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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는 세월호를 어떻게 다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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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_box title=”세월호 메모리얼” style=”soft” box_color=”#000000″ radius=”5″]DBpia Report R은 세월호 3주기를 추모하며, 학계의 세월호 연구를 논문리뷰 연재기획 “세월호 메모리얼”로 돌아봅니다. 우리 사회는, 우리 개인은 세월호를 어떻게 기억하고 겪어내고 있을까요? 4월 한달, 매주 한편씩 발행되는 논문리뷰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소개되는 논문전문은 리뷰 발행 후 1주일 간 자유롭게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세월호 메모리얼 1 >>> 친구잃은 학생들은 그 후 어떻게 됐을까?
세월호 메모리얼 2 >>> ‘사회적 고통’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세월호 메모리얼 3 >>> 미디어는 세월호를 어떻게 다뤘나?[/su_box]

logofinale세월호를 키워드로 가장 많이 살펴지는 논문은 상처, 고통, 트라우마에 대한 심리학적, 의료적 접근이다. 그다음은 ‘미디어’의 문제다. 초유의 사태였던 만큼 미디어 보도를 이모저모 살피고 분석하는 논문들이 많다. 그 중 세월호, 국가, 미디어(『언론과 사회』, 23(4), 2015)는 유독 눈길을 끈다. 부제 “조선일보와 한겨레의 세월호 의견기사에 나타난 ‘국가 담론’ 분석” 때문이다. 단순보도가 아니라 신문사의 시각이 반영된 의견기사를 통해 ‘국가 담론’을 도출해 비교했으니 그렇다.

요즘 유시민의 『국가란 무엇인가』가 베스트셀러 최상위권에 올라 있다. 그만큼 ‘국가’가 화두다. 세월호 사건은 사람들에게 “이것이 국가인가?”라는 탄식 섞인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다. 당연히 언론도 이 무능한 임무방기 국가를 다양하게 나무라고 다그쳤다. 보수의 아이콘 조선과 진보의 아이콘 한겨레는 어떻게 달랐을까.

 

[su_quote]이 글에서 주목하는 부분은 세월호 사건의 전개 과정에서 드러난, ‘국가’에 대한 사회적 상상social imaginary이라 할 수 있다.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란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단지 세월호 사건의 경과를 지켜본 국민 개개인의 마음 속에서 관념적으로만 떠오른 것이 아니다. 또한 그것은 지식인들의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다양한 논평 속에서만 그려진 것이 아니다. 그 질문은 국민들 내면의 탄식어린 추상적 물음이기 이전에, 또 지적·학문적 탐구를 동반한 지식인들의 성찰적 논리이기 이전에 저널리즘 미디어가 실제 사건의 추이에 따라 생산한 담론들의 중심점이기도 했다. 달리 말하면, 세월호 사건이 야기한 정치적 위기 국면에서 집권세력과 대항세력은 격렬한 헤게모니 투쟁을 벌였고, 그 투쟁의 한 가운데 국가에 관한 이질적 담론들이 있었다.(7쪽)[/su_quote]

 

국가에 대한 ‘사회적 상상’의 정치학

사회적 상상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사람들이 서로 어울려 생활하면서 그 방식과 결과에 대해 품는 규범적인 기대, 믿음, 이미지 등을 총체적으로 가리키는 말이다. 사회적 상상은 사회적 실천의 중요한 부분을 구성한다. 저자들에 따르면 사회적 상상은 유물론적 환원론과 대척되는 지점에서 그 쓸모가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관념적인 것’이 사회의 끊임없는 변전 속에서 수행하는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다. 사회적 상상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이데올로기는 ‘물질적 이해관계에 의해 결정되는 허위의식’으로 사회적 상상과는 다르다.

사회적 상상은 미디어가 만들어낸다. “예컨대, 미디어가 별것 아닌 노상강도(mugging)를 위협적인 존재로 반복해 보도하면서 사람들은 일상에서 위기감을 느끼게 되고, 이런 경험은 도덕적인 공황상태를 낳는다. 대중은 아주 현실적이고 비정치적인 듯 보이는 저널리즘 언어가 구성하는 사태 진행의 구체성 속에서 위기를 생생하게 경험하기에 이른다.” (11쪽)

 

도덕적 공황’과 ‘포퓰리즘식 법과 질서 운동’의 앙상블

또한 지배블록이 구사하는 전략의 핵심은 이와 함께 ‘허구적 해결책’에 있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대중이 위기를 체감하게 만드는 한편, 특정한 적을 상정해 문제에 대한 허구적 해결책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도덕적인 공황 상태의 조성도 필요조건이다. 언젠가 진중권은 “한국 언론은 문제가 생기면 원인을 찾는 게 아니라 적을 찾는다”라고 한 적이 있다. 시민들 사이에서 도덕적 공황은 어떤 상황을 불러왔는가를 한번 더듬어볼 필요가 있다. 대부분 옷깃을 여미고 단속하는, 즉 “사회 규범의 강화를 요구하는 여론”으로 자라난다는 걸 우리는 경험한 바 있다. 이는 다시 사회 질서와 권위를 유지하려는 지배세력의 요구와 만나 과도한 법 집행과 같은 포퓰리즘식 ‘법과 질서 운동’으로 귀결한다는 게 저자들의 진단이다. 이 과정에서 저널리즘 미디어와 같은 ‘대중적 이데올로기 세력’이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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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를 통해 드러난 미디어의 국가관

여당의 재보선 승리를 기점으로 조선일보는 급격한 논조 변화를 드러냈다. 세월호 사건이 여당에 대한 정치적 심판의 계기로 작동하리라는 일반의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재보선 결과는 다시 ‘국민의 뜻’으로 해석되었고, 이는 세월호 유족이나 특별법 등에 대한 조선일보의 부정적 입장을 합리화하는 강력한 근거로서 소환되었다. 여기에는 대의민주주의에서의 선거 결과를 ‘민심에 따른 심판’과 등치시키며 무조건적으로 신성시하는 해석의 논리가 근본적인 버팀목으로 깔려 있었다.

