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인문/역사

[DBpia 2017 올해의 논문 인문학 분야 1위] 한동숭 전주대 교수

%ed%95%9c%eb%8f%99%ec%88%ad%ea%b5%90%ec%88%98%eb%8b%98
DBpia 2017년 올해의논문 인문 분야 1위는 한동숭 전주대학교 교수의 4차 산업 혁명 시대, 대학 교육과 콘텐츠입니다. 4차 산업혁명은 2017년 학계를 뜨겁게 달군 인기 키워드였습니다.  DBpia 논문 이용율이 가장 높은 11편의 논문 중 6개가 4차 산업혁명을 주제로 다루기도 했습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대학 교육의 변화를 이야기한 한동숭 교수를 만났습니다.

 

대학 교육 아직 변화 없어정부가 콘텐츠 개발 나서야

DBpia ‘2017 올해의 논문상’ 인문학 분야에는 한동숭 전주대 교수(게임콘텐츠학)의 ‘4차 산업혁명 시대, 대학교육과 콘텐츠’가 선정됐다. 지난해 8월 DBpia 이달의 연구자상을 수상했던 이 논문은 4차 산업혁명 시대 해외 고등교육 방법론을 정리하고 한국 대학이 나아갈 길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초록

본 논문은 4차 혁명시대에 고등교육기관인 대학이 발전된 기술들을 이용하여 창의적 인재 양성이란 목표를 수행하기 위해 시도되는 새로운 교육모델들을 살펴보았다. 이를 위하여 4차 산업혁명의 의미를 명확하게 살펴보고, 한국 사회의 대학에서 창의적 인재 양성이 어려운 이유를 알아보고, 여러 대안으로 제시된 사례들을 살펴보았다.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으로 야기된 미디어 및 SW 환경 변화에 맞추어서 대두되는 새로운 교육 모델을 2013년~2016 년까지 4년간의 NMC 보고서를 중심으로 알아보았다. 보고서에서 선정한 내용들을 학습내용, 학습방법, 학습도구, 학습공간, 학습평가로 나누어서 각 내용들을 파악하였다. 마지막으로 4차 혁명시대에서 한국사회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창의적 인재 양성이 가장 시급한 사안이며, 이를 위해 콘텐츠 학과들이 해야할 임무들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목차

국문초록
I. 들어가는 말
II. 4차 산업혁명
III. 대학 혁신과 새로운 교육 모델
IV. 기술발전에 의한 새로운 시도들
V. 창의적 인재 양성과 콘텐츠
참고문헌
〈Abstract〉

수상 후 5개월 동안 한 교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부응하는 대학 교육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뛰고 있었다. 인문콘텐츠학회에서 춘계 학술대회 분과위원장을 맡아 학술적으로 담론을 더 강화한다. 대학에서 강연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시 만난 그는 “아직은 가시적인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 본지와 만났던 그는 학생들의 창의성과 논리력을 키우는 교육 콘텐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마치 게임을 하듯 재미있어야 한다며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결합해 시·공간의 제약을 허무는 ‘블렌디드 러닝’ 등 쌍방향 방식도 소개했다. 여전히 유효한 의제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지식을 연구하는 방법을 연구해야

“교수와 학생들의 수준은 차이가 없다. 단지 순위를 매기는 사회로 인해 지방대 학생들의 패배의식이 그대로라는 게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 지필식의 강의, 지식 전달에만 머무르지 말고 재미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일자리가 사라지고 인간의 가치가 중요해지는 시대다. 인간으로서 가지는 기본적인 가치나 문화를 알려주고, 올바른 시민으로 양성해야 한다. 지식을 전달해주는 방법을 연구하지 않고서는 어렵다.”

예산의 문제도 재차 강조했다. 한 교수는 개별 분야 전문가들이 직접 참여하는 콘텐츠 제작사업을 각 시도교육청이나 공기업이 주도하는 방안을 제언했다. 대학에 내맡기지 말고 마치 공영방송의 고급 다큐멘터리처럼 수신료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다.

“새로운 콘텐츠 개발을 위해서는 예산이 많이 필요하다. 재정난을 겪는 대학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만들어도 한계가 있다. 케이무크(K-MOOC; Massive Open Online Course, 한국형 온라인 공개강좌) 대신 쌍방향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콘텐츠를 개발해야 한다. 교육부가 됐든, 도교육청이 됐든 콘텐츠를 만들어 대학에 공급해야 한다.”

<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논문 바로 보기 >>

인문콘텐츠 저널지 논문 보기 >>

디비피아 페이스북 >>

디비피아 트위터 >>

 

로봇과 ‘감정’을 나눌 수 있을까?

Abstract arrangement of human head and symbolic elements suitable as background for projects on human mind, consciousness, imagination, science and creativity

logofinale2016년 한반도를 뜨겁게 달군 이세돌 9단과 구글 딥마인드 알파고의 바둑 대국장, 그곳에는 이세돌 9단 이외에 알파고를 대신해 바둑돌을 잡은 알파고의 ‘대리기사’ 아자 황 박사도 있었다. 당시의 흥미로운 장면을 한 신문 기사는 다음과 같이 전했다.

“이번 대국의 주인공은 이세돌 9단과 알파고였기에, 아자 황은 최대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한 것이다. 그러나 아자 황의 무표정은 오히려 그의 존재감을 더욱 드러나게 했다. 인간의 대국에서는 상호 작용도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아자 황이 인간적인 반응을 철저히 숨기면서 이세돌 9단은 알파고와 대국을 더욱 낯설게 느끼게 됐다.” (연합뉴스 2016년 3월 16일자)

실제로 이세돌 9단은 종종 맞은 편에 인간 기사가 있을 때 할 법한 ‘습관적 반응’을 보이기도 했고, 어떤 이들은 대국자를 볼 수 없는 상황이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며 차라리 인간 대국자 역시 모니터와 마우스를 통해 대국을 펼치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논평하기도 했다.

인공 지능이 미래의 꿈이 아니라 오늘의 현실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아자 황이라는 중개자의 이미지로 포착된 알파고와 이세돌의 만남은 인공 지능이 인류에게 제기할 문제가 그저 지능이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머물지 않을 것임을 짧지만 강렬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화여대 이화인문과학원 천현득 교수의 논문, 인공 지능에서 인공 감정으로 – 감정을 가진 기계는 실현가능한가?」 (『철학』, 131, 2017)은 인공 지능이 인간에게 제기할 현실적 문제 중 하나로 ‘인공 감정’을 들고 이에 대한 철학적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인공 감정에 대한 논의가
왜 중요한가

오랫동안 ‘지성’ 혹은 ‘이성’은 인간을 동물과 같은 비인간 생물종들과 구별해주는 독특한 특징으로 여겨져왔다. 그러나 “인지적인 능력에서 기계의 추월을 염려하며 초라해진 인간의 위상을 개탄하는 사람들은 이제 감정으로 눈을 돌린다.” (220쪽)

“[퀴즈쇼 제퍼디에서 우승한] 왓슨은 경쟁에서 이기긴 했지만 승리를 기뻐하지는 못했다. 당신은 왓슨의 등을 두드리며 축하해줄 수 없고, 함께 축배를 들 수도 없다. 로봇은 이런 행동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수 없을 뿐더러 자신이 이겼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220쪽)

그러나 최근에는 사교 로봇이나 감정 로봇처럼 인간과 유사한 감정을 가진 로봇을 구현하려는 시도들이 도처에서 이뤄지고 있다. 필자는 이처럼 인공 감정을 지닌 로봇을 제작하려는 시도가 널리 퍼진 배경으로 크게 세 가지 요인을 꼽는다. 첫째, 개체화된 삶을 사는 현대인들 사이에 “똑똑하게 행동하는 로봇뿐 아니라 정서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로봇”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221쪽) 둘째, “로봇에게 감정 능력을 부여함으로써 로봇의 전반적인 성능을 향상하거나 사용자의 세밀한 필요에 더 잘 부응하[는]” 로봇을 제작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이 있다. (222쪽) 셋째, 로봇이 인간처럼 감정을 갖게 함으로써 인공 지능이 인류에게 위협이 되는 상황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다.

필자에 따르면 이런 현실과 기대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인공 감정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당위를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논의는 인공 지능이 제기하는 문제처럼 이중적 성격을 띤다. 즉, 인공 지능이 지능적 기계를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가라는 기술적 문제와, 그렇게 기술적으로 구현하려는 인간의 지능이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개념적, 철학적 문제를 우리에게 제기한 것처럼, 인공 감정 역시 기술적 문제와 개념적, 철학적 문제를 모두 제기한다.

“인공 감정에 대한 연구는 감정적 존재인 인간과 유사하게 행위하는 기계를 제작하려는 시도이면서, 동시에 감정 과정에 대한 계산 모형을 통해 감정 일반과 인간의 감정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기도 하다. 로봇에 감성을 불어넣는 작업이 새로운 화두로 등장한 이때, 인공 감정에 대한 철학적 탐구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223쪽)

와세다 대학에서 개발한 감정을 표현하는 로봇 코비안. ⓒTakanishi Lab (http://www.takanishi.mech.waseda.ac.jp/top/research/kobian/KOBIAN-R/index.htm)
감정이란 무엇인가?
인공 감정은 실현가능한가?

감정을 인공적으로 구현한다는 말은 무엇을 뜻할까?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당연히 우리가 어떤 대상에 감정을 부여하는 기준과 관련돼 있다. 즉 로봇이 인공 감정을 갖추었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우리가 어떤 대상에 감정을 부여할 만한 일반적 기준들을 해당 로봇이 만족해야 한다. 그러므로 인공 감정과 관련한 논의에서는 감정의 부여 가능성을 따지려는 인공물의 생물학적 유사성보다는 인지심리학적, 행동학적 차원의 기능적 유사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필자에 따르면 이런 차원에서 볼 때 감정은 여러 기능적 역할을 수행한다. 첫째, 감정은 “개체의 생존, 안녕, 혹은 항상성 유지에 관련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둘째, “감정은 인지 과정을 촉진하거나 증진하기도 하고, 추론 양식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예컨대 산에서 뱀과 유사한 매끈하고 긴 물체가 꿈틀거리는 모습을 보았을 때 우리가 느끼는 공포심은 위급한 상황에 주의를 집중하도록 만들어 “빠르고 효과적[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유도한다. 셋째, 감정은 “일의 우선권을 조정”하고 상황 대처의 완급을 조절하는 등 “행위를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마지막으로 감정은 “특징적인 신체 반응이나 표정 등[을] 동반”하는데, 이는 감정이 추후에 취할 행동을 예비하는데 도움을 주거나, 표정이나 제스처에서 미묘한 감정이 전달되는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도 함을 보여준다. (226-228쪽)

그러므로 인공 감정을 구현한다는 것은 적어도 인간이 보기에 이러한 기능적 역할을 수행하는 것처럼 보이는 인공물을 제작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인공 감정은 과연 구현 가능한 것일까? 필자의 현재 진단은 다음과 같다. “현재의 기술 수준에서 인공 감정을 가진 로봇은 없을 뿐 아니라 가까운 미래에 그런 로봇이 등장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판단된다.” (230쪽)

왜 그런가? 우선 감정이 수행하는 여러 기능적 역할을 고려할 때, 인공 감정이 구현된 로봇은 적어도 “어떤 것이 ‘자신에게’ 해가 되는지 도움이 되는지 평가할 수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한 기초적인 모형, 혹은 원초적 자아(proto-self model)를 가져야 한다. 둘째, 그러한 로봇은 “상당한 수준의 감각 능력과 일반 지능(general intelligence)을 갖고 있[어야]” 할 것이다. “감정은 지능적인 동물에게서 나타나며, 더 지능적일 수록 더 풍부한 감정을 나타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230-231쪽) 필자에 따르면, 이 두 가지 조건을 갖춘 로봇은 아직은 아주 먼 미래의 희망에 가깝다.

한편 필자는 기술사회사적, 기술철학적 논의를 통해서도 감정 로봇의 가능성에 의문을 표한다. 특히 필자는 기술결정론적 논의를 비판하는 데 더해, “사람들이 감정 로봇을 원하는 이유가 과장되어 있거나, 실제로는 진정한 감정을 가진 로봇을 만들어야 할 좋은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우선, 감정을 갖춘 로봇이 더 안전할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인간들 사이에서 벌어진 끔찍한 전쟁들, 살인사건들, 모욕적인 언사와 행위들은 인간이 감정을 가졌기에 혹은 감정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벌어졌다.” 둘째, 인간이 애초에 로봇을 만든 목적이 감정을 지닌 로봇의 존재와 상충할 수 있다. “우리는 [감정까지 갖춘!] 권리를 가진 주체로서의 로봇을 원하는가, 아니면 시키는 일을 똑똑하게 처리하는 노예로서의 로봇을 원하는가?” 셋째, 설사 인공 감정을 부분적으로 구현하는 일이 가능하다 할지라도 우리가 로봇에게 허용할 수 있는 감정은 무엇이고 억제해야 할 감정은 무엇일까? 가령 인간과 교감하는 로봇은 “분노, 공포, 슬픔, 역겨움, 수치, 모욕감, 당황스러움의 감정”도 느낄 수 있어야 할 것이나 이런 감정을 로봇에게 부여하는 일이 바람직한 일인지는 매우 논쟁적이다. (231-233쪽)

인공 감정(의 가능성)에 기댄
일방적 감정 소통의 위험성

이처럼 인간과 유사한 방식으로 감정을 느끼는 로봇이 단시일 내에 제작될 것 같지 않다고 해서 인공 감정과 관련한 문제가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지금도 사람들은 다양한 ‘사회적 서비스 로봇’이나 ‘사교 로봇(social/sociable robots)’들과 교감을 나누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2016년에 한 스탠포드대학 연구팀이 보고한 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은 로봇이라 할지라도 “인간의 성기와 엉덩이에 해당하는” 부위를 만질 때 “가장 강한 성적 흥분”을 느끼는 듯했다. 더욱이 이러한 감정적 관계는 로봇이 감정을 더 잘 표현할 수록 강화되는 경향이 있다.

스탠포드 대학 연구팀의 로봇과 인간의 접촉 반응 연구 장면. (http://www.zdnet.co.kr/news/news_view.asp?artice_id=20160408074044)

이런 현상들은 비록 로봇이 인공 감정을 완벽히 갖추지 않아도 사람들이 로봇과 얼마든지 깊은 교감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람들의 명시적 믿음 체계 속에서 로봇의 ‘감정’은 따옴표 속에 있지만, 실제 행동에서는 그 따옴표가 쉽게 사라지기 때문이다.” 필자에 따르면 바로 이 지점이 매우 중대한 사회적 문제를 유발할 수도 대목이다. “사교 로봇에 대한 심리적 의존으로 인해, 사용자가 조종되거나 착취당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235쪽) 가령 로봇 제작 회사는 사용자가 로봇과 ‘일방적으로’ 맺는 감정적 유착 관계를 이용해 로봇과 관련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이 문제는 사람들이 어떤 로봇에게 더 강한 감정적 유착관계를 느끼는지 더 잘 알게 됨으로써 더욱 심화될 것이다.

