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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과 ‘감정’을 나눌 수 있을까?

Abstract arrangement of human head and symbolic elements suitable as background for projects on human mind, consciousness, imagination, science and creativity

logofinale2016년 한반도를 뜨겁게 달군 이세돌 9단과 구글 딥마인드 알파고의 바둑 대국장, 그곳에는 이세돌 9단 이외에 알파고를 대신해 바둑돌을 잡은 알파고의 ‘대리기사’ 아자 황 박사도 있었다. 당시의 흥미로운 장면을 한 신문 기사는 다음과 같이 전했다.

“이번 대국의 주인공은 이세돌 9단과 알파고였기에, 아자 황은 최대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한 것이다. 그러나 아자 황의 무표정은 오히려 그의 존재감을 더욱 드러나게 했다. 인간의 대국에서는 상호 작용도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아자 황이 인간적인 반응을 철저히 숨기면서 이세돌 9단은 알파고와 대국을 더욱 낯설게 느끼게 됐다.” (연합뉴스 2016년 3월 16일자)

실제로 이세돌 9단은 종종 맞은 편에 인간 기사가 있을 때 할 법한 ‘습관적 반응’을 보이기도 했고, 어떤 이들은 대국자를 볼 수 없는 상황이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며 차라리 인간 대국자 역시 모니터와 마우스를 통해 대국을 펼치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논평하기도 했다.

인공 지능이 미래의 꿈이 아니라 오늘의 현실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아자 황이라는 중개자의 이미지로 포착된 알파고와 이세돌의 만남은 인공 지능이 인류에게 제기할 문제가 그저 지능이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머물지 않을 것임을 짧지만 강렬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화여대 이화인문과학원 천현득 교수의 논문, 인공 지능에서 인공 감정으로 – 감정을 가진 기계는 실현가능한가?」 (『철학』, 131, 2017)은 인공 지능이 인간에게 제기할 현실적 문제 중 하나로 ‘인공 감정’을 들고 이에 대한 철학적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인공 감정에 대한 논의가
왜 중요한가

오랫동안 ‘지성’ 혹은 ‘이성’은 인간을 동물과 같은 비인간 생물종들과 구별해주는 독특한 특징으로 여겨져왔다. 그러나 “인지적인 능력에서 기계의 추월을 염려하며 초라해진 인간의 위상을 개탄하는 사람들은 이제 감정으로 눈을 돌린다.” (220쪽)

“[퀴즈쇼 제퍼디에서 우승한] 왓슨은 경쟁에서 이기긴 했지만 승리를 기뻐하지는 못했다. 당신은 왓슨의 등을 두드리며 축하해줄 수 없고, 함께 축배를 들 수도 없다. 로봇은 이런 행동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수 없을 뿐더러 자신이 이겼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220쪽)

그러나 최근에는 사교 로봇이나 감정 로봇처럼 인간과 유사한 감정을 가진 로봇을 구현하려는 시도들이 도처에서 이뤄지고 있다. 필자는 이처럼 인공 감정을 지닌 로봇을 제작하려는 시도가 널리 퍼진 배경으로 크게 세 가지 요인을 꼽는다. 첫째, 개체화된 삶을 사는 현대인들 사이에 “똑똑하게 행동하는 로봇뿐 아니라 정서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로봇”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221쪽) 둘째, “로봇에게 감정 능력을 부여함으로써 로봇의 전반적인 성능을 향상하거나 사용자의 세밀한 필요에 더 잘 부응하[는]” 로봇을 제작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이 있다. (222쪽) 셋째, 로봇이 인간처럼 감정을 갖게 함으로써 인공 지능이 인류에게 위협이 되는 상황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다.

필자에 따르면 이런 현실과 기대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인공 감정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당위를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논의는 인공 지능이 제기하는 문제처럼 이중적 성격을 띤다. 즉, 인공 지능이 지능적 기계를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가라는 기술적 문제와, 그렇게 기술적으로 구현하려는 인간의 지능이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개념적, 철학적 문제를 우리에게 제기한 것처럼, 인공 감정 역시 기술적 문제와 개념적, 철학적 문제를 모두 제기한다.

“인공 감정에 대한 연구는 감정적 존재인 인간과 유사하게 행위하는 기계를 제작하려는 시도이면서, 동시에 감정 과정에 대한 계산 모형을 통해 감정 일반과 인간의 감정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기도 하다. 로봇에 감성을 불어넣는 작업이 새로운 화두로 등장한 이때, 인공 감정에 대한 철학적 탐구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223쪽)

와세다 대학에서 개발한 감정을 표현하는 로봇 코비안. ⓒTakanishi Lab (http://www.takanishi.mech.waseda.ac.jp/top/research/kobian/KOBIAN-R/index.htm)
감정이란 무엇인가?
인공 감정은 실현가능한가?

감정을 인공적으로 구현한다는 말은 무엇을 뜻할까?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당연히 우리가 어떤 대상에 감정을 부여하는 기준과 관련돼 있다. 즉 로봇이 인공 감정을 갖추었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우리가 어떤 대상에 감정을 부여할 만한 일반적 기준들을 해당 로봇이 만족해야 한다. 그러므로 인공 감정과 관련한 논의에서는 감정의 부여 가능성을 따지려는 인공물의 생물학적 유사성보다는 인지심리학적, 행동학적 차원의 기능적 유사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필자에 따르면 이런 차원에서 볼 때 감정은 여러 기능적 역할을 수행한다. 첫째, 감정은 “개체의 생존, 안녕, 혹은 항상성 유지에 관련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둘째, “감정은 인지 과정을 촉진하거나 증진하기도 하고, 추론 양식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예컨대 산에서 뱀과 유사한 매끈하고 긴 물체가 꿈틀거리는 모습을 보았을 때 우리가 느끼는 공포심은 위급한 상황에 주의를 집중하도록 만들어 “빠르고 효과적[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유도한다. 셋째, 감정은 “일의 우선권을 조정”하고 상황 대처의 완급을 조절하는 등 “행위를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마지막으로 감정은 “특징적인 신체 반응이나 표정 등[을] 동반”하는데, 이는 감정이 추후에 취할 행동을 예비하는데 도움을 주거나, 표정이나 제스처에서 미묘한 감정이 전달되는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도 함을 보여준다. (226-228쪽)

