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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을 올리면 고용이 줄어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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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1만원’은 단연 최근 한국 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 되는 구호 중 하나다. 처음에는 공상적인 것으로 여겨졌지만, 2016~2017년에 걸친 박근혜 퇴진 촛불 운동의 여파로 최저임금은 대중의 실질적 요구 중 하나가 되었고 새로 들어선 문재인 정부 역시 이를 정책으로 수용하였다.

물론 여전히 ‘속도조절’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으니 실현될지는 두고 볼 일이고, ‘지금 당장’을 외치며 최저임금 인상운동을 추동 해온 사람들 입장에서는 여전히 부족하게 보일 따름이다. 아무튼 최저임금 인상은 많은 사람들에게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희망이기도 하지만, 일부는 오히려 최저임금 인상이 노동력 수요를 줄여 고용감소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하기도 한다.

물론 일각의 우려는 진지한 것일 수 있지만, ‘공동체를 위하는 마음’을 내세우면서 최저임금 인상을 공격하는 것을 보면 적잖은 논자들은 실제 평범한 사람들의 필요보다는 기업가들의 권력에 아첨하려는 듯한 의도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의 이데올로기가 지닌 문제를 비판하고자 한다면 그들의 주장이 과연 과학적인지 여부 역시 따지고 들어가봐야 할 것이다. 애초에 정말로 최저임금이 심대하게 부정적인 고용효과를 가진다면 이에 대한 대책 역시도 필요할 테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소 시간은 지난 논문이지만 최저임금 문제를 둘러싼 경제학계 내의 논쟁을 쉽게 다룬 안태현의 「최저임금의 고용효과에 대한 경제학적 논쟁」 (『국제노동브리프』 7(8), 2009)은 지금도 충분히 읽어봄 직한 글이다. 오히려 지금이 시의적절한 때일지도 모른다. 물론 이 논문이 다루는 경제학계의 논쟁은 해외의 사례들에 기반한 연구들이지만,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분명히 있으리라 생각한다.

최저임금의
기본이론

잘 알려져 있다시피, 최저임금은 취약계층의 노동자를 보호한다는 역사적 맥락 속에서 등장한 제도이다. 그런데 완전경쟁을 가정한 신고전파의 노동시장 모형에서 최저임금은 실업의 증가를 낳는다. 이유는 간단한데, 시장의 균형임금보다 최저임금이 높게 책정될 경우 노동수요가 감소하게 되고 반대로 노동공급은 증가하여 노동의 초과공급이 발생하고 실업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한편 최저임금이 시장의 균형임금보다 낮다면 이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규제가 된다. 이런 시각에 따르면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고용에 대한 부정적 효과가 임금수준 향상의 효과보다 효과가 크다면 사회적 후생은 악화된다.

하지만 완전경쟁시장이라는 가정을 내려놓고, 노동수요가 독점적인 경우를 상정해보자. 최저임금의 도입 및 인상은 이 경우 오히려 고용을 증가시킬 수 있다. 노동의 수요독점이 존재하는 경우, 기업이 수익극대화를 이루는 지점은 완전고용지점에 비해 임금도 고용수준도 낮다. 이런 경우에는 오히려 최저임금의 인상이 고용 증가를 낳는다. 물론 완전한 ‘독점’이 아니더라도 이 이론은 적용 가능하다. 개별 기업이 임금결정력을 지닐 만큼의 독점력이 있다면, 즉 시장가격 대로 얼마든지 고용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고용을 늘리고자 할 때 임금을 인상하여야 한다면 이 역시 수요독점력이 있는 상황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예컨대 전직으로 인한 비용 등이 크고 노동이동이 활발하지 않은 상황이라면 얼마든지 수요독점성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대규모 사업장의 경우 높은 임금을 지급하여 태업의 유인을 줄일 수 있으며, 노동수요자와 노동 공급자 사이의 탐색비용이 존재하는 경우에는 높은 임금이 해당 기업으로 하여금 모집을 용이하게 하므로 수요독점적 상황이 발생한다. 요컨대, 완전고용시장 가정에서는 고려되지 않는, 여러 현실적 문제들을 도입할 경우에는 수요독점적 노동시장 이론을 적용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아진다. 이 경우, 최저임금이 고용감소로 이어진다는 주장과 다른 결과가 생겨날 수 있다는 말이다.

최저임금을 둘러싼
실증연구와 논쟁

아무튼 주류경제학계에서는 이론적 가정의 상황에 따라 최저임금이 오를 수도 있다고 보는 입장이고, 내려갈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실증연구가 중요했는데, 여기에도 일치된 결론은 아직 없다.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미국의 경제학자들은 대체적으로 최저임금이 고용감소를 낳는다는 점에 의견 일치를 보였다. 비록 그 크기가 크지는 않다고 보았지만 말이다. 그런데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추세가 바뀌기 시작한다. 과거의 실증연구들에서는 기간 선정에 따라 고용효과가 다르게 나타나기도 하고, 시계열적 요소와 변수의 내생성 문제를 통제하기가 어려운 점이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시계열 분석의 한계점을 극복하기 위해 횡단면 자료 및 패널 자료를 구성해서 실증분석을 이뤄지고 있다. 또한 특정 산업(특히 패스트푸드 산업)의 고용을 분석하거나 최저임금의 지역별 변동을 이용하는 분석법이 도입되었다.

그런데 과거에는 최저임금 상승이 고용을 줄인다는 결과가 대체적이었던 데에 비해, 고용효과가 없거나 심지어는 고용을 증가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분석 결과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연방최저임금보다 최저임금이 높은 주에서도 고용이 줄어드는 효과가 없다는 연구결과도 있었다. 물론 최저임금의 부정적 고용효과를 부정하는 입장에 대표적인 Card&Krueger의 연구를 둘러싼 갑론을박은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고, 각 입장에서 계속해서 후속 연구를 내고 있는 상황이라 논쟁이 종결지어지지는 않았다.

저자는 전통적 입장을 지지하는 개리 베커와 최저임금 논쟁에 불을 붙인 연구자 중 한명인 데이비드 카드의 관련 주장을 발췌하여 소개하는 것으로 논문을 마무리한다. 개리 베커는 저숙련 노동자들이 실업으로 내몰리거나 지하경제로 밀려날 것을 우려하며, 노동집약적 상품의 물가 인상 또한 심각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따라서 최저임금 인상은 빈곤가구에 심한 타격을 주는 정책이며,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이 최저임금 인상을 반대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에 반해 데이비드 카드는 기존의 단순한 수요∙공급 모형으로는 실제 노동시장을 잘 설명할 수 없다는 의문을 던지는 데에서 출발한다. 저임금 노동력을 사용하는 기업들 중 많은 수가 빈 일자리를 채우지 못하고 있었고 오히려 채용을 위해 인센티브를 주는 경우도 많았다는 점도 있다. 노동 시장에 마찰과 정보 불안정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따라서 탐색이론적 관점과 노동시장의 독점력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카드는 많은 경제학자들이 옛날의 연구를 방어하는 입장에 정체되어서만 있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최저임금 논쟁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이상에서 우리는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부정적 영향력을 가져다 주는지를 둘러싸고 벌어진 미국 경제학계의 논쟁을 살펴보았다. 물론 이상의 논쟁을 한국에 곧이 곧대로 수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자영업자 등이 많다는 변수도 있을뿐더러, 이상의 논의는 천천히 최저임금 인상을 이룰 때의 고용효과를 다루지만 한국에서는 빠른 인상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최저임금의 고용효과와 관련된 실증이 필요할 텐데, 그다지 많이 이뤄지지는 않은 것 같다. 다만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으로 추천할 글 중에서 관련 주제를 다룬 실증연구에 따르면, 최저임금 인상은 고용에 정(+)의 효과를 갖거나 유의미한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온다고 한다.

아무튼 흔히 매체들에서는 최저임금을 올리면 고용이 준다는 것이 경제학계의 정설적 주장인 것처럼만 소개되고 있다. 물론 다수의 경제학자들이 최저임금이 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은 부정적 효과가 없다는 주장 역시 부상하고 있는 시점이다. 게다가 이것은 신고전파 내부의 논쟁에 한정 지은 것으로, 주류 경제학적 프레임 자체에 회의를 보내는 경제학자들 중에 최저임금의 부정적 효과를 비판하는 입장이 다수 있다는 점 역시 고려해봐야 한다. 그런데 언론계와 정계 일각에서는 최저임금의 부정적 효과에 대한 연구를 채택해서 부각하는 흐름이 있는 듯 해 보인다. 그리고 그러한 논리에 입각해서 ‘같이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필요’하므로 최저임금 인상을 무작정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한 언사는 실증에 입각한 것이라기보단 다분히 ‘이데올로기적’이라고 생각한다.

 

*함께 읽으면 좋은 논문

「최저임금의 고용효과」
이시균, 2007, 한국노동연구원 『노동리뷰』 30.

「최저임금의 경제학과 정치학」
이정희, 2014, 참여연대 사회연구소 『시민과세계』 25.

김종현  mrkim_sam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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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컨센서스의 시대는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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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중국 모델’은 중국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널리 논의의 대상이 되어왔다. 당연히 한국도 마찬가지인데, 이는 무엇보다도 빠른 기간 내에 이뤄진 중국의 경이로운 발전 덕분이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은 중국 경제 위기론도 심심찮게 들렸다. 중국경제에 대한 회의적 전망이 나올 때면 전세계가 긴장하기도 하고 반대로 중국 경제가 호전되면 모두가 안심하곤 한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중국경제가 경착륙할 것이라는 비관론은 실현되진 않은 듯 하다. 그렇다면 중국은 이전처럼 세계경제성장의 엔진역할을 할 수 있을까? 혹은 중국모델이 가진 불안정성은 여전히 극복되고 있지 않은 것일까?

이에 관해 알아보기 위해, 이정구의 「중국모델에 대한 비판적 고찰」 (『사회과학연구』31, 43-58, 2013)은 참고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글이다. 물론 논문이 쓰인 당시와 약간은 상황에 변화가 있을 수 있고, 이 글만으로 중국경제가 지닌 리스크를 전부 파악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 글은 중국모델이 가진 근본적 문제점들에 대해서는 혜안을 제시하고 있으며, 이는 오늘날의 중국경제와 세계경제를 이해하는 데에도 반드시 짚고 가야 할 문제일 것이다.

중국경제의 개혁개방을 이끈 덩샤오핑이 그려진 선전시의 간판. 선전은 가장 성공적인 경제특구 중 하나로 알려져있다. 출처: Wikipedia

중국 모델에 대한
전세계적 관심과 그 정체

중국 경제는 개혁∙개방 정책이 처음 도입될 때까지만 해도 농업 중심의 후진국이었다. 하지만 1978년 개혁∙개방 이래로 30여 년 동안은 경제성과가 놀라울 수준이라,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 불리던 나라들이나 일본이 경험했던 고도성장과 비교해도 두드러진다. 이는 중국처럼 관료적 지령경제에서 시장화로 이행한 옛 소련과 동유럽권 경제와도 매우 대조적인 성과다.

게다가 중국경제는 (비록 시장경제이지만) 미국식 신자유주의 모델을 대체할 만한, 새로운 경제모델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베이징 컨센서스가 워싱턴 컨센서스를 대체하여 “신자유주의 체제에 대한 하나의 해독제 또는 대안”(44)이 될 수 있을 것이란 말이다. 이 때문에 중국 국가에 친화적인 학자들은 중국모델이 단지 중국 뿐 아니라 보편적 경제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들이 칭송하는 중국 경제 모델의 핵심은 무엇일까? 물론 애초에 중국 모델이라는 게 존재하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는 입장도 있고, 아직은 ‘모델’이라고 부를만한 정형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신중론도 있다. 물론 중국모델을 긍정하는 입장인 사람들은 중국의 정치경제체제가 정형성을 지닌 경로로 안정적인 발전을 구가해왔다고 생각하며, 이를 중국모델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특히 이들 중 극단적 중국 모델 옹호론자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의 세계경제는 미국 모델이 아닌 중국 모델의 승리를 입증했다고 보기까지 한다. 물론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중국 모델 옹호론자들은 서방에는 존재하지 않는 중요한 요소들이 중국의 폭발적 성장에 기여했다고 주장한다. 가장 정석적인 중국 모델 옹호론을 제시한 것은 판웨이다. 판웨이는 중국모델이 3가지 차원으로 이뤄져 있다고 분석한다. “첫째는 ‘국민 경제’가 독특한 경제모델을 구성하고 있으며, 둘째는 ‘민본’ 정치체제가 정치모델을, 마지막으로는 ‘사직’(社稷) 체계가 사회모델을 구성하고 있다. 그래서 사직, 민본, 국민의 삼위일체가 중국모델을 구성한다고 그는 주장한다(潘, 2009: 6)” (46) 그에 따르면, 중국의 국민 경제모델은 기본적으로 국가의 토지통제, 국유화된 금융기업과 대기업, 자유로운 노동시장, 자유로운 상품/자본 시장의 조합이라고 한다. 또한 현재 중국공산당의 집권은 서방의 민주주의와 달리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민본정치의 이념에 근거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현대 민주 이념과 공평한 공무원 선발 그리고 부패하지 않고 단결된 정치집단과 독특한 정부 분업제도가 그 특징이라고 이야기 한다. 한편 판웨이에 따르면 ‘사직’체계, 즉 관민일체(官民一體)식의 사회체제가 가진 독특한 사회체제 역시 중국 모델의 중요한 구성요소다.