그러므로 인공 감정을 구현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 로봇이 등장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를 논하기에 앞서 우리가 ‘지금’ 고민해야 할 문제도 그리 가벼워 보이지는 않다. “기계에 더 많이 의존하고 사람과의 대면 접촉을 피한다면, 결국 우리는 ‘함께 외로울’” 미래를 맞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238쪽) 이런 미래를 피하기 위해 우리는 인간이 다양한 로봇과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지, 특히 인간과 “감정 로봇[의] 일방적 정서적 교감이 가져올 수 있는 잠재적 위험”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것이다.

 

*함께 읽으면 좋은 자료:

1960년대 인간과 기계
홍성욱, 2002, 『철학사상』, 14, 173-199.

인간과 기계 – 갈등과 공생의 역사
홍성욱, 2015, 『문학과 사회』, 28(3), 466-488.

문지호 리뷰어  lunatea3@gmail.com

<저작권자 © 리뷰 아카이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현실화된 유토피아’란 무엇일까?

SAMSUNG CSC

logofinale요즘 대부분의 뮤지션들이 신규 음반 발매시 프로모션 내 뮤직비디오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뮤지션이 직접 출연하여 립싱크를 하는 기본 포맷의 뮤직비디오부터 노래 가사에 맞추어 새로운 드라마를 펼쳐내는 포맷의 뮤직비디오까지. 뮤직비디오의 유형은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이러한 뮤직비디오가 음반 프로모션의 항목으로 들어선 것은 1990년대 초반으로 변진섭, 서태지와 아이들이 제작을 시도하며 점차 활성화되었다. 음악의 다양성에 따라 여러 형태를 보이고 있는 뮤직비디오는 다른 영상 콘텐츠에 비해 시적인 영상 표현을 많이 담고 있다. 이는 뮤직비디오가 전하려는 것이 영상보다 음악에 우선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뮤직비디오는 음악적 요소를 직접적으로 감각시키는 한편, 음악적 요소와 긴밀하게 조응되는 회화적 요소, 곧 시각적 대상물을 객관적․구체적으로 전달한다고 할 수 있다.”(166쪽) 결국 “뮤직비디오는 음악화된 공간 이미지, 곧 현실과는 질적으로 다르게 감각되는 공간 이미지를 구현해냄으로써 수용자에게 특별한 체험을 안기는 영상 콘텐츠인 것이다.”(166쪽)

이러한 관점에서 건국대학교 김태룡 박사와 안숭범 교수는 뮤직비디오가 만들어 낸 공간 이미지의 함의를 분석했다. 뮤직비디오 속 공간 이미지를 유형화하고 의미를 검출하기 위해 미셸 푸코(Michel Foucault)가 제시한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s)’ 개념을 활용, 뮤직비디오에 구현된 헤테로토피아의 유형과 그 의미(『씨네포럼』 23, 2016)를 발표했다. 헤테로토피아는 현실화된 유토피아로 이야기되며, 현실에 존재하는 장소이면서 동시에 모든 장소들의 바깥에 있는 곳을 의미한다.

“미셸 푸코는 1966년 12월에 라디오 채널 프랑스-퀼튀르의 프로그램인 ‘프랑스 문화’에 출연하여 ‘유토피아적 몸’과 ‘헤테로토피아’를 강의하며 최초로 헤테로토피아 개념을 제시하였고, 이후 헤테로토피아 개념은 건축, 디자인, 문학 등 분과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심미적 비평을 위한 개념어로 활용된 바 있다.”(166~167쪽)

음악에 시각적 스펙터클을 얹은 뮤직비디오
공간과 인간의 관계를 보는 헤테로토피아

완벽하고 이상적인 세계이지만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공간인 유토피아 중에 현실화된 유토피아가 존재한다고 말한 푸코는 “우리가 실제로 살아가는 공간들과 혼재되어 있지만 한편으론 절대적으로 다른 장소이며, 모든 장소의 바깥에 있는 장소”(168쪽), “또한 존재 자체로 자기 이외의 모든 장소들에 대항하며 이의를 제기하는 기능”(168쪽)을 하는 공간을 헤테로토피아라 명명했다. 즉, 헤테로토피아는 공간과 인간의 상관관계 속에서 변화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묘지 혹은 무덤의 경우 당사자의 종교적 신념에 따라 영원성의 헤테로토피아 혹은 한시적 헤테로토피아로 나뉠 수 있다. 그리고 박물관, 도서관 등은 영원성의 헤테로토피아와 관련되어있다고 볼 수 있고, 휴양촌 등은 한시적인 헤테로토피아 혹은 축제의 헤테로토피아로 분류될 수 있다. 이 외에도 푸코는 현실 공간을 더 환상적인 공간으로 비약시키는 곳을 환상의 헤테로토피아(푸코는 매음굴을 예로 들었다)로 명했고, 이와 반대로 현실을 무질서한 공간으로 격하시키는 곳을 보정의 헤테로토피아로 명했다.

“앞서 말한 개별 공간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은, 당대 사회의 역사적・문화적・종교적 조건 속에서 혹은 개인의 내밀한 경험과 의식적 지향 속에서 질적으로 다르게 의미 지워진 장소라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헤테로토피아는 물리적 좌표를 갖는 공간이지만, 인간의 내면에 전혀 다른 차원의 긴장을 견인하는 장소라고 말할 수 있겠다.”(170쪽)

뮤직비디오 속 공간도 이와 유사한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시대와 국적, 종교에 따라 시청자 각각에게 서로 다른 헤테로토피아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뮤직비디오 속 공간은 음악과 시너지를 이루며 이질감과 환상성을 증폭시키는 체험까지 선사한다. 즉, 청각적 소비물인 음악이 시각적 스펙터클에 얹어져 다감각 스토리텔링이 되는 것이다. 음악을 보조하는 프로모션 툴에서 독립적 콘텐츠가 된 뮤직비디오는 계속 진화하고 있다.

보정의 헤테로토피아가 된 학교
Another Brick In The Wall 2

동시대에 큰 충격을 안긴 핑크 플로이드의 <Another Brick In The Wall2>는 앨범이 2,300만 장 이상 팔리고 오랫동안 회자가 된 음악이다.

“뮤직비디오는 고압적인 선생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은 어린 학생의 환상과 현실이 교차되는 진행을 보인다. 영상 분량의 대부분은 학생의 환상인 셈인데, 공장처럼 규격화된 격자의 공간 속에 도열한 학생들이 훈육의 결과로 발을 맞춰 걸어가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리고는 같은 표정의 가면을 한 학생들이 기계 선반 위에서 굴러떨어지며 고깃덩어리로 분쇄되는 장면은 그 자체로 시각적 충격이 된다. 이후 장면이 전환되어 학생들은 교실 내 모든 기물을 파손하고 학교를 불태워버리지만는 이 모든 장면은 사실 영상 맨 앞에 등장했던 학생의 환상으로 밝혀진다.”(173쪽)

뮤직비디오 속에서 공장으로 착시되는 학교는 규격화되어 있고 폐쇄된 공간으로 등장한다. 이곳은 선생의 규율이 강요되고 어떠한 저항도 불가능한 지배 공간으로 표현되어, 위에서 말한 푸코의 보정의 헤테로토피아로 볼 수 있다. 학교라는 닫힌 세계를 부정적 이미지로 제시하여 1960~70년대 영국 사회를 날카롭게 이야기하려던 음악의 메시지를 강화한 것이라 볼 수 있다.

Another brick in the wall 뮤직비디오의 한장면 (출처: 네이버)
영화관, 묘지, 외딴 집에서 중첩된 헤테로토피아
Thriller

마이클 잭슨의 <Thriller> 뮤직비디오는 1999년 MTV에서 선정한 100대 뮤직비디오 중 1위를 차지한 작품으로, 이 뮤직비디오는 두 가지 헤테로토피아를 중첩시킨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두 젊은 연인이 산길에서 데이트를 하던 중 남자(마이클 잭슨)가 보름달 아래에서 갑자기 늑대인간으로 변해 버린다. 하지만 이것은 곧 영화관 스크린 속 공포영화의 한 장면으로 밝혀지고, 함께 영화를 관람하던 남자와 그의 애인은 영화를 보던 중 극장을 나와 집으로 향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두 연인은 묘지를 지나게 되는데 그때 무덤을 열고 나온 좀비들의 습격을 받게 된다. 이후 애인이 좀비의 모습으로 변한 것을 목격한 여자는 외딴 집으로 몸을 숨긴다. 하지만 그곳까지 따라온 남자와 좀비들은 여자를 공격하려 한다. 그때 여자가 소스라치게 놀라자 그의 애인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지금까지의 상황이 모두 환상이었음을 알려준다. 안도한 여자는 다시 애인과 함께 외딴 집을 나서는데, 그때 남자는 카메라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려 다시 늑대인간의 눈을 번뜩이며 현실과 환상 사이의 혼란을 초래한다.”(174~175쪽)

영화관, 묘지, 외딴 집 순으로 공간이 등장하는데, 각 공간을 기준으로 환상/현실, 삶/죽음, 에로스/타나토스라는 이항대립적 요소가 충돌한다. 먼저 묘지는 푸코가 시간의 분할과 관련된 헤테로토피아로 설명한 곳으로 삶/죽음, 인간/인간이 아닌 것, 기독교 신앙에 기반을 둔 부활/죽음에 대한 공포 사이의 헤테로토피아가 발화된다. 그리고 영화관 및 외딴 집에서는 심야 데이트를 하는 연인 관계에 대한 헤테로토피아를 발견할 수 있다. 은밀한 공간을 두고 남녀 사이에 벌어질 수 있는 긴장과 위기를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에로스/타나토스로 볼 수 있으며 위기의 헤테로토피아, 생물학적 헤테로토피아로 구분할 수 있다.

thriller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출처: 네이버)
환상과 위기의 헤테로토피아
Justify My Love & Toxic

마돈나의 <Justify My Love>와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Toxic>은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가사와 뮤직비디오로 유명하다. <Justify My Love>는 MTV에서 방영금지를 내렸고, <Toxic>은 심야시간에만 방송이 허락된 뮤직비디오이다. “이들 뮤직비디오의 ‘화제성’, ‘선정성’의 심층엔 현대사회에서 충돌하고 있는 ‘금기/위반에의 욕망’에 관한 보편적 상상력이 개입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178쪽) <Justify My Love> 뮤직비디오에서 “마돈나는 복도에서 처음 본 남자를 유혹한 후, 빈 호텔방으로 들어간다. 상의를 벗은 남자의 목에 걸린 복수의 십자가 목걸이는 지금 이 상황이 금기에 접근하고 있음을 환기시킨다. 그런데 그 순간 삽입되는 쇼트에서 마돈나는 또 다른 남자와 스킨십을 나누고 방금 전 유혹당한 남자가 그 광경을 지켜본다.”(178~179쪽) 이 뮤직비디오에서는 낯선 이성과의 만남, 집단 혼음, 동성애까지 상상이 펼쳐지는데, 이것을 시선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표현한다.

사회 윤리적으로 규제되고 있는 금기들이 깨지는 환상을 보여주는 위기의 헤테로토피아를 묘사한 것이다. 그리고 푸코가 매음굴로 예를 든 환상의 헤테로토피아 유형으로도 볼 수 있다. <Toxic>에서도 이와 유사한 헤테로토피아를 볼 수 있다. 호텔방, 비행기, 오토바이 등 상식을 벗어나는 이질적인 공간에서 금기를 깨는 행위는 오히려 금기를 환기시키는 역할을 하며 금기를 대면한다. 이 모든 공간이 비현실적 공간으로 ‘위기의 헤테로토피아’이면서 자신을 향해서만 ‘열려있는 모습을 한 헤테로토피아’라고 할 수 있다.

음악을 좀 더 효과적으로 표현하려는 뮤직비디오 본연의 목적을 넘어서, 이제는 뮤직비디오 그 자체를 하나의 별도 콘텐츠로 보아야 한다. 영화 같은 뮤직비디오로 인정받기도 하고, 음악보다 더 유명한 콘텐츠가 되어 글로벌 순위 차트를 아우를 수도 있고, 매우 실험적인 시도로 여러 분석 대상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에서도 헤테로토피아 개념을 활용하여 뮤직비디오 속 공간을 새로운 시선으로 볼 수 있었다. 뮤직비디오가 제작될 당시의 그 공간과, 분석을 하는 지금 시점의 그 공간은 엄밀히 같은 공간이지만 다른 공간이라 확실히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이 공간 즉, 헤테로토피아의 변화를 보며 시대상을 추론해볼 수 있을 것이며, 이후의 시대에 맞춰 새로운 헤테로토피아를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이지호 리뷰어  hwscjj@hanmail.net

<저작권자 © 리뷰 아카이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치인들은 왜 ‘거짓말’을 할까?

stamp lies in red over white background

logofinale정치인과 공직자․공직자후보의 공식 석상에서의 발언이나 자서전 내용, 일상에서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그 반응은 긍정과 부정을 오가며, 같은 말에 대한 해석이 사람이나 조직마다 엇갈리기도 한다. 정치인이 하는 말은 시대를 막론하고 대중들의 관심을 받아왔다. 각종 선거 때가 되면 정치인의 회고록이나 자서전 출간이 출마의 필수조건인 것처럼 붐을 이룬다. 이러한 책들 역시 정치인의 말이며 구술집이다. 정치인의 구술자료는 출간 이후 그 기록들의 사실 진위 여부와 사실에 대한 해석을 놓고 많은 논란이 되기도 한다.

정치엘리트 구술자료 
수집 목적

정치인의 구술자료는 왜 사회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일까? 조영재는 자신의 논문 ‘사실’과 ‘구술자료’의 간극에 대한 하나의 해석: 정치엘리트 구술연구를 중심으로(『기록학연구』, 43, 2015)에서 정치엘리트 구술자료를 수집하는 목적이 권력자의 집무실에서, 행정부에서, 의회에서, 정당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확인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권력은 주로 문어(written words)보다 구어(spoken words)를 통해 작동되고, 공개된 영역(front doors)보다 비공개 영역(closed doors)에서 행사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러한 권력의 작용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었을 때조차, 권력에 의해 의도적으로 흘려진 것(purposive leaks)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수집된 엘리트 구술자료는 두 가지 통념이 작용하여 그 가치를 의심받는다. 첫째, 정치 엘리트 구술자료는 구술자의 개인적 경험과 기억에 기초하고 있으며, 따라서 개별적이며 주관적일 뿐 아니라 부정확하기까지 하다는 통념 때문이다. 둘째, 정치엘리트의 속성 상 자기 합리화와 거짓 진술의 위험을 피하기 어렵다는 통념 때문이다.