그러므로 인공 감정을 구현한다는 것은 적어도 인간이 보기에 이러한 기능적 역할을 수행하는 것처럼 보이는 인공물을 제작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인공 감정은 과연 구현 가능한 것일까? 필자의 현재 진단은 다음과 같다. “현재의 기술 수준에서 인공 감정을 가진 로봇은 없을 뿐 아니라 가까운 미래에 그런 로봇이 등장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판단된다.” (230쪽)

왜 그런가? 우선 감정이 수행하는 여러 기능적 역할을 고려할 때, 인공 감정이 구현된 로봇은 적어도 “어떤 것이 ‘자신에게’ 해가 되는지 도움이 되는지 평가할 수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한 기초적인 모형, 혹은 원초적 자아(proto-self model)를 가져야 한다. 둘째, 그러한 로봇은 “상당한 수준의 감각 능력과 일반 지능(general intelligence)을 갖고 있[어야]” 할 것이다. “감정은 지능적인 동물에게서 나타나며, 더 지능적일 수록 더 풍부한 감정을 나타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230-231쪽) 필자에 따르면, 이 두 가지 조건을 갖춘 로봇은 아직은 아주 먼 미래의 희망에 가깝다.

한편 필자는 기술사회사적, 기술철학적 논의를 통해서도 감정 로봇의 가능성에 의문을 표한다. 특히 필자는 기술결정론적 논의를 비판하는 데 더해, “사람들이 감정 로봇을 원하는 이유가 과장되어 있거나, 실제로는 진정한 감정을 가진 로봇을 만들어야 할 좋은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우선, 감정을 갖춘 로봇이 더 안전할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인간들 사이에서 벌어진 끔찍한 전쟁들, 살인사건들, 모욕적인 언사와 행위들은 인간이 감정을 가졌기에 혹은 감정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벌어졌다.” 둘째, 인간이 애초에 로봇을 만든 목적이 감정을 지닌 로봇의 존재와 상충할 수 있다. “우리는 [감정까지 갖춘!] 권리를 가진 주체로서의 로봇을 원하는가, 아니면 시키는 일을 똑똑하게 처리하는 노예로서의 로봇을 원하는가?” 셋째, 설사 인공 감정을 부분적으로 구현하는 일이 가능하다 할지라도 우리가 로봇에게 허용할 수 있는 감정은 무엇이고 억제해야 할 감정은 무엇일까? 가령 인간과 교감하는 로봇은 “분노, 공포, 슬픔, 역겨움, 수치, 모욕감, 당황스러움의 감정”도 느낄 수 있어야 할 것이나 이런 감정을 로봇에게 부여하는 일이 바람직한 일인지는 매우 논쟁적이다. (231-233쪽)

인공 감정(의 가능성)에 기댄
일방적 감정 소통의 위험성

이처럼 인간과 유사한 방식으로 감정을 느끼는 로봇이 단시일 내에 제작될 것 같지 않다고 해서 인공 감정과 관련한 문제가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지금도 사람들은 다양한 ‘사회적 서비스 로봇’이나 ‘사교 로봇(social/sociable robots)’들과 교감을 나누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2016년에 한 스탠포드대학 연구팀이 보고한 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은 로봇이라 할지라도 “인간의 성기와 엉덩이에 해당하는” 부위를 만질 때 “가장 강한 성적 흥분”을 느끼는 듯했다. 더욱이 이러한 감정적 관계는 로봇이 감정을 더 잘 표현할 수록 강화되는 경향이 있다.

스탠포드 대학 연구팀의 로봇과 인간의 접촉 반응 연구 장면. (http://www.zdnet.co.kr/news/news_view.asp?artice_id=20160408074044)

이런 현상들은 비록 로봇이 인공 감정을 완벽히 갖추지 않아도 사람들이 로봇과 얼마든지 깊은 교감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람들의 명시적 믿음 체계 속에서 로봇의 ‘감정’은 따옴표 속에 있지만, 실제 행동에서는 그 따옴표가 쉽게 사라지기 때문이다.” 필자에 따르면 바로 이 지점이 매우 중대한 사회적 문제를 유발할 수도 대목이다. “사교 로봇에 대한 심리적 의존으로 인해, 사용자가 조종되거나 착취당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235쪽) 가령 로봇 제작 회사는 사용자가 로봇과 ‘일방적으로’ 맺는 감정적 유착 관계를 이용해 로봇과 관련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이 문제는 사람들이 어떤 로봇에게 더 강한 감정적 유착관계를 느끼는지 더 잘 알게 됨으로써 더욱 심화될 것이다.

그러므로 인공 감정을 구현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 로봇이 등장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를 논하기에 앞서 우리가 ‘지금’ 고민해야 할 문제도 그리 가벼워 보이지는 않다. “기계에 더 많이 의존하고 사람과의 대면 접촉을 피한다면, 결국 우리는 ‘함께 외로울’” 미래를 맞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238쪽) 이런 미래를 피하기 위해 우리는 인간이 다양한 로봇과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지, 특히 인간과 “감정 로봇[의] 일방적 정서적 교감이 가져올 수 있는 잠재적 위험”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것이다.

 

*함께 읽으면 좋은 자료:

1960년대 인간과 기계
홍성욱, 2002, 『철학사상』, 14, 173-199.

인간과 기계 – 갈등과 공생의 역사
홍성욱, 2015, 『문학과 사회』, 28(3), 466-488.

문지호 리뷰어  lunatea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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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을 ‘타자’로 마주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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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ofinale‘인간’을 본위로 하는 모든 휴머니즘 이론은 데카르트의 인간중심주의적 사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인식’의 영역을 물질과 구분하는 가운데 전자의 우위성을 강조하는 이원론적 세계관을 통하여, ‘사유하는’ 인간은 무엇보다 그 고유의 가치를 확고히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이 모든 “가치 판단의 준거나 기준을 인간에 두”며, “도덕 공동체의 범위를 인간으로 국한”하는 인간중심주의는 과연 옳은가. 신상규인공지능, 새로운 타자의 출현인가(『철학과 현실』, 112, 2017)에서 인간이 아닌 로봇의 ‘타자성’을 재조명하는 것으로 우리에게 새로운 질문을 안겨주고 있다.

