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민주주의

러시아는 왜 권위주의 국가로 회귀했을까

magazines_media_putin_time_magazinerack-282665
전 세계 법치주의 지수(2005). 녹색에 가까울수록 법치주의를 높게 실현하고, 적색에 가까울수록 그러하지 아니하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logofinale푸틴 지배체제와
현대 러시아의 문제

구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는 민주주의로의 이행기를 겪는 듯 하다가 푸틴의 집권으로 인해 오늘날에는 거의 공고한 권위주의 국가로 받아들여진다. 이들은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실행에 옮기는 데 있어 무엇 때문에 실패하였는가? 민주주의를 공고화시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바꿔 질문하면, 무엇 때문에 러시아는 권위주의로 퇴행하였는가.

오늘날 민주주의가 잘 작동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평등을 한 축으로 하고, 그들 사이의 갈등을 중재하고 또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장치로서의 ‘법의 지배’를 또다른 한 축으로 해야만 한다. 법의 지배가 곧 민주주의를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법의 지배 없는 민주주의는 상상하기 어렵다. 정치적 평등을 바탕으로 하는 민주주의 체제라 할지라도 규율과 규칙은 필수적으로 필요하며 또 그러한 규칙에 복종하는 시민이 있어야만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 ‘법의 지배(rule of law)’란 법 그 자체의 신성성과 불변성, 혹은 절대성 따위를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권력의 행사를 위한 요건과 근거들을 마련하고 그럼으로써 권력이 효과적이고 공정하게 집행되도록 강제하기 위한 장치다. 법의 지배는 달리 말하면 ‘지배(rule)’의 편의성을 위한 장치가 아니라 국가권력의 전횡과 독단을 방지하고 시민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근대국가의 견제장치라고 말할 수 있겠다.

본 고에서 살펴볼 논문은 이선우 교수의 민주주의 공고화에 있어 ‘법의 지배’의 우선성: 탈공산 러시아의 사례(『한국정치학회보』 51(1), 2017.3, 49-72)로써, 탈공산 러시아의 사례를 통해 민주주의가 공고화되기 위해 법의 지배가 왜 필요한지를 고찰하고, 또 그를 통해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 사이의 관계를 면밀하게 들여다보려 한다.

 

법의 지배와 민주주의
충돌의 양상

법의 지배와 민주주의 사이의 관계는 대단히 미묘해서, 양자는 ‘정치의 사법화(judicialization of politics)’, ‘사법의 정치화(politicization of justice)’라 불리는 현상을 야기하며 종종 충돌하곤 한다. 종종 법의 지배는 민주주의의 수호신을 묘사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민주주의적 가치들을 훼손하기도 한다. 구체적으로 법은 어떻게 작동하나?

‘법’은 지배할 수 없다. 법은 종이 위에 쓰여진 글자에 불과하며 글자가 인간을 지배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실제로 지배하는 것은 그것을 해석하는 ‘인간’이다. 쉐보르스키(2008)는 ‘법의 지배’라는 용어를 두고 “사실에 대한 기술로서도 설득력이 없으며, 더욱이 설명이라고 보기도 어렵다”라고 말한다.[1] 물론 이에 비판하는 이들도 역시 있기는 하나, ‘법의 지배’ 개념은 여전히 논쟁적인 개념 중 하나라고만 요약해두도록 하자.

그렇다면 법은 실제로 공정한가? ‘법’이 그 자체로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일 수 있다. 오히려 법은 수많은 권력이 개입하는 공간이며, 다원적 이익들이 충돌하는 회랑이다.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였던 트라시마코스가 지적하듯, “법은 강자의 도구”이며, 나아가 그것은 사회 세력 간의 힘의 관계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회세력 간의 힘의 균형이 이루어져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서 법이 유용한 것으로 인식될 때, 비로소 제도적 균형이 이루어지며 법의 지배가 실현된다.[2]

다른 한편, 현대 민주주의는 대단히 복합적인 구성물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의 오랜 전통(?)은 정치적 평등 위에 시민사회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민주주의는 글자 그대로 ‘인민의 지배’를 뜻하지만 사실 이러한 정의는 인민이 어떻게, 왜 지배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대단히 공허한 정의이기도 하다. 민주주의가 무엇이냐에 대해서는 여전히 분분한 논의가 있을 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많은 학자들은 민주주의에 대해 통일된 정의를 내리기보다 각 정치체제 사이의 특징을 비교함으로써 귀납적으로 공통된 몇 가지 특질을 찾아냈을 뿐이다(Rose 2009, 12).

민주주의의 정의에 대한 고전적인 논쟁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보자면 최소주의적 정의와 최대강령적 정의라고 말할 수 있겠다. 쉐보르스키 등(Przeworski et al. 2000)은 사회적 안정이나 경제적 번영 등이 민주주의의 전제로 고려될 때 민주주의에 대한 실질적 추구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의회 및 행정부 수장을 선출하는 정기적인 선거시스템의 존재 유무로서 민주주의로 분류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최소주의적 민주주의, 다시 말해 선거 민주주의는 민주주의를 완성하기 위한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점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만일 권력자가 선거 이외의 기간에 독단적으로 자신의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회와 유인이 있다면 민주주의는 위협받게 된다. 따라서 민주적 과정들이 안정적으로 지속되기를 바란다면 법의 지배는 필수적인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러시아의 사례
민주주의에서 권위주의로, 퇴행의 대표 사례

