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경제, 그 예정된 실패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전국민적 항의의 목소리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각종 적폐의 청산을 열망하는 목소리 또한 함께 드높아지고 있다. 적폐청산 요구의 적잖은 부분은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들을 청산하라는 요구와 결합되어 있기도 하다. 그리고 당연히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을 대변하는 명사를 하나 꼽아보라고 한다면, 비단 그것은 ‘창조경제’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창조경제는 사실상 미르재단과 K스포츠 재단을(그리고 정유라를) 지원하기 위한 방안에 불과하다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정황들을 제쳐놓고 우리가 소위 박근혜의 ‘선한 의지’를 고려한다고 해도, 창조경제의 성과는 대실패라고 밖에 평가할 수밖에 없다. 창조경제론은 이미 그 기조가 불분명하다는 점에서, 대체 목표하는 바가 무엇인지도 모르겠다는 바에서, 그 시작부터 끊임없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리고 오늘날의 경제상황을 보면 새로운 성장동력의 발굴과 고용창출을 이뤄내겠다는 창조경제론자들의 약속은 조금도 실현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김어진 연구자의 「창조경제의 정치경제학」(『마르크스주의 연구』, 11(1), 2014)은 창조경제의 실패가 사실상 예정된 사실이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 논문은 박근혜표 창조경제론과 그 원조격인 해외담론들을 조망하고, 그 한계와 신자유주의적 본질을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창조경제담론의
역사
비단 한국의 창조경제론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보아도 창조경제의 실체는 상당히 불분명한 편이다. 논자에 따라 의미적 규정이 상당히 상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상이한 담론들이 공통적으로 바로 무언가 창조적인 산업을 바탕으로 새로운 경제의 패러다임이 펼쳐질 것이라고(그래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표적으로는 존 호킨스의 원조 창조경제론과 리처드 플로리다의 창조도시∙창조계급론을 들 수 있다. 우선 창조경제론의 역사적 전개과정을 간략히 살펴보자.
[su_quote]첫째, 1990년대 말 영국을 비롯한 유럽과 미국의 ‘제3의 길’ 정부가 ICT와 문화산업 부문을 중심으로 주도했던, 이른바 ‘신경제 과정’이다. 존 호킨스의 저작이 이론적 자원이 되었다. 둘째, 2000년대 초반 ICT 버블이붕괴한 이후 창조경제론은 종적을 감추는 듯했다. 그러나 리처드 플로리다가 주장한 ‘창조도시론’이 다시 등장하고, 유네스코의 창조도시 네트워크 프로그램(CCN: Creative Cities Network)과 UNDP의 창조경제보고서 등이 나오면서, 창조경제론은 후진국의 또 다른 경제성장 이론으로 재구성되었다. 셋째, 창조도시 프로그램은 약화되었지만 다시 일자리 창출과 창업을 목적으로 하는 새로운 창조경제 담론이 등장했다. ‘창조경제 지수화’나 ‘창조경제 계량화’가 추진되었다. 2008년부터 2년마다 출간되어온 「창조경제 보고서(Creative Economy)」는 관련 담론의 국제화의 기준점이 되었다. 세 번째 시기는 침체된 경제를 다시 부흥할 수 있는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려면 경쟁우위가 있는 자국의 기술을 보호하고 기술창업이 필요하다는 논리가 유형하게 된 현재의 시기다. (본문 94페이지)[/su_quote]
우선 창조경제론의 첫째 시기를 살펴보자. 1990년, 장기불활에 진입한 일본에서는 “대규모 투자가 아니어도 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한 산업”을 모색하는 시도가 생겼고 노무라연구소에서는 그를 위해 ‘창조사회’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담론은 90년대말~2000년대 초에 영국에 상륙하고, 이는 마침 토니 블레어 정부의 정책기조와 맞닿아 떨어져 본격적으로 꽃피기 시작한다. 일본이 대침체를 맞이하면서 대규모 투자 없이 부가가치 창출한 산업을 모색했듯, 블레어 정부는 제조업 쇠퇴기에 ‘지식기반 경제’와 문화∙콘텐츠 산업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모색하고 있던 것이다. 이때 호킨스의 『창조경제』가 출판되고, 창조경제 담론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호킨스는 지적재산권을 강화하고, “시장의 창조적 주체들이 자신들의 창조적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이에 방해가 될 수 있는 제도, 규제, 규칙 등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창조산업을 빌미 삼아 자유시장을 옹호하는 기조의 경제정책에 박차를 가하자는 주장으로 나아간 것이다. 이는 블레어의 ‘제3의 길’기조와 잘 맞아 떨어져 특히 환영을 받았다. 지적재산권 보호제도와 ‘신경제’라는 이름의 ICT산업의 급성장은 이러한 움직임이 시작되는 배경이 되었다. 하지만 신경제의 IT버블이 급속히 붕괴되면서 창조경제론은 유행이 지나는 듯 했다.