이 두 가지는 정치엘리트 구술자료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지만, 정책결정에 핵심적 역할을 수행했던 엘리트의 구술이 지닌 영향력은 비엘리트(non-elite)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점에서 거짓 진술의 파급효과는 심대하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위의 두 가지 통념이 지적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정치엘리트 구술자료는 다른 구술자료와 마찬가지로 객관적이지도 신뢰할만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정치엘리트의 자기정당화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자는 여기에 공통된 전제가 있다고 보는데, 이것은 정치엘리트의 구술자료가 실제 역사적 사실과 간극(괴리)이 매우 크다는 점이다. 즉 사실과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조영재의 이 논문에서는 이러한 간극을 탐구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간극이 발생하는 이유와 양상은 어떠하며, 그러한 간극을 줄일 수 있는 해결책을 찾아본다.

‘사실’과 ‘구술자료’의
간극구조와 특성

구술대상에 관계없이 모든 구술자료는 ‘사실(fact)’, ‘기억’(memory), ‘구술‘(oral narrative)이라는 요소를 거쳐 생산된다. 구술자료와 사실 사이의 간극은 이러한 세 가지 요소를 거치면서, 때로는 구술자의 의도와 관계없이 자연적․우연적․필연적으로 형성(rising)되기도 하고, 때로는 구술자의 의식적․무의식적 의도에 의해 인위적․선택적으로 구성(making) 되기도 한다. <그림 1>은 세 가지 요소와 간극 사이의 관계를 그림으로 도해한 것이다.

최초의 간극(제1간극)은 외부의 ‘사실’과 구술자의 ‘기억’ 사이에서 발생한다. 실제 구술의 토대가 되는 것은 개인의 ‘기억’인데, 이는 단순히 외부의 객관적인 사실을 모사하거나 재현한 것이 아니다. 심리학적 발견에 따르면 완전 기억(total recall)이라는 것은 일종의 신화이며, 기억이란 일련의 선택과정을 거치는 재구성 행위(reconstructive behavior)이다.

이러한 사실과 기억의 불일치와 간극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았던 실증주의 역사학은 구술연구의 객관성을 부정하는 근거로 삼았던 반면, 일부 역사가나 구술연구자들은 이를 긍정적으로 보고 새로운 역사인식의 토대로 삼았다.

포르텔리(Portelli)는 기억이 주관적인 것이란 점을 수동적으로 인정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역사의 일부로 해석하였다. 그는 구술자료가 실제의 가시적인 사건에 대해서 보다는 그 사건들이 지니는 의미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말해주며, 실제 사건들에 대해 ‘틀린’ 진술이라 하더라도 심리적으로 계속 ‘진실’이고, 이러한 ‘진실’은 ‘사실적으로 믿을 수 있는 설명’과 마찬가지로 중요하다고 보았다. 포르텔리에게 있어서 사실과 기억의 간극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틀린 믿음이라 하더라도, 그 자체가 역사적 사실의 일부로서 신빙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1간극의 구조와 의미는 포르텔리가 생각하는 것에 비해 좀 더 복잡하고 복합적이다.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기억 간에는 다양한 동학이 있으며,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분화된 구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본 논문의 저자는 사실과 기억 사이에 인지(cognition)과정 추가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즉 제1 간극은 외부의 사실(fact) →인지(cognition) →기억(memory)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1간극이 발생하는 ‘사실을 기억하는 과정’은 ‘사실을 인지하는 과정’과 ‘인지한 사실을 기억’하는 과정으로 세분화한다.

제2 간극,
기억과 구술 사이

또 다른 간극, 제2간극은 기억과 구술 사이에서 발생한다. 이로 인해 나타나는 형태는 의도적인 허위진술, 즉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제2간극은 제1간극에 비해 간명한 형태로 나타나지만, 그 요인은 매우 다양하다. 자신의 과거 행위를 합리화하기 위해서, 이전 진술과의 일관성을 위해서,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서, 또는 반대자나 경쟁자의 위신을 손상시키기 위해서 허위진술을 한다. 이러한 간극은 앞의 유형들과 달리 ‘제3유형의 간극’으로 이름한다.

제3유형의 간극과 그 결과가 구술자료에 미치는 영향은 치명적이다. 많은 심리학 연구가 ‘인간의 삶에서 거짓말은 일상적이며 바람직하기까지 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구술에 관한 한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일부 사실에 대한 허위진술은 나머지 다른 사실에 대한 진술의 신뢰도를 손상시키기 때문이다. 게다가 구술자료가 구술자의 사적인 목적에 이용되는 결과를 초래하기까지 한다.

구술 연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주요한 간극의 형태들

객관적인 사실과 구술자료들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은 다양한 형태로 구성되며, 그 형태마다 훨씬 많은 발생요인을 갖고 있다. 본 논문에서 저자는 다양한 간극 형태 중에서 구술연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주요 형태에 대해 유형별로 제시하고 있다.

제1유형은 기억의 형성과정에서 발생하는 간극이다. 모든 간극은 객관적 사실을 인식하고 이를 기억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출발한다. 인간은 객관적 사실을 온전히 총체로서 인식하거나 재현할 수 없으며, 개인에 따라서 선택적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개인의 인식과 기억의 토대가 되는 경험은 객관적 사실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전자는 ‘기억의 주관성’으로, 후자는 ‘기억의 개별성’으로 표현된다.

제2유형은 기억의 유지과정에서 발생하는 간극이다. 주관적으로, 그리고 개별적으로 형성된 기억조차, ‘원형’을 있는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기억은 시간의 풍화과정을 거치면서 소실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변형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제2유형에서 ‘기억의 상실’과 ‘기억의 변형’에 따른 간극 유형을 다룬다. 이 유형에는 장기기억의 일부를 잃어버린 망각(forgetting)과 기억의 변형이 있다. 저자는 기억 변형을 가져오는 요인으로 ‘학습(learning, 정치엘리트들이 자신이 경험하지 못했거나 부분적으로만 경험했던 사실에 대해서도 습득된 정보에 기초해 자신의 기억을 변형시킴)’이나 ‘일관성 편향향’(consistency bias, 과거와 현재의 감정이나 신념 사이에 일관성을 과장하여 과거에 대한 기억이 왜곡됨)‘,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 일종의 자기기만을 통해 부조화에 따른 불편한 감정을 해소하는 것, 정치엘리트들이 당적을 옮기면서 현실 정치를 개선하기 위해서 등의 자기정당화를 하는 예로 구술자 자신이 자기기만적인 진술을 믿는다는 점에서 허위진술과는 다름)를 제시한다.

제3유형은 구술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간극이다. 과거의 경험이 여러 경로를 통해서 하나의 기억으로 응고(consolidation) 되었다하더라도, 간극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구술자는 구술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기억과 다른 내용을 진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허위진술 (거짓말)은 구술자료를 독해하는 데 있어서 가장 경계해야할 ‘무의미한’ 간극이라고 강조한다. 구술과정에서 발생하는 간극에는 의도적인 허위진술과 반복되는 허위진술이 있다. 허위진술은 앞에서 언급했던 인지부조화를 해소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상이하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 후자가 ‘자신을 속이기 위한 무의식적 행위’인 반면, 전자는 ‘타인을 속이기 위한 의식적인 행위’라는 점이다. 또 한 가지 차이는 진술하는 태도와 일관성에서 드러난다. 인지부조화를 해소하기 위한 진술은 실제 자신의 믿음과 생각에 기초하기 때문에 확실하고 단호한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으며, 그 진술내용은 오래도록 일관성을 유지하며 반복된다. 하지만 일시적인 목적으로 타인을 속이는 거짓 진술은 불확실하고 머뭇거리는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으며, 속여야할 이유가 사라지면 거짓진술이 더 이상 유지되지 않을 경우가 많다. 심지어는 손쉽게 이전과는 반대 진술로 이동하기도 한다. 저자는 이러한 의도적 허위진술은 논란의 여지없이 제거되어야할 간극이라고 이야기한다. 다만, 거짓말의 동기를 유추하는 것은 당시 정치적 상황이나 맥락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수는 있다. 반복되는 허위진술은 흔히 말하는, 거짓이 거짓을 낳는 경우이다. 위에서 언급한 의도적인 허위진술이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이루지는 것이라면, 반복되는 허위진술은 뚜렷한 목적을 확인하기 어려운 사례이다. 이러한 반복되는 허위 진술은 구술과정에서 나타나기도 한다. 앞에서 허위진술을 하고나서, 어쩔 수 없이 그 허위진술을 반복하는 것이다. 반복적인 허위진술은 현실세계에서도 발생하며, 때로는 믿음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생산과정에 개입 가능한
엘리트 구술자료

저자는 이미 생산된 구술자료에서 위의 간극을 걷어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그 간극들 사이에는 객관과 주관, 의식과 무의식, 사실과 허위가 뒤엉켜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것이 비판할 일만은 아니라고 본다. 이미 생산이 완료된 문서기록과는 달리. 구술자료는 생산과정에 개입여지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구술연구, 특히 엘리트 구술연구가 지니고 있는 장점 중에 하나이다.

또한, 저자는 모든 간극을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이야기한다. 제1유형과 제2유형의 간극들을 해석함으로써 사실을 보다 풍부하게 재구성하고 이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부정적인 간극인 제3유형의 간극은 구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구술자에게 충분한 기초정보를 제공하고, 구술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신뢰와 친밀감을 유지하며, 구술자료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다른 다양한 자료들과 함께 교차검토(triangulation) 하여 좁힐 수 있다고 본다.

정치엘리트의 구술자료에서 나타나는 간극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는 논문 내용을 살펴보았다. 저자는 모든 간극을 부정적으로 볼 필요가 없고, 그것을 좁힐 수 있는 대안들을 제시하고 있다. 이미 생산된 정치인이나 공직자의 구술자료 내용이 그 사람의 자질과 능력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는 때에 이들의 구술자료를 어떻게 접근해야 할 것인지 많은 고민을 하게 한다.

김연정 리뷰어  equ21@hanmail.net

<저작권자 © 리뷰 아카이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자산어보에는 왜 물고기 그림이 없을까?

dasan2_1

logofinale2000년대 중반 서울대미술관에서 일본 에도시대를 주제로 전시를 한 적이 있다. 이때 내 눈을 사로잡은 건 난학蘭學의 실체였다. 대략 17~19세기에 쓰인 박물학 저술들 가운데 섬세한 컬러도판으로 식물이며 동물을 그린 것이 적지 않아 무척 놀라웠다. 이게 난학의 수준이구나, 했다. 그렇게 감탄하면서도 심정이 참 복잡했다. 우리의 잃어버린 300년이 생각나서였을까?

전근세 해양사 분야의 권위자인 김문기 부경대 교수가 『玆山魚譜』와 『海族圖說』- 근세 동아시아 어류박물학의 갈림길(『역사와경계』, 101, 2016)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을 반갑게 읽으면서 잊었던 그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제목의 『자산어보玆山魚譜』와 『해족도설海族圖說』은 서로 다른 책이 아니다. 둘 다 정약전이라는 한 사람이 지은 같은 책이다. 그런데 왜 제목이 다를까? 말하자면 『해족도설』은 애초에 구상했던 책의 제목이고, 『자산어보』는 방향을 틀어 최종 완성된 책의 제목이기 때문이다. 해족도설과 자산어보의 사이, 여기에 어떤 비밀이 감춰져 있다.

동생, 해족도설이란 걸 지어볼까 하네
형님, 글로 자세히 쓰시고 그림은 그만두시지요.

『자산어보』의 저자 정약전과 그의 동생 정약용 사이의 우애는 잘 알려져 있다. 형은 흑산으로, 동생은 해남으로 유배되어 편지를 왕래하며 서로 의지했다. 정약전은 그 까마득한 절해고도 바닷가에 앉아 물고기에 대한 전문서를 구상했다. 그것은 바로 그림이 곁들여진 ‘도설圖說’의 형태였다. 정약전은 자신의 계획을 동생에게 전하고 의견을 물었는데 동생이 부정적인 견해를 담아 편지를 보내왔다. 인용해보면 아래와 같다.

책을 저술하는 한 가지 일은 절대로 소홀히 해서는 안 되니 반드시 매우 유의하심이 어떻겠습니까? 『해족도설』은 아주 기이한 책으로 이것 또한 하찮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도형圖形은 어떻게 하시렵니까? 글로 쓰는 것(文字)이 그림을 그려 색칠 하는 것(丹靑)보다 나을 것입니다. 학문의 종지宗旨는 먼저 그 대강大綱을 정한 연후에 책을 저술하여야 유용하게 될 것입니다.

정약전이 애초에 보냈던 편지는 남아 있지 않다. 위의 정약용의 답장에 대한 반응도 알 수 없다. 다만, 그림 없이 나온 『자산어보』라는 책이 정약전의 생각을 말해줄 따름이다. 1960년대 말, ‘한국생물학사’를 정리했던 이덕봉은 김려金鑢(1766~1822)의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와 더불어 정약전의 『자산어보』를 ‘근대과학적 어보의 쌍벽’으로 “실학파의 저술 중 가장 근대과학적인 관찰을 거친 기록”이라고 평가했고 이는 아직도 유효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것이 한글로 번역된 1970년대 말 이후 『자산어보』에 대한 평가는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심지어 중국과 일본에서도 판본 비교연구가 진행되었고 급기야 “동아시아 최초의 수산생물 전문서”라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저자는 지금까지의 연구는 중국과 일본의 어보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성급하게 평가를 내린 부분이 적지 않다. 예컨대, “동아시아 최초의 수산생물 전문서”라고 한 평가는 중국과 일본의 어보들을 검토하면 무색할 지경이라고 지적한다.

그 이유는 일차적으로 시각적 재현이 없다는 점이다. 왜 정약전은 애초의 계획대로 하지 않았을까. 그간 학계에서는 이를 두고 그림을 그리기 어려워서였다고 생각해왔다.

이어 논문에서는 『자산어보』의 저자 비정 문제(정약전 외에 공저자 2명이 있었다. 한 사람은 오랜 세월 세밀한 관찰에 따른 정확한 지식을, 다른 한 사람은 문헌에 의한 보충을 담당한 듯하다), 명칭이나 묘사 등에서의 원칙과 사례 등을 개괄하고 있는데 무엇보다 손에 잡힐 듯이, 바로 앞에서 보는 듯이 감각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자산어보』의 가장 큰 특징이라 강조한다.

