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는 세월호를 어떻게 다뤘나?

[su_box title=”세월호 메모리얼” style=”soft” box_color=”#000000″ radius=”5″]DBpia Report R은 세월호 3주기를 추모하며, 학계의 세월호 연구를 논문리뷰 연재기획 “세월호 메모리얼”로 돌아봅니다. 우리 사회는, 우리 개인은 세월호를 어떻게 기억하고 겪어내고 있을까요? 4월 한달, 매주 한편씩 발행되는 논문리뷰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소개되는 논문전문은 리뷰 발행 후 1주일 간 자유롭게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세월호 메모리얼 1 >>> 친구잃은 학생들은 그 후 어떻게 됐을까?
세월호 메모리얼 2 >>> ‘사회적 고통’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세월호 메모리얼 3 >>> 미디어는 세월호를 어떻게 다뤘나?[/su_box]
세월호를 키워드로 가장 많이 살펴지는 논문은 상처, 고통, 트라우마에 대한 심리학적, 의료적 접근이다. 그다음은 ‘미디어’의 문제다. 초유의 사태였던 만큼 미디어 보도를 이모저모 살피고 분석하는 논문들이 많다. 그 중 「세월호, 국가, 미디어」(『언론과 사회』, 23(4), 2015)는 유독 눈길을 끈다. 부제 “조선일보와 한겨레의 세월호 의견기사에 나타난 ‘국가 담론’ 분석” 때문이다. 단순보도가 아니라 신문사의 시각이 반영된 의견기사를 통해 ‘국가 담론’을 도출해 비교했으니 그렇다.
요즘 유시민의 『국가란 무엇인가』가 베스트셀러 최상위권에 올라 있다. 그만큼 ‘국가’가 화두다. 세월호 사건은 사람들에게 “이것이 국가인가?”라는 탄식 섞인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다. 당연히 언론도 이 무능한 임무방기 국가를 다양하게 나무라고 다그쳤다. 보수의 아이콘 조선과 진보의 아이콘 한겨레는 어떻게 달랐을까.
[su_quote]이 글에서 주목하는 부분은 세월호 사건의 전개 과정에서 드러난, ‘국가’에 대한 사회적 상상social imaginary이라 할 수 있다.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란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단지 세월호 사건의 경과를 지켜본 국민 개개인의 마음 속에서 관념적으로만 떠오른 것이 아니다. 또한 그것은 지식인들의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다양한 논평 속에서만 그려진 것이 아니다. 그 질문은 국민들 내면의 탄식어린 추상적 물음이기 이전에, 또 지적·학문적 탐구를 동반한 지식인들의 성찰적 논리이기 이전에 저널리즘 미디어가 실제 사건의 추이에 따라 생산한 담론들의 중심점이기도 했다. 달리 말하면, 세월호 사건이 야기한 정치적 위기 국면에서 집권세력과 대항세력은 격렬한 헤게모니 투쟁을 벌였고, 그 투쟁의 한 가운데 국가에 관한 이질적 담론들이 있었다.(7쪽)[/su_quote]
국가에 대한 ‘사회적 상상’의 정치학
사회적 상상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사람들이 서로 어울려 생활하면서 그 방식과 결과에 대해 품는 규범적인 기대, 믿음, 이미지 등을 총체적으로 가리키는 말이다. 사회적 상상은 사회적 실천의 중요한 부분을 구성한다. 저자들에 따르면 사회적 상상은 유물론적 환원론과 대척되는 지점에서 그 쓸모가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관념적인 것’이 사회의 끊임없는 변전 속에서 수행하는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다. 사회적 상상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이데올로기는 ‘물질적 이해관계에 의해 결정되는 허위의식’으로 사회적 상상과는 다르다.
사회적 상상은 미디어가 만들어낸다. “예컨대, 미디어가 별것 아닌 노상강도(mugging)를 위협적인 존재로 반복해 보도하면서 사람들은 일상에서 위기감을 느끼게 되고, 이런 경험은 도덕적인 공황상태를 낳는다. 대중은 아주 현실적이고 비정치적인 듯 보이는 저널리즘 언어가 구성하는 사태 진행의 구체성 속에서 위기를 생생하게 경험하기에 이른다.” (11쪽)
‘도덕적 공황’과 ‘포퓰리즘식 법과 질서 운동’의 앙상블
또한 지배블록이 구사하는 전략의 핵심은 이와 함께 ‘허구적 해결책’에 있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대중이 위기를 체감하게 만드는 한편, 특정한 적을 상정해 문제에 대한 허구적 해결책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도덕적인 공황 상태의 조성도 필요조건이다. 언젠가 진중권은 “한국 언론은 문제가 생기면 원인을 찾는 게 아니라 적을 찾는다”라고 한 적이 있다. 시민들 사이에서 도덕적 공황은 어떤 상황을 불러왔는가를 한번 더듬어볼 필요가 있다. 대부분 옷깃을 여미고 단속하는, 즉 “사회 규범의 강화를 요구하는 여론”으로 자라난다는 걸 우리는 경험한 바 있다. 이는 다시 사회 질서와 권위를 유지하려는 지배세력의 요구와 만나 과도한 법 집행과 같은 포퓰리즘식 ‘법과 질서 운동’으로 귀결한다는 게 저자들의 진단이다. 이 과정에서 저널리즘 미디어와 같은 ‘대중적 이데올로기 세력’이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보도를 통해 드러난 미디어의 국가관
여당의 재보선 승리를 기점으로 조선일보는 급격한 논조 변화를 드러냈다. 세월호 사건이 여당에 대한 정치적 심판의 계기로 작동하리라는 일반의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재보선 결과는 다시 ‘국민의 뜻’으로 해석되었고, 이는 세월호 유족이나 특별법 등에 대한 조선일보의 부정적 입장을 합리화하는 강력한 근거로서 소환되었다. 여기에는 대의민주주의에서의 선거 결과를 ‘민심에 따른 심판’과 등치시키며 무조건적으로 신성시하는 해석의 논리가 근본적인 버팀목으로 깔려 있었다.