한편 아오양은, 중국경제의 기적적인 고속성장을 가져온 중국모델에는 4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로, 정부가 소수 엘리트의 이익을 대변한 것이 아니라 사회의 장기적 이익을 추구해왔다는 것, 그에 따르면 이는 다른 개도국의 정부들과 큰 차이점을 드러내는 부분이다. 둘째로 재정분권인데, 지자체들이 각자의 재정권을 지님으로써 적극적으로 경제성장에 기여했다는 점이다. 셋째와 넷째로 그는 ‘중국식 민주주의’와 중국 공산당이 구체적 사업에 힘을 쓰는 정당이었다는 점 역시 강조한다. 이외에도 많은 학자들은 중국 경제가 단지 개혁개방 이후가 아니라 개혁개방 이전부터 성장의 바탕이 되는 요소를 고루 갖추고 있었다고 보는데, 이는 대체로 중국 정부와 공산당의 통치를 옹호하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이 외에도 저자는 다양한 중국모델 예찬론자들의 주장을 소개한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은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은 주장에 기초로 한다. 우선 중국모델은 중국경제의 부상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지만, 비단 경제제도뿐 아니라 정치사회 분야의 다양한 제도들을 포괄하는 것이란 주장이다. 둘째로, 중국모델은 서구와 확연한 차이를 지니고 있다. 셋째로 스탈린주의도 신자유주의도 아닌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시장경제’가 중국 모델의 경제적 측면이다. 넷째로, 이들은 중국 모델이 자유∙민주 등의 이념을 구현하지만 이는 서구식이 아니라 유교적 민본사상에 따른 통치모델을 통해서 구현되는 것이다. 다섯째, 중국모델의 이념은 기본적으로 마르크스주의이고 개혁개방이 이뤄진다고 해도 중국국가는 여전히 주도권을 쥐고 있으며 공산당이 기본적으로 영도세력이다. 마지막으로 중국모델은 비단 중국의 경험이 아니라 다른 국가들에도 적용 가능한, 보편적 요소 또한 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에 근거한 중국모델을 검토하려면, 중국의 고도 성장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중국 고유의 특성이라는 게 실존하는지, 이것이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한 것인지를 따져봐야 할 것이다.

 

중국모델론의
정치경제적 논점들

저자는 중국 모델에 대한 정치경제학적 주요 쟁점들을 추려내어 검토한다. 우선 중국이 개혁개방 전후로 연속성을 지니는가의 여부이다. 실제로, 중국은 1978년의 개혁개방 이전부터 상당히 높은 수준의 발전을 구가해왔다. 이미 개혁개방 이전의 30년 동안 연평균 6%에 달하는 경제발전을 이룩했다는 것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 경제발전을 이끈 ‘향진기업’ 역시 그 이전에 존재하던 인민 공사 산하의 사대기업에서 비롯된 것이다. 비록 이는 마오쩌둥의 유토피아적 이념을 실행하는 데에는 실패했었지만 개혁개방 이후에는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모델론자들의 주장처럼 1978년 전후의 연속성은 어느 정도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둘째로 검토해볼 내용은 중국의 발전모델이 스탈린주의 발전모델과 다른지 여부이다. 여기서 “스탈린주의적 방식의 경제성장이라 하면 소련의 원시적 축적을 이루기 위한 자원의 전략적 배분을 의미하는데, 그 실제 내용은 영국과 미국을 포함한 서방 선진국을 단시일 내에 딸라잡기 위한 전략이며, 구체적으로는 생필품과 경공업 비중을 극도로 축소하고 공업화를 앞당기기 위해 중공업 우선적인 정책을 펴는 것이었다.”(51) 저자는 그런데 대약진운동 시기에 경제 자원의 60%가 공업화에 투자되고, 심지어 공업화 속도를 낮추던 시기조차도 공업비중은 50%대였다고 한다. 특히 중공업의 비중은 늘 80~90퍼센트 대였다. 즉 동유럽과 소련의 케이스와 자신들의 케이스를 차별화하고자 한 중국모델 옹호론자들이 주장은 틀렸다.

또한 저자는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모델이 중국에 고유한 것인지 묻는다. 천즈우에 따르면, 중국의 발전모델은 사실 여느 개도국의 발전모델처럼 ‘후발성의 이점’을 향유한 것이다. 또한 세계화의 진전에 따라 생산의 전 지구적 재배치가 벌어지는 과정에서 선진국의 생산 일부가 후발 국가들에게 넘어오는 과정 역시 개도국들에게는 꽤 보편적인 경험이었는데, 이 부분은 중국의 경제성장에도 상당히 중요한 요인이었다. 따라서 ‘중국 특색’이라는 것은 그다지 특색이 있지 않다.

그렇다면 중국 경제의 발전을 이끈 동력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이 저임금 노동력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저자는 농촌의 잉여 노동력은 이전부터 존재했으므로, 1990년대 이후 가속화된 중국의 경제성장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다른 요소를 봐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국가 주도의 대규모 투자와 수출주도형 성장모델이 있을 것이다. 이 과정 속에서 중국에 대한 다국적기업들의 FDI도 상당히 늘어난 점 역시 주목할 만한 요소이다.

하지만 위와 같은 특징들을 기초로 성장을 구가해온 중국경제의 미래는 마냥 밝지만은 않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로 중국은 수출에만 의존해서 수요를 확보하기가 어려워졌다. 이에 따라 내수 위주의 성장전략으로 전환할 필요가 생겼는데, 이는 중국 경제의 모순을 낳는다. 왜냐하면 내수 위주의 성장전략을 구사하기 위해 필요한 여러 전략적 전환은 기존에 중국 경제모델이 가진 장점들을 여럿 포기하는 일을 수반할 것이고, 이는 매우 큰 난점을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간단한 예로, 중국 정부가 내수를 확대하려면 소득분배를 보다 평등하게 바꿔야 할텐데 실질임금의 인상은 중국에 투자할 다국적기업들의 투자유인을 줄인다. 내수확대와 수출증대는 동시에 성취하기 힘든 목표이다. 중국경제의 고도성장을 이끌어왔던 바로 그 요소들이 오늘날 중국의 발목을 잡고 있는 셈인데, 중국모델이 보편적으로 적용가능하며 또한 미국식 경제모델을 대체할 수 있는 케이스라는 중국모델 옹호론자들의 주장은 바로 이 점에서 받아들이기 힘들다. 오히려 세계경제위기는 미국모델의 몰락과 중국모델의 승리를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대안으로 제시된 바 있는 중국모델마저도 시험대에 오르게 되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더군다나 중국의 국가주도 경제는 시장화의 압력을 충분히 저항하지 못하고 있으며, 고도성장 과정에서 가려졌던 계급갈등과 불평등 문제 등도 다시금 심화되고 있다. 따라서 저자는 중국 모델은 외부에서도 관심을 잃을 전망이 크고, 중국 국내정치의 시각으로 봐도 지배층에 대한 대중적 불만이 커지고 있기 때문에 위기를 겪고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 논문에서 지적된 바로는 중국 경제가 오늘날 직면한 위기를 전부 조망할 수는 없다. 예컨대 중국의 부동산 거품이 거시경제의 불안정성을 심화시키고 있는데, 이런 점이 기존의 중국모델과 어떤 연관성을 지니는지에 대한 소개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이 부분 역시 논문의 저자가 언급한 부분과 크게 동떨어진 문제는 아닐 것 같다.

이상에서 살펴본, 그리고 앞으로 확장시켜 마땅한 중국모델에 대한 비판적 고찰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문제를 제기한다. 바로 오늘날의 세계경제위기에서 헤어나오고자 한다면 워싱턴 컨센서스도 베이징 컨센서스도 아닌, 보다 근본적인 대안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함께 읽으면 좋은 논문

「중국 발전국가론에 대한 비판적 검토」
이정구,  2012, 경희대학교 국제지역연구원 『아태연구』, 19(2).

「세계 경제 위기하의 중국」
이정구, 2009, 경상대학교 사회과학 연구원 『마르크스주의 연구』, 6(3).

김종현 리뷰어  mrkim_sam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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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을 ‘타자’로 마주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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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ofinale‘인간’을 본위로 하는 모든 휴머니즘 이론은 데카르트의 인간중심주의적 사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인식’의 영역을 물질과 구분하는 가운데 전자의 우위성을 강조하는 이원론적 세계관을 통하여, ‘사유하는’ 인간은 무엇보다 그 고유의 가치를 확고히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이 모든 “가치 판단의 준거나 기준을 인간에 두”며, “도덕 공동체의 범위를 인간으로 국한”하는 인간중심주의는 과연 옳은가. 신상규인공지능, 새로운 타자의 출현인가(『철학과 현실』, 112, 2017)에서 인간이 아닌 로봇의 ‘타자성’을 재조명하는 것으로 우리에게 새로운 질문을 안겨주고 있다.

동물,
윤리적 피동자

휴머니즘의 역사는 노예해방이나 여성 권리 회복 등, 인간의 존엄성을 위한 투쟁을 승리로 이끈 성과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렇듯 인간 보편에 대한 가치가 회복됨에 따라, 인간은 또 다른 차별의 ‘대상’을 만들어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오늘날까지도 심각한 사회문제로 언급되고 있는 동물학대가 바로 그것이다.

근대의 윤리학은 도덕적 ‘행위자’를 중심에 두고 있다. 도덕적 행위자란 양심에 따라 행동하고 자기 행동에 대해 반성할 수 있는 도덕적 책임능력을 갖춘 존재, 즉 ‘인간’을 일컫는다. “권리와 책임을 동시에 갖는 합법적 도덕주체”로서의 인간만이 행위자인 동시에 피동자로 인정되며, 이로 인해 근대 윤리학의 범주는 인간중심적인 틀을 벗어날 수 없게 기획된 셈이다. 그렇기에, “그들(동물)이 고통을 겪을 수 있는가?(Can they suffer)”라는 벤담의 질문은 “피동자의 피동성에 초점을 맞춘 도덕철학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데이비드 군켈(David Gunkel))으로 여겨질 수 있었던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싱어는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모든 동물은 최소한 도덕적 피동자의 지위를 부여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동물에 대한 피동자적 권리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기술이나 인공물, 추상적인 지적 대상들도 도덕적 피동자로 간주”해야 한다는 주장 또한 제기되고 있다. 애완동물을 키우는 가구가 급증하고 대선을 준비하는 여러 후보들이 반려동물관련 정책을 공약하고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동물의 권리는 자연스럽게 인정되는 추세이다. 하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 우리는 AI의 도덕적 지위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하는 시기를 겪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인간과 기계 즉 자연적인 것과 인공적인 것 사이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있는 상황적 변화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다. 군켈은 오늘 날 AI의 등장과 더불어 지능적 기계가 ‘도덕적 지위’를 가질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주목한다.

