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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ofinale정치인과 공직자․공직자후보의 공식 석상에서의 발언이나 자서전 내용, 일상에서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그 반응은 긍정과 부정을 오가며, 같은 말에 대한 해석이 사람이나 조직마다 엇갈리기도 한다. 정치인이 하는 말은 시대를 막론하고 대중들의 관심을 받아왔다. 각종 선거 때가 되면 정치인의 회고록이나 자서전 출간이 출마의 필수조건인 것처럼 붐을 이룬다. 이러한 책들 역시 정치인의 말이며 구술집이다. 정치인의 구술자료는 출간 이후 그 기록들의 사실 진위 여부와 사실에 대한 해석을 놓고 많은 논란이 되기도 한다.

정치엘리트 구술자료 
수집 목적

정치인의 구술자료는 왜 사회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일까? 조영재는 자신의 논문 ‘사실’과 ‘구술자료’의 간극에 대한 하나의 해석: 정치엘리트 구술연구를 중심으로(『기록학연구』, 43, 2015)에서 정치엘리트 구술자료를 수집하는 목적이 권력자의 집무실에서, 행정부에서, 의회에서, 정당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확인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권력은 주로 문어(written words)보다 구어(spoken words)를 통해 작동되고, 공개된 영역(front doors)보다 비공개 영역(closed doors)에서 행사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러한 권력의 작용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었을 때조차, 권력에 의해 의도적으로 흘려진 것(purposive leaks)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수집된 엘리트 구술자료는 두 가지 통념이 작용하여 그 가치를 의심받는다. 첫째, 정치 엘리트 구술자료는 구술자의 개인적 경험과 기억에 기초하고 있으며, 따라서 개별적이며 주관적일 뿐 아니라 부정확하기까지 하다는 통념 때문이다. 둘째, 정치엘리트의 속성 상 자기 합리화와 거짓 진술의 위험을 피하기 어렵다는 통념 때문이다.

이 두 가지는 정치엘리트 구술자료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지만, 정책결정에 핵심적 역할을 수행했던 엘리트의 구술이 지닌 영향력은 비엘리트(non-elite)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점에서 거짓 진술의 파급효과는 심대하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위의 두 가지 통념이 지적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정치엘리트 구술자료는 다른 구술자료와 마찬가지로 객관적이지도 신뢰할만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정치엘리트의 자기정당화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자는 여기에 공통된 전제가 있다고 보는데, 이것은 정치엘리트의 구술자료가 실제 역사적 사실과 간극(괴리)이 매우 크다는 점이다. 즉 사실과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조영재의 이 논문에서는 이러한 간극을 탐구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간극이 발생하는 이유와 양상은 어떠하며, 그러한 간극을 줄일 수 있는 해결책을 찾아본다.

‘사실’과 ‘구술자료’의
간극구조와 특성

구술대상에 관계없이 모든 구술자료는 ‘사실(fact)’, ‘기억’(memory), ‘구술‘(oral narrative)이라는 요소를 거쳐 생산된다. 구술자료와 사실 사이의 간극은 이러한 세 가지 요소를 거치면서, 때로는 구술자의 의도와 관계없이 자연적․우연적․필연적으로 형성(rising)되기도 하고, 때로는 구술자의 의식적․무의식적 의도에 의해 인위적․선택적으로 구성(making) 되기도 한다. <그림 1>은 세 가지 요소와 간극 사이의 관계를 그림으로 도해한 것이다.

최초의 간극(제1간극)은 외부의 ‘사실’과 구술자의 ‘기억’ 사이에서 발생한다. 실제 구술의 토대가 되는 것은 개인의 ‘기억’인데, 이는 단순히 외부의 객관적인 사실을 모사하거나 재현한 것이 아니다. 심리학적 발견에 따르면 완전 기억(total recall)이라는 것은 일종의 신화이며, 기억이란 일련의 선택과정을 거치는 재구성 행위(reconstructive behavior)이다.

