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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위험’커뮤니케이션을 주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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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공에서 촬영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현장.

logofinale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발생 후 원자력 발전소의 안전성에 대한 관심은 여느 때보다 높아졌지만 이 문제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강윤재「원자력을 둘러싼 과학기술 시티즌십과 위험커뮤니케이션의 관계에 대한 일고찰」 (『과학기술학연구』 , 15(1), 2015)에서 원자력 발전에 관한 언론의 위험커뮤니케이션 지형이 어떤지를 살펴보고, 시민들의 설문조사 분석을 통해 원자력에 대한 시민 인식을 정리한다.

 

원자력 위험 커뮤니케이션의 지형:
과학자와 시민을 대체하는 정부기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언론에서는 연일 사건의 추이, 한국에 미칠 영향, 원전의 안전성 여부 등에 대한 기사를 쏟아냈다. 논문의 저자는 언론매체를 “다양한 사회적 행위자들이 자신의 입장과 주장을 전파하고 확산하여 자신에게 유리한 의사결정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공간이자 통로로서, 사회적 각축장(social arena) 또는 그 일부”라고 하며 언론 분석을 통해 원전을 둘러싼 여러 이해관계 행위자들이 만들어내는 위험커뮤니케이션의 지형을 확인할 수 있다 하였다. (47쪽) 이를 위해 그는 우선 언론에 등장하는 ‘공동출현 핵심어’의 빈도수를 측정하여 분석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언론 텍스트가 단순히 정보의 나열이 아닌, 관련 행위자들이 독자들을 설득하기 위한  활동 공간으로 이해해 본다면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핵심어의 출현 빈도수가 높아지고 낮아지는 추이를 통해 해당 시기 위험 커뮤니케이션의 지형을 이해할 수 있다. 아래 그래프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난 2011년 3월부터 5월까지 ‘방사능’을 포함한 기사수는 급등했다.

 

이제 저자는 방사능과 연관성이 높은 것으로 선별한 200개의 핵심어들의 빈도수를 분석하여 각 단어의 빈도수를 후쿠시마 사건 이후 1)지속적 상승, 2)상승 후 하강, 3)하강 후 상승, 3)지속적 하강 이라는 4가지로 분류하였다. 우선, 원전 사고 이후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핵심어들은 ‘논쟁’, ‘책임성’, ‘소비자’, ‘원자력안전위원회’, ‘그린피스’ 등이 있었는데, 이는 “정부와 일본의 책임성에 대한 요구가 계속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었다. (52쪽)

 

두 번째 분류로, 상승한 후 하강한 단어들로는 ‘우려’, ‘피해’, ‘방사능 공포’, ‘음식’, ‘확산’, ‘편서풍’ 등이, 행위자 측면에서 ‘한국원자력안전위원회(KINS)’, ‘기상청’이 있었다. 기상청을 포함한 관련 단어들은 원전 사고 방사능이 한반도에 미칠 영향이 어떠할지에 대한 논란이 심해진 와중에 출현 빈도수가 높아졌고, KINS 역시 원전과 방사능 피해의 안전성에 대한 논란을 잠재우기 위한 언론 홍보를 계속했다. 이후 기상청의 노출 빈도수는 정부의 ‘안심 전략’으로 시민들의 우려가 잠잠해지자 감소세에 들어선다.

세 번째인 ‘하강 후 상승’ 유형의 핵심어들은 원전 사고 당시 이슈의 중심에서 밀렸다 다시 회복세를 보인 단어들로 ‘북한’, ‘방사성(능)폐기물’, ‘환경운동’, ‘NGO’ , ‘과학자’ 등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원전사고와 긴밀한 연관이 있을 것 같은 ‘환경운동(반핵운동)’, ‘과학자’와 같은 단어가 이슈의 중심에서 밀렸다는 건 선뜻 이해하기 쉽지 않다. 저자는 이에 대해 언론이 시민 단체나 과학자보다, 정부의 전문기관인 ‘KINS’나 ‘기상청’의 발표로 문제를 논의하며 정부기관이 과학자의 전문성까지 대체했다 여겼다. 즉, 언론이 더 많은 발언권을 환경단체나 과학자들보다는 정부기관에 주었다는 것인데, 이는 당시 위험커뮤니케이션이 정부에게 유리하게 진행되는 구조를 갖고 있었음을, 사실상 정부가 언론의 논조를 주도했다고도 볼 수 있었다.