반면 한겨레는 ‘재보선 승리, ‘세월호 면죄부’ 아니다’라는 8월 2일자 기사에서 “세월호 참사의 정확한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대책 마련은 재보선 결과와는 상관없이 우리 앞에 주어진 절체절명의 과제다. (…) 이 과제는 선거 결과에 흔들릴 수도, 또 흔들려서도 안 된다”며 재보선 결과와 특별법 제정 문제의 분리를 강조했다. 재보선이라는 정치 이벤트가 지배세력과 피지배세력의 전체적인 역관계에 변화를 가져오고, 그것이 다시 신문 담론들의 입장 분화로 나타난 셈이다.

 

조선일보와 한겨레의 대항담론

조선일보와 한겨레는 세월호 침몰사고의 발발 후 약 7개월 동안 사고의 성격, 원인, 수습 방안, 관련 특별법, 이후의 사회적 지향점 등을 차별적으로 의미화했다.

[su_quote]흥미로운 것은 조선일보가 내세우는 ‘선진국’으로의 도약 조건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데 있다는 점이다. 신문은 세월호 사고가 ‘국제 경쟁에 노출되지 못한’ ‘뒤처진 분야’에서 발생했고, 거기 연루된 기업들이 ‘국내 시장에서만 사업을 해온 우물 안 촌뜨기 회사’였으며 관련자들도 ‘나라 밖에서 외국 경쟁자와 싸워본 적이 없는 내수형 인간’(칼럼 5.3)이었다고 지적한다. 기업과 개인이 신자유주의 시대 초국적 자본들의 무한경쟁 체제를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세월호 사건의 주원인으로 거론하는 것이다. (38쪽)[/su_quote]

결과적으로 조선일보가 생산한 국가 담론은 “발전주의와 국가주의, 신자유주의를 복잡하게 착종시킨 형태”를 보여준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 국가의 책임을 방기하고 공공 영역을 축소시키면서도, 이념적으로 강력한 국가주의를 고수하는 분열적 양상”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조선일보가 표상하는 이상적 국가는 ‘선진국’을 지향하며 온 국민이 모든 일에 대한 자기 책임 아래 경쟁하고 일로매진하는 신자유주의 체제에 가깝다.

반면 한겨레는 “신자유주의 국가의 무능과 무책임을 비판”하면서 대항담론을 형성하고 있다. 한겨레의 국가 담론은 근대적 정상국가, 복지국가의 지향을 드러내는 한편, ‘국가=정부=대통령’을 동일시하면서 국가권력을 의인화, 인격화하는 특징을 보인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많은 이가 말하듯, 세월호 침몰 사건은 “이것이 국가인가?”라는 국민들의 개탄과 분노를 낳았고, 이는 다시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문제제기로 이어졌다. 우리가 민주화를 통해 쟁취하고 구축한 국가란 과연 무엇이었던가? 신자유주의 한국사회에서 국가란 무엇인가? 그것은 또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폭도’로 몰린 ‘국민’이 ‘국토’ 위에서 ‘국민’을 학살하는 ‘국군’에 맞서 싸울 수밖에 없었던 광주항쟁 이후, 국가의 형상과 존재이유에 대해 이토록 절실한 집단적 문제제기를 촉발한 사건은 달리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광주항쟁의 국민들이 상대한 국가가 민주화 이전의 군부 쿠데타 세력이 장악하고 주도한 기구였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세월호 사건이 국민에게 남긴 정신적 충격과 상처는 한층 컸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어떻든 형식적으로는 민주화된 ‘정상국가’가 국민을 제대로 구조하지 못한(혹은 않은) ‘비정상적’ 사태로 인해 빚어진 참극이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일관되지도 않고, 아주 정교하다고도 할 수 없는 저널리즘의 국가 담론은 그럼에도 사회구성원들이 갖고 있는 국가에 대한 막연한 상상을 구체적으로 소환하고 매개하는 한편, 그럼으로써 (재)생산한다는 점에서 커다란 중요성을 갖는다.

저자들은 세월호 참사가 초래한 지배세력의 위기를 한국사회의 특수한 역사적 맥락 속에 위치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그것은 국가의 신자유주의적 재편과 그에 대한 시민대중의 저항이라는 맥락이다. 신자유주의는 자본축적과 이윤의 극대화를 목적으로 하며 이에 근거해 강력한 사유재산권, 법치, 자유로운 시장과 이를 뒷받침하는 자유무역제도를 추구한다. 신자유주의가 확대되면서 이윤의 최대화를 위한 능률, 생산성, 경쟁의 가치가 사회의 모든 영역에 침투하면서 국가 역시 경제적 효율성을 중시하게 된다. 공익을 위한 국가의 각종 규제는 ‘탈규제’의 교의 아래 해제되고, 공기업과 공적 자산은 사적 부문으로 전환된다. 물, 전기, 통신, 교통과 같은 다양한 공공재, 안전과 사회복지, 심지어 전쟁조차 신자유주의의 프로젝트인 ‘상품화’와 ‘민영화’의 포위망에 갇히게 된다고 저자들은 강조한다.

 

강성민 리뷰위원 paperface@naver.com

대안대학체제는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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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ofinale박근혜 정부에서 실시한 대학구조조정 정책으로 인해 대학 사회는 큰 변화를 겪었다. 노중기 한신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논문 「박근혜정부 대학구조조정의 정치사회학(『경제와 사회』, 111, 2016)을 통해, 대학사회가 겪은 내적 상처가 심각하다는 주장을 펼친다. 논문에서는 박근혜정부의 대학구조개혁정책의 핵심은 무엇인지, 정책에 대응하는 대학 현실과 그 원인을 분석하고 있다.

문제는 무엇인가
왜 정부가 직접 정원 축소 방식을 고집하는가

논문에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문제를 중심으로 논의가 전개된다.

첫째, 학령인구 감소에 대해 정부가 강압적 정원 축소 방식의 대학구조조정으로 대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 시장에 맡기지 않고 직접 개입하는가?
둘째, 사회적 실천의 오랜 역사를 가진 한국의 지식인, 대학사회가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정부정책을 수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객관적 주체적 조건은 무엇인가?
셋째, 대학에 대해 역사적 규정이나 선험적 규정은 유의미한가? 대학은 비판적 지성의 자율적 공간인가 아니면 노동력 생산 및 공급기구인가? 또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로 사회세력관계의 제도적 응결물인가? 요컨대 대학은 무엇인가? (81-82쪽)

논문에서는 기본적으로 한국 대학의 구조조정 문제는 매우 복잡한 사회현상이며, 한국 사회의 다차원적 구조적 변수들이 깊이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 그에 따른 ‘문제 제기’와 ‘가설적 설명 시도’가 이 논문이 시론적 성격임을 밝혀준다.

