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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인더스트리 4.0’과 ‘노동 4.0’의 실제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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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ofinale적잖은 경제학자들은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일자리의 손실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에는 과장이 섞여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사물인터넷과 각종 자동화 기술이 실제로 적용된 ‘스마트 팩토리’로 유명한 독일의 실제 경험은 어떨까? 독일에서는 제품 생애주기의 모든 단계를 디지털 네트워크와 결속시키는 ‘인더스트리 4.0’이라는 비전이 제시된 바 있다. 실제로 독일의 사례는 경제계나 정치권에서 중요한 사례로 거론되고 있고 한국의 노동운동에서도 인더스트리4.0에 대한 독일 노동운동의 대응은 중요한 전범으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말만 떠들썩하지 독일에서 실제로 그것이 제조업과 노동시장 등에 미친 영향을 주의 깊게 살펴보는 논의는 충분히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독일 뒤스부르크-에센대학교의 게르하르트 보슈 교수가 쓴 「독일의 인더스트리 4.0과 노동 4.0에 관한 논의」(『국제노동브리프』, 15(3), 2017)가 국내에 소개된 것은 꽤나 반가운 일이다. 이에 대한 검토는 여러모로 꽤 의미 있는 일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우선 그 실상을 파악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최근의 기술진보가 산업현장에 적용되는 것에 대한 독일에서의 대응이 과연 올바른 것이었나를 검토해보면서 한국에서는 어떻게 이에 대응해야 할까에 대해 고민해볼 필요 또한 있을 것이다.

 

기술에서 노동으로

독일 연방정부는 산업발들을 위한 “하이테크 전략”을 세웠는데, “지능시스템을 통해 최대한 자기조직적 생산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가치사슬의 모든 부분에서 인간, 기계, 설비, 물류, 제품이 직접 소통하고 협력”(22페이지)하게 만들자는 것이다. 이를 디지털 네트워크 기반의 생산으로서 구현하자는 것이 이른바 인더스트리 4.0이었다. 처음에는 생산부문에서 주되게 적용되는 내용이었지만 이제는 서비스 부문에도 상당히 적용되고 있다고 한다.

자동화 기술이나 사물인터넷의 진전에 관련해서 한국에서 많이들 우려하는 대목은 이러한 기술이 대량의 기술적 실업을 낳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그러나 정작 이런 기술들을 제조업에 접목시키는 데에 있어서 최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는 독일의 실제 사례를 보면 현실은 이와 다르다.

[su_quote]인더스트리 4.0이라는 새로운 비전을 둘러싼 논의가 시작되었을 당시에만 해도, 인간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공장을 꿈꾸는 엔지니어들에 의해서만 논의가 주도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오로지 기술발전에만 의존하는 비전은 이미 과거에도 많은 이유로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상호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생산 프로세스들은 오류와 고장이 잦다는 문제가 있고, 수시로 전문인력의 개입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많은 경우 인간의 업무가 기계를 통해 대체되지 못할 뿐 아니라, 인간이 투입되어야 하는 범위가 기계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보다 확대된다. (22페이지)[/su_quote]

인더스트리 4.0 (출처:Wikipedia)

특히나 최근 ‘기계의 부상’에 대해 걱정하는 여러 대중적 저술들에서는 인공지능이 소수의 초고소득층 ‘슈퍼스타’와 다수의 저임금 노동자들로 노동시장을 완전히 양분할 것이라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적어도 독일의 케이스를 보면) 기업들이 경쟁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문인력을 육성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했다고 한다. “전문인력과 그들의 유연성은 독일이 자랑하는 경쟁력”의 비밀이었다(23페이지).

따라서 오늘날 유행처럼 유통되고 있는, “향후 20년간 지금까지 인간이 담당하던 각종 직업의 90%이상이 불필요하게 될 것이라는 엔지들의 예상으로 한” 칼 베네딕트 프레이와 마이클 오즈본의 연구는 보슈 교수가 보기에 터무니 없는 것이라고 한다.

“이는 (미래에는 인간이 패스트푸드만 먹고, 모든 가옥의 지붕은 완제품으로 생산되어 헬리콥터로 설치된다는) 극도로 비현실적인 시나리오를 전제로 한다. 게다가 이러한 변화는 시간당 노동생산성의 급속한 개선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오히려 그 반대의 현상이 나타난다. 독일을 비롯한 여러 선진산업국가에서 지난 수십 년 동안 시간당 생산성의 성장세가 둔화되었다.”

