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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는 세월호를 어떻게 다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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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_box title=”세월호 메모리얼” style=”soft” box_color=”#000000″ radius=”5″]DBpia Report R은 세월호 3주기를 추모하며, 학계의 세월호 연구를 논문리뷰 연재기획 “세월호 메모리얼”로 돌아봅니다. 우리 사회는, 우리 개인은 세월호를 어떻게 기억하고 겪어내고 있을까요? 4월 한달, 매주 한편씩 발행되는 논문리뷰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소개되는 논문전문은 리뷰 발행 후 1주일 간 자유롭게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세월호 메모리얼 1 >>> 친구잃은 학생들은 그 후 어떻게 됐을까?
세월호 메모리얼 2 >>> ‘사회적 고통’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세월호 메모리얼 3 >>> 미디어는 세월호를 어떻게 다뤘나?[/su_box]

logofinale세월호를 키워드로 가장 많이 살펴지는 논문은 상처, 고통, 트라우마에 대한 심리학적, 의료적 접근이다. 그다음은 ‘미디어’의 문제다. 초유의 사태였던 만큼 미디어 보도를 이모저모 살피고 분석하는 논문들이 많다. 그 중 세월호, 국가, 미디어(『언론과 사회』, 23(4), 2015)는 유독 눈길을 끈다. 부제 “조선일보와 한겨레의 세월호 의견기사에 나타난 ‘국가 담론’ 분석” 때문이다. 단순보도가 아니라 신문사의 시각이 반영된 의견기사를 통해 ‘국가 담론’을 도출해 비교했으니 그렇다.

요즘 유시민의 『국가란 무엇인가』가 베스트셀러 최상위권에 올라 있다. 그만큼 ‘국가’가 화두다. 세월호 사건은 사람들에게 “이것이 국가인가?”라는 탄식 섞인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다. 당연히 언론도 이 무능한 임무방기 국가를 다양하게 나무라고 다그쳤다. 보수의 아이콘 조선과 진보의 아이콘 한겨레는 어떻게 달랐을까.

 

[su_quote]이 글에서 주목하는 부분은 세월호 사건의 전개 과정에서 드러난, ‘국가’에 대한 사회적 상상social imaginary이라 할 수 있다.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란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단지 세월호 사건의 경과를 지켜본 국민 개개인의 마음 속에서 관념적으로만 떠오른 것이 아니다. 또한 그것은 지식인들의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다양한 논평 속에서만 그려진 것이 아니다. 그 질문은 국민들 내면의 탄식어린 추상적 물음이기 이전에, 또 지적·학문적 탐구를 동반한 지식인들의 성찰적 논리이기 이전에 저널리즘 미디어가 실제 사건의 추이에 따라 생산한 담론들의 중심점이기도 했다. 달리 말하면, 세월호 사건이 야기한 정치적 위기 국면에서 집권세력과 대항세력은 격렬한 헤게모니 투쟁을 벌였고, 그 투쟁의 한 가운데 국가에 관한 이질적 담론들이 있었다.(7쪽)[/su_quote]

 

국가에 대한 ‘사회적 상상’의 정치학

사회적 상상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사람들이 서로 어울려 생활하면서 그 방식과 결과에 대해 품는 규범적인 기대, 믿음, 이미지 등을 총체적으로 가리키는 말이다. 사회적 상상은 사회적 실천의 중요한 부분을 구성한다. 저자들에 따르면 사회적 상상은 유물론적 환원론과 대척되는 지점에서 그 쓸모가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관념적인 것’이 사회의 끊임없는 변전 속에서 수행하는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다. 사회적 상상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이데올로기는 ‘물질적 이해관계에 의해 결정되는 허위의식’으로 사회적 상상과는 다르다.

사회적 상상은 미디어가 만들어낸다. “예컨대, 미디어가 별것 아닌 노상강도(mugging)를 위협적인 존재로 반복해 보도하면서 사람들은 일상에서 위기감을 느끼게 되고, 이런 경험은 도덕적인 공황상태를 낳는다. 대중은 아주 현실적이고 비정치적인 듯 보이는 저널리즘 언어가 구성하는 사태 진행의 구체성 속에서 위기를 생생하게 경험하기에 이른다.” (11쪽)

 

도덕적 공황’과 ‘포퓰리즘식 법과 질서 운동’의 앙상블

또한 지배블록이 구사하는 전략의 핵심은 이와 함께 ‘허구적 해결책’에 있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대중이 위기를 체감하게 만드는 한편, 특정한 적을 상정해 문제에 대한 허구적 해결책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도덕적인 공황 상태의 조성도 필요조건이다. 언젠가 진중권은 “한국 언론은 문제가 생기면 원인을 찾는 게 아니라 적을 찾는다”라고 한 적이 있다. 시민들 사이에서 도덕적 공황은 어떤 상황을 불러왔는가를 한번 더듬어볼 필요가 있다. 대부분 옷깃을 여미고 단속하는, 즉 “사회 규범의 강화를 요구하는 여론”으로 자라난다는 걸 우리는 경험한 바 있다. 이는 다시 사회 질서와 권위를 유지하려는 지배세력의 요구와 만나 과도한 법 집행과 같은 포퓰리즘식 ‘법과 질서 운동’으로 귀결한다는 게 저자들의 진단이다. 이 과정에서 저널리즘 미디어와 같은 ‘대중적 이데올로기 세력’이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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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를 통해 드러난 미디어의 국가관

여당의 재보선 승리를 기점으로 조선일보는 급격한 논조 변화를 드러냈다. 세월호 사건이 여당에 대한 정치적 심판의 계기로 작동하리라는 일반의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재보선 결과는 다시 ‘국민의 뜻’으로 해석되었고, 이는 세월호 유족이나 특별법 등에 대한 조선일보의 부정적 입장을 합리화하는 강력한 근거로서 소환되었다. 여기에는 대의민주주의에서의 선거 결과를 ‘민심에 따른 심판’과 등치시키며 무조건적으로 신성시하는 해석의 논리가 근본적인 버팀목으로 깔려 있었다.

반면 한겨레는 ‘재보선 승리, ‘세월호 면죄부’ 아니다’라는 8월 2일자 기사에서 “세월호 참사의 정확한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대책 마련은 재보선 결과와는 상관없이 우리 앞에 주어진 절체절명의 과제다. (…) 이 과제는 선거 결과에 흔들릴 수도, 또 흔들려서도 안 된다”며 재보선 결과와 특별법 제정 문제의 분리를 강조했다. 재보선이라는 정치 이벤트가 지배세력과 피지배세력의 전체적인 역관계에 변화를 가져오고, 그것이 다시 신문 담론들의 입장 분화로 나타난 셈이다.

 

조선일보와 한겨레의 대항담론

조선일보와 한겨레는 세월호 침몰사고의 발발 후 약 7개월 동안 사고의 성격, 원인, 수습 방안, 관련 특별법, 이후의 사회적 지향점 등을 차별적으로 의미화했다.

