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경제/경영

창조경제, 그 예정된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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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ofinale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전국민적 항의의 목소리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각종 적폐의 청산을 열망하는 목소리 또한 함께 드높아지고 있다. 적폐청산 요구의 적잖은 부분은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들을 청산하라는 요구와 결합되어 있기도 하다. 그리고 당연히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을 대변하는 명사를 하나 꼽아보라고 한다면, 비단 그것은 ‘창조경제’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창조경제는 사실상 미르재단과 K스포츠 재단을(그리고 정유라를) 지원하기 위한 방안에 불과하다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정황들을 제쳐놓고 우리가 소위 박근혜의 ‘선한 의지’를 고려한다고 해도, 창조경제의 성과는  대실패라고 밖에 평가할 수밖에 없다. 창조경제론은 이미 그 기조가 불분명하다는 점에서, 대체 목표하는 바가 무엇인지도 모르겠다는 바에서, 그 시작부터 끊임없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리고 오늘날의 경제상황을 보면 새로운 성장동력의 발굴과 고용창출을 이뤄내겠다는 창조경제론자들의 약속은 조금도 실현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김어진 연구자의 「창조경제의 정치경제학」(『마르크스주의 연구』, 11(1), 2014)은 창조경제의 실패가 사실상 예정된 사실이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 논문은 박근혜표 창조경제론과 그 원조격인 해외담론들을 조망하고, 그 한계와 신자유주의적 본질을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창조경제담론의
역사

비단 한국의 창조경제론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보아도 창조경제의 실체는 상당히 불분명한 편이다. 논자에 따라 의미적 규정이 상당히 상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상이한 담론들이 공통적으로 바로 무언가 창조적인 산업을 바탕으로 새로운 경제의 패러다임이 펼쳐질 것이라고(그래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표적으로는 존 호킨스의 원조 창조경제론과 리처드 플로리다의 창조도시∙창조계급론을 들 수 있다. 우선 창조경제론의 역사적 전개과정을 간략히 살펴보자.

[su_quote]첫째, 1990년대 말 영국을 비롯한 유럽과 미국의 ‘제3의 길’ 정부가 ICT와 문화산업 부문을 중심으로 주도했던, 이른바 ‘신경제 과정’이다. 존 호킨스의 저작이 이론적 자원이 되었다. 둘째, 2000년대 초반 ICT 버블이붕괴한 이후 창조경제론은 종적을 감추는 듯했다. 그러나 리처드 플로리다가 주장한 ‘창조도시론’이 다시 등장하고, 유네스코의 창조도시 네트워크 프로그램(CCN: Creative Cities Network)과 UNDP의 창조경제보고서 등이 나오면서, 창조경제론은 후진국의 또 다른 경제성장 이론으로 재구성되었다. 셋째, 창조도시 프로그램은 약화되었지만 다시 일자리 창출과 창업을 목적으로 하는 새로운 창조경제 담론이 등장했다. ‘창조경제 지수화’나 ‘창조경제 계량화’가 추진되었다. 2008년부터 2년마다 출간되어온 「창조경제 보고서(Creative Economy)」는 관련 담론의 국제화의 기준점이 되었다. 세 번째 시기는 침체된 경제를 다시 부흥할 수 있는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려면 경쟁우위가 있는 자국의 기술을 보호하고 기술창업이 필요하다는 논리가 유형하게 된 현재의 시기다. (본문 94페이지)[/su_quote]

우선 창조경제론의 첫째 시기를 살펴보자. 1990년, 장기불활에 진입한 일본에서는 “대규모 투자가 아니어도 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한 산업”을 모색하는 시도가 생겼고 노무라연구소에서는 그를 위해 ‘창조사회’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담론은 90년대말~2000년대 초에 영국에 상륙하고, 이는 마침 토니 블레어 정부의 정책기조와 맞닿아 떨어져 본격적으로 꽃피기 시작한다. 일본이 대침체를 맞이하면서 대규모 투자 없이 부가가치 창출한 산업을 모색했듯, 블레어 정부는 제조업 쇠퇴기에 ‘지식기반 경제’와 문화∙콘텐츠 산업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모색하고 있던 것이다. 이때 호킨스의 『창조경제』가 출판되고, 창조경제 담론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호킨스는 지적재산권을 강화하고, “시장의 창조적 주체들이 자신들의 창조적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이에 방해가 될 수 있는 제도, 규제, 규칙 등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창조산업을 빌미 삼아 자유시장을 옹호하는 기조의 경제정책에 박차를 가하자는 주장으로 나아간 것이다. 이는 블레어의 ‘제3의 길’기조와 잘 맞아 떨어져 특히 환영을 받았다. 지적재산권 보호제도와 ‘신경제’라는 이름의 ICT산업의 급성장은 이러한 움직임이 시작되는 배경이 되었다. 하지만 신경제의 IT버블이 급속히 붕괴되면서 창조경제론은 유행이 지나는 듯 했다.

하지만 플로리다의 『창조계급의 부상』이 출간되면서 새로운 유행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이 책의 핵심 메시지는 “도시의 경제성장은 기업의 비용절감이 아니라 도시의 높은 교육을 받고 첨단 기술을 익힌 인재 유치 때문”이라는 주장에 있다. 탈산업사회에서는 “지식과 창의력을 통해서 부를 창출하는 창조계급의 활동”이 도시가 경쟁우위를 획득할 수 있는 방안이라는 것이다. 창조계급에는 주되게 문화예술분야 종사자부터 해서 연구 및 지식산업 종사자들이 포함된다. 얼핏 듣기에는 단순히 인적자본론의 연장선인 것 같지만, 플로리다는 왜 창조적 인간이 특정 지역에 집중되게 됐는지에 대해 보다 집중한다. 플로리다에 따르면 기술, 인재, 관용이라는 3T(Technology, Talent, Tolerance)가 창조계급을 집중시키는 핵심이라고 한다. 하지만 창조도시론과 창조계급론 역시 다양한 비판에 직면했다. 플로리다의 주장 또한 결국에는 도시간 경쟁을 심화시키고, 재개발을 부추기고 소비자본주의를 강화시키는 그리고 장소마케팅에 몰두하는 신자유주의 도시개발의제에 다름이 아니란 비판이다. 창조산업을 중심으로 재정지원을 둘러싼 경쟁이 심화되는 동시에 해당 산업의 발달과 이윤창출만을 목표로 도시를 변형시키는 단기성과주의적 개발계획이 추진리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정책이 일관되게 추진된다면 도시 간 불평등 그리고 도시 내 계층 불평등이 심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때문에 많은 경제지리학자들이 ‘기업주를 위한 도시’를 위한 정책이 본질이라고 지적했다. 그 외에도 사용되는 개념들의 모호성 문제도 있었고 신선한 용어들을 끌어 쓰지만 정작 새로운 전망과 전략은 없다는 비판도 있었다. 한편 이 정책은 박근혜 집권기 이전에도 상당히 한국에 큰 영향을 줬는데, 한국의 ‘디자인 서울’ 정책을 비롯해서 각종 도시 계획에 비슷한 논의가 적용되려는 시도가 여럿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2008년 금융위기 이후로는 다시 호킨스의 저서가 주목을 받고 유엔무역개발협회가 창조경제보고서를 2년마다 한 번씩 작성하기 시작하면서 창조경제론은 제3기를 맞이한다. 제3기 역시 과거의 담론과 연속선 상에 있지만, 개발도상국의 성장동력으로서 창조경제를 강조하고, 특허와 지적재산권을 통한 부가가치의 창출을 주요 과제로 삼았다는 점이 특히 특징적이었다. 일본과 호주에서는 이에 영향을 받아 문화산업 융성정책이, 중국에서는 태양에너지 산업에 대한 지원이, 그리고 영국과 한국에서는 지식기반 산업 육성과 보호가 강조되었다. 이는 글로벌 경쟁의 심화와 세계경제 위기로 인해 주유 자본주의 국가들이 ‘틈새시장’을 포착하여 새로운 이윤의 원천을 발굴하려고 한 데에서 비롯된다고 연구자는 분석한다.

그런데 살펴본 것처럼, 창조경제론은 모호함과 과장이 많다. 모든 나라에서 ‘창조산업’을 이야기하지만 그 범위도 모호하고, 그 발전 정도의 계량화에 있어서도 엄밀성은 전혀 없다시피 했다. 따라서 화려한 수사로 더딘 성장을 과장하는 일은 상례였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창조경제
=노동착취

창조경제론의 선두주자 중 하나였던 영국은 그 동안 오히려 사회적 양극화와 불평등의 심화, 노동시장의 보잘것없는 성과 등을 보여줬을 뿐이다. 게다가 금융위기 이후 더욱 악을 쓰고 창조산업 육성을 추진하고 있지만 결코 불황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형 창조경제론 또한 지식기반 산업을 바탕으로 중장기 성장의 기반을 다지고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대담한 약속을 제시했다. 고용 없는 경제회복기에 대기업만으로는 일자리를 창출할 수 없으므로 “창업만이 유일한 대안”이므로, 그를 위해 창업에 유리한 생태계를 조성하고 기술창업을 활성화시켜 경제를 살리자는 말이었다. 이 외에도 산업친화적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경쟁교육을 강화하자는 주장도 함께 대두됐다. 하지만 그럴만한 여건이 충분히 존재하는 상황도 아니었을 뿐더러, 정부가 진정으로 필요한 조처들을 내놓고 있었다고 보기도 힘들다. 당시 기준으로도 몇 년 전부터 한국에서는 이른바 지식산업의 비중은 성장하지 못했고 창업활력을 되려 떨어져 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su_quote]게다가, 사실 창조성이 담보되려면 안정적 일자리와 학습 등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 창조경제에서는 창조성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전제조건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다는 지적(Scott, 2006)도 있다. 한마디로 창조경제가 일자리 확대를 통해 불평등을 완화한다는 주장의 근거는 미약해 보인다. (본문 108페이지)[/su_quote]

 

“박근혜 정부는 첨단과학기술을 원동력으로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창조경제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워 왔다. 사진은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세계사이버스페이스 총회’ 개막식에 참석해 축사를 하는 모습.” (사진 및 설명 출처: Wikipedia ‘창조경제’ 항목)

 

 

한국의 문화콘텐츠 업계나 지식산업 부분을 보면, 인력 충원이 좀처럼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다. 그래서 기존 취업자들의 노동강도 강화가 이뤄지고 노동조건의 열악성은 심화되어만 갔다. 대표적으로 방송산업은 인력의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이고, 경력 5년 이하의 경우에는 매주 70시간대의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월 평균 150만원 이하의 소득을 올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소프트웨어산업에서도 다단계 하도급과 높은 비정규직 비율, 인력 부족, 장시간 노동이 끊이질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창조경제론이 육성한다고 말하고 있는 산업들에서는 끊임없이 노동생산성의 저하, 잦은 이직, 교육비용 증가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또한 이 분야에서 ‘비밀유지’ 등을 위해 노동자들에 대한 감시와 통제되고 있는 실정이다. 말이 창조산업이지, 실상은 창조성보다는 노동의 규격화, 노동의 소외를 부추기는 방향(‘디지털 테일러리즘’)으로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창조경제론자들은 이러한 상황에 놓인 노동에 대한 보호가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이상의 논의를 한 번 요약해보자. 창조성이라함은 결국 해당 분야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에게 안정적 조건을 부과하여 창조성을 북돋아야 담보될 수 있다. 하지만 창조경제 정책은 결국 ‘산업생태계 조성’이라는 말 하에서 오히려 신자유주의적 경쟁의 심화와 규제완화를 강조했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노동자들의 창조성을 갉아먹는 결과로 이어지고 결국 정책의 실패가 예상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이는 경제위기 탈출과 이윤창출을 위해 우격다짐으로 창조성을 ‘산업’으로 육성하려는 정책적 시도가 가진 근본적 한계라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이 정책의 입안자들이 표방하는 목표(창업을 통한 성장동력의 발굴과 일자리 창출)가 이뤄지길 기대하기란 극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이 논문의 말미에서 김어진 연구자는 창조경제가 단순한 수사로 끝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전망을 제시했다.

창조경제라는
하나의 적폐

한번 이상에서 소개한 논문의 내용을 3만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재평가해보자. 실제로 한국경제는 현재 역대 최대의 청년 실업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는커녕 다시금 불황이 심화하는 모습마저 보이고 있다. 창조경제론의 장밋빛 약속은 전혀 성취되지 않았다. 3년전 한 연구자가 지적한 바를 곱씹어보며 현재를 보면 창조경제론은 예정된 실패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이런 정책은 다시금 되풀이 되게 해선 안 된다. 마침 오늘날의 화두는 ‘적폐청산’이기도 하다.