동물,
윤리적 피동자

휴머니즘의 역사는 노예해방이나 여성 권리 회복 등, 인간의 존엄성을 위한 투쟁을 승리로 이끈 성과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렇듯 인간 보편에 대한 가치가 회복됨에 따라, 인간은 또 다른 차별의 ‘대상’을 만들어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오늘날까지도 심각한 사회문제로 언급되고 있는 동물학대가 바로 그것이다.

근대의 윤리학은 도덕적 ‘행위자’를 중심에 두고 있다. 도덕적 행위자란 양심에 따라 행동하고 자기 행동에 대해 반성할 수 있는 도덕적 책임능력을 갖춘 존재, 즉 ‘인간’을 일컫는다. “권리와 책임을 동시에 갖는 합법적 도덕주체”로서의 인간만이 행위자인 동시에 피동자로 인정되며, 이로 인해 근대 윤리학의 범주는 인간중심적인 틀을 벗어날 수 없게 기획된 셈이다. 그렇기에, “그들(동물)이 고통을 겪을 수 있는가?(Can they suffer)”라는 벤담의 질문은 “피동자의 피동성에 초점을 맞춘 도덕철학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데이비드 군켈(David Gunkel))으로 여겨질 수 있었던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싱어는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모든 동물은 최소한 도덕적 피동자의 지위를 부여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동물에 대한 피동자적 권리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기술이나 인공물, 추상적인 지적 대상들도 도덕적 피동자로 간주”해야 한다는 주장 또한 제기되고 있다. 애완동물을 키우는 가구가 급증하고 대선을 준비하는 여러 후보들이 반려동물관련 정책을 공약하고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동물의 권리는 자연스럽게 인정되는 추세이다. 하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 우리는 AI의 도덕적 지위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하는 시기를 겪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인간과 기계 즉 자연적인 것과 인공적인 것 사이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있는 상황적 변화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다. 군켈은 오늘 날 AI의 등장과 더불어 지능적 기계가 ‘도덕적 지위’를 가질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주목한다.

 

인공지능의
타자성

구글 딥마인드(Google DeepMind)에서 개발한 인공지능 알파고의 경우, ‘딥러닝’을 통하여 일련의 법칙들을 ‘학습’하고 이를 토대로 ‘스스로’ 결정을 내리도록 기획된 프로그램이다. 알파고가 ‘상황’이라는 변수에 대응하여 자율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에, 개발자도 알파고의 ‘결정’을 예측할 수 없다. 즉, 알파고는 “인간이나 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우리가 통제하거나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존재”인 셈이다. 그리고 바로 이 자율적 속성이 인공지능에게 단순히 인간이 부리는 ‘기술적 도구’로서의 지위가 아닌, 인간의 삶에 근간을 뒤흔들 수 있는 ‘타자’로 전환될 가능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지난 2015년 2월 일본에서는, SONY사에서 출시된 애완용 로봇강아지 ‘아이보(Aibo)’에 대한 합동 장례식이 있었다. 1999년 출시되어 20만 엔 이라는 고가의 금액 대에도 불구하고 총 100만대 이상이 팔려나갔으나, 2014년 관련 A/S를 전면 중단하게 되면서 로봇강아지의 ‘죽음’을 맞이하게 된 주인들이 모여 장례식을 치른 것이다. 이와 같은 예만 보더라도, AI는 인간과 정서적으로 교감하는 ‘타자’로서 이미 존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본 SONY사에서 1999년 출시된 애완용 로봇 강아지 아이보(aibo)

이에 필자는, 로봇이 “실제로 감정을 갖느냐”에 대한 문제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감정 로봇이 인간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보여주는 AI의 타자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거기에 대응할 것인가”에 대해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로봇의 ‘타자성’은 그것이 도덕적 피동자로서의 지위를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한 인간적인 ‘판단’을 통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로봇과 생활환경 속에서 맺고 있는 일련의 관계성을 통해 획득되어야 하는 것이다. 코겔버그는, 어떤 존재의 지위는 “선험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구성되는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그 존재를 ‘어떻게’ 보는가” “그것이 우리에게 어떻게 나타나는가”와 같은 질문을 가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미 인간 삶의 환경이 ‘자연’이 아닌 ‘기술적 생태 공간’으로 변화함에 따라, 우리의 생활 방식은 여러 기술들과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인공지능’의 ‘타자성’을 점검하는 것은 그리 어색한 일이 아닌 듯싶다. 물론 로봇(기술)과의 상호작용이 역으로 사회적 개인들을 고립시키는 등의 부작용에 대해선 간과할 수 없다. 하지만 인간중심주의가 ‘근대’의 산물이며 이것이 우리의 모든 인식구조를 지배하는 ‘틀’로 ‘학습’되고 있는 가운데, 이원론적 세계관에 일종의 ‘균열’을 내고 인간중심주의적 사고를 재고(再考)시킨다는 점에서 로봇의 타자성’에 대한 물음은 충분히 가치 있는 질문이 아닐까.

이단비 리뷰어  ddanddanb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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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이 인간의 요구를 읽어내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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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ofinale로봇은 인간의 감정이나 비언어적 요구를 읽어낼 수 있단 말인가? 이에 관한 메커니즘을 확인할 수 있는 국내 연구 논문 한 편을 소개한다. 윤상석, 김문상, 최문택, 송재복 박사의인간의 비언어적 행동 특징을 이용한 다중 사용자의 상호작용 의도 분석 (『제어로봇시스템학회 논문지』, 19, 2013)이다.

