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한 세대 전까지만 해도 결혼과 출산은 대다수가 동의하는 사회규범으로 여겨질 정도로 당연한 의무로 수용되었다. 그러나 한 세대가 지났을 뿐이지만, 그러한 고정관념은 많이 바뀌었다. 한국 사회가 맞고 있는 저출산 현상에 대해서는 기존에 많이 논의되고 있지만, 오유석 성공회대 연구교수는 「저출산과 개인화: ‘출산파업론’ vs ‘출산선택론’」(『동향과 전망』, 94, 2015)이라는 논문에서, 저출산-비출산의 문제가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라 전통적인 결혼관과 출산(자녀)관, 그리고 남성 생계 부양 가족주의의 해체와 함께 나타나고 있음에 주목하고 있다. 즉 저출산 현상을 여성 주체의 개인화로 설명함으로써 저출산 담론에 대해 개인주의적 관점을 확장하고자 하는 것이다.
저출산과
경제 문제
경제상황이 악화되면서 출산율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일각의 주장은 부분적으로는 맞을 수 있다. 1997년 IMF 사태와 2008년 리먼 사태라는 경제 위기 상황은 ‘초저출산율’을 고착화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음은 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사회에 저출산 현상이 이미 1983년 이후부터 지속되어 왔음을 고려하면, 1997년 IMF 사태 이전 한국 사회에서의 저출산 현상은 경제 위기의 문제와 연관시키기 어려워 보인다. 1997년 이전의 1990년대는 한국 경제 최고의 풍요 시대였기 때문이다. 즉 저출산은 단지 경제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저자의 견해이다.
[su_quote]사실 1990년대 최고의 풍요 시대를 맞았지만 ‘개인’을 중심으로 볼 때 우리나라의 국민총소득 대비 가계소득 비중은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1975년(79.2%) 이후 줄곧 하락하고 있으며, 지난 2007년 처음으로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넘어선 이후 2015년까지 2만 달러의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경제위기도 더 이상 성장의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분배와 개인 소득 구조의 문제로 바라보아야 한다.(55쪽)[/su_quote]
저출산과 결혼 양상
저자의 통계에 따르면 2014년 기준 한국 사회의 초혼 연령은 10여 년 간 꾸준히 상승한다. 남녀 모두 결혼 연령이 30대 초반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조혼인율의 경우 지난 20년 간(2014년 기준) 비교적 꾸준히 유지되었었는데, 급격히 하락하는 추세이다. 저자는 그 이유를 초혼 연령이 상승했을 뿐만 아니라 남녀의 미혼 및 비혼 비율이 동시에 급격히 상승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여성들은 연령이 높을수록 미혼율이 상승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사회 전체적인 만혼 경향은 30세 이상의 여성에게는 비혼으로 전화될 가능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즉 이는 나이가 차도 결혼하지 않는 남녀, 특히 여성이 많아졌다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초혼 연령 상승, 만혼의 증가는 곧 ‘특정 연령까지는 결혼해야 한다’라는 결혼 적령기의 연령 규범이 약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 규범이 약화되는 원인에 대해서는, 교육수준 향상 및 경제활동 참가율과 관련이 깊다는 것으로 선행연구들의 성과로서 요약할 수 있다. 즉 대학에 가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경제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결혼에 대한 당위성이 약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학 진학과 경제 활동과 결혼은 상보적이지 않다. 가령 취업을 하더라도 결혼은 미뤄서 하면 되는 것이다.
저자는 이에 대해 여성의 취업과 결혼의 관계를 고찰함으로써 답을 구하고자 한다. 20대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2000년(55.9%)에 비해 15.9%가 상승한다. 뿐만 아니라 갈수록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20대 여성들의 축이 20대 초반에서 중후반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20대 여성들도 30대에 진입하면 경제활동 참가율이 급격히 떨어짐을 통계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여성들이 결혼 및 육아와 자녀교육을 위해 경제활동을 포기하는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여성의 입장에서는 기본적으로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경제력을 유지하기 위해 결혼과 육아에 대한 개인적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저자의 견해다.
또한 저자가 대학생들을 상대로 한 독자적인 설문 조사에 따르면, 결혼관과 출산관에 대해 남성과 여성이 매우 다른 가치관을 보여 주고 있음이 확인된다. 여성은 독립적 개인으로서 자신의 욕구를 포기하지 않고, 취업-결혼-출산순으로 이어지는 인생의 길에서 결혼과 출산을 ‘선택’ 가능한 것으로 생각한다는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다.
[su_quote]남학생들은 노동시장에서 자신의 지위가 불안정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족과 자녀 부양을 자신의 삶의 일부로 여기지만 여학생들에게서는 결혼과 출산에 대한 사회적 규범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강한 자기실현의 욕구, 즉 ‘개인화(개인 중심의 가치관)’ 경향이 더 크게 발견된다. (67-68쪽)[/su_quote]
남성 중심
가족 가치의 변화
저자에 의하면 2010년 기준으로 1자녀 가구 수가 2자녀 가구 수를 처음으로 추월한다. 지난 20여 년 간 출생 성비는 심각한 불균형 상태였는데, 1자녀 가구 수가 늘어나면서 출생 성비의 불균형성이 점차 해소되고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보수적인 남아선호사상에 의하여 첫 자녀의 성별에 따라 다음 자녀의 출산 여부가 영향을 받는 경향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곧 전통적인 남성 중심의 성별 가족구조가 점차 약화되고 있다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고, 저자는 이에 대해 남아 선호를 중시하는 가족 가치의 약화, 가족 내 여성 지위의 상승, 여성 개인의 출산 권한 증대 등 복합적 요인의 결과로 파악하고 있다. 또한 전업주부를 희망하는 남성들이 많아지고, 사회적 편견도 해소되어 가는 경향을 보임에 따라 고정된 가족 내 성 역할 분담도 변화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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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 성 관념의 약화와
싱글맘
저자는 젊은 층의 생태 변화 중 성 관념, 동거, 싱글맘(미혼모)에 대해서는 기존에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고 보고, 주목하고자 한다. 성 경험의 연령이 낮아지고, 조결혼율은 상승하지 않고, 미혼1인가구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그 실태는 제대로 파악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태 변화와 연관 깊은 곳이 낙태율이다. 우리나라는 신생아 대비 최고의 낙태율을 보이고 있으며, 이러한 낙태가 저출산의 회복을 더디게 한다고 저자는 파악하고 있다.
저출산 현상과 개인화 과정
저자가 내린 결론은 저출산 현상이 다른 요인보다도 개인의 자아실현과 다양성의 추구라는 탈전통의 개인화 과정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su_quote]저출산은 특히 여성과 밀착한 문제로, 여성의 고학력화, 경제활동 참가가 늘어나면서 새로운 삶의 ‘선택과 기회’를 접한 젊은 여성들에게서 확연히 달라지고 있는 빠른 가치관의 변화와 자아실현이라는 개인화 과정을 주목했다. (81쪽)[/su_quote]
*함께 읽으면 좋은 논문
「미혼남녀의 결혼의향 비교분석」
김정석, 2006, 『한국인구학』, 29(1), 57-70.
「개인화와 젠더사회: 개인화 시대의 사회불평등 양상」
홍찬숙, 2003, 『한국사회학』, 47(1), 255-276.
최종원 리뷰어 zwpow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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