이러한 사실과 기억의 불일치와 간극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았던 실증주의 역사학은 구술연구의 객관성을 부정하는 근거로 삼았던 반면, 일부 역사가나 구술연구자들은 이를 긍정적으로 보고 새로운 역사인식의 토대로 삼았다.

포르텔리(Portelli)는 기억이 주관적인 것이란 점을 수동적으로 인정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역사의 일부로 해석하였다. 그는 구술자료가 실제의 가시적인 사건에 대해서 보다는 그 사건들이 지니는 의미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말해주며, 실제 사건들에 대해 ‘틀린’ 진술이라 하더라도 심리적으로 계속 ‘진실’이고, 이러한 ‘진실’은 ‘사실적으로 믿을 수 있는 설명’과 마찬가지로 중요하다고 보았다. 포르텔리에게 있어서 사실과 기억의 간극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틀린 믿음이라 하더라도, 그 자체가 역사적 사실의 일부로서 신빙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1간극의 구조와 의미는 포르텔리가 생각하는 것에 비해 좀 더 복잡하고 복합적이다.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기억 간에는 다양한 동학이 있으며,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분화된 구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본 논문의 저자는 사실과 기억 사이에 인지(cognition)과정 추가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즉 제1 간극은 외부의 사실(fact) →인지(cognition) →기억(memory)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1간극이 발생하는 ‘사실을 기억하는 과정’은 ‘사실을 인지하는 과정’과 ‘인지한 사실을 기억’하는 과정으로 세분화한다.

제2 간극,
기억과 구술 사이

또 다른 간극, 제2간극은 기억과 구술 사이에서 발생한다. 이로 인해 나타나는 형태는 의도적인 허위진술, 즉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제2간극은 제1간극에 비해 간명한 형태로 나타나지만, 그 요인은 매우 다양하다. 자신의 과거 행위를 합리화하기 위해서, 이전 진술과의 일관성을 위해서,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서, 또는 반대자나 경쟁자의 위신을 손상시키기 위해서 허위진술을 한다. 이러한 간극은 앞의 유형들과 달리 ‘제3유형의 간극’으로 이름한다.

제3유형의 간극과 그 결과가 구술자료에 미치는 영향은 치명적이다. 많은 심리학 연구가 ‘인간의 삶에서 거짓말은 일상적이며 바람직하기까지 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구술에 관한 한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일부 사실에 대한 허위진술은 나머지 다른 사실에 대한 진술의 신뢰도를 손상시키기 때문이다. 게다가 구술자료가 구술자의 사적인 목적에 이용되는 결과를 초래하기까지 한다.

구술 연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주요한 간극의 형태들

객관적인 사실과 구술자료들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은 다양한 형태로 구성되며, 그 형태마다 훨씬 많은 발생요인을 갖고 있다. 본 논문에서 저자는 다양한 간극 형태 중에서 구술연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주요 형태에 대해 유형별로 제시하고 있다.

제1유형은 기억의 형성과정에서 발생하는 간극이다. 모든 간극은 객관적 사실을 인식하고 이를 기억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출발한다. 인간은 객관적 사실을 온전히 총체로서 인식하거나 재현할 수 없으며, 개인에 따라서 선택적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개인의 인식과 기억의 토대가 되는 경험은 객관적 사실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전자는 ‘기억의 주관성’으로, 후자는 ‘기억의 개별성’으로 표현된다.

제2유형은 기억의 유지과정에서 발생하는 간극이다. 주관적으로, 그리고 개별적으로 형성된 기억조차, ‘원형’을 있는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기억은 시간의 풍화과정을 거치면서 소실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변형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제2유형에서 ‘기억의 상실’과 ‘기억의 변형’에 따른 간극 유형을 다룬다. 이 유형에는 장기기억의 일부를 잃어버린 망각(forgetting)과 기억의 변형이 있다. 저자는 기억 변형을 가져오는 요인으로 ‘학습(learning, 정치엘리트들이 자신이 경험하지 못했거나 부분적으로만 경험했던 사실에 대해서도 습득된 정보에 기초해 자신의 기억을 변형시킴)’이나 ‘일관성 편향향’(consistency bias, 과거와 현재의 감정이나 신념 사이에 일관성을 과장하여 과거에 대한 기억이 왜곡됨)‘,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 일종의 자기기만을 통해 부조화에 따른 불편한 감정을 해소하는 것, 정치엘리트들이 당적을 옮기면서 현실 정치를 개선하기 위해서 등의 자기정당화를 하는 예로 구술자 자신이 자기기만적인 진술을 믿는다는 점에서 허위진술과는 다름)를 제시한다.