 

시민들의 인식은?:
모순적 태도 또는 합리적 선택

대안이 부재한 상태로 정부로 기울어진 언론의 지형은 친 원자력 정책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럼에도 시민들이 그 정보를 어떻게 수용하고 유통시키는가에 따라 그 영향력은 달라질 수 있었다. 저자는 2014년 실시된 <과학기술에 대한 시민의식 조사> 결과를 분석하여 원자력을 둘러싼 과학기술 시티즌십의 현주소를 파악하고, 원자력 거버넌스의 작동방식을 이해하고자 했다.

우선 원자력발전과 핵폐기물의 안전성 여부에 대한 질문에서는 원전이 안전하지 않다고 대답한 시민들이 51.4%였지만, 그 필요성에 동감하는 시민들은 80.6%에 이르렀다. 그들은 필요성은 인정하여 없앨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지금보다 더 늘릴 필요는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시민들은 원자력발전의 문제를 인식하지만 소극적인 차원에서 학습하고 소통할 뿐, 적극적인 사회적 참여를 통한 문제해결에는 나서지 않는 것으로 나왔다. 한편, 그들은 전문가에는 높은 신뢰도를 보인 반면 정부정책에 대해서는 신뢰도가 낮았지만, 정부보다는 시민단체의 역할에 대해 더 낮은 기대를 갖고 있었다.

한편, 정부의 정책을 불신하면서도 정책 결정 과정에서 시민단체보다 정부와 전문가의 역할을 더 중요하게 보고, 정책결정 과정에서 시민의 참여가 필요하다 하면서 직접 참여할 의향은 보이지 않는 이중적 태도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저자는 이런 모순된 시민의식을 두고 “선택의 여지가 제한된 현실 속에서 이루어진 합리적 선택”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62쪽) 그들이 원자력을 전문성의 영역으로 보고 있고, 위험하지만 존속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 때문에 신뢰도와 상관없이 정부의 역할을 중요하게 보고 있는 셈이다. 이는 또한 시민들이 “원자력 문제의 해결주체로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다는 징후”이기도 했다. (62쪽)

원자력이 고도의 과학기술적 ’전문성’을 요하는 분야라는 사회적 인식이 만연하고 이런 인식은 위험커뮤니케이션의 지형 역시 전문성에 의해 좌우될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시민들의 자발성과 주체성으로 대항전문가들과 연대하며 전문가들과 토론-경합하고, 대안지식이 생산되고 유통되는 ‘아래로부터의 과학기술 시티즌십’이 정부 중심이 대안부재 담론 구조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거라 제안한다.

문지호 리뷰어  lunatea3@gmail.com

<저작권자 © 리뷰 아카이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과학 시민의 등장?

Teenagers conducting an experiment in a chemistry laboratory

logofinale과학기술만큼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으면서도 시민과 동떨어진 분야도 없을 것이다. 이런 현상은 과거 과학기술을 전문가들의 영역으로 분리하여 일반 시민들은 과학을 잘 알지 못하는 무지한 대상으로 치부하고 과학을 잘 아는 전문가들이 그들을 계몽해야 한다는 역사적 인식의 연장선 상에 있다. 그러나 시민사회가 성장함에 따라 사회적으로 계속 불거지는 여러 문제들, 가령 유전자 조작 식품의 안전성, 원자력 발전소 등과 같은 과학기술의 문제가 더 이상 전문가들에게만 국한시켜 논의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인식 또한 증가하고 있다.

이영희「과학기술 시티즌십의 두 유형과 전문성의 정치: 과학기술 대중화 정책과 `차일드세이브`의 활동을 중심으로」 (『한국사회과학연구회』 , 10, 2014)에서 한국에서 과학기술과 시민의 관계가 어떤 역사를 거쳐왔는지를 정리하고, 오늘날 어떤 모습을 하고 있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차일드세이브’ 라는 사례를 통해 분석한다.