한편 적폐청산이 시대적 요구인 지금에 와서도, 여야의 일부 대선주자들의 일자리∙경제공약을 보면 ‘이 시국에’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정책과 본질적으로 크게 다를 바 없는 내용을 내세우고 있는 것 아닌가하는 우려가 종종 든다. 나는 창조경제론에 대한 평가는 단지 대통령과 비선실세 그리고 정경유착에 대한 비판에 멈춰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 정책적 내용 또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논의는 수사만 보기 좋게 바꿔놓고서 거의 동일한 내용의 공약을 내세우는 정치인들에 대한 검증과 비판으로 이어져야 한다.

*함께 읽으면 좋은 논문

「Richard Florida의 창조 도시 이론의 한국적 수용에 대한 비판적 고찰」
김준홍, 2012, 『문화정책논총』, 26(1), 31-51.

「사회적 경제 모델에 의거한 창조 도시 담론의 비판적 검토: Florida,사사끼, 랜드리의 논의를 중심으로」
한상진, 2008, 『환경사회학연구 ECO』, 12(2), 185-206.

김종현 리뷰어  mrkim_sam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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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는 거시경제에 어떠한 영향을 주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47호  ©le monde diplomatique

logofinale거시경제에서의 국민소득 항등식은 세 부문으로 구성된다. 국민소득(Y)=소비(C)+투자(I)+정부(G). 이는 폐쇄경제를 가정한 것인데, 여기서 세 부문은 각각 거시경제에서 주요한 경제주체의 지출을 나타낸다. 가계의 소비, 기업의 투자, 정부의 지출이 그것이다. 이 단순한 항등식을 살펴보면 국민소득을 증진시키는 것이 소비와, 투자, 그리고 정부 지출의 증가라는 것을 간단하게 확인해 볼 수 있다. 가계부채는 특히 가계의 소비 부문과 관련이 깊다. 오늘날 가계부채는 한국경제의 가장 중요한 경제문제 중에 하나로 대두되고 있다는 점을 주지하자. 심지어 이 문제는 박근혜 정부의 출범 당시 첫번째 경제공약이기도 했다. 당시 가계부채에 대한 문제의식은 지금처럼 대두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어떤 신문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중대한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그렇다면 가계부채는 소비에 어떤 영향을 줄까. 우리는 두 가지 시나리오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가계부채의 증가는 가계의 총자산을 증가시켜 유동성을 확보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레버러지 효과(지렛대 효과라고도 하며, 자산투자로부터의 수익 증대를 위해 차입자본(부채)을 끌어다가 자산매입에 나서는 투자전략을 총칭하는 말)는 가계의 소득을 증진시키고, 소비를 활성화시킬 가능성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가계부채가 일정부분 이상으로 상승하게 되면, 그만큼 순자산 대비 부채의 비율이 증가하여 파산위험이 커진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경제의 여러가지 부정적인 기대는 그 자체로 소비를 위축시킬 수도 있으며, 더불어 금리인상으로 인해 금융비용을 증가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 두 가지 경우에 대한 논문은 각각 존재한다. 이를테면 Dean(2000)은 가계부채의 긍정적인 측면에 주목하였고, Guy(2004)는 반대로 부정적인 효과에 대해서 주목한다. 이러한 상이한 효과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가계부채가 여러 다른 거시경제변수들 간의 복잡한 관계들에서부터 기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계부채와 거시경제변수들은 어떤 관계를 가지는 것일까. 김우석, 임인섭, 오현탁의 논문 「거시경제변수와 가계부채의 동태적 관계 분석」(『한국산업경제저널』, 5(2), 2013)은 2003년 10월부터 2012년 8월까지의 월별자료를 통해서 가계부채가 거시경제변수와의 동태적 관계를 분석한다. 분석대상은 물론 한국경제를 대상으로 한 것이다.

한국경제 가계경제의
현황과 추세

<표 2.1>은 2011년도 가계자산을 나타낸 것이다. 실물자산(금융자산을 제외한 자산으로 건물 토지 등의 부동산과 도로, 자동차 등 운송장비, 기계류, 생물자원, 연구개발물, 토지, 지하자원 등을 포함한다), 특히 그 중에서도 부동산이 차지하는 크기가 상당히 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특징은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와는 상대적으로 다른 것이다. 금융자산의 크기가 상대적으로 작고, 실물자산 그 중에서도 부동산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오른쪽의 부채항으로 보면, 금융부채가 67.9%로 과반을 차지하고 있고, 그 중에서도 담보대출이 상대적으로 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부동산 담보대출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림2.1>은 가계신용(일반가정이 은행 등 금융기관에서 빌린 돈이나 외상으로 물품을 구입하고 진 빚을 모두 합해 일컫는 말) 추이를 보여주는 것으로 2003년부터 2012년까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감소폭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드물고 미미하게 존재하고, 전반적으로 상승하는 추세를 바꾸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림 2.2>와 <그림 2.3>은 예금은행의 대출금리를 나타낸 것이다. 신규와 잔액 모두 고정금리는 점점 상승하는 모습을 보이는 반면, 변동금리는 점점 하락하는 추세가 관찰된다. 하지만 잔액기준으로 볼 때, 변동금리가 하락하는 추세이기는 하나 여전히 상당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서, 금리변동이 향후 가계부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림 3.1>은 주택매매가격지수와 주택전세가격지수를 그래프로 나타낸 것이다. 전반적으로 상승하는 추세이기는 하나, 어느정도 등락이 발견된다. 주택매매가격지수의 경우 2006년 이후로 급상승하는 추세를 확인할 수가 있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 이후에는 잠시 하락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주택매매가격지수와 주택전세가격지수 모두 다시 상승한다.

벡터자기회귀모형(VAR)을 통한 분석결과
: 충격반응함수

벡터자기회귀모형은 크리스토퍼 심스Sims가 제안한 것으로, 시계열 데이터의 자기상관성을 활용하여 분석하는 계량경제학적 방법이다. 이를 위해서는 시계열 데이터에 단위근이 존재하지 않아야 하는데, 본 논문에서는 ADF 단위근 검정을 통해서 시계열 변수를 1차 차분하여 단위근을 없앤다. 또한 VAR모형을 추정하기 위해서는 적정시차가 얼마인지를 검정해야 한다. 본 논문에서는 SBIC 기준을 토대로 적정시차를 1로 두고 VAR모형을 추정한다. 다음은 ADF 검정 이후 실시한 본격적인 VAR모형의 추정 후 도출된 충격반응함수를 그래프로 표기한 것이다. 충격반응함수는 변수와 변수 사이에 동태적 관계를 보여주는데, 특정변수가 1단위 증가하는 충격을 부과했을 때 다른 변수가 어떤 영향을 보이는지를 표현한 것이다. 이때 기호는 각각 다음을 의미한다. BK(가계대출), NBK(비은행예금취급기관 가계대출), BKI(예금은행 가계대출금리), NBKI(비은행예금취급기관 가계대출금리), HTPI(주택매매가격지수), HCPI(주택전세가격지수), CPI(소비자물가지수).

먼저 소비자물가지수는 예금은행과 비은행예금취급기관의 가계대출에 모두 영향을 주지만, 각각의 반응은 다소 상이하다. 먼저 예금은행에 비해 비은행예금취급기관의 가계대출에는 더 늦게 영향을 주지만, 더 지속적으로 영향을 준다. 한편 주택매매가격지수와 주택전세가격지수는 상반된 결과를 보여준다. 주택매매가격지수에 비해 주택전세가격지수는 가계대출에 상당히 큰 영향을 준다. 이는 경기침체로 가계의 주거형태 선호가 주택매입보다는 전세를 더 선호하는 것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한편 금리상승은 가계대출을 하락시키는데, 예금은행과 비은행예금취급기관 모두 그렇다. 다만 예금은행의 경우 완만하고 지속적인 하락이 감지되는데, 비은행예금취급기관의 경우에는 급격하고 상대적으로 일시적인 하락이 감지되는 것이 특징이다.

한국경제의 가계부채 문제와
논문의 한계

가계부채 문제는 오늘날 한국경제의 제 문제에서 중요한 문제 중 하나로 공공연하게 인정되고 있다. 이는 부동산에 대한 주택담보대출의 문제와 함께 소득대비 부채비율의 증가, 가계부채의 총량규제 등 다양한 논점이 복잡하게 결합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본 논문은 벡터자기회귀모형을 통해서 가계부채가 다른 거시경제 변수와 어떤 동태적 관계를 가지는 지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특히 여러 거시경제변수들 중에서도 물가지수나 주택가격지수 등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설정은 본 논문에서 언급된 소비문제나 다른 주요한 거시경제변수를 전혀 고려한 것은 아니다. 또한 벡터자기회귀 모형에 있어서도, 식별문제를 고려한 것이 아니라고 판단된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 제시한 충격반응함수는 여러 변수들의 피드백 효과가 고려되지 않은 것으로 변수의 순수한 효과를 추정한 것은 아니라는 점 또한 논문의 한계점으로 지적할 수 있다.

 

박알림 리뷰어  allimpp@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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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혐’ 올해의 키워드 등극 ··· 불황여파 ‘공유경제’ 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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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_note note_color=”#cfcfcc” text_color=”#000000″]DBpia Report, R은 2016년 논문이용 추이로 살펴보는 논문트렌드 분석기사를 (1) 사회과학 (2) 인문학 (3) 자연과학·공학  순서로 3부로 나눠 싣습니다. 2016년 1월 1일부터 12월 7일까지 DBpia에서 이용된 논문 중 상위이용 3만편을 대상으로 분석하며, 논문트렌드  1부 ‘2016 사회과학 논문트렌드’ 사회·경제부문을 소개합니다.
 
(1) 2016 사회과학 논문트렌드
     ① 정치
     ② 사회·경제
     ③ 노동 
(2) 2016 인문학 논문트렌드 
     ① 역사·철학
     ② 문화 
(3) 2016 자연과학·공학 논문트렌드 [/su_note]

 

r올 한해 사람들이 가장 많이 검색하고 이용한 논문은 ‘여혐’ 논문이었다. 디비피아의 2016년 1월부터 12월 7일까지의 이용통계에 따르면 100회 이상 이용된 상위 3만 편 논문 가운데 온라인상의 여성 혐오 표현이 7,388회로 1위를 기록했다. 전체 이용통계 2위와 3위도 여혐 관련 논문으로 왜 한국 남성은 한국여성들에게 분노하는가(5,750회)와 일베와 여성 혐오(3,991회)가 차지했다. 1-3위를 모두 ‘여혐’이라는 주제가 차지함으로써 한국 사회가 매우 특별한 순간에 직면해 있음을 드러내준다. 여혐 관련 논문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포스트페미니즘 시대 인터넷 여성혐오」(3,062회)가 7위, 문화영역의 여성화와 여성혐오(1,870회)가 17위, 전복적 반사경으로서의 메갈리안 논쟁(1,828회)이 20위, 혐오발언에 기생하기: 메갈리아의 반란적인 발화(1,372회)가 37위, 혐오의 시대: 2015년 혐오는 어떻게 문제적 정동이 되었는가」(1,302회)가 43위, 전략적 여성혐오와 그 모순(952회)이 117위 등 여혐 논문은 그 종수가 많지 않음에도 거의 대부분이 최상위권에 포진함으로써 뜨거운 관심을 보여줬다. 여타 페미니즘, 젠더 등의 주제도 다른 주제들에 비해 약진을 보였다. 전체 100여 편의 페미니즘 분야 논문 중 상위 10편이 모두 ‘여혐’을 직접적·중심적으로 다룬 논문이라는 점도 주목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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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혐오’ 주제 논문
순번 발행기관명 간행물명 논문명 저자
1 한국여성연구소 페미니즘 연구 온라인상의 여성 혐오 표현 김수아
2 문화과학사 문화과학 왜 한국 남성은 한국여성들에게 분노하는가 한윤형
3 진보평론 진보평론 일베와 여성 혐오 윤보라
4 한국여성연구소 페미니즘 연구 포스트페미니즘 시대 인터넷 여성혐오 정인경
5 도서출판여이연 여/성이론 문화영역의 여성화와 여성혐오 황미요조
6 한국여성철학회 한국여성철학 전복적 반사경으로서의 메갈리안 논쟁 윤지영
7 도서출판여이연 여/성이론 혐오발언에 기생하기 : 메갈리아의 반란적인 발화 유민석
8 도서출판여이연 여/성이론 혐오의 시대 – 2015년, 혐오는 어떻게 문제적 정동이 되었는가 손희정
9 숙명여자대학교 아시아여성연구소 아시아여성연구 타자화를 넘어, 서로 다른 두 주체의 소통을 전망한다: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 정인경
10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 미디어, 젠더 & 문화 전략적 여성혐오와 그 모순 엄진

 

도시광산’ 논문 최상위 순위 기록

 도시 광산업 논문이 2편이나 10위 안에 포함돼 의외였다. 처음 이걸 봤을 때는 도시에 버려진 폐광산이 많은가? 혹은 광산(鑛山)이 아니라 전자제품 산업을 줄여서 광산(光産)이라고 했나? 등의 의문이 들었지만 말 그대로 도시광산(Urban Mining)이었다. 버려진 가전제품에서 금속류 등의 자원을 추출해내는 산업을 일컬어 ‘도시광산’이라고 한다는 걸 이번에 알았다. 그런데 왜 갑자기 도시광산 논문이 2편이나 최상위권에 포진하게 됐을까. 최근 그린피스는 삼성전자에게 공식적으로 갤럭시노트7를 재활용하자고 요청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현재 제품하자로 인해 리콜 대상인 갤럭시노트7은 430만 대이며, 이는 730톤에 이르는 양이다. 그린피스 추정에 따르면, 이 리콜대상 휴대폰에서 코발트 2만kg, 은 1000kg, 텅스텐 1000kg를 비롯 금 100kg, 탄탈룸 9-86kg, 팔라듐 20-60kg 등이 재생성될 수 있다. 우리나라는 현재 전세계 20% 정도의 휴대폰 재활용률에 한참 못 미치는 4%의 재활용률을 보이고 있어 제품 회수와 재사용이라는 선순환 구조 만들기가 시급한 현실이다. 정부는 지자체 차원의 각종 경진대회 등을 통해 이에 대한 참여를 높이려고 애쓰고 있다. 도시광산 논문의 급속한 이용 증가는 갤럭시노트7의 초유의 리콜 사태 등 바로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추정된다. 