동시대 중국의 학의행과 일본의 탄슈와 비교
자산어보 지나치게 높은 평가

이어 저자는 정약전과 동시대에 살면서 어보를 남긴 중국의 학의행郝懿行(1757~1825)과 일본의 쿠리모토 탄슈栗本丹洲(1756~1834)의 작업과 비교 검토를 시도한다. 가계와 학문, 벼슬, 그 외의 삶의 여건 등을 꽤 자세히 비교한 다음, 정약전의 『자산어보』, 학의행의 『기해착記海錯』, 탄슈의 『율씨어보栗氏魚譜』가 출현하기까지 지식의 흐름을 훑어보는데 매우 자세하고 유용하다. 중국 산둥 반도 해양생물을 기록한 『기해착』에는 해양생물 45종, 해양식물 2종, 광물 2종으로 전체 49종을 싣고 있다. 해양생물에는 물고기뿐만 아니라 돌고래, 게, 해파리, 해삼, 담채, 물개, 새우, 굴 등이 포함되어 있다. 학의행은 명칭을 검증하고, 고적을 인용하여 고증하고, 자신의 관찰에 의거하여 평가하고, 이전 사람들의 정오正誤를 판단하고, 자신의 견해를 진술했다. 저자는 이를 전반적으로 살펴본 뒤 몇 가지 한계를 지적하는데, “생물형태나 습성에 대한 묘사가 지나치게 간략, 과장이 심해 사실과 부합하지 못함” 등으로 볼 때 『자산어보』에 미치지 못한다. 물론 『자산어보』도 어느 정도는 이러한 약점을 지니고 있다.

정약전이나 학의행이 문인관료였던 것에 반해 구리모토 탄슈는 의사이자 본초학자였다. 총 20권인 『율씨어보』는 5권이 없어져 15권만 전해진다. 여기서 그림만 680점이 실려 있고 채색된 그림들이 매우 사실적이라고 한다. 주로 선어鮮魚를 재료로 그림을 그렸지만 입수가 불가능한 것은 건어乾魚를 사용했고 어떤 경우라도 실체를 성실하게 생생하게 그려냈다. 탄슈의 어보들이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은 오늘날 어류학자들이 그의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 어떤 물고기를 그렸는지 쉽게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정약전이나 학의행도 세밀하게 관찰하고, 미비한 부분은 현지사람에게 물어보았던 점은 탄슈와 동일하다. 그들이 탄슈에 못지않은 뛰어난 관찰자였음에도, 그들의 어보에 실린 기록들은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다. 그들이 서술하고 있는 해양생물이 오늘날 무엇인지 정확하게 비정하기 어려운 것이 많다는 사실이다”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그들 사이의 차이는 바로, 어류지식의 ‘도상화’ 여부였다.

16세기 이래로 유럽의 동물, 식물지식의 체계화에서 도상은 핵심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17세기의 과학혁명이 ‘16세기의 문화혁명’에서 배태되었음을 지적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박물학의 전성시대에 등장한 경이로운 박물도감들은 지식의 체계화에 도상이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남송대에 활약했던 정초鄭樵는 일찍이 이를 주목해『통지通志』를 저술하면서 “그림(圖)은 날실(經)이고 글(書)은 씨실(緯)이니, 한 가닥의 날실과 한 가닥의 씨실이 서로 섞여서 무늬(文)를 이룬다. 그림은 식물이며 글은 동물이니, 한 식물과 한 동물이 서로 문드러져서 변화를 이룬다”라고 말한 바 있다.

『자산어보』 중엔 ‘조사어釣絲魚’라는 것이 등장한다. 이에 대한 묘사를 보면 도상이 없을 경우 아무리 묘사가 자세하더라도 쉽게 짐작하기 힘든 경우가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조사어란 무엇일까? 몸의 일부인 ‘낚시줄(釣絲)’을 늘어뜨려 다른 물고기를 유인하여 잡아먹는 물고기이다. 정약전은 이 물고기의 사냥방법에 깊은 인상을 갖고, ‘낚시하는 물고기(釣絲魚)’라는 한자이름을 만들어냈다. 다행히 정약전은 속명을 기입해 두었다. 바로 ‘餓口魚’이다. 사실 우리가 이것이 ‘아귀’라는 것을 알고 글을 보면 모양을 떠올릴 수 있겠지만, 이 심해어를 쉬이 접할 기회가 없었던 조선시대의 지식인들은 이 글만으로 그 형체를 대충이나마 그려내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이다.

반면 일본에서는 여러 도보에서 아귀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넣고 있다. 밑에서 본 것, 옆에서 본 것, 낚시줄이 없는 다른 종의 아귀 등을 작은 점 하나까지 빼놓지 않고 그렸기 때문에 그림만으로도 이 물고기가 무엇인지 단박에 알 수 있다. 탄슈의 『율씨어보』도 마찬가지다. 정약전은 귀상어에 대해서도 매우 공들여 서술해 중국 어보의 설명을 뛰어넘지만, 중국 어보에는 귀상어가 그려진 것이 있다. 설명이 부족해도 그림을 보면 단박에 알 수 있는 것이다.

‘윤리학’적 입장이 싹트는
‘생물학’적 입장을 압도하다

 

탄슈의 『율씨어보』에 실린 물고기 도상

앞서 그간 연구자들이 『해족도설』이 그림 없이 글자만으로 완성된 이유가 그림 그릴 줄 아는 이를 구하기 힘들어서였을 거라고 추정해왔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저자는 이것만으로는 불충분하며 좀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본다. 그것은 ‘문자文子 우위의 문화’라는 시대환경이다. 정약용은 『해족도설』을 구상했던 정약전에게 학문의 종지를 지키라고 충고했다. 효제라는 유교덕목을 근본으로 삼는 것, 그것이 학문의 종지였다. 이를 바탕으로 농포農圃‧의약醫藥‧역상歷象‧산수算數‧공작工作 등에 활용되어야 하며, 만약 이를 벗어난다면 저술할 가치가 없었다. 정약용은 윤리학의 입장에서 생물학을 지향했던 형을 경계했던 것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물고기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아니었다. 그것이 현실의 성리학질서에 어떤 교훈을 주고 기여할 수 있는가였다. 저자는 아래와 같이 최종 결론을 내리며 사라져버린 해족도설을 아쉬워한다.

정약전은 동생의 이런 의견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두었다. 그는 윤리학자이기보다는 생물학자이기를 원했다. 그렇다고 동생의 충고를 완전히 무시하지 않았던 것은 두어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홍어가 교합 중에 한 쌍으로 올라오는 것을 설명하면서, “암컷은 먹을 것 때문에 죽고 수컷은 음탕함 때문에 죽는 것이니, 음란함을 탐하는 자들에게 경계가 될 만하다”고 했다. 전복을 설명하면서, 전복을 노리던 쥐가 전복에게 붙잡혀 밀물에 빠져 죽는 것을 보면서 “다른 사람을 해치려는 도적에게 경계가 될 만하다”고 했다.167) 이 두 사례를 제외하면 정약전은 자연과학자의 길을 묵묵히 걸어갔다. 다만 안타까운 점은 그림에 부정적이었던 동생의 충고를 받아들여 해족도설을 포기했던 점이다. 문자(譜)라는 ‘청각’에서 도상(圖)이라는 ‘시각’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갈림길에서 멈춰버린 것이다.

요즘 다산 정약용을 실학의 집대성자로 보는 기존 시각에 의문을 제기하는 연구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실학의 성리학적 집대성자로 더 좁혀 엄격히 바라보고 있다. 김문기 교수의 이번 논문은 이러한 연구들과 함께 읽고 생각을 갈무리해나간다면 좋을 것이다.

강성민 리뷰위원  paperface@naver.com

<저작권자 © 리뷰 아카이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무의식도 정치적이다!

fredericjameson2_1

logofinale비판이란 어떤 대상을 아무런 관련도 없어 보이는 다른 대상과의 관계 속에서 고찰하며, 그들을 서로 관련짓기 전까지는 보이지 않았던 의미를 탐색하는 일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그렇다면 비판이 잘 수행될 때, 가장 개인적이고 독립적으로 여겨지는 것에서도 사회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을까? 여기에 기꺼이 그렇다고 대답할 동시대의 학자를 꼽아보자면, 우선 프레드릭 제임슨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알다시피 그는 정치적 무의식 Political Unconscious: Narrative as a Socially Symbolic ACT』(2015/1982)을 통해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라는 신좌파적 클리셰를 정반대의 방향에서 증명해 보여준바 있다.

정윤길의 제임슨과 무의식: 비유를 넘어 매개로서의 무의식(『현대사상』, 11, 2013)은 바로 이러한 제임슨의 작업을 다룬다. 그 목표는 문화, 예술, 혹은 일상적 실천들의 범주에서 무의식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정치적 기제를 추적하는 작업인 정치적 무의식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된 제임슨의 ‘무의식’ 개념에 집중하여 그가 알튀세르와 라캉을 독해하는 방식을 검토하고, 그것이 제임슨에게 미친 영향을 살펴본 뒤 제임슨의 강점과 한계를 설명하는 것이다.

 

쉽게 제거할 수 없는 총체성
제임슨의 이데올로기 비판

저자는 우선 제임슨의 작업이 지닌 특징과 그 매력을 기술한다. 그에 따르면 제임슨의 작업은 “인류의 역사 역시 하나의 서사로 결합되게 마련이라는 기본적인 믿음을 거침없이 주장하는 대담성”에 그 정수가 있으며, “총체성에 대한 탈근대주의의 비판을 사회적 총체성과의 연관을 잃어버린” 증상으로 규정한다는 점에서 여타의 이론들과 구별된다. 이는 전형적인 마르크스주의적 독법으로서, 세계의 현상 형태를 윤리적으로 단죄하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사건과 행위들이 역사 속에서 그러한 모습으로밖에 드러날 수 없었던 필연성을 인지하며, 그것이 동시에 지금과는 다른 모습일 수 있음을 밝히는 사유 방식이다(종교는 인간 의식의 산물이 실체화되어 인간을 지배한다는 점에서 부정적이지만, 동시에 현실의 불평등을 고발하고 있다는 점에서 진리의 계기가 있다는 마르크스의 종교비판이 그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이어 저자는 제임슨에 대한 제임스 캐버너James Kavanagh와 테리 이글턴Terry Eagleton의 상반된 평가를 대조하고, 그의 이론이 “데리다의 성찰을 전유하면서도 해체주의를 압도하고 있다는 점, 과거의 윤리 비평을 다시 회복시키려 한다는 점”, “일종의 ‘알튀세르 혁명’을 전파하고 있다는 점”에서 영미 비평가들의 평가가 나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허나 사실 이 차이는 기본적으로 헤겔의 총체성을 생산적으로 독해하는 제임슨에 비해 이글턴은-<Holy Terror>(2005) 이후론 보다 헤겔을 보다 긍정적으로 언급하긴 하지만-그 방법론에 보다 비판적인데서 연원하는 듯하다.

이후로는 구조주의적 계기를 지닌 레비스트로스와 초기 푸코가 모두 자신의 작업에서 (프로이트에 의해 제기되었던 정신분석학의 개념인)무의식이란 개념을 차용했던 사례가 제시되며, 구조주의와 무의식의 상동적인 관계가 언급된다. 저자에 따르면 구조주의의 가장 큰 미덕은 “전체로서 하나의 정체성 대신 그들 사이의 관계성을 그리고 개별적 구성 요소보다 그들이 결합해서 만들어내는 전체적인 구조를 사고할 수 있는 시각을 갖게 한” 점에 있다. 아도르노의 표현을 빌려 부연하자면 구조주의는 ‘객체의 선차성’을 주장하며, 개인에 대한 사회의 우위를 강조하고, 결과적으로 주체를 구성하는 지위에서 구성되는 지위로 설정하여 나름의 방식으로 주체 범주에 대한 비판을 수행하는 점에서 유사하게 소급되는 일련의 학문적 경향을 일컫는다고 볼 수 있다. 즉, 단순화를 무릅쓰고 말하자면 19세기 말의 심리학에서부터, 20세기 초 소쉬르 등의 언어학을 거쳐 레비스트로스, 푸코, 라캉, 알튀세르 등에서 발견되는 일종의 연속적인 요인들의 흐름이 이에 해당된다. 물론 이중 스스로를 의식적으로 구조주의자로서 선언한 인물은 없다는 점에서, 이는 사후적으로 연구자들이 명명한 일종의 공통적인 연구 방식의 경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구조주의의 한계:
무의식이라는 은유

허나 저자는 구조에 대한 개체의 자율성과 개별성 즉 개별 요소들의 정체성을 사고하기 위한 답변이 구조주의에 부재하며, 신광현의 연구(“텍스트의 무의식: 프레드릭 제임슨의 경우”, 2005)를 참조하여 구조주의의 논자들이 무의식을 일종의 초월적인 은유로서 사용함으로써 정작 해명되어야 할 체계로서의 구조를 쉽게 전제한 채 논의를 전개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즉, 의식과 무의식이라는 개념쌍이 단순히 개인/사회에 유비됨으로써 구조와 요소의 관계에 대한 개념적 사고를 차단한다는 것이다.