박근혜 정부 이전의
대학정책

대학구조조정 정책의 근원에는 1995년 김영삼 정부가 발표한 ‘5.31 교육개혁방안’이 있다. 이때의 신자유주의적 대학 정책들이 20년 간 대학을 크게 변화시켰다. 그러다가 2005년 무렵에는 정책적 실패, 학령인구 감소 등의 구조적 문제가 부각되었는데, 2004년 12월 노무현정부의 ‘대학 자율화 추진계획과 대학구조개혁 방안’으로 재정지원을 유인책으로 하여 국립대 통합 및 정원 축소, 사립대 정원감축 등이 대학에 강요되었다. 이것이 당근이라면, 이명박정부의 ‘대학평가’ 도입은 채찍이었다. 결과적으로 여러 시도가 있어왔지만, 법률적 근거 없는 대학의 퇴출은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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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복잡하지 않은 방법 속의
숨은 의도

박근혜 정부의 대학구조조정 정책은 별로 복잡하지 않게 전개되었다. 골자는 모든 대학을 평가하여 5등급으로 분류한 다음, 우수 등급 이하 대학들에 대해 차등적으로 정원을 감축하는 것이다. 필자는 그 과정에서 드러난 특징들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먼저 국가권력의 강압을 전제로 하여 대학 입학정원 감축만을 목표로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둘째로, 정원 감축을 위하여 다양한 정책 수단들(LINC, ACE, CK-Ⅰ, CK-Ⅱ, CORE 등)이 총동원되었다. 본래 독자적인 사업목적을 가지고 진행되던 재정지원 사업들이 구조조정사업의 일환으로 바뀌어버렸다. 셋째로, 대학특성별 분할 지배 방식을 체계적으로 사용하는 양상을 보인다. 즉 일반대/전문대, 국립대/사립대, 수도권대학/지방대학, 인문학/여타 응용학문 등 다양하게 구분하여 구조조정을 진행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2014년 이후 청년고용위기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정책의 명분이 달라졌다. 결국 대학구조조정은 청년 일자리 문제를 개혁하는 정책수단으로 설정되고 선전되었다.

구조조정에 대한
대학의 저항

대학의 성격별로 그 저항 양상도 달랐다. 그나마 국립대, 소수 명문 사립대에서 저항이 일어났지만, 그 외에는 대체로 미미하였다. 물론 수도권 대규모 사학 중 중앙대나 인하대 등 재벌이 운영하는 일부사립대에서 2015년 유의미한 저항이 발생하기도 했다. 필자는 대학 정체성상 구성원들이 들고 일어서야 마땅함에도, 막무가내로 진행된 대학구조조정이 순조롭게, 저항 없이 관철되고 있는 현실에 의문을 품는다. 왜 그렇게 된 것인지.

정책 실행의 상황적 배경

① 청년 고용 위기와 학생운동 쇠퇴
실업난으로 인하여 학생들은 대학 주체로서 적극적으로 활동하기보다, 불안한 미래를 준비하는 데에 더욱 주력하게 되었다. 또한 대학 사회의 자율성의 상징인 학생운동이 점점 쇠퇴하면서 대학 사회의 자율성 또한 위축되었다.

② 권위적 교수 및 전근대 대학사회
현대 사회의 민주화는 이행되었으나 대학 사회는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에도 주목하여야 한다. 이른바 인분 교수 사건이 대표적인데, 이를 통하여 대학 사회에 대한 비판적 여론 및 전통적인 모순은 그대로 남아있음이 확인된다.

③ 대학 지배 구조 고착화
국가의 대학 평가 정책도 대학 주체들이 무력하게 된 요인으로 꼽힌다. 구조조정, 성과연봉제, 재정회계 통제, 총장간선제, 권력 개입 등 여러 장치로 인하여 대학의 자주적 성질은 자연히 약화된다. 이에 더해 대학 내의 시간강사, 학생, 직원 등 이른바 지배자-피지배자 관계의 비문주성도 문제적이다. 나아가 각 집단들은 균열을 일으키고, 곧 이는 자유주의 대학구조조정이 원활히 진행될 수 있는 물적 토대와 연결된다.

지난 10여 년 간 국가, 재벌, 사학자본, 국민여론으로 결합된 구조조정 추동 세력은 매우 적극적으로 정책을 추진하였다. 그에 대해 대학 주체들의 대응과 연대 활동은 활발하였으나, 상대적으로는 미약하였다. 또한 대학 주체의 내부 균열은 정책 대응을 매우 어렵게 하게 된 요인 중 하나였다. 저자는 이와 같은 복합적 문제를 고려한다면, 정권 교체가 무조건적인 해답은 아니라고 보았다. 즉 정권 교체가 본질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키기 어렵다는 것이다.

 

대안 대학체제를 논의할 때
대학이란 무엇인가부터

단기적 해결이 어렵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상황의 문제점을 충분히 지적하고 공유함으로써 주체들의 각성을 점진적으로 불러일으켜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그 장기적 과제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대안 대학체제’의 정책 대안을 마련하여야 한다. 또한 이를 실행하기 위한 제반 노력이 필요하다.
② ‘연대를 통한 대학 주체의 재구성’, 곧 비정규직이 없는 대학 사회를 건설하여 지식인 운동으로서의 주체를 재구성해야 한다.
③ 최종적으로 ‘21세기 대학공동체 재정립’이라는 현실적 과제로 나아가야 하며, 곧 현 시대에 ‘대학이란 무엇인가’라고 끊임없이 질문하고 대답을 구해야 한다. 나아가 새로운 대학·사회·인간의 관계를 제시하여야 한다.

 

*함께 읽으면 좋은 논문

한국 대학구조조정의 형태 변화에 대한 연구」 
김일환, 2016, 경제와 사회』, 110, 201-238.