 

장기불황 속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의 키워드 ‘공유’

 한국 경제의 성장률 지속 저하와 장기불황 가능성이 예고되고 있는 요즘, 경제에 대한 논의도 활력을 잃고 있다. 따라서 기존의 틀에서 위기의식을 강조하는 논문들, 규제나 개혁의 로드맵을 제시하는 논문들보다는 새로운 대안을 찾으려는 논문들이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이를테면 공유 경제나 사회적 기업(경제)을 논하는 논문들이 상위권에 다수 포진되어 있다. 경제를 키워드로 해서 검색된 465편의 논문 중 가장 많이 이용된 논문은 1,400회 이용된 공유경제(Sharing Economy)의 미래와 성공조건(전체논문 중 35위)이다. 한국의 ‘사회적 경제’ 개념 정립을 위한 시론(298위), 공유경제 서비스의 성공요인에 관한 실증 연구(460위), 사회적 경제를 통한 지역혁신의 가능성과 한계(1,442위), 사회적기업의 사회경제적 성과에 미치는 영향요인 분석(2,429위), 「공유경제(Sharing economy)에 대한 정부규제의 필요성」(3,236위) 등 상당히 많은 논문이 상위권에 랭크돼 있다.

공유경제란 글로벌 경제 위기가 지속되면서 물건을 소유하기보다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여유 자원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 쓰는 공유경제가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으로 등장하고 있음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공유라는 개념은 인류사와 같이하는 오래된 아이디어이지만 스마트폰 혁신으로 인해 이것이 경제 패러다임을 바꾸는 시대를 맞았다는 이야기다. 스마트폰을 통해 전 세계 어느 곳이든 연결해서 숙박과 차량 등을 저렴한 비용으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이 개념을 활용한 기업 창업도 많이 이뤄진다. 전망은 밝은데 해결할 과제도 많다. 공유경제(Sharing economy)에 대한 정부규제의 필요성에서는 “공유경제 기업 중 이익추구형 플랫폼은 혁신적인 기술을 사용하고 있을지언정 실제로는 거대 ICT 플랫폼으로서 전통적 자본주의 기업과 속성에 있어 변함이 없는 측면도 있다. 이들은 전통적 비즈니스와 동일한 시장을 두고 갈등과 경쟁을 일으키고 있음은 물론이고 소비자 안전, 노동력의 부당한 이용 등으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며 규제의 필요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공유경제’ 주제 논문
순번 발행기관명 간행물명 논문명 저자
1 경기연구원 이슈&진단 공유경제(Sharing Economy)의 미래와 성공조건 김점산, 지우석, 강상준
2 한국사회과학연구회 동향과 전망 한국의 ‘사회적 경제’ 개념 정립을 위한 시론 신명호
3 한국소비자원 소비자정책동향 에어비앤비(Airbnb) 사례를 통해 본 공유경제 관련 법 제정 현황 분석 송순영
4 국제e-비즈니스학회 e-비즈니스연구 ICT 발달에 따른 공유경제에 대한 소고 고윤승
5 한국콘텐츠학회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공유경제 서비스의 성공요인에 관한 실증 연구 김해중, 박종우, 조동혁
6 한국공공사회학회 공공사회연구 사회적 경제를 통한 지역혁신의 가능성과 한계 김경희
7 한국지방정부학회 지방정부연구 사회적기업의 사회경제적 성과에 미치는 영향요인 분석 선남이, 박능후
8 행정법이론실무학회 행정법연구 공유경제(Sharing economy)에 대한 정부규제의 필요성 이성엽
9 한국사회학회 한국사회학 사회적경제와 지역발전 이해진
10 한국사회복지행정학회 한국사회복지행정학 사회적경제 조직의 리더십에 관한 탐색적 사례연구 오단이
4차 산업혁명 논문들 봇물

 인간이 무한히 지구를 파먹을 수 없기 때문에 성장 또한 무한할 수 없다는 한계의식이 공유경제 패러다임에 주목하게 만들었다면,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으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이 불러올 경제적 지각변동 또한 많은 관심을 받은 경제학적 주제였다.

이와 관련해서는 20편 가량의 논문이 발 빠르게 집필되고 읽혔는데 내년 상반기에는 훨씬 더 많은 논문과 열독률을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가장 많이 읽힌 논문은 2016 다보스포럼에서 발표된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우리의 전략은?으로 전체 이용순위 88위를 차지했다. 그 다음은 4차 산업혁명이 마케팅에 있어서 혁명적인 변화를 몰고올 것을 예측한 4차 산업혁명, 마케팅 혁명의 길(123위)이 차지했다. 논문들을 일별해보면 4차 산업혁명이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는 스마트 기기 회사들 동향, 4차 산업혁명의 핵심으로 ‘산업인터넷’을 적시한 논문, 스마트기술과 표준화 전략, 그리고 4차 산업혁명의 국가경제 파급효과에 대한 계량적 연구 등이다. 그리고  연관된 영역으로 사물인터넷 논문이 85편, 인공지능(로봇)에 관한 논문이 100여 편, 드론에 대한 논문이 56편 등으로 포함되었다. 이들 논문은 추후에 공학 분야에서 다루기로 한다.

여기서는 다소 생소한 산업인터넷을 살펴보자. 산업인터넷이란 사물인터넷·기계·인간·컴퓨터가 첨단 데이터 분석으로 기업의 설비나 시스템 운영체계를 최적화하고 지능적인 의사결정을 가능케 하는 기술을 말한다. 미국의 GE사가 대표적 선두주자이며 이 회사는 10억 불을 투자하여 산업인터넷 플랫폼 ‘Predix’를 선보인 바 있다. GE사는 산업인터넷의 핵심 요인을 소프트웨어 플랫폼 구축 및 생태계 조성으로 보고 소프트웨어 인력채용, 대규모 R&D, M&A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시장 규모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하다. 14조 6000억 달러 규모의 시장으로 예측된다. 현재 전세계 앱시장 규모가 880억 달러 수준이니 얼마나 큰 시장인지 알 만하다.

문제는 이러한 시스템 구축이 인간의 설자리를 좁힐 거라는 데 있다. 4차 산업혁명은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 또한 요구한다. 제조의 패러다임 변화가 그것을 가능케 할지도 모르겠다. 4차 산업혁명, 마케팅 혁명의 길에서 김원호 신한대 교수는 과거에는 전문가가 고가의 장비로 제품을 만들고 상품화했다면,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엔 다양한 개인이 시스템의 지원을 받아 개성적인 제품을 만들고 이것들이 마켓을 이루는 ‘디지털 공작소’가 넘쳐날 것이라고 예상한다.

‘4차 산업혁명’ 주제 논문
순번 발행기관명 간행물명 논문명 저자
1 과학기술정책연구원 과학기술정책 2016 다보스포럼: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우리의 전략은? 장필성
2 한국마케팅연구원 마케팅 4차산업혁명, 마케팅 혁명의 길 김원호
3 대한산업공학회 ie 매거진 인공지능과 제4차 산업혁명의 함의 원동규, 이상필
4 대한전기학회 전기의세계 제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는 스마트제조 백수현
5 지속가능과학회 STSS지속가능과학회 학술대회 4차산업혁명, 인공지능 시대의 교육 김진형
6 한국경영학회 한국경영학회 통합학술발표논문집 제4차 산업혁명이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 안상희, 이민화
7 과학기술정책연구원 FUTURE HORIZON 인공지능, 로봇, 빅데이터와 제4차 산업혁명 박병원
8 한국사회과학연구회 동향과 전망 저성장과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대응 과제 유철규
9 한국뇌과학연구원 브레인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 그리고 인공지능 혁명의 본질 한재권
10 전력문화사 Electric Power 인공지능이 가져올 4차 산업혁명 물결 이민화, 강만금

 

 

강성민 리뷰위원 paperface@naver.com

<저작권자 © 리뷰 아카이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미적분학의 탈신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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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경제위기 이후 주류경제학에 대한 비판적 논의들은 부단히 이어지고 있다. 경제학은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경제학의 외부 – 경우에 따라서는 경제학 내부의 비주류경제학을 포함한다 – 에서는 경제학이 활용하는 수학적 논의들이 복잡하기만 할 뿐 현실경제를 적절히 설명하고 있지 않은 것이 아닌지 의구심을 갖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적 의견들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수학이 과학적 논의에 있어서 핵심적인 설명방식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도 비단 어제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수학을 진지하게 경제학의 방법으로 활용하려고 시도했던 것은 당대의 주류경제학에 대한 비판자를 자임했던 마르크스도 예외가 아니었다. 일본의 경제학자 모리시마에 따르면 마르크스가 일반균형이론을 처음으로 제기한 왈라스와 함께 최초의 수리경제학자였다. 심지어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왈라스의 <순수경제학 요론> 보다 불과 몇 년이지만 더 빨랐다.

그렇다면 마르크스에게 수학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었을까. 류동민의 「마르크스와 수학」(『마르크스주의 연구』, 12(2), 2015)에서는 마르크스의 <수학초고>를 통해서 마르크스가 수학에 대해 어떻게 접근하였는지를 분석한다. 특히 마르크스가 수학에 관해서 핵심적인 주제로 다루었던 ‘미분적분학의 탈신비화’에 대해서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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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마르크스
마르크스와 수학

1858년 1월 11일, 마르크스는 엥겔스에게 보내는 편지에 다음과 같이 쓴다.

[su_quote]경제적 원칙들을 다듬는 동안 나는 계산상의 실수 때문에 지긋지긋한 지체를 겪었고 절망한 나머지 대수학을 빨리 훑어보았네. 나는 늘 산수에는 서툴렀다네. 그러나 대수학적 우회를 통해 나는 빠르게 따라 잡을 수 있었다네. (114쪽)[/su_quote]

단순한 편지글이지만 이 글에서 우리는 마르크스가 수학을 공부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다음과 같은 내용도 있다.