한편 그는 탈중심화된 구조, 부재하는 원인으로서의 구조의 이론가로서의 알튀세르를 언급하며, 이를 마르크스주의 내부에서 무의식 개념을 도입한 가장 중요한 사례로 꼽는다(허나 정신분석과 역사유물론, 프로이트와 마르크스주의를 동일한 지평에서 사고하려했던 시도는 이미 20세기 초중반에 아도르노를 위시한 프랑크푸르트학파에 의해 취해진바 있다. 저자가 알튀세르를 무의식과 마르크스주의를 대표적 사례로 소개하는 것은 한국적 좌파담론의 편향이라는 배경에서 비롯된 것임을 지적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는 알튀세르 또한 마찬가지로 개별 현상 형태들에 의식을, 중층결정되는 모순의 작용에 무의식을 유비하게 된다고 주장하며, 알튀세르의 ‘징후적 독해symptomatic reading’ 개념을 비판하고 이 경우 결국 구조는 요소들의 타자에 머물러 본질로서 실체화 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사회 구조를 사회현상의 무의식으로 보는 것은 구조의 구조성을 보지 않는 잘못을 저지르는 일”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맥락에서 제임슨이 알튀세르와 다른 방식으로 라캉의 무의식 개념을 수용하려한다고 말한다. 도달 불가능한 타자성과 언어 외부의 무nothing를 표현하는 라캉의 실재계는, 제임슨에 와서 “총체성 또는 역사 자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전환된다. 라캉에게 언어 외부를 지칭하는 ‘실재’에 대한 인식이 항상 언어를 통해서만 이뤄지듯, 제임슨에게도 역사(실재)는 텍스트(문화, 예술 등을 포함하는)를 통해서만 감지할 수 있는 것이고, 따라서 텍스트는 상징계(지배체계), 상상계(이데올로기)를 경유해서만 역사를 운반한다. 허나 의식이 거하는 상징과 상상의 세계, 즉 지배와 전도의 세계 속에서 무의식은 역사에 닿고자 하며(<세기>에서 제기된 바디우의 “실재를 향한 열정”이라는 개념을 떠올려도 좋을 것이다) 소여의 체계들로부터 이탈된다(이는 실재가 상징화에 저항하고, 물자체가 기호와 일치할 수 없다는 점에서 필연적인 과정이다). 여기서 텍스트는 역사와 조우하고자하는 무의식을 동시에 담지하고 있고, 역사를 향한 욕망은 “이데올로기의 억압으로 마치 꿈에서처럼 치환, 보상, 투사의 작용으로 드러난다.”(A.로버츠, <트랜스 비평가 프레드릭 제임슨>) 동일화하고 위계와 지배를 설정하는 이데올로기에 저항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무의식은 정치적이며, 이미 모든 텍스트에 내재되어 있다는 점에서 편재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때 소외와 파편화, 지배와 억압을 동반할 수밖에 없는 (후기)자본주의 사회에서 실재, 역사에 대한 열정은 대상의 무의식의 측면에 있기에, 이제 쟁점이 되는 것은 그러한 열망, 유토피아를 향한 충동을 해석하는 작업이라는 것이 제임슨의 주장이다. 무의식의 지반, 역사성을 해명하고 그 저변을 넓히는 것이 관건인 것이다. 허나 저자에 따르면 이러한 제임슨의 결론은 “개인적 범주”와 “사회적 범주”, “개별 주체의 경험”과 “사회적 총체성”, 즉 주체와 객체의 분리가 이미 이뤄진 자본주의의 조건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양자를 종합할 수 있는 방안을 그린다기 보다는 그 불가능성을 말한다는 점에서 결국 총체성을 인식의 대상으로 한정하고 있다. 이는 틀린 말이 아닌데, 이유인즉 그러한 주/객의 분리가 자본주의 하에서는 필연적인 것임을, 따라서 자본주의가 존속하는 한 분리의 간극을 끊임없이 좁히고자하는 열망 또한 필연적으로 발생한다는 것이 제임슨의 주장일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 사회, 역사
제임슨의 3단계 해석학

이제 저자는 제임슨이 대상을 해석하는 방식이 정치, 사회, 역사라는 범주로 나뉘며, 이는 각각 “ 첫째, 좁은 의미에서의 정치적 역사: ”특수한 시점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나 사건의 연대기적 연속체“, 둘째, 그와 연관된 사회적 맥락: 공시적 체계 내에서의 ”사회적 계급간의 구성적 긴장과 투쟁“,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광범위한 의미에서의 역사: ”일련의 생산양식과 원시 시대로부터 미래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인간 사회구성체의 운명“ ”에 조응한다고 말한다. 이들은 텍스트들에 나름의 방식으로 개입하고, 상이한 위상을 지니고 있으며, 각각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의 순서와 관련된 것이다.

첫 번째 단계, 정치적 역사의 범주는 개별 작품들의 발화와 일치하는데, 이는 형식주의적 비평, 혹은 구조주의적 비평과 비슷하지만 “작품이 사회적 모순을 상상적인 차원에서 해결하고자 하는 상징적 행위로서 파악된다는 점에서” 여느 형식주의와는 다르다.

두 번째 단계는 개별 텍스트에서 사회 질서로 확장되고, 이때 사회 질서는 각 텍스트를 내외재적으로 규정하는 “계급담론의 차원에서 작동하는 것”이다. 여기서 “텍스트는 변증법적으로 변형되어 더 이상 좁은 의미에서의 개개의 텍스트로 이해되지 않고, 보다 큰 집단적이고 계급적인 담론의 형식으로 재구성”되며 “계급 담론과 개별 텍스트간의 관계는 랑그와 파롤의 관계로 재정립된다.” 즉, “첫번째 차원에서 텍스트가 하나의 규정, 말하자면 텍스트의 형식적 무늬와 구조에 내재적인, 실재적 사회 모순에 대한 상상적 해결책으로 보인다면, 두 번째 차원은 계급 담론의 랑그에 대해서 텍스트를 빠롤 또는 개별적 발화로 취급한다.”

세 번째 단계는 “전체로서의 인류의 역사, 혹은 일련의 생산양식”과, “원시시대로부터 미래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인간 사회구성체의 운명”에 집중된 방식이다. 여기서 개별 텍스트는 전체로서의 역사 속에서 독해된다. 이 역사는 마르크스주의에서 ‘생산양식’으로 표현되는 것이지만, 제임슨의 용례는 구조적 인과성, 기계적 인과성, 표현적 인과성과는 구별되는데, 외려 그에게 생산양식은 “사회 각 층위들의 상대적 자율성과 불균등 발전을 통하여, 통시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모든 생산양식의 흔적들과 미래의 맹아가 공시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사회 구성체의 형식을 띤다.” 즉 그는 상부구조의 상대적 자율적 공간을 인정하고 그들을 섣불리 경제로 포섭하지 않으면서도 경제적인 것과 그들 간의 총체적 연관을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론이 상대하는 것은 ‘문화혁명’인데, 문화혁명은 “사회 형성이 새로운 사회생활 양식을 위해 주체를 재교육하거나 재프로그램화하는 과정을 지칭”하며 새로운 실천을 생산할 새로운 주체를 암시한다.

 

텍스트의 역동성의 부재
제임슨의 한계?

이러한 주장의 귀결은 결국 역사와 실재에 대한 접근이 “정치적 무의식 속에서의 서사화”를 거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에게 예술작품은 “사회적으로 상징적인 행위”이며, 그 정치적 무의식이 해석되어야만 그 의의가 현현하는 것이기에, 그자체로 총체성에 대한 인식에 있어 실천적인 함의를 담지하지는 못한다. 즉, “무의식의 비유가 중요해지면 중요해질수록 작품의 한계는 한층 더 구조적인 것으로 미리 전제되어 버린다”는 말이다.

[su_quote]제임슨처럼 해석이 작품의 표면에 숨겨진 심층을 찾는 작업이라 여기는 경우 작품은 작품의 표면으로 환원되고 작품의 심층은 해석자의 전유물로 취급되기 쉽다. 작품의 표면으로 환원된 작품은 자기도 모르는 채 숨기고 있는 심층적 의미나 자기의 본질을 결정하는 심층적 구조에 의해 탈신비화되어야 할 대상으로 격하된다. (151쪽)[/su_quote]

[su_quote]이런 예술적 실천성은 애초에 과학적 인식과는 차별되는 방식으로 제한된 성취를 이룰 수 있을 뿐이다. 예술적 재현을 통해서 총체성에 가장 근접할 수 있다는 루카치(G. Lukács)의 입장과 비교해보면 총체성이 작품의 무의식의 영역에서 상징적으로만 드러날 가능성이 있다는 제임슨의 시각이 작품의 실천성에 얼마나 큰 제한을 두는지 쉽게 알 수 있다. (152쪽)[/su_quote]

저자는 제임슨을 향해 위와 같은 식의 비판을 개진하며, 그에게 비판적 작가론, 실천적 문예론이 부재함을 지적하고, 텍스트 자체의 역동성에 주목하는 데리다 식의 해체론보다 닫혀있는 것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요컨대 제임슨의 작업이 비평가, 해석자의 역할을 과잉표상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로 미뤄보아 그는 제임슨의 이러한 경향이 실은 아도르노에 기대고 있으며, 제임슨의 작업에 깊은 영향을 주고 있는 아도르노의 문예론을 둘러싼 쟁점들을 모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도르노에 따르면 예술작품의 진리계기란, 예술적 부정성에 있는 것으로, 이는 그때그때 존재하는 세계를 없애가지며, 즉 대상을 언어가 아닌 방식으로 보존하며(mimesis) 무의식적으로 세계의 모습을 그 내부에 담지 하되, 세계가 다른 방식으로 전개될 수 있었음을 증언함으로써(예술적 부정성) 모순을 응축하고 있는 한에서 간취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에게 예술적 실천은 본질적으로, ‘실천’이라는 언표로 그것을 지시하려할 때 외려 실패하게 되는 것이다(어떤 측면에서 <정치적 무의식>은, 사회의 모순을 누구보다 기민하게 상연해보여준 인물로서 프로이트를 꼽았던 아도르노와의 분업 속에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회는 개인의 내면에서 상연된다:
정치성은 작품의 무의식에서 상연된다

이어 논의되는 것은 제임슨의 인식론에 대한 개괄이다:

“우리가 아무리 역사를 무시하고자 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를 소외시키는 역사의 필연성은 결코 우리를 망각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역사는 그것의 결과를 통해서만 감지될 뿐, 물화된 힘으로 직접적으로 느껴질 수 없다. 토대로서 또 초월할 수 없는 지평으로서의 역사는 어떤 이론적 정당화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역사는 필연성에 대한 경험이다. 이런 까닭에 제임슨은 역사와 서사의 문제, 그리고 그에 대한 해석의 문제를 추궁함으로써 문학적 서사 특히 로망스와 소설 속에서 끊임없는 서사의 흔적을 찾아내고 이 근원적 역사의 억압되고 묻혀버린 리얼리티를 텍스트의 표면으로 복원시키고자 한다. 텍스트의 모든 결절 구조 속에는 언제나 일련의 생산양식과 원시 시대로부터 미래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인간 사회구성체의 운명의 흔적과 예기들이 공존하고 있으며, 이런 이질적이고 파편화된 단자들이 그 자체로 형식을 구성하는 것이다. 즉 예술의 형식 속에 존재하는 불연속과 차이, 그리고 동일성은 그 자체로 역사의 흔적이며, 미래의 역사를 위한 맹아적 존재인 것이다. 이런 인식 속에서 제임슨이 주목할 수밖에 없는 것은 서사적 장르와 역사, 즉 생산양식과의 관계이다.”(156쪽)

이렇듯 제임슨에게 정치적 무의식은 집단적인 것이며, 역사는 효과를 통해서만 나타난다는 점에서 실재이지만 가시적인 실체는 아니다. 다시 말해 “역사는 사물이거나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과정이 아니라 의식과 행위자에 대한 구조적 한계, 말하자면 우리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지속적으로 부딪혀야 하는 한계”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전미래가 될 수 없는, 특정한 방식으로 서사화 되어야만 하는 역사는 이야기되는 것이지만, 삶은 일련의 선택과 조직화 방식을 요구하는 것이기에, 제임슨에게서 경험의 범주와 일종의 윤리학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그 한계라고 주장하며 글을 마친다. 우리는 저자의 주장대로, 제임슨에게 일종의 경험과 윤리학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경험은 그의 초기 작업에서부터 “깊이 없음”이라는 표현으로, 윤리학은 “역사 감각의 상실”이라는 개념을 통해 그 불가능성이 지적되었기 때문이다. 허나 불가능성을 논한다는 것은 실천적이지 않은 것과는 상관이 없다. 외려 현실 속에서 상황은 정반대로 펼쳐진다. 오늘날만큼 수많은 직능단체들과 서클, 지역조직을 통해 매초마다 동시다발적인 실천이 벌어지고 있는 때도 없지만, 정작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가 되는 것을 확실히 인지한 채 공동의 전선을 확인하지 않는 이상, 어떻게든 변화가 일어나고 있을 거라 믿는 행동주의적 실천의 비실천성은 외려 독이 된다. 오늘날 경험과 윤리학의 부재를 성토하거나, 급진성을 담지 한다고 자처하는 이들보다 그들의 아포리아를 사고하는 제임슨을 더 신뢰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제 우리는 진정한 미래는 차라리 모순 속에서만 발견할 수 있음을 인정해야하지 않을까. 가장 공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정치라는 범주가 작품의 내밀한 무의식을 통해 상연되는 것처럼, 이미 존재하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전치되고 굴절되지만 세계가 지금과는 다른 방식이어야 함을 증언하며 그 속에서 새로운 질서가 창조될 수 있음을 말하는 인식을 가리키는 이름이 바로 모순이기 때문이다.

 

*함께 읽으면 좋은 논문 

「프레드릭 제임슨의 포스트모던론 연구」
김현식, 2008, 『사회와 교육』, 44, 117-138.

「프레드릭 제임슨과 변증법」
정윤길, 2010, 『현대사상』, 7, 279-295.

정강산 리뷰어  wjdrkdtks93@hanmail.net

<저작권자 © 리뷰 아카이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제3세대 오키나와 평화운동의 흐름

okinawa2_1

logofinale2016년 일본에서 개봉한 이상일 감독의 영화 <분노(怒り)>는, ‘사회 통합’이라는 공화주의적 이상이 오늘날 어떤 구체적인 이슈들 속에서 어떤 양상으로 도전받고 있는지를, 일본 사회의 이슈인 ‘묻지마 살인’ 현상을 중심 소재로 삼아 풀어내고 있는 영화다.

도쿄, 치바, 오키나와 등 세 지역을 무대로 삼아, 세 커플의 연인들은 저마다 다른 여섯 가지의 각도에서 사회로부터의 배제와 침묵의 강요를 경험한다. 이들을 배제한 일본 사회는 이들이 묻지마 살인의 범인일지 모른다며 두려워하고, 이들은 호소할 곳 없는 억울함과 무력감 속에서 터져나오지 못한 분노를 느낀다. 일본 사회가 포섭해주지 않고 대변해주지 않는 개인과 소수자들의 억울함과 이야기들은 침묵의 감옥 속에서 분노(怒り)로 응어리지고, 이들의 분노를 사회는 다시 잠재적 불안 요소로 간주하여 두려워하고 타자화하는 것이다.

영화의 세 주요 에피소드들 가운데 오키나와 에피소드는 이중의 식민지로서의 오키나와의 현실을 넌지시 비춘다. 색색의 만장을 들고 나하 시내를 행진하는 시위 군중을 배경으로 소년은 “항의한다고 뭐가 바뀌겠냐”며 무력감을 토로하고, 소년의 무력감은 미군 범죄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일본 정부의 태도, 그리고 성폭력 피해 여성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일본 사회의 분위기와 연결되어 소녀에게 상처로 다가온다.

영화의 배경을 이룬 시위는 1995년 이래로 전개되어 오고 있는 후텐마 미군 기지 반대 운동이다. 강경자 씨의 논문 「후텐마기지 문제를 둘러싼 평화운동의 규범적 고찰」(『일본연구』, 38, 2015)에서 인용하고 있는 바에 따르면, 이 운동은 “1956년의 토지보상투쟁, 1972년의 오키나와 일본복귀투쟁에 이은 오키나와투쟁의 ‘제3의 파도’“로 규정할 수 있다.

