 지속적으로 이슈가 될 문제라고 생각을 해요. 그러한 관심이 많이 투영되어 이용순위 1위가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연구소 홈페이지 약력을 확인하니, 대중문화와 문화산업 연구를 주로 하셨던데요. 어떻게 도시연구, 나아가 젠트리피케이션 연구에 관심을 갖게 되셨나요?

네, 말씀처럼 처음부터는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스스로 완전히 도시연구자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아요. ‘대중음악과 도시’, ‘대중음악과 공간’이라는 주제로 연구하다가 ‘도시공간’이라는 주제,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주제가 제 눈에 들어오게 됐습니다. 사실 저의 젠트리피케이션 연구는 순수하게 도시공간 연구라기 보다는 ‘문화라는 것이 어떻게 도시공간과 결부가 돼 있는가’가 초점이었기 때문에 제가 그동안 해왔던 연구와 전혀 무관한 것은 아닙니다.

 

[su_youtube url=”https://youtu.be/vGSIjU-7soM” width=”420″ height=”280″]

 

교수님의 도시연구, 도시재생 연구가 기존의 도시연구와 어떤 다른 점이 있을까요?

기존의 도시연구를 하셨던 분들은 좀 더 구조적인 부분, 제도적인 부분에 대해서 초점을 맞춰 연구를 하시는 경향이 많습니다. 반면, 저는 기존에 문화연구를 해왔던 사람이다 보니까 기존의 도시연구에서는 덜 조명을 받았다고 할 수 있는 문화적인 차원, 사람들이 실제적으로 살아가는 실생활의 차원, 이런 것들을 좀더 주목해서 강조를 하려고 했었죠. 그런 점에서 차이가 있었고, 그런 점에서 약간의 논쟁도 있었고요.

 

논쟁이라면 어떤 논쟁인가요?

[su_pullquote align=”right”]문화, 미학, 창의 이런 것들이 ‘젠트리피케이션’에 있어 중심적인 개념이 될 수 있죠.[/su_pullquote]

젠트리피케이션에서 과연 핵심이 되는 것이 무엇인가, 젠트리피케이션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그 부분과 관련해 약간의 논쟁이 있었는데, 기존의 도시연구를 전공하셨던 분들은 자본이라든지, 지가(地價)라든지, 글로벌한 수준에서의 자본주의라든지 이런 차원에서 말씀을 많이 하시고,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해서도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계급투쟁이라든지 이런 부분에 대해서 강조를 많이 하십니다. 반면에 저 같은 경우에는 이른바 문화, 미학, 창의 이런 것들이 ‘젠트리피케이션’에 있어 중심적인 개념이 될 수 있지 않을까하고 생각하는 것이고요.

 

젠트리피케이션”을 무엇이라고 정의하면 될까요?

[su_pullquote align=”right”]젠트리피케이션은 “창의적 소상공인 또는 예술인들의 강제퇴거”[/su_pullquote]

제가 논문에서 언급했던 “창의적 소상공인 또는 예술인들의 강제퇴거”라는 정의가 얼추 맞아요.

 

젠트리피케이션이 원래 영미의 개념이라며, 한국적 상황에 걸맞는 용어가 아니라는 의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su_pullquote align=”right”]‘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용어가 원래 이런 뜻인데 한국에서는 잘못 사용되고 있다’ 이런 식의 입장은 찬성하지 않고요.[/su_pullquote]

사회과학, 인문과학에서는 ’개념이라는 것이 고정돼서 이것이 옳고 이것이 진리고 따라서 여기에 부합해야만 맞는 거다’라는 식의 접근이 있어요. 이것을 학계용어로 ‘정상과학’ ‘노멀 사이언스(normal science)’의 개념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저를 비롯해서 제가 같이 작업을 했던 연구자들은 ‘개념이라는 것이 조건에 따라 변화한다’ 그리고 ‘특정한 조건에서는 타당성을 가진 개념들이 따로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용어가 원래 이런 뜻인데 한국에서는 잘못 사용되고 있다’ 이런 식의 입장은 찬성하지 않고요. 한국에서 한국사람들이 어떠한 필요에 의해서 특정한 현상을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불렀을 때, 그것은 그 맥락에서 충분한 타당성을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들이 왜, 어떠한 필요에 의해서 그 개념을 사용하고 있는지 또는 그러한 개념을 어떤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개념을 한국사회에서 사용하고 있다면 그만한 효용이 있기 때문에 사용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용하는 자체를 옳다 그르다 따질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얼마나 효용이 있느냐 여부는 따질 수가 있겠죠.