법의 지배를 먼저 확립한 후에라야 민주주의가 공고화되느냐, 혹은 ‘민주주의의 습관화’를 통해 시민사회를 성장시킴으로서 민주주의를 공고화시킬 수 있느냐, 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단선적인 경로가 없다는 답변 밖에는 할 수가 없다. 선거민주주의가 확립되었다고 하더라도 해당 국가가 반드시 자유민주주의로 나아가리라는 보장은 없는 것이다. 이미 정당이 존재하고, 정당 간 경쟁이 존재하며, 또 시민사회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제 3의 민주화 물결 때 민주주의로 나아갔던 신생 민주주의 국가들 중 많은 수가 권위주의로 퇴행한 것은 시민사회나 혹은 정당체계의 미발전이 신생민주주의 국가의 권위주의적 퇴행을 낳은 결정적 요건이 아닐 수 있음을 시사한다.[3]

러시아는 민주주의 국가로 나아가다가 권위주의로 퇴행한 대표적인 사례다. 옐친 대통령 시기(1993-1999) 러시아의 민주주의는 꽤 양호한 수준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4] 또한 집권 후반기에는 정당의 발전 가능성 역시 있었고 시민사회 역시 꽤 발전한 상태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논문 저자는 옐친 대통령 시기에 ‘법의 지배’의 원칙이 관철되고 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한다. 일차적으로 헌법과 법률상 대통령이 사법부에 대해 과도한 통제력과 제도적 우위를 점유하기 때문이다. 법의 지배를 이루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요소는 사법부의 독립인데, 만약 대통령이 제도적으로 사법부보다 우위를 점한다면 법은 권력을 효과적으로 견제하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러시아의 경우 사법부를 둘러싼 각각의 이해관계들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고 또 다원화되어 있었으므로 이것을 일종의 과도기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법의 지배가 확립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항상적으로 권력에 대해 견제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 때라야 법의 지배가 확립된 것이지, 만약 지지율이나 임기 등의 변수에 의해 유의한 영향을 받는 상황이라면 법의 지배가 안정적으로 확립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특히 이는, 만일 사법부에 대한 강하 장악력을 가진 권력이 등장할 경우 국가 내 정치적 경쟁을 허물고 정례적 선거마저 무의미하게 만들 수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5]

결과적으로 푸틴 정부가 출범하면서 허약한 법의 지배는 사실상 무너졌다. 푸틴은 새로운 법을 제정하면서 정당 등록 요건을 대폭 강화하고, 언론과 시민단체들에 대한 재정적, 행정적 검열과 통제를 강화하였다. 또한 자신의 정적을 제거하는 데 사법기관을 적극적으로 동원했고, 통제된 언론들은 급속도로 푸틴에 대해 압도적인 보도 시간을 할애하는 등 불공정한 정치적 경쟁 환경을 조성하는 데 기여하였다.

2007년 12월 치러진 하원 선거에서 집권당인 단합러시아당은 315석을 획득하여 개헌선을 돌파하였고, 이것은 더 이상 러시아의 선거제도가 집권당을 바꿀 수 있는 정치적 경쟁의 장으로 기능하지 않음을 뜻했다.

 

민주주의에 있어서 법의 지배의 중요성
준법정신보다는 사법의 독립성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는 대단히 복잡한 관계이며 어떤 것이 더 우선하느냐를 따지는 것은 사실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논문 저자는 “정당체계와 시민사회가 사법권력의 공정성과 투명성, 책임성을 제도화시킬만큼 발전하지 못한다면 그 국가의 시민적 자유와 권리는 언제든지 위축될 수 있음을 여실히 알 수 있다”고 말하며 글을 끝맺고 있다. 결국, 민주주의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법의 지배를 확립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민주주의를 공고화하는 과정에서도 법의 지배를 확립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권력에 대한 효과적인 견제장치가 없을 때, 권력은 언제든지 자신을 견제하려는 세력에 대해 적대적인 칼날을 세우고 달려들 것이며 또 그것은 많은 경우 좋은 결과보다는 재앙을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법의 지배를 두고 단순한 준법 정신이나 법 그 자체를 지켜야만 한다는 의무적 당위성만을 설파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러나 정치체제를 이루는 요소로서의 법의 지배는 시민들의 준법정신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사법부가 얼마나 잘 독립되어 있는가, 또 그들이 얼마나 사회적 책임성 하에 노출되어 있는가, 그들이 효과적으로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는 문제이다. 논문 저자는 민주주의로의 이행과 그 공고화에 있어서 정당체계나 시민사회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전략을 수정하여 법의 지배를 먼저 확립할 것을 제안한다. 이러한 전략이 신생민주주의 국가들에게 긍정적일 수 있을지는 좀 더 두고 볼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1] 애덤 쉐보르스키(2008), p.47

[2] 스티븐 홈즈의 주장이다. 자세한 것은 애덤 쉐보르스키(2008), p.51 참조.

[3] 이선우(2017), pp.55-56

[4] 프리덤하우스의 평가에서 대부분 3점대를 기록하였다.

[5] 이선우(2017), p.59

최태준  xowns5186@gmail.com

<저작권자 © 리뷰 아카이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대의민주주의, 위기에 처하다!

assembly2_1

logofinale 지난 3월 10일, 헌정 사상 처음으로 탄핵안이 인용되었다. 어떤 논자는 이번 사건을 두고 한국 민주주의가 크게 진전했다고 평가하는 반면, 어떤 논자는 여전히 이것이 대의 민주주의 체제의 한계를 드러내는 사건이라고 논평한다. 탄핵안이 인용된 이후 부쩍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라는 용어를 자주 보게 되는 것 같은 것은 나의 착각일까. 그 말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이 너무나 진부한 반복이라고 생각한다. “대의민주주의의 한계”. 우리는 정녕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는걸까.