[su_quote]흥미로운 것은 조선일보가 내세우는 ‘선진국’으로의 도약 조건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데 있다는 점이다. 신문은 세월호 사고가 ‘국제 경쟁에 노출되지 못한’ ‘뒤처진 분야’에서 발생했고, 거기 연루된 기업들이 ‘국내 시장에서만 사업을 해온 우물 안 촌뜨기 회사’였으며 관련자들도 ‘나라 밖에서 외국 경쟁자와 싸워본 적이 없는 내수형 인간’(칼럼 5.3)이었다고 지적한다. 기업과 개인이 신자유주의 시대 초국적 자본들의 무한경쟁 체제를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세월호 사건의 주원인으로 거론하는 것이다. (38쪽)[/su_quote]

결과적으로 조선일보가 생산한 국가 담론은 “발전주의와 국가주의, 신자유주의를 복잡하게 착종시킨 형태”를 보여준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 국가의 책임을 방기하고 공공 영역을 축소시키면서도, 이념적으로 강력한 국가주의를 고수하는 분열적 양상”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조선일보가 표상하는 이상적 국가는 ‘선진국’을 지향하며 온 국민이 모든 일에 대한 자기 책임 아래 경쟁하고 일로매진하는 신자유주의 체제에 가깝다.

반면 한겨레는 “신자유주의 국가의 무능과 무책임을 비판”하면서 대항담론을 형성하고 있다. 한겨레의 국가 담론은 근대적 정상국가, 복지국가의 지향을 드러내는 한편, ‘국가=정부=대통령’을 동일시하면서 국가권력을 의인화, 인격화하는 특징을 보인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많은 이가 말하듯, 세월호 침몰 사건은 “이것이 국가인가?”라는 국민들의 개탄과 분노를 낳았고, 이는 다시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문제제기로 이어졌다. 우리가 민주화를 통해 쟁취하고 구축한 국가란 과연 무엇이었던가? 신자유주의 한국사회에서 국가란 무엇인가? 그것은 또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폭도’로 몰린 ‘국민’이 ‘국토’ 위에서 ‘국민’을 학살하는 ‘국군’에 맞서 싸울 수밖에 없었던 광주항쟁 이후, 국가의 형상과 존재이유에 대해 이토록 절실한 집단적 문제제기를 촉발한 사건은 달리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광주항쟁의 국민들이 상대한 국가가 민주화 이전의 군부 쿠데타 세력이 장악하고 주도한 기구였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세월호 사건이 국민에게 남긴 정신적 충격과 상처는 한층 컸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어떻든 형식적으로는 민주화된 ‘정상국가’가 국민을 제대로 구조하지 못한(혹은 않은) ‘비정상적’ 사태로 인해 빚어진 참극이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일관되지도 않고, 아주 정교하다고도 할 수 없는 저널리즘의 국가 담론은 그럼에도 사회구성원들이 갖고 있는 국가에 대한 막연한 상상을 구체적으로 소환하고 매개하는 한편, 그럼으로써 (재)생산한다는 점에서 커다란 중요성을 갖는다.

저자들은 세월호 참사가 초래한 지배세력의 위기를 한국사회의 특수한 역사적 맥락 속에 위치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그것은 국가의 신자유주의적 재편과 그에 대한 시민대중의 저항이라는 맥락이다. 신자유주의는 자본축적과 이윤의 극대화를 목적으로 하며 이에 근거해 강력한 사유재산권, 법치, 자유로운 시장과 이를 뒷받침하는 자유무역제도를 추구한다. 신자유주의가 확대되면서 이윤의 최대화를 위한 능률, 생산성, 경쟁의 가치가 사회의 모든 영역에 침투하면서 국가 역시 경제적 효율성을 중시하게 된다. 공익을 위한 국가의 각종 규제는 ‘탈규제’의 교의 아래 해제되고, 공기업과 공적 자산은 사적 부문으로 전환된다. 물, 전기, 통신, 교통과 같은 다양한 공공재, 안전과 사회복지, 심지어 전쟁조차 신자유주의의 프로젝트인 ‘상품화’와 ‘민영화’의 포위망에 갇히게 된다고 저자들은 강조한다.

 

강성민 리뷰위원 paperface@naver.com

‘사회적 고통’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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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_box title=”세월호 메모리얼” style=”soft” box_color=”#000000″ radius=”5″]DBpia Report R은 세월호 3주기를 추모하며, 학계의 세월호 연구를 논문리뷰 연재기획 “세월호 메모리얼”로 돌아봅니다. 우리 사회는, 우리 개인은 세월호를 어떻게 기억하고 겪어내고 있을까요? 4월 한달, 매주 한편씩 발행되는 논문리뷰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소개되는 논문전문은 리뷰 발행 후 1주일 간 자유롭게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세월호 메모리얼 1 >>> 친구잃은 학생들은 그 후 어떻게 됐을까?
세월호 메모리얼 2 >>> ‘사회적 고통’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세월호 메모리얼 3 >>> 미디어는 세월호를 어떻게 다뤘나?[/su_box]

 

logofinale언론과 인터뷰를 해본 사람들은 안다. 기사화된 자신의 말이 뭔가 어색하고 인터뷰 당시의 맥락과 부합하지 않을 때가 있다는 것을. 강조했던 부분들은 사라지고 지나가는 말이 제목으로 뽑히거나 중요하게 인용되는 경우도 많다. 그렇게 만들어진 인터뷰가 ‘메시지’가 되어 대중을 향해 쏘아진다.

미디어는 ‘마사지’라는 말이 있듯, 미디어가 보여주는 현실은 사실 재현이다. 그런데 자각하기 힘들다. 가령, 세월호 같은 재난 특별방송에서는 생방송으로 현장을 비춰주기 때문에 여기에 방송사의 판단이나 기술적·능력적 한계, 시선에 의한 부각, 교묘한 조작이나 은폐 등이 개입됐다고 생각하기 힘들다. 대개 그러한 사실은 미디어비평을 통해 반추될 때에야 “그랬구나” 하고 알게 된다.

모든 ‘사건·사고’는 발생되는 순간 미디어를 통해 ‘사회적’ 맥락에 꽂혀버린다. 지난 3년 세월호와 관련하여 당사자들의 많은 고통이 있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공감도 매우 높았다. 하지만 이 ‘고통’의 문제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는 논문이 있다. 이현정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세월호 참사와 사회적 고통: 표상, 경험, 개입에 관하여(『보건과 사회과학』 43, 2016)에서 “참사의 고통은 다양한 사회 집단이 처한 맥락과 조건에 따라 다른 형태의 고통과 삶의 문제로 경험되거나 집단 간의 갈등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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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가 왜 거부됐는가

고통은 단순하지 않다. 복잡한 맥락을 가진다. 논문에서 가장 쉬운 예를 하나 들어보자. 세월호 사건 발생 직후부터 미디어를 통해 강조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대한 걱정과 우려 속에서, 보건복지부는 곧바로 ‘안산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를 설립했다. 그리고 이곳 전문가들은 참사로 자식을 잃은 가정을 방문하여 예방적 차원에서 가족들의 자살위험도를 측정했다. 여기엔 유족의 상황을 미처 고려하지 못한 두 가지 판단 미스가 있다. 첫째는 센터의 명칭이다. ‘정신건강’과 ‘트라우마’라는 단어가 정신이 건강치 못함과 트라우마가 ‘있다’는 걸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가족협의회의 요청에 따라 이 이름은 곧 ‘안산온마음센터’로 변경되었다. 둘째는 사전에 허락을 받지 않고 자살위험도 측정을 한 것이다. 이는 자살 예방적 측면에서는 필요한 조사였을지 모르지만, 자식을 잃고 집안에서 넋이 나간 채 고통을 겪는 부모들에게 폭력적으로 느껴진 측면이 있었다. “자살을 생각하거나 시도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은 자식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는 유가족에게 “왜 아직도 죽지 않고 살아 있느냐”는 질책처럼 들릴 수 있었던 것이다.