 

[su_youtube url=” https://youtu.be/Qbj4daYLWQ4″ width=”420″ height=”280″]

 

논문을 읽으면서 ‘전치’의 개념을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쫓겨남’의 행위로만 전치의 개념을 해석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설명하고 계신데, ‘전치’라는 개념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요?

‘임대료 상승으로 인한 비자발적 퇴거’를 전치라고 이름붙인 거죠. 전치에 대해 비판한 문헌들 중에 ‘어떤 특정한 서민층, 노동계급 주거지역에 중간계층이 들어와 지가가 오르는 현상이 발생하는데, 그것이 반드시 전치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거기서 쫓겨서 딴 데로 가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젠트리피케이션이 반드시 전치를 발생시키는 것만은 아니다’라는 주장이 있어요. 사실 일반적으로 임대료가 2-3배 오르면 임차인들은 바로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경우도 있죠. 시차가 발생할 수 있다는 거에요.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하더라도 2-3개월 정도는 버티거나 1년 버티거나 그러다가 나가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돈을 더 감당하고 살 수도 있는 건데, 이른바 딴 곳으로 이동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걸 전치가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젠트리피케리션의 여파로 실제로 임차인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않았더라도 ‘전치’의 개념을 적용할 수 있다는 거네요?

네, 그렇습니다.

 

그러한 전치의 개념은 아무래도 포착해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인터뷰나 면접조사의 방법을 사용해 논문을 쓰신 것도 거시적인 연구로는 포착해 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셨을까요?

어떤 방법을 사용할 것인지는 무엇을 연구할 것이냐, 어떤 주제, 어떤 측면을 다룰 것이냐, 어떻게 접근할 것이냐 이런 것에 따라서 결정이 돼요. 다양한 연구방법들이 존재하지만, 그 연구방법들이 커버할 수 있는 주제, 영역, 문제의식은 다 다르죠. 구조적인 부분에 관심을 두고 초점을 맞춰 연구하시는 분들과 저희처럼 문화적인 부분에 관심을 두고 접근하는 경우와 사용할 수 있는 범위가 달라요. 구조적인 부분에 관심이 있는 연구자들은 통계 등의 거시적인 지표를 나타낼 수 있는 데이터들에 관심을 갖죠. 그 분들은 개개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경험을 하고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을 겁니다. 반면에 저와 같은 연구자는 (예를 들어 젠트리피케이션 같은 일들을) 사람들이 실제로 경험했을 때,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반응을 보이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를 알아내는 것이 무시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라는 문제의식에서 접근한 것이기 때문에, 통계와 설문조사 같은 방법으로는 깊이 있는 연구를 할 수 없는 것이죠. 그래서 심층면접의 방법을 사용한 것입니다.

인문학의 관심사는 지금, 여기, 현재의 문제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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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_frame align=”leftnone”]DBpia Report, R은 DBpia의 논문이용 통계 데이터를 바탕으로 매월 한 차례 분석 기사를 게재합니다.
이번 10월은 10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한 달간 DBpia 논문 이용 순위 1위부터 1만위를 대상으로 분석하며,
모두 4부에 걸쳐 게재됩니다.

 
(1) DBpia 10월 이용통계 상위 1만편 논문 키워드 분석
(2) DBpia 10월 이용통계로 본 사상가, 문인, 영화감독
(3) DBpia 10월 이용통계로 본 인문학 트렌드
(4) DBpia 10월 이용통계 상위 100위 변동현황[/su_frame]

 

rDBpia의 논문은 8개의 대분류로 나뉜다.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공학, 의약학, 농수해양학, 예술체육, 복합학 등이다. 각각의 대분류는 5~17개의 소분류를 거느리고 있다. 소분류를 모두 합치면 84개 분야다. 이번 기사에서는 키워드 분석에 이어 가장 많은 17개의 소분류를 거느린 ‘인문학’ 각 소분류의 상위 20위 논문들의 트렌드를 살펴보고자 한다.

자료를 보며 머리를 스치는 인상은 먼저 ‘오늘날 학문 존재론’이라는 부분이다. 무엇이 학자들로 하여금 연구하게 추동하는가? “앎에 대한 욕구” “지적 호기심” “분과별 논쟁적 주제 해결” “잘못된 것에 대한 문제제기” 등 다양하겠지만 오늘날 학문은 주로 “문제 해결”에 대한 요구를 많이 받는 것 같다. 즉, 현실에서의 다양한 사건, 현상, 제도의 변화 등이 연구를 추동하고 있다. 학문의 존재 이유가 명확해진 것 같아서 좋긴 한데, 기초가 부실해지는 건 아닐까 우려가 들 정도로 깊이 있는 개념적, 역사적, 철학적 탐구와 그에 대한 관심이 줄고 있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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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일반’에서 1위를 차지한 건 「왜 한국 남성은 한국 여성들에게 분노하는가」다. 이 논문은 전체에서 5위 안에 들 정도로 소위 ‘핫’한 논문이다. 논문의 저자도 한윤형이라는 2030세대의 대표적 논객이다. 그리고 「‘먹방’의 욕망에서 ‘쿡방’의 욕망으로」(3위), 「헬조선의 N포 세대와 노력의 정의론」(7위)도 순위가 높다. 「‘우리’는 어떻게 ‘일베’가 됐는가」(11위)도 보이는가 하면, 「박근혜 화법, 헛소리에 담긴 모순적 징후들」(14위), 「대학생들의 정치적 무관심은 지극히 정상적인 행동이다」(17위), 「한국의 청년실업과 대학교육 과정의 파행」(20위) 등으로 이어진다. 모두 현실의 어두운 면과 그에 대한 원인과 해결책 모색 류다. 그리고 현재진행형 이슈들이다.