제3유형은 구술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간극이다. 과거의 경험이 여러 경로를 통해서 하나의 기억으로 응고(consolidation) 되었다하더라도, 간극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구술자는 구술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기억과 다른 내용을 진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허위진술 (거짓말)은 구술자료를 독해하는 데 있어서 가장 경계해야할 ‘무의미한’ 간극이라고 강조한다. 구술과정에서 발생하는 간극에는 의도적인 허위진술과 반복되는 허위진술이 있다. 허위진술은 앞에서 언급했던 인지부조화를 해소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상이하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 후자가 ‘자신을 속이기 위한 무의식적 행위’인 반면, 전자는 ‘타인을 속이기 위한 의식적인 행위’라는 점이다. 또 한 가지 차이는 진술하는 태도와 일관성에서 드러난다. 인지부조화를 해소하기 위한 진술은 실제 자신의 믿음과 생각에 기초하기 때문에 확실하고 단호한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으며, 그 진술내용은 오래도록 일관성을 유지하며 반복된다. 하지만 일시적인 목적으로 타인을 속이는 거짓 진술은 불확실하고 머뭇거리는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으며, 속여야할 이유가 사라지면 거짓진술이 더 이상 유지되지 않을 경우가 많다. 심지어는 손쉽게 이전과는 반대 진술로 이동하기도 한다. 저자는 이러한 의도적 허위진술은 논란의 여지없이 제거되어야할 간극이라고 이야기한다. 다만, 거짓말의 동기를 유추하는 것은 당시 정치적 상황이나 맥락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수는 있다. 반복되는 허위진술은 흔히 말하는, 거짓이 거짓을 낳는 경우이다. 위에서 언급한 의도적인 허위진술이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이루지는 것이라면, 반복되는 허위진술은 뚜렷한 목적을 확인하기 어려운 사례이다. 이러한 반복되는 허위 진술은 구술과정에서 나타나기도 한다. 앞에서 허위진술을 하고나서, 어쩔 수 없이 그 허위진술을 반복하는 것이다. 반복적인 허위진술은 현실세계에서도 발생하며, 때로는 믿음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생산과정에 개입 가능한
엘리트 구술자료

저자는 이미 생산된 구술자료에서 위의 간극을 걷어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그 간극들 사이에는 객관과 주관, 의식과 무의식, 사실과 허위가 뒤엉켜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것이 비판할 일만은 아니라고 본다. 이미 생산이 완료된 문서기록과는 달리. 구술자료는 생산과정에 개입여지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구술연구, 특히 엘리트 구술연구가 지니고 있는 장점 중에 하나이다.

또한, 저자는 모든 간극을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이야기한다. 제1유형과 제2유형의 간극들을 해석함으로써 사실을 보다 풍부하게 재구성하고 이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부정적인 간극인 제3유형의 간극은 구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구술자에게 충분한 기초정보를 제공하고, 구술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신뢰와 친밀감을 유지하며, 구술자료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다른 다양한 자료들과 함께 교차검토(triangulation) 하여 좁힐 수 있다고 본다.

정치엘리트의 구술자료에서 나타나는 간극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는 논문 내용을 살펴보았다. 저자는 모든 간극을 부정적으로 볼 필요가 없고, 그것을 좁힐 수 있는 대안들을 제시하고 있다. 이미 생산된 정치인이나 공직자의 구술자료 내용이 그 사람의 자질과 능력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는 때에 이들의 구술자료를 어떻게 접근해야 할 것인지 많은 고민을 하게 한다.

김연정 리뷰어  equ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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