[su_quote]여가 시간에 나는 미분과 적분을 공부하고 있어. 마침 내게는 미적분학에 관한 책이 엄청나게 많은데, 만약 자네가 이 분야에 달려들고 싶다면 그 중의 한 권을 보내주겠네. 그것은 (순수하게 기술적 측면에 관한 한) 예컨대 대수학의 다 른 고급 분야들보다 수학에서는 훨씬 쉬운 부분이라네. 공통 대수나 삼각함수를 제쳐 놓으면, 원뿔곡선에 대한 일반적 이해 이외의 어떠한 예비적 연구도 필요하지 않아. (114쪽)[/su_quote]

그 밖에도 몇가지 간접적인 내용들을 통해서 마르크스가 수학 공부에 매진하였으며, 특히 미분적분학에 관심을 가졌었다는 점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물론 마르크스가 수학을 얼마나 능숙하게 다룰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상당한 이견이 있다. 마르크스는 수학젬병이었다는 주장에서부터 상당한 성취를 했었다는 주장까지 다양하다. 엥겔스는 물론 마르크스가 수학에 독창적인 기여를 했다고 주장한다. 한편 마르크스는 미분적분학에 대한 자신의 연구를 <자본론>이나 여타의 이론적 작업에 반영하지 않았다. 때문에 마르크스의 미분적분학에 대한 수학적 기여가 마르크스에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대신에 <자본론>에는 이른바 ‘재생산표식’에서 2×3형태의 표를 통해서 조야한 방식으로 수학적 작업을 시도한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미분적분학을 경제학에 적용하다가 실패하고 중도에 포기했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실제로 그는 “잉여가치율과 이윤율의 수학적 논의”라는 초고에서 이를 시도하지만 중간에 포기한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수학에 얼마나 능숙하게 잘했고, 또 수학적 재능에 얼마나 소질이 있었는지는 중요한 문제는 아닐 것이다. 중요한 것은 마르크스가 수학, 특히 미분적분학에 대해 어떻게 접근하고자 하였는가, 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르크스의 수학초고
: “미분적분학의 탈신비화”

마르크스가 써서 당대에 출판되지 않은 다양한 원고 중에는 <수학초고>라는 문헌이 있다. 여기서 마르크스가 논하는 핵심적인 주제는 “미적분학을 탈신비화하는 것”이었다. 이는 <수학초고> 중에서 “도함수의 개념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글에 수록되어 있다. 그는 말하자면 미적분학에서 나타나는 수학자들의 ‘무지몽매’에 대한 폭로를 시도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를 테면 다음과 같은 논의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미분과정이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이러한 미분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dx가 마지막 단계에서 갑자기 사라지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이것이 수학자들이 (5)의 결과를 미리 알고 있는 상태에서 (4)식으로부터 임시변통식의 가정을 추가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마르크스는 dx와 dy가 무한소이며, 0/0으로 무한히 접근하지만 같아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고, 따라서 당대의 수학자들이 이를 같게 본다는 점을 비판한 것이다. 그는 이것을 수학자들의 ‘환상’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마르크스는 미분적분학에서 수학자들의 환상을 폭로하고 이른바 ‘탈신비화’하고자 했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현대의 수학적 논의에서는 문제가 많은 주장이지만 말이다.

마르크스의 수학

수학초고에서 보여준 마르크스의 미적분학에 대한 주장은 오늘날 현대의 수학적 논의와는 동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적어도 그의 주장은 그가 가진 철학적 견해를 견지한 것이었다. 즉 그에 따르면 수학적 개념은 현실의 실재를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가 평소에 수학을 경제학에 도입하고자 노력한 바를 떠올리면, 적어도 마르크스는 수학은 실재를 재현하는 도구로 활용될 수 있었으며, 경제라는 현실적 세계를 재현하기 위해서 수학을 사용하고자 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포스트모던 마르크스주의자인 루치오(1988)은 수학이 재현의 도구가 아니며 은유나 예시로만 사용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수학초고에서 살펴보았듯이 마르크스의 주장과는 동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한다.

[su_quote]철학자들은 자신들의 언어를 버리고 일상 언어로 돌아가야 한다.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일상 언어로부터 추상된 것이며, 현실 세계를 왜곡하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언어는 독립적인 존재를 획득하는 순간 진부한 문구로 변한다. (127쪽)[/su_quote]

말하자면 마르크스는 수학이든 철학이든 현실적인 대상으로서의 실재를 충분히 재현하고자 했던것이다. 따라서 수학을 거부하고 철학을 도입한다고 해도 현실을 적절히 설명하지 않는다면 폐기해야 하는 방법일 뿐이다. 결국 마르크스는 수학적 방법이 실재를 재현하고, 이를 통해서 경제학적 논의를 개진하고자 했던 점은 일찍부터 가지고 있었던 생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은 주류경제학에서 터져나오는 문제의식과도 사실 전혀 다른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확하게 똑 같은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폴 로머의 “경제성장이론에서의 수학스러움”은 바로 이 문제를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수학이 실재와 멀어진다면 내적 정합성이 있을지라도 그것은 과학적 방법으로서의 수학이 아니라 ‘수학스러움’일 뿐이었다.
 
박알림 리뷰어  allimpp@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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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노동정책은 청년실업을 해결할 수 있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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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ofinale박근혜 정권 지난 4년 동안 가장 뜨거운 감자가 된 정책은 다름 아닌 노동시장 관련 정책이었다. 정권 초부터 공공부문 민영화 강행 등으로 노동계를 비롯한 여론으로부터 비판 받아온 박근혜 정부였다. 하지만 특히 작년 9월 노사정 합의(혹은 ‘야합’)로 상징되는 노동개혁(혹은 ‘개악’) 정책은 상당한 논쟁과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정부와 여당은 자신들의 노동시장 정책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주로 청년 일자리 창출 의제와 연관지어 해당 정책들을 설명했다. 흔히 말하는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청년 실업 심화의 근본적 원인이기에, 청년 일자리 대책을 마련하려면 해당 부분에 대한 개혁이 불가피하고 최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식적 청년 실업률이 역대 최고 수준을 연일 기록하고, ‘흙수저 계급론’ 등이 부상하는 오늘 청년 실업에 대한 대안이 제시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히 맞다. 구의역 사고 등 청년들의 삶이 구렁텅이에 빠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 여러 차례 일어나기도 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정부의 노동시장 정책이 청년 실업 대책이 맞냐는 비판은 이미 여러 차례 제기되었다. 오히려 노동조합과 정규직 노동자들의 일자리 조건을 떨어뜨리는 게 본질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정책들에 대해서는 파업이나 민중총궐기 등의 대중적 시위를 통해 반발심이 분출되어 왔다.(필자가 이 글을 기고할 즈음인 11월 30일 현재 민주노총은 정권퇴진과 정책폐기를 요구하며 총파업에 나섰다.) 그리고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는 필자는 김성희 서울노동권익센터 소장의  「박근혜 정부 노동개혁과 청년 실업:정책의 도구화와 반복되는 실패에서 벗어나기」 (『노동연구』, 31, 2015)를 소개하고자 한다.  물론 2015년의 논문이라 최근의 유관한 쟁점이라고 할 수 있는 공공부문 성과연봉제와 관련된 내용이 다뤄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정부의 노동시장 정책이 과연 청년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수 있는 정책인지에 관한 논의를 소개하기에는 크게 모자람이 없다고 판단되어 소개하고자 한다. 더욱이 꽤나 중요한 현안이라고 할 수 있는 노동’개혁’에 관한 논의가 본 웹사이트에 아직 소개된 바가 없는 만큼, 빠른 소개가 필요하다는 생각 또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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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하반기 고용노동정책을 발표하고 있는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
대체 청년 일자리 정책은
어디에 있는가?

저자는 이 글에서 노동’개혁’과 관련된 정부의 정책들에 대해 자세히 분석한다. 저자에 따르면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합의문(안)-사회적 대타협’ 등을 분석했을 때, 정부가 포장하는 바와 달리 정작 청년 실업 해결책은 거의 제시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대부분의 조항은 노동조합이나 정규직 노동조합의 조건에 대한 내용이고 대부분 그 조건을 저하시키는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정부는 이를 통해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해결하고자 함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이는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꼴에 불과하다. 대기업 유노조 정규직 노동자들이 받아가는 몫을 청년 구직자에게 일부 떼어주겠다는 내용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그나마 기존에 안정적 조건을 제공하던 일자리마저 불안정노동으로 전락하여 오히려 전체적 노동조건의 ‘하향 평준화’가 유발된다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정부의 노동시장 정책 하에서 그나마 청년 일자리와 직접적 유관성이 있는 내용은 직접적 일자리 제공과 취업 훈련과 관련된 항목들이다. 그러나 직접적 일자리 제공의 경우, 역대 정권들의 실패를 반복하고 있다. 인턴 일자리를 더 많이 제공하겠다는 내용이 주를 차지하고 있는데, 저자는 이와 같은 단기적 조처는 이전 정권에서도 시도되었으나 별 효과를 보지 못했고 현재적 관점에서도 그다지 유효성이 커보이지 않음을 지적한다. 시간제 일자리를 더 확대하겠다는 정부의 정책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문제가 많다. 간호서비스 인력 등의 분야에서 고용을 확대하겠다는 방침 등은 구체적 인력 확충 계획이 없다시피 하다.

또, 일자리 훈련 지원도 빈약하기 짝이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예컨대 사무직 취업을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워드 프로세서 등 기초적인 컴퓨터 활용 능력을 교육시켜주겠다는 정도이다. 필자는 이와 같은 정책들이 고학력 청년 유휴노동력의 취업을 효과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이들이 받아온 교육 수준을 충분히 고려해야지, 단순 직무교육 정도만 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이에 관련해서 필자가 한 마디를 덧붙이자면, 많은 경제학자들이 노동시장 미스매치를 지적하고 있는데, 이를 해소하기 위한 대책으로서 청년들을 위한 일자리를 제공하고 창출하는 방안은 정부의 일자리 제공이나 취업 훈련 관련 대책에서 없다시피 하다는 점이 심히 우려스렵다. 그렇게 되면 미스매치의 해법은 주어진 조건에 청년 구직자들이 눈높이를 맞추는 것으로 강요되기 때문이다.

결국, 저자는 노동개혁의 초점은 청년 일자리 대책 마련이 아닌 유노조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조건 악화에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한국의 노동시장은
어떻게 될 것인가

박근혜 정부는 자신들의 노동시장 정책이 이른바 유연 안정성을 지향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폭로한다. 청년일자리 대책과 직접 연관된 항목은 아니지만 정부가 제시한 정책들을 살펴봤을 때 청년 구직자들에게도 불안정성이 가중되는 내용이 많다고 한다. 노동시간 연장을 허용하는 방안들, 비정규직 허용 폭 확대 방안들이 대표적으로 그러하다. 실업 보험 관련 정책 역시 보장성이 확대되는 방향이 아니라 적잖은 취약 계층의 수급 가능성을 제약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제시되었다.

따라서 저자는 이 정책대로라면 한국의 고용체제(혹은 고용-복지 연계의 체계)는 ‘불안정성’에서 ‘사회적 보호’를 강화하는 방향이 아닌 불안정성의 유지와 심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말한다. 노동시장이 매우 유연해서 ‘경제적 보호’조차 적은 상황에서 복지를 통한 사회적 보호의 강화 역시 진행되지 않을 터이니 말이다.(사족을 붙이자면, 경제적 보호와 사회적 보호가 모두 충분한 경우는 ‘완전 보호’로 분류된다.)

청년 실업 대책의
비용은 누가 져야 하는가

저자는 또한 정부가 표방하는 바와 달리 청년실업 대책에 실제로 투여될 것으로 계획된 정부 예산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런 예산이 늘어나야 단지 인턴 등 단기적 일자리의 제공이 아닌 안정적인 양질 일자리의 제공이 충분히 가능해질 것이다. 저자는 역대 정부가 안정적인 장기 일자리를 제공하는 방안을 별로 제시해본 적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며서, 그와 같은 일자리 제공에 정부가 적극 나서는 것을 결코 ‘터부’시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또한 정부는 일자리 창출에 적극적인 기업에게 보조금을 주는 방향으로 일자리 창출을 독려하고자 하는데, 저자는 이 접근의 위험성을 지적한다. 이는 실효성이 매우 떨어지는 정책이다. 기업들은 이미 존재하는 청년 고용 할당제마저 제대로 지키지 않는 실정이다. 게다가 지원금만 받아 챙기는 편법이 생길 수도 있다. 따라서 해외의 우수 선례들을 따를 필요가 있다. 벨기에의 ‘로제타 플랜’처럼 오히려 청년 고용을 제대로 하지 않는 기업에 벌금을 물리고 그 돈을 일자리 창출에 활용하는 편이 훨씬 효과적이다. 이 외에도 일자리 창출을 위한 여러 재원은 기업들에게서 세금 등을 통해 징수해야 한다. 저자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청년 일자리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책임 전가’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 외에도 저자는 실노동시간 감축을 통해 일자리를 늘려서 실업자들의 취업 기회를 확대하고 비정규직 관련 대책을 충분히 마련하는 것이야 말로 청년 실업의 대안이라고 지적한다.

청년 실업의 진정한 대안

필자는 저자가 제시하는 비판과 대안이 대부분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다만 몇 가지 점은 더 구체화되어야 한다. 예컨대 이 글에서는 청년 일자리 창출에 기본적으로 기업들이 나서도록 강제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된다. 필자는 이와 함께 공공부문에서의 일자리 창출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업 뿐 아니라 정부에서도 인력 충원을 제대로 하여 청년 일자리 창출에 직접적으로 기여해야 한다. 또, 저자가 우려하는 ‘윗돌 빼서 아랫돌 괴기’를 막으려면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 과정에 있어서도 기존에 취업한 노동자들의 임금 등 조건이 후퇴되어선 안 된다는 점을 보다 명시적으로 내세울 필요가 있다.