게다가 “기술이 생산성에 미치는 영향은 장기간에 걸쳐 분산”되므로, 이러한 변화들은 사회를 급속히 변혁시키기보다는 “단계적 변화”를 밝은 요량이 크다는 것이다(24페이지). 보슈 교수는 특히 독일의 20개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사례연구를 실시하고 있는데 이러한 예측에 대한 근거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급속한 변화가 없더라고 해도, 지속적인 변화의 과정 속에서 노동시장에 부정적 영향이 가해지는 경우가 있는 것은 분명히 사실이다. 보슈 교수가 언급하는 (그리고 대중적으로도 익히 알려진)사례는 우버(Uber)와 같은 기업의 사례다. 이러한 기업에 소속된 플랫폼 노동자들은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기존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또한 기존 제조업 재편과정에서도 노동자들이 손해를 보는 경우가 굉장히 많을 수 있다. 따라서 “전직 훈련 기회를 제공하는 등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이 필요하며 그를 통해 노동자의 이직 등을 지원해야 한다고 한다(25페이지).

 

유연한 노동시간

한편 보슈 교수는 인더스트리4.0의 시대에는 노동시간의 유연화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인더스트리 4.0의 생산체계가 적시생산시스템의 연속선 상에 있기 때문이다. 즉 재고 감소를 위해 수요 변동에 딱 맞추어 생산이 이뤄지게 했던 것인데, 이에 따라 기업의 입장에서는 근로시간을 유연화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는 것이다.

오늘날 독일에서는 자동차 산업 등의 사례를 보면 이미 실제로 노동시간의 유연한 분배가 이뤄지고 있다고 하는데, “표준 근로시간은 근로시간의 산술적 평균에 불과하다. 실질 근로시간은 평균 근로시간을 기준으로 큰 폭의 변동을 기록하는데, 플러스 및 마이너스 근로시간은 모두 근로시간계좌에 기록”하는 식이라고 한다(26페이지). 이를 시행하는 데에 수반되는 디테일에 관해서는 노사합의를 통해 결정이 된다고 하는데, 표준 노동시간을 초과하는 경우 노동자가 주장할 수 있는 권리라든지 근로시간 분배 기준기간의 상한선이라든지 따위를 말이다. 즉 노동시간의 조정을 단지 기업이 일방적으로 하지 못하게 하는 강제가 있다는 것이다. 한편 이와 관련해서 전범으로 삼을 사례는 보슈 교수는 1990년대에 이뤄진 노사간의 타협을 언급한다. 노동시간의 유연화와 더불어 “일자리 보호를 위하여 일시적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합의”를 했다고 하는데 이는 “임금 보전 없이” 이뤄졌다고 한다(26페이지).

오늘날에는 이러한 접근법들이 어떻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일까? 노동시간에 관해서 사용자 측에서는 최대 노동시간 관련 규제를 훨씬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근로시간법의 완화 요구를 뒷받침해줄 만한 자료는 현재까지 도출되지 않았다.”(27페이지) 그러나 기업주들이 원하는 규제완화에는 반대하면서도 보슈 교수는 유연한 노동시간 정책이 일-가정 양립을 위해 활용할 수 있도록 확대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특히 육아휴가 보조금을 많이 주는 것과 동시에 풀타임 노동자들이 원할 경우 파트타임으로 전환할 수 있게 하고, 또한 풀타임으로도 쉽게 재전환할 수 있게 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28페이지)

 

직업교육과 계속 교육

한편 보슈 교수는 여전히 제조업에 있어서 전문기술 교육을 받은 사람이나 숙련공의 역할이 굉장이 중요한 상황이라는 점을 주장하고 있다. 이런 노동자들이 없으면 독일 제조업은 경쟁력이 상실됐을 것이라는 점을 이야기하며 기업들도 생존을 위해서 이런 인력을 유지하는 것을 적잖이 중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 전문인력의 평균근속연수 역시 증가하였는데, 그 이유는 유연한 기업들이 점점 더 근로자의 암묵지(tacit knowledge)에 의존하기 때문이다.”(30페이지) 따라서 “직업상의 지속적인 현대화”, 즉 직업교육과 노동자의 계속교육이 강화돼야 하며 전직훈련에 소요되는 비용 등 역시 노동청이 보장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나 2004년경 독일의 노동시장 정책이 “교육 우선”에서 “일 우선”으로 전환되었다가(30페이지), 실업률은 일시적으로 줄어들었지만 숙련인력을 확보하는 데에서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었다는 점을 봤을 때 더욱 그러하다고 한다. (‘선취업 후진학’을 강조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대학구조조정 정책과 노동’개혁’에 대해서 고찰해볼 만한 대목이다.) 또한 보슈 교수는 중소기업 노동자들에게도 이러한 기술이전이 잘 이뤄져 혁신이 확산되고 우수한 인력과 계속교육이 강화돼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에게 주는 교훈