 

시티즌십과 전문성의 정치

최근 들어 과학기술에 대한 대중의 참여가 중요하다는 연구 주장들이 계속 나오고 있지지만 여전히 과학기술과 대중의 관계는 대중이 과학기술 지식을 결여하고 있다는 ‘결핍모형’을 전제로 하고 있다. 더구나 그 관계가 형성되는 과정 역시 실제 “지식권력이나 전문성 문제가 어떻게 개입되고 있는지” 등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생략하고 있다. 논문의 저자는 과학기술과 시민의 관계를 보다 동태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과학기술 시티즌십’ 그리고 ‘전문성의 정치’ 라는 두 가지 개념틀을 가져왔다.

우선 시티즌십은 “시민의 지위와 시민적 실천에 관련된 일련의 가치와 규범의 관계를 표현하는 개념”으로 크게 “지배 세력이 위로부터 시민들에게 부과하는 수동적(passive)” 형태와 “아래로부터 종속적 지위에 처해 있는 시민들에 의해 요구되어 사회적 쟁투를 통해 만들어지는 능동적(active) 형태” 2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77쪽) 다시 말해, “국가가 중심이 되어 위로부터 기회하고 실행해나가는 형태”, 그리고 “사회운동이 중심이 되어 아래로부터 형성해 나가는” 유형이다. (178쪽). 과거에는 이런 시티즌십 개념이 자유주의적 개념, 즉 권리만 다소 강조되는 경향을 보였지만 최근에는 여기에 시민의 의무와 책무, 덕성 등을 포함하여 균형을 맞추고 있는 추세이다. 이에 기반한 과학기술 시티즌십은 “과학기술의 사회적 형성과정에 보다 시민적이고 민주적이며 생태친화적인 가치들을 부여할 수 있도록 과학기술 발전에 대한 민주적 거버넌스를 잘 구축하고 그 속에서 시민들이 정당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179쪽) 다시 말해, 과학기술 시티즌십은 과학기술과 시민이 어떻게 관계맺음을 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방식이다.

두 번째로 저자가 설명하는 “전문성의 정치(politics of expertise)란 과학화, 기술화, 전문화를 특징으로 하는 현대 사회에서 과연 어떤 집단의 전문성(지식)을 사회적으로 가장 가치 있으며 믿을 만한 것으로 여겨야 하는가를 둘러싸고 사람들 사이에서 형성되는 갈등적 경합 과정”으로 정의된다. (181쪽) 이 역시 두 가지 형태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첫 번째가 전문가지식(expert knowledge) 내부에 한정하여 이루어지는 정치이고, 두 번째는 시민들이 일상적 삶의 경험을 통해 체득한 시민지식(lay knowledge)이 맞서는 형태로 전개되는 정치이다. 전자의 예시로는 새만금 개발사업의 환경영향에 대한 주류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 수 있고, 후자의 예시로는 삼성반도체공장 백혈병 산재인정을 요구하는 소송에서 일반 노동자들이 현장 경험에 기반하여 동원한 지식 투쟁의 사례를 생각해볼 수 있다.

 

위로부터의 과학기술 시티즌십과 전문성의 정치:
정부 주도, 계몽과 구분짓기

‘과학기술 시티즌십’과 ‘전문성의 정치’ 개념을 정리했다면 이제 과학기술과 시민사회가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모습을 갖게 되었는지 살펴볼 차례이다. 1960년대부터 추진해온 과학기술 대중화 정책은 대표적인 위로부터의 과학기술 시티즌십으로 197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973년 박정희 군사정부는 위로부터 조직된 일종의 ’전 국민의 과학화 운동’을 추진했고, 과학기술 대중화를 위해 과학기술풍토조성사업과 국립과학관 건립, 한국과학기술진흥재단의 설립 등의 정책을 시행하였다.