 

로봇, 인간의 8가지 비언어적 행동을 포착하다

필자들은 제일 먼저 인지과학적으로 어떻게 인간이 타인과 상호작용을 수행하는지 밝힌다. 그에 따르면 말의 내용보다 목소리의 떨림, 시선, 제스처, 억양, 표정, 자세 등 비언어적 요소가 내면적 정보를 더욱 많이 가지고 있다. 심지어 비언어적 요소가 호감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93퍼센트라고 하니 그 위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고로 비언어적 의사전달은 언어보다 의도를 더 정확하게 전달하는 고차원적 의사소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들은 상호작용을 수행하는 로봇이 복합적인 상황을 이해하고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인간의 인지 과정과 유사한 기능 구현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특히 단 한 사람이 아니라 많은 이가 방문하는 박물관이나 쇼핑몰과 같은 동적 환경에서 복수의 사람을 대상으로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로봇의 인지 요소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했는데, 그 결과 로봇이 다중 사용자와 상호작용하는 데 있어서 사용자 의도 지수를 정량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통합 사용자 평가 모델을 제시하는 데 성공했다.

필자들은 인간 사이의 상호작용 의도를 나타내는 지배적인 기능을 시각, 동작, 공간, 발성, 촉각의 다섯 가지로 구분했는데 이 중 촉각을 제외한 네 가지 요소들을 사용자의 친밀도를 측정하는 데 사용했다. 그리고 좀 더 세분화된 8가지 상호작용 의도 속성을 파악했는데. 정리된 것은 다음과 같다.

논문 739쪽 수록.

위 8가지 비언어적 행동을 로봇이 효과적으로 인식하기 위해 멀티 센서에 기반을 둔 로봇 인식 시스템이 통합적으로 구성된다. 일단 카메라 센서가 사람 눈높이에 맞춰져 있어 인간과 면대면 상호작용을 수행하면서 사용자를 인식하고, 다양한 행동 표현을 하며 지속해서 사용자의 의도를 추적한다. 이어서 장착된 마이크로폰이 음원 신호를 측정하고, 3차원 깊이 센서는 넓은 영역의 깊이 정보를 획득해 개별 사용자에 대한 위치 정보 및 신체 정보를 추출한다. 이 세 가지 멀티센서로부터 8가지 사용자 행동 정보를 추출하는 과정이 논문에 세세하게 나와 있다.

논문 740쪽 수록.

위 그림처럼 정면 얼굴 검출기를 적용해 사용자의 로봇 응시 여부를 판별한 후, 사용자의 표정을 일반, 웃음, 놀람, 화남 총 4가지 상태로 분류한다. 그 후 스켈레톤 정보를 제공해 제스처를 인식하고, 공간요소로 사용자 포즈, 상체 기울임 각도, 공간적 거리를 측정하며, 마이크로폰으로 발화자의 위치를 추정한다. 이로써 멀티센서로 8가지 비언어적 행동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로봇, 높은 성공률로 사용자 의도를 파악하다

사용자가 실제 상호작용 의도를 나타내는 행동을 수행했음에도 오인식이 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 개별 인식정보를 통합하고 오인식 정보의 사용을 가급적 배제하고 연속적인 신뢰도 기반의 인식정보를 적용하기 위해 TCR(Temporal Confidence Reasoning)에 기반한 후처리 방법을 적용한다. 이 방법을 적용하면 사용자 행동 특징 정보가 설정된 의도 속성에 따라 정규화된 값으로 전환된다. 또한 개별 인식기에 대하여 빈도나 중요도에 따라 가중치를 적용해 보다 효과적인 사용자의 의도 평가가 가능해진다.

연구자들은 위의 시스템이 적용된 로봇이 제대로 비언어적 행동을 인식하는지 총 10명의 20~30대 성인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그 결과 97.4퍼센트의 성공률로 정면 얼굴을 판별하고, 76.2퍼센트로 표정을 인식했으며, 제스처와 보행 인식은 각각 88.2와 83.1퍼센트의 성공률을 나타냈다. 사용자 포즈와 상체 기울임도 96.7퍼센트와 83.1퍼센트로 높은 성공률을 보였다. 마지막으로 음원 검지율 실험에서는 10도 이내에 있는 실제 발화자를 신뢰성 있게 추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복수의 사용자를 대상으로 제시된 사용자 평가 모델 성능 실험에서 3명의 사용자 5개 조를 실험한 결과 전체 실험 참가자의 의도와 93.3퍼센트의 일치율을 보임으로써 필자들은 복수 사용자의 개인별 의도를 로봇이 효과적으로 분석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배경지식이 있는 독자들은 논문 안에서 자세한 실험과정과 연산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비전공자들 역시 수학적 연산을 제외하고 보더라도 각 센서의 메커니즘과 후처리 과정을 흥미롭게 따라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권성수 리뷰어  nilnilis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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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은 일자리를 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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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ofinale작년 경부터 이른바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온갖 담론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고, 심지어 오늘날에는 대선 정국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에서 로봇공학과 인공지능 그리고 사물인터넷의 발전이 세계경제를 완전히 뒤바꿀 것이라는 전망을 내세우고 인공지능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압도한 이래, 기계가 인간을 압도하는 세상을 이야기하는 것이 마치 하나의 유행이 된 것 같다. 혹자는 영화 ‘터미네이터’나 ‘아이로봇’에 나온 디스토피아적 미래에 대해 걱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전형적인 반응은 ‘그러면 인간이 하던 일을 기계가 다 해버리면 인간은 쓸모 없어지고 대량 실업이 생기는 것 아닌가’하는 공포감이다. 나준호의 논문 「인공지능의 발전과 고용의 미래 (『FUTURE HORIZON』, 28, 2016) 또한 그와 같은 주장의 전형적 사례이다. 이 논문이 대단히 문제적인 주장을 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오늘날의 통념에 하나의 ‘태클’을 걸어보기 위해서 가장 보편적인 주장을 하는 듯한 국내 논문을 골라봤을 따름이다. 이 리뷰에서도 논문의 내용을 충실히 요약하고자 하지만, 독자들도 해당 글을 꼭 읽어보시고 나름대로 판단을 내려보시길 바란다. 그런 독자들에게 이 리뷰가 최근 유행하는 한 담론에 대한 비판적 가이드 구실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인공지능의 발달
그리고 산업에의 적용

이 논문은 우선 인공지능의 역사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고, 그 현황을 개괄한 후 그것이 오늘날 산업에 끼치고 있는 영향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알파고로 대표되는 최근의 획기적 인공지능 기술의 발달은 2010년대에 들어서 가능해졌다. 이러한 발전이 가능했던 이유는 두 가지 기술기반의 발달 덕이다. “무엇보다 ‘무어의 법칙’에 따라 컴퓨팅 자원 가격이 급속히 하락했고 분산처리 기술, 클라우드 컴퓨팅, 고성능 GPU 활용 등을 통해 거대한 컴퓨팅 역량을 저비용에 구축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학습, 탐색 기반의 머신 러닝 등 새로운 알고리즘 구축 방법론이 도입되며 돌파구가 마련되었다.”(14) 이에 따라 알고리즘은 빠르게 산업 생태계에 도입이 되었는데, 이미 많은 부분 우리의 삶에 파고들어 있다. 소셜 미디어 사이트나 검색엔진 등에서 이런 저런 정보를 소개∙추천해주는 것도 다 이러한 기술들에 기반한 것이다.

