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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과 ‘감정’을 나눌 수 있을까?

Abstract arrangement of human head and symbolic elements suitable as background for projects on human mind, consciousness, imagination, science and creativity

logofinale2016년 한반도를 뜨겁게 달군 이세돌 9단과 구글 딥마인드 알파고의 바둑 대국장, 그곳에는 이세돌 9단 이외에 알파고를 대신해 바둑돌을 잡은 알파고의 ‘대리기사’ 아자 황 박사도 있었다. 당시의 흥미로운 장면을 한 신문 기사는 다음과 같이 전했다.

“이번 대국의 주인공은 이세돌 9단과 알파고였기에, 아자 황은 최대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한 것이다. 그러나 아자 황의 무표정은 오히려 그의 존재감을 더욱 드러나게 했다. 인간의 대국에서는 상호 작용도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아자 황이 인간적인 반응을 철저히 숨기면서 이세돌 9단은 알파고와 대국을 더욱 낯설게 느끼게 됐다.” (연합뉴스 2016년 3월 16일자)

실제로 이세돌 9단은 종종 맞은 편에 인간 기사가 있을 때 할 법한 ‘습관적 반응’을 보이기도 했고, 어떤 이들은 대국자를 볼 수 없는 상황이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며 차라리 인간 대국자 역시 모니터와 마우스를 통해 대국을 펼치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논평하기도 했다.

인공 지능이 미래의 꿈이 아니라 오늘의 현실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아자 황이라는 중개자의 이미지로 포착된 알파고와 이세돌의 만남은 인공 지능이 인류에게 제기할 문제가 그저 지능이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머물지 않을 것임을 짧지만 강렬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화여대 이화인문과학원 천현득 교수의 논문, 인공 지능에서 인공 감정으로 – 감정을 가진 기계는 실현가능한가?」 (『철학』, 131, 2017)은 인공 지능이 인간에게 제기할 현실적 문제 중 하나로 ‘인공 감정’을 들고 이에 대한 철학적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인공 감정에 대한 논의가
왜 중요한가

오랫동안 ‘지성’ 혹은 ‘이성’은 인간을 동물과 같은 비인간 생물종들과 구별해주는 독특한 특징으로 여겨져왔다. 그러나 “인지적인 능력에서 기계의 추월을 염려하며 초라해진 인간의 위상을 개탄하는 사람들은 이제 감정으로 눈을 돌린다.” (220쪽)

“[퀴즈쇼 제퍼디에서 우승한] 왓슨은 경쟁에서 이기긴 했지만 승리를 기뻐하지는 못했다. 당신은 왓슨의 등을 두드리며 축하해줄 수 없고, 함께 축배를 들 수도 없다. 로봇은 이런 행동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수 없을 뿐더러 자신이 이겼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220쪽)

그러나 최근에는 사교 로봇이나 감정 로봇처럼 인간과 유사한 감정을 가진 로봇을 구현하려는 시도들이 도처에서 이뤄지고 있다. 필자는 이처럼 인공 감정을 지닌 로봇을 제작하려는 시도가 널리 퍼진 배경으로 크게 세 가지 요인을 꼽는다. 첫째, 개체화된 삶을 사는 현대인들 사이에 “똑똑하게 행동하는 로봇뿐 아니라 정서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로봇”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221쪽) 둘째, “로봇에게 감정 능력을 부여함으로써 로봇의 전반적인 성능을 향상하거나 사용자의 세밀한 필요에 더 잘 부응하[는]” 로봇을 제작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이 있다. (222쪽) 셋째, 로봇이 인간처럼 감정을 갖게 함으로써 인공 지능이 인류에게 위협이 되는 상황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다.

필자에 따르면 이런 현실과 기대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인공 감정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당위를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논의는 인공 지능이 제기하는 문제처럼 이중적 성격을 띤다. 즉, 인공 지능이 지능적 기계를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가라는 기술적 문제와, 그렇게 기술적으로 구현하려는 인간의 지능이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개념적, 철학적 문제를 우리에게 제기한 것처럼, 인공 감정 역시 기술적 문제와 개념적, 철학적 문제를 모두 제기한다.

“인공 감정에 대한 연구는 감정적 존재인 인간과 유사하게 행위하는 기계를 제작하려는 시도이면서, 동시에 감정 과정에 대한 계산 모형을 통해 감정 일반과 인간의 감정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기도 하다. 로봇에 감성을 불어넣는 작업이 새로운 화두로 등장한 이때, 인공 감정에 대한 철학적 탐구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223쪽)

와세다 대학에서 개발한 감정을 표현하는 로봇 코비안. ⓒTakanishi Lab (http://www.takanishi.mech.waseda.ac.jp/top/research/kobian/KOBIAN-R/index.htm)
감정이란 무엇인가?
인공 감정은 실현가능한가?