1970-80년대 정책의 특징이 ‘국민 대중’을 계몽시켜야 하는 대상으로 상정한 데 반해, 1980년대 후반부터는 “과학기술(정책)의 국민적 수용성(public acceptance)을 강화시키기 위한 사업들에 강조점”을 보였다. (188쪽) 운동 대상의 주체와 범위가 확대된 ‘과학기술 국민 이해 증진사업’, ‘과학기술문화 확산사업’ 등이 시행되었고, 더불어 환경이나 원자력 문제와 같이 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슈들은 정부가 직접 나서거나 특정 과학기술에 대한 대중화를 전담하는 기관을 설립하여 대국민 홍보사업을 추진하였다. 원자력이 안전하고 원자력은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메세지를 홍보하는 원자력문화재단이 그 대표적인 예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까지 이어진 과학기술 대중화 정책을 과학기술 시티즌십의 시각에서 평가, 즉 과학기술에 대한 시민의 역할이 무엇이었는가를 중점적으로 살펴보면 1980년대 중반까지 시행된 정책에서 시민들은 “근대화의 역군이자 산업전사”로 호명되었고, 국가 개발의 미명 하에 과학기술을 부지런히 익혀 국가발전에 이바지할 것을 요청 받았다. 반면 1980년대 후반 이후 민주화 사회가 시작한 이래 시민들은 “과학기술을 이해하고 지지할 줄 아는 ‘과학화된’ 국민’이 될 것을 요구 받았다. (187-188쪽) 그러나 두 시기 모두 시민들이 전문가들 또는 정부로부터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피동체로 호명되는 점에서 과학과 시민의 관계는 여전히 “위로부터 동원되는 하향적 과학기술 시티즌십”을 전제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전문성의 정치 역시 과학에 대한 전문성은 과학자들과 같은 특정 전문가 집단만이 공유할 수 있는 것으로만 존재했고, 전문가들이 내린 결정을 시민들은 무조건적으로 따라야 했다.

“… 오로지 과학기술 전문가들과 기술 관료들만이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전제하고 비전문가로 인식되는 일반 시민들이 그에 대해 도전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것, 이처럼 전문성 및 전문가를 문제화하는 것이 금기시되고 오로지 전문성에 대한 숭배만이 장려된다는 사실 그 자체가 바로 전문성 정치의 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190쪽)

요컨대 ‘위로부터의 과학기술 시티즌십’과 ‘전문성에 대한 경합이 사실상 부재한 정치 구조’에서 시민들의 능동적 참여는 찾아보기 힘들고, 과학과 전문성의 권력은 더 공고화 될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본 논문이 분석하는 ‘차일드세이브’는 기존의 구조에 저항하여 새로운 형태의 능동적인 시민과학 활동의 대표적 사례라 볼 수 있다.

 

아래로부터의 과학기술 시티즌십과 전문성의 정치:
전문가와 경합하는 “차일드 세이브”

2011년 동일본 후쿠시마에서 일어난 원전 사고는 시민들로 하여금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경각심을 다시금 일깨우는 사건이었다. 특히 일본과 근접한 지리적 요건을 갖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원전 사고로 인한 피해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차일드세이브는 방사능 위험 문제를 심각히 여긴 주부들이 조직한 시민과학 활동으로 여기에 소속된 시민들은 “스스로를 시민과학 활동의 주체로 내세우며 정부와 공공기관의 방사능 전문가들과 방사능 위험 문제를 둘러싸고 격돌”했다. (191쪽)

아래로부터 상향적으로 과학기술 시티즌십을 형성한 대표적인 사례인 차일드세이브 단체의 초기 주요 멤버들은 좋은 식재료에 관심이 많았던 한 요리 커뮤니티의 주부 멤버들이었다. 후쿠시마 원전 사건 이후 일본산 먹거리 등을 포함하여 원전 피해를 염려한 일부 멤버들은 그들이 키우는 아이들을 방사능 위험으로부터 지켜야 한다는 의무 때문에 적극적인 자세로 문제에 임했다. 그러나 정부와 원전 전문가들은 ‘안전하다’는 답변만 반복할 뿐이었고, 회원들은 결국 직접 방사능 위험 문제를 학습하고 문제를 진단하기로 결정한다.