 

인공지능의
타자성

구글 딥마인드(Google DeepMind)에서 개발한 인공지능 알파고의 경우, ‘딥러닝’을 통하여 일련의 법칙들을 ‘학습’하고 이를 토대로 ‘스스로’ 결정을 내리도록 기획된 프로그램이다. 알파고가 ‘상황’이라는 변수에 대응하여 자율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에, 개발자도 알파고의 ‘결정’을 예측할 수 없다. 즉, 알파고는 “인간이나 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우리가 통제하거나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존재”인 셈이다. 그리고 바로 이 자율적 속성이 인공지능에게 단순히 인간이 부리는 ‘기술적 도구’로서의 지위가 아닌, 인간의 삶에 근간을 뒤흔들 수 있는 ‘타자’로 전환될 가능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지난 2015년 2월 일본에서는, SONY사에서 출시된 애완용 로봇강아지 ‘아이보(Aibo)’에 대한 합동 장례식이 있었다. 1999년 출시되어 20만 엔 이라는 고가의 금액 대에도 불구하고 총 100만대 이상이 팔려나갔으나, 2014년 관련 A/S를 전면 중단하게 되면서 로봇강아지의 ‘죽음’을 맞이하게 된 주인들이 모여 장례식을 치른 것이다. 이와 같은 예만 보더라도, AI는 인간과 정서적으로 교감하는 ‘타자’로서 이미 존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본 SONY사에서 1999년 출시된 애완용 로봇 강아지 아이보(aibo)

이에 필자는, 로봇이 “실제로 감정을 갖느냐”에 대한 문제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감정 로봇이 인간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보여주는 AI의 타자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거기에 대응할 것인가”에 대해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로봇의 ‘타자성’은 그것이 도덕적 피동자로서의 지위를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한 인간적인 ‘판단’을 통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로봇과 생활환경 속에서 맺고 있는 일련의 관계성을 통해 획득되어야 하는 것이다. 코겔버그는, 어떤 존재의 지위는 “선험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구성되는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그 존재를 ‘어떻게’ 보는가” “그것이 우리에게 어떻게 나타나는가”와 같은 질문을 가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미 인간 삶의 환경이 ‘자연’이 아닌 ‘기술적 생태 공간’으로 변화함에 따라, 우리의 생활 방식은 여러 기술들과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인공지능’의 ‘타자성’을 점검하는 것은 그리 어색한 일이 아닌 듯싶다. 물론 로봇(기술)과의 상호작용이 역으로 사회적 개인들을 고립시키는 등의 부작용에 대해선 간과할 수 없다. 하지만 인간중심주의가 ‘근대’의 산물이며 이것이 우리의 모든 인식구조를 지배하는 ‘틀’로 ‘학습’되고 있는 가운데, 이원론적 세계관에 일종의 ‘균열’을 내고 인간중심주의적 사고를 재고(再考)시킨다는 점에서 로봇의 타자성’에 대한 물음은 충분히 가치 있는 질문이 아닐까.

이단비 리뷰어  ddanddanb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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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주도 성장’은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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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ofinale오늘날 비주류경제학이론은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포스트케인즈학파의 경제이론은 새정부의 주요경제정책으로 인정받고 있는 등, 폭넓은 지지와 주목을 받고 있다. 칼레츠키언 성장모형은 포스트케인즈학파 성장론의 핵심으로 이른바 ‘임금주도(wage-led)’ 성장론으로 소개되어 오고 있다. 한국에서는 임금소득자가 아닌 자영업자의 비중도 높아 소득주도성장론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이는 임금몫이나 소득 등 소득분배의 개선이 경제성장을 견인하는 장기적인 효과를 가진다는 것으로 종래의 성장과 분배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던 이론들과는 차별적이라는 점에서 각광받고 있다. 임금주도성장론은 1990년대 바두리와 마글린의 모형 이후 점차 발전되어 왔는데, 국내에서는 2010년대 이후 많이 소개되어 왔다. 그러나 특히 국내에서 임금주도성장론이 많이 소개되어 온 것과는 별개로 이에 비판적인 문헌들은 많지 않은데, 정상준의 논문 자본축적과 분배의 동학: 칼레츠키언 실증연구의 비판적 검토와 대안(『마르크스주의 연구』, 12(4), 2015)은 기존의 칼레츠키언 실증연구들의 재검토하고, 이에 대한 비판과 대안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유익하다.

 

바두리·마글린 모형의
재독해

바두리·마글린(1990) 모형은 아래 (1)~(3)식에서와 같이 단순하게 표현될 수 있다. 여기서 R은 총이윤, K는 총자본, Y는 총생산, Yn은 잠재총생산, π는 이윤몫, u는 가동률, v는 자본생산성이다. (1)식은 이윤율을 나타내는 등식이고, (2)식과 (3)식은 각각 저축함수와 투자함수이다. 균형조건은 저축함수와 투자함수가 일치하는 것이라고 할 때, (4)식과 같이 유도될 수 있다. 여기서 β와 γ는 각각 가동률과 이윤몫이 투자에 미치는 영향을 나타내는 모수를 의미한다.

이제 (4)식에서 v가 일정하다고 가정하고 투자함수를 선형으로 표현하면 (5)식처럼 다시 쓸 수 있다. 이제 (5)식에서 β와 γ는 가동률과 이윤몫이 투자에 미치는 효과를 의미하므로, 계급투쟁이 자본축적에 미치는 효과라고 볼 수 있다. 이제 (5)식을 (4)식에 대입하면 (6)식과 같이 나타낼 수 있다.

여기서 (6)식은 분모가 양수여야 한다고 전제해야 하는데, 이는 가동률 변화에 대한 저축탄력성이 투자탄력성보다 크다는 케인지언 안정성 조건이다.

(1) 중간단계(intermediate case)

바두리·마글린 모형에서 이제 (6)식의 부호에 따라 경제체제가 판별된다. γ-s·(u/v)>0이면, ∂u/∂π>0이며, 이는 ‘활성주의’ 체제를 의미한다. 한편 그 반대로, γ-s·(u/v)<0이면, ∂u/∂π<0이며, 이는 ‘침체주의’ 체제를 의미한다. 여기서 활성주의 체제는 앞서 언급하였던 임금주도 성장체제인데, 반면 침체주의는 이윤주도 성장체제로, 임금몫의 성장이 경제침체로 이끌며, 오히려 이윤몫의 증가가 경제를 성장시키는 체제이다. 그러나 여기서 β와 γ의 상대적 크기에 따라서 ∂u/∂π의 부호가 달라진다는 점은 논의를 보다 복잡하게 만든다. 따라서 바두리·마글린은 동일한 침체주의 체제에 대해 이윤몫의 증가로 가동률이 낮아지는 대신 축적률 및 이윤율이 증가하는 경제를 대립적(conflictual) 침체주의로 분류하고, 반대로 임금몫 증가가 가동률은 물 론 축적률 및 이윤율의 상승을 낳는 협력적(cooperative) 침체주의 체제로 나눈다. 대립적 활성주의는 투자함수를 (5)식과 다른 형식으로 구성해야만 도출될 수 있다. 이를 정리하면 <표 1>과 같다.

결국 임금주도와 이윤주도 체제를 가르는 중요한 모수는 분배몫과 가동률 변화에 대한 총수요 구성요소들의 탄력성이 되는 셈 인데, 문제는 앞의 식 (1)~(6)에서 보듯 이들의 상대적 크기를 사전에 이론적으로 확정할 수 없다는 점이다. 실증작업들이 분석대상 나라의 개수를 늘려가며 마냥 귀납적인 계량분석을 추가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예컨대 ‘대립적 침체주의’ 체제의 경우 종래의 임금상승-이윤압박 체제의 양태와 유사하여, 이윤몫 증가가 가동률을 떨어뜨리지만 투자의 높은 이윤몫 탄력성에 의해 축적이 원활하게 유지되어 임금주도 체제 에서 (굳이 이름을 붙이면) ‘이윤주도 축적’이 공존하는 경우를 포함한다. 그러나 이같은 ‘중간 단계(intermediate case)’들의 존재는 실증연구에 곤혹스러운 것이다.

(2) 분석의 시계(time horizon)

저자에 따르면 포스트케인즈학파의 성장이론, 즉 네오칼레츠키학파의 성장모형에서 장단기의 시점에 대한 관점은 일관적이지 못하다. 무엇보다 바두리·마글린(Bhaduri and Marglin, 1990) 스스로 자신들의 모형이 전적으로 ‘단기’ 모형이며 임금주도 성장의 장기적인 함의에 대한 분석을 배제 했음을 명시하고 있다(384쪽). 반면, 그 쌍둥이 페이퍼인 마글린·바두리(Marglin and Bhaduri, 1990)는 동일한 모형에 대해 단기도 장기도 아닌 중기 모형임을 주장하며(166-167쪽) 구축된 모형을 1950년대와 1960, 1970년대 각각에 대한 시론적인 설명으로 확장하기도 한다. 즉, 정작 저자들 자신부터 모형의 시계에 대해 입장이 정리되지 못한 것이다. 또한 라브와·스톡햄머(2012: 12)도 임금/이윤주도 수요를 단기적인 차원으로, 임금/이윤주도 투자를 장기적인 차원으로 분류해 유형화 에 결합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는 동일한 프레임 하에서 분석 시계에 따라 다른 결과들, 예컨대 단기적으로는 소비요인에 따른 임금주도, 장기적으로는 투자 요인에 따른 이윤주도 경제로 실증결과들이 나올 수도 있음을 자인하는 셈이다.

(3) 비선형성(non-linearity)

저자에 따르면, 변수 간 비선형적 관계의 가능성은 바두리·마글린 모형에 명시적으로 서술되어 있지만(Bhaduri and Marglin, 1990: 392-393; Marglin and Bhaduri, 1990: 168-171), 놀랍게도 후속 작업에서는 오랫동안 간과된 부분이다. 바두리·마글린은 동일한 이윤율에 낮은 이윤몫-높은 가동률과 높은 이윤몫-낮은 가동률이 모두 대응될 수 있음을 지적하는데 이윤율이 항등적으로 이윤몫과 가동률, 산출자본비율의 곱으로 분해될 수 있음을 감안하면 이는 당연한 지적이다. 그렇다면 초기 출발점이 유휴설비가 많은 상태일 경우 이윤몫이 커지더라도 신규투자를 끌어내지 못할 수 있고(침체주의 체제), 반대로 초기 출발점이 가동률이 높은 경우 이윤몫의 상승은 신규투자의 활성화(활성주의 체제)를 낳을 수도 있다.

그런데 비선형성은 비단 수요체제를 단순하게 유형화할 경우의 문제점뿐만 아니라 원 모형에서 배제한 경기적 불안정성 문제를 내포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론 모형으로야 선형근사-국지적 안정성(local stability) 분석을 통해 안정경로를 찾을 수 있지만 분기점(bifurcation point)이 존재할 경우 모종의 안정 균형으로의 수렴(즉, 여기에서는 특정한 수요체제의 지속)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몇몇 가정들을 부가해야 한다. 이는 수학적 정합성과 별개로 비선형성을 포함한 수요체제 의 유형화가 실제 경제체제의 묘사와 거리를 좁히기 쉽지 않을 것임을 의미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같은 비선형성의 존재는 단기뿐만 아니라 장기에서도 구조변동이 발생할 수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단순한 물리적인 시계로 수요 체제를 판정하는 것 역시 문제가 발생함을 시사한다.

 

대안적 접근의 방향과
추정결과

저자는 앞서 지적한 문제점들, 즉, 중간단계의 존재, 분석의 시간에 대한 불명확성, 마지막으로 이윤몫과 가동률 간의 비선형적 관계 때문에 단순히 선형적으로 경제체제를 임금주도와 이윤주도로 구분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저자는 다음과 같은 세가지 방향을 제시한다.

첫째, 자본축적의 변화를 중심으로 분배율과 가동률의 효과를 함께 고찰한다. 이는 바두리·마글린 모형이 기존 칼레츠키언 논의와 구분되었던 투자함수의 의의를 살리면서 동시에 임금주도/이윤주도와 구별되는 대립적/협력적 기준 에도 주목하기 위해서이다. 즉, 투자는 이윤을 낳는 일회성 지출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본스톡을 늘림으로써 향후의 수익성을 위협할 수 있는데 이 같은 효 과는 종속변수를 주로 가동률로 놓고 분배율의 역할을 따지거나 단일방정식으로 분배율의 투자증가 효과를 추출하던 기존의 수요체제 실증에서 다루어지지 않았던 부분이다. 둘째, 주요 변수들 간의 관계를 추세와 사이클의 관계로 나누어 접근한다. 이는 앞 장에서 주장한 것처럼 엄연히 단기 모형인 바두리·마글린 모형을 장기 시계에 적용하며 발생하는 문제를 피하고 둘의 효과를 구분하기 위해서이다. 셋째, 통상적인 단일방정식(single equation) 추정 방법을 따르지 않는다. 연립방정식 모형을 구성하는 것 중에서도 저자는 벡터오차수정모형(VECM)이나 구조형벡터자기회귀모형(SVAR) 대신에 자기회귀분포시차모형(ARDL)를 제시한다. 다음은 저자가 ARDL모형을 통해서 추정한 결과를 표로 나타낸 것이다.