또, 보다 효과적인 비판을 위해서도 세 가지 제언이 있다. 첫 째는 노동시장 미스매치 관련 주장에 대한 반박이 강화되어야 한다. 물론 이 글에서 유관한 내용이 다뤄지기도 했고 필자도 관련하여 몇 가지 지점들을 덧붙이기는 했다. 하지만 노동’개혁’지지자들이 노동시장 매칭이론에 근거하여 미스매치를 매우 강조하는 만큼, 이에 반박할 논거를 강화해야 한다.

둘째로 ‘윗돌 빼서 아랫돌 괴기’ 비판에 대한 문제다. 그것이 하향평준화로 이어진다는 점에 대한 지적은 전적으로 옳고 타당하다. 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안, 즉 기존 정규직 노동자들의 인건비와 일자리를 줄이면서 그 몫을 청년 실업자들에게 나눠주는 방안이 애초에 얼마나 실현 가능성 있는 말인지 부터 따져볼 필요가 있다. 정부와 여당 그리고 기업주들은 이것이 실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주장은 청년 노동력과 기존 취업 노동력이 경제학적으로 볼 때 대체제 관계에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김유선 연구원(부소장)에 따르면 실증 결과 두 노동력은 오히려 보완재이지 대체재가 아니라고 한다. 따라서 기존 노동자들이 사라진 자리에 청년 실업자들을 앉히는 과정이 쉽게 되지 조차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논문으로 청년실업 문제를 총체적으로 파악하고자 한다면 모자람이 있을 것이다. 여전히 노동개혁 정책과 관련된 현안들을 위주로 다루고 있을 뿐, 청년실업의 근본적 원인에 대해 다루면서 그 대안을 논하고 있지는 않다. 차후에 이 지점들에 대해 보다 자세히 다루는 논문을 소개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김종현 리뷰어  mrkim_sam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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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농업 생산력은 과연 폭증하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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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ofinale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 결정 이후, 박근혜 정부의 여러 정책들이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교육분야에서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정책이 대표적이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방침 발표 이후, 학계와 사회는 교과서가 보수적 관점에서 과거의 정권들을 미화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또한 이른바 집필진 중에 이른바 ‘뉴라이트’ 사관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도 여론의 화살을 맞고 있다. 뉴라이트 진영 상당수는 일제 강점기 시절 조선의 경제적 상황에 대해 상당히 미화하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식민지에서 근대화가 이뤄졌다는 서술 자체가 반드시 소위 말하는 ‘친일 사관’으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그 둘이 꽤나 강력한 친화성을 지닌다는 점 역시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식민지 근대화론은 계량경제사학(혹은 수량경제사)에 입각한 경제학적이고도 실증적인 논리에 입각한 이론이기도 하다(식민지 근대화론을 대표적으로 주창해온 것은 낙성대경제연구소 출신의 경제학자들이었다). 따라서 이 이론에 대해 엄밀히 비판하고자 한다면, 규범적 비판도 필요하지만 그에 앞서 그들의 계량경제적 추계와 실증적 근거들부터 전면 재검토해볼 필요 또한 있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해 비판하는 대표적 논자인 허수열의 「식민지 근대화론의 주요 주장의 실증적 검토(『내일을 여는 역사』, 59, 2015)를 소개하고자 한다. 허수열 교수는 『개발 없는 개발』(2016, 은행나무)을 비롯한 여러 논저에서 식민지 근대화론을 비판해온 경제학자이다. 이 논문에서 그는 그 동안 그가 전개해온 핵심적 주장들을 요약하고, 자신의 주장에 대한 낙성대경제연구소 측 인사들의 비판에 대해 재반박한다.

 

식민지 근대화론의
주요 논리

식민지 근대화론은 일제 강점기 하에 조선인의 생활수준이 향상되었다는 주장을 하여, 사실상 수탈을 부정한다. 그래서 저자는 식민지 하에서 이뤄진 ‘개발’이 과연 조선인의 삶을 ‘근대화’시키고 물질적 후생을 향상시켰는가에 대해 문제제기 한다(만약 일제 하에서의 ‘개발’로 조선인의 삶이 나아졌다면 수탈이 아니겠지만, 그 반대라면 그 ‘개발’은 수탈적이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식민지 근대화론의 핵심 주장은 다음의 세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su_quote] (1)조선후기 사회가 생산력의 붕괴와 더불어 자멸할 수밖에 없는 위기에 놓여있었다.
(2)일제강점기 동안 일본으로부터 근대적인 여러 제도가 도입되고 선진적인 자본이 대거 투입됨으로써 조선이 빠른 속도로 개발되었으며, 그 결과 조선인들의 생활수준도 향상되었다는 주장
(3)그리고 이러한 식민지적 개발의 경험과 유산이 해방 후 한국경제의 고도성장의 역사적 배경이 되었다는 주장
(103페이지)[/su_quote]

물론 식민지 조선에 일본인 자본가들이 공장도 세우고 상점도 세웠으니 경제가 성장하기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논점은 다른 데에 있다.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갔다는 말이다. 이들은 조선은 내부적으로는 (근대적) 경제 성장이 전혀 불가능해서 어떤 외부적 충격 없이는 더 이상 발전할 수 없었던 사회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식민지 지배가 그 외부적 충격이 되었다고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허수열 교수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비판하기 위해 일제 초에 조선의 생산력이 급반등했다고 볼 근거가 취약하다고 반박한다.

 

GDP 추계의 문제
일제 강점하 조선에서 농업 생산력은 과연 폭증하였는가?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은 흔히 조선말 일제 초의 경제성장이 V자 곡선을 그렸다고 주장한다. 급하락하다가 성장세가 급 회복되는 양태를 보였다고 말이다. 그들은 1910년 이후 조선의 GDP 추계를 바탕으로 이와 같은 주장을 실증적으로 뒷받침한다. 그런데 누구라도 알 수 있다시피 1910년대의 GDP에 대한 공식적 자료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당대의 산업 생산에 대한 자료 입각하여 계량경제학적으로 추계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조선은 농업 국가였으므로, 당시 농업 생산의 규모에 대한 통계가 추계를 내는 데에 있어서 핵심적이다. 문제는 당시의 농업 생산 규모에 대한 자료 자체조차 변변찮다는 점에 있다. 물론 조선총독부는 1909년부터 농업통계를 진행하였다. 하지만 토지조사사업은 1918년에야 완성되므로, 1918년 이전의 조선총독부 통계는 아무리 객관성을 가한다고 해도 매우 부정확한 내용을 담고 있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 시기에 농업생산이 폭발적으로 일어날만한 이유도 딱히 없다. 조선총독부가 농업개발정책에 열을 올린 것도 1920년 산미증식계획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가지 아이러니한 점은,  산미증식계획과 겹치는 시기인 1918~1929년에는 농업 생산이 그닥 성장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심지어는 낙성대경제연구소 측의 입장을 집대성 한 책인 『한국의 경제성장 1910-1945』(김낙년 편, 2006)에서도 인정되는 바이다. 따라서 1910년대 초반에 조선에서 급속한 (농업)경제성장이 일어났을 법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적어도 1930년대까지 식민지에서 급속한 개발이 이뤄졌다는 점을 입증할 수 없다. 특히 조선의 GDP에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산업은 농업이었으므로, 이 시기 농업 생산의 폭증을 입증해야만 식민지 근대화론의 주장의 과학성이 보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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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총독부 초대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 그의 재임기간 중 조선의 농업생산이 늘어났는지 여부는 식민지 근대화론의 타당성 여부에 핵심적인 쟁점이다. 출처: 위키백과

 

물론 어떤 논자는 다른 통계를 바탕으로 이 시기 급속한 농업 성장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영훈 교수의 경우는 20세기 초반 조선에서 두락당 지대량이 급속히 증가했다는 점을 들어 이 시기 농업 생산이 폭증했다는 점을 스스로 입증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의 통계에도 역시 여러 가지 난점이 있다.

첫째, 그의 주장대로 지대량이 농업생산력에 비례하는 것이라면 조선 중기의 농업생산력이 오히려 일제 강점기 하에서의 농업생산력보다 우월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영훈 교수가 제시하는 통계에 따르면 1685년~1760년까지의 지대량이 1935년의 지대량보다 많기 때문이다! 또한 원자료의 편향성 문제도 있다. 경상도의 경우, 지대량이 1685년에서 1945년까지 별다른 변화가 없다시피 하다. 그런데 전라도의 경우에만 지대량이 V자 곡선을 그리고 있다. 그렇다면 전라도의 농업 생산력은 조선 후기에 붕괴하다가 20세기 초에 급회복되었다는 말인가? 결코 아니다. 이영훈 교수가 제시한 1815년 이전 전라도에 관한 데이터는 오로지 한 가문의 지주(영암 남평문씨)의 지대 수취 기록에 근거한 것이다. 오직 이 한 가문의 데이터만이 예외적인 V자 패턴을 보인다. 그런데 이영훈 교수는 이 데이터를 전라도 전체의 데이터로 일반화시킨다. 그런데 하나의 특이한 사례가 분석결과에 큰 왜곡을 초래할 가능성에 있다면 회귀분석에서는 당연히 제외시켜야 한다. 데이터의 문제 외에도 지대량을 토대로 농업의 생산력을 측정하는 것이 과연 타당하냐는 질문도 가능하다. 19세기를 전후도 지대수취 관행이 크게 변화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처럼 지대수취의 기준이 변화하면 지대량에 변화가 생길 수가 있다. 따라서 지대량만을 근거로 농업 생산력을 정확히 추정할 수 있겠냐고 저자는 반문한다.그런데 저자는 이 시기 농업생산이 급증할 합리적 이유는 적어도 사료에 따르면 아무 것도 없다고 지적한다. 이 시기에 농업 투입 증가는 상대적으로 미비한 수준이었다. 따라서 이 시기에 농업 생산이 증가했다면, 이는 오직 우량품종 보급의 효과였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물론 1910년부터 몇 년간은 우량품종 보급률의 급증과 함께 미곡생산량이 얼마간 증가하는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1914년 이후에는 우량품종 보급률은 급증하고 있었음에도 전체 평균 미곡생산은 거의 증가하지 않았다. 이 점은 조선총독부의 통계를 찬찬히 뜯어보면 쉽게 입증할 수 있는 부분이다. 따라서 우량 품종이 보급으로 인한 미곡생산 증대를 쟁점 삼아 저자의 주장을 재비판하던 식민지 근대화론 측 김낙년 교수의 반론은 근거를 잃는다. 물론 생산성이 높은 우량품종이 증가했는데도 왜 전체 평균 미곡 생산량이 증가하지 않았는지는 추가 규명이 필요한 부분이긴 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에 따라 1918년 이전에 조선의 농업 생산이 폭증했다고 볼만한 근거는 그다지 없다는 결론이 나오며, 더 나아가 적어도 1930년대 이전의 식민지 조선에서 급속한 경제성장이 이뤄졌다고 볼 수 있는 증거 또한 사라진다. 1940년대에는 태평양 전쟁으로 경제가 극심한 어려움을 겪게 되므로, 식민지 시절 중에는 후하게 봐줘야 10년 정도가 유의미한 경제성장이 이뤄진 시기였을 것이다.

이 외에도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은 일제 초기에 관개 시설이 정비되었다는 점을 들어 1910년대 농업 생산력이 크게 증가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역시 이영훈 교수는 일본인들이 수리시설들을 축조하여 농업생산이 크게 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가 사료에 입각하여 재검토해본 결과, 그가 제시하는 시설들 중 상당수가 사실은 조선시대에 이미 만들어진 시설이거나 1920년대 중후반에 들어서야 만들어진 구조물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시설 정비로 인해 농업 생산력이 크게 증가했다는 그들의 주장 또한 실증적 근거를 잃는다.

