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경부터 이른바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온갖 담론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고, 심지어 오늘날에는 대선 정국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에서 로봇공학과 인공지능 그리고 사물인터넷의 발전이 세계경제를 완전히 뒤바꿀 것이라는 전망을 내세우고 인공지능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압도한 이래, 기계가 인간을 압도하는 세상을 이야기하는 것이 마치 하나의 유행이 된 것 같다. 혹자는 영화 ‘터미네이터’나 ‘아이로봇’에 나온 디스토피아적 미래에 대해 걱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전형적인 반응은 ‘그러면 인간이 하던 일을 기계가 다 해버리면 인간은 쓸모 없어지고 대량 실업이 생기는 것 아닌가’하는 공포감이다. 나준호의 논문 「인공지능의 발전과 고용의 미래 (『FUTURE HORIZON』, 28, 2016) 또한 그와 같은 주장의 전형적 사례이다. 이 논문이 대단히 문제적인 주장을 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오늘날의 통념에 하나의 ‘태클’을 걸어보기 위해서 가장 보편적인 주장을 하는 듯한 국내 논문을 골라봤을 따름이다. 이 리뷰에서도 논문의 내용을 충실히 요약하고자 하지만, 독자들도 해당 글을 꼭 읽어보시고 나름대로 판단을 내려보시길 바란다. 그런 독자들에게 이 리뷰가 최근 유행하는 한 담론에 대한 비판적 가이드 구실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인공지능의 발달
그리고 산업에의 적용
이 논문은 우선 인공지능의 역사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고, 그 현황을 개괄한 후 그것이 오늘날 산업에 끼치고 있는 영향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알파고로 대표되는 최근의 획기적 인공지능 기술의 발달은 2010년대에 들어서 가능해졌다. 이러한 발전이 가능했던 이유는 두 가지 기술기반의 발달 덕이다. “무엇보다 ‘무어의 법칙’에 따라 컴퓨팅 자원 가격이 급속히 하락했고 분산처리 기술, 클라우드 컴퓨팅, 고성능 GPU 활용 등을 통해 거대한 컴퓨팅 역량을 저비용에 구축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학습, 탐색 기반의 머신 러닝 등 새로운 알고리즘 구축 방법론이 도입되며 돌파구가 마련되었다.”(14) 이에 따라 알고리즘은 빠르게 산업 생태계에 도입이 되었는데, 이미 많은 부분 우리의 삶에 파고들어 있다. 소셜 미디어 사이트나 검색엔진 등에서 이런 저런 정보를 소개∙추천해주는 것도 다 이러한 기술들에 기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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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열풍을 불러 일으킨 ‘알파고’. 출처: Wikipedia |
단지 이런 온라인 사이트에만 인공지능이 도입되는 것은 아니다. 금융산업에서는 이미 인공지능이 크게 도입되어서 투자 포트폴리오 구축도 인공지능이 하고 이 외에도 투자분석∙자문도 컴퓨터가 많이 맡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비용절감이 상당히 이뤄진 상황이다. 아마존에서는 구매 패턴, 라이프스타일 등을 분석해서 적절한 시점에 소비자에게 생필품 구입을 제안한다. 알리바바는 맘에 드는 옷을 찍어 검색하면 비슷한 옷을 온라인에서 찾아 구매를 도와준다. 과거에도 신기술 도입으로 인한 생산성 상승 효과가 상당했던 유통업 외에도, 의료∙언론∙법무에도 인공지능의 도입이 늘어나고 있다. 환자의 생체 데이터를 인공지능이 분석해서 진단하고 치료법을 제안한다. 저널리즘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이미 일부 간단한 기사는 로봇 저널리스트에 의해 작성되고 있는 실태다. 법무법인들에서는 문서 처리 및 검토 작업을 인공지능이 수행하고 있는데, 단순 조사역은 기계에 의해 종사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는 단지 로펌 뿐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 지식노동이 기계로 대체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변화는 인간 고용의 대폭적 감소가 수반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에릭 브린욜프슨과 앤드류 맥아피, 마틴 포트, 아론 라니에르 등이 이런 주장을 내놓는 대표적인 인물로 거론된다. [리뷰의 대상이 되는 논문에서는 언급이 되지 않았지만, 사실 경제학자 중에서 본격적인 실증연구를 통해 이런 주장을 내놓는 대표적인 사람들로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칼 베네딕트 프레이와 마이클 오즈본이다.] 물론 직무 특성별로 다를 수가 있는데, 어떤 직업에서는 단순히 대체할 수도 있다. 논문의 저자인 나호준 연구위원의 경우에는 “감성,지식 노동이 주를 이루는 판매직, 단순 사무직, 서비스직, 전문직, 연구직, 관리직 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16)한다고 하고, 특히 연구직 관리직 등은 과거에는 자동화가 활발히 진행되던 분야는 아니었던 만큼 충격이 클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업종은 고임금이므로 로봇, 인공지능 도입 선호도가 상당히 높다는 것이다. 그리고 특히 정형적이고 반복적인 업무가 많은 직종일 수록 쉽게 대체되리라 예상된다. 물론 나호준 연구위원은 어떤 직업에서는 오히려 인간노동력-기계가 보완재일 수 있다. 이 경우 “인간과 기계가 각자 잘하는 업무를 분담하는 협업 구도도 나타날 가능성”(16)이 있다. 이런 직종의 경우 기계에 의한 인간노동의 대체가 쉽지 않으리라.