신자유주의 대학과 학력자본의 재생산
이동연, 2015, 문화과학』, 82, 12-38.

최종원 리뷰어  zwpow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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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를 통해 본 ‘신자유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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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ofinale오늘날 우리는 이념이 죽었다는 말들을 어렵잖게 접한다. 그것은 역사의 종언이라는 후쿠야마식의 테제에서부터, 좌파 철학자들이 논하는 탈 정치화된 포스트모던의 기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맥락에서 소비에트 블록이 해체되는 8, 90년대 이후를 설명하기 위해 동원되는 표현이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이념이 완전히 자취를 감춰버렸다고 하기엔 무언가 찝찝하지 않은가? 이념이 ‘우리 대 그들’이라는 구도를 통해 사회적 관계 내부의 배치를 조절하는 데에 개입하는 물질적 관념을 일컫는 말이라면 말이다. 계원예술대 서동진 교수(이하 ‘필자’로 표기함)의 논문 「신자유주의 통치성과 그 음산한 배면」(『문화과학』, 77, 2014)에서 푸코의 통치성 담론을 중심으로, 자유주의와 구별되는 신자유주의에서의 특수한 이념적 장소를 살펴본다. 알다시피 푸코의 통치성 개념은 그의 후기저작들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용어로서, 그의 사후 70년대 후반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행한 강의록이 출판되며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는데, 이는 그 중에서도 ‘자유주의 3부작’이라 불리는 『사회를 보호해야한다』, 『안전, 영토, 인구』, 『생명관리정치의 탄생』 등에서 가장 집중적으로 개진된다. 니콜라스 로즈(Nikolas Rose)를 비롯한 이른바 영국의 ‘통치성 학파’의 이론적 출발점이 되기도 했던 이 텍스트들은 권력에 대한 푸코적인 분석이 적용된 여러 저작들을 통해 그 문제설정이 확장되기도 한다. 한국어로 읽을 수 있는 작업들만 해도 대표적으로 『사회보장의 발명』(자크 동즐로),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서동진), 『푸코효과』(콜린 고든 외), 『권력과 저항』, 『신자유주의와 권력』(사토 요시유키), 『푸코 이후』(오모다 소노에 외), 『통치성과 자유』(사카이 다카시), 『시민을 발명해야한다』(바바라 크룩생크) 등을 꼽을 수 있으니, 현대 정치학 내지 역사학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 푸코의 후기 저술들은 상당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통치성의 단절: 인구는 소유자로,
사회는 협치의 공동체로, 정치경제학은 경제 없는 경영학으로

본고에서 그의 관심은 이러한 자유주의 통치이성 혹은 통치성의 항들에 관한 푸코의 언급, 즉 “인구를 주요 목표로 설정하고, 정치경제학을 주된 지식의 형태로 삼으며, 안전장치를 주된 기술적 도구로 이용하는 지극히 복잡하지만 아주 특수한 형태의 권력을 행사케 해주는 제도, 절차, 분석, 고찰, 계측, 전술의 총체”를 준거점으로 하여 그것이 신자유주의의 시기에는 어떤 방식으로 적용되는지를 그려보는 것이다. 그러한 청사진을 그리는 까닭은, 필자에 따르면 인구, 정치경제학, 안전기구 등의 항들이 푸코가 자유주의 통치성을 규정했던 시기와는 또 다른 맥락에서 주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에 따르면 우선 인구라는 항을 대체할, 혹은 보충하거나 연장할 개념은 다음과 같은 항들로서 셈해진다: “능동적 시민(active citizenship)”, 혹은 “소유자(owner)”, 또는 “자기계발하는 개인(self-empowering individual)”. 이들은 “포스트-인구 사회의 유력한 인물로 추정되어”온 범주들로서, 오늘날 ‘인구’라는 대상을 목표로 하는 통치성의 작용이 구체화되는 지점을 부분적으로 시사하고 있다. 우리가 필자를 따라, 신자유주의적 전환을 “고용사회란 이름으로 노동하는 인구를 기준으로 한 집합적인 사회보장(의료보험, 연금, 공공교육 등)을 집요하게 해체하는 과정”이자, “인구라는 권력의 대상을 재구성하고 그것을 새로운 낯을 한 생명관리정치의 주체로 재구성”하는 흐름으로서 간주한다면 이는 다소 명백한데, 아감벤 식 표현을 빌리자면 신자유주의란 ‘자기 계발하는 개인’, ‘소유자’, ‘능동적 시민’으로서 스스로를 주체화시키지 못한 이들로부터 정치적, 사회적 삶을 박탈하고 생물적 삶만을 남겨놓는, 이른바 ‘호모 사케르’를 편재화시키는 체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즉, 지난 20, 30년간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사회보장의 축소와, 고용유연화라는 이름으로 만성화된 구조조정과 비정규직의 흐름은 동시에 국가차원에서의 창업지원과 소액대출의 장려(소유자), 협동조합에 대한 지원(능동적 시민), 인문학에 대한 강조(자기 계발하는 개인)를 심화시킨 기제이기도 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권력의 목표로서의 ‘인구’라는 개념에 후행할 개념으로서 능동적 시민, 소유자, 자기 계발하는 개인을 꼽는 것은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 연장에서 제시되는 것은 “사회적인 것(the social)의 특수한 형태로서의 사회(Society) 역시 새로운 것으로 대체되어 가는 중에 있다”는 진단이다. 이는 저자의 최근 저작 『변증법의 낮잠』 (2015)에서도 주된 준거로서 활용되는 테제인데, 그 핵심은 ‘사회’라는 개념을 공화국이 열어젖힌 항상적인 봉기의 가능성 혹은 계급투쟁을 억제하고 제한하기 위해 고안된, 가상의 공동체이자 근대의 발명품으로서 간주하는 자크 동즐로(Jacques Donzelot)의 작업의 연장에서 ‘사회 이후의 사회’, 정치의 대상으로서의 사회를 그려낼 필요가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사회 또한 인구와 유사한 위상에서 권력의 목표를 이루는 것이었다면, 자유주의 이후의 신자유주의의 시퀀스에서는 마치 인구가 자기 계발하는 개인으로 재구성되듯, 사회 역시 해체되고 그 자리에 새롭게 구성되는 사회적인 것이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그렇게 구성되는 신자유주의 체제에서의 ‘사회적인 것’은 소셜미디어라는 형식과 상동관계에 있는 “협치(governance)의 모델에 근거한 다양한 공동체의 네트워크”라는 모습으로도 나타난다고 말한다. 요컨대 협치의 공동체-네트워크를, 와해되는 사회가 무력하게나마 그 자신을 재조직하려는 시도의 일환으로서 간주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인구를 “통치가능한(governable) 대상으로 마름질하는 지식의 총체로서의 정치경제학”역시 그 모습을 달리한다. “사회 속의 개인, 집합적인 생명의 일원으로서의 개인”이자 “국민-인구의 한 계기”로서의 인구가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이라는 윤리적 이상을 따르며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고 돌보는 개인”으로 대체되듯, 정치경제학은 “경제학을 제거한 경영학에 의해 대체 된다”. 이때의 경영학은 “기업의 경제 활동을 효율화하고 노동과정을 합리적으로 조직하는 데 유용한 공학적 지식과 테크닉”을 칭하는 것이 아니라, “창의성, 혁신, 협력, 팀워크, 코칭, 몰입, 자기-실현 등의 윤리적인 이상과 테크닉”이자 경제적 이상과 테크닉으로서 기능하는, “인간의 영혼과 감성에 관한 지식과 경제적 실천의 합리성에 관한 지식을 합성한 것으로서의 경영학”이다. 이는 현실 속에서 수완 좋은 CEO, 혹은 뛰어난 기업가, 천재적인 예술가를 통해 의인화된 형태로 관철된다.