감정을 인공적으로 구현한다는 말은 무엇을 뜻할까?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당연히 우리가 어떤 대상에 감정을 부여하는 기준과 관련돼 있다. 즉 로봇이 인공 감정을 갖추었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우리가 어떤 대상에 감정을 부여할 만한 일반적 기준들을 해당 로봇이 만족해야 한다. 그러므로 인공 감정과 관련한 논의에서는 감정의 부여 가능성을 따지려는 인공물의 생물학적 유사성보다는 인지심리학적, 행동학적 차원의 기능적 유사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필자에 따르면 이런 차원에서 볼 때 감정은 여러 기능적 역할을 수행한다. 첫째, 감정은 “개체의 생존, 안녕, 혹은 항상성 유지에 관련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둘째, “감정은 인지 과정을 촉진하거나 증진하기도 하고, 추론 양식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예컨대 산에서 뱀과 유사한 매끈하고 긴 물체가 꿈틀거리는 모습을 보았을 때 우리가 느끼는 공포심은 위급한 상황에 주의를 집중하도록 만들어 “빠르고 효과적[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유도한다. 셋째, 감정은 “일의 우선권을 조정”하고 상황 대처의 완급을 조절하는 등 “행위를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마지막으로 감정은 “특징적인 신체 반응이나 표정 등[을] 동반”하는데, 이는 감정이 추후에 취할 행동을 예비하는데 도움을 주거나, 표정이나 제스처에서 미묘한 감정이 전달되는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도 함을 보여준다. (226-228쪽)

그러므로 인공 감정을 구현한다는 것은 적어도 인간이 보기에 이러한 기능적 역할을 수행하는 것처럼 보이는 인공물을 제작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인공 감정은 과연 구현 가능한 것일까? 필자의 현재 진단은 다음과 같다. “현재의 기술 수준에서 인공 감정을 가진 로봇은 없을 뿐 아니라 가까운 미래에 그런 로봇이 등장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판단된다.” (230쪽)

왜 그런가? 우선 감정이 수행하는 여러 기능적 역할을 고려할 때, 인공 감정이 구현된 로봇은 적어도 “어떤 것이 ‘자신에게’ 해가 되는지 도움이 되는지 평가할 수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한 기초적인 모형, 혹은 원초적 자아(proto-self model)를 가져야 한다. 둘째, 그러한 로봇은 “상당한 수준의 감각 능력과 일반 지능(general intelligence)을 갖고 있[어야]” 할 것이다. “감정은 지능적인 동물에게서 나타나며, 더 지능적일 수록 더 풍부한 감정을 나타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230-231쪽) 필자에 따르면, 이 두 가지 조건을 갖춘 로봇은 아직은 아주 먼 미래의 희망에 가깝다.

한편 필자는 기술사회사적, 기술철학적 논의를 통해서도 감정 로봇의 가능성에 의문을 표한다. 특히 필자는 기술결정론적 논의를 비판하는 데 더해, “사람들이 감정 로봇을 원하는 이유가 과장되어 있거나, 실제로는 진정한 감정을 가진 로봇을 만들어야 할 좋은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우선, 감정을 갖춘 로봇이 더 안전할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인간들 사이에서 벌어진 끔찍한 전쟁들, 살인사건들, 모욕적인 언사와 행위들은 인간이 감정을 가졌기에 혹은 감정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벌어졌다.” 둘째, 인간이 애초에 로봇을 만든 목적이 감정을 지닌 로봇의 존재와 상충할 수 있다. “우리는 [감정까지 갖춘!] 권리를 가진 주체로서의 로봇을 원하는가, 아니면 시키는 일을 똑똑하게 처리하는 노예로서의 로봇을 원하는가?” 셋째, 설사 인공 감정을 부분적으로 구현하는 일이 가능하다 할지라도 우리가 로봇에게 허용할 수 있는 감정은 무엇이고 억제해야 할 감정은 무엇일까? 가령 인간과 교감하는 로봇은 “분노, 공포, 슬픔, 역겨움, 수치, 모욕감, 당황스러움의 감정”도 느낄 수 있어야 할 것이나 이런 감정을 로봇에게 부여하는 일이 바람직한 일인지는 매우 논쟁적이다. (231-233쪽)

인공 감정(의 가능성)에 기댄
일방적 감정 소통의 위험성

이처럼 인간과 유사한 방식으로 감정을 느끼는 로봇이 단시일 내에 제작될 것 같지 않다고 해서 인공 감정과 관련한 문제가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지금도 사람들은 다양한 ‘사회적 서비스 로봇’이나 ‘사교 로봇(social/sociable robots)’들과 교감을 나누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2016년에 한 스탠포드대학 연구팀이 보고한 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은 로봇이라 할지라도 “인간의 성기와 엉덩이에 해당하는” 부위를 만질 때 “가장 강한 성적 흥분”을 느끼는 듯했다. 더욱이 이러한 감정적 관계는 로봇이 감정을 더 잘 표현할 수록 강화되는 경향이 있다.

스탠포드 대학 연구팀의 로봇과 인간의 접촉 반응 연구 장면. (http://www.zdnet.co.kr/news/news_view.asp?artice_id=20160408074044)

이런 현상들은 비록 로봇이 인공 감정을 완벽히 갖추지 않아도 사람들이 로봇과 얼마든지 깊은 교감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람들의 명시적 믿음 체계 속에서 로봇의 ‘감정’은 따옴표 속에 있지만, 실제 행동에서는 그 따옴표가 쉽게 사라지기 때문이다.” 필자에 따르면 바로 이 지점이 매우 중대한 사회적 문제를 유발할 수도 대목이다. “사교 로봇에 대한 심리적 의존으로 인해, 사용자가 조종되거나 착취당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235쪽) 가령 로봇 제작 회사는 사용자가 로봇과 ‘일방적으로’ 맺는 감정적 유착 관계를 이용해 로봇과 관련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이 문제는 사람들이 어떤 로봇에게 더 강한 감정적 유착관계를 느끼는지 더 잘 알게 됨으로써 더욱 심화될 것이다.