 

농업 외 쟁점들

이 논문에서는 농업 생산의 증가 여부가 주된 쟁점으로서 다뤄진다. 그런데 당연히 다음과 같은 합리적 물음이 던져질 수 있다. 아무리 조선경제에서 1차 산업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다고 한들, 2차와 3차 산업이 크게 성장하여 근대적 경제성장이 이뤄졌을 수 있는 것 아닌가 하고 말이다. 하지만 저자는 루이스 전환점(1차산업에서 2,3차 산업으로의 노동인구 유입이 완결되는 시점)이나 클라크 지수 및 호프만 지수(산업이 얼마나 고도화되었는지에 대한 지표들)의 급변화는 1960년대 중엽 이후에나 발견된다고 지적한다. 이점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소개한 저자의 2012년 논문을 참고해보기를 권한다. 산업구조의 본격적 ‘근대화’와 성장은 해방 이후에나 관찰된다는 것이다. 또, 저자는 식민지 하에서 경제발전으로 조선인들의 물질적 후생이 증가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한다. 1960년대 이전까지 한국의 임금은 생존임금 수준이었고, 1960년대에 들어서야 엥겔계수에 변화가 생긴다. 저자는 다른 논문에서 조선인의 소비량이 일제 강점기하에서 증가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데, 이 역시 밑에 소개하였으므로 보다 자세히 알고 싶은 독자들은 참고해보길 바란다. 그에 따르면 조선인의 소비량이 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일제 하 경제성장을 과대평가함으로써 잘못된 결론을 이끌어냈다고 한다. 또한 그는 일본인과 조선인 사이의 경제적 ‘이중 구조’ 또한 무시할 수 없다는 점 역시 덧붙인다. 앞서 소개했듯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은 식민지 개발의 유산이 해방 후 한국의 경제성장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고 말하는데, 저자는 인적자본의 축적 역시 해방 후에야 폭발적으로 주장한다는 점을 들어 이에 대해 반박한다. ‘생산력’ 이외에 (허수열 교수는 이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지만) ‘생산관계’ 측면에서 보아도 전근대적 지주제도가 붕괴한 시기는 1950년대 이후다. 오히려 일제 강점기는 그러한 제도가 강화되었던 시기이다. 요컨대, 식민지 시기에 근대적 경제성장이 일어나지도 않았으며 일제의 개발 덕에 조선인의 생활 수준이 개선되었다고 볼 수 있는 여지는 결코 없다.

 

몇 가지 의문

이상에서 필자는 허수열 교수가 식민지 근대화론을 비판한 여러 주장들을 긍정적으로 조망했다. 하지만 그의 입장에 기본적으로 동의하는 바가 많음에도 몇 가지 지점에서는 의문이 든다. 첫째,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은 일제 시기의 ‘제도적 유산’을 강조하는데, 이에 대한 비판이 적어도 이 논문에서는 크게 강조되지 않는다. 필자는 이 부분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비판이 필요했으리라 생각하는데 왜 허수열 교수가 그렇게 적극적으로 제시하지 않았나 의문이 든다. 물론 그의 다른 논저에 이에 대한 충분히 언급이 있다면 이는 필자의 불찰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은(참고로 이들은 대부분 시장주의적 성향의 경제학자들이다) 사유재산과 시장경제 관련 제도가 일제강점기 때 처음 도입되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러한 제도들이 경제성장에 큰 영향을 줬다고 말한다. 그런데 필자의 짧은 식견으로는 미 군정 또한 사유재산제도를 조선에 이식하기 위해 엄청나게 애를 썼던 것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저들이 말하는 ‘제도적 유산’이라는 게 얼마나 유의미할지 모르겠다. 게다가 시장주의자들에게는 사유재산과 시장경제 관련 제도의 정착이 경제성장의 근본동력이라는 점이 합의사항일지는 모르겠으나, 이 지점에 대해서도 필자는 논쟁의 여지가 매우 많다고 생각한다. 시장주의적 경제학 가설들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일제가 ‘제도적 유산’을 실질적으로 남겼다고 한들 그런 요인들이 경제성장에 도움을 줬다고 보지 않을 것이다. 또한 1960년대 이후 한국의 경험도 시장주의에 입각한 성장이었다고 볼 수 없다. 물론 요즘 시장주의 경제학자들은 박정희 시절의 산업정책이 시장친화적이었다는 주장을 펼치곤 하는데, 정작 실증적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산업화 과정은 시장의 힘에 기초한 비교우위 생성의 결과라는 신고전주의 가설이 적용되지 않는다.” (이제민, 2016, 「한국 산업화의 이중구조」, 『국제지역연구』 16(3) 27페이지) 사족을 붙이자면, 이 부분에 대한 비판 제기는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뉴라이트 사관은 자유시장 경제체제를 한국 체제의 정통성이자 정체성이오 미래의 대안으로 격상시키고자 하는데, 사유재산제도의 확립 등을 근거로 식민지 유산에서 경제성장의 비밀을 찾고자 하는 이들의 프로젝트는 이와 밀접한 연관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둘째, 허수열 교수는 해방 직후에 이뤄진 농지개혁이야말로 전근대적 지주제도를 끝장낸 결정적 계기였다고 말한다. 물론 이 점이 분명히 작용했으리라 믿는다. 하지만 개혁조처 그 자체보다도 비슷한 시기에 이뤄진 한국전쟁이 더 큰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특히 전근대적 제도들이 한국사에서 가장 순식간에 일소되는 시점이 한국전쟁 전후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승만 정권 등이 단행한 토지 개혁 등의 조처는 저자가 주장하는 것보다는 그 영향력이 훨씬 적었으리라 생각한다.

셋째, 식민지 경험이 근대화를 촉발시킨 것이 아니라는 점에는 십분 동의함에도 해방 이후의 근대화와 경제성장을 긍정적인 논조로만 언급하는 그의 주장에 대해 ‘규범적’ 차원에서 필자는 우려를 느낀다. 그는 일제 강점기가 계속되었다면 LG나 삼성과 같은 거대 기업들이 한국에서 발전할 수 없었으리라는 점을 언급한다. 그런데 이러한 거대 기업집단들이 오늘날 여러 정치사회경제적 폐단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 아닌가. 근대적 경제성장이 해방 후에 이뤄졌다는 점을 지적하는 사실 자체는 좋다. 하지만 이 글과 관련 논문들을 일부 읽으면서 필자는 해방 이후의 근대적 경제성장의 어두운 이면에 대해서 허수열 교수는 간과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저자의 수많은 논저를 전부 검토해보지 않은 만큼, 이는 기우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이처럼 몇가지 의문에도 불구하고, 허수열 교수의 논문은 식민지 근대화론의 문제점을 살펴보는 데에 아주 큰 도움이 될 글이다. 많은 독자들이 필자의 소개를 읽고 저자의 글들도 찾아보기를 바란다.

 

*함께 읽으면 좋은 논문
「식민지기 조선인 1인당 소득과 소비에 관한 논의의 검토」
허수열, 2015, 『동북아역사논총』50, 85-119.

「1945년 해방과 대한민국의 경제발전」
허수열, 2012, 『한국독립운동사연구』43, 463-509.

 

김종현 리뷰어  mrkim_sam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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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태확률일반균형 모형의 의의와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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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거시경제학과
동태확률일반균형 모형

r거시경제학의 출현은 일반적으로 케인즈의 <일반이론>이 출간된 1936년을 그 원년으로 꼽는다. 케인즈 이후 케인즈의 경제학은 이른바 ‘신고전파 종합’이라는 이름으로 주류경제학에 통합되었는데, 그 이후로 몇가지 변천을 거쳐서 오늘날의 거시경제학을 이루게 된다. 첫번째 변화는 새고전파의 출현이었고, 다음으로는 새케인즈학파의 출현이었다. 새케인즈학파는 새고전학파의 실물경기변동(Real Business Cycle; RBC) 이론을 골자로 하여 이른바 동태확률일반균형(Dynamic Stochastic General Equilibrium; DSGE) 모형[동태확률 일반균형모형은 현대 거시경제학에서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는 일반균형이론의 응용이다. DSGE 방법론은 모든 경제 현상을 미시경제학적 원칙에서 파생된 거시경제 모델에 기반하여 설명하려고 시도한다]을 탄생시킨다. 그리고 이 모형은 오늘날 거시경제학의 표준처럼 자리잡고 있다.

DSGE 모형은 일반적으로 세가지 모델링 전략을 취한다. 첫째 소비자 행동, 기업행동, 그리고 금융중개기관의 행동을 미시적 기초에 유도하여 공식화한다. 둘째로 기초하는 경제적 환경을 경쟁적 경제로 설정하되, 몇가지 핵심적인 왜곡 요소를 추가한다. 예를 들어, 가격경직성, 독점력, 정보 비대칭 문제 같은 것들이다. 세번째로 모형을 추정하되, 이전 세대의 거시경제학에서 방정식 별로 추정하는 것이 아니라 방정식 시스템을 추정한다. 초창기 DSGE는 프레스콧에 의해 발전한 실물경기변동으로 생산성 충격 효과에 집중하였다. 이후 DSGE 모형은 다양한 충격을 삽입하는데, 가격경직성과 총수요에 강조한다. 이른바 새케인즈학파 모형이다.

그러나 DSGE 모형은 현재 지속적인 논쟁에 휘말리고 있다. 루이스-필립 로손은 2007~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로 거시경제학이 내전(civil war) 양상을 이루고 있다고 말한다. 거시경제학 연구에 핵심적인 모형에 해당하는 DSGE는 특히 거시경제학계의 곤란이 되고 있고, 저명한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속속 이 DSGE에 대한 비판이나 지지 등의 논쟁이 촉발되고 있는 상황이다. 블랑샤르 (Blanchard, O. (2016). Do DSGE Models Have a Future? Peterson Institute for International Economics Policy Brief (Vol. Number PB1))는 DSGE를 둘러싼 논쟁에서 DSGE에 대해서 비판적이면서도 동시에 로머(2016)에 비해 한결 우호적인 것으로 보인다.

올리비에 블랑샤르Olivier Blanchard (1948~) ⓒWikipedia

 

동태확률일반균형 모형과
오류

동태확률일반균형(DSGE)모형은 거시경제학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일부는 미시적 기초에근거한 DSGE가 거시경제학이 성숙한 과학이 되었다는 신호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위험한 종말로 가고 있는 것으로 본다. 그러나 블랑샤르는 첫번째 주장은 과장되었다고 생각하며, 두번째 주장은 틀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블랑샤르에 따르면 현재의 DSGE 모형은 심각한 결함을 가지고 있다.

블랑샤르에 따르면 현재 DSGE 모형에 몇가지 이유에서 불만스러운 점이 존재한다. 첫째로 이들 모형은 설득력 없는(unappealing) 가정들에 기초하고 있다. 표준적인 새케인즈학파 DSGE 모형을 살펴보자. 이 모형은 기본적으로 세가지 방정식에 기초하고 있다. 바로 총수요 방정식, 가격조정 방정식, 통화정책 방정식이다. 그러나 앞의 두 방정식은 현실을 적절히 반영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총수요는 무한히 살면서 미래를 예측한다고 가정하는 소비자의 소비수요를 통해 유도되는데, 예측의 정도와 이자율의 역할에 관한 그 함의는 경험적으로 매우 이상하다. 가격조정 방정식도 역시 미래의 인플레이션 방정식에 의해서 특징지어 지는데, 이것 역시 인플레이션의 근본적인 성격을 포착하지 못한다.

둘째로 표준적인 추정방법에 관한 것이다. 표준적인 추정방법은 캘리브레이션(calibration)과 베이지안 추정을 혼용하는 것인데, 이 역시 설득력이 없다. 이러한 방법은 방정식 마다 추정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 자체를 추정하는 것으로 이전 세대의 거시경제학과는 다른 방법이다. 그러나 파라미터가 늘어남에 따라 고전적 추정법을 완전하게는 실행할 수 없다. 따라서 캘리브레이션을 통해 파라미터의 수를 선험적으로 설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법은 경험적으로, 이론적으로 합리적인 것이지만, 문제가 남아있다. 많은 경우 파라미터의 표준적인 집합을 선택하는 일이 단순하게 이전 세대 연구자들의 선택을 비난하는 일에 의존한다. 또한 남아있는 파라미터들을 베이지안 추정법을 통해 추정하는데, 여기에는 이중적인 문제가 존재한다. 어떠한 시스템에서도 표준은 하나라는 것이다. 따라서 모형의 일부에 대한 잘못된 설계는 다른 파라미터에 영향을 준다. 다음으로 문제는 데이터에 대한 파라미터 매핑이 복잡하다는 것이다.