즉, 임금몫이 단기적으로 2분기 정도의 시차를 두고 축적률에 음(-)의 영향을 유의미하게 주며 가동률은 예상대로 축적률에 (+)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왔다. 또한 (a)패널의 임금몫 수준변수 계수가 양이며 차분변수의 계수가 음이라는 점, 그리고 (b)패널에서 오차수정항의 부호는 음으로 장기적인 균형으로부터의 이탈이 시차를 거듭하며 원래의 균형으로 조정된다는 점은 1961년부터 2014년까지의 전체 시기만 놓고 보면 자본축적의 동학에 임금주도적인 추세와 이윤주도적인 사이클이 결합되어 있다는 우리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한편 이 같은 결과는 사이클 요소에 대한 추세 요소, 혹은 단기불균형에 대한 장기균형의 이론적 우위를 전제하지 않는다. 앞서 지적하였듯이 사이클 요소의 누적은 추세의 구조적인 전환을 가져오는 효과가 있으며 이는 (a)와 (b) 모두에서 단기적으로 임금몫 증가(감소)에 따른 축적률 감소(증가) 효과 역시 매우 유의미하다는 점에서도 확인된다.

 

포스트칼레츠키학파 성장이론의 몇가지 곤란과
정책적 함의

포스트칼레츠키학파 성장이론이 주목받게 된 것은 무엇보다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류경제학에 대한 비판적 풍토가 보다 두터워진 것을 반영한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밖에 포스트칼레츠키학파 성장이론이 가진 이론적 차별성 때문이기도 하다는 점 역시 맞다. 이들의 모형은 먼저 성장과 분배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분배를 통해서 성장을 견인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성장이론과 차별적이었다. 물론 총수요를 견인하여 경제성장을 이끌 수 있다는 관점은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전통적인 경기부양정책이 모두 이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이 차별적이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이와 같은 총수요정책이 장기적으로도 유효하다고 주장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앞서 지적하였듯이 포스트칼레츠키학파 성장이론의 원본에 해당하는 바두리·마글린(1990) 모형에서 이들이 단기적 모형임을 분명히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라브와·스톡햄머(2012) 모형에서 장기적 효과를 언급한다. 장기적유효수요의 존재를 설명하기 위해 완전가동률보다는 낮기 때문에 유휴설비가 항상존재하는 실제 설비가동률를 설정한다. 이때 설비가동률을 내생변수로 취급한다는 점 역시 기존의 논의와 다른 점이다. 앞서 저자가 지적하였듯이 설비가동률에 관한 비선형성의 존재나 분석시간에 관한 혼란 역시 논의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요소이다. 초창기 포스트칼레츠키학파 성장이론에서 화폐·금융에 관한 논의도 상대적으로 부족하였는데, 오늘날 이에 대한 연구는 진전되고 있다.

그러나 여러가지 난점들에도 불구하고 포스트케인지언의 임금주도성장론의 중대한 곤란은 이 이론이 전제하고 있는 수요진작 정책의 필요성에 있다. 이들은 임금주도체제와 이윤주도체제를 이론적으로 구분짓고, 계량경제학적 기법을 통해서 양자 중 어디에 해당하는지 경제체제를 판별한다. 그리고 여러 실증분석 결과를 검토해보면 선진국의 수많은 국가들이 임금주도성장체제로 판별된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반복해서 지적하고 있는 것이지만, 이들의 기본적인 생각은 임금주도성장체제에서는 임금몫을 증진시키면 단기적으로, 그리고 장기적으로 경제가 성장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임금몫은 노동조합의 협상력뿐만 아니라, 기술변화, 독점력 등 다양한 이유에 의해서 변동하고 이를 일률적으로 증진시키는 정책을 시행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또한 수출주도 경제체제 하에서는 임금을 인상하는 것은 비용을 상승시켜 경쟁력을 악화시키기 때문에 곤란한 문제가 되기도 한다. 여기에서 임금주도성장론의 또 하나의 중요한 도전을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박알림 리뷰어  allimpp@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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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경제는 이미 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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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ofinale아프리카 대륙이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번에는 대규모 기아나 대학살, 종족이나 종교 분쟁의 어두운 뉴스가 아니다. 아프리카 경제가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는 밝은 뉴스다. 최근 아프리카 경제는 2000년 이후 경제규모 면에서 무려 3배 이상 성장했다. IMF는 2017년에 세계 20개 고도성장국가 중 아프리카 11개 국가가 포함될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2008년 이후 지속된 세계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 국가 대부분이 큰 타격을 받지 않고 연 5퍼센트 대의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호영 창원대 교수의 아프리카 경제성장의 특성과 과제(『국제정치연구』, 18(1), 2015)에 따르면 “이것은 아프리카 경제가 경기 불황과 같은 외부 충격에 대한 구조적 탄력성이 과거와 달리 강화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특히 아프리카 국가 중 앙골라, 가나, 에티오피아, 탄자니아, 모잠비크, 나이지리아, 잠비아 등 많은 국가들의 경제 성장률은 7퍼센트 이상을 기록했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세계 경제 성장률 상위 10개국 중 7개국이 아프리카 국가다(에티오피아, 모잠비크, 탄자니아, 가나, 잠비아, DRC9 및 나이지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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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아프리카 지역 경제 전망치는 5~6퍼센트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2000년 이후 대외 무역규모도 200% 이상 급속도로 증대되었다. 외채규모와 재정적자의 대폭 감소 그리고 1990년대 무려 22%였던 인플레이션률이 지난 10년 동안 약 8%대로 안정화 되고 있다. 200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고속성장을 이루고 있는 사하라이남 아프리카 지역은 ‘희망이 없는 대륙’에서 ‘미래의 전망이 가장 밝은 대륙’으로 탈바꿈하고 있다.(그러나 2015년 상반기 이후 아프리카 경제엔 먹구름이 드리웠다. 경제성장치도 형편없이 낮아졌고, 마이너스를 기록한 곳도 있다. 하지만 이것 또한 일시적 주춤세라는 시각이 많다. 경제 강국들의 경쟁적 진출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경제의 성장과 발전에 대하여 세계가 주목하는 점은 아프리카 경제성장의 양상이 과거와 달리 폭넓고 다양한 경제적 토대위에서 이루어고 있다는 것이다. 즉, 석유와 광물 및 농산물 등 1차 산업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아프리카 경제가 다양한 분야의 아프리카 역내 수요의 증가로 인한 성장이었다는 것이다. 아프리카 경제가 높은 성장세를 나타내었던 2000년대의 세계경제는 불황이었던 시기로서 역외 수요 증가에 의한 발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특히 아프리카 경제가 본격적으로 성장세를 기록한 2013년에는 아프리카 역내 시장의 급속한 소비증가와 투자환경의 개선 및 민간 투자의 증가로 인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아프리카에 대한 해외직접투자FDI의 증가로 인한 민간투자의 활성화는 아프리카 경제성장의 다양성과 포괄적 성장을 가능하게 한 중요한 동인이었다. 대부분의 해외직접투자는 석유 및 광물자원에 집중되고 있지만 최근 들어 서비스와 제조업분야 등 3차 산업에 대한 투자도 증가하는 추세이다. 아프리카 시장에 대한 투자의 증가추세는 단순히 단기 수요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경제의 중장기적 성장 잠재력을 증대시키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2003~2007년 동안 24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던 석유 및 가스 등 광물자원에 대한 투자 비율이 2013년에는 겨우 5퍼센트에 불과해졌다. 오히려 기술 및 미디어 등 정보통신분야에 대한 투자비율이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으며 이것은 2013년에 들어 20퍼센트로 증가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동통신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일부 아프리카 국가들의 이동통신 보급률이 100퍼센트에 이르는 곳도 있으며 2016년 사하라이남 아프리카 국가들의 이동통신 보급률은 전체 인구대비 75퍼센트에 이를 전망이다. 아프리카의 정보통신기술의 보급과 확산은 경제적 파급효과가 매우 커 아프리카 경제구조의 다변화로 인한 경제 성장의 구조적 안정성을 배가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또한 소매 및 소비재 등 유통분야 투자율도 증가하여 2013년에 17퍼센트로 2위를 차지하고 있다. 금융 분야와 비즈니스 분야에 대한 투자도 각각 15퍼센트와 12퍼센트로 증가하여 아프리카 경제의 다양성과 포괄적 성장이 가능한 형태로 발전하고 있는 특성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아프리카의 경제발전이 계속 가능하기 위한 조건이 더 크게 다가온다고 논문은 지적한다. 먼저 민주화를 통한 정치개혁과 부정부패 척결이 시급하다.

프리덤하우스 민주화비율에 따르면 2015년 현재 사하라이남 아프리카 49개 국가들 중 20퍼센트에 달하는 10개 국가만이 ‘자유로운Free’ 국가이며 37퍼센트에 달하는 18개 국가들이 ‘부분적으로 자유로운Partly Free’ 국가들이며 무려 43퍼센트에 달하는 21개 국가들은 ‘자유롭지 않은Not Free’ 국가로 평가되었다. 세계투명성기구의 2014년 보고서에 의하면 사하라이남 아프리카 국가들의 2014년 부패인지지수CPI는 세계의 다른 지역에 비하여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의 부패인지지수는 33으로 세계평균 43에 비하여 현저히 낮게 나타났다. 이에 비하여 중동 및 북아프리카 국가들은 이보다 조금 높은 38로 나타났으며, 아시아 태평양국가들은 43, 미주대륙 국가들은 45로 평가되었다. EU 및 서유럽국가들은 66으로 가장 높게 나타나 세계에서 가장 청렴한 지역으로 평가되었다.

특히 부패인지지수 50이하 부패한 국가들이 차지하는 비율을 살펴보면 사하라 사막 이남 국가들은 전체 49개 국가 중 92퍼센트에 달하는 45개 국가가 50이하 부패한 국가에 속한다. 단지 보츠와나(63), 카보르데(57), 세이셸(55), 모리셔스(54)만이 50 이상으로 어느 정도 덜 부패한 국가에 속할 정도로 사하라이남 아프리카 국가들의 부패지수는 높다.

그 외에도 논문은 효율적 산업정책 수립과 재정 및 부채감소, 아프리카식 새로운 발전모델 개발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아프리카식 발전모델의 필요성은 이미 2011년부터 아프리카 내에서 활발하게 제기되고 있다. 아프리카식 발전모델로 ‘아프리카자본주의Africapitalism’가 부상하고 있다. 아프리카자본주의는 경제철학의 하나로서 “민간섹터가 주도권을 쥐고 장기 투자를 통하여 경제번영과 사회적 부를 창조하여 아프리카 대륙을 변화 발전시키는 것을 말한다.” 특히 아프리카자본주의는 신자본주의neo-capitalism philosophy와 매우 비슷한 개념으로 자본주의의 창조적 가치분배이론이다.

아프리카자본주의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아프리카의 발전은 아프리카인 자신들의 책임이라는 기본적인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프리카자본주의 핵심역할은 민간섹터가 담당한다. 아프리카에서 자생적으로 성장한 아프리카 기업들은 아프리카 지역과 주민들이 원하는 경제적 사회적 요구를 잘 이해하고 이에 적합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이를통하여 사회적 부를 창출하고 경제적 발전을 이끌어 내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즉 민간투자의 활성화로 도로, 항만 및 발전소와 같은 핵심 인프라 건설과 고용창출을 도모하고 나아가 아프리카 중산층을 확대하여 선순환적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국제기구의 개발원조 등 아프리카 지원프로그램은 아프리카 민간섹터를 활성화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집중되어야 한다. 그리고 아프리카의 주요 핵심섹터에 대하여 국제사회의 장기적 투자가 필수적이다.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경제발전을 통한 아프리카의 사회적 부의 창출은 민간섹터의 핵심적 역할을 통한 경제 활성화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프리카자본주의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존재한다. 아프리카자본주의는 핵심가치인 민간섹터의 주도적 역할을 통한 ‘영리추구’와 ‘사회적 기여’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다는 것은 이상적인 생각으로 비현실적 순진한 발상으로 평가 절하하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아프리카자본주의의 실제적 성과가 가시화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나이지리아 정부는 금융 산업에 대한 과감한 규제철폐를 통한 금융 산업 지원정책으로 나이지리아 출신 억만장자 은행가인 토니 엘루멜루Tony Elumelu가 설립한 ‘United Bank for Africa’ 은행 지점이 나이지리아 전역뿐만 아니라 전 아프리카 지역으로 확장하여 수백만의 아프리카인들에게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수단의 모 이브라힘Mo Ibrahim이 설립한 모바일 통신회사 셀텔Celtel은 아직 유선 통신망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수단 국민들에게 모바일 폰과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사례도 있다.