 

 

이들은 온라인 자료 공유와 오프라인 강연을 통해 관련 지식을 습득한 이후 방사능 수치를 측정하는 기구를 구입하여 스스로 방사능 오염 측정에 나섰다. 노원구에서 한 회원이 측정한 아스팔트 길에서 기준치 이상의 방사능 수치가 나와 사회적으로 논란이 됐던 ‘방사능 아스팔트’ 사건은 차일드세이브 회원이 주도한 ‘시민과학(citizen science)’ 활동 중 하나이다. 처음에 위험성을 부정했던 관련 구청과 서울시는 이 민원을 받아들여 오염된 아스팔트를 제거했다. 또한 차일드세이브 회원들은 2012년 분유에 있는 방사능 수치를 측정하여 일동후디스 분유에서 미량의 세슘이 검출된 결과를 외부에 공개하는 등 특정 먹거리에 대한 방사능 위험 수치를 지속적으로 조사하였다. 더 나아가 이들은 정책 결정에까지 영향을 미치는데, 다른 환경 시민단체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의견을 개진하고, 국회 정책토론회에서 시민 패널로 참여하기도 했다. 방사능 안전급식 조례안이 통과되고, 후쿠시마 주변의 8개 현에 대한 수산물 수입 금지 조치 등은 모두 이런 활동의 결과물로 볼 수 있다.

 


차일드세이브 회원들이 학교 급식을 방사능 위험으로부터 지키고자 하는 노력으로 발간한 개정 제안서
차일드세이브 활동은 앞서 위로부터의 과학기술 시티즌십에서 나타난 정부 주도의 과학 대중화 활동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시민들 스스로가 지식을 습득하고 자체적으로 문제를 평가, 시민운동을 통해 정책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과정들은 과거 정부가 정책을 조직하여 시민들을 과학 시민으로 호명하고 가르쳤던 모습과는 상반된다.

“이처럼 차일드 세이브가 자녀들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 스스로가 방사능 위험이라는 문제 상황을 공유하고 학습하고 측정하는 시민 과학 활동을 수행하게 된 것은, 방사능의 측정과 위험도 해석이라는 주류 전문가들의 과학활동에 대한 신뢰성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 시민들 스스로 수행한 시민적 책무라고 할 수 있으며, 동시에 차일드세이브가 급식조례 개정 요구 운동이나 탈핵을 주장하는 시민운동에까지 참여하게 된 것은 바람직한 과학 시민이 되는 데 필요한 시민적 권리를 적극적으로 나서서 행사하는 행위의 하나로 볼 수 있다.” (196쪽)

차일드세이브 회원들의 활동은 기존에 전문가와 비전문가를 나누어 과학기술에 대한 문제를 전문가들의 영역에서만 논의하고 그 결과를 비전문가가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야만 했던 전문성의 정치와 다르게 시민들이 전문가들의 지식에 끊임없이 도전하고 갈등을 빚는 과정이었다. 이들은 전문가들의 판단을 일방적으로 수용하기 보다 의심하거나 스스로 확인하려 했고, 전문가들이 공표한 전문지식을 탈신비화하고 문제시했다. 전문성을 둘러싸고 전문가들과 시민들이 경합, 그 과정에서 시민들은 또한 대항 전문가들과 연대하여 주류 전문가 집단에 맞섰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하여 형성한 아래로부터의 과학기술 시티즌십과 이 과정에서 시민들이 전문가들과 경합하는 차일드세이브 사례는 “바야흐로 동원되고 계몽되는 과학기술 시민이 아니라 도전적이고 급진화된 과학기술 시민이 등장”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196쪽)

 

문지호 리뷰어  lunatea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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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소송, 폐암의 원인규명 가능할까?