셋째로 모형은 일반적으로 규범적 목적을 위해 사용될 수 있지만, 규범적 함의가 설득력이 없다는 것이다. DSGE 모형의 잠재적 강점은 미시적 기초에 기반하여 유도되었다는 점인데, 이는 설명을 목적으로 할 뿐만 아니라, 규범적 목적을 갖기도 한다. 실제 문제는 후생효과가 모형에 도입된 혼란들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이들 혼란들은 분석적 편의에 의해 도입되었지만 후생에 관한 불합리한 함의를 동시에 갖는 것이다. 네번째 문제는 DSGE 모형이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안좋은 수단이라는 것이다. DSGE 모형은 성숙한 과학의 특징처럼 보이지만, 독자에게 있어서는 이해하는데 극도로 어렵다. 특히 특정한 혼란요인이 무엇이고, 이것이 상호간에 어떤 영향을 주는 지 등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동태확률일반균형 모형의 개선을 위한
두 가지 지침

이러한 지적들은 모두 심각한 것들이다. 블랑샤르는 이를 해소하기 위한 지침을 두가지 주제에서 해법을 제시한다. 첫번째로, 덜 편협해져야 한다. 이를테면 소비자 행태에 대한 대규모의 작업들이 이루어져서 DSGE 모형이 가지고 있는 비현실성을 극복해야 하는데, 이는 행동경제학에서부터 빅데이터 경험연구, 그리고 거시 부분균형 추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짧게 말해서 DSGE의 아키텍쳐는 경제학의 다양한 분야에서부터의 적합한 발견들에 의해서 보완되고 통합되어야 한다. 이는 오늘날의 경우는 아닐 것이다.

둘째로 덜 제국주의적이어야 한다. 모형들은 이론적 순수성의 각기 다른 정도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간의 모형에 있어서는 데이터에 밀접하게 맞추는 일이 구조의 명료함 보다 덜 중요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앞으로의 모형에 있어서는 정책을 목적으로 사용되어 반드시 데이터에 밀접하게 맞추어야 하며, 더 신축적이고 덜 미시적 기초적이고 덜 지연(lag) 구조를 요구해야 할 것이다. 또한 앞으로의 모형은 예측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축약식은 계속해서 구조적 모형을 공격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이론적 순수성은 방해가 될 것이다.

모형은 또한 각기 다른 간결성의 정도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모든 모형들이 명료하게 미시적 기초에 기반해야한다는 말이 아니다. 심지어 블랑샤르는 이렇게 말한다. IS-LM 모형이나 먼델-플레밍 모형과 같은 다양한 종류의 임시방편적인 모형들과 DSGE 모형 간의 관계가 중요하다. 이러한 모형들은 여전히 모형화에 있어서 좋은 직관을 제공해준다는 것이다. 이것이 미시적 기초에 근거하지 않은 ‘임시방편의’ 모형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블랑샤르는 또한 이렇게 말한다. 이러한 임시방편의 모형들에 관해서 혹자들은 과학적이기 보다는 예술적(art)이라고 말한다. 블랑샤르 역시도 여기에 동의한다. 그러나 이것들은 아름다운 예술이지만, 모든 경제학자들은 예술가가 될 수 있거나, 될 수 있어야 한다. 과학과 예술 사이에는 공간이 있고, 블랑샤르는 바로 이 공간을 찾았다.

거시경제학과 동태확률일반균형 모형의 미래

거시경제학은 혹자의 말대로 내전상태에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이 그렇게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거시경제학은 그 탄생에서부터 현재까지 부단한 논쟁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러한 사실이 거시경제학의 과학성을 공격하는 빌미이기 보다는, 오히려 거시경제학이 과학적인 이유이며, 여전히 경제학의 정수(精髓)임을 지시하는 것이라고 할만하다. 오늘날 거시경제학은 논쟁을 거듭하고 있고, 그 핵심에는 동태확률일반균형 모형, 즉 DSGE 모형이 자리하고 있다. 이에 대해 로머에서부터 블랑샤르, 맨큐, 우드포드 등 유수의 거시경제학자들이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블랑샤르의 이번 글은 그 논쟁의 프론티어에 있는 글이라고 할 수 있다. 논쟁의 과정들은 전체적으로 조망할 필요가 있을 테지만, 이와 별도로 블랑샤르의 글에서, 일반균형이 거시경제학에 갖는 함의에 대해 보다 곱씹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동태확률일반균형(DSGE) 이론을 적용한 논문 함께 읽어보기

「방송·통신부문과 경기변동 간의 관계 분석 : 다부문 동태확률 일반균형모형을 중심으로」
이준희·박성욱, 2011, 『한국경제연구』, 29(3), 71-106.

「DSGE 모형을 이용한 추세와 경기순환변동분의 분해」
황영진, 2012, 『한국개발연구』, 34(4).

 

박알림 리뷰어  allimpp@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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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감성리더십’이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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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ofinale‘감성리더십’이란 말이 유행이다. 이성을 중시하고 감정에 매몰되지 않는 냉철함이 리더의 큰 가치로 여겨졌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조직구성원의 창의성과 개성을 살릴 수 있는 감성관리가 요구되고 있다. 사회의 분위기가 변하고 그 안의 구성원 역시 달라졌기에 언뜻 수긍이 가는 시대적 요청이다. 하지만 정말 감성 리더십이 조직의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걸까? 이러한 궁금증을 실증적으로 연구한 논문 한 편을 소개한다. 이호선, 류은영, 류병곤, 이종민 연구자의 「감성리더십이 조직몰입에 미치는 영향 – 개인 특성의 조절효과를 중심으로」(『한국조직학회보』,12(1), 2015)이다.

감성리더십 연구에 사용되는
개념(변수)들

본격적인 연구에 들어가기 앞서 저자들은 선행 연구 및 이론을 종합한다. 몇 가지 개념 즉 연구에서 변수로 사용되는 것들이 제시되는데, 각 개념 안에는 여러 학자들의 이론이 종합·정리되어 있으나 본 리뷰에서는 편의를 위해 간단한 몇 문장으로만 정리해본다.

먼저 살펴볼 것은 감성리더십의 핵심 ‘감성지능’이다. 이것은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검토하고, 사고와 행동을 안내하는 정보를 사용하는 사회적 지능의 한 유형”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 감성지능은 리더와 조직구성원 관계의 질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리더에게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능력이다.

감성지능의 구성요소는 크게 네 가지로 꼽을 수 있다. 자신을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평가하고 솔직해질 수 있는 ‘자기인식 능력self-awareness’, 자신의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는 ‘자기관리 능력self-management’, 타인에 대한 배려와 애정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관심을 표현할 수 있는 ‘사회적 인식능력social-awareness’, 부하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갈등을 원만히 해결할 수 있으며 팀워크를 이끌어내는 ‘관계관리 능력relationship management’이 있는데, ‘자기인식 능력’과 ‘ 자기관리 능력’은 리더의 ‘개인적 역량’이며, ‘사회적 인식능력’과 ‘관계관리 능력’은 ‘사회적 역량’에 포함된다.

‘조직몰입Organizational Commitment’이란 개념도 사용되는데, 조직의 상호작용, 즉, 조직 구성원들이 조직에 갖는 심리적 애착이나 태도를 나타내는 개념으로 조직행동 연구자들에게서 광범위하게 연구되어 온 개념이다. 논문 안에서 저자들은 조직몰입의 하위요인을 조직의 가치관에 동의하며 조직에 남기를 원하는 ‘정서적 몰입’과 의무감 때문에 조직에 남아 있게 되는 ‘규범적 몰입’으로 구분하여 분석한다.

그 다음으로 제시되는 개념은 ‘통제위치Locus of Control’이다. 이것은 자신의 행동에 수반되는 보상이 주로 무엇에 기인하는지에 대한 개인의 지각 또는 신념이다. 이 지각의 차이는 행동의 차이를 가져온다. 즉, 어떤 행위의 원인이나 결과가 노력에 달려있다고 보는 사람은 ‘내통제 성향’을 갖고 있다고 하며, 운에 달려 있다고 보는 사람을 보통 ‘외통제 성향’을 갖는다고 본다. 내통제 성향의 사람은 긍정적 강화를 받으면 그것을 불러일으켰다고 지각한 행동을 증가시키고, 부정적 강화를 받으면 그 행동을 억제한다. 그러나 외통제 성향의 사람은 행동이 강화의 원인으로 지각되지 않으므로 행동 증감의 변화가 없다. 또 내통제 성향은 외통제 성향보다 정보수집 노력을 많이 하며, 직무 만족도가 높고 소외를 덜 느끼며, 자기통제를 잘한다. 또 위험도가 낮은 일에 종사하는 특징을 보인다. 또한, 내통제 성향은 참여적 리더십을 선호하는 반면, 외통제 성향은 지시적 리더십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다음으로는 ‘집단주의’개념에 관한 정의다. 개인주의와 집단주의는 문화개념의 주요 변수로 연구되어 왔는데, 개인주의는 ‘자신의 관점, 욕구, 목표를 타인의 것보다 중요시하며, 다른 객체에 의해 규정된 사회적 규범이나 의무보다는 자신의 쾌락 및 이해관계를 중요시하고, 자신의 독특한 신념을 강조하며,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집단주의는 ‘관계 중심적 사고방식, 타인지향 동기와 자기 확장 동기가 지배적이며, 자신보다는 집단의 관점에서 욕구, 규범, 의무, 쾌락, 신념, 이익 등에 가치를 두는 것’이다. 집단주의 성향은 협동심, 형평성, 정직함, 겸손, 조화의 추구와 같은 가치들과 관련이 있고, 사회적 지지와 인정을 선호한다. 또한 외집단과의 경계를 분명히 하는 경향이 있어 내집단에게는 예민하게 반응하지만, 그것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무관심하거나 냉대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변수 간의 상관관계 및
가설설정

연구자들은 선행연구들을 종합해 실증적 근거를 획득하고 위에서 제시된 변수들에 따라 감성리더십이 조직에서 어떻게 유효한지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검증했다. 다음은 세워진 가설들이다.

가설 1. 상사의 감성리더십은 부하직원의 조직몰입에 정(+)의 영향을 미칠 것이다.
가설 1-1. 상사의 감성리더십은 부하직원의 정서적 몰입에 정(+)의 영향을 미칠 것이다.
가설 1-2. 상사의 감성리더십은 부하직원의 규범적 몰입에 정(+)의 영향을 미칠 것이다.

가설 2. 부하직원의 내통제 성향 정도에 따라 상사의 감성리더십이 미치는 영향은 다를 것이다.
가설 2-1. 내통제 성향이 클수록 감성리더십의 사회적 역량보다 개인적 역량이 정서적 몰입에 더 많은 영향을 줄 것이다.
가설 2-2. 내통제 성향이 클수록 감성리더십의 사회적 역량보다 개인적 역량이 규범적 몰입에 더 많은 영향을 줄 것이다.

가설 3. 부하직원의 집단주의 성향 정도에 따라 상사의 감성리더십이 미치는 영향은 다를 것이다.
가설 3-1. 집단주의 성향이 클수록 감성리더십의 개인적 역량보다 사회적 역량이 정서적 몰입에 더 많은 영향을 줄 것이다.
가설 3-2. 집단주의 성향이 클수록 감성리더십의 개인적 역량보다 사회적 역량이 규범적 몰입에 더 많은 영향을 줄 것이다.

저자들은 리더의 감성리더십이 조직몰입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에서 개인특성(내통제 성향, 집단주의 성향)의 조절 효과를 검증하기 위해 32개 기업을 대상으로 800부의 설문지를 배포해 608개의 유효 설문지를 표본으로 연구, 분석을 실행했다.

감성리더십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논문에서는 가설이 검증되는 과정을 거쳐 결론이 도출되는데, 저자들은 감성리더십을 이루고 있는 하위 변인들(개인적 역량, 사회적 역량)이 조직몰입(정서적 몰입, 규범적 몰입)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규명할 뿐만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감성리더십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상황을 기업과 현장에 제시한다.

연구 결과 첫째, 상사의 감성리더십은 부하직원의 조직몰입에 정(+)의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둘째, 감성리더십의 개인적 역량이 사회적 역량보다 정서적 몰입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 셋째, 감성리더십의 사회적 역량이 개인적 역량보다 규범적 몰입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

저자들은 이 분석결과를 바탕으로 실무적 시사점을 도출하는데, 첫째, 감성리더십이 조직몰입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기에 리더들은 기업의 생존유지를 위해 감성리더십을 적극 활용해 조직몰입을 극대화해야 한다.

둘째, 자기 자신을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평가하고 솔직해질 수 있으며, 자신의 감정을 잘 통제하는 감성리더십의 ‘개인적 역량’이 개인적 역량과 노력으로 결과를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내통제 성향’의 부하와 맞물려 조직의 몰입도를 높인다는 결과를 참조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감성리더십의 사회적 역량이 강하게 발휘되면, 오히려 내통제 성향의 직원은 불만족을 느껴 조직몰입도가 떨어진다는 사실은 주의해야 할 점이다. 저자들은 실무에서 내통제 성향이 강한 부하직원에게는 그들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게 지나친 관여나 참견은 지양해야 할 것으로 보았다.