 

전문가의 ‘진리’ vs. 현장의 ‘반응’

전문가들이 생각하는 ‘진리’는 현장에서 먹히지 않을 때가 많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쪽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논문에서 이현정 교수는 동서양의 차이로 간단히 설명한다. 미국에서는 재난이나 사고로 자식을 잃은 부모는 스스로 ‘피해자’라 인식하는 문화가 확고히 형성돼 있다. 그래서 구조와 위로의 손길에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런데 한국은 그렇지 않다. 자식과 부모의 일체화가 훨씬 강도가 높고, 부모는 ‘죄의식’에 휩싸여 있다. 배가 가라앉을 때 뛰어들어 구하지 못했다는 등 ‘자책의 심리구조’가 훨씬 강고하다. 이런 부분을 감안하지 않은 ‘보편적 의료 개입’은 따라서 삐걱거릴 수밖에 없다.

이처럼 순수하게 돕고자 이뤄진 ‘전문가의 개입으로 인한 상처’는 논문의 제목 ‘사회적 고통’에서 일정한 부분을 차지한다. 물론 더욱 큰 부분은 우리 사회의 공격적, 신경질적 반응에 있지만 말이다. 논문에 나타난 사례들을 간단히 짚어보면서 그것들이 어떻게 ‘사회적 고통’을 만들어나가는지를 살펴보자.

저자의 말대로 고통은 문화적으로 표상되고 소비된다. 표상에 개입하는 게 미디어라면 소비하는 건 대중들이다.

 

[su_quote]사실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버젓이 ‘전원 구조’라는 대형 오보를 냈으며, 부모와 오빠를 잃은 6살 어린 아이의 얼굴 사진을 그대로 보여줬고, 겨우 구조되어 나온 학생에게 ‘친구가 죽은 사실을 알고 있느냐’며 인터뷰를 요청했다. 사고의 원인이나 대책에 대한 논의보다 사망자 보험금이 얼마인지 계산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피해자들의 슬픔과 인권을 무시한 채 선정적인 보도를 일삼았다. (68-69쪽)[/su_quote]

 

미디어의 표상은 시간이 지나면서 편가르기 현상을 보인다. 진영 정치화된 양극단, 즉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측과 반대로 혐오하는 측의 입장이나 정서를 조장하는 이데올로기적 담론을 생성하고 확산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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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경향신문 추모페이지 http://sewol.khan.co.kr/memorial/
양 극단을 오간 미디어, 생존자·유가족에 무관심 

미디어는 사고 현장인 진도를 떠나 안산으로 돌아온 생존자들과 유가족들이 그 이후부터 얼마나 다른 사회경제적 조건 속에 놓이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관심했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가까운 친지나 이웃과의 관계가 어떻게 변했는지, 직장이나 학교생활에서는 무엇이 달라졌는지, 신체적·정신적 질병의 발병이나 사고 자체로 인한 트라우마와 그것을 관리하지 못하거나 외적 충격으로 재차 발생하는 곁가지 트라우마의 양상에 대해서 거의 다루지 않았다. 반면 미디어는 아래와 같은 것에 주목했다고 저자는 질책한다.

 

[su_quote] 단식과 집회에 참여하는 유가족들의 투쟁적인 모습과 배·보상금 수혜자로서의 이미지는 모든 언론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되었다. 또한 유가족들이 참 사를 통해 삶과 가족, 나아가 물질중심주의의 현대 사회에 대해 갖게 된 남다른 반성 과 깨달음에 대해 조명하기보다는, ‘노동계급 출신’ 또는 ‘외국인 밀집 주거지역이 많 은 안산 거주민’이라는 사회경제적으로 능력이 부족하고 불쌍한 희생자의 이미지만을 강조하면서 타자성을 강화시켜왔다. (…) 결국 단순하고 과격한 이미지로서의 고통의 생산, 유가족들의 진영 정치 프레임으로의 포섭, 참사에 대한 배금주의적인 해석, 그리고 참사 피해자들에 대한 거리두기 및 타자화가 반복되는 속에서, 대중들은 점차 생존자 및 유가족의 고통에 대해 ‘피로’와 ‘지루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69-70쪽)[/su_quote]

 

참사 이후 사회적 애도기간이 지나가 조정국면에 들자, 일베의 야료가 시작되었다. 희생자와 그 가족들을 희화화하는 일종의 모독행위들이다. 그리고 이른바 ‘어르신’들의 막말이 강타했고 유가족이 웃는 모습이 미디어를 통해 왜곡돼 보도되기도 했다.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의 간극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의 간극도 컸다. “자녀를 잃은 유가족과 자녀가 살아 돌아온 생존자 가족 사이에는 과거의 친밀감으로 도저히 그 거리를 좁힐 수 없는 살얼음 같은 차가운 긴장과 적대가 흐르기도 한다. 같은 학교나 학원을 다녔던 희생자의 형제자매들과 생존 학생들 사이에도 마찬가지의 불편함과 불신이 존재하며, 간혹 갈등의 폭발로 인해 이미 다치고 상처받은 마음에 또 다른 생채기가 생기기도 한다.” 부모들은 진상규명 운동을 위해 싸우는 동안, 집안에 홀로 ‘방치’된 다른 자녀들에 대한 걱정으로 심리적으로 불안했고 위축되었다.

친척, 친구, 이웃으로부터 받은 상처는 고통의 또 다른 축을 이룬다. 잘못된 언론 보도를 보고, 유가족이 엄청난 배상금을 받았다고 착각하는 친척이나 친구들은 비싼 상품의 구매나 투자를 권유하거나, 심지어 어려운 생활 처지를 도와달라며 돈을 요구하기도 했다. 사고 전에 아이가 늘 인사했던 동네 어르신들은 온통 세월호 이야기로 뒤덮인 안산을 불만스러워하면서 “아이가 죽은 게 무슨 벼슬이냐”고 소리치기도 했다. 이럴 때면, 유가족들은 관계에 대한 허망함에 안산을 완전히 떠나버리고 싶은 마음이 울컥 치밀었다고 한다.

 

[su_quote]정부와 미디어는 배상금 금액을 부풀리고 마치 국민의 혈세로 지급하는 것처럼 흑색선전을 일삼지만, 유가족들의 상당수는 혹시라도 그 돈을 받으면 진상규명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마음에 신청을 거부해왔다. 사실 부모들을 더욱 가슴 아프게 하는 것은 정부가 배상금을 책정할 때 단원고 희생 학생들의 삶의 가치를 그들이 되고자 했던 꿈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 없이 ‘도시일용직노동자’를 기준으로 책정했다는 사실이다. 단지 가난한 노동자 계급의 부모를 가졌다는 이유로, 아이들이 스스로의 꿈과 노력은 무시된 채 ‘노동자 계급’으로 취급되는 것을 보면서, 유가족들은 또 한 번 상처를 받았다. (73쪽)[/su_quote]

 

그 외에도 무수한 고통들이 이어졌다. 진상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생기는 고통 등등 헤아릴 수 없다. 저자는 따라서 “‘유가족의 고통’ 또는 ‘생존 학생의 고통’이라고 명명된 내용들이 이들 각자의 고통, 나아가 세월호 참사가 야기 시킨 사회적 고통을 완전히 드러낼 수도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나아가 “참사가 불러온 사회적 고통의 상당한 부분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아직 언어나 증상으로 표현되기 어려울 수 있다. 지금 우리가 현상적으로 접하는 고통이란 빙하의 아주 작은 일부분일 지도 모른다”라고 매듭지었다.