역사학’ 분류에서도 이런 현상은 이어진다. 「강남역 살인사건부터 메갈리아 논쟁까지」(1위), 「젠트리피케이션 효과」(4위), 「한국사회의 인종차별」(5위), 「1940년대의 남자 동성애 연구」(6위), 「중등 “역사”·고등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반론」(7위), 「전염병, 안전, 국가」(9위),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쟁, 그 이후?」(12위), 「1970년대 이후 뉴욕의 젠트리피케이션」(12위), 「강남의 역류성 젠트리피케이션」(16위) 등 거의 절반이 현실적 문제를 다루고 있다.

철학’ 분류는 더욱 심하다. 「GMO의 윤리적 문제」(1위), 「전복적 반사경으로서의 메갈리안 논쟁」(2위), 「체세포복제배아 줄기세포의 최근 연구 동향과 관련 윤리지침」(3위), 「동물실험과 심의」(4위), 「뇌사판정과 장기이식의 윤리적 문제」(5위), 「대학생의 연애, 결혼에 대한 의식과 문화 연구」(7위), 「‘김영란법’의 시행에 즈음하여」(8위),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9위), 「다문화 가정 현황 및 한국어 교육 지원 방안」(11위), 「배아복제 기술의 윤리적 문제와 줄기세포 연구의 한계」(123위), 「한국 중등교육의 문제와 철학교육」(15위), 「동물 실험 옹호 논증의 논리적 분석」(19위) 등 절반 이상이 현실의 첨예한 이슈들이다. 하이데거라든지, 아리스토텔레스라든지, 주희나 공자는 그림자도 찾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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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과잉의 시대, 도덕붕괴의 거울인가?

또 하나의 트렌드는 윤리, 도덕, 합당과 같은 단어로 포괄될 수 있다. 그것은 올바른가? 그렇게 하는 것이 정당한가? 와 같은 질문이 논문 목록에서 압도적으로 표면화되어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의 유행도 사실 “새로운 시도도 좋지만 기존 주민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게 합당한가?”라는 질문으로 압축이 가능하며, ‘여혐’ 관련 논문도 “남성들이 여성 혐오는 윤리적으로 올바르지 않다”는 판단을 전제로 쓰인 것들이 많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역사를 국가가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주입한다는 게 가당키나 하느냐는 것이다. 안락사, 동물실험, 유전자조작식품, 동성애, 종교다원주의, 비속어, 원전사고, 언어폭력 등 “과연 이게 올바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논문들이 상당히 많다. 그리고 철학 연구는 이런 현실적 문제들을 좀더 정교하게 사유하고, 판단하고, 정리해나갈 수 있도록 ‘윤리학적 차원’에 치우쳐 있다. ‘열등감에 대한 탈가치의 윤리학을 위한 시론’ 등이 그렇다. 가치에 얽매어 열등해진 존재를 열등감에서 해방시켜주기 위해선 그것은 열등하지 않다는 논리와 그 논리의 체계로서의 윤리학이 필요한 것이니까.

오늘날 SNS에서는 매일매일 도덕적 규탄대회가 열리고 있다. 성폭력·성추행과 관련된 폭로와 사과, 이를 둘러싼 대중참여만 해도 우리 사회가 얼마나 도덕에 민감해졌는지 여실히 드러내준다. 논문은 그것의 반영이다. 그리고 도덕 과잉은 도덕 붕괴의 거울이 아닐까?
 
[su_frame align=”leftnone”](1) DBpia 10월 이용통계 상위 1만편 논문 키워드 분석
(2) DBpia 10월 이용통계로 본 사상가, 문인, 영화감독
(3) DBpia 10월 이용통계로 본 인문학 트렌드
(4) DBpia 10월 이용통계 상위 100위 변동현황[/su_frame]
 
강성민 리뷰위원  paperfac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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