강경자 씨에 따르면 이 운동은 “문화적 정체성에 입각하여 평화를 갈구하는 새로운 패턴의 운동 양상을 보여주고 있”어, “기존의 사회 운동 혹은 반기지운동과 선명한 차이점을 드러내는 새로운 시민 사회운동이다.” 이번 리뷰에서는 강경자 씨의 논문을 통해 제3세대 오키나와 평화운동의 흐름을 살펴보고, 이 운동의 성격 규정에 관해서도 검토해 보고자 한다.

2010년 기준 오키나와 미군 기지 배치 현황. 붉은 색 영역이 미군 기지 부지로, 오키나와 섬의 25% 가량을 차지한다. 위키미디어 공용, by Amagase, CC BY-SA 3.0
오키나와 미군 기지 문제의 시공간적 위치

오키나와에는 주일미군 기지 전체의 70%가 집중되어 있어, 오키나와 본섬과 주변 부속도서 면적의 25%를 미군 기지 부지가 차지하고 있다.

특히 1995년 이후 문제가 되고 있는 후텐마 미 해병대 비행장의 경우 도심 한가운데 위치해 있어, 이 기지에서 이착륙하는 군용기들이 오랜 기간 소음 피해와 공포감 등으로 주변 지역 시민들에게 피해를 끼쳐 왔다. 특히 이착륙하는 군용기들이 사고로 주변의 가옥 등을 덮칠 지 모른다는 공포감은 2004년 후텐마 기지 바로 옆에 위치한 오키나와국제대학에 미군의 CH-53D 수송헬기가 추락한 사고를 통해 현실로 드러난 바 있다.

아시아리뷰 5권 2호에 실린 논문에서 개번 맥코맥 교수는 오키나와의 이같은 피점령 상황을 과거 류큐 왕국이 겪어 왔던 역사적 경험과 연결해 “극장국가” 상태, 말하자면 일종의 기만으로 규정한다. 1609년 침공 이래로 오키나와 지역은 일본의 직접 지배 하에 있었으나, 주변 강대국인 명과 청을 자극하고 싶지 않았던 일본은 260여 년간 류큐 왕가를 형식상 존속시키며 독립국인 척 연기하도록 강요했다.

1800년대 후반 유럽 국가들이 아시아를 향한 야욕을 드러내자 일본은 이에 맞서기 위해 스스로도 근대 국가로 변모하여 주권과 국경을 근대적으로 재편할 필요를 느꼈다. 일본과 청에 이중 복속되어 있어 주권 개념이 모호했던 류큐 왕국은 유럽 국가들에게 개입의 빌미가 되었고, 일본은 1872년 오키나와 지역을 일본의 영토로 정식 편입함으로써 국경을 분명히 하여 이 문제를 해결했다.

근대 군국주의 국가로서의 필요에 따라 이후 70여 년간 일본은 오키나와에 혹독한 동화 정책을 펼친다. 동화 정책은 태평양전쟁 말기인 1945년의 오키나와 전투에서 주민들에게 강요된 ‘옥쇄’를 통해 그 정점에 달하지만, 이후 전후 처리 과정에서 일본은 본토 지배자들의 이익 수호를 위해 오키나와를 철저히 버린다. 1947년 덴노가 직접 맥아더에게 미군의 오키나와 장기 점령을 청원했던 것은 그 사실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미국의 아시아 지역에서의 군사 전략에 있어 중요한 동맹자가 됨으로써 아시아 지역에서의 영향력을 다시금 되찾기를 의도했던 일본의 이해 관계에 따라 오키나와 지역은 거래의 상품이 되었다. 1956년 일본 본토에서의 미군 점령이 종료되었음에도 오키나와에서는 미 군정이 계속되었는데, 임경화 씨의 2015년 논문에 따르면 일본은 오키나와에서 “주민의 민생 복지 향상을 위해 미일 양국이 협력”하고 있음을 이유로 들어 오키나와가 식민지 상태가 아니라는 주장을 미국과 함께 국제 사회에 주장했다.

오키나와 주민들은 평화헌법 하의 일본으로의 복귀가 오키나와의 군사 점령 상태를 끝내고 평화로운 삶으로 이행할 수 있도록 해 줄 것으로 기대해, 1972년 대대적인 운동을 통해 일본 복귀를 이뤄낸다. 그러나 이 반환은 또다른 기만의 시작이었다. 형식 상으로는 일본 영토가 되었으나, 일본 정부는 미군이 오키나와에 계속 주둔해 주기를 희망하면서 거액의 보조금을 지불하기로 한 것이다.

결국 일본은 오키나와 지역을 오랜 기간 지배 하에 두면서도, 오키나와를 실질적인 일본의 일부로 간주하여 책임지려 하지는 않고 본토의 지배자들의 이익에 따라 삼키고 뱉는 것을 반복해 오면서 오키나와 주민들에게 기만을 강요해 온 것이다. 400년간 이어져 오고 있는 오키나와의 기만적인 피지배 상황은, 예나 지금이나 아시아 지역에서 군사적 패권을 차지하려는 강대국들의 이해 관계에 철저히 복무하고 있다.

후텐마 미 해병대 기지 이전 문제에 항의하여 2009년 11월 8일 오키나와 현 기노완 시에 모인 시위 군중. 위키미디어 공용, by Nathan Keirn from Kadena-Cho, Japan, CC BY-SA 2.0
1995년 이후 후텐마 미군 기지 문제의 전개

미 해병대 소속 병사 2명과 해군 소속 병사 1명이 12세 아동을 납치하여 성폭행한 1995년의 사건은 후텐마 미군 기지의 철수를 요구하는 여론이 불타오르는 계기가 되었다. 기노완 시 대공원에 결집한 8만5천 명의 시위 군중이 보여준 여론에 밀린 미일 양국은 오키나와 주둔 미군 문제 해결을 위한 협의기구인 SACO를 설치하여 1996년에는 후텐마 기지 반환 및 이를 위한 대체 시설의 마련을 골자로 하는 보고서를 발표한다.

후텐마 기지를 반환하겠다는 미일 양국의 약속은 오키나와의 역사에서 몇 번이고 반복되어 온 기만의 또다른 시작으로 이해할 수 있다. 1996년의 공동선언은 겉보기에 오키나와 주민들의 민의를 반영하는 제스쳐처럼 보였지만, 이를 근거로 1997년에 수립된 “신미일방위협력지침(신가이드라인)”은 아시아 지역에서 미군의 활동에 대한 일본의 지원 역할을 강화, 그에 따라 오키나와 미군 기지의 전략적 중요성을 더욱 강조하고 오키나와 주민들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같은 방향성은 2001년의 9.11 테러와 뒤이은 미국 부시 정부의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전쟁 등을 거치면서 양국 정부에 의해 몇 차례에 걸쳐 강조되고 재확인되었다. 오키나와의 미군 점령을 끝내라는 주민들의 요구로 인해 만들어진 정세 변화를, 미일 양국은 아시아 지역에서 미군의 전략적 재배치를 본격화하기 위한 기회로 역이용했던 것이다.

부시 정부의 “해외 주둔 미군 재배치 계획(GPR)”에 따라 미일 양국은 후텐마 기지의 대체지를 오키나와 섬 북부의 나고 시에 위치한 헤노코 만을 매립하여 건설하는 것으로 2001년 합의한다. 이는 후텐마 기지의 철수 혹은 적어도 오키나와 현 이외 지역으로의 이전을 원하던 주민들의 바람을 정면으로 묵살한 것이었고, 이후 오키나와 반기지 운동은 헤노코 이전 반대 및 후텐마 조기 반환 요구로 기조를 분명히 하게 된다.

헤노코 이전을 추진하는 미일 정부와 이를 저지하고자 하는 대중 운동 사이의 충돌은 헤노코 만 해저 조사가 시작된 2004년부터 본격화되었다. 2004년 8월 오키나와국제대학 미군 헬기 추락사고는 후텐마 기지가 기노완 시 주민들에게 주는 공포감을 현실화시켜 보여준 사건이었던 동시에, 사고 지점이 민간인 사유지였음에도 일본인이 사고 현장에 접근할 수 없도록 하는 미일지위협정의 불평등성 문제를 다시금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사건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다시금 끓어오른 반기지 여론은 1995년 이래 최대 규모의 시위로 나타났다. 주민들의 여론은 2006년에 헤노코 신기지 건설 계획이 미일 양국 합의에 의해 구체화되면서 역시나 묵살되지만, 2009년 후텐마 기지의 “적어도 현외 이설”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하토야마 총리의 취임은 이 시기에 이미 미군 기지에 대한 반대 여론이 오키나와를 넘어서 일본 전역에서 상당한 공감을 얻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강경자 씨가 진필수 교수의 2011년 논문을 인용하며 평가하는 바와 같이, “하토야마 내각의 후텐마문제 재협상 시도는 미일안보체제 50년의 역사를 뒤돌아보게 하는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미국의 오바마 정부는 일본 정부의 이같은 시도를 반미로 규정하며 강하게 압박했고, 일본의 정치 지형에서 미국과의 관계 악화는 커다란 모험이었다. 정치적 동력을 상실한 하토야마 정부가 취임 1년도 채 되지 않아 후텐마 기지 재협상 시도를 사실상 포기하자, 2010년 4월 25일 오키나와에서 9만 명의 군중이 결집해 항의한 것을 비롯해 도쿄 등 일본 각지에서도 시위가 벌어졌고, 워싱턴과 하와이, 샌프란시스코 등에서도 연대 집회가 개최되었다.

후텐마 기지 문제 해결 실패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하토야마의 후임 간 나오토 총리는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참사를 거치며 낮은 지지율 속에 무기력하게 미국의 요구에 끌려다니며 네 차례에 걸쳐 헤노코 신기지 건설 계획을 재확인한다. 뒤이어 “미일 동맹 강화를 핵심 안보 과제로 삼은” 아베 신조 정부가 들어섬에 따라 헤노코 이전은 급물살을 탄다.

아베 정부의 전폭적 지지 하에 나카이마 오키나와 현 지사는 2013년 말 헤노코 만 매립 신청을 승인하는 등 헤노코 이전을 강하게 추진한다. 이에 대한 일본 대중의 저항은 두 가지 형태로 드러나는데, 첫째는 “초국적 연대 운동의 양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반기지 운동으로서, 2014년 1월 시작된 세계 지식인 및 문화인들의 서명 운동을 강경자 씨는 그 대표적 사례로 제시하고 있다.

둘째는 2014년 11월 치러진 오키나와 현 지사 선거에서 나카이마 지사가 참패하고, 후텐마 기지를 적어도 오키나와 현 이외 지역으로 이전시킬 것을 공약한 오나가 후보가 압도적인 지지율로 당선한 것이다. 2013년의 매립 신청 승인으로 헤노코 이전은 기정사실화된 듯 보였으나, 신임 오나가 후보가 취임사에서 “헤노코 연안 매립 승인 무효화를 위한 검토계획”을 밝히고 있어 향후 추이를 예단할 수 없다고 강경자 씨는 정리하고 있다.

경향신문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오키나와 현청의 “헤노코 연안 매립 허가 취소 결정”은 2016년 12월 일본 대법원에서 위법으로 판결되었다. 이후 2017년 초부터 헤노코 만의 매립 공사가 진행 중이며, 이를 저지하기 위한 주민들의 저항도 치열해지고 있다.

강경자 씨는 1995년 이후 오키나와 반기지 운동이 이전의 오키나와 지역 대중 운동과 차별화되는 지점을 “평화적 생존권”이라는 “규범”에서 찾는다. 다시 말해 1995년 이후의 반기지 투쟁에서 오키나와 주민들과 이에 연대하는 대중들은 “평화, 인권, 환경” 등의 가치를 공동의 주장이자 목표, 더 나아가 행동 양식이자 정체성으로서 합의하고 형성해왔으며, 이 점에서 이전의 반기지 투쟁과 구별되는 지점을 만들어 왔다는 것이다.

이 점은 1995년 이후 평화를 핵심 가치로 하는 수많은 시민 단체들이 오키나와 안팎에서 결성되어 이후의 대중 운동에서 주도적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과, 이후 수많은 집회와 궐기대회에서 발표 및 채택된 성명, 입장, 결의 등이 일관되게 평화와 인권의 가치 및 요구를 핵심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확인된다.

“평화적 생존권(right to live in peace)”이란 국제적으로는 “평화권(right to peace)”이라는 이름으로 더 널리 통용되는 개념으로서, 평화 문제를 인권의 일부로서 파악하고자 하는 관점이다. 일본의 경우에 굳이 ‘평화적 생존권’이라는 이름으로 주로 쓰이고 있는 것은, “전 세계 국민이 다함께 공포와 결핍에서 벗어나서 평화 속에서 생존할 권리를 가지고 있음을 확인한다”고 언급하는 평화헌법 전문 제2항에 이같은 개념이 이미 천명되어 있음을 강조하기 위한 맥락이 있다.

평화적 생존권이라는 대안 가치의 제시는 오키나와 외부적으로는 군사력의 압도를 통해 전쟁을 억지해야 한다는 안보 논리에 대한 대항 담론을 형성하는 동시에, 오키나와 내부적으로는 오키나와라는 지역의 정체성에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즉 기존의 오키나와란 경제적 자립이 불가능하여 미군 기지 덕분에 먹고 사는 섬으로 인식되어 미군 기지의 존재가 필수 불가결한 것으로 여겨졌으나, 오늘날에는 환경과 인권의 가치를 중심으로 새로운 지역 정체성이 구성되고 있다.

국제 질서 유지를 통한 평화를 명목으로 강요된 군사 점령이 실제 오키나와 주민들의 삶에서 평화와 안전의 실현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인식 하에, 오키나와의 평화란 미군 기지의 철수 및 축소, 그것을 통한 인권과 환경의 보호로써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시각이 공감을 얻으면서, 2004년을 전후하여 오키나와 주민들의 미군 기지 반대 여론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군사주의, 국가주의의 대항 담론으로서 평화운동이 갖는 국제 연대의 가능성은 현실 정치의 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희망이자 대안이다. 강경자 씨는 미일 양국의 정치외교 문제라는 사안의 특성 상 오키나와 지방자치 차원이나 일본 국내 정치 차원에서 해결될 수 없어 평화적 생존권 담론이 규제적으로 역할하기 어려움을 한계로 지적하면서도, 미국 정치권 내에서도 헤노코 이전의 현실성이 의문시되고 있는 등 국제 연대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규제적 역할이 수행되고 있음을 희망으로 제시한다. 비슷한 문제로 투쟁 중인 한국의 제주도 강정마을 및 성주 주민들과 오키나와 주민들 사이의 연대가 이미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논문에서는 1995년 이후의 운동 양상만을 다루고 있을 뿐, 1956년이나 1972년의 이전 운동이 오늘날의 운동과 어떤 점에서 달랐는지를 자세히 비교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과거의 오키나와 평화운동이 경제적 보상요구나 생존권 보장, 반미 이념투쟁과 억압과 착취에 대한 투쟁과 같은 성격이 강하였다면 후텐마기지를 중심으로 한 평화운동은 문화적 정체성에 입각하여 평화를 갈구하는 새로운 패턴의 운동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며 짧게 언급할 뿐이다.