논문의 저자 이현정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는 2014년 5월 초부터 안산시를 중심으로 광화문, 진도, 동거차도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지역에서 현장연구를 수행해왔다. 특히 피해자의 고통을 최소화하고자 하는 실천적 목표에 공감하는 의료인류학자로서, 트라우마 치료기관인 ‘안산온마음센터’와 세월호 참사 관련 기록수집 시민단체인 ‘416기억저장소’(현재 4.16가족협의회 산하기관) 두 기관의 활동에 참여해왔다. 국가와 미디어를 불신하는 유족 및 관련자들의 기억을 ‘학자적, 교육자적 양심’으로 차곡차곡 모아가는 작업을 진행중인 것이다. 최근 유족의 동의를 얻어 일반 대중에게 공개되고 있는 ‘416기억저장소’의 기록물은 우리에게 아마 날것으로 보여줄 것이다. 사회적 고통이 어떻게 표상되고 소비되고, 그리고 전문가들의 이름으로 이뤄지는 개입이 어떤 지점에서 사회적 고통을 완성해나가는지를 말이다. 근대 학문의 분과학문적 체제가 갖는 문제점에 대한 지적 역시 오늘날 학문 시스템에 대한 반성을 불러온다.

강성민 리뷰위원 paperfac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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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논문 140편 중 신문방송학 분야 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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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ofinale세월호 침몰은 우리 사회에 분명 큰 질문이었다. 혼란한 사회 속에서 질문을 만들고 답을 찾는 것이 업(業)인 학자들은 세월호 침몰이 우리에게 던진 질문과 그 답을 부지런히 찾아왔을 것이다. 침몰 후 3년이 지난 지금까지 세월호 사건은 어떻게 연구됐을까.

 

세월호 주제 논문, 지난 3년간 140여편 발표

올 2월말까지 세월호 침몰을 다룬 논문의 수는 약 140편에 이르며(디비피아 제공 기준) 21개 학문 분야(중분류 기준)에 걸쳐 있다. 학문의 시간에서는 짧다고 할 3년 동안에 이렇게 많은 분야에서 동시에 같은 사례를 연구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분야도 철학, 신학, 문학 등 인문 분야에서 법, 행정, 사회복지, 신문방송 등 사회과학뿐만 아니라 기계공학, 전자・정보통신・컴퓨터공학 분야에 까지 이른다. 이러한 연구 규모와 범위는 세월호가 우리 사회에 던진 충격이 얼마나 크고 넓었는지를 보여주는 한 모습일 것이다.

 

신문방송학계에서 세월호 논문 가장 많이 생산 ··· 종교학·신학, 법학, 심리과학 순

세월호 사건을 다룬 논문을 가장 많이 생산한 분야는 신문방송학(23편), 종교학・신학(17편), 법학(15편), 심리과학(14편), 사회복지학(11편)과 행정학(11편), 문헌정보학(8편) 등이었다.  가장 많이 다뤄진 주제는 신문방송학 분야를 중심으로 언론의 보도 행태 연구로 보인다. 뉴스의 편향된 프레임과 의제설정(「재난보도에 나타난 소셜미디어와 방송뉴스의 매체 간 의제설정」(이승희・송진), 「세월호 사고 뉴스 프레임의 비대칭적 편향성」(이완수・배재영) 등), 재난보도의 기준(「재난보도의 보도준칙에 관한 한일 비교연구」(원숙경・윤영태), 「취재원 사용의 원칙과 현실」(송상근), 「‘세월호 언론보도 대참사’는 복구할 수 있는가」(정수영), 「세월호 사건 보도의 피해자 비난 경향 연구」(홍주현・나은경) 등), 언론매체에 대한 수용자의 인식 등이(「적대적 미디어 지각과 이슈 관여가 대통령을 향한 책임 귀인 및 회고적 투표의향에 미친 영향에 관한 연구」(김남두・황용석), 「세월호 참사에서 재난방송에 대한 수용자의 미디어별 평가」(곽천섭) 등) 주로 분석되었다. 언론은 세월호 침몰과정을 생중계함으로써 대다수의 국민들을 세월호의 목격자로 만들었고 경솔한 속보, 무가치한 뉴스 생산, 정치적으로 편향된 보도, 유족 비난 등의 보도 행태로써 오히려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켰던 것을 생각할 때, 이러한 연구가 가장 많이 생산되었다는 사실은 크게 놀랍지 않을 것이다. 세월호 이후 ‘기레기’라는 표현이 유행하고 특정 매체에 대한 적대 혹은 지지, 언론 전반에 대한 불신이 확산된 상황에서 언론 분야의 성찰적 연구는 진행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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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신학 분야:
인간의 무기력, 신성에 대한 의문이 주로 제기돼

두 번째로 많은 논문이 나온 종교학·신학 분야는 세월호 참사의 치유를 위한 신학의 과제(「세월호 참사와 고난 받는 하나님」(김수연), 「후기 세월호신학 혹은 한국적 후기 재난신학 구성에 관한 한 소고」(안교성), 「세월호 참사 앞에 신학은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박재순), 타인의 고통에 대한 교회의 반성・돌봄(「한국교회의 공공성과 목회적 돌봄을 위한 목회신학 방법론 연구」(이혜진), 「타인의 고통을 대하는 한국교회의 태도에 대한 기독교윤리적 반성」(이동훈) 등이 주요 주제로 다뤄지고 있었다. 재난과 신학이 이렇게 밀접한 것은 받아들이기 힘든 죽음, 침몰하는 생명을 결국 구하지 못한 인간의 무기력 앞에서 신성에 대한 의문, 종교적 구원과 치유의 갈망에 답해야하기 때문일 것이다.

 

법학분야:
법적책임과 배상 보상 문제 다뤄

한편, 세월호 침몰의 책임, 배상, 보상 등을 둘러싼 사회의 논란에 대해서는 법학 분야의 연구가 답해온 것으로 보인다. 세월호 특별법의 입법과 세월호 판결, 관련자의 배상 책임 규명, 보상 방식 등은 상당한 논란을 일으켰던 만큼 이에 관한 법적 판단과 해석을 다루는 다수의 연구물이 생산되었다. 「세월호특별법의 여야대표간 합의처리의 헌법적 문제점과 대안」(조원용), 「세월호 판결의 논증상의 문제점」(박경규), 「세월호 사고에 대한 한국해운조합의 배상책임에 관한 연구」(박종은・LI WEI・김종호), 「해상여객운송인의 책임과 인명피해자의 구제권리에 대한 고찰」(김상만) 등의 논문이 여기에 속한다. 더불어 재난안전관리 법제(「재난안전관리체계의 개선에 관한 법적 고찰」(이상명), 「재난 및 안전관리 법제의 현황과 법정책적 과제」(김용섭) 등), 국가의 국민안전보장의무에 관한 법적 측면의 연구도(「국가의 국민안전보장의무」(김대환), 「국민의 안전을 위한 법치행정의 방향」(김명길) 등) 발견된다.