인공지능 열풍을 불러 일으킨 ‘알파고’. 출처: Wikipedia

단지 이런 온라인 사이트에만 인공지능이 도입되는 것은 아니다. 금융산업에서는 이미 인공지능이 크게 도입되어서 투자 포트폴리오 구축도 인공지능이 하고 이 외에도 투자분석∙자문도 컴퓨터가 많이 맡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비용절감이 상당히 이뤄진 상황이다. 아마존에서는 구매 패턴, 라이프스타일 등을 분석해서 적절한 시점에 소비자에게 생필품 구입을 제안한다. 알리바바는 맘에 드는 옷을 찍어 검색하면 비슷한 옷을 온라인에서 찾아 구매를 도와준다. 과거에도 신기술 도입으로 인한 생산성 상승 효과가 상당했던 유통업 외에도, 의료∙언론∙법무에도 인공지능의 도입이 늘어나고 있다. 환자의 생체 데이터를 인공지능이 분석해서 진단하고 치료법을 제안한다. 저널리즘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이미 일부 간단한 기사는 로봇 저널리스트에 의해 작성되고 있는 실태다. 법무법인들에서는 문서 처리 및 검토 작업을 인공지능이 수행하고 있는데, 단순 조사역은 기계에 의해 종사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는 단지 로펌 뿐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 지식노동이 기계로 대체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변화는 인간 고용의 대폭적 감소가 수반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에릭 브린욜프슨과 앤드류 맥아피, 마틴 포트, 아론 라니에르 등이 이런 주장을 내놓는 대표적인 인물로 거론된다. [리뷰의 대상이 되는 논문에서는 언급이 되지 않았지만, 사실 경제학자 중에서 본격적인 실증연구를 통해 이런 주장을 내놓는 대표적인 사람들로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칼 베네딕트 프레이와 마이클 오즈본이다.] 물론 직무 특성별로 다를 수가 있는데, 어떤 직업에서는 단순히 대체할 수도 있다. 논문의 저자인 나호준 연구위원의 경우에는 “감성,지식 노동이 주를 이루는 판매직, 단순 사무직, 서비스직, 전문직, 연구직, 관리직 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16)한다고 하고, 특히 연구직 관리직 등은 과거에는 자동화가 활발히 진행되던 분야는 아니었던 만큼 충격이 클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업종은 고임금이므로 로봇, 인공지능 도입 선호도가 상당히 높다는 것이다. 그리고 특히 정형적이고 반복적인 업무가 많은 직종일 수록 쉽게 대체되리라 예상된다. 물론 나호준 연구위원은 어떤 직업에서는 오히려 인간노동력-기계가 보완재일 수 있다. 이 경우 “인간과 기계가 각자 잘하는 업무를 분담하는 협업 구도도 나타날 가능성”(16)이 있다. 이런 직종의 경우 기계에 의한 인간노동의 대체가 쉽지 않으리라.

하지만 저자는 보완의 가능성보다는 대체의 가능성을 더 크게 보는 듯 하다. “경영 방식이 인공지능 친화적으로 바뀔 경우”처럼 “게임의 룰”이 변하면 “인간은 점점 경쟁력을 잃다가 결국 인간의 설 자리가 크게 위축”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와 함께 저자는 “기계와의 협업에 성공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나뉘면서, 직종 내 양극화 문제가” 확대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는다(17). 이러한 변화의 급속함을 경고하며 저자는 이에 대처할 시급한 대책마련이 필요하다고 결론 짓는다.

 

정말 인공지능∙로봇은
인간을 대체할 것인가
?

실제로 저자의 암울한 전망이 우리 눈 앞에 임박해있는가? 본 리뷰에서 소개된 논문도 그렇지만,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인공지능으로 인해 고용이 대규모로 축소되리라는 전망은 결코 주요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컨센서스’가 아니다. 만약 그와 같은 ‘자동화 호들갑’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오히려 MIT의 경제학자 데이비드 어터가 지적한 바와 같이 ‘왜 아직도 이렇게 일자리가 많은가?’하고 되물어야 할 판이다. 그런데 인공지능에 대한 과장된 기대 혹은 공포에 대해서 반박하는 이러한 연구들은 국내의 관련 담론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소개가 이뤄지고 있지 않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가히 ‘거물급’ 경제학자라고 할 수 있는 윌리엄 노드하우스도 이에 대해서 회의적이다. 우선 인공지능이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산업들이 경제 전반에서 차지하는 규모가 그렇게 크지도 않고, 그 외의 산업분야의 생산성이 급속히 상승하고 있지도 않다. 무엇보다 임금에 비해 빠른 속도로 자본재의 가격이 저하하고 있다는 증거가 없다. 즉 기계로 인간을 대체할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이 더 싸게 먹히지는 않는 상황이란 말이다. 그래서 노드하우스는 우리가 ‘경제적 특이점’에 진입하려면 100년은 소요되리라 전망한다.