그러므로 인공 감정을 구현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 로봇이 등장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를 논하기에 앞서 우리가 ‘지금’ 고민해야 할 문제도 그리 가벼워 보이지는 않다. “기계에 더 많이 의존하고 사람과의 대면 접촉을 피한다면, 결국 우리는 ‘함께 외로울’” 미래를 맞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238쪽) 이런 미래를 피하기 위해 우리는 인간이 다양한 로봇과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지, 특히 인간과 “감정 로봇[의] 일방적 정서적 교감이 가져올 수 있는 잠재적 위험”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것이다.

 

*함께 읽으면 좋은 자료:

1960년대 인간과 기계
홍성욱, 2002, 『철학사상』, 14, 173-199.

인간과 기계 – 갈등과 공생의 역사
홍성욱, 2015, 『문학과 사회』, 28(3), 466-488.

문지호 리뷰어  lunatea3@gmail.com

<저작권자 © 리뷰 아카이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성적 판단’이 ‘감정적 판단’보다 낫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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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ofinale흔히 우리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을 하고, 감정을 배제한 일 처리를 훌륭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서구 합리적 전통에 기반을 둔 기계적 모델, 알고리즘 방식의 인간관이 현대적 방식에 걸맞다고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이성적 판단이 감정적 판단보다 반드시 옳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뿐더러 인간의 뇌는 그런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이재신 중앙대 신문방송학부·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의이성과 감정: 인간의 판단과정에 대한 뇌과학과 생물학적 접근(『커뮤니케이션이론』,10(3), 2014)에서는 이와 관련한 최근 뇌과학, 생물학 이론을 검토하고, 이 성과를 커뮤니케이션학에서 적용할 수 있도록 학문의 융합을 시도한다.

‘감정적 판단’을 배제하면
무책임하고 위험한 행동을 할 수 있다

‘감정’이란 용어는 대개 학문 분야와 학자에 따라 다르게 사용되지만, 일반적으로 ‘합리적인 이성reason’과 대립하는 개념으로 여겨진다. 특히 서구의 합리적 인간관에 따르면 감정은 이성과 대립되는 동시에 비합리성과 연결되는 요소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 뇌과학 연구에서 보고되는 결과는 이와 다르다. 인간의 뇌 구조와 기능이 과거 학자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방법이 아니라 과거 경험으로 저장된 주관적 기억과 감정에 더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먼저 인간 뇌 구조와 기능의 설명을 위해 ‘삼위일체 모형’을 소개한다. 맥린MacLean은 영장류의 뇌가 기본적으로 세 가지 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들이 서로 다른 기능을 수행하는 것으로 보았다. 일단 뇌의 맨 아래에 있으며 가장 오래된 파충류의 뇌인 ‘뇌간’에서는 경험학습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본능적인 반응을 반복하게 되어 있다. 그 위의 뇌는 포유류의 뇌인 ‘변연계’로 이곳에서는 감지된 외부 자극에 긍정이나 부정의 감정적 가치를 부여하고 이 정보를 상위의 뇌로 전달한다. 그리고 그 상위에 있는 영역이 바로 ‘신피질’인 것이다. 신피질의 기본 역할은 다양한 계산과 통제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지구상 생물 중 신피질 영역이 가장 넓은 인간은 인지, 언어, 사회 능력을 발달시켜 고도의 문화를 형성할 수 있었다.

삼위일체 모형을 보면 알 수 있듯 인간의 가장 고도의 능력은 이성이며, 논리적 이성에 의존할 때 인간은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뇌과학 연구결과는 전혀 다른 방향을 설명한다. 감정이 결여된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판단은 사실상 합리적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왜일까? 신경의학자 다마지오Damasio는 상황판단이나 감정통제 등의 기능을 담당한 ‘안와 전두엽’에 손상을 입은 환자에 대해 보고했는데, 이 환자는 주어진 판단과제는 논리적으로 해결 하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무책임하고 위험한 결정을 내리곤 했으며, 중요한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구분 못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즉, 의사결정 과정에서 감정이 배제된 경우 반사회적이고 비정상적인 판단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논문 165쪽

 