 

정치적 이념의 소거와
삶-윤리적 이념의 대두

이어 필자는 박근혜 집권 이후 괄목할 만한 이념적 사건, 혹은 정치적 분기점이라 할 법한 사례를 반북주의로 점철된 통합진보당 사태, 반공주의를 부추기는 장성택 처형을 대서특필하는 가십적인 보도들, 이들 주변을 배회하는 일베의 각종 소요들로 꼽는다. 현재 김정남 암살을 둘러싼 무성한 소문들에서 보이듯 이는 본고가 쓰인지 3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로 재현되는 풍경이다. 그러나 필자에 따르면 이는 더 이상 예전과 같은 효과를 갖지 않는다. 이념을 담지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졌던 인식론적 흐름들이 어느 순간 근본주의자들의 비합리적 믿음으로서 현상하고 주변화 될 때 이는 명백한데, 알다시피 현재의 포스트 탄핵국면에서 태극기 집회는 좌파들뿐만 아니라 자유주의자들을 비롯한 웬만한 보수 우파 이데올로그들에게까지도 무시할만한, 시끄러운 소요를 빚는, 광신도들의 소극으로서 나타난다.

그는 이러한 맥락에서 반공, 반북주의를 정치를 이념화하는 것이 아니라, 이념화 되지 못한 정치의 불모성을 증언하는 것으로 독해한다. 즉, 필자는 더 이상 이러한 풍경들로부터 “총체적인 이념”, “현상해야할 이념” 등을 찾지 못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70년대 개발독재의 시기 효과적인 이상화를 가동시켜낼 수 있었던 이념의 무대로서의 반북주의와 반공주의는 이제 민주화정권과 자신의 거리를 설명하기 위해 동원되는 보조적인 수단으로서 작동할 따름이다, 그렇다면 진정으로 우리시대의 이념의 정치가 작동되는 무대는 어디일까? 필자에 따르면 그 무대는 바로, 자기계발 하는 주체의 전제이자 그 효과로서의 “타인을 성가시게 여기는 주체”, 즉 ‘타인을 위험으로 간주하는 주체’ 자체이다.

타인을 위험으로 간주하는 주체의 징후는 많은 학자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어왔다. 예컨대 지젝은 니코틴 없는 담배, 카페인 없는 커피 등을 논하며 그 중에서도 흡연에 대한 사회적 폄하와 전자담배의 등장을 진정한 쾌락주의와는 거리가 먼 유사 쾌락주의라 말하며 이를 오늘날의 윤리가 건강과 복리를 전유하는 징후로 독해하거나(『멈춰라, 생각하라』, 2012), 체제 혹은 생산양식으로부터 발생하는 객관적 폭력이 허용하는 제한적 자유의 축소판으로 읽는다(『폭력이란 무엇인가』, 2011). 바디우는 『사랑예찬』(2010)에서 점차 계약화되며 외주화되는 경향을 띠는 만남과 성애를 규탄하며 그것이 사랑을 안전화하려는 기만적인 시도임을 지적하고, 본래부터 위험할 수밖에 없는 사랑의 본질을 적극 옹호한다. 여기서 거론되는 ‘사랑의 위기’는 정체성 중심의 주체화가 강조되어온 일종의 반동적 시기에 대한 환유로서 제기되는데, 왜냐하면 그에게 사랑이란 소여의 사회적 분할과 경계들을 허물어버리는, 동일성을 파괴하는 기제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동인이기 때문이다.