보슈 교수는 결론부에서 이른바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생길 법한 문제가 단지 기술변화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정책을 통해 해결해야 하는 문제임을 분명히 강조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불평등 심화나 일자리 손실 등이 기술변화에 의해 이뤄지는 불가피한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결정론적 주장에 대한 효과적 반박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숙련노동력 보유가 기업주들에게도 중요한 목표 중 하나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불안정 노동의 확산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도 불식시키는 점이 있다고 본다. 물론 한국과 독일에 양적인 차이는 어느 정도 있을 수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유연화’나 ‘노사협의’에 대한 보슈 교수의 강조는 주의해서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노동시간 조정이나, 파트타임-풀타임 사이의 전환에 있어서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많이 들어주려고 한다고 해도 많은 경우에는 기업주나 이사회의 입맛대로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독일은 노동조합의 경영참가가 비교적 잘 보장된 나라라는 이미지가 있지만 여전히 노동조합 측 대표의 역할은 ‘거수기’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는 비판 또한 많은 것이 실정이다. 따라서 노동시간을 유연화한다고 했을 때 이사회 측이 ‘비수기’ 때에는 노동자들에게 일감을 적게 주지만 ‘성수기’가 되면 노동자들은 초착취하는 식으로 나올 수 있다는 것이고, 이에 대해 노동자들이 불만을 가지고 있어도 저항하기가 쉽지 않을 수가 있다. 파트타임-풀타임 전환도 마찬가지다. 파트타임 노동자가 다시 풀타임으로 전환하려고 하는데 기업주가 ‘법적으로는 가능한 사안이 맞지만 지금 풀타임 일자리가 없어서 못해주겠다’는 식으로 나온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 사각지대에 대한 고려 없이 노동시간 유연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하기만 하는 것은 그의 의도와는 달리 노동자들에게 손실을 안겨주고 사용자측에만 유리한 결과를 낳는 쪽으로 연결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더불어 노동자들의 고용보장을 위해 (아무리 일시적이라고 한들) 노동시간 단축에 있어서 ‘임금보전 없이’라는 단서를 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ILO는 노동시간 단축 시에 임금보전이 이뤄져야 함을 이미 수십 년 전부터 권고했다. 또한 임금보전 없는 노동시간 단축은 경제위기 시기에 기업주들이 마땅히 책임져야 할 부분들을 노동자들이 떠맡게 되는 악영향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물론 노동자들이 새로운 직무환경에 적응하는 데에 있어서 필요한 교육 등의 비용을 정부가 지원해주는 등의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동의하는 편이다. 또한 이 외에도 ‘플랫폼 경제’가 나을 수 있는 파괴적 영향을 막기 위한 각종 제도개혁 등에 대해서도 공감하는 편이다. 다만 산업 구조조정에 대한 대책으로서 적극적 노동시장정책뿐 아니라 기존 일자리를 최대한 보존시킬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고민 역시 좀 더 많이 모색돼야 할 것이다.

 

*함께 읽으면 좋은 논문

「독일의 인더스트리 4.0과 노동 4.0」
문선우, 2016, 『국제노동브리프』, 14(9), 43-53.

「독일 중소기업의 제조업 혁신과 노동」
문선우, 2016, 『국제노동브리프』, 14(12), 60-71.

김종현 리뷰어  mrkim_sam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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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은 정말 ‘대안’이 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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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ofinale기본소득은 이름 그대로 전 국민에게 소득(임금)을 지급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진보정당, 특히 녹색당은 지난 4.13 총선 때 “전 국민에게 월 40만 원 기본소득 보장”을 제시하며 적극 홍보에 나섰다. 임노동 중심의 복지체계가 한계에 이르고 저임금·불안정고용이 일상화된 ‘고용 없는 저성장’의 사회경제적 조건에, 저출산·고령화라는 인구통계학적 요인, 인공지능의 기술적 진보로 ‘일자리의 급격한 감소’가 대중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옴에 따라 기본소득 담론도 활성화되고 있다. 핀란드에서는 중도우파 성향의 정부가 기본소득 도입을 위한 예비 연구를 진행할 것이라 발표했고, 스위스에서는 기본소득 도입이 국민투표 안건으로 제출된 뒤 부결되는 등 국제적으로 활발한 논의의 대상이 되었다. 국내에서도 서울시와 성남시는 각각 청년수당과 청년배당이라는 명칭으로 기본소득에 가까운 구상을 정책으로 실행하고 있다.