하지만 저자는 보완의 가능성보다는 대체의 가능성을 더 크게 보는 듯 하다. “경영 방식이 인공지능 친화적으로 바뀔 경우”처럼 “게임의 룰”이 변하면 “인간은 점점 경쟁력을 잃다가 결국 인간의 설 자리가 크게 위축”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와 함께 저자는 “기계와의 협업에 성공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나뉘면서, 직종 내 양극화 문제가” 확대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는다(17). 이러한 변화의 급속함을 경고하며 저자는 이에 대처할 시급한 대책마련이 필요하다고 결론 짓는다.
정말 인공지능∙로봇은
인간을 대체할 것인가?
실제로 저자의 암울한 전망이 우리 눈 앞에 임박해있는가? 본 리뷰에서 소개된 논문도 그렇지만,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인공지능으로 인해 고용이 대규모로 축소되리라는 전망은 결코 주요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컨센서스’가 아니다. 만약 그와 같은 ‘자동화 호들갑’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오히려 MIT의 경제학자 데이비드 어터가 지적한 바와 같이 ‘왜 아직도 이렇게 일자리가 많은가?’하고 되물어야 할 판이다. 그런데 인공지능에 대한 과장된 기대 혹은 공포에 대해서 반박하는 이러한 연구들은 국내의 관련 담론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소개가 이뤄지고 있지 않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가히 ‘거물급’ 경제학자라고 할 수 있는 윌리엄 노드하우스도 이에 대해서 회의적이다. 우선 인공지능이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산업들이 경제 전반에서 차지하는 규모가 그렇게 크지도 않고, 그 외의 산업분야의 생산성이 급속히 상승하고 있지도 않다. 무엇보다 임금에 비해 빠른 속도로 자본재의 가격이 저하하고 있다는 증거가 없다. 즉 기계로 인간을 대체할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이 더 싸게 먹히지는 않는 상황이란 말이다. 그래서 노드하우스는 우리가 ‘경제적 특이점’에 진입하려면 100년은 소요되리라 전망한다.
한편 OECD의 경제학자들이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자동화 진전에 따라서 사라질 일자리의 비중은 OECD 평균 9% 밖에 안 된다. 미국 일자리의 절반 가량이 사라진다는 일부 연구들과 상당히 대조적인 결과를 보여준다. 기존 연구는 어떤 ‘직무’가 사라진다면 해당 ‘직업’이 자동화로 인해 사라질 거라고 가정하고 연구를 진행했다. 하지만 보통 하나의 ‘직업’은 여러 개의 ‘직무’로 이뤄져 있다. 예컨대 자율주행자동차가 보편화되어도 여전히 버스에는 요금을 징수하는 기사가 있어야 하며, 유치원이나 요양원의 셔틀버스에는 여전히 탑승자의 안전을 살피는 사람이 필요하다. 이런 식으로 하나의 일자리에는 다양한 직무가 있으므로, 직무 중 상당수가 자동화될 수 있는 경우에만 로봇과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파괴할 것이다. 그래서 직무의 70% 이상이 자동화되어 소멸할 일자리는 전체 일자리 중에서 OECD 평균 9% 가량이란 것이다. 심지어 한국 같은 경우에는 자동화가 상당히 진전되어 있어(인구대비 로봇의 수가 세계 1위다) 겨우 6% 가량의 일자리가 소멸될 전망이다!