서동진은 여기서 더 나아가 푸코의 개념들을 통해 오늘날 여러 제도들과 담론, 미시적 영역들에서 ‘위험과 폭력’이 강조되는 경향을, 신자유주의의 통치성의 효과로서 생산된 이념으로서 규정한다. 즉, 이제 “우리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이런 연대의 체계가 부재할 때, 병리적이라 할만치 자기 돌봄과 관리라는 윤리적인 폭력에 시달릴 때, 우리 내부에 만연하는 타인에 대한 배척과 증오를 어떻게 다룰까 하는 것이다”. 이렇게 타인의 사적인 공간을 침범해선 안 된다는 이념의 현상은 수많은 윤리적 수행문들에서 드러난다. 그것은 ‘공공장소에선 신문을 접어 읽을 것’, ‘백팩을 앞으로 맬 것’에서부터 “다리를 벌리고 앉지 말 것,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큰 목소리로 전화 대화를 하지 말 것, 앞자리의 좌석을 발로 차지 말 것, 절대 흡연하지 말 것 등등으로 이어진다”. “그리하여 우리는 반도체조립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목숨을 잃은 여성노동자들의 죽음을 극구 산업재해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기업보다는 언젠가 암으로 죽을 위협을 안겨다줄지 모를 간접흡연을 강요하는 흡연자들을 더욱 혐오하고 불편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요컨대 여기서 필자는, 지젝 식의 표현을 빌자면, 객관적 폭력은 이제 더 이상 우리의 관심이 되지 못하며, 당장 우리의 안위를 해치는 주관적 폭력만이 문제가 되는 시기에 접어들었으나, 이것이 우리시대의 이념이 상연되는 장소임은 망각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물론 이는 이념의 장소라기보다는 인간이 사회적 삶을 영유하기 위해 요구되는 ‘기본적인 에티켓’의 범주가 사회의 분화과정에 따라 체계적으로 범주화되고 명문화되는 것에 가까워 보일지도 모른다. 당장 1965년의 김수영의 시만 하더라도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 자신을 질책하지 않던가. 따라서 본래 인간은 근시안적인 동물인 것이지, 그러한 근시안성을 신자유주의의 이념이 관철되는 장소로서 제시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아니냐고 반문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허나 그렇다 하더라도 문제의 ‘기본적인 에티켓’이 분화되고 명문화 되어야함을 요청하는 기제가 무엇인지, 그러한 도덕적 소양을 갖추지 못한 이들에게 돌아가는 폭발적인 윤리적 비난이 과연 필연적인 것인지의 문제는 남는다. 그렇다면 적어도 ‘~주의자’로서 정치적 이념의 장 속에서 상대를 비난하고 논박했던 냉전, 혹은 극단의 시대 이후, 이른바 포스트 냉전시대에는, 정치적 이념의 장은 소각되고 그 자리에 ‘폭력범’과 ‘무뢰한’이란 표현이 주를 이루는 삶-윤리적인 이념의 공간이 열리게 되는 것은 아닌지 되물을 수 있을 것이다. 징후적 독해에 넌더리가 난 이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따라서 본인은 필자가 이러한 측면에서 제기되는 합리적인 심증을 바탕으로 신자유주의적 시기에 열리는 이념적 장소의 청사진을 그려내는 것을 충분히 가능한 시도로 본다.

 

추상화 된 자본주의에서
구체화 되는 절대적 부정

한편 필자는 바우만(Zigmunt Bauman)이 말했던, “불안과 위험으로 가득 찬” 실존적 공포를 덜어줄 “대리표적”을 찾는 동시대인의 경향을 언급하며, 이러한 대리표적의 한국적 사례로 “4대악”을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성폭력, 가정폭력, 학교폭력, 불량식품으로 요약되는 4대악은, “형법전을 통해 세심하게 분류된 범죄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처벌이 규정된 사법적인 정의의 대상이 아니라 곧장 사회의 외부로 떠밀어내야 할 윤리적인 악의 이름을 얻는다”. 이어 그는 로익 바캉이 신형벌주의라 칭하는, 이른바 “징벌 국가, 범죄 통제 국가, 배제 국가” 등이 새로운 이념이 지향하는 이상화된 공간이 되었다고 말한다. 결국 이러한 공간에서, 이념은 더 이상 “좌파와 우파 간의 정치적 대립으로서 이상화되지 않”으며, “선악의 판관으로 복귀한 법률적 코드”에 의해, “불안하고 섬약하며 위태로운 나와 그를 괴롭히고 해코지하며 위험에 빠뜨리는 범죄자의 대립으로”서 현상하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적인 것은, 정치적 이념의 장을 경유하여 조직된 발화를 통해 세계와 자신의 거리를 설정하고 실천할 수 있었던 지난 세기의 전통이 그 힘을 더 이상 발휘할 수 없게 되었을 때, 그리고 정치적 이념이 더 이상 유효한 이념으로서 간주되지 않게 되었을 때, 주체의 편에 남는 부정의 형식은 절대적 부정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페미니스트가 싫어 IS에 입단하려 하는 소년, 세월호 유가족들 앞에서 폭식 투쟁을 하는 일베 회원, 묻지마 살인을 저지르는 심신박약자, 원인 모를 우울증을 호소하는 중장년, 계층과 성별을 불문한 다양한 연령대의 자살자 등을 통해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테러로 세계에 대한 분노를 해소하는 소년이 등장하는, 하정우 주연의 <더 테러라이브>(2013)에 필자가 주목하는 까닭은 어쩌면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 영화의 주된 무대가 되는 배경인 마포대교는 “한강 다리 가운데 자살자가 가장 많은 다리”인 동시에 삼성생명이 서울시와 함께 ‘생명의 다리’ 프로젝트를 진행한 다리이기도하다.

글의 결론부에서 필자가 내리는 진단은 다음과 같다: “노후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 15억이 필요하다고 겁박을 주며 삶의 불안과 위험을 걱정하는 자들의 돈을 끌어 모으는 금융기관은, 이제 그 불안과 공포를 이기지 못해 죽음을 택한 자들을 위해 윤리적인 자선을 행하는 기괴한 자세를 취한다. 비참한 삶의 난간인 마포대교. 어쩌면 그 위에 신자유주의 통치성의 음화(陰畵), 자기계발 하는 주체의 윤리의 이면이라 할 윤리의 세계가 상연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결국 그렇게 필자의 주장대로, 이념이 여전히 첨예하게 상연중인 것이라면, 우리는 동시대의 이데올로기 비판이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할지 고민해볼 수 있지 않을까? 혹은 정치의 장으로부터 퇴장한 이념을 다시금 정치로 되돌릴 방법을 고찰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선취되어야 할 점은, 이념이 떠나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에 있을 것이다.

*함께 읽으면 좋을 논문

「혁신, 자율, 민주화… 그리고 경영: 신자유주의 비판 기획으로서 푸코의 통치성 분석」
서동진, 2011, 『경제와사회』, 89, 71-104.