생존을 위해 활용됐던 ‘감정’,
그 기민함은 현재에도 유효하다

이쯤 해서 또 다른 질문 하나가 떠오른다. 인간의 뇌는 왜 감정을 판단과정에서 중요한 정보로 활용하게 된 걸까? 생물학적으로 ‘감정’은 과거 경험의 기억으로부터 비롯됐다. 앞서 본 포유류의 뇌가 ‘변연계’에서 과거의 위험했던 상황을 기억하고 생존에 활용했듯 감정에는 생존에 중요한 정보가 담겨있다. 실제 최근 연구에서도 감정을 담당하는 편도체가 활성화되어야만 장기기억의 형성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것으로 확인되었는데, 이를 보면 어떻게 생존감각이 감정에 각인될 수 있었는지 유추할 수 있다. 즉 본능적 혹은 직감적이라고 표현하는 감정은 과거의 유사한 조건에서 저장된 감정기억이 자동적으로 인출되어 일차 감정으로 표출되는 것이며, 이러한 감정에 의해 전달된 기억정보가 의사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이처럼 저자는 평가절하됐던 감정이 실제로는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지 최근 연구사례들을 통해 역설한다. 그리고 조금 다른 종류의 질문을 던진다. 즉, 이성과 감성 과연 이 둘은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것인지, 감정적 요인을 배제한 채 이성적 요인으로만 지속해서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지 말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감정은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인 것이 아니라 실생활에서 논리적 판단을 도와 합리적이고 사회적으로, 또한 도덕적으로 수용 가능한 판단을 내리게 한다. 개인이 아무리 논리적이고 이성적 판단을 추구해도 모든 정보 특히 현대에 생산되는 엄청난 양의 정보를 모두 수용할 수 없다. 거기에 미래 요인까지 예측해야 한다면 그 정확성을 확신하기 어려울 것이다. 결국에는 과거의 유사한 사례에 대한 경험 기억이 판단에 개입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생물학적 연구결과로 접근하자면, 노벨상을 받은 신경과학자 에델만Edelman은 인간 감각은 모두 과거에 경험한 감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했다. 감각의 입력 경로가 모두 기억된 정보와 즉각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감정의 영향을 배제한 채 대뇌피질로 입력되는 감각정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기억은 ‘감정에 물든’기억이며 이에 따라 입력되는 감각 역시 ‘감정에 의해 채색된’감각이 되는 것이다.

출처: 리뷰 아카이브

 

 

‘감정’에 관한 생물학적 연구
사회과학과 융합할 수 있다

이처럼 인간의 판단과정에서 논리가 아닌 감정이 주된 역할을 한다는 개념은 이제 다양한 학문분야로 퍼져 나가고 있다. 신문방송학부 교수인 저자가 감정과 관련한 생물학, 심리학 등을 두루 공부하고 논문을 통해 소개하는 것도 커뮤니케이션 이론에서 감정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가령 커뮤니케이션학의 프레임frame 연구에서는 감정적 프레임이 논리적 프레임보다 효과적이며, 감정전달이 용이한 내러티브적 서술이 그렇지 못한 서술에 비해 설득에 효과적임이 보고되고 있다.

또한 미디어 수용 연구에서도 ‘재미’나 ‘즐거움’같은 감정적 측면의 중요성이 보고되었고, 광고와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는 감정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이 강조되었으며, 기사와 보도사진에서도 감정요인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처럼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감정은 어떤 요소보다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더불어 앞선 과학적인 이론을 근거로 미디어를 통한 사회적 학습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왜 사람들이 미디어 속 인물과 준사회적 상호작용을 하게 되는지,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얼굴 표정이나 몸짓 같은 비언어적 요소들이 어떠한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에 관한 설명을 할 수 있게 된다.

본 논문은 사회과학자의 글임에도 깊은 수준의 생물학·뇌과학 지식을 접할 수 있다. 이는 현재 인간의 성격, 폭력성, 기억, 동기 등에 관련한 유전자와 분자 수준에서의 탐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가시적인 연구결과가 속속 발표되고 있으며, 관련 연구자들의 노벨상 수상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사회과학자들이 의학과 자연과학적 탐구결과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저자의 생각과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다양한 학문의 융합이 시도되는 지금 본 논문은 사회과학과 뇌과학이 접목된 융합연구로서 의미가 깊다. 또한 어렵고 딱딱한 내용임에도 저자의 다양한 비유와 친절한 설명이 곁들여져 깊이와 가독성이 공존하는 논문이라고 할 수 있다.
권성수 리뷰어  nilnilist@gmail.com

<저작권자 © 리뷰 아카이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은 거대한 심리상담소…중국·과학·도시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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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_pullquote][편집자주] DBpia Report, R은 DBpia의 논문이용 통계 데이터를 바탕으로 매월 한 차례 분석 기사를 게재합니다. 그 첫 기사로 9월의 통계자료를 분석하는데 양적 분석과 질적 분석으로 두 차례 나누어 게재합니다. 다만, 이번에 사용한 통계는 9월 1일부터 20일까지 20일간의 통계입니다. 다음 달부터는 그 전 한 달간의 온전한 데이터를 통해 논문 이용의 실상과 학문 트렌드를 분석하고자 합니다.[/su_pullquote]

r 9월 1일부터 20일까지 디비피아에서 다운로드 된 논문들 가운데 상위 1000위까지 제목을 살펴보았다. 처음엔 300위까지만 하려 했는데, 자꾸 그 밑의 논문들이 눈에 밟혀 결국 1000위까지 논문들을 일별했다. 300위 밖의 논문들도 무시할 수 없는 다운로드 횟수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300위권은 다운로드 횟수가 23~25회 수준이고, 500~1000위는 20~16회 수준으로 그 차이가 눈에 띌 만큼 크지 않다.