지나친 노파심일지 모르나, 이같은 구별은 자칫 지나치게 도식적으로 받아들여질 경우에, 운동을 ‘탈경제적’이고 ‘탈정치적’인 것, ‘기존의 투쟁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것’으로 지나치게 이상화하게 될 우려가 있다. 사회운동은 그 전개 과정에서 당사자들의 현실적인 생존의 요구, 정치권을 향한 근본적 대안의 요구, 혹은 광범위한 연대를 위한 의제의 결합과 확장으로 얼마든지 나아갈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경우에, 기존에 운동을 이상화해 왔던 논리들은 그대로 운동이 ‘불순’하게 ‘변질’되었다며 매도하는 논리로 역이용되기가 너무나도 쉬운 것이다.

도식적 구별에 따른 이같은 위험성은 논문이 1995년 이후 운동의 전개 양상을 다루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불가피한 것이었을 수 있다. 오키나와를 둘러싼 문제를 총체적이고 입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기적으로 보다 넓은 범위를 시야에 넣고 역사적 사건들의 맥락과 관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런 필요는 결국 보다 폭넓은 독서를 통해서만 충족될 수 있는 것이기는 하다.

 

* 함께 읽으면 좋은 논문

「400년의 류큐·오키나와와 동중국해 기지문제의 현재」
개번 맥코맥, 2016, 『아시아리뷰』, 5(2), 233-258.

「’분단’과 ‘분단’을 잇다: 미군정기 오키나와의 국제연대운동과 한반도」
임경화, 2015, 『상허학보』, 44, 229-269.

강병준 리뷰어  iyyaggi@gmail.com

<저작권자 © 리뷰 아카이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왜 우리는 쇠고기 문제에 분노했나?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080503_ROK_Protest_Against_US_Beef_Agreement_02.jpg

logofinale국민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고 정부가 일방적으로 체결했다는 비판을 받은 2008년 한미 FTA의 여러 내용 중 가장 많은 논쟁을 양산한 항목은 단연 쇠고기 수입 개방 문제였다. 쇠고기 수입이 광우병으로 야기될 국민의 안전 문제와 직결되며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당시의 한미 FTA 문제를 떠올리면서 광우병을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왜 하필 쇠고기였나? 협상안에 올라간 다른 여러 문제들이 쇠고기보다 덜 중요해서일까? 아니면 쇠고기가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라 더 민감한 이슈로 대두되었던 것일까? 하대청은 「’위로부터의 지구화’와 위험담론의 역사적 구성(『환경사회학연구 ECO』, 18(1), 2014)에서 역사적인 담론 분석을 통해서 “왜 유독 미국산 쇠고기만이 이슈가 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특정 시기에 특정 문제가 지배적인 담론이 되고 다른 담론은 그렇지 못한지를 이해하려면 논쟁 이전에 축적된 역사적 담론 배치를 고려해야만 했다.

 

 

스토리라인의 형성:
개방-보호에서 위험 인식으로 프레임 이동

쇠고기 수입과 광우병 위험의 관계는 과학적으로 검증하여 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초반의 예상을 깨고 몇 년 동안 첨예한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촛불집회로 상징되는 쇠고기 수입 반대 입장에서는 광우병 논란에 대해 ‘정부의 졸속 협상으로 실제로 증가한 위험’이라 주장한 반면, 정부와 미국 측에서는 ‘과장되고 만들어진 허위적 위험’이라 하며 대립했다. (236쪽) 이러한 대립은 현재까지도 그 간극을 좁히지 못한 채 지속되고 있다. 하대청은 2008년 광우병 위험이 실재하는가 아닌가의 문제는 특정한 맥락 속에서 구성되기 때문에 특정 위험이 논란이 되었다면 그 위험이 어떤 담론 내에서 논의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령 유럽의 죽어가는 나무는 과거 자연적 스트레스의 결과로 여겨졌지만 오늘날 산업사회에 대한 비판이 지배적인 사회에 와서는 그런 나무들이 ’산성비’의 증거나 환경오염의 결과로 논의된다.

한국에서 쇠고기를 둘러싼 무역 분쟁 논란은 2008년 FTA 협상과 함께 갑자기 생겨난 문제는 아니었다. 농민의 생존권 문제와 직결되는 이유로 미국산 쇠고기는 수입을 시작한 1976년을 이래 국제 무역 협상에서 중요한 화두였다. 특히 한국은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이후 미국산 쇠고기의 국내 수입이 꾸준히 증가하며 2001년 기준 한국은 미국산 쇠고기를 세 번째로 많이 수입하는 국가였기 때문에 80년대 이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줄곧 한미 간의 주요한 통상 현안으로 자리잡았다. 이런 상황의 한국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는 자연스레 농축산 농가들의 이익과 연결되어 ‘개방’ 대(對) ‘보호’ 담론 내에서 논의되었다. 즉, 교역을 자유화 해야 한다는 개방 쪽 입장과 국내 축산 농민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보호 쪽 입장의 대립이었다.

그러나 2003년 12월 말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전면 중단되며 논쟁의 양상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기존에 ‘개방과 보호’ 프레임 내에서 문제가 정의된 미국산 쇠고기 문제는 ‘위험과 안전’이라는 프레임 내에서 재설정 되었다. 과거 축산농가들의 피해를 해결하기 위해 ‘관세율과 보조금 등’을 어떻게 조율 할지에 대한 문제가 이제는 ‘수입 위험 분석, 위생검역, 소비자 안전’ 등의 이슈와 얽히게 된다. ‘축산업 취약성’에서 ‘건강 취약성’으로 문제의 초점이 이동하며 소비자 건강을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고자 하는 환경단체와 소비자단체들이 논쟁에 참여하였고 이들은 기존 축산농가 측과 연합 전선을 이루게 되었다.

여기서 저자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나 관심을 가진 이들이 협력하고 정치적인 연합을 이룰 수 있는 “담론 연합(discourse alignment)”이 발생하며 새로운 아이덴티티와 정치적 주장이 생겨나는 순간에 스토리라인의 형성이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2008년 광우병 위험은 “아직은 실재가 아닌(not yet real)’, 울리히 벡이란 학자의 용어를 빌리자면 “예견되는 위험(anticipated risk)” 중 하나였을 뿐임에도 광우병 문제가 무엇보다 위험한 요소로 국민들에게 각인된 데에는 광우병 담론을 둘러싼 스토리 라인이 만들어졌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su_quote]담론은 개념, 아이디어, 범주의 앙상블로서 이를 통해 사회적 물리적 현상에 의미가 부여되는 것이다. (239쪽)[/su_quote]

위험과 관련한 문제들은 각 담론의 경쟁과 연합을 통해 담론이 형성되는데, 특히 복잡한 영향관계를 가진 위험 담론은 압축적 인과관계의 스토리라인을 통해 강력하게 인지된다. 예를 들어, 산성비를 야기하는 요소 및 산성비를 둘러싼 영향 관계 등은 실제로 매우 복잡한 메커니즘을 갖고 있고 특정 부분은 명확히 해명할 수 없음에도 우리는 보편적으로 산성비를 이산화탄소-산성비-환경파괴 라는 단순한 인과적 진술로 쉽게 이해한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스토리라인 때문에 위험의 실재성을 부정하는 식으로 이해하기 보다 저자가 강조하듯, 위험의 “중요성과 실재성이 특정한 담론적 구조 속에서 구성된다”는 점을 상기하며 논의를 이해 해야겠다.

 

위험담론과 정의담론의 협업:
‘위로부터의 지구화’에 대한 저항

‘개방과 보호’가 ‘위험과 안전’이라는 프레임과 합쳐진 쇠고기 수입 문제는 2006년 이후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과의 FTA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다시 변화를 겪는다. 당시 정부는 국민의 충분한 의견 수렴 없이 양자간 무역 체제의 경제적 이점만을 근거로 협상을 추진하고 초반에 부정했던 미국이 요구한 “4대 선결조건(쇠고기 수입재개, 스크린쿼터 축소, 자동차 배출가스 기준 완화, 의약품 경제성 평가계획의 잠정 유보)”을 양보한 문건이 뒤늦게 밝혀지는 과정에서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정부의 이러한 행태는 참여 정부를 지지했던 세력들이 이탈하고 분화하는 결정적 계기를 만드는 동시에, 쇠고기 수입 문제와 관련해서 위험-안전 담론이 보다 확고하게 자리잡는 계기를 만들었다.

정부는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협상이 과학적 검역의 문제라 하며 FTA협상이 가진 정치경제적, 사회적 함의를 최대한 배제하려고 했지만 이제 쇠고기수입 문제는 더이상 안전 문제의 보호만을 의미하지 않게 되었다. 문제를 계속해서 축소하려고만 하는 정부의 태도는 사람들로 하여금 ’굴욕적 외교’를 하는 정부에 실망하고 ‘주권’을 사수해야 한다는 위기감을 고조시켰다. 이제 ‘주권’ 논란이 포함된 광우병 위험 담론은 더이상 과학 분석의 대상만이 아닌, 동시에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경제적 이슈로 받아들여졌고, ‘개방-보호’와 ‘위험-안전’을 결합시킨 이전의 담론연합은 국가주권 이슈들을 한데 모아 ‘정의주장(justice argument)이나 ‘도덕성 주장(morality argument)’ 등과 쉽게 연계될 수 밖에 없었다. “경제적 지구화를 추진하는 위로부터의 강한 드라이브가 한미 FTA에 반대하는 반지구화 담론 및 쇠고기 안전을 우려하는 위험 담론과 ‘마찰’을 일으키면 서, ‘쇠고기 문제’는 중요한 국내정치적 현안이 되었던 것이다.” (257쪽)

[su_quote]이렇게 광우병 위험은 식품안전, 농업의 미래, 공동체의 미래상, 자연에 관한 윤리, 정치적 주권 등과 다양하게 얽힌 채 ‘위험의 다의성’이라는 특성을 보여 주었다. (260-261쪽)[/su_quote]

 

메타포를 통해 실재하는 위험:
뼛조각으로 인지된 위험

앞서 설명한 스토리라인의 형성과 더불어 한국의 광우병 위험 논쟁에서 큰 역할을 한 메타포가 있다. ‘뼛조각’이 바로 그것인데 살코기 속에서 발견된 ‘뼛조각’이나 ‘등뼈’와 같은 이미지들을 통해 대중들은 광우병이 실재할 수 있는 위험임을 강하게 인식했다. 저자는 “현대 사회의 상당수 위험들은 인간의 지각으로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비가시적이며 그 도래나 현존을 정확히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런 위험을 인지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스토리라인과 같은 내러티브와 함께 메타포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고 하였다. 즉 수입된 쇠고기에서 발견된 뼛조각은 국내에서 공식적으로 발생한 적 없는 ‘예견된 위험’에 불과했던 광우병 위험이 “‘물질화되고(materialized)’, ‘육화되고(embodied)’, ‘언어화되었고(enunciated)’ 일반 대중이 위험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264쪽)

 

“죽은 나무라는 생물학적 현상이 환경위기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도 ‘산성비’라는 메타포가 있었기 때문이다.” (264쪽)

 

흥미로운 점은 애초에 ‘뼈없는’ 살코기만을 수입할 것을 요구하고 협상한 농림부 입장에서는 뼛조각을 제거한 이유가 위험예방 차원이라기보다 당시 뼈가 붙은 갈비의 수입이 전체 수입액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하여 축산업계 이익에 가장 큰 위협이라는 경제적 이유 때문이었다. 뼈의 위험성에 대해 심각하게 인식했다기 보다 경제적 이유와 더불어 당시 국내의 반발을 달래려 하는 목적이 있는 셈이었다. 그러나 협상 이후 재개된 수입산 쇠고기에서 계속 뼛조각이 발견되며 시민단체와 대항전문가들은 미국 측의 검역 통제 시스템과 농림부의 안일한 대책 등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처음에 뼈 제거를 수입위생조건으로 합의한 것은 한미 양측의 정부가 수출재개, FTA 협상, 국내 축산업계 배려 등을 정치적으로 계산한 결과였지만, 이후 뼛조각은 광우병 위험을 육화하는 핵심요소가 되었다.” (267쪽) 즉, 작은 뼛조각이라는 메타포가 위험을 가시화하고, 이를 정부가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모습은 대중들로 하여금 위험을 ‘가능성’만 있을 법한 정도에서 실재하는 사실이라는 인식을 강하게 갖게 하였다.

 

선택과 배제의 담론 구성 역사:
우리나라 쇠고기는 미국산보다 안전한가?

“자동차보다 더 해묵은 분쟁 분야”였던 미국산 쇠고기 문제는 미국의 광우병 발발 이후 ‘개방→농업 붕괴→위기’에서 ‘개방→쇠고기 위험→위기’로 스토리라인이 옮겨갔다. ‘국민 건강’이 핵심인 된 논쟁은 과거 축산농가만 이해관계에 얽혀있던 시기와는 결을 달리하며 쉽게 타협 불가능한 의제로 상정되었다. 광우병 위험 담론은 이후 국민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일방적인 협상 과정에서 ‘국가주권’을 포함한 정치사회적 함의를 가진 정의담론과 결합하며 관련 이해관계자들을 연대하게 하였다. ‘뼛조각’과 같은 메타포가 ‘예견되는 위험’의 실재성을 가시화되며 정부의 위험 통제 시스템에 대한 의문은 커져만 갔다.

저자는 이 논문에서 위험이 보편적이기 보다 국지적이고 맥락적인 조건에 따라 달리 정의되기 때문에 위험 담론을 역사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2008년 당시 국내 발병 사례가 한 건도 없었음에도 쇠고기 수입과 광우병 문제가 유독 큰 논란을 불러 일으켰는지, 대중이 어떻게 위험을 강하게 인지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이런 역사적인 담론 분석을 통해 배제된 것들도 있음을 상기시키며 미국산 쇠고기가 정치적 이슈가 되는 담론의 형성 과정에서 자연스레 배제된 항목들을 드러낸다. 가령, 우리는 위험통제 조치가 미국보다 더 미흡할 수 있는 국내산 쇠고기의 위험은 왜 전혀 문제 삼지 않았는지, 캐나다산 쇠고기나 중국산 멜라닌 같은 경우는 왜 논의가 더 심화되지 않았는지 등의 문제들 말이다.