 

심리과학, 사회복지학분야:
참사로 인한 트라우마

심리과학과 사회복지학 등 여러 분야에서 함께 다뤄진 주제는 참사로 인한 트라우마였다. 희생자의 유족(「세월호 참사 희생자 부모들의 심리적 외상에 관한 기술적 접근」(박기묵)), 희생자 또래의 청소년(「세월호 재난으로 친구를 잃은 청소년의 외상경험에 관한 질적 연구」(이동훈・신지영・김유진), 「세월호 사건 이후 청소년 지도·활동 활성화 방안」(권일남)), 지역 공동체(「세월호 피해지역 마을공동체의 자립적 성장 전략에 관한 연구」(김익한・임진희・김종천・오명진・송영량・최준규)), 노인(「재난 간접 경험 후 노인들의 정서 변화 양상」(조명현・장재윤・유경・이주일)), 심리상담자(「정신건강 전문가의 재난지원활동 여부에 따른 공감만족, 소진, 간접외상스트레스」(심기선・주혜선・안현의)), 현장의 취재기자(「언론인의 외상성 사건 경험과 심리적 외상에 관한 연구」(배정근・하은혜・이미나)) 등 다양한 대상을 다루며 우리사회 전반이 겪는 심리적 외상을 진단하고 사회적 고통의 치유를 찾는 연구물로 볼 수 있었다. 세월호 참사를 자신의 일로 공감하였던 우리 사회가 받았던 큰 정신적 충격을 살피며(「마음의 부서짐」(김홍중)) 치유를 위한 처방을 찾는 학문적 노력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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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학: 정부의 무능

행정학은 정부의 무능에 천착하였다. 다수의 연구들이 재난관리의 실패(「대규모 재난의 정책실패 현저성에 관한 탐색적 연구」(이동규・민연경), 「국가적 재난관리의 책임성과 확보방안」(유현종)), 관료제의 무책임(「위험사회와 관료책임」(김병섭・김정인), 「정부 관료제의 문제점 분석과 대책」(최창현), 「관료 (무)책임성의 재해석」(김병섭・김정인)), 행정윤리적 과제(「행정윤리와 타자성」(이문수)) 등을 짚어보며 정부가 세월호 참사를 막지 못하고 책임을 다하지 못한 원인을 진단하였으며 재난관리에 실패한 정부의 총체적 부실에 대한 학문적 자성을(「세월호 참사에 나타난 국가의 총체적 부실과 행정학자의 반성」(조무성)) 나타내고 있었다.

세월호 침몰 이후 이례적으로 발생한 사회의 자발적 기억 운동은 문헌정보학의 기록 연구로 이어지고 있었다.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겠다’며 노란 리본을 달고 사건의 원인과 진행과정 등을 자발적・집단적으로 기록한 책이 이미 여러 권 출간되었다. 이 새로운 현상에 주목한 문헌정보학은 사건의 기록에 관한 사회적 역할(「세월호 참사에 관한 기록정보관리 분야의 사회적 역할」(김진성)), 기록의 방식(「구술을 통한 재난 사고의 기록화」(송주형), 「세월호 사건 기록화의 과정과 의의」(안병우)), 공동체 아카이브(「세월호 참사 아카이빙 활동 경험과 아카비스트의 성장(1)」(오윤택), 「재해재난지역과 공동체 아카이브」(심성보)) 등을 탐구하였던 것이다.

 

문헌정보학: 사건기록, 기록의 방식, 공동체 아카이브

또한 교육학, 사회학 등의 분야에서는 개인 및 가족 단위의 자원봉사가 대규모로 자발적 조직화되었던 현상으로부터 공동체의 형성과 의미 각성을 분석하는 연구를 진행하였고(「세월호 사건을 통한 공동체의 형성과 경험의 의미 찾기」(김희경), 「세월호 사건으로 간접외상을 경험한 공동체의 외상 후 성장에 대한 연구」(신나라)), 정치외교학 분야에서는 세월호 사건이 유권자의 정당 선호 및 선거에 미친 영향 등에 관한 연구물을(「2014년 지방선거에 세월호 사건이 미친 영향」(이현우))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외에도 문학, 연극 등 예술 분야에서도 세월호 연구가 진행되었는데 문학의 정치성(「문학의 정치성, 그 시적 재현과 문화 소통」(김동근)), 증언 문학(「현실 접속의 실재와 증언문학의 가능성」(이경수)), 애도의 방식으로서 예술(「‘이후’의 연극, 애도에서 정치로」(양근애)) 등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던 듯하며, 공학 분야(전자・정보통신・컴퓨터・기계)에서는 여객항로(「세월호사고로 살펴본 연안여객항로의 안전정책」(김명재・송의연)), 승객피난 시뮬레이션(「세월호 침몰시의 힐링각변화 조건에서 승객의 정상적인 탈출시나리오에 관한 시뮬레이션 분석」(황광일)), 증개축 전후 승객피난 가능성(「세월호 증개축 전후 승선객의 피난성능 예측비교」(황광일)), 복원성 평가(「세월호의 사고당시 복원성 평가에 관한 연구」(김홍범・박용선・공길영)) 등을 배의 침몰과 인명 피해에 대한 기술적 원인을 탐색하고 있었다.

덧붙여서, 심리학, 사회복지학, 신학 등의 분야의 연구들은 세월호 ‘참사’로 표현하는 데 비해, 법학, 공학, 농수해양학 등의 분야는 주로 세월호 ‘사건’으로 표현하고 있어서 학문적 접근에 따른 표현상의 차이도 발견된다.

[su_quote]지난 3년간 세월호를 다룬 다양한 연구가 던진 질문을 정리하면 대략 이러하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배가 침몰하여 수백의 목숨이 바다에 묻혀가는 참사를 언론은 왜 그렇게 다루었던 것인가, 참사 앞에 무기력한 인간의 상처를 종교는 어떻게 구원할 것인가, 정부는 지척에서 가라앉는 배 안의 사람들을 왜 구해내지 못했으며 왜 책임을 회피하였는가, 이 참사에 대해 누가 법적 책임을 어떻게 져야 하는 것인가, 참사를 잊지 않고 사회적으로 기억하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세월호라는 배는 어떤 기술상의 문제로 가라앉고 승객은 왜 대비하지 못했던가, 세월호 사건은 정당 선호와 선거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세월호와 같은 재난을 문학과 예술은 어떻게 증언하고 재현할 것인가.[/su_quote]

세월호가 던진 질문의 무게로 볼 때 개운한 답을 찾기까지는 아마도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할 듯하지만, 세월호가 뭍으로 올라온 지금, 그간 우리가 찾은 질문과 답들을 한 번쯤 되돌아보아야 할 것 같다.

 

명지대학교 행정학과 조교수 한승주

친구잃은 학생들은 그 후 어떻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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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_box title=”세월호 메모리얼” style=”soft” box_color=”#000000″ radius=”5″]DBpia Report R은 세월호 3주기를 추모하며, 학계의 세월호 연구를 논문리뷰 연재기획 “세월호 메모리얼”로 돌아봅니다. 우리 사회는, 우리 개인은 세월호를 어떻게 기억하고 겪어내고 있을까요? 4월 한달, 매주 한편씩 발행되는 논문리뷰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소개되는 논문전문은 리뷰 발행 후 1주일 간 자유롭게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세월호 메모리얼 1 >>> 친구잃은 학생들은 그 후 어떻게 됐을까?
세월호 메모리얼 2 >>> ‘사회적 고통’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세월호 메모리얼 3 >>> 미디어는 세월호를 어떻게 다뤘나?[/su_box]
 

logofinale세월호 대참사 희생자 3주기를 앞두고 선체가 인양되었다. 해저에서 3년을 보낸 선체는 녹이 슬고 기괴해보인다. 마치 수백 명의 생명을 삼킨 괴물 같기도 하다.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세월호 재난으로 많은 사람이 깊은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그중에서도 단원고 학생들과 나이가 비슷한 시기의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들이 이 재난을 통해 겪었을 심리적 충격은 더 클 것이고 특히 세월호 재난으로 친구들을 잃은 안산 지역의 청소년들이 받은 충격은 쉽게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일 것이다.