결론적으로 아프리카자본주의의 성공여부는 얼마나 많은 민간섹터의 기업이 정부의 지원과 국민적 참여를 통하여 적절한 이윤을 추구하고 또한 사회적 기여를 통한 경제 발전과 사회적 부를 축적할 수 있느냐에 좌우된다. 즉 아프리카자본주의의 핵심 가치인 ‘아프리카인들이 아니면 어느 누구도 아프리카를 발전시킬 수 없다’는 의식을 얼마나 많은 아프리카인들이 공유하고 참여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논문은 결론짓는다.

강성민 리뷰위원  review@bookpot.net

<저작권자 © 리뷰 아카이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독일의 ‘인더스트리 4.0’과 ‘노동 4.0’의 실제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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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ofinale적잖은 경제학자들은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일자리의 손실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에는 과장이 섞여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사물인터넷과 각종 자동화 기술이 실제로 적용된 ‘스마트 팩토리’로 유명한 독일의 실제 경험은 어떨까? 독일에서는 제품 생애주기의 모든 단계를 디지털 네트워크와 결속시키는 ‘인더스트리 4.0’이라는 비전이 제시된 바 있다. 실제로 독일의 사례는 경제계나 정치권에서 중요한 사례로 거론되고 있고 한국의 노동운동에서도 인더스트리4.0에 대한 독일 노동운동의 대응은 중요한 전범으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말만 떠들썩하지 독일에서 실제로 그것이 제조업과 노동시장 등에 미친 영향을 주의 깊게 살펴보는 논의는 충분히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독일 뒤스부르크-에센대학교의 게르하르트 보슈 교수가 쓴 「독일의 인더스트리 4.0과 노동 4.0에 관한 논의」(『국제노동브리프』, 15(3), 2017)가 국내에 소개된 것은 꽤나 반가운 일이다. 이에 대한 검토는 여러모로 꽤 의미 있는 일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우선 그 실상을 파악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최근의 기술진보가 산업현장에 적용되는 것에 대한 독일에서의 대응이 과연 올바른 것이었나를 검토해보면서 한국에서는 어떻게 이에 대응해야 할까에 대해 고민해볼 필요 또한 있을 것이다.

 

기술에서 노동으로

독일 연방정부는 산업발들을 위한 “하이테크 전략”을 세웠는데, “지능시스템을 통해 최대한 자기조직적 생산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가치사슬의 모든 부분에서 인간, 기계, 설비, 물류, 제품이 직접 소통하고 협력”(22페이지)하게 만들자는 것이다. 이를 디지털 네트워크 기반의 생산으로서 구현하자는 것이 이른바 인더스트리 4.0이었다. 처음에는 생산부문에서 주되게 적용되는 내용이었지만 이제는 서비스 부문에도 상당히 적용되고 있다고 한다.

자동화 기술이나 사물인터넷의 진전에 관련해서 한국에서 많이들 우려하는 대목은 이러한 기술이 대량의 기술적 실업을 낳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그러나 정작 이런 기술들을 제조업에 접목시키는 데에 있어서 최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는 독일의 실제 사례를 보면 현실은 이와 다르다.

[su_quote]인더스트리 4.0이라는 새로운 비전을 둘러싼 논의가 시작되었을 당시에만 해도, 인간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공장을 꿈꾸는 엔지니어들에 의해서만 논의가 주도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오로지 기술발전에만 의존하는 비전은 이미 과거에도 많은 이유로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상호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생산 프로세스들은 오류와 고장이 잦다는 문제가 있고, 수시로 전문인력의 개입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많은 경우 인간의 업무가 기계를 통해 대체되지 못할 뿐 아니라, 인간이 투입되어야 하는 범위가 기계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보다 확대된다. (22페이지)[/su_quote]

인더스트리 4.0 (출처:Wikipedia)

특히나 최근 ‘기계의 부상’에 대해 걱정하는 여러 대중적 저술들에서는 인공지능이 소수의 초고소득층 ‘슈퍼스타’와 다수의 저임금 노동자들로 노동시장을 완전히 양분할 것이라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적어도 독일의 케이스를 보면) 기업들이 경쟁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문인력을 육성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했다고 한다. “전문인력과 그들의 유연성은 독일이 자랑하는 경쟁력”의 비밀이었다(23페이지).

따라서 오늘날 유행처럼 유통되고 있는, “향후 20년간 지금까지 인간이 담당하던 각종 직업의 90%이상이 불필요하게 될 것이라는 엔지들의 예상으로 한” 칼 베네딕트 프레이와 마이클 오즈본의 연구는 보슈 교수가 보기에 터무니 없는 것이라고 한다.

“이는 (미래에는 인간이 패스트푸드만 먹고, 모든 가옥의 지붕은 완제품으로 생산되어 헬리콥터로 설치된다는) 극도로 비현실적인 시나리오를 전제로 한다. 게다가 이러한 변화는 시간당 노동생산성의 급속한 개선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오히려 그 반대의 현상이 나타난다. 독일을 비롯한 여러 선진산업국가에서 지난 수십 년 동안 시간당 생산성의 성장세가 둔화되었다.”

게다가 “기술이 생산성에 미치는 영향은 장기간에 걸쳐 분산”되므로, 이러한 변화들은 사회를 급속히 변혁시키기보다는 “단계적 변화”를 밝은 요량이 크다는 것이다(24페이지). 보슈 교수는 특히 독일의 20개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사례연구를 실시하고 있는데 이러한 예측에 대한 근거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급속한 변화가 없더라고 해도, 지속적인 변화의 과정 속에서 노동시장에 부정적 영향이 가해지는 경우가 있는 것은 분명히 사실이다. 보슈 교수가 언급하는 (그리고 대중적으로도 익히 알려진)사례는 우버(Uber)와 같은 기업의 사례다. 이러한 기업에 소속된 플랫폼 노동자들은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기존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또한 기존 제조업 재편과정에서도 노동자들이 손해를 보는 경우가 굉장히 많을 수 있다. 따라서 “전직 훈련 기회를 제공하는 등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이 필요하며 그를 통해 노동자의 이직 등을 지원해야 한다고 한다(25페이지).

 

유연한 노동시간

한편 보슈 교수는 인더스트리4.0의 시대에는 노동시간의 유연화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인더스트리 4.0의 생산체계가 적시생산시스템의 연속선 상에 있기 때문이다. 즉 재고 감소를 위해 수요 변동에 딱 맞추어 생산이 이뤄지게 했던 것인데, 이에 따라 기업의 입장에서는 근로시간을 유연화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는 것이다.

오늘날 독일에서는 자동차 산업 등의 사례를 보면 이미 실제로 노동시간의 유연한 분배가 이뤄지고 있다고 하는데, “표준 근로시간은 근로시간의 산술적 평균에 불과하다. 실질 근로시간은 평균 근로시간을 기준으로 큰 폭의 변동을 기록하는데, 플러스 및 마이너스 근로시간은 모두 근로시간계좌에 기록”하는 식이라고 한다(26페이지). 이를 시행하는 데에 수반되는 디테일에 관해서는 노사합의를 통해 결정이 된다고 하는데, 표준 노동시간을 초과하는 경우 노동자가 주장할 수 있는 권리라든지 근로시간 분배 기준기간의 상한선이라든지 따위를 말이다. 즉 노동시간의 조정을 단지 기업이 일방적으로 하지 못하게 하는 강제가 있다는 것이다. 한편 이와 관련해서 전범으로 삼을 사례는 보슈 교수는 1990년대에 이뤄진 노사간의 타협을 언급한다. 노동시간의 유연화와 더불어 “일자리 보호를 위하여 일시적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합의”를 했다고 하는데 이는 “임금 보전 없이” 이뤄졌다고 한다(26페이지).

오늘날에는 이러한 접근법들이 어떻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일까? 노동시간에 관해서 사용자 측에서는 최대 노동시간 관련 규제를 훨씬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근로시간법의 완화 요구를 뒷받침해줄 만한 자료는 현재까지 도출되지 않았다.”(27페이지) 그러나 기업주들이 원하는 규제완화에는 반대하면서도 보슈 교수는 유연한 노동시간 정책이 일-가정 양립을 위해 활용할 수 있도록 확대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특히 육아휴가 보조금을 많이 주는 것과 동시에 풀타임 노동자들이 원할 경우 파트타임으로 전환할 수 있게 하고, 또한 풀타임으로도 쉽게 재전환할 수 있게 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28페이지)

 

직업교육과 계속 교육

한편 보슈 교수는 여전히 제조업에 있어서 전문기술 교육을 받은 사람이나 숙련공의 역할이 굉장이 중요한 상황이라는 점을 주장하고 있다. 이런 노동자들이 없으면 독일 제조업은 경쟁력이 상실됐을 것이라는 점을 이야기하며 기업들도 생존을 위해서 이런 인력을 유지하는 것을 적잖이 중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 전문인력의 평균근속연수 역시 증가하였는데, 그 이유는 유연한 기업들이 점점 더 근로자의 암묵지(tacit knowledge)에 의존하기 때문이다.”(30페이지) 따라서 “직업상의 지속적인 현대화”, 즉 직업교육과 노동자의 계속교육이 강화돼야 하며 전직훈련에 소요되는 비용 등 역시 노동청이 보장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나 2004년경 독일의 노동시장 정책이 “교육 우선”에서 “일 우선”으로 전환되었다가(30페이지), 실업률은 일시적으로 줄어들었지만 숙련인력을 확보하는 데에서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었다는 점을 봤을 때 더욱 그러하다고 한다. (‘선취업 후진학’을 강조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대학구조조정 정책과 노동’개혁’에 대해서 고찰해볼 만한 대목이다.) 또한 보슈 교수는 중소기업 노동자들에게도 이러한 기술이전이 잘 이뤄져 혁신이 확산되고 우수한 인력과 계속교육이 강화돼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에게 주는 교훈

보슈 교수는 결론부에서 이른바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생길 법한 문제가 단지 기술변화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정책을 통해 해결해야 하는 문제임을 분명히 강조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불평등 심화나 일자리 손실 등이 기술변화에 의해 이뤄지는 불가피한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결정론적 주장에 대한 효과적 반박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숙련노동력 보유가 기업주들에게도 중요한 목표 중 하나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불안정 노동의 확산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도 불식시키는 점이 있다고 본다. 물론 한국과 독일에 양적인 차이는 어느 정도 있을 수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유연화’나 ‘노사협의’에 대한 보슈 교수의 강조는 주의해서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노동시간 조정이나, 파트타임-풀타임 사이의 전환에 있어서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많이 들어주려고 한다고 해도 많은 경우에는 기업주나 이사회의 입맛대로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독일은 노동조합의 경영참가가 비교적 잘 보장된 나라라는 이미지가 있지만 여전히 노동조합 측 대표의 역할은 ‘거수기’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는 비판 또한 많은 것이 실정이다. 따라서 노동시간을 유연화한다고 했을 때 이사회 측이 ‘비수기’ 때에는 노동자들에게 일감을 적게 주지만 ‘성수기’가 되면 노동자들은 초착취하는 식으로 나올 수 있다는 것이고, 이에 대해 노동자들이 불만을 가지고 있어도 저항하기가 쉽지 않을 수가 있다. 파트타임-풀타임 전환도 마찬가지다. 파트타임 노동자가 다시 풀타임으로 전환하려고 하는데 기업주가 ‘법적으로는 가능한 사안이 맞지만 지금 풀타임 일자리가 없어서 못해주겠다’는 식으로 나온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 사각지대에 대한 고려 없이 노동시간 유연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하기만 하는 것은 그의 의도와는 달리 노동자들에게 손실을 안겨주고 사용자측에만 유리한 결과를 낳는 쪽으로 연결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더불어 노동자들의 고용보장을 위해 (아무리 일시적이라고 한들) 노동시간 단축에 있어서 ‘임금보전 없이’라는 단서를 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ILO는 노동시간 단축 시에 임금보전이 이뤄져야 함을 이미 수십 년 전부터 권고했다. 또한 임금보전 없는 노동시간 단축은 경제위기 시기에 기업주들이 마땅히 책임져야 할 부분들을 노동자들이 떠맡게 되는 악영향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물론 노동자들이 새로운 직무환경에 적응하는 데에 있어서 필요한 교육 등의 비용을 정부가 지원해주는 등의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동의하는 편이다. 또한 이 외에도 ‘플랫폼 경제’가 나을 수 있는 파괴적 영향을 막기 위한 각종 제도개혁 등에 대해서도 공감하는 편이다. 다만 산업 구조조정에 대한 대책으로서 적극적 노동시장정책뿐 아니라 기존 일자리를 최대한 보존시킬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고민 역시 좀 더 많이 모색돼야 할 것이다.