사실 대의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지적은 오래 전부터 지적돼 온 문제다. 누구나 익히 알고 있고 또 익숙한 문제틀이다. 대표성의 왜곡, 민의의 반영이 어려운 구조, 즉각적이고 상시적인 소환과 심판의 부재로 인한 정치엘리트의 권위주의화 등등, 우리는 수많은 비판들을 접해온 바 있다. 시민정치, 혹은 직접 민주주의, 가깝게는 교과서에도 수록되어 있듯 국민소환, 국민발안 제도 등이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다. 그 중에서도 정당이 강해야 바람직한 민주주의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은 보다 일반적인 것 같다.

현대 민주주의는 대의제 민주주의다. 민주주의는 시민의 직접 참여에 의한 민주주의가 아니라 대의 민주주의다. 많은 정치체제 중에서 대의제 민주주의가 살아남은 이유는 그것이 비록 문제를 안고 있을지라도 다른 체제보다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정치학자 애덤 쉐보르스키가 지적한 바 있듯이, 민주주의는 “서로 죽이지 않도록 하는” 체제다. 여태껏 역사 속에서 정치 권력의 변동은 피와 혁명을 불러왔지만 민주주의만큼은 복수의 정당들 사이에서 선거라는 제도적 장치를 통해 평화적으로, 그리고 정기적으로 정권이 바뀐다. 그리고 바뀐 정권은, 선거에 의해 합법성을 부여받는다. 정통성이 무너지면 정변을 불러오기 십상이었던 군주제나 일부 특수한 귀족들만이 정치권력을 향유할 수 있었던 귀족정, 혹은 단 한 개의 정당만이 정권을 독점하고 무소불위의 힘을 휘둘렀던 일당 체제보다 민주주의가 우월할 수 있는 이유다.

윤종빈 명지대 교수의 「정당정치와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소고」(『미래정치연구』, 6(1), 2016)는 이러한 대의민주주의의 위기와 정당정치에 대한 견해를 담은 논문이다. 논자 역시 정당정치의 활성화를 중요한 과제로 지적한다. 미래에도 민주주의가 살아남는다면, 그것은 정당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살아남지 못한다면, 그것 역시 정당 때문이다. 정당은 민주주의의 요체라는 단순한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대의민주주의와 정당

민주주의는 정당 간의 민주주의다. 달리 말해, 정당이 강하지 못하면 민주주의는 위기를 맞이할 수 밖에 없다. 다른 체제보다 민주주의가 우월할 수 있는 이유는, 민주주의야말로 ‘야당이 정권을 잡을 수 있는’ 정치체제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월한 체제가 어디서부터 위기를 맞이한 걸까. 대의민주주의의 위기는 곧 정당의 위기다. 정당의 위기는 첫째, 정치적 대표성의 약화, 둘째, 참여의 위기, 셋째, 의회의 약화다. 이 문제의 원인은 다시 몇 가지로 축약 가능하다. 첫째, 정치사회와 시민사회 사이의 유리, 둘째, 시민사회의 공적 기구에 대한 불신, 셋째, 그로 인한 포괄적인 정치적 무관심의 증가, 넷째, 정치 환경의 변화가 그것이다.

윤성이 교수는 2009년 논문에서 소셜네트워크의 급속한 발전이 불러온 변화에 대해 언급한다. 즉,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은 폭넓고 쉬운 정치참여의 길을 열었고 유권자들은 계속 정치인과 소통하려 하지만 기존의 ‘공급자 중심’의 소통 방식은 변화된 정치환경에서 대표성을 충족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달리 말해, 이제는 수요자 중심의 소통방식으로 재편되어야 한다고 윤성이 교수는 지적한다. 요컨대, 이제는 의제설정의 주도권이 대표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네트워크로 연결된 다수의 개인들에게 있다.(윤성이, 민희 2009, 166)

정치환경의 변화 뿐만 아니라 정당-유권자 간의 동원 연계가 미흡하다는 것 역시 정당정치의 위기를 초래한 중요한 원인이다. 정당은 기본적으로 집단을 동원함으로써 지지를 확보하고 선거에 승리하기 위한 집단이다. 이 때 동원의 주요 타겟은 개인이 아니라 집단이다. 한국 정당 정치를 오랫동안 지배해온 지역주의는, 비록 그것이 다소 제한된 범위 안에서 벌어졌을지라도, 지역을 기반으로 한 집단적 동원의 성격을 지녔다. 그러나 갈수록 지역주의가 약화되고 있는 지금, 지역주의를 대체할만한 새로운 갈등구조는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 강원택(2009) 교수에 따르면 “지역주의의 퇴조로 정당과 유권자 간의 구조적 연계가 약해졌”고, 이념 균열 역시 이를 대체할만큼 충분한 파급효과를 가지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새로운 민주주의
모델의 모색?

정당 정치의 위기는 의회 정치의 위기를 촉발하고, 곧 이것은 민주주의의 위기로 연결된다. 정당과 유권자 사이의 약화된 연계는 곧 대표성의 위기를 낳는다. 정치환경은 과학기술의 빠른 발전과 보급으로 인해, 그리고 사람들의 변화된 가치관으로 인해 급격하게 변동하고 있지만 이것을 수용할만한 대안적 정치과정 모델은 여전히 답보상태이다.

대의제 민주주의의 대안을 창출할 수 있는가? 수많은 민주주의 모델들이 있지만, 현재로서 대의제 민주주의를 완전히 대체할만한 새로운 민주주의 시스템은 요원해보인다. 다만 우리는 대의제 민주주의가 가진 한계가 무엇인지를 분석하고, 그것을 보완할만한 모델을 제시할 수는 있다.