Man smoking a cigarette against a black backgr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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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사람들은 담배와 질병의 상관 관계를 공공연한 사실로 인지하고 있지만 법정이 이 관계를 인정해 손해배상을 판결한 사례는 여전히 전무하다. 누군가 걸린 폐암의 원인이 흡연으로 인한 결과임을 어떻게 입증할 것이며 그 과정에서 어떤 과학기술적, 법적 도구들이 사용되고 있는가? 박진영, 이두갑은 논문 한국 담배소송에서의 위험과 책임: 역학과 후기 근대적 인과 (『과학기술학연구』 , 15(2), 2015)에서 인과 관계를 밝히는 중요한 전문지식 중 하나로 역할하는 ‘역학’이 미국에서의 담배 소송에서 어떻게 자리잡는지, 그에 기반하여 한국에서 발생한 담배소송이 어떻게 진행 되었는지를 분석하여 법과 과학기술의 상호작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한다.

“담배라는 제조물이 어떻게 오랜 기간 동안 법적 책임의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후기 근대적 위험 사회에서 법과 과학기술의 상호작용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함의를 줄 수 있다.” (231쪽)

1999년 제기된 한국 담배소송에 대한 평가는 2014년 대법원이 손해배상 청구를 인정하지 않는 원고 측의 패소 사실에만 주목하여 그 의의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측면이 있었다.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에 따르면 오늘날의 사회는 거대 기술 시스템들과 신기술이 지닌 잠재적 위험의 규모와 정도를 예측하기 어려운 불확실성을 안고 있다. 그의 용어를 빌리자면 20세기 후반 이후의 사회는 후기 근대적(late modern) 위험을 관리하고 대응해야 하는 ‘위험사회(risk society)’인 것이다. 논문의 필자에 따르면 담배 소송은 이처럼 여러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후기 근대적 위험 사회 내 과학기술과 법의 영역에서 ‘인과관계’가 재정의되는 맥락을 통해 이해해야 한다. 미국 사례와 한국 담배소송의 여러 쟁점들을 분석한 이 논문은 한국에서의 소송이 “후기 근대적 위험에 대응하고자 나타났던 여러 과학기술적, 법적 도구들을 전략적으로 사용해서 흡연과 일부 폐암의 인과관계를 확증한 주요한 법적 판단을 이끌어내었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 주장한다. (253쪽)

역학적 증거에 대한 법적 인정:
미국의 담배 소송 사례 

20세기 초반 이후 법은 원인이 되는 행위자와 이 행위자의 어떤 구체적인 인과관계의 연쇄가 피해를 낳았는지 구체적으로 규명할 것을 요구해왔다. 이는 마치 특정 질병이 발병했을 때 어떤 바이러스가 어떤 구체적인 경로를 통해 환자에게 도달했는지를 추적하고 밝히는 질병의 역학 관계를 밝히는 과정과 유사하다. 그러나 암 또는 공해 문제과 같이 원인이 하나로 환원되지 않은 문제에 대한 인과관계를 한 개인이 입증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는 다수의 피해자들이 확률적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방식으로 집단 소송이 등장하기도 한다. 1980년대 이르면 역학은 과학기술과 법 영역에서 환경 문제, 대량 제조물과 같은 후기 근대적 위험과 관련한 소송에서 새로운 인과관계를 확립시킬 수 있는 전문적 지식으로 자리잡는다.

“역학은 1990년에 이르면 담배소송에서도 환경, 공해, 다른 제조물 소송에서와 같이 과학기술적 증거와 이를 통한 법적 책임을 묻는 인과관계의 확립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전문적 지식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238쪽)

역학의 역사에서 흡연이 폐암의 중요한 원인임을 입증한 연구는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역학 연구에 근거하여 “1964년 미국정부는 흡연과 폐암 간의 인과관계를 인정하는 기념비적인 보건총감 흡연과 건강 보고서를 출판”하였고, 1990년에는 최초로 흡연이 원고의 소세포암 발병의 주된 원인임을 인정, 담배회사에 40만 달러의 배상을 판결하였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은 미국 법원과 배심원이 담배 소송에서 역학적 증거를 과학기술적 인과관계의 법적 책임 규명에 사용할 수 있다는 새로운 합의가 형성되는 과정이었다. 미국에서 확립된 법정 모델은 이후 나올 한국의 담배 소송의 전개 과정의 중요한 배경이 된다.