간접적으로 겪은 사건에서도 극심한 공포, 무력감, 두려움 등으로 인해 외상은 충분히 발생한다. 심할 경우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나아가며 이는 이후의 삶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청소년기의 외상경험은 세상이 완전히 위험하다는 신념, 자기 자신은 전적으로 무능하다는 신념을 심어주고, 또한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선하지 않고, 비양심적이며, 좋지 않은 사람이라는 부정적인 신념을 갖게 한다. 청소년기의 외상경험은 가출이나 비행 같은 충동적이며 공격적인 행동으로 표출되기도 하며 자기소외적 행동, 섭식장애, 학업실패 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지난 2016년 3월에 발표된 세월호 재난으로 친구를 잃은 청소년의 외상경험에 관한 질적 연구(『한국심리학회지: 일반』, 35(1), 2016)를 보면 그 트라우마의 구체적인 실상을 알 수 있다. “세월호 재난 발생 후 단원고 인근의 중·고등학교에 긴급 투입되어 5개월에서 1년여 동안 위기상담에 참여한 상담자들의 보고를 통하여 세월호 재난으로 친구를 잃은 청소년의 외상경험에 대해 살펴본” 논문이다. 이걸 보면, 옅어졌던 3년 전 4월의 아픔이 오롯이 되살아난다. 신지영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를 비롯한 이동훈, 김유진 연구원 등이 매우 내밀한 인터뷰 자료를 통해 신중하고도 면밀하게 청소년들의 외상 경험을 추적하고 있어 매우 가치가 높은 논문이며 반드시 일독할 필요가 있다.

 

헛것이 보이고, 불안 최고조 땐
환청까지

심적 고통이 신체증상으로 나타나거나 환시와 환청 등 지각이상을 경험하는 경우가 살펴졌다. 수면의 질이 떨어지고 체중 감소는 매우 일반적이었고 심한 경우는 아래와 같았다.

[su_quote]00학교 00학년 여자아이가 있었어요. 엄마, 아빠, 언니 이렇게 4인 가족인데 언니가 좀 원래부터 아파서 부모님이 다 언니한테 몰입되어 있고… 그래서 친한 오빠가 엄마, 아빠, 친구 그런 역할을 다 해준 거죠. 그런데 그 오빠가 하루아침에 세월호 사건의 피해자가 된 거에요. 그 자리를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고… (그래서 내담자가) 굉장히 심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었어요. 그래서 막 헛것도 보이고… (연구 참여자 3)… 불안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는 환청도 들렸다고 얘기 했었고요. (연구참여자 9) (논문 97쪽)[/su_quote]

하염없는 눈물도 친구를 잃은 청소년들의 일상을 가득 물들였다. 수업시간, 쉬는 시간 할 것 없이 눈물이 끊임없이 흘렀다. 교실에서도, 복도에서도, 운동장에서도 통제가 안 될 정도로 울었다. 주말에 교회에 나가서 찬양을 듣던, 설교를 듣던, 아이들은 계속 울었고 엉엉 울었다고 한다.

이런 쏟아내기 식의 격한 애도의 기간이 지난 이후엔 격해져가는 내면의 분노가 터져나왔다. “집에서는 TV를 보면서 엄청 선장 욕을 하고… 막 욕설을 했고…” “자기가 뭔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울분이 터졌다.”

 

“그 덩치 큰 다 큰 것이 밤에
엄마 품을 파고들어”

재난 초기에는 극심한 불안으로 혼자 잠을 자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혼자 방을 썼던 아이들도 엄마와 함께 자야하는 경우도 관찰됐다. 꿈에 친구들이 나오기도 했는데 친구의 모습은 “생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등장했다, 친구인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다고 했다.

미안함과 죄책감으로도 이어져 웃지도 않고 밥도 먹지 않으며, 자신의 행복과 미래를 생각하는 일에서 특히 더 죄책감을 느끼는 아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당시 사고 이후 월드컵이 열렸는데 평소에 축구를 좋아하는 아이가 봐도 되는지 고민에 빠지고, 보고 싶지만 보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에 괴로워했다는 것이 보고되기도 했다. 특히 세월호 사고 직전에 희생자와 갈등이 있었던 청소년은 세월호 재난을 통해 더 극심한 죄책감에 시달렸다. 아래의 예는 충격적이다.

[su_quote]초등학교 때부터 친했던 교회 언니가 단원고 2학년 학생이었는데 세월호 사건으로 사망을 했어요. 근데, 그 언니가 수학여행 가는 전날 언니랑 되게 많이 싸웠고… 그래 가지고, 가다가 배 사고나 나라. 이렇게 얘기를 했는데, 정말 사고가 나서…. 다 나 때문이다. 나는 살 가치가 없다고… 사건 후 6개월이 지났는데도 그 마음이 전혀 나아지지 않고 계속 힘들어했어요. (연구참여자 7)[/su_quote]

이런 걸 잔인한 우연의 장난이라고 해야 할까. 이런 아이들의 경우 주도면밀하게 살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학습 포기부터 자퇴, 해외유학까지…
총체적 무기력

인지 및 학원 차원의 변화는 대체로 ‘무기력’과 ‘될 대로 돼라’는 식의 심리상태가 계속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이 싫어지고, 학교 다니기도 싫어지며, 사람들이 어떻게 이렇게 빨리 잊고 금방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환멸의 감정이 아이들을 지배했다. “몇 명 죽었대? 이제 산 사람이 몇 명이래?” 등과 같이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는 다른 아이들에게 분노감이 느껴져 같이 학교 다니기가 싫다는 심정도 많이 토로되었다.

세상에 대한 염세와 비관도 싹텄다. 청소년들은 주로 SNS와 대중매체를 통해 사건을 접했으며 이로 인해 정부부처와 국가에 대한 불신감을 갖게 됐고, 어른들의 무책임한 대응에 대해 냉소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연구참여자들은 진술했다. 심각할 경우 인지기능의 저하와 학업의 중단 현상도 나타났다. “멍하게 앉아 있고, 시험도 안치고, 그래서 미술치료를 하는데 무채색 아니면 반응도 느리고 단순한 작업도 못하는” 경우가 관찰되었다. “대학 못간 애들도 많아요. 점수가 너무 많이 안나와 가지고. 세월호 같은 트라우마를 심하게 겪으면 암기과목이 점수가 안 나온다고 하더라구요”에서 보듯 암기능력의 저하도 관찰되었다. 한 연예인 지망 학생은 진로를 포기하고 자퇴했다. 그 이유가 마음이 아프다.