이와 같은 변화들을 살폈을 때 기본소득은 생각보다 훨씬 우리 삶에 가까이 온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진보진영 일각에서 제시한 ‘모두에게 조건 없는 기본소득을’, ‘19세기에는 노예제 폐지, 20세기에는 보통선거권 쟁취, 21세기에는 기본소득 도입’ 등의 슬로건은 모두 기본소득이 진보적인 정책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기본소득이 그 자체로 정당하고 진보적인 기획인지에 대해서는 더욱 꼼꼼히 살필 필요가 있을 것이다. 최승호 충북발전연구원 연구위원의 독일의 기본소득보장(Garantiertes Grundeinkommen) 모델 연구: 근로의욕 고취인가, 보장성 강화인가?(『한독사회과학논총』, 23(1), 2013)는 독일의 좌우파 정당이 근로의욕 고취(우파)와 보장성 강화(좌파)라는 관점으로 기본소득을 제안했음을 살피면서, 보장성 강화라는 목표를 놓고 보았을 때 기본소득 외의 실행 가능한 대안이 있음을 강조한다.

논문에 따르면 기본소득은 16세기 이래의 고전적인 사회 유토피아 이념에 속한다. 하지만 현대적인 의미의 기본소득은 영국의 사회배당social dividend과 국가보너스state bonus, 국민배당national dividend 등의 논의와, 1960~70년대 미국의 데모그란트demogrants와 부의 소득세negative income 논의, 조건 없는 기본소득 지급을 둘러싸고 1970년대 후반 네덜란드에서 벌어진 논쟁에서 비롯되었다. 그 뒤 프랑스의 철학자 앙드레 고르가 조건 없는 기본소득을 지지하고, 1986년 9월 벨기에 루뱅에서 기본소득유럽네트워크Basic Income Europe Network, BIEN가 결성되며 오늘날까지 논의가 지속되고 있다. 기본소득에 대한 현재적 논의에 있어서는 독일이 가장 활성화되어 있어, 연구자 역시 독일의 사례를 참조했다.

 

독일 좌우파의 
기본소득 모델 

기본소득 논자들은 고전적인 유토피아와 사회주의 운동, 아나키스트 운동, 생태주의 운동의 맥락에서 ‘노동 구속으로부터의 자율성’에 주목해 왔다. 누구나 일하지 않으면 먹고살 수 없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과 무관한 소득이 주어졌을 때 부당한 조건 속에서 차별을 겪으며 살지 않아도 될 자유가 보장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기본소득은 기존 복지국가의 관료주의와 사각지대라는 문제를 해소할 대안으로 제시되면서 좌파만의 논의가 아니라 좌우파 모두가 저마다의 관점에서 해석하기에 이른다.

기본소득을 가리키는 명칭에는 ‘사회적 기본보장’, ‘부의 소득세’, ‘생계수당’, ‘최소보장’, ‘사회배당’, ‘시민소득’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들 모두 ‘노동에 종속되지 않는 기본소득권’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논문에서는 기본소득 보장의 기초 모델로 부의 소득세와 사회배당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어 참조할 것을 권한다. 1980년대 초부터 시작된 독일의 기본소득 논의에서는 크게 두 가지 주장이 경합을 벌이고 있다. 첫 번째는 우파의 정책으로 노동자의 근로의욕을 고취하는 것이 목적이고, 두 번째는 좌파의 제안으로 인민의 사회보장성을 강화하는 데 높은 비중을 두는 것이다.