윤종빈 교수는 논문에서 여러 민주주의 모델 사이의 논쟁을 소개하지만 여기서는 대표적으로 한가지만 소개하도록 하겠다.

민주주의 모델에 관해 프랭크 핸드릭스(Frank Hendriks)는 의사결정의 구조 및 주체라는 두 가지 틀을 활용하여 네 개의 민주주의 모델을 고안했는데, (1) 대의민주주의 (2) 협의민주주의 (3) 유권자 민주주의 (4) 참여민주주의가 그것이다. 핸드릭스에 따르면, 대의제 민주주의는 의사결정이 명확하고 선거의 효과적인 활용을 통해 책임성과 정통성을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과도하게 경직된 결정 시스템과 승자에 의한 권력 집중, 소수와 패자에 대한 관용의 부족 등을 약점으로 가진 체제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소통과정이 필요한데, 핸드릭스는 그 대안적 보완모델로서 참여민주주의 모델을 제시한다. 참여민주주의는 단순히 개인 선호를 합산하는 것이 아니라, 대안의 선택이 아니라 통합과 의견 교환, 그리고 참여의 질 향상을 통한 끊임없는 소통을 중요시한다.(Hendriks, 2010. 108)

반면 뮤츠(Muts)는 이러한 참여민주주의와 숙의의 형태가 필연적으로 갈등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타인의 주장을 합리적으로 받아들이고 이성적으로 토론하려는 숙의의 능력을 갖춘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의 정치참여는 오히려 정반대로 나타난다. 다시 말해, 숙의의 능력을 갖춘 집단은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반면, 그렇지 못한 집단에서 정치참여에의 강도가 더 높게 나타났다는 것이다(Muts, 2006).

이 외에도 논문에서 윤종빈 교수는 다양한 민주주의 모델들 사이의 논쟁을 소개한다. 가장 주목해볼 점은, 이러한 민주주의 모델들 사이의 논쟁이 새로운 모델을 창출해내거나 고안하는 작업이라기보다는 기존의 정치 체제가 가진 취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모델을 연구한다는 점이겠다. 대의 민주주의의 위기는 기본적으로 대표성의 위기다. 대표성이 무너진다면 대의민주주의는 무너질 수 밖에 없다.

 

결국, 다시 정당

대표성을 다시 살리기 위해서는 결국 우리는 다시 정당으로 돌아와야 한다. 정당이 쇠퇴하면 대의민주주의는 쇠퇴하는가? 나는 그렇다고 본다. 정당은 선거에서의 승리를 추구함으로써 정부를 구성하기 위한 집단이고, 그를 위해 유권자들과 직접적으로 연계를 맺으며 시민들의 정치적 의사를 대표한다. 이러한 정당이 쇠퇴한다는 것은 결국 대의민주주의의 근간인 대표성이 쇠퇴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달튼(Dalton)과 그의 동료들은 정당의 쇠퇴가 민주주의의 쇠락을 가져올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들에 따르면 정당의 쇠퇴는 단지 대중정당의 쇠퇴일 뿐 정당은 제 기능을 유지하기 때문에 민주주의는 지속된다. 요컨대, 정당은 상황에 따라 잘 적응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오늘날 정치환경이 변화하게 된 주요 변수는 정보통신기술의 급격한 발달이다. 스마트폰, 노트북, 그리고 가볍고 쉬운 인터넷에의 접근은 시민들을 상호연결시켜주고 나아가 정치에의 접근 장벽을 대폭 낮춰주었다. 달리 말해, 시민들의 참여가 증대되고 그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통로가 개방됨으로써 기존의 정치 구조로는 이러한 변화의 양상을 수용하기 어렵다.

정당의 쇠퇴가 곧 민주주의의 쇠퇴인가 라는 지점은 다소 논쟁의 여지가 있을 수 있겠다. 나는 정당이란 단지 정부를 창출하는 집단일 뿐만 아니라 그를 위해 집단적 열정을 동원하는 조직이라고 본다. 갈등을 조직한다는 것은 개인단위로 흩어진 사람들에게 개별적으로 접촉하는 일이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집단적 갈등에의 참여하고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의 문제다. 샤츠슈나이더가 지적한대로, 민주주의는 갈등의 제도화를 위한 체제이며 갈등의 제도화는 정당을 통해 이뤄진다. 요컨대, 시민과 정당이 제대로 연계되지 못한다면 민주주의는 쇠락하게 된다.

대표성의 위기는 곧 정당의 위기이자 대의민주주의의 위기를 직관적으로 드러내주는 징후다. 지난 월가 시위는 시민의 요구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 정치권에 대한 반발로 인해 촉발됐다고 논자는 지적한다. 정당이 다수의 흩어진 개인들을 집단으로써 동원하고 조직해내지 못한다면, 그 사회의 이익은 단지 개별 시민의 이익으로 환원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갈등의 수는 겉잡을 수 없이 많아질 것이다. 정당이 하는 역할 중 중요한 기능 하나는, 사회에 산재한 갈등의 수를 줄여준다는 것이다.

논자는 한국의 정당 역시 정치적 대표기능을 복원해 정당민주주의를 되살리고, 대의민주주의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노력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그를 위해 소통방식의 변화, 참여의 보완, 공적 영역의 신뢰회복, 정당조직의 체계적이고 미시적인 디자인 연구 등을 핵심 과제로 지목한다.