「푸코에 대한 연구에서 푸코적인 연구로: 한국에서 푸코 저작의 번역과 연구현황」
진태원, 2012, 『역사비평』, 99, 409-429.
정강산 리뷰어  wjdrkdtks9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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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정부의 복지정책은 성공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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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ofinale버락 오바마는 이제 미국의 ‘전前’ 대통령이 되었다. 그의 퇴임 연설은 후임 대통령인 트럼프의 막말과 대비되면서 많은 이들이 오바마의 퇴임을 안타까워했다. 부패하고 무능한 정치인들의 변명과 비겁함을 목도하는 지금, 오바마 같은 지도자를 향한 열망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오바마 정부 시기는 늘 좋기만 했던 것도 또 평화롭기만 했던 것도 아니었다. 금융위기와 전쟁 속에서 집권한 오바마 정부는 오바마케어와 같은 복지정책을 실행하는 데에는 성공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복지정책은 한시적이었으며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이런 점이 트럼프의 집권과 오바마케어의 축소라는 아이러니로 돌아온 것은 아닐까.

김윤태 고려대 인문대학 사회학과 교수의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빈곤정책과 복지정책의 변화: 오바마 행정부의 사례」(『비판사회정책』, 43, 2014)는 오바마 정부가 경제 회복과 빈곤 완화를 위해 복지 확대를 추진했지만 실질적인 성과를 얻지 못한 이유를 분석한다. 연구자는 사회정책을 결정하는 데 경제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정치적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정당의 정치 전략이 복지정책의 방향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논문은 오바마 정부 임기가 완전히 끝나기 전에 쓰였기 때문에 오바마 정부 시기 전체를 온전히 반영한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주요 대선 주자들이 저마다 복지정책을 들고 나오면서 각축을 벌이는 지금 시기일수록, 오바마 정부의 경험을 반추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와
신자유주의적 복지정책의 한계

신자유주의의 시대라 할 수 있을 지난 30년 동안, 서유럽과 미국의 복지정책은 크게 후퇴했다. 하지만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로 국가가 실업과 빈곤을 해결하는 데 나서야 한다는 여론이 강해졌다. 이에 따라 오바마 정부는 적극적인 경기부양 정책을 펼쳤지만 미국 노동시장은 높은 실업률과 고용 침체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문제는 경제위기가 단지 경제적인 현상에 그치는 게 아니라 인종적이면서 계층화된 현상이기도 하다는 데 있었다. 2010년 기준 실업률은 “백인 8.7%, 흑인 16.0%, 히스패닉 12.5%(95쪽)”로 나타났으며, 연령별로는 15~24세 청년들의 실업률이 가장 높았다. 무엇보다 고학력자에 비해 고졸 이하의 저학력자의 고용률 하락이 가장 심했다(고학력자 실업률 4.7%, 저학력자 실업률 15%).

높은 실업률은 소득 수준 또한 악화시켰다. 2007년 대비 2012년 실질 중위소득은 8.3% 가량 하락했으며, 인종적 격차는 더욱 커졌다. “1999~2000년과 비교했을 때 2012년 백인 가구의 소득은 6.3%, 아시아계 미국인 가구의 소득은 7.7%, 히스패닉 가구의 소득은 11.8%, 흑인 가구의 소득은 15.8% 정도 감소했다(97쪽).” 임금노동자 내부의 소득 불평등도 심해졌다. 고소득자라 할 수 있는 임금 상위 80분위 이상의 노동자는 시간당 실질 임금이 증가했지만, 임금 하위 10분위와 20분위 노동자는 실질 임금 감소폭이 가장 컸다.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남성보다 여성이 저임금 노동자에 많이 속했고(남성 24.3%, 여성 32.0%), 인종적으로는 흑인과 히스패닉의 비율이 백인보다 높았다(흑인 36%, 히스패닉 43.3%, 백인 23.4%). 이뿐만 아니라 불완전고용 비율도 높아졌다. 반면 미국 기업들의 이익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13%로 상승해 노동자의 상황과 크게 대비되었다.

기업은 점점 부유해지는 데 비해 노동자는 더욱더 빈곤해지는 상황은 사회 전체의 빈곤율 증가로 이어졌다. 2012년을 기준으로 했을 때 미국의 빈곤율은 15%에 달했으며 인종적으로 히스패닉과 흑인의 비율이 높은 상황이었다. 그에 따라 오바마 정부는 ‘미국의 경제회복 및 재투자법’을 시행해 실업보험과 사회안전망을 위한 연방정부 예산을 확충했고, 주 정부와 지방 정부에 연방 정부 기금을 제공해 경기를 부양하고자 했다. 하지만 경기 부양은 미봉책이었고 연방 정부의 프로그램이 종료되면서 그 효과는 크게 줄어들었다. 또 한 가지 아이러니는 노인 인구보다 18세 미만의 아동과 18~64세 근로연령세대 인구의 빈곤율이 크게 상승했다는 데 있다. 노인 세대는 보충소득보장 급여 등의 혜택을 받아 상대적으로 덜 빈곤해졌다고 할 수 있었다. 한편 근로연령세대의 빈곤은 근로빈곤층의 증가로 이어졌다. 전체 빈곤층의 44%가 극빈층이 되었을 만큼 빈곤층 내의 삶의 질이 급격히 떨어진 상황은 오바마 정부 시기의 미국인들이 금융위기의 여파 속에서 흔들리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오바마 정부보다 훨씬 이전 시기였던 1990년대 클린턴 정부 때에도 복지정책은 일부 시도되었다. 하지만 클린턴 정부의 복지정책은 이른바 ‘근로연계복지workfare’로서 국가의 책임보다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는 쪽에 속했다. 클린턴 정부는 빈곤가정 임시지원 제도 TANF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수급자에게 엄격한 근로의무를 부과했다. 하지만 정작 빈곤층이 자활하기 위한 교육과 훈련을 충분히 받을 수 있는 기회는 제대로 제공하지 않았다. 경제호황과 실업률의 감소로 빈곤율도 일시적으로 줄었다. 하지만 2000년 이후 IT 버블이 터지고 경기가 침체되면서 빈곤층은 다시 증가했다. 클린턴 정부에 뒤이은 부시 정부는 클린턴 정부 시기의 부족한 복지정책을 더욱 줄이는 데 힘을 기울였다. 전체 사회보장에서 TANF가 차지하는 비중은 줄었고 현금 지원 또한 감소했다. 대신 근로가정에 대한 소득공제를 제공하는 근로장려세제와 빈곤층에 현물을 제공하는 보충영양보조 대상자는 증가했다. 이 같은 정책 변화는 그나마 미흡한 근로연계복지마저도 ‘축소 정치’에 희생되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세출 축소를 중시했던 부시 정부는 이라크 전쟁과 아프간 전쟁 등에서의 막대한 군사비 지출로 인한 국가 부채 문제에 직면했다.