기본소득 논의는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출처: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우파의 정책 중 자민당의 시민급여 모델은 부의 소득세를 구체화시킨 것이다. 대표적인 우파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강조한 부의 소득세 모델은 “최저생계비 이하의 노동소득에 대해 고소득에 대한 양(+)의 소득세를 원천으로 하여 그 차액만큼 지원금을 주자는 주장(102쪽 각주 5번)”이다. 자민당은 모든 시민에게 시민급여를 지급하자고 제안하면서도, 노동을 하는 사람에게만 급여를 지급하고 사회보험료를 시민급여에 포함시키려는 등 공급자 우선적인 정책이라는 특징을 보인다. 한편 기독민주당 소속의 튜링겐 주지사 디터 알트하우스는 연대적 시민소득 모델을 제시한다. 연대적 시민소득 모델 역시 부의 소득세를 골자로 하되 세제를 더욱 통합해 기존의 소득세와 노동자의 사회보험료를 40%의 연대적 소득세로 대체하고자 한다. 연대적 시민소득 모델은 독일에서 운영되는 실업급여 프로그램에서 추가소득에 따른 감액률이 80~90%인 데 반해 40%의 감액률을 보일 것이기 때문에, 노동자의 근로의욕 고취에 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주장을 담고 있다.

하지만 우파의 기본소득 정책들은 모두 기본소득의 도입을 통해 사회보장비용을 줄여 국가와 기업의 부담을 줄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 그 때문에 법정최저임금의 유지나 단체교섭권에 대해서는 함구하거나 그런 제도들이 불필요하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반면 좌파당의 기본소득연방연구회는 행정관리비용의 절감을 포함하되, 다양한 세원을 확보해 직접 분배원칙과 사회보험의 소득재분배원칙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또한 독일 녹색당은 기본보장을 제안하면서 18세 이상의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매달 800유로의 기본급여를 제공하고자 한다. 녹색당의 기본보장 모델은 사회배당 방식에 기초하며, 기존의 보험료 재정적인 보장 시스템에서 조세재정적인 보장 시스템으로 전환할 것을 요구한다. 좌파당과 녹색당 모두 법정최저임금과 불안정고용 문제를 제기하고 있어 단지 기본소득만으로는 보장성이 강화될 수 없다는 걸 드러낸다.

 

기본소득 보장이냐 
필요 지향의 기초보장이냐 

연구자는 기본소득 보장제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살펴야 할 지점이 있음을 강조한다. 첫 번째는 재원 확보와 사회보장제도와의 조정이다. 과연 임금노동에 의한 사회보험급여를 기본소득에 통합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답을 제시해야 한다. 두 번째로 기본소득 도입으로 발생할 사회적 제 관계의 변화와 재조직화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기본소득 자체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뒤바꾸기보다는 체제 안에서의 변화라는 성격을 갖기에, 사회적 동의를 얻을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세 번째로 조건 없는 기본소득 지급으로 근로의욕이 떨어질 것이라는 자유주의적 비판이다. 이는 근거가 불충분하다는 점에서 심각하게 고려할 요소가 아니다. 네 번째는 기본소득 보장 모델이 각 나라마다 상이한 발전 경로에 따를 것이라는 점에서 각국의 독자적인 모델을 만들어 내야 할 필요성에 직면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연구자는 기본소득 모델의 취지가 소득재분배와 사회보장성 강화라는 점에 주목해, 독일 사회민주당의 전통적인 사회보장모델인 ‘필요 지향의 기초보장’을 대안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한다. 필요 지향의 기초보장은 일정 소득선 이하의 사람들에게 근로소득의 유무와 무관하게 소득을 지급, 보전하는 제도다. 이때 노동시간 감축, 고용률 제고, 임금인상 등의 개혁이 동반해야 기초보장의 보장성이 유지될 수 있다. 다만 필요 지향의 기초보장은 “기존의 사회보장제도를 유지, 보완하자는 것이기 때문에 현 사회보장제도에 따르는 막대한 행정관리비용에 대해서는 개선의 의지가 없는 단점(116쪽)”이 있다. 연구자는 소득재분배와 사회보장성 강화라는 목표를 도달하기 위해 기본소득과 필요 지향의 기초보장 중 어느 것을 선택할지의 문제는 사회적 합의에 달려 있음을 강조하는 것으로 논문을 마무리한다.

기본소득은 어떤 조건도 없이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지급한다는 점에서 임노동 중심의 복지국가 모델을 벗어날 대안으로 소개되고 있다. 하지만 기본소득 도입은 국가장치의 재편성은 물론 사회의 재편성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주장은 단순하지만 적용에는 많은 난항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 점에서 기본소득은 정책의 문제이면서 철학의 문제이기도 하다. 특히 기본소득 논자가 강조하는 것보다 훨씬 국가라는 문제가 전면으로 부각되는 이슈라는 점에서 기본소득 모델을 더욱 면밀하게 탐색할 필요가 있다.
김주원 리뷰어  leopord8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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