 

폐암과 흡연의 상관관계 연구 그래프 (출처: 위키피디아)

 

한국 담배 소송의 출발: 흡연과 폐암 간의 역학적 인과관계 인정
개인의 개별적 인과관계 입증을 위한 기반 형성

1999년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담배소송에 관한 논문으로 학위를 받고 귀국한 배금자 변호사는 한국금연운동협의회와 함께 폐암과 후두암에 걸린 흡연 피해자 6명과 그 가족을 포함한 약 30명을 원고로 선정, 한국담배인삼공사(지금의 KT&G)를 대상으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였다. 필자는 이 소송이 1심에서 3심까지 이어지는 각 판결 과정에서 “어떻게 역학과 질병의 정의, 그리고 법적 책임의 규명에 대한 후기 근대적 이해들이 전략적으로 사용되며 새로운 법적 인과관계에 대한 틀이 마련되었는지를 보”이고, “후기 근대적 위험에 대한 과학기술적 원인 규명과 법적 책임에 대한 새로운 해석틀이 등장했음을 보”이려 한다. (232, 239쪽)

한국 담배소송에서 주목해야 할 주요 쟁점은 크게 세 가지로 첫 번째는 “담배의 결함 또는 흡연과 폐암 발병 사이의 ‘역학적 인과관계’가 인정되는지의 여부”, 두 번째 쟁점은 “이 사건의 흡연자들의 폐암 발병이 흡연으로 인한 것임을 ‘개별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 마지막 세 번째 쟁점은 “피고인 한국담배인삼공사와 대한민국이 제조·판매한 담배와 원고 측 흡연피해자의 폐암 발병 간의 인과관계가 인정되는지 여부” 이다. (239쪽)

우선, 첫 번째 쟁점인 흡연과 폐암 발병 사이의 ‘역학적 인과관계’는 2004년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전문 의료 감정인단의 감정서를 받아 그 관련성을 인정했다. 이 과정에서 앞서 미국 사례에서 등장한 1982년 미국 보건총감보고서가 인용되었고, 흡연이 폐암의 주요 원인이 된다는가설의 “역학적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결하였다. 여기서 재판부가 발표한 역학적 인과관계란 “대상 인구집단 수준에서의 질병과 해당 요인과의 일반적 관련성의 정도ʼʼ를 입증하는 것을 의미하여, 과거 구체적인 수준에서 엄격한 인과관계만을 인정했던 사례와 다르게, “집단 수준의 피해에 대한 역학적 인과관계가 인정되었다는 점”에서 유의미하였다. (242쪽) 이 판결은 서울고등법원 재판부의 2심 판결에서 역시 동일하게 인정되었다. 필자에 따르면 흡연과 폐암 간의 역학적 인과관계를 인정한 판결로 인해 이제 “기존의 불법행위책임소송에서 요구되어왔던 흡연자 개인의 개별적 인과관계를 법적으로 다툴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입증 책임을 누가 질 것인가?:
위험물에 대한 사회적 의무와 법적 책임

담배 소송에서 중요한 핵심 중 하나는 흡연과 폐암 사이의 인과관계에 대한 입증을 누가 책임지고 담당할 것인지의 문제이다. 보통 불법행위책임 소송에서는 피해자 측인 원고가 이를 입증해야만 했으나, 점차 원인 규명에 대한 과학기술적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이에 소요되는 많은 비용 등이 증가함에 따라 최근 이러한 입증의 부담을 원고와 피고 측이 적절한 비율로 분배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런 “입증책임 완화”는 1980년대 이후 환경, 공해소송 또는 대량 제조물로 인한 피해로 발생하는 소송에서 중요한 쟁점 중 하나였다. 즉, 원고 측이 피해 원인과 결과를 규명해야 하는 것과 더불어 피고 측 역시 그 둘의 상관관계가 없음을 입증해야 하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1984년 자동차의 매연, 폐수, 쓰레기 등의 공해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한 소송에서 최초로 입증책임 완화를 인정한 바 있다.