반면 한겨레는 ‘재보선 승리, ‘세월호 면죄부’ 아니다’라는 8월 2일자 기사에서 “세월호 참사의 정확한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대책 마련은 재보선 결과와는 상관없이 우리 앞에 주어진 절체절명의 과제다. (…) 이 과제는 선거 결과에 흔들릴 수도, 또 흔들려서도 안 된다”며 재보선 결과와 특별법 제정 문제의 분리를 강조했다. 재보선이라는 정치 이벤트가 지배세력과 피지배세력의 전체적인 역관계에 변화를 가져오고, 그것이 다시 신문 담론들의 입장 분화로 나타난 셈이다.
조선일보와 한겨레의 대항담론
조선일보와 한겨레는 세월호 침몰사고의 발발 후 약 7개월 동안 사고의 성격, 원인, 수습 방안, 관련 특별법, 이후의 사회적 지향점 등을 차별적으로 의미화했다.
[su_quote]흥미로운 것은 조선일보가 내세우는 ‘선진국’으로의 도약 조건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데 있다는 점이다. 신문은 세월호 사고가 ‘국제 경쟁에 노출되지 못한’ ‘뒤처진 분야’에서 발생했고, 거기 연루된 기업들이 ‘국내 시장에서만 사업을 해온 우물 안 촌뜨기 회사’였으며 관련자들도 ‘나라 밖에서 외국 경쟁자와 싸워본 적이 없는 내수형 인간’(칼럼 5.3)이었다고 지적한다. 기업과 개인이 신자유주의 시대 초국적 자본들의 무한경쟁 체제를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세월호 사건의 주원인으로 거론하는 것이다. (38쪽)[/su_quote]
결과적으로 조선일보가 생산한 국가 담론은 “발전주의와 국가주의, 신자유주의를 복잡하게 착종시킨 형태”를 보여준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 국가의 책임을 방기하고 공공 영역을 축소시키면서도, 이념적으로 강력한 국가주의를 고수하는 분열적 양상”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조선일보가 표상하는 이상적 국가는 ‘선진국’을 지향하며 온 국민이 모든 일에 대한 자기 책임 아래 경쟁하고 일로매진하는 신자유주의 체제에 가깝다.
반면 한겨레는 “신자유주의 국가의 무능과 무책임을 비판”하면서 대항담론을 형성하고 있다. 한겨레의 국가 담론은 근대적 정상국가, 복지국가의 지향을 드러내는 한편, ‘국가=정부=대통령’을 동일시하면서 국가권력을 의인화, 인격화하는 특징을 보인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많은 이가 말하듯, 세월호 침몰 사건은 “이것이 국가인가?”라는 국민들의 개탄과 분노를 낳았고, 이는 다시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문제제기로 이어졌다. 우리가 민주화를 통해 쟁취하고 구축한 국가란 과연 무엇이었던가? 신자유주의 한국사회에서 국가란 무엇인가? 그것은 또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폭도’로 몰린 ‘국민’이 ‘국토’ 위에서 ‘국민’을 학살하는 ‘국군’에 맞서 싸울 수밖에 없었던 광주항쟁 이후, 국가의 형상과 존재이유에 대해 이토록 절실한 집단적 문제제기를 촉발한 사건은 달리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광주항쟁의 국민들이 상대한 국가가 민주화 이전의 군부 쿠데타 세력이 장악하고 주도한 기구였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세월호 사건이 국민에게 남긴 정신적 충격과 상처는 한층 컸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어떻든 형식적으로는 민주화된 ‘정상국가’가 국민을 제대로 구조하지 못한(혹은 않은) ‘비정상적’ 사태로 인해 빚어진 참극이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일관되지도 않고, 아주 정교하다고도 할 수 없는 저널리즘의 국가 담론은 그럼에도 사회구성원들이 갖고 있는 국가에 대한 막연한 상상을 구체적으로 소환하고 매개하는 한편, 그럼으로써 (재)생산한다는 점에서 커다란 중요성을 갖는다.
저자들은 세월호 참사가 초래한 지배세력의 위기를 한국사회의 특수한 역사적 맥락 속에 위치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그것은 국가의 신자유주의적 재편과 그에 대한 시민대중의 저항이라는 맥락이다. 신자유주의는 자본축적과 이윤의 극대화를 목적으로 하며 이에 근거해 강력한 사유재산권, 법치, 자유로운 시장과 이를 뒷받침하는 자유무역제도를 추구한다. 신자유주의가 확대되면서 이윤의 최대화를 위한 능률, 생산성, 경쟁의 가치가 사회의 모든 영역에 침투하면서 국가 역시 경제적 효율성을 중시하게 된다. 공익을 위한 국가의 각종 규제는 ‘탈규제’의 교의 아래 해제되고, 공기업과 공적 자산은 사적 부문으로 전환된다. 물, 전기, 통신, 교통과 같은 다양한 공공재, 안전과 사회복지, 심지어 전쟁조차 신자유주의의 프로젝트인 ‘상품화’와 ‘민영화’의 포위망에 갇히게 된다고 저자들은 강조한다.
강성민 리뷰위원 paperfac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