대의민주주의의 한계. 우리가 너무나 익숙하게 들어온 말이고, 그 대안 역시 너무나 익숙하게 들어왔다. 윤종빈 교수의 논문은 분명 한국사회에서 정당정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일목요연하게 분석하고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러나 난 이것이 진부한 반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꼭 가야만 할 길이라고 여긴다. 진부하지만, 우리가 결코 포기할 수는 없는 길. 다만 나는 일말의 아쉬움이 남을 뿐이다―“우리는 정녕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나”

*함께 읽으면 좋은 논문

「한국 정당민주주의의 제도적 특징과 개혁 과제: 독일, 영국, 스웨덴과 비교적 관점에서」
장선화, 2015, 『평화연구』, 23(1), 2015.

「‘11월 시민혁명’ ‘광장’과 대의제를 생각한다」
손호철, 2017, 『마르크스주의 연구』, 14(1), 2017.

최태준 리뷰어  xowns5186@gmail.com

<저작권자 © 리뷰 아카이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촛불 하나가 들판을 태운다”

바디우출처: Siren-Com at en.wikipedia.org // 지젝 출처: dy Miah at en.wikipedia.org

 

logofinale2017년은 여러 가지 면에서 뜻깊은 해다. 현직 대통령의 탄핵이 이뤄지느냐 마느냐 하는 이슈와 함께, 이르든 늦든 대통령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또한 올해는 6월 항쟁 30주년이며 무엇보다 러시아 혁명 100주년이다. 한국은 아직 조용하지만, 세계 곳곳에서는 러시아 혁명을 기념하는 학술대회며 각종 행사가 연이을 것으로 예상된다(이 와중에 한국에서는 ‘노동자의책’ 대표가 ‘이적표현물’을 판매해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구속되었다). 이는 단지 100주년이라는 숫자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로 수많은 이들이 ‘신자유주의의 종언’을 외쳤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모순과 질곡을 돌파할 대안은 생산하지 못한 채, ‘4차 산업혁명’ 같은 자본의 담론만이 횡횡하기 때문에 도리어 많은 이들이 ‘공산주의의 유령’을 복기하려는 것은 아닐까.

박도영 한국교원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의 「공산주의와 ‘도래할 민주주의’: 바디우와 지젝의 ‘공산주의 가설’에 대한 비판적 검토」(『마르크스주의 연구』, 11(1), 2014)는 ‘공산주의 가설’을 제시하며 현 질서를 이론적으로 돌파하고자 하는 알랭 바디우와, 그와 일종의 이론적 동맹을 맺은 슬라보예 지젝의 공산주의를 간략하게 검토하는 논문이다.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이 지적 스타들이 어째서 공산주의라는, 다시는 반복되어선 안 될 실수나 비극으로 간주되곤 하는 이념을 제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자본주의 외의 대안은 없다는 주장을 반박하고 ‘이데올로기의 종언’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일 것이다. 이때 연구자는 바디우와 지젝이 ‘공산주의 가설’을 표방하면서 민주주의를 적대하지만, 민주주의 개념에 대한 혼동 또한 보인다는 것을 지적한다. 그러면서 사소하고 우발적인 사건이 ‘도래할 민주주의’로 도약할 가능성을 긍정한다.

바디우와 지젝의
‘공산주의 가설’

먼저 바디우는 니콜라 사르코지의 대통령 당선을 통해 프랑스 좌파의 무력함이 노출되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민주주의의 공리인 선거가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는 보수적인 기능을 수행할 뿐이라고 비판하면서, 사르코지의 당선은 타락한 자가 당대의 도덕적 위기를 돌파할 것이라 기대하는 ‘패탱주의’의 반복이라고 주장했다. 패탱주의는 현재의 위기가 과거의 파국적인 사건 때문에 발생했다고 지목하는 경향을 일컫는다. 바디우는 1815년의 왕정복고에서는 프랑스 혁명이, 나치 치하의 패탱 정부에서는 인민전선과 대파업이 위기의 원인으로 지목되었다면, 사르코지 정부에서는 68혁명이 그러했다고 보았다. 혁명과 그 여파를 두려워한 유산계급이 치안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인물을 지지했을 때, 좌파는 거꾸로 우파에 대한 공포 때문에 무력했다는 것이 바디우의 지적이다. 이때 바디우가 이론적·실천적으로 강조하는 것이 바로 ‘공산주의 가설’이다. 공산주의 가설은 “계급논리에 의거하지 않은 다른 집단적 조직이 실천 가능하다는 것(69쪽)”을 뜻한다. 여기서 그는 공산주의 가설이 “강령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칸트가 규제 기능을 가진 이념이라 불렀던 것이어서 항상 다른 형태로 실연되는 평등의 순수 이념(70쪽)”이라고 덧붙인다.

한편 지젝은 바디우 식의 논의가 공산주의 가설을 일종의 ‘규제적 이념’에 그치게 한다고 비판한다. 공산주의를 모두가 따라야 할 일종의 공리로 만들어버린다는 것이다. 또한 지젝에 따르면 그런 식의 논의는 공산주의의 해체적 읽기로 빠진다. 공산주의의 해체적 읽기란 공산주의를 역사를 초월한 ‘영원한 이념’으로 간주하는 것을 가리킨다. 자크 데리다의 논의가 대표적인데, 연구자는 지젝의 비판과 달리 공산주의를 규제적 이념으로 보는 관점은 데리다보다 가라타니 고진에 더 가깝다고 지적한다. 다시 지젝의 주장으로 돌아오면 그는 바디우나 고진처럼 적대를 낳는 구조를 강조하는 게 아니라, 강력한 적대의 담지자로서의 주체 또는 행위자에 집중한다. 지젝은 오늘날의 세계자본주의를 위협하는 강력한 적대로, 다가오는 생태적 파국, 지적재산권과 관련한 사유재산 개념, 유전자공학 등 새로운 기술과학적 발전, 새로운 아파르트헤이트의 생성을 든다. 이 네 가지 적대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은 네 번째인 새로운 아파르트헤이트, 즉 “자기 자신의 실체에서 배제되는 자들의 프롤레타리아화 과정(74쪽)”이다. 포함된 자와 배제된 자 사이의 적대를 논하지 않는다면, 다른 세 가지 적대는 각각 현재의 질서 내에서 소화할 수 있는 위기 정도로 격하된다는 것이 지젝의 주장이다.