하지만 플로리다의 『창조계급의 부상』이 출간되면서 새로운 유행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이 책의 핵심 메시지는 “도시의 경제성장은 기업의 비용절감이 아니라 도시의 높은 교육을 받고 첨단 기술을 익힌 인재 유치 때문”이라는 주장에 있다. 탈산업사회에서는 “지식과 창의력을 통해서 부를 창출하는 창조계급의 활동”이 도시가 경쟁우위를 획득할 수 있는 방안이라는 것이다. 창조계급에는 주되게 문화예술분야 종사자부터 해서 연구 및 지식산업 종사자들이 포함된다. 얼핏 듣기에는 단순히 인적자본론의 연장선인 것 같지만, 플로리다는 왜 창조적 인간이 특정 지역에 집중되게 됐는지에 대해 보다 집중한다. 플로리다에 따르면 기술, 인재, 관용이라는 3T(Technology, Talent, Tolerance)가 창조계급을 집중시키는 핵심이라고 한다. 하지만 창조도시론과 창조계급론 역시 다양한 비판에 직면했다. 플로리다의 주장 또한 결국에는 도시간 경쟁을 심화시키고, 재개발을 부추기고 소비자본주의를 강화시키는 그리고 장소마케팅에 몰두하는 신자유주의 도시개발의제에 다름이 아니란 비판이다. 창조산업을 중심으로 재정지원을 둘러싼 경쟁이 심화되는 동시에 해당 산업의 발달과 이윤창출만을 목표로 도시를 변형시키는 단기성과주의적 개발계획이 추진리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정책이 일관되게 추진된다면 도시 간 불평등 그리고 도시 내 계층 불평등이 심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때문에 많은 경제지리학자들이 ‘기업주를 위한 도시’를 위한 정책이 본질이라고 지적했다. 그 외에도 사용되는 개념들의 모호성 문제도 있었고 신선한 용어들을 끌어 쓰지만 정작 새로운 전망과 전략은 없다는 비판도 있었다. 한편 이 정책은 박근혜 집권기 이전에도 상당히 한국에 큰 영향을 줬는데, 한국의 ‘디자인 서울’ 정책을 비롯해서 각종 도시 계획에 비슷한 논의가 적용되려는 시도가 여럿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2008년 금융위기 이후로는 다시 호킨스의 저서가 주목을 받고 유엔무역개발협회가 창조경제보고서를 2년마다 한 번씩 작성하기 시작하면서 창조경제론은 제3기를 맞이한다. 제3기 역시 과거의 담론과 연속선 상에 있지만, 개발도상국의 성장동력으로서 창조경제를 강조하고, 특허와 지적재산권을 통한 부가가치의 창출을 주요 과제로 삼았다는 점이 특히 특징적이었다. 일본과 호주에서는 이에 영향을 받아 문화산업 융성정책이, 중국에서는 태양에너지 산업에 대한 지원이, 그리고 영국과 한국에서는 지식기반 산업 육성과 보호가 강조되었다. 이는 글로벌 경쟁의 심화와 세계경제 위기로 인해 주유 자본주의 국가들이 ‘틈새시장’을 포착하여 새로운 이윤의 원천을 발굴하려고 한 데에서 비롯된다고 연구자는 분석한다.