 

오바마 정부의 복지정책은 
어떻게 한계에 봉착했는가

국가 부채와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악재를 떠안은 채 출범한 오바마 정부는 미국 경제회복 및 재투자법ARRA의 제정을 통해 케인스주의적 경기 부양책을 펼쳤다. 연방 정부의 주 정부 재정지원, 복지 급여 인상과 수급 조건 완화, 개별 가구 및 기업의 조세 감면, 사회기반시설과 기술 부문 투자를 골자로 하는 ARRA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은 조세 감면이었다. 그렇지만 연구자는 오바마 정부의 사회보장 개혁은 부시 정부와 차이를 보인다고 지적한다. 미국 의회예산국에 따르면 “2011년 말까지 ARRA의 효과로 실질 국내총생산이 0.2~1.5% 증가했고, 실업률은 0.2~1.1%p 감소했으며, 고용 인구는 30만~200만 명 증가했으며, 전일제 일자리가 약 40만~260만 개 창출된 것으로 추정(107쪽)”된다. ARRA 법안과 예산에 따라 소득보장 제도 또한 일시적으로 확대되었다. 실업보험 예산이 확대되었고 수급 연장이 가능해졌으며, 보충영양보조 급여 수준이 인상되었다. 근로장려세제와 TANF 관련 예산 또한 증가했다. 보충소득제도의 일시 부가금을 위해 재정 지출이 이뤄졌고 저소득층을 위한 의료보장제도인 메디케이드가 확대되었다.

ARRA를 비롯한 오바마 정부의 복지정책은 나름 실효성을 보였다. 그러나 대부분 2013년에 종료되면서 장기 실업자가 타격을 입는 것은 불가피했다. 단적으로 폴 크루그먼은 오바마 정부의 경기 부양책이 “국민총생산의 최대 1.6%를 진작하는 데 그쳤고, 유효기간은 2년을 조금 넘었기 때문에 경제침체를 극복하기에 충분하지 못하다(110쪽)”고 비판했다. 비록 오바마 정부는 ARRA 법안의 시효가 끝나는 2011년 9월에 4,470억 달러 규모의 ‘미국 일자리 법’의 입법을 시도했으나, 민주당의 보수적인 상원의원들을 포함한 우파의 반대로 실패했다. 오바마케어(전국민 의무 건강보험 제도)는 입법에 성공했지만, 보험 가입 사이트 장애, 기존 보험 가입자의 무더기 해지, 보험료 인상 우려 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한편 2012년 재선된 오바마 대통령은 빈곤을 줄이기 위해 최저임금 상승을 새로운 국정목표로 설정했다. 최저임금을 시간당 7.25달러에서 9달러로 인상하는 것은 물론, 매년 물가인상분에 연동하겠다는 것이 오바마 대통령의 목표였다. 하지만 하원 다수당이 된 공화당이 격렬하게 반대하는 한 최저임금 상승은 쉽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연구자는 오바마 정부가 1930년대 대공황 시기의 루스벨트 정부와 비슷한 상황에 놓였으면서도 왜 그때보다 못한 사회개혁에 머물러야 했는지를 분석한다. 첫째, 양당제와 이념적 대립이라는 미국 정치의 구조적 한계가 작동했다고 본다. 특히 반복지 정치연합이 주류의 풍부한 자원과 인종적 편견을 통해 강고해지면서 복지 확대의 정치를 봉쇄하는 양상이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둘째, 오바마 정부 또한 전략상 실책을 보였다. ARRA는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생활수준을 충분히 개선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지세를 끌어모으는 데 실패했다. 연구자는 여기서 오바마 정부가 클린턴 정부와 마찬가지로 직업 교육과 같은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시행하지 못함으로써 정책의 한계를 노출했다고 본다. 복지 지출의 대략 1/3이 근로장려세제 등의 세금우대 정책에 쓰이면서 대중의 눈에 띄지 못했고 경기 부양의 효과도 적었다는 것도 문제였다. 2010년 11월 의회 선거에서 민주당이 참패함에 따라 오바마 정부의 입지는 더욱 줄어들었다. 공화당은 메디케어/메디케이드의 사영화와 축소를 공공연히 주장했고, 2013년 9월에는 보충영양보조 예산을 10년 동안 400억 달러 삭감하기로 결정했다. 정치권 내외에서 실패한 오바마 정부는 복지정책을 지속할 내외적 동력을 상실해 갔다. 다만 부시 정부 당시 진행되었던 부자 감세 정책의 만기를 연장하지 않음으로써 부분적인 부자 증세 정책을 도입하는 데 그쳤을 뿐이었다.

여기서 연구자는 복지국가가 자본의 전지구화로 인해 후퇴한다는 네오마르크스주의적 관점보다, 계급연합class coalition 같은 정치적 행위자가 주요한 역할을 한다는 에스핑-안데르센의 관점을 참조한다. 하지만 이런 관점을 미국에 전적으로 적용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여기서 오바마 정부는 계급연합이라는 측면에서 보았을 때 정당과 대중 사이의 연결을 강화하는 데 실패했다고 할 수 있다. 그 원인은 오바마 정부의 사회개혁 정책이 대부분 한시적인 프로그램에 그쳤다는 데 있다. 개혁 조치가 종료되면서 경기부양 효과는 미미해졌고, 오바마 정부는 선거의 패배로 정치적인 난관에 몰림에 따라 주요 빈곤정책의 후퇴를 감내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연구자가 강조하는 대로 복지정책에 있어 정치적 행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면, 우리 또한 오바마 정부의 경험에서 조금이라도 교훈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함께 읽으면 좋은 논문

「오바마케어와 관련한 노동시장 논쟁」
한주희, 2013, 『국제노동브리프』, 11(11), 56-69.

「오바마의 ‘일자리 법안’과 긴축 재정 그 너머」
디얼드리 그리스월드·임경민, 2011, 『정세와노동』, 72, 47-51.

김주원 리뷰어  leopord8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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