 

지젝(사진 왼쪽)과 바디우는 ‘공산주의 가설’을 주장하면서 현재의 지배질서를 돌파하고자 시도한다.

 

도래할 민주주의를 
유보 없이 환대하기 위하여

그렇다면 바디우와 지젝은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어떤 점에서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일까. 지젝은 공산주의 국가의 실패 못지않게 사회민주주의적 복지국가는 물론, 급진민주주의 좌파가 강조하는 대항국가 모델(“자발적인 자기조직화와 직접민주주의, 평의회 등을 통해 화석화된 국가 구조에 맞선다는 생각(75쪽)”) 역시 실패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1968년 이후 세계 자본주의가 이윤 추구에서 지대 추구로 선회하면서 ‘공통적인 것’에 대한 엔클로저가 발생했으며, 여기서 앞서 말한 네 가지 적대가 출현한다고 보았다. 공통적인 것에 대한 엔클로저는 권위주의적이고 억압적인 국가가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이기에, 자본주의를 민주화함으로써 대응할 수 있다는 논리 또한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지젝은 민주적 메커니즘 자체가 자본의 무조건적 재생산을 보장하는 부르주아 국가 기구의 일부를 형성한다고 지적한다.

[su_quote]바로 이런 의미에서 바디우는 정당하게도 오늘날 궁극적인 적의 이름은 자본주의나 제국, 착취, 그런 어떤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자체라고 말했다. 사회의 근본적인 변혁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바로 ‘민주주의에 대한 환상’,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줄 유일한 프레임으로 민주적 메커니즘을 수용하는 것이다(지젝, 2013a: 37). (76쪽)[/su_quote]

이때 바디우는 공산주의로 향하는 마르크스주의적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대중은 계급으로 분리되고, 계급은 정당에 의해 대의되며, 정당은 지도자에 의해 지도받는(77쪽)” 레닌주의적 기획을 비판한다. 그는 ‘빼기의 길the subtractive way’을 가야 한다고, 국가의 영역에서 스스로 물러나 “지배적인 상황의 법들로부터 독립된 새로운 공간을 창조(77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지젝은 바디우가 말하는 ‘빼기의 길’은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유지할 뿐이며, ‘진정한 빼기의 길’은 시스템을 타격하는 행위라고 재해석한다. 여기서 지젝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강조하며 극적으로 도약한다. (의회)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에 머무는 게 아니라 아예 기존의 정치 질서를 무너뜨리는 정치로서 레닌주의를 다시금 긍정하는 것이다.

여기서 연구자는 민주주의가 지배적인 정치체제가 된 오늘날, 바디우와 지젝이 민주주의를 비판의 과녁으로 삼은 데 이론적인 난점이 있음을 지적한다. “우리는 모두 민주주의자다”라는 식의 선언은 대중의 저항을 선거로 순치시킨다는 점에서 보수적이다. 하지만 연구자는 민주주의가 “사회-정치적 공간 안으로의 배제된 자들demos의 침입을 일컫는 고대 그리스에서 유래한 이름(82쪽)”이라면, 프롤레타리아 독재든 빼기의 길이든 얼마든지 민주주의로 번역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들에게 개념의 혼동이 있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연구자는 민주주의의 형식적(절차적) 측면과 실질적 측면을 구분하고, 인민의 자기통치라는 실질적 측면을 추구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연구자는 지젝이 바디우에 대한 애드리언 존스턴의 비판을 일부 수용했듯이, “사소한 사회적 개혁 조치들이 자칭 ‘급진적’ 변화들보다 훨씬 강력하고 광범위한 결과들을 초래하게 되는 상황은 분명히 존재(86쪽)”한다고 강조한다(이 표현은 마오쩌둥의 “불꽃 한 점이 들판을 태운다”는 연설을 연상시킨다). 그렇기에 연구자는 사건의 ‘우발적 토대’를 인정해야 하며, ‘도래할 민주주의’를 어떤 유보도 없이 환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듯 연구자는 민주주의의 인민적이고 급진적인 성격을 강조하며 ‘사건의 우발적 토대’를 긍정한다. 이는 이화여대 재단비리에 대한 학생들의 저항 등 얼핏 ‘사소해 보이는’ 사건들이 중첩되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상승해 촛불집회와 탄핵까지 이어지는 현 상황을 예시하는 듯 보인다. 어쩌면 우리는 ‘도래한 민주주의’를 이미 경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열정이 꺼지지 않아야 하는 것은 물론, 촛불을 든 사람들의 열정을 정확하게 집약할 역량 또한 절실히 필요할 것이다.

*함께 읽으면 좋은 논문

「공산주의라는 쟁점: 바디우와 발리바르」
최원, 2014, 『문화과학』, 79,  308-329.

「실재의 정치학과 배제된 자들의 공산주의: 지젝의 공산주의 정치학에 대하여」
이진경, 2014, 『마르크스주의 연구』, 11(1), 12-42.