 

*함께 읽으면 좋은 논문

「독일의 인더스트리 4.0과 노동 4.0」
문선우, 2016, 『국제노동브리프』, 14(9), 43-53.

「독일 중소기업의 제조업 혁신과 노동」
문선우, 2016, 『국제노동브리프』, 14(12), 60-71.

김종현 리뷰어  mrkim_sam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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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학, 자본주의의 파수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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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ofinale흔히 회계사는 스스로를 자본주의의 파수꾼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 파수꾼이 감시대상과 함께 자신을 위해서 부정을 저질렀을 때, 우리는 그를 가진 자들의 편이라고 비난한다. 가깝게는 대우조선에서부터 몇 년 전의 저축은행사태, 더 멀게는 분식회계가 횡횡했던 IMF 이전의 기업들까지 물욕에 찌들어 선을 넘어버린 회계사들은 탐욕의 화신이기도 하다. 그들은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어서 신성한 파수꾼에서 탐욕의 화신이자 지배계급의 하수인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이 선이 허상이었다면 어떨까? 한형성(이하 필자)의 「비판회계학의 마르크스주의 시각에서 본 쌍용자동차(주) 사례연구」(『마르크스주의 연구』, 9(2), 2012)는 회계 자체가 이미 특정 계급을 위한 것으로 지배계급의 이익을 위해서 기능하는 것이라는 점을 쌍용자동차(이하 쌍용차)) 사례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회계는
계급투쟁의 장이다

회계는 결코 중립적인 것이 아니다. 알튀세르가 이론의 영역을 계급투쟁의 장으로 규정했던 것에서 회계 또한 벗어날 수 없다. 회계는 “계급투쟁에 따라 ‘구성된 것’”으로 본질적으로 계급 편향적이지만, 수치라는 외양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마치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것처럼 보이며 “공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신성한 언어’가 된”다. 이런 중립적인 외양 덕분에 회계는 계급 사이의 갈등을 중재하고, 지배계급의 이해를 객관적인 것으로 만드는 이데올로기로 작동한다. 주류 회계학은 이윤, 효율성, 비용절감과 같은 용어들로 이뤄진 담론이며, 이는 애초에 자본주의적 소유제도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에 영향을 받은 대중들은 비용절감과 효율적인 경영을 위해서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것을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인다.” 이에 대해서 비판회계학의 관점은 회계를 이데올로기로 규정한다. 회계라는 이데올로기를 통해서, 이윤을 위해서 생산이 조직된다는 자본주의의 특수한 논리에 포섭된 주체들이 생산된다. 이는 구체적인 수준에서는 “표준원가회계와 같은 회계절차들을 통해 노동자들의 규율과 통제를 위한 관리 도구들을 만들어내는 역할”로 나타난다.

따라서 회계라는 담론을 실천하는 회계사와 회계법인들 또한 “계급갈등의 중립지대”에 서있을 수 없다. 이들은 기본적으로는 “다른 지식전문가들, 기업들, 정부와의 ‘불분명한’ 관계들을 통해 자신들의 사회적,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독점적 기업군이다.” 그러나 필자(가 강조하지는 않지만)도 지적하듯이 동시에 이들이 수행하는 역할은 일정부분은 사회적 필요에 의한 것이기도 했다. 회계사와 회계법인이 수행하는 회계 감사는 일정부분 국가와 시장을 매개하는 역할을 하며, 국가 장치의 보완자로서 역할을 한다.

 

신자유주의적 전환
이후의 회계

‘신자유주의’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논란이 있지만, 신자유주의 시대에 이전의 국가가 수행하던 공적 영역이 사유화-시장화 되는 경향이 나타났다는 사실은 자명한다. 이런 공적인 것의 사적인 것으로 해체는 회계에서도 나타났다. 신자유주의로의 전환 이후 회계 서비스가 충족시켜주던 국가적-사회적 필요는 보다 사적인 필요에 의해서 대체되었다. 산업사회에서 신자유주의로의 이행 국면에서, 회계사와 회계법인들은 치열한 상업적 경쟁을 벌이고 상업적 서비스 제공이 이들의 영업의 주축이 되면서, 이들이 가지고 있었던 국가 장치로서의 공공성마저도 상당부분 포기해버렸다. 회계법인은 자본가들의 사적이익을 공적인 것, 중립적인 것으로 포장해내면서, 자본가의 “동맹자 역할”을 해냈다. 치열해진 회계 시장에서의 경쟁에 따라서, 회계 산업은 국제적인 규모의 대형회계법인과 그들과 맴버십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세계각국의 회계법인들의 독과점 체제로 재편되었다. 이들은 상업적 자문서비스를 통해서 기업의 인수합병을 돕고, 구조조정에 참여하며, 민영화를 부추기는 자본가의 대변인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만들어진 기업-정부-회계법인 간의 촘촘한 “인적 동맹” 관계는 회계사와 회계법인의 독점적 위치를 더욱 공고히 한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회계는 신자유주의적 전환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그러한 전환을 돕는 이데올로기로서도 기능한다.

이런 회계 산업의 동학은 국내 법인들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회계감사가 국내 회계 법인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줄어들고 있고, 컨설팅과 같은 상업적 자문 서비스의 비중은 늘어나고 있다. 2007년에 각각 수입 중 41.2%와 37.9%의 비중을 차지했던 회계감사와 상업적 자문 서비스는, 2009년 역전되어 각각 36.2%와 41.5%를 차지하게 되었다. 정부와의 인적 동맹 관계 또한 공고히 나타나는데, 국내 3대 회계법인(삼일, 안진, 삼정)의 공개된 고문들은 대부분 전직 고위 관료들이 차지하고 있다.

 

쌍용차 사태
: 회계는 어떻게 구조조정을 정당화하는가

흔히 ‘쌍용차 사태’라고 불리는 2009년의 파업과 이와 연관된 2005년부터 2011년 사이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도 신자유주의 체제에서의 회계법인들의 역할과 멀리 떨어져있지 않다. 쌍용차의 매각, 법정관리, 파업, 재매각의 일련의 사건들에는 국내 BIG4 회계법인 중 3개가 엮여 있다. 이 과정 중에서 이 논문이 집중하고자 하는 “의문점들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쌍용차의 2008년 매출이 2007년도에 견주어 20% 줄었는데, 이러한 매출하락의 원인이 무엇인가이다. 둘째, 2008년의 영업손실은 2,274억 원인데, 여기에 영업손실의 2배가 넘는 4,823억 원의 추가 손실이 더해져 당기순손실이 7,097억 원이 된 이유이다. 마지막으로 2,646명의 정리해고안이 포함된 삼정KPMG의 경영자문보고서가 안진회계법인의 2008년 감사보고서에 기초해 작성했다면, 경영자문보고서의 타당성에 대한 의문이다.”

 

ⓒYTN 뉴스

 

회계법인의 감사보고서에는 감사인의 감사의견을 적을 수 있게 되어있다. 이 감사의견은 현재 기업의 상황에 대한 객관적인 서술로 여겨진다. 따라서 쌍용차에 대한 2008년의 감사보고서에 적힌 매출하락에 대한 원인분석은 이듬해 신청된 쌍용차의 법정관리의 원인을 밝히는 중요한 보고서였으며. 이의 내용에 따라서 쌍용차에 대한 앞으로의 조치들이 결정되는 보고서였다. 이 보고서에서 안진은 쌍용자동차의 매출하락의 원인이 주주회사인 상하이 기차의 부실한 경영이 아니라 2008년의 금융위기라고 규정한다. 그런데 이는 같은 시기 금융위기로 인한 환율상승의 영향으로 가격경쟁력이 높아져서 동종 산업에 종사하는 현대차와 기아차의 매출이 전년 대비 상승했으며, GM대우 또한 매출 하락이 없었다는 점을 무시한다. 즉, 안진의 보고서는 쌍용차 경영진의 경영실패와 대주주인 상하이기차의 계약불이행으로 인한 경쟁력 약화를 외부요인으로 돌려, 쌍용차에서 일어난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를 정당화시켜주고 있다.

2008년의 매출액 감소와 함께 노동자에 대한 강력한 구조조정의 근거가 된 당기순손실의 계산 과정 또한 명확치 않다.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에게 구조조정을 강요하거나 세금회피 등을 이유로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자신들의 회계장부상 이익을 줄이기도 한다. 쌍용차의 경우도 이에 해당한다. 2008년 쌍용차의 영업손실은 2,274 억 원인데, 당기순손실은 7,079억 원이다. 쌍용차의 당기순손실의 증가는 대부분 회사가 가지고 있는 유형의 자산(토지, 건물, 기계, 설비, 재고 등등)에 대한 평가액이 기존보다 5177억 원 줄어들었기 때문, 즉 유형자산 손상차손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유형자산 손상차손은 유형자산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기대수입(미래의 경제적 효익)이 줄어들었을 때 발생한다. 예를 들어 100억을 주고 산 고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이 공장에서 생산한 상품을 통해서 50억 밖에 벌지 못할 것으로 추정되고, 이 공장을 팔아도 50억만 받을 수 있을 때는 사실상 이 공장이 100억원의 가치를 갖는 것이 아니라 50억 원의 가치를 갖기 때문에 50억의 손실을 손상차손으로 장부에 반영해야한다. 쌍용차는 이러한 회계규정을 이용해서, 미래에 자신의 예상 수익을 축소하는 방식으로 회계장부 상 손실을 부풀렸다. 회계장부에 반영되어야 하는 신차개발의 효과, 한국감정원의 감정평가액 등의 정보는 배제하고, 매출액 하락 경향과 외부의 경제위기 등은 반영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당기순손실의 증가를 근거로 노동자들에 대한 강력한 구조조정을 정당화했다.

쌍용차 구조조정의 실질적인 근거가 된 삼정의 ‘경영정상화방안 검토보고서’에는 2,646명의 정리해고안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보고서는 위에서 말한 안진의 회계보고서에 근거하여 작성되었다. 철저히 자본가들의 입장에서 작성되었으며, 회계 조작의 가능성이 농후한 보고서를 통해서 경영정상화 방안을 마련하고, 노동자들의 대량해고의 근거를 마련해준 것이다. 이 회계보고서의 분석 안에는 자본가의 이해관계는 반영되어 있을지 몰라도 그 이해관계가 의미하는 사회적 의미-노동자들의 삶, 가족과 지역공동체에 미치는 영향, 사회적 비용 등-는 전혀 고려되어 있지 않다. 삼정의 회계보고서가 아무리 형식적으로 공정한 회계 기법에 근거한 것이더라도 이는 애초에 자본의 편에 서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필자는 명확히 드러내지 않은 채 이데올로기라고 부르고 있지만 회계학은 그 자체로 자본가의 의식이 체계적으로 드러나는 담론이기도 하다. 사회적 관계가 그 자체로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고, 복잡하고 중층적인 기제들에 의해서 우리가 경험하는 사건들이 발생할 때, 우리는 이면의 사회적 관계 자체를 볼 수 없기에 표층의 사건들 간의 관계만을 생각한다. 회계에서 사회적으로 가치가 어떻게 생산되며 그를 실제로 생산해내는 관계가 무엇인가를 살펴보지 않고, 오로지 이윤과 비용만을 고려하는 것은 회계 자체가 우리의 경험을 반영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회계가 고도로 체계화된 물신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자본가의 의식을 반영하는 물신주의. 그리고 이는 노동자의 의식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투명하지 않은 사회적 사실들 사이 너머의 사회적 관계는 회계장부의 이면에서만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

*함께 읽으면 좋은 논문

「마르크스주의 회계학의 방법론을 통해 본 한국의 회계제도」
한형성, 2017, 『마르크스주의 연구』, 14(1), 120-163.