한국 담배 소송에서 원고측은 입증책임 완화를 위해 공해소송과 담배소송의 유사점들을 지적하며 흡연 피해를 유발한 유해 성분이 담배를 제조하는 회사의 배타적 영역 하에 있기 때문에 피해자인 원고 측이 규명 조사를 제대로 할 수 없다 주장하였다. 다시 말해, 피고 측이 원고 측의 폐암 원인이 흡연이 아닌 다른 요인 때문임을 제대로 입증하지 못하면 흡연과 폐암 간의 인과관계를 법원이 인정해주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피고 측은 다른 제조물과 달리 담배 제조는 매우 간단한 과정으로 고도의 기술이 적용되지 않는 제조품이고, 여러 불완전한 지식이 많은 공해소송과 달리 담배의 유해성 연구와 지식은 이미 널리 퍼져있기 때문에 입증책임 완화의 원칙을 적용시킬 수 없다 반박하였다.

입증책임 완화 쟁점에서 서울중앙지방법원 재판부는 원고들이 흡연과 폐암 발병 간의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게 어려움은 인정하였으나, 피고 측 역시 원고 측의 폐암 발병 원인 조사를 하는 게 쉽지 않고 흡연이 원고 측의 자발적인 행위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입증책임 완화의 법리를 담배소송에 적용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반면, 서울고등법원은 공해소송에서 사용되는 입증책임 완화 법리를 담배소송에 적용할 수 있다고 판결하며, 담배의 구체적인 제조 과정이 공개 되어있지 않은 현실에서 피고 측이 입증 책임을 어느 정도 부담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2심에서의 판결은 “한국의 담배소송에서도 후기 근대적 위험으로 인한 피해의 원인을 법적으로 규명할 때 나타났던 불확실성을 인식하고, 잠재적으로 위험한 물질을 제조하고 판매한 제조사에게 사회적 의무를 지우는 차원에서 도입된 입증책임 완화라는 법리가 인정”된 것으로 볼 수 있다. (247쪽)

 

흡연 외 다른 요인은?
개별적 인과관계의 인정 여부

두 번째 쟁점으로, 흡연과 폐암 발병 간의 개별적 인과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 흡연을 폐암 발병의 주요 원인으로 볼 수 있는가? 다른 요인, 즉 유전적 요인, 식이습관, 병력, 직업적 노출, 대기오염 등이 원인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해 1심 재판부는 역학적 인과관계를 개별적 인과관계에 적용하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 원고 측 흡연자들이 장기간 흡연했다는 사실만으로 폐암 발병이 흡연 때문임을 인정하기에는 부족하기 때문에 원고측 6명에 대한 개별적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반면 2심은, 1심 재판부와 같이 폐암이 복합적 작용에 의해 발병할 수 있어 다른 외부 요인을 배제할 수 없는 점을 인정하였지만, 원고 측 흡연자들이 장기간 흡연을 통해 지속적으로 발암물질에 노출, 흡연으로 인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특정 종류의 암이 발견된 점 등을 근거로 6명 중 4명에 대한 흡연 피해를 인정하였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의 판결은 “법정에서 비특이성 질환의 특징을 고려하며 인과관계 정립에 대해 새롭게 해석하였으며, 이와 함께 입증책임 완화와 법리를 적극 도입하여 한국 담배소송 최초로 개별적 인과관계를 인정”했다 볼 수 있다. (252쪽) 이는 암과 같은 비특이성 질환에 대한 법적 구제의 가능성을 열어준 기반을 마련하고, 담배회사 등과 같은 업체들에게 도덕적 경각심을 알렸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사회가 고도로 발전함에 따라 울리히 벡이 주장한 이 위험사회에서 앞으로 공해소송 또는 제조물과 관련한 여러 위험 물질과 질병에 대한 소송은 더 늘어날 것이다. 한국 담배소송은 “위험사회에서의 피해와 법적 정의에 대한 새로운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 기반”을 찾을 수 있는 통로를 제시한 셈이다. (254쪽)

 

문지호 리뷰어  lunatea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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