‘스마트폰 중독’부터 ‘전통시장’, ‘임나일본부설’에 이르기까지

먼저 드는 소감은 거의 모든 분야의 논문이 이 1000편 속에 다 들어와 있다는 느낌이다. 그만큼 다양한 주제들이 소화되고 있었다. ‘완벽주의와 우울의 관계’를 다루는가 하면, 임나일본부설이 정말 식민사학이냐고 묻는 논문도 있다. ‘서구중심주의의 이해’라는 간소한 제목이 있는가 하면, ‘수용전념치료(ACT)가 우울과 스마트폰 중독수준이 높은 대학생의 자기통제력, 우울 및 스마트폰 중독 수준에 미치는 효과’라는 긴 제목의 논문도 있다. 김승옥의「무진기행」은 아직도 연구되고 있었으며, 누군가는 ‘서울의 전통시장, 어떻게 활성화할 것인가?’를 고민하기도 했다. 또 한편에선 ‘한국인 직무 스트레스 측정도구의 개발 및 표준화’에 애쓰고 있었으며, ‘대학 역사 지식의 생산과 소비’를 진지하게 묻기도 했다.

실험을 기반으로 하는 논문은 ‘청소년의 스마트폰 중독’처럼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 각 직업군별·계층별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한국의 내진설계기술의 문제점’ 등 공학 관련 논문들은 기존 시스템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한 기술개선화에 초점을 맞춘 경우가 많다. 공학 분야에서 두드러진 경향은 ‘사물인터넷’ ‘드론’ ‘딥러닝’ ‘텍스트 마이닝Text Mining(비정형 텍스트 데이터에서 새롭고 유용한 정보를 찾아내는 과정 또는 기술)’ 등 신기술 동향과 세부 주제별 논의들이었고 공학계의 거시담론이라 할 수 있는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고찰로 이어졌다. ‘4차 산업혁명’이란 주제가 아직 사회과학이나 인문학의 본격 주제로 등장하지는 않은 느낌이다.

제목의 유형으로 볼 때 가장 많은 빈도를 차지하는 것은 ‘~이 ~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패턴이다. 예를 들면 ‘간호사가 인식한 간호관리자의 진정한 리더십이 조직몰입 및 직무만족에 미치는 영향’과 같은 논문들이다. 이런 유형의 논문들에서 가장 많이 다뤄지는 대상은 ‘청소년, 대학생, 고등학생, 여대생, 간호사’ 등이었다. 주로 관리 받는 주체들이라 할 수 있는데, 이들 논문의 작성자들이 넓은 의미의 ‘교육학’ 전공자들이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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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정서·정동이라는 트렌드: 한국은 거대한 심리상담소

우리 시대는 ‘이성’이라는 태자를 폐위시키고 ‘감정’을 태자로 책봉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인기논문 목록에서도 감성의 물결이 여실히 드러난다. 먼저 최근의 페미니즘 영역에서 주로 다뤄지는 ‘혐오’ ‘분노’ 등만 봐도 그렇다. 이성의 제어를 받지 않는 감정의 기원, 그것의 조절과 통제의 방법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래는 1위부터 200위 사이에 있는 연관 논문들로 총 27편이다.

[su_accordion]
[su_spoiler title=”다운로드 상위 200편 중 감정에 대해 다룬 연관 논문들” style=”fancy”]
중환자실 환자의 억제대 적용에 대한 가족의 정서적 반응
감정어휘 분포맵을 이용한 영화추천 시스템의 시각화
정서적 허기인가 정보와 오락의 추구인가?”
한국판 정적 정서 및 부적 정서 척도(PANAS)의 타당화 연구
스트레스의 원인과 대처방안에 관한 탐색
인간의 마음을 닮은 홀로그램 인공지능 공간에 관한 연구
애착외상, 자아존중감, 우울, 자기통제력이 청소년의 스마트폰 중독에 미치는 영향
대학생의 스마트폰 중독사용 정도에 따른 상지통증, 불안, 우울 및 대인관계
내현적ㆍ외현적 자기애와 SNS 중독경향성
청소년의 동성애 경험, 성의식, 동성애 혐오, 우울의 관계
간호대학생의 사회적지지, 학업스트레스, 임상실습스트레스
간호사의 감성지능과 스트레스 대처와의 관계
상담심리 연구에서 매개효과와 조절효과 검증
동물실험은 윤리적으로 옹호 가능한가?
청소년의 자아정체감, 사회적지지와 정신건강과의 관계
성격강점과 성격장애가 안녕감과 우울에 미치는 영향
성인애착, 기본 심리적 욕구 만족, 내면화된 수치심이 분노 표현 방식에 미치는 영향
임상 연구에서 조절효과 및 매개효과의 비교 및 통합
사회불안장애 인지행동집단치료에서의 치료 반응자 특성 연구
자기자비 글쓰기가 우울한 대학생의 반추와 정서조절에 미치는 영향
간호사의 직무스트레스와 자아존중감이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
대학생의 대학생활 스트레스가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
심리적 안녕감의 구성개념분석
인지적 공감과 정서적 공감
상담윤리(counseling ethics)에 관한 국내 연구의 동향
성격장애와 기질 및 성격특질 간의 관계
우울증에 관한 언론 보도 분석“[/su_spoi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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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엔 능동적인 것이 있고 수동적인 것이 있다. 능동적 감정은 주로 욕망이거나 행복감 같은 것이다. 수동적인 것은 스트레스, 우울증, 불안감 등일 테다. 위의 논문들을 보면 ‘감정의 오작동’을 고치거나 예방하고자 하는 게 대다수다. 우리가 얼마나 많이 이 사회로부터 상처받고 있는지 연구주제의 분포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한국사회는 거대한 심리치유 공장이라는 느낌이 든다. 어떤 영역에서는 심리 질환 여부를 감별하고, 그다음엔 질환의 종류를 분류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처방하는 시스템 속에서 수많은 논문이 양산되고 있다.하지만 소재 중복으로 제외한 논문, 여혐 관련 논문을 포함시키면 40편이 넘으며 대략 전체의 20퍼센트 이상을 차지한다. 다섯 편 중 한 편이 ‘감정’을 다룬다는 얘기다. 왜 이렇게 감정이 중요해졌을까.