「회계학연구에서 비판의 의미」
김성웅, 2013, 『국제회계연구』, 51, 449-474.

나성채 리뷰어  ists19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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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은 일자리를 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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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ofinale작년 경부터 이른바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온갖 담론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고, 심지어 오늘날에는 대선 정국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에서 로봇공학과 인공지능 그리고 사물인터넷의 발전이 세계경제를 완전히 뒤바꿀 것이라는 전망을 내세우고 인공지능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압도한 이래, 기계가 인간을 압도하는 세상을 이야기하는 것이 마치 하나의 유행이 된 것 같다. 혹자는 영화 ‘터미네이터’나 ‘아이로봇’에 나온 디스토피아적 미래에 대해 걱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전형적인 반응은 ‘그러면 인간이 하던 일을 기계가 다 해버리면 인간은 쓸모 없어지고 대량 실업이 생기는 것 아닌가’하는 공포감이다. 나준호의 논문 「인공지능의 발전과 고용의 미래 (『FUTURE HORIZON』, 28, 2016) 또한 그와 같은 주장의 전형적 사례이다. 이 논문이 대단히 문제적인 주장을 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오늘날의 통념에 하나의 ‘태클’을 걸어보기 위해서 가장 보편적인 주장을 하는 듯한 국내 논문을 골라봤을 따름이다. 이 리뷰에서도 논문의 내용을 충실히 요약하고자 하지만, 독자들도 해당 글을 꼭 읽어보시고 나름대로 판단을 내려보시길 바란다. 그런 독자들에게 이 리뷰가 최근 유행하는 한 담론에 대한 비판적 가이드 구실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인공지능의 발달
그리고 산업에의 적용

이 논문은 우선 인공지능의 역사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고, 그 현황을 개괄한 후 그것이 오늘날 산업에 끼치고 있는 영향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알파고로 대표되는 최근의 획기적 인공지능 기술의 발달은 2010년대에 들어서 가능해졌다. 이러한 발전이 가능했던 이유는 두 가지 기술기반의 발달 덕이다. “무엇보다 ‘무어의 법칙’에 따라 컴퓨팅 자원 가격이 급속히 하락했고 분산처리 기술, 클라우드 컴퓨팅, 고성능 GPU 활용 등을 통해 거대한 컴퓨팅 역량을 저비용에 구축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학습, 탐색 기반의 머신 러닝 등 새로운 알고리즘 구축 방법론이 도입되며 돌파구가 마련되었다.”(14) 이에 따라 알고리즘은 빠르게 산업 생태계에 도입이 되었는데, 이미 많은 부분 우리의 삶에 파고들어 있다. 소셜 미디어 사이트나 검색엔진 등에서 이런 저런 정보를 소개∙추천해주는 것도 다 이러한 기술들에 기반한 것이다.

인공지능 열풍을 불러 일으킨 ‘알파고’. 출처: Wikipedia

단지 이런 온라인 사이트에만 인공지능이 도입되는 것은 아니다. 금융산업에서는 이미 인공지능이 크게 도입되어서 투자 포트폴리오 구축도 인공지능이 하고 이 외에도 투자분석∙자문도 컴퓨터가 많이 맡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비용절감이 상당히 이뤄진 상황이다. 아마존에서는 구매 패턴, 라이프스타일 등을 분석해서 적절한 시점에 소비자에게 생필품 구입을 제안한다. 알리바바는 맘에 드는 옷을 찍어 검색하면 비슷한 옷을 온라인에서 찾아 구매를 도와준다. 과거에도 신기술 도입으로 인한 생산성 상승 효과가 상당했던 유통업 외에도, 의료∙언론∙법무에도 인공지능의 도입이 늘어나고 있다. 환자의 생체 데이터를 인공지능이 분석해서 진단하고 치료법을 제안한다. 저널리즘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이미 일부 간단한 기사는 로봇 저널리스트에 의해 작성되고 있는 실태다. 법무법인들에서는 문서 처리 및 검토 작업을 인공지능이 수행하고 있는데, 단순 조사역은 기계에 의해 종사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는 단지 로펌 뿐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 지식노동이 기계로 대체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변화는 인간 고용의 대폭적 감소가 수반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에릭 브린욜프슨과 앤드류 맥아피, 마틴 포트, 아론 라니에르 등이 이런 주장을 내놓는 대표적인 인물로 거론된다. [리뷰의 대상이 되는 논문에서는 언급이 되지 않았지만, 사실 경제학자 중에서 본격적인 실증연구를 통해 이런 주장을 내놓는 대표적인 사람들로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칼 베네딕트 프레이와 마이클 오즈본이다.] 물론 직무 특성별로 다를 수가 있는데, 어떤 직업에서는 단순히 대체할 수도 있다. 논문의 저자인 나호준 연구위원의 경우에는 “감성,지식 노동이 주를 이루는 판매직, 단순 사무직, 서비스직, 전문직, 연구직, 관리직 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16)한다고 하고, 특히 연구직 관리직 등은 과거에는 자동화가 활발히 진행되던 분야는 아니었던 만큼 충격이 클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업종은 고임금이므로 로봇, 인공지능 도입 선호도가 상당히 높다는 것이다. 그리고 특히 정형적이고 반복적인 업무가 많은 직종일 수록 쉽게 대체되리라 예상된다. 물론 나호준 연구위원은 어떤 직업에서는 오히려 인간노동력-기계가 보완재일 수 있다. 이 경우 “인간과 기계가 각자 잘하는 업무를 분담하는 협업 구도도 나타날 가능성”(16)이 있다. 이런 직종의 경우 기계에 의한 인간노동의 대체가 쉽지 않으리라.

하지만 저자는 보완의 가능성보다는 대체의 가능성을 더 크게 보는 듯 하다. “경영 방식이 인공지능 친화적으로 바뀔 경우”처럼 “게임의 룰”이 변하면 “인간은 점점 경쟁력을 잃다가 결국 인간의 설 자리가 크게 위축”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와 함께 저자는 “기계와의 협업에 성공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나뉘면서, 직종 내 양극화 문제가” 확대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는다(17). 이러한 변화의 급속함을 경고하며 저자는 이에 대처할 시급한 대책마련이 필요하다고 결론 짓는다.

 

정말 인공지능∙로봇은
인간을 대체할 것인가
?

실제로 저자의 암울한 전망이 우리 눈 앞에 임박해있는가? 본 리뷰에서 소개된 논문도 그렇지만,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인공지능으로 인해 고용이 대규모로 축소되리라는 전망은 결코 주요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컨센서스’가 아니다. 만약 그와 같은 ‘자동화 호들갑’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오히려 MIT의 경제학자 데이비드 어터가 지적한 바와 같이 ‘왜 아직도 이렇게 일자리가 많은가?’하고 되물어야 할 판이다. 그런데 인공지능에 대한 과장된 기대 혹은 공포에 대해서 반박하는 이러한 연구들은 국내의 관련 담론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소개가 이뤄지고 있지 않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가히 ‘거물급’ 경제학자라고 할 수 있는 윌리엄 노드하우스도 이에 대해서 회의적이다. 우선 인공지능이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산업들이 경제 전반에서 차지하는 규모가 그렇게 크지도 않고, 그 외의 산업분야의 생산성이 급속히 상승하고 있지도 않다. 무엇보다 임금에 비해 빠른 속도로 자본재의 가격이 저하하고 있다는 증거가 없다. 즉 기계로 인간을 대체할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이 더 싸게 먹히지는 않는 상황이란 말이다. 그래서 노드하우스는 우리가 ‘경제적 특이점’에 진입하려면 100년은 소요되리라 전망한다.

한편 OECD의 경제학자들이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자동화 진전에 따라서 사라질 일자리의 비중은 OECD 평균 9% 밖에 안 된다. 미국 일자리의 절반 가량이 사라진다는 일부 연구들과 상당히 대조적인 결과를 보여준다. 기존 연구는 어떤 ‘직무’가 사라진다면 해당 ‘직업’이 자동화로 인해 사라질 거라고 가정하고 연구를 진행했다. 하지만 보통 하나의 ‘직업’은 여러 개의 ‘직무’로 이뤄져 있다. 예컨대 자율주행자동차가 보편화되어도 여전히 버스에는 요금을 징수하는 기사가 있어야 하며, 유치원이나 요양원의 셔틀버스에는 여전히 탑승자의 안전을 살피는 사람이 필요하다. 이런 식으로 하나의 일자리에는 다양한 직무가 있으므로, 직무 중 상당수가 자동화될 수 있는 경우에만 로봇과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파괴할 것이다. 그래서 직무의 70% 이상이 자동화되어 소멸할 일자리는 전체 일자리 중에서 OECD 평균 9% 가량이란 것이다. 심지어 한국 같은 경우에는 자동화가 상당히 진전되어 있어(인구대비 로봇의 수가 세계 1위다) 겨우 6% 가량의 일자리가 소멸될 전망이다!

이외에도 자동화로 인해서 사업장 운영비용이 감소하면, 사업장 별 노동자는 줄어도 사업장 자체가 늘어서 고용인구가 늘어날 수 있다. IMF가 발간하는 Finance and Development에 실린 제임스 베센의 기사를 참조해보자. 가장 극적인 역사적 사례는 ATM이다. ATM은 은행원의 직무를 상당히 대체하였고 실제로 그래서 은행 한 점포당 은행원의 수는 상당히 감소했으나, 대신에 적은 비용으로도 은행 지점 운영이 가능해져서 오히려 미국 전역의 은행원 고용은 대폭 증가하였다고 한다.

일반론적인 비판 외에도, 본 논문에서 준거로 든 몇 가지 사례들에 대해서도 코멘트 할 것들이 있다. 우선 나호준 연구위원도 지적하다시피, 인공지능의 급속한 발달을 가능케 해준 물질적 토대는 ‘무어의 법칙’이라는 급속한 컴퓨터 발달이 있다. 하지만 무어의 법칙은 한계에 봉착해있다는 전망이 압도적이다. 극도로 미세한 기판에 최대한 많은 트랜지스터를 때려 박는 식으로 반도체 기술이 발달해왔지만, 문제는 그런 식으로 컴퓨터를 발달시키는 데에는 물리적 한계가 있으므로, ‘무어의 법칙’은 위기에 봉착해있다. 논문의 저자는 또한 이른바 감정노동이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는데, 아래에서 소개할 이재현 연구자는 정반대의 주장을 제기한다. 이른바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 현상으로 인해서 감정노동은 자동화로 대체하기 어려울 수 있다. 따라서 이른바 ‘노가다’만큼이나 자동화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인간을 흉내내지만 충분히 인간적이지 않기 때문에 소비자들 상당수가 불쾌감을 느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물론 기술변화의 여파가 크지 않을 것이므로 가만히 있자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생각보다 적을지라도 기술적 실업이 발생할 전망이라면 그로 인해 피해를 입는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지원책과 (재)취업 방안은 당연히 필요하고 그에 걸맞게 복지제도 또한 개선돼야 한다. 다만 이데올로기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자동화에 대한 열광 혹은 공포는, 미국 경제정책연구소의 딘 베이커 소장이 지적했듯 ‘4차 산업혁명 때문에 실업은 어쩔 수 없어’라는 식으로 경제위기와 실업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정치경제 엘리트들의 이데올로기로 활용되곤 한다. 언제는 인구절벽으로 노동인구가 부족하다던 바로 그 사람들이 말이다. 실제로 많은 관료들이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대책이랍시고 제시하는 정책 대안이 노동시장 유연화다. 어차피 없어질 일자리를 지키는 제도는 무용하거나 해악적이라는 식의 주장이다. 그러나 앞서 살펴봤듯 실상은 대체로 다르다.