[su_quote]역사적으로 구조화된 고유한 담론적 배치는 어떤 시점에서 특정 위험은 선택되어 지배적인 담론이 되게 하는 반면,다른 담론은 적절하지 못한 것으로 간주되어 배제 되도록한다. (271쪽)[/su_quote]

문지호 리뷰어  lunatea3@gmail.com

<저작권자 © 리뷰 아카이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로봇을 ‘타자’로 마주할 수 있을까

robot2_1

logofinale‘인간’을 본위로 하는 모든 휴머니즘 이론은 데카르트의 인간중심주의적 사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인식’의 영역을 물질과 구분하는 가운데 전자의 우위성을 강조하는 이원론적 세계관을 통하여, ‘사유하는’ 인간은 무엇보다 그 고유의 가치를 확고히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이 모든 “가치 판단의 준거나 기준을 인간에 두”며, “도덕 공동체의 범위를 인간으로 국한”하는 인간중심주의는 과연 옳은가. 신상규인공지능, 새로운 타자의 출현인가(『철학과 현실』, 112, 2017)에서 인간이 아닌 로봇의 ‘타자성’을 재조명하는 것으로 우리에게 새로운 질문을 안겨주고 있다.

동물,
윤리적 피동자

휴머니즘의 역사는 노예해방이나 여성 권리 회복 등, 인간의 존엄성을 위한 투쟁을 승리로 이끈 성과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렇듯 인간 보편에 대한 가치가 회복됨에 따라, 인간은 또 다른 차별의 ‘대상’을 만들어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오늘날까지도 심각한 사회문제로 언급되고 있는 동물학대가 바로 그것이다.

근대의 윤리학은 도덕적 ‘행위자’를 중심에 두고 있다. 도덕적 행위자란 양심에 따라 행동하고 자기 행동에 대해 반성할 수 있는 도덕적 책임능력을 갖춘 존재, 즉 ‘인간’을 일컫는다. “권리와 책임을 동시에 갖는 합법적 도덕주체”로서의 인간만이 행위자인 동시에 피동자로 인정되며, 이로 인해 근대 윤리학의 범주는 인간중심적인 틀을 벗어날 수 없게 기획된 셈이다. 그렇기에, “그들(동물)이 고통을 겪을 수 있는가?(Can they suffer)”라는 벤담의 질문은 “피동자의 피동성에 초점을 맞춘 도덕철학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데이비드 군켈(David Gunkel))으로 여겨질 수 있었던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싱어는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모든 동물은 최소한 도덕적 피동자의 지위를 부여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동물에 대한 피동자적 권리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기술이나 인공물, 추상적인 지적 대상들도 도덕적 피동자로 간주”해야 한다는 주장 또한 제기되고 있다. 애완동물을 키우는 가구가 급증하고 대선을 준비하는 여러 후보들이 반려동물관련 정책을 공약하고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동물의 권리는 자연스럽게 인정되는 추세이다. 하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 우리는 AI의 도덕적 지위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하는 시기를 겪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인간과 기계 즉 자연적인 것과 인공적인 것 사이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있는 상황적 변화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다. 군켈은 오늘 날 AI의 등장과 더불어 지능적 기계가 ‘도덕적 지위’를 가질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주목한다.

 

인공지능의
타자성

구글 딥마인드(Google DeepMind)에서 개발한 인공지능 알파고의 경우, ‘딥러닝’을 통하여 일련의 법칙들을 ‘학습’하고 이를 토대로 ‘스스로’ 결정을 내리도록 기획된 프로그램이다. 알파고가 ‘상황’이라는 변수에 대응하여 자율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에, 개발자도 알파고의 ‘결정’을 예측할 수 없다. 즉, 알파고는 “인간이나 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우리가 통제하거나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존재”인 셈이다. 그리고 바로 이 자율적 속성이 인공지능에게 단순히 인간이 부리는 ‘기술적 도구’로서의 지위가 아닌, 인간의 삶에 근간을 뒤흔들 수 있는 ‘타자’로 전환될 가능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지난 2015년 2월 일본에서는, SONY사에서 출시된 애완용 로봇강아지 ‘아이보(Aibo)’에 대한 합동 장례식이 있었다. 1999년 출시되어 20만 엔 이라는 고가의 금액 대에도 불구하고 총 100만대 이상이 팔려나갔으나, 2014년 관련 A/S를 전면 중단하게 되면서 로봇강아지의 ‘죽음’을 맞이하게 된 주인들이 모여 장례식을 치른 것이다. 이와 같은 예만 보더라도, AI는 인간과 정서적으로 교감하는 ‘타자’로서 이미 존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본 SONY사에서 1999년 출시된 애완용 로봇 강아지 아이보(aibo)

이에 필자는, 로봇이 “실제로 감정을 갖느냐”에 대한 문제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감정 로봇이 인간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보여주는 AI의 타자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거기에 대응할 것인가”에 대해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로봇의 ‘타자성’은 그것이 도덕적 피동자로서의 지위를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한 인간적인 ‘판단’을 통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로봇과 생활환경 속에서 맺고 있는 일련의 관계성을 통해 획득되어야 하는 것이다. 코겔버그는, 어떤 존재의 지위는 “선험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구성되는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그 존재를 ‘어떻게’ 보는가” “그것이 우리에게 어떻게 나타나는가”와 같은 질문을 가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미 인간 삶의 환경이 ‘자연’이 아닌 ‘기술적 생태 공간’으로 변화함에 따라, 우리의 생활 방식은 여러 기술들과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인공지능’의 ‘타자성’을 점검하는 것은 그리 어색한 일이 아닌 듯싶다. 물론 로봇(기술)과의 상호작용이 역으로 사회적 개인들을 고립시키는 등의 부작용에 대해선 간과할 수 없다. 하지만 인간중심주의가 ‘근대’의 산물이며 이것이 우리의 모든 인식구조를 지배하는 ‘틀’로 ‘학습’되고 있는 가운데, 이원론적 세계관에 일종의 ‘균열’을 내고 인간중심주의적 사고를 재고(再考)시킨다는 점에서 로봇의 타자성’에 대한 물음은 충분히 가치 있는 질문이 아닐까.

이단비 리뷰어  ddanddanbi@naver.com

<저작권자 © 리뷰 아카이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동북공정 종료후 10년, 중국 학계의 동향은?

%ec%88%98%eb%a0%b5%eb%8f%842_1

logofinale이승호 동국대 사학과 강사가 쓴 2007년 이후 중국의 고구려 종교·사상사 연구 동향(『고구려발해연구』 , 57, 2017)은 동북공정이 공식적으로 종료되고 10년이 지난 지금까지의 중국 학계의 동향을 살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결론은 ‘위험’ 사인이다. 10년에 가까운 세월이 지났지만, 중국 학계에서는 여전히 고구려를 중국 중앙왕조의 지방정권·소수민족정권으로 간주하고 고구려사를 중국사의 일부분으로 서술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이와 같은 시각은 고구려의 종교·사상 관련 연구에서도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나는데 해당 주제에 대한 치밀한 학술적 분석보다는 종교·사상의 기원이 중국에 닿아 있고, 국가 성립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중국 문화의 직접적인 영향 아래 놓여 있었다는 주장이 큰 흐름을 이룬다는 분석이다.

양적으로 확대되는 반면 한국과 일본의 연구 성과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매년 비슷한 연구 주제와 주장이 저자를 달리해서 반복된다는 점도 큰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학술 발표회에 참석중인 리러잉 박사(중국사회과학망http://www.cssn.cn)

 

동북공정은 계속된다

2007년 이후 중국학계의 고구려 종교·사상 관련 연구 성과를 살펴보면, 박사논문 1편과 석사논문 1편을 포함해 대략 40여 편이다. 여기서 특히 주목되는 성과는 ‘고구려 종교 신앙’을 다룬 리러잉李樂營의 박사논문 「고구려 종교 신앙 연구」(둥베이사범대, 2008)다. 필자는 이 논문을 집중 분석하고 있는데 과연 무엇이 문제일까.(리러잉은 2016년 현재 퉁화사범학원通化師範學院 고구려연구원 원장으로 재직중이다.)

일단 이 논문은 폭넓게 종합적이면서도 체계적으로 고구려의 종교와 사상을 다루고 있다. 분석이 용이치 않은 주제에까지 연구 범위가 미치는 등 미덕도 있다고 필자는 말한다. 하지만 주요 내용을 보면 우리로선 기함할 부분이 많다. 아래의 인용을 보자.

1) 고구려는 우리나라 고대 동북 지역의 일개 변경 소수민족 정권이었다. 한대漢代부터 당대唐代의 역사에 이르기까지 고구려의 종교신앙은 시종 중국과 함께 했다.

2) 또 고구려의 종교신앙은 중국 고대 사회의 전반적인 변화를 큰 배경으로 하여 발생하고 변화했다.

3) 유교화와 도교화가 진행되었음을 밝혔다.

4) 종교는 고구려 사회의 발전과 중국고대사의 발전 과정 중 일부이자 불가분의 구성요소로서 중요성을 가진다.

 

고구려 문화는 ‘중국문화의 하위’라인 인식

필자는 가장 먼저 고구려의 문화를 중국 문화에 종속된 위치에서 파악하는 관점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문화전파론’과 ‘사회진화론’적 연구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고구려의 원시종교가 중국의 유가사상을 수용하면서 보다 규범적으로 발전했다”는 식의 주장이 대표적이다. 또한 고구려의 건국신화에 기반을 둔 시조신앙에 대한 외면은 큰 결함이라고 비판했다. 시조신앙은 물론 고유의 토착 신앙(수신隧神, 천天 관념, 하백河伯 등)의 발생 배경과 자체적 발전과정에 주목하기보다는 이들 신앙을 “초기의 원시적인” 것으로만 치부하는 시각도 문제점이고 말한다. 결국 당시 외래종교와 병존했던 토착신앙에 대한 무관심은 반쪽짜리 연구결과를 내놓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게 필자의 논평이다. 면밀한 사료 비판이 선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초기 사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점도 보완 논의가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다음으로는 고구려의 중국 유가사상 및 도가사상을 수용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 류웨이劉偉의 연구를 분석하고 있다. 류웨이 또한 중국의 일방적 전파 강조, 중국의 고급 종교와 사상이 고구려의 문화 발전을 촉진시켰다는 주장을 일관되게 되풀이하고 있다. 또 「고구려본기」 초기 기록에 대한 사료 비판을 결여한 채, 기록에 나타나는 유가적 색채를 그대로 당대의 사실로 신빙하는 점도 문제다. 후대 고구려인의 관념이 반영될 소지가 다분함에도 이를 외면하는 것이다.

한편, 필자는 비록 초보적 단계이지만 중국 학계가 고구려 불교 문화로부터 유교·도교로까지 연구를 확장하는 것에 비해 한국 학계는 아직까지 이 부분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없다는 점을 우려했다.

또한 논문은 근래 중국학계에서는 고구려의 제사·의례 문화와 관련해서도 연구가 진행되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이 또한 중원 문화의 일방적 영향을 전제로 이뤄지고 있다.『의례儀禮』 『주례周禮』 『예기禮記』 등에 기반을 둔 중국의 예학적 전통이 고구려에 영향을 미쳐 고구려의 의례 규범을 진전·완성시켰다는 관점을 바탕으로 고구려의 제사의례, 혼인의례, 상장례 등이 검토되고 있다.

 

고구려의 종교와 신화를
고대 중국문화와 연결

그러나 대체로 문헌에 보이는 고구려의 제사 및 기타의례 관련 기록을 하나하나 나열해가며 피상적으로 논하는 수준이라는 게 필자의 지적이다. 특히 고구려 왕릉 묘제와 왕실 제사체계는 상호 밀접한 관련 속에서 변화·발전해 갔는데,35) 아직 중국학계에서는 여기에 대한 천착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은 한계로 지적할 수 있다. 또 억지로 중국과 연결시키려다보니 고구려 후기에 나타나는 ‘가한신可汗神’에 대해 당시 ‘천가한天可汗’의 칭호를 가졌던 당태종일 가능성을 제기하는 등 다소 무리한 주장도 일부 확인된다고 말했다.

필자는 이를 포함해 주몽신화 등 건국신화에 대한 중국 연구자들의 집중된 연구의 허점도 파헤쳤는데 이 부분은 대동소이한 지적들을 받고 있어 생략한다. 결론적으로 지난 10년 중국 학계의 고구려사 연구의 공통된 문제점은 아래의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고구려 종교·사상사 분야에 대한 중국학계 연구의 양적 확대가 확인되며, 다양한 주제로 연구 범위의 확장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특히 건국신화와 기타 전설, 유교·불교·도교 등 전통적인 연구 분야뿐만 아니라 제사와 의례, 법률사상, 샤머니즘 등 다양한 주제로 연구가 확장되는 경향은 주목할 만하다. 따라서 한국 학계에서도 이에 발맞춰 고구려의 종교·사상사 분야에 대한 폭넓은 연구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특히 그동안 깊이 연구되지 못했던 고구려 유교·도교 문화에 대한 연구 확장이 요구된다. 중국학계의 주장에 대한 단순한 비판 및 대응논리 마련에 골몰할 것이 아니라, 세밀하고 체계적인 연구를 통해 중국으로부터 받아들인 유교·불교·도교 등의 문화를 고구려가 어떻게 그들 문화에 녹여갔으며, 자기화해나갔는지 적극적으로 검토될 필요가 있다.

둘째, 고구려의 종교와 사상 및 신화·전설의 연원을 고대 중국 문화에서 찾고자 하는 경향이 강하게 확인된다. 물론 중국 문화가 고구려 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음을 부인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고구려 주몽신화 속 난생설화나 하백녀 신화, 신마 전설과 황룡 승천 전설 등 고구려 고유의 신 관념이 포착되는 여러 신화 및 전설의 주요 모티프가 중국 문화의 영향 속에서 형성되었다는 일방적인 시각은 앞으로 여러 논쟁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 전망된다. 결국 이러한 학문적 괴리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한·중 학계의 지속적인 학술 교류를 통해 상호 간에 견해의 간극을 좁혀나갈 필요가 있다.

셋째, 관련 분야에 대한 한국·일본학계의 연구 성과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고 있는 점은 큰 약점으로 지적되어야 할 부분이라 생각된다. 특히 고구려의 불교문화나 건국신화와 관련해서는 이미 한·일 학계에서 상당한 연구의 축적이 이루어져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중국 학계의 연구 성과를 검토하다보면, 근래까지도 관련 연구에 대한 한·일 학계의 선행 연구를 충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 학계 내에서도 비슷한 연구 주제와 주장들이 매년 저자를 달리해서 반복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현상도 확인된다. 이와 같은 연구의 중복현상을 피하기 위해서는 관련 분야의 선행 연구 성과에 대한 체계적인 정리와 집적이 이루어지는 한편, 이를 학계 간 교류의 활성화를 통해 꾸준히 중국학계에 소개할 필요가 있다.” (53쪽)

강성민 리뷰위원  paperface@naver.com

<저작권자 © 리뷰 아카이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