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위험’커뮤니케이션을 주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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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공에서 촬영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현장. |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발생 후 원자력 발전소의 안전성에 대한 관심은 여느 때보다 높아졌지만 이 문제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강윤재는 「원자력을 둘러싼 과학기술 시티즌십과 위험커뮤니케이션의 관계에 대한 일고찰」 (『과학기술학연구』 , 15(1), 2015)에서 원자력 발전에 관한 언론의 위험커뮤니케이션 지형이 어떤지를 살펴보고, 시민들의 설문조사 분석을 통해 원자력에 대한 시민 인식을 정리한다.
원자력 위험 커뮤니케이션의 지형:
과학자와 시민을 대체하는 정부기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언론에서는 연일 사건의 추이, 한국에 미칠 영향, 원전의 안전성 여부 등에 대한 기사를 쏟아냈다. 논문의 저자는 언론매체를 “다양한 사회적 행위자들이 자신의 입장과 주장을 전파하고 확산하여 자신에게 유리한 의사결정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공간이자 통로로서, 사회적 각축장(social arena) 또는 그 일부”라고 하며 언론 분석을 통해 원전을 둘러싼 여러 이해관계 행위자들이 만들어내는 위험커뮤니케이션의 지형을 확인할 수 있다 하였다. (47쪽) 이를 위해 그는 우선 언론에 등장하는 ‘공동출현 핵심어’의 빈도수를 측정하여 분석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언론 텍스트가 단순히 정보의 나열이 아닌, 관련 행위자들이 독자들을 설득하기 위한 활동 공간으로 이해해 본다면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핵심어의 출현 빈도수가 높아지고 낮아지는 추이를 통해 해당 시기 위험 커뮤니케이션의 지형을 이해할 수 있다. 아래 그래프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난 2011년 3월부터 5월까지 ‘방사능’을 포함한 기사수는 급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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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저자는 방사능과 연관성이 높은 것으로 선별한 200개의 핵심어들의 빈도수를 분석하여 각 단어의 빈도수를 후쿠시마 사건 이후 1)지속적 상승, 2)상승 후 하강, 3)하강 후 상승, 3)지속적 하강 이라는 4가지로 분류하였다. 우선, 원전 사고 이후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핵심어들은 ‘논쟁’, ‘책임성’, ‘소비자’, ‘원자력안전위원회’, ‘그린피스’ 등이 있었는데, 이는 “정부와 일본의 책임성에 대한 요구가 계속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었다. (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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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분류로, 상승한 후 하강한 단어들로는 ‘우려’, ‘피해’, ‘방사능 공포’, ‘음식’, ‘확산’, ‘편서풍’ 등이, 행위자 측면에서 ‘한국원자력안전위원회(KINS)’, ‘기상청’이 있었다. 기상청을 포함한 관련 단어들은 원전 사고 방사능이 한반도에 미칠 영향이 어떠할지에 대한 논란이 심해진 와중에 출현 빈도수가 높아졌고, KINS 역시 원전과 방사능 피해의 안전성에 대한 논란을 잠재우기 위한 언론 홍보를 계속했다. 이후 기상청의 노출 빈도수는 정부의 ‘안심 전략’으로 시민들의 우려가 잠잠해지자 감소세에 들어선다.
세 번째인 ‘하강 후 상승’ 유형의 핵심어들은 원전 사고 당시 이슈의 중심에서 밀렸다 다시 회복세를 보인 단어들로 ‘북한’, ‘방사성(능)폐기물’, ‘환경운동’, ‘NGO’ , ‘과학자’ 등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원전사고와 긴밀한 연관이 있을 것 같은 ‘환경운동(반핵운동)’, ‘과학자’와 같은 단어가 이슈의 중심에서 밀렸다는 건 선뜻 이해하기 쉽지 않다. 저자는 이에 대해 언론이 시민 단체나 과학자보다, 정부의 전문기관인 ‘KINS’나 ‘기상청’의 발표로 문제를 논의하며 정부기관이 과학자의 전문성까지 대체했다 여겼다. 즉, 언론이 더 많은 발언권을 환경단체나 과학자들보다는 정부기관에 주었다는 것인데, 이는 당시 위험커뮤니케이션이 정부에게 유리하게 진행되는 구조를 갖고 있었음을, 사실상 정부가 언론의 논조를 주도했다고도 볼 수 있었다.
시민들의 인식은?:
모순적 태도 또는 합리적 선택
대안이 부재한 상태로 정부로 기울어진 언론의 지형은 친 원자력 정책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럼에도 시민들이 그 정보를 어떻게 수용하고 유통시키는가에 따라 그 영향력은 달라질 수 있었다. 저자는 2014년 실시된 <과학기술에 대한 시민의식 조사> 결과를 분석하여 원자력을 둘러싼 과학기술 시티즌십의 현주소를 파악하고, 원자력 거버넌스의 작동방식을 이해하고자 했다.
우선 원자력발전과 핵폐기물의 안전성 여부에 대한 질문에서는 원전이 안전하지 않다고 대답한 시민들이 51.4%였지만, 그 필요성에 동감하는 시민들은 80.6%에 이르렀다. 그들은 필요성은 인정하여 없앨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지금보다 더 늘릴 필요는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시민들은 원자력발전의 문제를 인식하지만 소극적인 차원에서 학습하고 소통할 뿐, 적극적인 사회적 참여를 통한 문제해결에는 나서지 않는 것으로 나왔다. 한편, 그들은 전문가에는 높은 신뢰도를 보인 반면 정부정책에 대해서는 신뢰도가 낮았지만, 정부보다는 시민단체의 역할에 대해 더 낮은 기대를 갖고 있었다.
한편, 정부의 정책을 불신하면서도 정책 결정 과정에서 시민단체보다 정부와 전문가의 역할을 더 중요하게 보고, 정책결정 과정에서 시민의 참여가 필요하다 하면서 직접 참여할 의향은 보이지 않는 이중적 태도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저자는 이런 모순된 시민의식을 두고 “선택의 여지가 제한된 현실 속에서 이루어진 합리적 선택”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62쪽) 그들이 원자력을 전문성의 영역으로 보고 있고, 위험하지만 존속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 때문에 신뢰도와 상관없이 정부의 역할을 중요하게 보고 있는 셈이다. 이는 또한 시민들이 “원자력 문제의 해결주체로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다는 징후”이기도 했다. (62쪽)
원자력이 고도의 과학기술적 ’전문성’을 요하는 분야라는 사회적 인식이 만연하고 이런 인식은 위험커뮤니케이션의 지형 역시 전문성에 의해 좌우될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시민들의 자발성과 주체성으로 대항전문가들과 연대하며 전문가들과 토론-경합하고, 대안지식이 생산되고 유통되는 ‘아래로부터의 과학기술 시티즌십’이 정부 중심이 대안부재 담론 구조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거라 제안한다.
문지호 리뷰어 lunatea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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