김주원 리뷰어  leopord83@gmail.com

<저작권자 © 리뷰 아카이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적 민주주의’ 이대로 좋은가?

kdemo2-1

logofinale여태껏 자유민주주의는 현대사회가 도달해야 할 이데아이자 제일원리인 듯 작용해왔다. 그러나 세계적인 금융위기를 겪은 후 많은 이들은 자유민주주의의 ‘자유’가 진정 우리가 생각하던 그 자유인지, 민주주의를 작동하게 하는 그것인지 의심하게 됐다. 경제위기는 곧바로 유럽과 미국에서 이민자 혐오 및 극우정당의 득세를 가져왔고, 일부 학자들은 지금껏 당연시 여겨왔던 자유민주주의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세계 속 한국 역시 자유민주주의 위기에서 예외가 아니다. 신자유주의에 따른 양극화 및 저성장에서 허덕이는 한국은 세계적 풍랑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국가적 애를 쓴다. 그러나 세계 발 풍랑뿐 아니라 국내 발 풍랑도 거세기는 만만치 않다. 절차적 민주주의라는 기본 조건을 충족하기는커녕, 비선 실세가 국정에 개입했다는 정황은 과연 우리가 어디쯤 표류하고 있는 것인가 좌표조차 가늠할 수 없게 한다. 어디부터 잘못된 것일까? 분명 한국적 맥락이 있을 것이다. 함규진 서울교대 윤리교육과 교수는 「한국적 민주주의의 형성과 민본주의의 역할」(『정치정보연구』, 19(1), 2016)에서 한국적 민주주의가 부진한 이유 중 하나로 전통적 민본주의의 영향을 꼽는다.

‘민본주의적 정치관’이란 무엇인가

‘한국적 민주주의’는 박정희 정권이 독재 강화를 위해 전통사상의 요소를 동원한 이론으로 알려져 있다. 저자는 정치사적 관점에서 이러한 인식이 타당하지만, 그 탄생 시기만은 개화기 이후로 보고 있다. 비주체적으로 민주주의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지식인과 대중에게 광범위하게 공유되었던 ‘민본주의적 정치관’이 배경이 되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한국적 민주주의’가 오늘날에도 폐기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는 점이다. ‘민본주의적 정치관’의 영향 하에 남아있는 문제점으로 저자가 꼽는 것은, 과도한 지도자 중심주의, 이미지 정치, 정당 제도화의 미비, 당선자의 위임민주주의적 행태 등이다.

저자는 해방에서 현재까지 시대별로 ‘민본주의적 정치관’이 민주주의와 어떻게 관계를 맺어왔는지 추적한다. 본격적인 추적에 앞서 저자는 우선 ‘민본주의적 정치관’의 세부 내용을 살펴본다. 논문 내용에 따르면, 민본民本이라는 표현은 엄밀히 말해 동아시아 전통사상사에 없다. 다만 『서경』이나 『회남자』에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다’라는 언급이 근대 이후 재해석 되는 과정에서 재구성되었을 뿐이다. 그렇기에 학자들의 입장이 다양할 수밖에 없는데, 저자는 숱한 학적 입장들을 분석해 자주 거론되는 세 가지 요소를 분류한다.

첫째는 민권론(民權論)으로서의 민본사상이다. 이는 『맹자』, 『순자』, 『여씨춘추』의 논설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백성에게 일정한 정치적 권력, 권한이 있다는 내용이다. 둘째는 위민론(爲民論)으로서의 민본사상이다. 이는 민권과 무관하며, 민본사상이란 ‘국민 복지를 위한 정치’라는 명분을 강조하는 이념일 뿐이라는 시각이다. 셋째는 덕치론(德治論), 애민론(愛民論)으로서의 민본사상이다. 이는 위민을 실천하는 군주의 마음가짐에 주목하는 것이다.

저자는 민본론은 다양하게 제시되는 이론이지만, 민주주의 개념과는 등치될 수 없다고 말한다. “민주주의 국가는 국민 외에 주체(가령 신이나 군주, 특권계급 등)를 포함할 수 없으나, 민본의 국가는 민을 근본으로 여겨 중시한다고 해도 민과 구별되는 주체의 존재를 허용”하기 때문이다. 이에 저자는 민본사상의 가능한 요소 가운데 ‘민권론’을 ‘맹아적’ 민권론 또는 민주주의론으로 구분하고, 위민론과 애민론만을 민본사상의 구성요소로 상정한다. 즉, 국가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민생의 안정에 두려는 이념과 위정자가 도덕적으로 모범이 되면서 사적 욕구에 따라 권력을 전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념을 민본사상-민본주의의 축으로 보는 것이다.

 

kdemo22_1

 

 

해방공간에서의 민본주의와
민주주의

해방공간에서 한반도 남부는 ‘미국식’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비주체적으로 이식되었다. 국민 다수에게 민주주의 문화는 생소했고, 정부 주도 하에 사회경제적 개혁이 민생 안정과 사회적 균평均平을 목표로 추구되었다. 저자는 특히 이 시기에 민본주의적 정치관이 두드러졌다고 보는데, ‘일민주의’를 제창했던 이승만이 주도권을 쥐게 됨으로써 ‘유덕한 최고지도자 일인에 대한 지지와 복종’이라는 민본주의 특징은 더욱 강화되었다.

1954년 제2차 헌법 개정에서 국무총리제 폐지, 중임제 제한 폐지까지 이루어낸 이승만은 국부國父라는 이미지와 반공, 반일의 정치노선을 권력 정당화 자원으로 삼으며 권위주의적 정권을 운영하게 된다. 또한 일민주의에서 줄곧 강조해온 “정부가 민생을 해결해야 하며, 해결해 나가고 있다”는 점을 들어 정권의 정당화에 이용했다. 이승만은 청년 개화파 시절부터 남녀차별과 신분차별을 비판해왔으나, 노-소간 및 군-신간의 유교 전통적 위계질서관은 존중되고 계승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자유주의와 평등주의의 강령을 선택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사회 저변에 침잠해 있는 유교적 가치관에 부응하는 한편, 스스로를 ‘나라의 큰 어른’, ‘애민적 군주’의 위상에 올려놓은 것이다.”