이외에도 자동화로 인해서 사업장 운영비용이 감소하면, 사업장 별 노동자는 줄어도 사업장 자체가 늘어서 고용인구가 늘어날 수 있다. IMF가 발간하는 Finance and Development에 실린 제임스 베센의 기사를 참조해보자. 가장 극적인 역사적 사례는 ATM이다. ATM은 은행원의 직무를 상당히 대체하였고 실제로 그래서 은행 한 점포당 은행원의 수는 상당히 감소했으나, 대신에 적은 비용으로도 은행 지점 운영이 가능해져서 오히려 미국 전역의 은행원 고용은 대폭 증가하였다고 한다.
일반론적인 비판 외에도, 본 논문에서 준거로 든 몇 가지 사례들에 대해서도 코멘트 할 것들이 있다. 우선 나호준 연구위원도 지적하다시피, 인공지능의 급속한 발달을 가능케 해준 물질적 토대는 ‘무어의 법칙’이라는 급속한 컴퓨터 발달이 있다. 하지만 무어의 법칙은 한계에 봉착해있다는 전망이 압도적이다. 극도로 미세한 기판에 최대한 많은 트랜지스터를 때려 박는 식으로 반도체 기술이 발달해왔지만, 문제는 그런 식으로 컴퓨터를 발달시키는 데에는 물리적 한계가 있으므로, ‘무어의 법칙’은 위기에 봉착해있다. 논문의 저자는 또한 이른바 감정노동이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는데, 아래에서 소개할 이재현 연구자는 정반대의 주장을 제기한다. 이른바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 현상으로 인해서 감정노동은 자동화로 대체하기 어려울 수 있다. 따라서 이른바 ‘노가다’만큼이나 자동화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인간을 흉내내지만 충분히 인간적이지 않기 때문에 소비자들 상당수가 불쾌감을 느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물론 기술변화의 여파가 크지 않을 것이므로 가만히 있자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생각보다 적을지라도 기술적 실업이 발생할 전망이라면 그로 인해 피해를 입는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지원책과 (재)취업 방안은 당연히 필요하고 그에 걸맞게 복지제도 또한 개선돼야 한다. 다만 이데올로기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자동화에 대한 열광 혹은 공포는, 미국 경제정책연구소의 딘 베이커 소장이 지적했듯 ‘4차 산업혁명 때문에 실업은 어쩔 수 없어’라는 식으로 경제위기와 실업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정치경제 엘리트들의 이데올로기로 활용되곤 한다. 언제는 인구절벽으로 노동인구가 부족하다던 바로 그 사람들이 말이다. 실제로 많은 관료들이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대책이랍시고 제시하는 정책 대안이 노동시장 유연화다. 어차피 없어질 일자리를 지키는 제도는 무용하거나 해악적이라는 식의 주장이다. 그러나 앞서 살펴봤듯 실상은 대체로 다르다.
물론 우리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하는 문제는 있다. 신기술로 인해서 일부 직종의 직무가 상당히 단순화된다면, 이 경우에는 기존에는 고숙련 직종이라서 노동력을 쉽게 끌고 오기 어렵던 일부 직종에서도 ‘산업예비군’을 동원하기가 쉬워질 수 있으므로 임금 삭감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일자리 소멸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학자들 중 적지 않은 수는 그래도 ‘일자리 양극화’가 발생할 수 있다는 말은 한다. 물론 이런 식으로라도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지는 좀 더 세밀히 따져봐야 한다. 다만 적어도 실업 보다 우리가 급박히 대처해야 할 노동 문제는 임금과 불평등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만 우리가 여전히 견지해야 할 점은, 기술의 여파는 사회적으로 조절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기술 그 자체가 우리를 위협할 수 있다는 생각은 기술결정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함께 읽으면 좋은 논문
「인공지능에 대한 비판적 스케치」
이재현, 『마르크스주의 연구』 13(3),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