한편 OECD의 경제학자들이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자동화 진전에 따라서 사라질 일자리의 비중은 OECD 평균 9% 밖에 안 된다. 미국 일자리의 절반 가량이 사라진다는 일부 연구들과 상당히 대조적인 결과를 보여준다. 기존 연구는 어떤 ‘직무’가 사라진다면 해당 ‘직업’이 자동화로 인해 사라질 거라고 가정하고 연구를 진행했다. 하지만 보통 하나의 ‘직업’은 여러 개의 ‘직무’로 이뤄져 있다. 예컨대 자율주행자동차가 보편화되어도 여전히 버스에는 요금을 징수하는 기사가 있어야 하며, 유치원이나 요양원의 셔틀버스에는 여전히 탑승자의 안전을 살피는 사람이 필요하다. 이런 식으로 하나의 일자리에는 다양한 직무가 있으므로, 직무 중 상당수가 자동화될 수 있는 경우에만 로봇과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파괴할 것이다. 그래서 직무의 70% 이상이 자동화되어 소멸할 일자리는 전체 일자리 중에서 OECD 평균 9% 가량이란 것이다. 심지어 한국 같은 경우에는 자동화가 상당히 진전되어 있어(인구대비 로봇의 수가 세계 1위다) 겨우 6% 가량의 일자리가 소멸될 전망이다!

이외에도 자동화로 인해서 사업장 운영비용이 감소하면, 사업장 별 노동자는 줄어도 사업장 자체가 늘어서 고용인구가 늘어날 수 있다. IMF가 발간하는 Finance and Development에 실린 제임스 베센의 기사를 참조해보자. 가장 극적인 역사적 사례는 ATM이다. ATM은 은행원의 직무를 상당히 대체하였고 실제로 그래서 은행 한 점포당 은행원의 수는 상당히 감소했으나, 대신에 적은 비용으로도 은행 지점 운영이 가능해져서 오히려 미국 전역의 은행원 고용은 대폭 증가하였다고 한다.

일반론적인 비판 외에도, 본 논문에서 준거로 든 몇 가지 사례들에 대해서도 코멘트 할 것들이 있다. 우선 나호준 연구위원도 지적하다시피, 인공지능의 급속한 발달을 가능케 해준 물질적 토대는 ‘무어의 법칙’이라는 급속한 컴퓨터 발달이 있다. 하지만 무어의 법칙은 한계에 봉착해있다는 전망이 압도적이다. 극도로 미세한 기판에 최대한 많은 트랜지스터를 때려 박는 식으로 반도체 기술이 발달해왔지만, 문제는 그런 식으로 컴퓨터를 발달시키는 데에는 물리적 한계가 있으므로, ‘무어의 법칙’은 위기에 봉착해있다. 논문의 저자는 또한 이른바 감정노동이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는데, 아래에서 소개할 이재현 연구자는 정반대의 주장을 제기한다. 이른바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 현상으로 인해서 감정노동은 자동화로 대체하기 어려울 수 있다. 따라서 이른바 ‘노가다’만큼이나 자동화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인간을 흉내내지만 충분히 인간적이지 않기 때문에 소비자들 상당수가 불쾌감을 느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물론 기술변화의 여파가 크지 않을 것이므로 가만히 있자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생각보다 적을지라도 기술적 실업이 발생할 전망이라면 그로 인해 피해를 입는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지원책과 (재)취업 방안은 당연히 필요하고 그에 걸맞게 복지제도 또한 개선돼야 한다. 다만 이데올로기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자동화에 대한 열광 혹은 공포는, 미국 경제정책연구소의 딘 베이커 소장이 지적했듯 ‘4차 산업혁명 때문에 실업은 어쩔 수 없어’라는 식으로 경제위기와 실업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정치경제 엘리트들의 이데올로기로 활용되곤 한다. 언제는 인구절벽으로 노동인구가 부족하다던 바로 그 사람들이 말이다. 실제로 많은 관료들이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대책이랍시고 제시하는 정책 대안이 노동시장 유연화다. 어차피 없어질 일자리를 지키는 제도는 무용하거나 해악적이라는 식의 주장이다. 그러나 앞서 살펴봤듯 실상은 대체로 다르다.

물론 우리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하는 문제는 있다. 신기술로 인해서 일부 직종의 직무가 상당히 단순화된다면, 이 경우에는 기존에는 고숙련 직종이라서 노동력을 쉽게 끌고 오기 어렵던 일부 직종에서도 ‘산업예비군’을 동원하기가 쉬워질 수 있으므로 임금 삭감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일자리 소멸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학자들 중 적지 않은 수는 그래도 ‘일자리 양극화’가 발생할 수 있다는 말은 한다. 물론 이런 식으로라도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지는 좀 더 세밀히 따져봐야 한다. 다만 적어도 실업 보다 우리가 급박히 대처해야 할 노동 문제는 임금과 불평등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만 우리가 여전히 견지해야 할 점은, 기술의 여파는 사회적으로 조절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기술 그 자체가 우리를 위협할 수 있다는 생각은 기술결정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함께 읽으면 좋은 논문

「인공지능에 대한 비판적 스케치」
이재현, 『마르크스주의 연구』 13(3), 2016.

로봇과의 ‘사랑’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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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ofinale로봇에는 어떤 종류가 있을까? SF영화에서 다양한 로봇이 등장한 바 있지만 우리의 실제 생활에서 로봇을 만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인공지능 진공청소기가 로봇이라면 우린 로봇을 만난 적은 있는 셈인데 만났다고 말하긴 쑥스러운 수준이다.

미래엔 로봇들이 대거 등장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그 시점을 2045년이라고 본다. 앞으로 30년 뒤에 우리는 로봇에 둘러싸여 살아갈 것으로 예측된다. 그때 내 나이 70대 중반이니 미래로봇과의 동거생활은 가능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로봇학회가 미래에 어떤 로봇이 실제로 우리 생활에 들어올 것인지를 예측해 주목을 끈다. 강철구, 공경철, 심현철, 안태범, 정지훈, 조영조 등 6명의 학자가 위원회를 구성해 수차례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 발표한우리 삶을 바꿀 2045년 로봇(『로봇과 인간』, 12(4), 2015)이 그것이다. 연구팀은 이 특별사업의 취지를 “30년 후 어떤 로봇이 우리 인간 삶에 들어와 우리 삶의 모습을 변화시킬지를 예측해 봄으로써, (1) 로봇 연구자에게 영감을 제공하고, (2) 정책 입안자에게 로봇 R&D 정책의 방향을 제시하며, (3) 일반인들에게 로봇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있다”라고 밝혔다.