그러나 ‘사사오입 개헌’ 등 ‘민주주의 게임 법칙’을 우회함으로써 권력을 유지 강화하려던 욕망은 ‘민주시민의식’을 자극해서 4.19혁명을 발발시켰고, 마침내 이승만 정권은 붕괴했다. 이때 한국정치문화에서 일인중심적 권위주의가 아니라 절차적 책임성의 실현을 강조하는 민주주의를 ‘정상’으로 여기는 의식이 정립되었다고 볼 수 있다.

군사정권에서의 민본주의와
민주주의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정당성 확보를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그런 노력은 반공주의의 재강조와 함께, 경제제일주의의 천명과 관련 정책 추진으로 실현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박정희는 민주주의와 민생 경제를 상반되는 것으로 제시했다. 물론 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다만 ‘경제발전이 되지 않는다면 공산화의 위험이 있다’며 경제가 민주주의를 선행한다는 입장을 내세웠으며, “민주주의를 빙자한 서구의 노라리풍”이 한국경제를 파탄에 이르게 했다며 민주주의와 민생 경제를 상반되는 것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또한 “걸핏하면 무슨 성토대회다, 농성단식이다, 데모다, 무슨 무슨 투쟁이다 하고 소위 현실참여라는 명목하에 거리로 뛰어 나오기를 좋아하는 폐단이 망국의 풍조”라며 정상적인 민주주의 정치과정을 평가절하하기도 했다.

더불어 박정희는 1970년대에 접어들 무렵, “민주주의는 창달되어야 하되 이로 인하여 우리 고유의 윤리와 도덕이 파괴되어서는 안 된다”며 전통사상을 재강조했다. 그 재강조 대상은 충, 효로 집약되었고, “서구와는 판이하게 다른 문화권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우리로서는 서구의 정치 풍토나 사조를 그대로 추종하는 대신, 우리의 정치 전통과 문화의 바탕 위에서 자주적으로 미래의 방향을 설계해 나가야 한다”며 ‘한국적 민주주의’ 차원에서 유신 권위주의 체제를 정당화했다. 저자는 이러한 박정희의 ‘한국적 민주주의’는 위민에 정치의 목적을 두고, 그러한 정치는 강력하고 ‘애민적’인 정부(최고지도자)의 지도와 국민 대중의 일치된 지지, 호응에 의해 실현된다는, 민본주의적 정치관에 따라 정리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민주화 이후의 민본주의와
민주주의

민주화 이후, ‘정상적인 민주주의’의 조건이 권위주의 시대에 비해 현저하게 개선되었다. 그러나 그 수준은 실질적으로 “정치와 대중을 연결하는 유일한 매체가 투표로 국한”되는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으며, “국민 대다수는 아직도 경제성장 위주의 경제우선주의와 정치 지도자 개인의 도덕적 무흠결성을 중시하는 ‘민본주의적’ 정치문화에 침잠해 있으며, 정당정치, 의회정치, 시민사회 운동, 그리고 이념정치와 지방정치에 대한 신뢰 및 관심은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러한 실정에 미루어볼 때 저자는 형식적 민주화가 이루어진 지 30년이 다 되어 가고 있지만 지역주의와 이미지 정치, 그리고 ‘당쟁’수준의 ‘진영 대결 정치’가 한국정치의 특성으로 남으면서 민주주의의 심화가 더디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저자는 국민을 자유롭고 평등하며 합리적인 의지를 가진 개인으로 상정하는 자유민주주의 틀에서 다수 서민 대중의 소외가 초래되는 경향이 다분한 현재, 서구적인 정치문화를 확립하는 것이 반드시 올바른 대안인지 의심한다. 오히려 현재는 ‘위민’의 이념으로는 묵과할 수 없는 상황이며, 민본주의적 정치관이 공동체주의적인 온정주의 정책과 사회문화로 이어지게끔 유도할 수 있다면 한국 정치사회에 유익하지 않을지 질문을 던진다.

[su_quote]민주주의가 있어왔고, 오늘날 ‘충분할 정도로 있는 듯’ 보이지만 민주주의의 효용과 진정성이 끊임없이 의문시되는 현 시점에서, ‘더 순수한, 더 많은 민주주의’가 오늘날 한국정치의 대안이 될 것인지, 권위주의에게 이용되어 온 민본주의를 재조명하고 ‘더 진정성 있는 한국적 민주주의’를 수립하는 일이 대안일지, 더 숙고해야만 할 필요가 있다. (295쪽)[/su_quote]

과연 민본주의는 권위주의에 이용된 것일까? 아니면 민본주의의 본래 속성이 권위주의와 영합하기 좋은 토대인 걸까? 자유민주주의의 ‘자유’가 자본에 종속될 자유로 왜곡될 여지가 있는 것처럼 모든 개념이 그 자체로 순수하지 않기에, 현재 한국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세세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본 논문은 한국 민주주의 역사를 관통하는 하나의 줄기를 명확히 보여준다.

 

*함께 읽으면 좋은 논문

「한국자유민주주의에서 민주주의 결핍에 대한 지표적 분석: 박근혜정부의 전반시기를 중심으로」
정용하, 2016, 『한국민족문화』, 58, 387-422.

「한국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 `자유민주주의`의 위기」
유종성, 2014, 『동향과 전망』, 90, 9-44.

권성수 리뷰어  nilnilist@gmail.com

<저작권자 © 리뷰 아카이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