 

2

국가 담론 퇴조 속 중국 부상

그다음은 중국의 부상이다. 1000편 중 외국 국가 이름이 등장하는 논문을 아래에 추려보았다. 총 29편에 불과하다. 다른 나라는 더 이상 관심의 대상이 아닌건가? 29편중 순수하게 타국에 대한 관심논문은 절반에 불과하다. 국가별 분포를 보면 중국이 14편으로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한다. 그 외에는 미국 7회, 일본 2회, 독일 2회, EU(유럽) 2회, 영국·프랑스·호주·시리아·필리핀이 1회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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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_spoiler title=”다운로드 상위 1000편 중 외국 국가이름이 등장하는 논문들” style=”fancy”]
호주 대학생들의 한식에 대한 인식과 선호도 연구
브렉시트의 근원은 영국의 고립주의
국제정치이론 관점에서 본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안보정책
중국은 ‘제국의 원리’를 제공할 수 있는가
시리아 위기와 난민문제
미국의 동화주의적 이민자 정책과 다문화주의
한·일 도시재생 특별법 비교를 통한 개선방향 연구
중국소비자들의 지각된 가치, 고객만족, 전환비용 및 충성도 간의 구조적 관계
유럽적 근대성과 유럽적 가치의 형성
중국의 동북공정과 우리의 대응방향
조선왕조의 長久性과 한중관계
미국 사회과 교육의 변천과 역사교육
일본 사회의 일본군위안부문제에 대한 담론의 고찰
미국의 관점에서 본 한국의 8.15
미국과 중국의 외교패권경쟁
사드와 AIIB를 둘러싼 미중관계와 한국
미국의 뇌물, 부정청탁 및 이해충돌방지법에 관한 연구
중국 동북 지역 연구의 새로운 가능성
한류 문화가 중국 소비자의 한국 저가화장품 인식에 미치는 영향
중국인들이 선호하는 한국 드라마의 특성
독일의 기본소득보장(Garantiertes Grundeinkommen) 모델 연구
독일 도시재생프로그램 ‘Soziale Stadt’의 특성 연구
필리핀과 중국 간의 남중국해 중재사건에 관한 국제법적 검토
고대 중국신화의 변천과 정치화
유럽연합의 경제위기 속에서 평생교육정책의 패러다임 전환과 과제
프랑스에서의 부패방지 법제
미·중 관계와 남중국해 분쟁
중국 요하문명론의 전개와 의미
중국의 도시화와 공공토지 사유화” [/su_spoi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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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보듯 중국은 ‘새로운 패권국’이자 ‘소비시장’으로서 주목되고 있다. 14편중 10편이 여기에 해당한다. 나머지 4편 중 3편은 고대 중국을 다루고 있으며, 1편은 중국의 사회문제를 다루고 있다. 중국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니즈가 논문 이용 행태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미국에 대한 관심은 많이 퇴조했으며, 관심 방향도 제각각이다. 미국적 제도가 많이 이식·수용된 한국 입장에서는 뭔가가 고장나면 원래는 어땠나를 질문하는 방식으로 미국의 법과 제도를 돌아보는 양상을 보인다. 독일, 프랑스 등 유럽은 선진국형 사회제도 모델을 찾으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다뤄지고 있다. 한국이 뭔가를 배우려는 지향은 유럽에 있다는 점을 확실히 알 수 있다. ‘나라를 만들기’ 위해 미국을 배웠고, ‘잘 살기’ 위해 유럽을 배우며, ‘새로운 먹을거리’를 위해 중국을 배운다고 하면 요약이 될까.

 