[su_quote]제가 제일 기억에 남는 사례는, 한 아이가 이제 연예인 지망생이었어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중심 성향이라서 발이 넓고 굉장히 친구가 많았어요. 그리고 자기가 다녔던 중학교에서만 친했던 아이가 아니라, 다른 학교 아이들이랑도 다 친했었어요. 근데, 내 초등학교, 중학교 친구 누구 죽었고 해서 200명 이상 죽었다. 희생된 아이들 중 99%는 내 친구다 이렇게 얘기를 하면서 내가 친구들을 다 잃었는데 어떻게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연예인을 하겠냐. 자기는 배우를 안 하겠다… 이러면서 자퇴도 하게 된 거죠. (연구참여자 7) (논문 102쪽)[/su_quote]

이 학생뿐만 아니라 전학, 자퇴, 해외유학 등 괴로운 현장에서 벗어나고자 떠난 이들도 많았다. “둘도 없는 친구”를 잃었던 한 학생은 캐나다로 유학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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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http://www.bbc.com/news/world-asia-27077694
브레이크 없는 자전거 타는 등
자기처벌적 행동

행동에서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상담 거부”다. 상담을 받으면 죽은 친구를 떠올려야 하니까 이를 거부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원래 상담에 대한 자발성이 떨어지는 것도 이유다. 분향소에 찾아오는 것을 힘들어한 학생들도 많았다. 그래서 혼자 감당하는 경우가 많은데, 친구를 잃은 슬픔을 표현하고 애도하는 방법을 찾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그럴 때 아이들은 보통 회피했다. 슬픈 감정이 올라오면 음악을 듣거나 스마트폰을 보거나, 겉으로는 괜찮은 듯 보이려고 행동하는 것들이 다 회피의 일종이다.

흡연이나 게임으로 도망가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중독의 심리적 기저가 ‘불안’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방에 틀어박혀 게임만 하고 밖에 나오지 않는 것은 불안의 다른 표현이다. 자살하고 싶다고 말을 내뱉거나 몸을 돌보지 않는 자기처벌적 행동을 하기도 했다.

[su_quote]충분히 차를 타고 갈 수도 있고, 그런 상황이었는데, 발목 깁스, 다친 상황에서 조심해야 되는데, 그 발목으로 OO 시장까지 꽤 먼 거리를 일부러 뛰어가서 그 발목을 더 많이 악화시키고, 또 그 뒤로도… 잘 자지도 않고 먹지도 않고. 저는 자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 그리고 자전거를 되게 좋아했었는데 브레이크가 없는 자전거가 있잖아요. (세월호 사건으로 동생이 죽고 난 후에는) 그걸 일부러 계속 타는 거에요. 그런 위험한 행동들을 하는 경우도 있었고… (논문 105쪽)[/su_quote]

또래관계의 변화 내지는 악화가 유의미하게 살펴지기도 했다. 친구를 또 잃을까봐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를 꺼린다든지, 세월호와 관련된 이야기로 불화가 생겨 관계가 안 좋아진다든지 하는 등으로. 기본적으로 분노한 상태이기 때문에 감정기복도 심하고 작은 자극에도 갈등이 불거지고 극단적 감정으로 치닫는 것은 충분히 예상이 가능한 일이다.

연구참여자들은 세월호 재난으로 친구를 잃은 청소년들이 아직도 마음속에서 친구들을 떠나보내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진술했다. 그들은 곁에 없는 친구들과 여전히 일상을 공유하고 소통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정지된 번호로 연락하거나 주인 없는 SNS에 글을 남겼으며, 추모공원이나 장례식장을 자주 방문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했다.(106쪽)

[su_quote]친구들이 많으니까 한 달에도 한두 번씩 죽은 아이들의 생일들이 돌아온대요. 그러면 그 생일에 살아있는 친구들이 카톡으로 생일을 맞은 먼저 간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는 거죠. 그런 때의 대화가 쓸쓸하기 이를 데 없다고 하더라구요. … 아이들이 시험기간 임에도 불구하고 … 장례식장도 많이 가고, 추모공원에도 많이 가고… (연구참여자 5) (논문 107쪽)[/su_quote]

 

2개 학군으로 나뉜 안산의 지역적 특징
고려해야

논문의 집필진은 이러한 필드워크를 통해 외상을 경험한 청소년들에게 어떻게 심리적 개입을 위한 방향을 설정할 것인지 등을 상세히 논의하고 있다. 그리고 추후 연구에 있어 몇 가지 제언을 한다. 그중에서 일반적이지 않은 특수한 내용이 하나 눈길을 끈다. 바로 안산의 지역적 특징이다.

[su_quote]연구결과를 해석하는데 있어서 고려해야 할 점은 안산의 지역적 특성이다. 안산지역의 경우 두 개 학군이 있는데 대부분의 학생들은 한 학군 내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다가 졸업하기 때문에 거의 모든 학생들이 서로 알고 지낸다. 세월호 재난을 경험한 단원고가 속해 있는 학군의 학생들이 다른 학군에 비해 외상경험 정도가 심각하고 그에 따른 심리적 어려움을 오랫동안 호소하는 한편 타학군 학생들은 상대적으로 심리적 영향이 크지 않은 것은 이러한 이유일 수 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단원고가 속해 있는 학군의 학생들은 타학군의 학생들이 세월호 재난에 대해 자신들과는 다르게 반응하는 모습을 보며 더욱 큰 거리감과 상처를 받았다라고 했다. 따라서 이번 연구결과를 해석하는 데 있어서 이러한 안산의 지역적 특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논문 113쪽)[/su_quote]

이상으로 단원고 학생들의 세월호 사고 이후 외상증세에 대한 현장 상담사를 대상으로 한 심층취재 논문의 대강을 요약해보았다. 사고 이후 ‘무책임한’ 사후 대응으로 살릴 수 있었던 아이들을 살리지 못했던 만큼, 연구자들이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친구를 마음에 묻은 학생들의 아픔과 심리적 타격에 대해서라도 어른들이 제대로 된 사후적 접근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강성민 리뷰위원  paperfac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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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를 보도한 그들만의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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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지난 2016년 3월 28, 29일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진행한 ‘세월호 2차 청문회’는 ‘민관유착’이라는 한국사회의 병폐를 여실히 드러낸 채 마무리되었다. 참사 2주기를 맞아 이처럼 청문회 보도를 비롯한 세월호 관련 보도가 이어지는가 하면, 다른 편에서는 본 이슈의 ‘피로도’를 강조하며 적당한 마무리를 촉구하기도 한다. 뉴스 수용자들의 인식은 언론보도에 영향을 강하게 받고 때로는 그 영향이 정책에 반영되기에 객관적인 학술 연구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김태원 뉴시스 기자와 정정주 경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의세월호 참사에 대한 시기별 뉴스 프레임 비교 연구(『사회과학연구』, 27(1), 2016)는 ‘세월호 참사’ 후 이어진 보수와 진보를 대표하는 두 언론사의 보도양상을 정치하게 분석함으로써 관련 연구의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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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사고 현장에서 탐색구조작전을 펼치고 있는 해군 함정과 헬기 ©촬영: 김태형 기자

 

프레임으로 바라본
세월호 참사

사물 전체를 한꺼번에 파악하거나 조망할 수 없는 인간의 인지적 한계 때문에 언론은 특정한 논리적 틀을 사용해 다양한 사실 중 특정 사실을 더 중요하게 인지하도록 유도하거나 자연스럽게 무시하도록 한다. 이것을 ‘프레임frame’효과라고 하는데, 뉴스 수용자는 담론의 가장 중요한 논리적 영역에 해당하는 프레임을 통해 특정한 사건을 이해하는 경향성이 생기며, 실제로 언론의 프레임을 넘어 대안적인 프레임을 형성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므로 미디어 보도 프레임 연구를 통해 우리는 언론 보도가 사회적 담론화 현상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를 간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논문에서 두 저자는 이러한 프레임 연구를 바탕으로 세월호 참사가 어떻게 보도되었는지 분석한다. 다만 ‘재난’ 혹은 ‘참사’라는 하나의 주제를 연구 대상으로 삼았던 기존 프레임 연구에서 나아가 정치적 성향이 다른 두 언론사 즉 조선일보와 한겨레가 사회적 성격이 강한 참사 보도에서 정치적 담론화에 이르기까지 강조한 이슈와 프레임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각 단계의 변화와 차이점을 구분한다.

