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봇과 인공지능에 관심을 갖다보니 로봇 마라톤 대회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세계 로봇 월드컵이 벌써 연1회씩 20차례나 치러졌고, 여기에 마라톤 종목이 있으니 들어봤음 직한데도 처음 듣는 것처럼 생소하다. 로봇이 마라톤이라니!
최근 읽은 논문에서 매우 인상적인 문장이 귀에 쏙 와서 박혔다.
[su_quote]인간의 마라톤은 극한의 지구력과 정신력의 한계를 시험하는 스포츠다. 이런 인간의 마라톤과 흡사한 환경에서 휴머노이드 로봇이 마라톤을 한다면 로봇의 운용 시간, 안정성, 환경인식 능력의 수준을 충분히 검검할 수 있다. 휴로컵HuroCup의 마라톤은 실제 인간의 마라톤과 흡사하며, 휴머노이드 로봇의 견고성과 지구력을 시험하는 경기다.(64~65쪽)[/su_quote]
무지렁이인 나는 이 문장을 읽고 42.195킬로미터를 정주행하는 로봇을 상상했다. 관절을 자유자재로 수축 이완하며 철퍼덕 철퍼덕 뛰는 기계인간을 떠올린 것이다. 그러나 곧 “너무하잖아. 영화도 아니고” 하는 자각이 들었다. 그런 로봇이 존재한다면 아마 돈 많은 집집마다 로봇 한 마리씩을 키우고 있을 테니 말이다.
혹 나와 같은 이들이 존재할까 우려하여 아래에 로봇 마라톤의 개요를 리뷰해볼까 한다. 정보는 국가대표로 세계 대회를 휩쓸고 있는 목포대 팀의 두 리더 유영재 교수와 이기남 박사과정생이 함께 작성한 「휴머노이드 로봇의 마라톤 경기 및 전략」(『한국지능시스템학회 논문지』, 26(1), 2016)이라는 논문이다.
우선, 로봇의 마라톤은 200미터 정도를 달리는 경기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걷는’ 경기다. 인간 마라톤의 1/200 정도의 거리인데, 로봇이 카메라로 찍어 경로를 인식할 수 있게끔 색상띠를 부착한 트랙 경기장이 만들어진다. 많은 스포츠가 체중이나 약물복용 여부를 체크하듯 로봇 마라톤에 참가하는 로봇도 일정한 규칙을 통과해야 한다.
먼저 로봇에 사용되는 모든 센서는 수동적이어야 한다. 적외선, 초음파, 레이저 파동 등을 ‘발사시키면’ 안된다. 또 반드시 두 발로 걸어야 한다. 네 발이나 세 발로 걸으면 안 된다. 난이도를 높인다고 한 발로 스카이 콩콩처럼 뛰어봤자 안 된다.
인간의 부축을 받으면 안 된다. 완전히 자율적으로 움직여야 하며, 독립적인 보행 능력, 센싱, 프로세싱 능력을 갖춰야 한다. 즉, 경기장에 내보내면 로봇 주인은 손을 완전히 떼야 한다. 모든 작동기, 모터, 파워, 컴퓨팅, 센서 장치는 로봇에 내장되어야 한다.
유니폼 규정도 있다. 검은색과 흰색을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는데, 다른 색깔도 심사를 통과해야 하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단, 노랑·파랑·빨강은 쓸 수 없다.
경기방식은 이러하다. 참가 로봇은 관리자 1명(2명은 안 된다)과 경기장에 입장한다. 실제 마라톤과는 다르게 각 로봇이 3분의 간격을 두고 출발한다. 뒤 선수가 앞 선수를 50센티미터로 따라붙으면 앞 선수는 트랙에서 제거된다. 다소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 충돌하면 양쪽이 모두 참사를 겪어야 한다. 들려나온 앞 선수는 별도 트랙으로 옮겨져 계속 달리게 된다. 기록은 측정해야 하니 말이다. 또한 로봇이 트랙을 50센티미터 이상 벗어날 경우나, 로봇 관리자가 로봇을 만지게 될 경우에는 5미터 뒤로 이동하는 벌칙이 주어진다.
실격은 다음의 경우에 해당된다. 첫째, 로봇 관리자가 초기 프로그램을 취소하고 프로그램을 재설정하는 행위, 둘째, 배터리를 교체하는 행위, 셋째, 심판 허가 없이 조력자와 함께 로봇을 수리하는 행위를 했을 때다. 배터리는 보통 2시간30분 동안 교체하지 않고 로봇을 움직일 수 있을 정도를 장착하는데, 이를 위해 로봇을 최대한 경량화시켜야 하는 게 현실이다. 가끔 텔레비전 화면에 비치는 로봇이 모두 헐벗은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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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의 방향전환 모습을 찍은 동영상의 1초 간격 컷. |
유영재 교수팀의 이번 논문은 로봇의 방향전환에 공을 들였다. 위의 사진은 동영상에서 1초 간격으로 추출한 것이다. 턴 스피드Turn Speed 값이 커질수록 방향전환 속도가 빨라진다. 트랙 인식 및 마커인식 알고리즘에서 계산되는 보행방향 각도에 따라서 턴 스피드 비율이 변한다. 턴 스피드 값이 높아질수록, 상대적으로 워킹 스피드는 낮아진다.
논문을 살펴보니 현재 로봇 마라톤은 200미터를 1시간 내에 주파하는 수준이었다. 로봇이 실제로 달리기 위해서는 경로 파악, 동작의 안정성, 곡선 트랙에서의 방향전환 등 모든 면에서 아주 눈부신 발전이 필요한 듯 보였다. 연구팀은 “걸으면서 카메라로 주변 환경을 인지하기 때문에 화면이 흔들리는 진동 문제가 향후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밝혔다.
강성민 리뷰위원 paperfac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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