셋째, 부하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갈등을 원만히 해결할 수 있으며 팀을 조직하고 팀워크를 이끌어내는 상사의 감성리더십의 사회적 역량이 관계 중심적 사고를 하는 집단주의 성향의 부하직원과 맞물려 조직의 몰입도를 높인다는 결과를 참조해야 할 것이다. 이는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기업이 되기 위해 경영자의 리더십도 중요하지만 부하직원들의 집단주의를 잘 활용해야 한다는 의미기도 하다.

꼭 기업인이 아니라 하더라도 조직을 운영하는 리더들에게 유용한 논문이다. 선행 연구의 정리를 통해 흔히 말하는 ‘감성리더십’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으며, 그것이 정말 조직에 유효한지 검증을 통해 시사점과 전략방식까지 도출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권성수 리뷰어  nilnilis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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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 어떻게 만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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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ofinale지금은 논의가 살짝 시들해진 감이 있지만, 복지국가는 이미 일종의 당위로 사람들의 뇌리에 자리 잡은 듯하다. 지난 대통령선거만 해도 이른바 ‘진보진영’의 전유물처럼 논의되었던 복지가 보수 정당의 후보들 입에서 오르내렸다. 너나 할 것 없이 ‘복지 공약’을 내세웠고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 또한 자신의 공약을 실현해 낼 것을 다짐했다. 그녀의 ‘증세 없는 복지’가 실현되지 않았다는 비판이 곳곳에서 제기되는 지금, 다음 대통령선거에서도 또 다시 복지국가 건설을 둘러싼 공약 전쟁이 펼쳐질 것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김공회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의 「복지국가와 조세: 그 계급적 성격과 정치경제학」(『진보평론』,  65, 2015)은 복지국가를 당위로 보았을 때 가려지는 부분들, 그중에서도 조세를 둘러싼 논의를 정리하고 이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논문이다. 연구자는 복지국가란 누구를 위한 것이어야 하고 무엇을 위한 것이어야 하는지를 냉철하게 짚고 있어, 복지국가 논의에 관심 있는 이들이 참고할 만하다.

복지국가는 그저 
경제 위기의 구원투수일 뿐인가

연구자는 우선 복지국가에 대한 논의가 경제성장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지적한다. 복지국가가 좌우파를 막론하고 이야기될 수 있었던 건 성장이 둔화된 현재 국면에서 복지국가가 일종의 해답으로 제시된 데 따른다. 우파조차 복지를 주장한 건 복지를 통해 성장을 견인한다는 발상에 바탕을 둔 것이다. 그렇다면 경제가 회복된 뒤에는 어쩔 것인가? 연구자는 이 질문이 ‘진보와 보수라는 스펙트럼을 가르는 리트머스 시험지’라고 본다. 반대로 말해, 경제 위기를 “단순한 자본수익성 저하, 자본 재생산의 위기가 아니라사회 전반의 재생산의 위기라고(54쪽, 강조는 본문)” 보는 데 좌우파가 합의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회 전반의 재생산의 위기’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복지국가를 제시했을 때, 복지국가의 기반이 될 조세는 단순히 기술적인 문제에 국한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복지국가와 조세의 연계는 사회 전반의 재조정/재구축을 불가피하게 불러 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복지국가를 만들기에 충분한 세금을 걷고 있을까. 국내총생산GDP을 기준으로 2013년 한국의 조세부담률은 17.9%로 나온다. 하지만 명목 국내총생산을 국세와 지방세의 합으로 나눈 비율을 나타내는 조세부담률로는 국가의 경제적 역할을 제대로 보여줄 수 없다. 이때에는 국민의료보험료와 같은 사회보장기여금이 제외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보장기여금을 포함한 국민부담률로 국가의 경제적 역할을 재검토해야 한다. 이렇게 도출된 2013년 국민부담률은 24.3%다. 이렇게 보았을 때 2013년 한국의 국민부담률은 조세부담률보다 약 6% 포인트 높다. 그러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2012년 조세부담률은 24.7%, 국민부담률은 33.7%다. 2012년 한국의 조세부담률이 18.7%, 국민부담률이 24.8%였음을 고려했을 때 모두 OECD 평균에 못 미친다.

이어서 2012년 주요국의 GDP 대비 조세수입의 항목별 비중을 들여다보면, 한국은 OECD 평균을 기준으로 개인소득세와 사회보험료, 소비세의 비중은 낮은 반면, 법인세와 재산세, 기타의 비중은 높다. 하지만 이상의 지표만 보고 개인소득세·사회보험료·소비세는 높이고 법인세·재산세·기타의 비중을 낮춘다는 식으로 단순하게 접근해서는 안 된다. 법인세의 규모가 크다고 할 때 세율이 높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법인소득액 자체가 크기 때문일 수도 있다. 법인소득액의 증가는 법인 수 및 소득의 증가로 해석할 수 있다. 이때 재벌과 대기업의 하청업체 ‘후려치기’ 등의 사회 현상은 잘 드러나지 않으며, 법인소득액의 증가는 법인의 양극화에 따른 결과를 반영할 뿐이다. 연구자는 그렇기 때문에 조세를 분석하는 데 있어 보다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연구자는 마르크스의 『자본』을 바탕으로 논의를 전개한다. 한 해의 총부가가치(다른 말로 하면 GDP)를 임금·이윤·이자·지대의 합으로 보았을 때, 각각의 수입에 대한 세금은 결국 총부가가치에서 지불된다. 즉 세금은 자본이 취하는 잉여가치로부터 공제하는 것, ‘잉여가치의 공제분’인 것이다. 그렇다면 잉여가치를 통해 자본의 재생산을 추구하는 자본가는 어째서 잉여가치의 공제를 받아들이는 것일까. 그건 국가의 기능이 자본가에게 이롭기 때문이다. 치안·국방 등의 기본적인 사회질서 유지와 도로·항만 등 경제적 인프라의 건설·유지·보수, 의료·교육 등 사회적 인프라 구축이 국가의 주요 기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중 복지국가는 세 번째 기능인 사회적 인프라 구축과 관련이 깊다. 그런데 여기서 세 가지 사항을 고려해야 한다. 첫 번째는 총자본의 이해와 개별 자본가의 이해가 완전히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자본가가 복지국가를 긍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실제로 노동자 또한 세금을 지불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의 세금은 노동력 재생산비용 이상의 임금을 받는다는 걸 전제하기 때문에 세금이 잉여가치의 공제분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세 번째는 노동자가 국가의 경제적 역할에 대해 중립적이라는 것이다. 국가가 사회적 인프라 투자를 적게 한다면 노동력의 재생산을 위한 기능 일부는 자본이 떠맡아야 하기 때문이다.

노동자가 국가의 경제적 역할에 대해 중립적이라는 말은 그동안 좌파가 복지국가를 옹호한 것과 모순되는 주장으로 보인다. 하지만 연구자는 복지국가가 자본의 노동력 재생산비용을 낮추기 때문에 총자본에 이롭다는 것을 강조하면서도, 노동력 재생산 비용의“절약분의 일부 또는 전부는 노동자들의 강력한 요구의 결과 노동자에게 돌아가 실질임금 상승을 낳을 수도 있고, 아니면 아예 노동시간의 단축에 따라 소멸될 가능성도 있다. 또한 이런 결과들은, 적절히 타협되기만 하면 잉여가치 증가와도 공존할 수 있다. 바로 여기에 복지국가에 대한 자본가와 노동자 간의 ‘범국민적’ 합의의 경제적 가능성이 있다(68쪽, 강조는 본문)”고 지적한다. 즉 복지국가란 계급투쟁의 장이며 그 자체로 완전무결하거나 가치중립적인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복지국가를 만드는 데 필수적인 증세에는 계급역관계가 들어 있다.
복지국가와 증세는 
계급투쟁의 전장戰場이다

그렇다면 복지국가의 재원을 확보하기 위한 증세는 정치적이고 전략적인 경합의 장일 수밖에 없다. 세금의 증대가 실질임금의 하락을 의미하는 한, 세금은 ‘잉여가치, 나아가 총노동에 대한 더 많은 통제’다. 이때 세금을 통한 국가의 경제적 역할이 진보적인 의의를 가지려면 ‘생산과 분배라는 이중의 차원’에서 자본을 통제해야 한다. 연구자는 조세와 소득 재분배의 중요성을 역설한 토마 피케티에게서 누락된 부분이 바로 이 지점임을 지적하면서, 생산 통제의 대표적인 사례인 국유화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한다.

연구자는 전력산업을 예로 들어 민영화된 산업과 국유화된 산업을 대조한다. 경제의 일부가 국유화된다 해도 전체 자본가가 얻는 총이윤의 양은 변하지 않는다. 국유화된 전력산업은 자본이 아니므로 전기요금은 이윤 부문을 제외하기 때문에 낮아진다. 전기요금이 낮아진 만큼 노동력의 가치도 하락하기 때문에 자본가는 전력산업 외의 모든 산업에서 그만큼의 이윤을 추가로 획득한다. 이를 통제하기 위해 국유화된 산업에서의 노동시간을 줄여 노동자를 추가적으로 고용함으로써 상품 가격은 그대로 유지하는 방법을 제시할 수 있다. 국유산업에서 생산되는 잉여에 대한 좀 더 ‘온건한’ 두 번째 방안은 전기요금은 그대로 유지하되 국유화된 전력산업에서 확보된 이윤을, 경제적 능력이 떨어지는 이들에게 전기를 무상 공급하는 쪽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단순히 공공요금을 낮추는 것만이 방법은 아니며, ‘이윤의 공적 통제의 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게 연구자의 주장이다. 이상에서 보았을 때 국유화 그 자체로는 자본을 통제할 수 없으며, “생산 영역에서의 ‘궁극적인’ 조치가 분배 영역에서의 면밀한 가격통제 등과 연결되지 않으면 그 진보적 의의가 퇴색될 수 있음(76쪽)”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증세에 대한 세 가지 논의, ‘증세 없는 복지론’과 ‘보편증세론’, ‘조세정의론’을 다시금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보편증세론’은 노동자와 시민의 자발적인 증세로 지배계급을 압박해 증세를 유도한다는 전략이다. 이 전략은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등 여러 명의 손을 거치면서 정교화되긴 했지만, 시민들의 자발적인 증세가 어느 정도 유효할지, 계급적 차이가 아닌 소득 수준에 따라 사람들을 구분하는 데 따른 정치적인 결과를 얼마나 고려하는지 등 문제점이 있다. 한편 범진보진영에게서 가장 광범위한 지지를 얻는 ‘조세정의론’은 가장 부유한 자들에게서 세금을 많이 거둬야 한다는 논의다. 문제는 누구를 부자로 정의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가 없다는 데 있다. 마지막으로 박근혜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론’은 말 그대로 증세 없이 복지가 가능할 수 있도록 지하경제 양성화 등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이 ‘증세 없는 복지론’을 그 자체로 무의미한 전략이라고 폄하할 수만은 없다는 게 연구자의 논점이다. 진보진영 역시 비과세·감면제도를 정비하고 지하경제를 양성화해 세수를 늘려야 한다는 데에선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 정부는 경제의 진보적 재편이라는 비전이 없기에 2015년 초의 ‘연말정산 대란’ 같은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무엇보다 연구자는 이와 같은 증세 논의가 “소득 범주의 물신화 경향을 보인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원에서의 재검토가 필요하다(80쪽, 강조는 본문)”고 역설한다. 누구에게서 복지재원을 끌어 낼 것인가, ‘누구의 호주머니’를 열 것인가 등의 논의는 임금이 잉여가치의 분배라는 것을 은폐하고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문제로 제기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복지국가를 만드는 데 필수적인 증세에는 계급역관계가 들어 있을 수밖에 없다.

연구자는 세금이 잉여가치의 공제분인 한, 누구에게서 세금을 걷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라고 보며, 바로 그런 의미에서 “증세란 총자본과 그 분파에 대한 총노동, 나아가 사회 전체의 투쟁(82쪽, 강조는 본문)”이라고 주장한다. 그 때문에 소득 범주를 물신화하지 않으면서 실질적인 증세를 끌어내기 위한 전략들, 예컨대 노동자의 힘이 약한 상황에서는 국가를 통한 ‘공공선’을 명분으로 자본을 압박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복지국가는 그 자체로 ‘순수한’ 당위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계급역관계를 고려해야 하는 투쟁의 장임을 다시금 확인하는 데 이 논문의 의의가 있다. 이는 국가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떼려야 뗄 수 없을 것이다. 이른바 ‘진보진영’의 보다 면밀하고 적극적인 연구와 정책 수립을 기대한다.

김주원 리뷰어  leopord8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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