 

가사로봇과 실버케어로봇
실버케어 로봇 (논문 6쪽)

 

2045년이 되면 각 가정마다 똑똑하고 상냥한 가사 로봇household robot이 보급되어, 인간에게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고 한다. 이들은 설거지, 잔심부름, 감성을 동반한 간단한 대화, 외국 영화를 보거나 외국인 전화가 올 때 동시통역, 인터넷 서베이 후 구매, 노인이 쓰러질 경우 119에 연락해 응급조치, 인간의 건강상태 체크 및 기록, 집의 일상적인 유지보수, 바닥을 쓸고 닦는 집청소, 화재나 침입자에 대한 대비 등 거의 집안의 모든 일을 도맡아 할 수 있다. 가정의 세금관리, 금융관리, 일정관리, 이메일관리 및 개인 데이터 관리 등을 로봇이 대신해줄 것이라고 보았다. 마지막이 인상적이다.

[su_quote]로봇이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무선충전이 보편화될 것이다. (4쪽)[/su_quote]

노인의 건강상태 등급이 표준화되고, 이 등급에 따라 지능형 생활공간을 모듈화한 조립식 인공지능 주택이 건축되며, 그 안에 인간형 집사 로봇과 착용형 하지 근력증강 로봇이 들어가 노인의 건강상태에 따라 일상생활을 효과적으로 보조하게 될 것이다.

노인의 건강상태 등급은 이동능력, 조작능력, 인식 및 판단 능력의 저하 정도에 따라 결정될 것이며, 등급에 따라 침실, 드레싱룸, 화장실, 샤워실, 부엌 등 기능별 공간의 자동화 정도가 규격화 될 것이다. 주택은 기능별 공간이 모듈로 분할되어 조립식으로 건축될 것이며, 모듈별로 자동화 되고 네트워크화 되어 인간형 로봇 및 착용형 로봇과 연동하여 이동능력 보조, 집사 역할, 자동화된 침대·변기·샤워부스·옷장 등과 연동하여 일상생활의 가장 기본이 되는 잠자기, 배설, 씻기, 옷 갈아입기를 별도의 보조인력 없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한다.

 

아바타 로봇

동료, 애인과도 같은 역할을 해 주는 아바타 로봇이 등장할 것이다. 이 로봇은 다양한 방식으로 감성을 표현할 수 있고, 사용자와의 대화 능력이 뛰어날 것이다. 인공지능을 가지고 있어 자신이 위치한 생활환경에 맞게 적응하고 학습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로봇은 스마트폰을 비롯하여 사용자의 곁을 떠나지 않는 온라인 아바타의 형태로 전환할 수 있는 특징을 가지기에 언제나 내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스마트폰에서는 디지털 프로그램의 상태로 있다가, 집에 도착하면 로봇으로 인격이 옮겨가고, 스크린이 있는 곳에서는 스크린에 나타나는 등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나와 함께 다니며 나를 이해하고 도와주는 아바타 기능을 탑재하고 있을 것이다.

이외에도 논문은 비행로봇을 통한 공중감시, 실종자 수색, 기상 측정 등 다양한 군용, 공공 및 개인용으로 드론이 활용될 것이라고 보았다. 자율주행 기술의 발달로 사람들은 굳이 운전을 배우려는 노력을 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교육로봇을 통해서는 원격으로 제어되어 물리적 거리에 구속 받지 않고, 행동, 시각, 청각, 후각, 감촉 등의 오감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가정과 학교에 보급될 것이라고 보았다. 요리강사와 접속된 로봇이 나의 부엌에서 함께 요리하며 알려줄 것이다.

군인을 대신하는 전투로봇, 스마트 제조로봇, 인간 신경계와 연동되는 착용형 로봇 등으로 미래로봇은 계속 이어지며 소개된다.

 

수호천사로봇
트랜스포머형 수호천사 로봇(10쪽)

 

아홉 번째의 휴대용 수호천사로봇은 특히 눈길이 간다. 왠지 반려견 문화와 연관되어 다가오기 때문일까. 이 로봇의 특징은 변형 가능한 트랜스 로봇이라는 점이며, 강아지처럼 주인을 쫓아오는 행동이 기본이다. 필요시에는 드론처럼 날아다닐 수도 있다.

[su_quote]전원이 부족하면 전원소스는 자기가 직접 찾아 충전할 것이다. 백팩이나 가방, 모자, 어깨 위(입는 배터리) 등에 작은 착륙장이 있어 그곳에 올라타 충전할 것이다. (10쪽)[/su_quote]

논문은 그 외에도 의료용 로봇, 농업 로봇 등을 다양하게 소개하고 있다.

유엔미래보고서는 2045년을 과학기술 발전의 대전환점이 될 특이점singularity으로 보고, 이 이후에는 인공지능이 인간지능을 능가하여 어떤 방향으로 과학기술이 발전할지 예측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논문은 그러나 ‘긍정적’인 측면이 더 강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리고 앞으로 사라질 직업과 새로 생길 직업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예측하고 있어 바뀐 미래상을 상상하도록 만들고 있다.

[su_quote]앞으로 사라질 가능성이 있는 일자리로는 기계를 단순조작하는 직종이나 비전문적인 서비스 직종들이 될 것이고, 또한 현재 각광받고 있는 회계사, 세무사 등의 전문직들도 대상이 될 것이다. 따라서 실업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각국에서는 기본소득제와 같은 새로운 복지제도와, 자동화 세금과 같은 구조조정을 위한 재원확보 정책 등을 펼치게 될 것이다. 한편, 새롭게 생겨날 일자리로는 로봇 디자이너, 로봇 설계 및 제조, 로봇 배치 및 운용, 로봇 A/S, 로봇/인간 조정자 등 로봇 관련 직업들과, 기업의 조직체계와 계층구조를 무너뜨리는 기업 조직전문가, 클라우드 펀딩 전문가, 3D 프린팅 스튜디오의 운영, 스마트 기기 제조가와 같이 창의적이고 협상을 필요로 하는 직업들, 그리고 공연예술, 스포츠, 레저와 관련한 일자리들이 포함될 것이다. 또한 비상시적이고 낮은 임금의 일자리도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14쪽)[/su_quote]

박남윤 리뷰어  review@bookpo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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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하니, 아니 로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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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노이드 로봇은 아직 이런 불길을 만나면 피할 수 없다. 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로봇이 뛰어다니는 시대가 오면 무척 시끄러울 것 같긴 하다.                                                (영화 <엣지 오브 투머로우>)

logofinale로봇과 인공지능에 관심을 갖다보니 로봇 마라톤 대회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세계 로봇 월드컵이 벌써 연1회씩 20차례나 치러졌고, 여기에 마라톤 종목이 있으니 들어봤음 직한데도 처음 듣는 것처럼 생소하다. 로봇이 마라톤이라니!