그런데 살펴본 것처럼, 창조경제론은 모호함과 과장이 많다. 모든 나라에서 ‘창조산업’을 이야기하지만 그 범위도 모호하고, 그 발전 정도의 계량화에 있어서도 엄밀성은 전혀 없다시피 했다. 따라서 화려한 수사로 더딘 성장을 과장하는 일은 상례였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창조경제
=노동착취
창조경제론의 선두주자 중 하나였던 영국은 그 동안 오히려 사회적 양극화와 불평등의 심화, 노동시장의 보잘것없는 성과 등을 보여줬을 뿐이다. 게다가 금융위기 이후 더욱 악을 쓰고 창조산업 육성을 추진하고 있지만 결코 불황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형 창조경제론 또한 지식기반 산업을 바탕으로 중장기 성장의 기반을 다지고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대담한 약속을 제시했다. 고용 없는 경제회복기에 대기업만으로는 일자리를 창출할 수 없으므로 “창업만이 유일한 대안”이므로, 그를 위해 창업에 유리한 생태계를 조성하고 기술창업을 활성화시켜 경제를 살리자는 말이었다. 이 외에도 산업친화적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경쟁교육을 강화하자는 주장도 함께 대두됐다. 하지만 그럴만한 여건이 충분히 존재하는 상황도 아니었을 뿐더러, 정부가 진정으로 필요한 조처들을 내놓고 있었다고 보기도 힘들다. 당시 기준으로도 몇 년 전부터 한국에서는 이른바 지식산업의 비중은 성장하지 못했고 창업활력을 되려 떨어져 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su_quote]게다가, 사실 창조성이 담보되려면 안정적 일자리와 학습 등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 창조경제에서는 창조성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전제조건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다는 지적(Scott, 2006)도 있다. 한마디로 창조경제가 일자리 확대를 통해 불평등을 완화한다는 주장의 근거는 미약해 보인다. (본문 108페이지)[/su_qu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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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는 첨단과학기술을 원동력으로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창조경제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워 왔다. 사진은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세계사이버스페이스 총회’ 개막식에 참석해 축사를 하는 모습.” (사진 및 설명 출처: Wikipedia ‘창조경제’ 항목) |
한국의 문화콘텐츠 업계나 지식산업 부분을 보면, 인력 충원이 좀처럼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다. 그래서 기존 취업자들의 노동강도 강화가 이뤄지고 노동조건의 열악성은 심화되어만 갔다. 대표적으로 방송산업은 인력의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이고, 경력 5년 이하의 경우에는 매주 70시간대의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월 평균 150만원 이하의 소득을 올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소프트웨어산업에서도 다단계 하도급과 높은 비정규직 비율, 인력 부족, 장시간 노동이 끊이질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창조경제론이 육성한다고 말하고 있는 산업들에서는 끊임없이 노동생산성의 저하, 잦은 이직, 교육비용 증가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또한 이 분야에서 ‘비밀유지’ 등을 위해 노동자들에 대한 감시와 통제되고 있는 실정이다. 말이 창조산업이지, 실상은 창조성보다는 노동의 규격화, 노동의 소외를 부추기는 방향(‘디지털 테일러리즘’)으로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창조경제론자들은 이러한 상황에 놓인 노동에 대한 보호가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이상의 논의를 한 번 요약해보자. 창조성이라함은 결국 해당 분야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에게 안정적 조건을 부과하여 창조성을 북돋아야 담보될 수 있다. 하지만 창조경제 정책은 결국 ‘산업생태계 조성’이라는 말 하에서 오히려 신자유주의적 경쟁의 심화와 규제완화를 강조했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노동자들의 창조성을 갉아먹는 결과로 이어지고 결국 정책의 실패가 예상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이는 경제위기 탈출과 이윤창출을 위해 우격다짐으로 창조성을 ‘산업’으로 육성하려는 정책적 시도가 가진 근본적 한계라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이 정책의 입안자들이 표방하는 목표(창업을 통한 성장동력의 발굴과 일자리 창출)가 이뤄지길 기대하기란 극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이 논문의 말미에서 김어진 연구자는 창조경제가 단순한 수사로 끝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전망을 제시했다.
창조경제라는
하나의 적폐
한번 이상에서 소개한 논문의 내용을 3만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재평가해보자. 실제로 한국경제는 현재 역대 최대의 청년 실업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는커녕 다시금 불황이 심화하는 모습마저 보이고 있다. 창조경제론의 장밋빛 약속은 전혀 성취되지 않았다. 3년전 한 연구자가 지적한 바를 곱씹어보며 현재를 보면 창조경제론은 예정된 실패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이런 정책은 다시금 되풀이 되게 해선 안 된다. 마침 오늘날의 화두는 ‘적폐청산’이기도 하다.
한편 적폐청산이 시대적 요구인 지금에 와서도, 여야의 일부 대선주자들의 일자리∙경제공약을 보면 ‘이 시국에’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정책과 본질적으로 크게 다를 바 없는 내용을 내세우고 있는 것 아닌가하는 우려가 종종 든다. 나는 창조경제론에 대한 평가는 단지 대통령과 비선실세 그리고 정경유착에 대한 비판에 멈춰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 정책적 내용 또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논의는 수사만 보기 좋게 바꿔놓고서 거의 동일한 내용의 공약을 내세우는 정치인들에 대한 검증과 비판으로 이어져야 한다.
*함께 읽으면 좋은 논문
「Richard Florida의 창조 도시 이론의 한국적 수용에 대한 비판적 고찰」
김준홍, 2012, 『문화정책논총』, 26(1), 31-51.
「사회적 경제 모델에 의거한 창조 도시 담론의 비판적 검토: Florida,사사끼, 랜드리의 논의를 중심으로」
한상진, 2008, 『환경사회학연구 ECO』, 12(2), 185-206.
김종현 리뷰어 mrkim_sam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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