3
과학은 우리 삶을 어떻게바꿀 것인가

1000편 중에 이른바 신기술 관련 논문이 100편은 되는 것 같다. 우리가 과학혁명의 중심에 있다는 것을 새삼 인식시켜준다. 특히 인공지능과 로봇(드론)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3D프린팅,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전기자동차 등이 그 뒤를 잇는다. 전부 우리 삶의 변화와 밀접한 것들이다. 특히 ‘기술 진척 동향’ ‘발전 전망’ ‘주요 이슈’ 등을 다룬 논문의 조회수가 많은 걸로 보아 일반인의 관심도 크다는 걸 알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조금 색다른 이야기를 해보자면, 최근 들어 SF(공상과학소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SF 전성기는 아마도 1980~1990년대겠지만, 그 이후로는 죽은 장르가 되다시피 했다. 최근 들어서는 SF 전문을 표방한 1인출판도 생겨나고, 절판된 책도 복원되고 있으며, 휴고상을 중국 작가가 2회 연속 수상하면서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올해 휴고상을 받은 작품은 베이징이라는 미래 도시가 “여러 차원”으로 나뉘어 한 차원에서는 엘리트가, 다른 차원에서는 하층민이 살아간다는 이야기다. 차원 분할이라는 과학적 요소에 계급적 이슈를 합친 것이다. SF는 지식인 열독률이 높은 장르다. 지적 능력과 상상력을 자극하며 읽고 나면 남는 게 있기 때문이다. 또한 SF의 역사는 ‘허무맹랑한 것의 현실화’로 요약될 수 있을 터다. 지금의 과학혁명이 향후 출판계에 SF 르네상스를 만들어낼지 주목된다. 아직은 공급자(출판사) 측의 움직임일 뿐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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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사회학·도시역사학을 넘어
도시재생학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은 낙후된 구도심 지역이 활성화되어 중산층 이상의 계층이 유입됨으로써 기존의 저소득층 원주민을 대체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이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논문이 1000편 중 7편으로 트렌드를 이루고 있다. 도시재생이라는 용어도 이와 무관하지 않으며 둘을 합치면 20여 편을 헤아린다. 낡은 것으로 머물러 있는, 공동화된, 자본의 먹이가 될 만한, 좀더 많은 사람이 누릴 만한 등 다양한 원인으로 도시재생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그만큼 이로 인한 도시환경의 변화, 사회갈등이 첨예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도 일종의 개발붐이라 할 수 있을 텐데, 한쪽에선 신도시 건설이, 다른 쪽에선 구도심 리모델링이 우리의 도시를 어떻게 바꿔놓을 것인가. 이는 비단 도시학자들만 관심갖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논문에도 스테디셀러가 있다
제목짓기 양상도 흥미로움

지금까지 몇 가지 키워드로 1000위까지의 논문의 주제 흐름을 살펴보았다. 이것도 일종의 빅데이터일텐데 대략의 분위기만 느끼는 용도로 사용해야지, 팩트 자체로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논문을 일일이 읽어보고 쓴 글이 아니기 때문에 분석의 한계 또한 명백하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덧붙이자면, 발표된지 10년도 넘은 논문들 중 여전히 높은 이용지수를 보이는 논문이 있다는 점은 특이할 만 하다. 가령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론과 여성 Ⅰ」은 2008년 논문이지만, 다운로드 횟수가 누적 1730여회로 ‘프로이트’란 단어가 들어간 전체 논문 중에서 2위를 차지하고 있다. 논문에도 스테디셀러가 있다는 걸 알겠다. 10월 자료로 분석할 때는 이 ‘논문 스테디셀러’의 여러 면모를 살펴보는 데 집중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아울러 ‘논문 제목짓기’도 관심사 중의 하나다. 1000편의 논문을 스캐닝하면서 클릭의 충동을 느꼈던 논문들을 아래에 한 번 추려보았다. ‘제목 효과’를 톡톡히 발휘한 논문들이라 할 수 있는데 모두 30여 편이다. 아래에 제목과 이유, 실제 내용 등을 간략히 표로 정리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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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_spoiler title=”‘제목 효과’를 발휘한 논문들” style=”fancy”]