조선일보와 한겨레의
보도양상 차이

저자들은 세월호 참사를 시기에 따라 세 단계로 분류하고, 이 기간에 각 신문의 보도 내용을 분석했다. 저자들이 이러한 설계를 한 이유는 시기별로 발생했던 주요 사건이나 수사 방향의 전환점 등을 통해 두 언론사가 각각 중점 보도 프레임을 달리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기 때문이다. 과연 그랬을까? 여러 각도에서 조명한 세월호 참사에 관한 보도 과정이 연구 논문에 자세히 나와 있다. 본 리뷰에서는 논문의 결론 부분을 요약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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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206쪽
한겨레는 정부책임론
조선일보는 유병언책임론

비판의 대상과 그를 향한 메시지 명시 정도에서도 두 언론사는 차이를 보였다. 조선일보는 1단계에서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을 일부 정부에게 물었으나 2단계 들어 유병언과 청해진 해운에 그 책임의 화살을 돌렸고, 세월호 특별법이 부각된 3단계에서는 세월호 특별법에 대한 정보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사건공시성’의 중립적 보도에 초점을 맞추어 논조를 드러내는 것을 지양했다. 반면 한겨레는 1단계에서 정부책임론과 구조수습논란에 대해서도 높은 비중으로 보도를 하긴 했지만, 책임공방 단계인 2단계에서는 조선일보와 달리 유병언/청해진 해운 비리보다 정부책임론을 비중 있게 다루었다. 또 하나의 차이점은 언론의 오보문제를 함께 다룸으로써 언론 스스로의 자기비판 및 성찰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이어 3단계에서는 세월호 특별법 관련 보도가 세월호 관련 해석이나 단순사건보도에 비해 상당히 높았는데, 저자들은 세월호 특별법이라는 법적 틀을 통해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정부의 책임이나 구조수습 과정에서의 논란을 해결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았다.

조선일보가  상대적으로 적게 보도

먼저 보도의 양에 대해 살펴보자. 단계별 분석에서 1단계는 기간 대비 상당히 많은 양의 기사가 보도되었다. 이는 초기 단계에서 세월호 참사에 대한 보도 중요성을 두 언론사 모두 높게 평가했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 발발과 구급구조 단계에서 벗어난 2단계에서는 진실규명과 책임공방 등에 관한 보도가 함께 이루어졌다. 이 기간에 두 언론사는 모두 종합, 사회, 정치, 문화 등 전 카테고리에서 세월호 참사에 대해 보도했는데, 특히 청해진 해운 비리와 유병언 부자父子를 포함해, 구원파 논란 등으로 그 이슈의 스펙트럼이 넓어짐에 따라 다양하고 많은 분야에서 기사가 생산되었다. 두 언론사의 차이는 ‘세월호 특별법’ 논의에 대한 보도가 주로 이루어진 3단계에서 나타났다. 한겨레에 비해 조선일보가 상대적으로 적은 양의 보도를 내보낸 것이다. 저자들은 세월호 특별법과 세월호 관련 이슈를 다방면에서 중요 이슈로 다루고 있는 한겨레와 달리, 조선일보의 경우 세월호 참사 관련 보도를 정치적인 이슈로만 국한시킨 경향 때문인 것으로 판단했다.

조선일보는 ‘세월호 특별법’의 국회 표류 등에 대해 여야 정치권을 비난하기보다는 여당과 야당 혹은 유족과 정치권의 대립과 갈등에 초점을 맞춘 데 반해 한겨레는 세월호 특별법에 대한 지지부진한 논의의 진전을 촉구하는 비판적인 보도가 많았다. 또 조선일보가 세월호 특별법에 대한 사안 그 자체만을 객관적으로 다루는 ‘사건 공시 프레임’으로 다룬 것에 비해 한겨레는 이슈 배경과 발생원인, 그 해결방법 등을 포함한 ‘서사적 프레임’을 중점 보도해 세월호 특별법이 결국 해당 참사에 대한 진실을 규명하고, 참사의 책임 소재를 명확히 밝히는 데 의의가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su_quote]언론 보도의 정치적, 사회적 담론화와 관련해 주목한 부분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진실규명/책임공방의 의무와 책임을 누구에게 물을 것인지에 대해 두 언론사가 상반된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한겨레에서는 단계가 진행돼도 ‘정부책임론’이 ‘유병언/청해진 해운 비리’보다 일관되게 더 높은 비율을 보인 반면, 조선일보에서는 1단계에서 ‘정부책임론’ 이슈가 낮은 비율로나마 언급되었고, 2단계에서 청해진 해운과 유병언 비리에 방점을 두고 보도하였다. 이러한 보도 프레임의 차이는 우리가 다양화, 다원화된 특정 틀을 가지고 공적 영역의 논의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을 방증한다. 즉 미디어를 통해 사회현실을 인지하고 해석을 공유하는 우리 사회의 공동체 구성원들이 세월호 침몰 사건과 관련한 다양한 의미구성의 준거 틀 속에서 연관된 이슈를 생성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이해하며, 논제의 담론화를 통해 적절한 실천방안을 구상한다는 것이다. (200쪽)[/su_quote]

[su_quote]만약 세월호 참사가 단지 하나의 포괄적인 사회적 이슈로서의 재난보도로 종결되었다면 양 언론사는 뚜렷한 정치색을 보이지 않고 세월호 참사의 원인, 수습 진행 과정, 책임 소재 파악, 향후 위기 대처 방안 논의 등에서 보도하는 데에 그쳤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호 특별법’이라는 정치적 어젠다를 통해 양 언론사는 보수와 진보 진영의 대표지로서 의견을 함께하는 정당을 중점 보도하고 이견을 보이는 상대방에 대해 재난보도 프레임이 아닌 정치적 투쟁 프레임과 흡사한 모습을 보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220쪽)[/su_quote]

논문 안에서 두 저자는 그간 이루어진 국내외의 프레임 이론과 연구논문을 문장마다 촘촘히 제시하고, 본격적인 분석에 들어가기에 앞서 연구의 의의를 충분히 밝힌다. 데이터를 산출하는 과정 역시 자세하게 나와 있기에 신뢰성이 높고, 많은 노력이 투입되었음을 알 수 있는 논문이다. 2년이 지난 지금 세월호 참사가 재난 보도에서 정치적 양상으로 넘어가는 두 언론의 변화 모습을 통해 세월호 참사를 좀 더 냉정하고, 능동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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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수 리뷰어  nilnilis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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