최근 읽은 논문에서 매우 인상적인 문장이 귀에 쏙 와서 박혔다.

[su_quote]인간의 마라톤은 극한의 지구력과 정신력의 한계를 시험하는 스포츠다. 이런 인간의 마라톤과 흡사한 환경에서 휴머노이드 로봇이 마라톤을 한다면 로봇의 운용 시간, 안정성, 환경인식 능력의 수준을 충분히 검검할 수 있다. 휴로컵HuroCup의 마라톤은 실제 인간의 마라톤과 흡사하며, 휴머노이드 로봇의 견고성과 지구력을 시험하는 경기다.(64~65쪽)[/su_quote]

무지렁이인 나는 이 문장을 읽고 42.195킬로미터를 정주행하는 로봇을 상상했다. 관절을 자유자재로 수축 이완하며 철퍼덕 철퍼덕 뛰는 기계인간을 떠올린 것이다. 그러나 곧 “너무하잖아. 영화도 아니고” 하는 자각이 들었다. 그런 로봇이 존재한다면 아마 돈 많은 집집마다 로봇 한 마리씩을 키우고 있을 테니 말이다.

혹 나와 같은 이들이 존재할까 우려하여 아래에 로봇 마라톤의 개요를 리뷰해볼까 한다. 정보는 국가대표로 세계 대회를 휩쓸고 있는 목포대 팀의 두 리더 유영재 교수와 이기남 박사과정생이 함께 작성한 「휴머노이드 로봇의 마라톤 경기 및 전략」(『한국지능시스템학회 논문지』, 26(1), 2016)이라는 논문이다.

우선, 로봇의 마라톤은 200미터 정도를 달리는 경기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걷는’ 경기다. 인간 마라톤의 1/200 정도의 거리인데, 로봇이 카메라로 찍어 경로를 인식할 수 있게끔 색상띠를 부착한 트랙 경기장이 만들어진다. 많은 스포츠가 체중이나 약물복용 여부를 체크하듯 로봇 마라톤에 참가하는 로봇도 일정한 규칙을 통과해야 한다.

먼저 로봇에 사용되는 모든 센서는 수동적이어야 한다. 적외선, 초음파, 레이저 파동 등을 ‘발사시키면’ 안된다. 또 반드시 두 발로 걸어야 한다. 네 발이나 세 발로 걸으면 안 된다. 난이도를 높인다고 한 발로 스카이 콩콩처럼 뛰어봤자 안 된다.

인간의 부축을 받으면 안 된다. 완전히 자율적으로 움직여야 하며, 독립적인 보행 능력, 센싱, 프로세싱 능력을 갖춰야 한다. 즉, 경기장에 내보내면 로봇 주인은 손을 완전히 떼야 한다. 모든 작동기, 모터, 파워, 컴퓨팅, 센서 장치는 로봇에 내장되어야 한다.

유니폼 규정도 있다. 검은색과 흰색을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는데, 다른 색깔도 심사를 통과해야 하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단, 노랑·파랑·빨강은 쓸 수 없다.

경기방식은 이러하다. 참가 로봇은 관리자 1명(2명은 안 된다)과 경기장에 입장한다. 실제 마라톤과는 다르게 각 로봇이 3분의 간격을 두고 출발한다. 뒤 선수가 앞 선수를 50센티미터로 따라붙으면 앞 선수는 트랙에서 제거된다. 다소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 충돌하면 양쪽이 모두 참사를 겪어야 한다. 들려나온 앞 선수는 별도 트랙으로 옮겨져 계속 달리게 된다. 기록은 측정해야 하니 말이다. 또한 로봇이 트랙을 50센티미터 이상 벗어날 경우나, 로봇 관리자가 로봇을 만지게 될 경우에는 5미터 뒤로 이동하는 벌칙이 주어진다.

실격은 다음의 경우에 해당된다. 첫째, 로봇 관리자가 초기 프로그램을 취소하고 프로그램을 재설정하는 행위, 둘째, 배터리를 교체하는 행위, 셋째, 심판 허가 없이 조력자와 함께 로봇을 수리하는 행위를 했을 때다. 배터리는 보통 2시간30분 동안 교체하지 않고 로봇을 움직일 수 있을 정도를 장착하는데, 이를 위해 로봇을 최대한 경량화시켜야 하는 게 현실이다. 가끔 텔레비전 화면에 비치는 로봇이 모두 헐벗은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로봇의 방향전환 모습을 찍은 동영상의 1초 간격 컷.

유영재 교수팀의 이번 논문은 로봇의 방향전환에 공을 들였다. 위의 사진은 동영상에서 1초 간격으로 추출한 것이다. 턴 스피드Turn Speed 값이 커질수록 방향전환 속도가 빨라진다. 트랙 인식 및 마커인식 알고리즘에서 계산되는 보행방향 각도에 따라서 턴 스피드 비율이 변한다. 턴 스피드 값이 높아질수록, 상대적으로 워킹 스피드는 낮아진다.

논문을 살펴보니 현재 로봇 마라톤은 200미터를 1시간 내에 주파하는 수준이었다. 로봇이 실제로 달리기 위해서는 경로 파악, 동작의 안정성, 곡선 트랙에서의 방향전환 등 모든 면에서 아주 눈부신 발전이 필요한 듯 보였다. 연구팀은 “걸으면서 카메라로 주변 환경을 인지하기 때문에 화면이 흔들리는 진동 문제가 향후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밝혔다.

 

강성민 리뷰위원  paperfac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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