제목 클릭 이유
‘좋아요’가 만드는 ‘싫어요’의 세계 제목으로는 어떤 내용일지 짐작이 가지 않고, 좋아요와 싫어요의 조합이 역설적이라 흥미 유발. 내용을 본즉 ‘여성혐오’ 페이스북 페이지를 분석한 논문인데, 좋아요를 많이 누를수록 ‘혐오’의 공감대가 커지는 구조이니 제목이 이렇게 갈 수밖에 없음.
퇴행의 시대와 ‘K문학/비평’의 종말 ‘K문학/비평’이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 그리고 그것의 종말은 무엇으로 야기되었는가에 대한 궁금증.
‘국어’라는 용어에 대한 비판적 고찰 ‘국어’는 곧 우리나라 말인데, 이것을 비판적으로 고찰했다는 것은, 익숙한 단어를 낯설게 만들려는 시도. 국어라는 단어의 형성과 전개를 잘 보여줄 것 같음.
발해의 종족적 연원 이미 많이 다뤄져온 주제임에도, 이처럼 직설적으로 ‘연원’이란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뭔가 결정적인 증거가 발견됐고, 이를 해석해 발해 종족이 한민족인지 아닌지에 대한 진보된 의견이 있을 것으로 기대됨.
낙관적인 사람이 행복할까, 행복한 사람이 낙관적일까? 심리학 실험 논문임을 알 수 있고, 그 결과가 궁금했다. 결론은 낙관적인 사람이 행복하다. 인용해보면 “낙관성이 행복의 원인으로 작용할 수는 있지만, 행복이 낙관성의 원인으로 작용할 수는 없음이 수렴적으로 나타난다”였다. 3년간 대학생 270명을 대상으로 한 논문이다.
좀비 비평의 미래 개인적 관심이다. 비평은 이미 죽었는데 비평가가 활동중이고 비평도 발표되고 있으니 좀비비평이라 한 것일텐데, 논문을 대략 살펴보니 그것은 ‘자기(비평)의 죽음과 죽은 이유를 외면한 채 계속 살아 있으려는 지적·윤리적 불성실성에 기반한 비평’을 가리키며 논문은 다섯 가지로 비평의 죽음에 대해 주석을 달면서 좀비 비평에서 벗어날 것을 촉구함.
문화적 취향의 분화와 계급 고급문화와 저급문화가 계급과 연관이 있는가? 일테면 우리 사회의 두드러진 현상인 부익부 빈익빈(1% 대 99%) 현상이 취향문화의 패러다임을 어떻게 구축하고 있을까 같은 궁금증 때문에 클릭. 논문은 ‘음악’ 분야만 좁게 다루고 있었다. 음악적 취향에 미치는 계급의 영향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결론을 보여준다.
한국행정학자의 『논어』 읽기 첫 느낌은 논문의 필자가 행정학자이고 그가 행정학의 관점에서 읽은 논어의 내용이 펼쳐질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논문은 한국 행정학자들이 논해온 ‘유교적 행정’을 강하게 비판한다. 과거라는 창고 안에서 뭔가를 손쉽게 가져오려는 “골동품 쇼핑하기”식의 논어 독서보다는 지금의 한국 행정을 성찰하고 변화를 모색하라고 주문한다.
총론 : 새롭게 보는 정조와 19세기 『역사비평』 가을호의 정조 특집은 19세기 초반 조선사회의 역동성을 재인식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전반적으로 많이 읽힌 이유는 조선사 연구에서 ‘거시담론’이 실종되었는데 그에 대한 갈급증이 아닐까 한다.
한국 사회에 문화 자본은 존재하는가? 2006년에 발표된 논문이다. 부르디외가 문화자본에 대하여 개념적으로는 명확히 정의했지만, 실제 사용에서는 불분명했던 점, 그 이후 이를 명확히 하고자 했던 이론적 흐름 개괄하고 있다. 이 논문이 갑자기 읽힌 이유는 저자가 예일대에서 문화자본으로 박사를 하고 이화여대 재직하며 교육하고 있다는 점, 즉, 학생과 후학들이 문화자본 적용 논문을 작성하며 용어 이해와 인용의 근거로 삼았을 가능성이 크다.
‘정동 이론’ 비판 최근 문화연구는 물론 인류학·지리학·심리학·철학·퀴어 연구·사회 가장 많이 활용되는 ‘정동情動, affect 이론’을 비판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필자는 이 논문에서 정동 이론의 선도적 이론가 중의 하나인 브라이언 마수미를 비판하는데, 어펙트affect/어펙션affection의 번역 혼란은 스피노자와 구조주의 이론에 대한 그의 오해 혹은 왜곡에서 비롯됐다는 입장이다.
페이스북은 우리의 관계를 윤택하게 하는가?

페이스북은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하는가?

같은 연구진(3명)이 2012년과 2014년에 수행한 연구가 나란히 높은 이용도를 보이고 있다. 결론은 ‘그렇다고 보기 힘들다’에 가까운 듯하다. 최근 2016년 페이스북 관련 연구 논문을 보면 ‘몰입도 방해’ ‘허탈감 유발’ 등을 키워드로 계속되고 있다.
기억을 위한 아키비스트 기억을 위한 아키비스트는 과거의 일이 사건이 되고 이야기가 되고, 또 개인적인 이야기가 사회적인 이야기가 되는 과정을 구조화하고, 사회적 기억이 어떻게 사회의 정체성을 형성하는지 어떻게 사회의 통합적인 지성을 구성하는지를 관망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이야기. 이론적으로 민감하고, 예리한 논의를 기대한 것에 비하면 다소 평범하다.
양적연구와 질적연구의 구별에 대한 현상학적 해명 질적연구의 연구대상인 질과 양적연구의 대상인 양이 정확하게 어떻게 구별되는지 불투명한 상태가 한국 학계의 현실이라는 지적이 따갑다. 저자는 둘의 구분은 연구자의 ‘태도’에 있다고 결론짓는다.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후설, 하이데거를 잇는 논의 계보가 잘 정리된다.
동성애에 대해서 성서는 무엇을 말하는가 성서에 기반하여 동성애에 반대하는데 굉장히 근본주의적이다. 동성애를 불법적인 것으로 정하는 ‘군형법 92조 6항이 헌법에 합치한다는 결정’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20대 국회에서 다시 제안될 차별금지법에 “성적 지향에 의한 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라는 조항이 들어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식물-되기’의 고통 혹은 아름다움에 관하여 제목에서 기대했던 인문적 시론의 느낌과는 달리 실제로는 한강의 『채식주의자』에 대한 서평이다. 2008년의 서평인데 동일 작품의 맨부커상 수상 이후 참조자료로 읽혀지는 것으로 판단된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론과 여성 Ⅰ 2008년의 논문으로 ‘프로이트’가 제목에 들어간 논문 중 이용순위 2위다. 1730여회. 최근 페미니즘 연구 활성화도 관련이 있을 듯하다. 즉, 프로이트 이론의 남성우월주의에 대한 계속적인 확인과 재확인의 과정인 듯하다.
열등감에 관하여 통상 심리학적 주제로 거론돼 왔던 ‘열등감’을 철학적 관점에서 재해석하려는 면이 독특하다. “그것은 우리가, 위기에 처해 있는 우리의 존재를, 다시 말해 가치 있는 것으로 인정할 근거나 이유를 찾을 수 없는 우리 자신을, 그런 이유 이전에 이미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라는 구절이 인상적이다. 알프레드 아들러 유행과의 연관성도 생각해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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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민 리뷰위원  paperfac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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