물론 우리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하는 문제는 있다. 신기술로 인해서 일부 직종의 직무가 상당히 단순화된다면, 이 경우에는 기존에는 고숙련 직종이라서 노동력을 쉽게 끌고 오기 어렵던 일부 직종에서도 ‘산업예비군’을 동원하기가 쉬워질 수 있으므로 임금 삭감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일자리 소멸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학자들 중 적지 않은 수는 그래도 ‘일자리 양극화’가 발생할 수 있다는 말은 한다. 물론 이런 식으로라도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지는 좀 더 세밀히 따져봐야 한다. 다만 적어도 실업 보다 우리가 급박히 대처해야 할 노동 문제는 임금과 불평등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만 우리가 여전히 견지해야 할 점은, 기술의 여파는 사회적으로 조절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기술 그 자체가 우리를 위협할 수 있다는 생각은 기술결정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함께 읽으면 좋은 논문

「인공지능에 대한 비판적 스케치」
이재현, 『마르크스주의 연구』 13(3), 2016.

박정희는 경제위기에 어떻게 대응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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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ofinale그 동안 한국경제사의 주요 관심사는 높은 경제 성장률과 이를 이끌어낸 원인 규명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러나 “실제 한국자본주의의 역사는 성장의 과정인 동시에 반복된 위기의 과정이었다.”(251) 그럼에도 한국 경제가 두 차례의 고도 성장기에 겪었던 위기에 대해서 진행된 연구는 그다지 많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 지속적인 경제성장의 구가 여부는 그 과정에서 벌어진 경제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는가에 달려있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그러니 과거의 경제위기에 대한 분석은 빈약한 상황에서, 경제성장에 대한 분석만이 풍요를 누리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기이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특히나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을 보면 ‘박정희 향수’로 인한 확고한 지지기반이 있었기 때문인데, 박정희에 대한 향수를 가진 사람들 중 대다수는 박정희 시기의 경제가 ‘잘 나갔던’ 면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지 그 뒷면에 이야기에 대해서는 대체로 침묵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박정희 시기의 경제위기에 대한 연구들에 대해서도 보다 관심을 기울여볼 필요가 있다.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박정희 시기에 대한 논의들도 조명을 어느 정도 받고 있는 시점이니 더더욱 그러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쟁점에 대한 몇 없는 국내논문 중 하나인 이정은의 「1970년대 초중반 두 차례의 경제위기와 박정희정부의 대응」(『한국사학보』, 38, 2010)은 주목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연구라고 생각된다. 이번 리뷰를 통해서 당시의 경제위기와 정부의 대응에 대해 분석해보고, 그에 대해 어떻게 봐야 할지 논의해보고자 한다.

 

출처:Wikipedia

 

1970년대 초 중반,
두 차례의 경제위기

흔히 박정희 집권기는 고도성장을 안정적으로 구가했던 시기로 묘사된다. 기껏해야 박정희 정권을 정치적 위기로 몰아넣었던 1979년의 위기 정도가 약간의 주목을 받을 따름이다. 하지만 논문 저자에 따르면 당시의 경제성장 역시 반복되는 불황을 피할 수는 없었다.

 

1970년대 경제성장률. 저자 논문에서 인용.

 

특히나 이는 당시 기업의 수익성 위기와도 직결되어 있었다. 특히 “1971년에 들어서는 “과거 불경기 따위와는 비할 수도 없는 정기적이고 심한 불경기”라는 진단”(253)이 주요 언론에 보도되었을 정도다. 이는 1965년 이후 성장을 구가하던 한국경제가 맞이한 최초의 경제위기였다. 이를 마주한 경제주체들은 상당한 혼란을 겪었지만, 1)중소기업과 대기업 간 불균형 2)지나친 해외 의존 3)금융비용 및 원리금상환부담 과중 등이 불황의 구조적 요인이었다는 점에서는 상당부분 합의가 모였다. 논문저자는 이를 “급속도로 전개된 축적과정 속에서 과잉투자에 따른 자본주의의 일반적 귀결”(253)이었다고 평가한다. 고속 성장기에 엄청난 양의 투자가 쏟아졌지만 국내외의 수요는 그만큼 빠르게 늘어나지도 않았고 이로 인해 부채 문제도 심각해졌다는 것이다.

 

1970년대 수익성 지표. 저자 논문에서 인용.

 

물론 이 위기는 1972~1973년경에 상승세로 돌아서면서 회복되는 듯 했지만, ‘석유 파동’으로 인해 다시금 벽에 부딪힌다. 1974년 하반기에서 1975년기에는 수천 개의 업체가 심하게는 휴업/폐업에서부터 작게는 조업단축에 돌입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많은 사람들은 이 위기를 단지 국제 석유파동이라는 외적 요인에 의해서만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논문저자는 이러한 외적 요인이 국내 경제위기로 이어진 것에는 내부적 요인 또한 있다고 지적한다. 해외 의존구조가 90퍼센트에 달하고 여전히 1973년 호황에 편승한 과잉 시설투자가 문제를 악화시켰다는 말이다. 그러나 정부와 친정부학계는 외적 요인만을 일면적으로 강조하는 입장이었고 따라서 이런 주장은 묻혔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을 펼치는 논자들은 내적 요인이 전혀 없었다고 말했기 때문에 당시 경제주체들의 역할은 세계 경제위기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일 뿐이라는 다소 허무한 결론을 도출했을 뿐이다.

 

경제위기에 대한
박정희 정권의 대응

물론 가파른 성장 속에서 차관으로 인해 위기에 빠지는 기업은 이미 적지 않았고 이를 인지한 청와대 역시 1969년부터 ‘부실기업’ 정리에 대대적으로 나서곤 했다. 이러한 정리작업은 무려 3차에 걸쳐 이뤄졌다. 이렇게 부실기업 문제가 가시화되자, “국민적 희생 위에 사기업 육성을 위해 막대한 자금을 투여했음에도 다시금 그 부실이 국민적 책임으로 되돌아”온 현실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어졌다(256). 당시의 경제성장은 물가상승, 무역수지 적자, 기업 재무구조 악화 등을 수반했는데 이는 지속 가능한 성장의 경로였다고 보기 힘들다. 이에 따라 경제관료들은 경기과열에 대한 ‘안정화’ 정책을 시행하는 방향을 선택한다. 성장을 희생하면서도 초긴축 정책에 돌입했던 것인데, 이는 전경련 등 자본의 항의로 인해서 큰 장벽에 부딪혔다. 자금 압박에 시달리던 자본가들은 긴축정책으로 자금조달책이 끊기자 이에 대한 큰 불안을 겪었던 것이다. 경제계는 기업감세와 임금 삭감을 요구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긴축기조를 완화하겠다는 메시지를 보이기도 했고, 긴축 강도는 정부나 자본의 필요 등의 요인에 따라 일관성 없이 변동되곤 했다.

하지만 긴축을 강행하던 혹은 완화하던 간에 경제여건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매출액과 설비가동률의 저하, 부실 차관 문제 등은 여전히 계속되어왔다. 한편 당시 전경련 등 재계는 정부주도형 성장을 비판하며 이제는 경제발전이 민간주도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자본가들의 요구사항을 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은, 이들은 진정으로 정부가 산업육성에서 후퇴하기를 바라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이들은 규제는 줄이되 자금조달 등 지원은 늘려주기를 요구하고 있었다. 물론 전경련조차도 수출실적주의 등 “고도성장의 과도한 지향” 등을 거부했던 점은 특기할 만하다(260). 관료층 내부에서도 이런 주장이 일부 등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부는 1971년 중반까지 공식적으로 경제 위기의 심화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대선과 총선 국면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거 종료 직후부터는 경제부처 관계자들이 불황을 시인하기 시작했고, 환율인상과 법인세 인하 통화 공급 확대 등이 이뤄졌다. 하지만 환율인상은 수출증가가 아닌 수입 원가비용 증대로 이어져 위기를 심화시켰다.

정부는 당시 인플레와 국제수입 악화를 불러올 확장적 정책을 택해야 할지, 혹은 기업채산 악화를 감수해야 할 안정화 정책을 추구할지 사이에서 딜레마를 겪고 있었다. 최종적 선택은 금리인하와 금융지원 등 기업 지원책 중심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향후 부작용으로 예상되는 수입증가와 물가상승에 대한 억제 조치에 대해서는 언급만이 있었다. 하지만 정부는 결국 자본의 요구에 따라 물가상승 억제를 포기하고, 결과적으로 “구조적 문제의 개선보다는 자본의 요구에 맞춰 물량 지원을 통해 기업부터 살리겠다는” 태도를 보였다(262). 당연히 이에 대해서는 실효성 문제가 제기되었다. 불황의 원인을 해결했다기 보단 미봉책이었다는 평가가 많았으며, 불황의 원인이 된 과잉축적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있는 대책이었기 때문이다. 근본문제 해결의 여부와는 별도로 실적도 좋지 않았다는 점 역시 지적되었다. 이러한 시책들이 실제로 거의 경기를 회복시키지 못했다.

 

8∙3조치와
경제위기의 극복?

이런 상황 속에서 자본가들은 더 많은 확장정책을 요구했다. 특히 당시 전경련 회장 김용완은 기업부채문제 해결, 특히 사채동결을 건의했고 실제로 이는 그 유명한 ‘8∙3조치’를 통해 구현이 되었다. 이와 더불어 금리 대폭 인하, 환율 대폭 인상, 물가상승 억제, 공공요금인상 억제 등이 함께 이뤄졌다. 결국 당시 조치의 핵심은 자본에 대한 지원 극대화였던 것이다. 정부는 당시 정황상 “정상적 시책으로는 안정적 성장구조를 만들 수 없으며, … “닭이 살지 않으면 달걀을 어떻게 나을 수 있겠냐”며 기업지원의 당위성을 설파했다.(265)” 물론 기업에게도 책임을 다하라는 경고를 덧붙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8∙3조치는 숱한 논쟁을 불러왔는데, 재계 측은 대환영 입장을 내면서 그 대신 책임 있는 경영을 하겠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이것은 일방적 특혜에 불과하다는 비판, 사채보다는 외채가 심각한 문제였다는 주장 등이 제기되곤 했다. 8∙3조치의 효과는 어떠하였는가? 실제로 경제위기 해소에 상당한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사채동결의 혜택을 받았던 기업 중 3분의 2는 대기업이었다. 이 외에도 각종 금융혜택의 수혜를 본 기업 역시 대부분 대기업이었다. 정부의 조치로 인해 혜택을 입은 블록이 어디인지는 명확했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8∙3조치가 경제위기 극복의 근본동력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여전히 남는다. 당시 호황의 원천은 기본적으로 세계경제의 회복세에 따른 수출수요 급증이었고, 8∙3조치 자체가 가진 효과가 얼마나 지속적이었을지 역시 의심스럽다. 예컨대 8∙3조치의 궁극적 목표로 제시되었던 물가안정 약속은 몇 년 가지 않아 깨졌다. 그리고 1973년의 호황이 다시금 과잉투자를 불러일으키자 기업재무구조의 악화와 사채시장 규모 확장이 다시금 벌어졌다. 호황이 찾아오자 정부의 정책기조도 다시 예전의 모습을 되찾았다. 수출 양적확 대를 통한 무조건적 성장주의 기조가 다시금 경제정책의 핵심부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조치는 정부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쏠쏠한 재미를 가져다 주었는데, 중화학공업화와 10월 유신에 대한 자본의 지지를 이끌어내고 당시 사회불만과 비판을 불식시키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1974~1975년 경제위기
그리고 정권의 대응

한편 석유파동 이후 수출 위축으로 인해 다시금 경제위기가 반복되자 일각에서는 이제부터라도 내수확충과 산업구조 개혁 등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주요 각료들과 정부의 입장은 수출로 위기를 타개한다는 방향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1972년의 위기 극복의 교훈은 수출입국만이 해답이라는 것이었다. 한편 위기에서 타격을 입은 기업들에 대한 정부의 지원 역시도 이전처럼 되풀이 되었다. 과잉재고 구매, 금융 지원, 조세 부담 완화 등의 조치가 취해졌다. 특히 정부는 ‘국제수지개선과 경기회복을 위한 특별조치’(12∙7조치)를 시행하는데, 석유 및 전기요금 인상, 공산품 가격 통제, 정부투융자 사업비 조기방출 등이 포함되어있었지만 그 핵심은 환율인상을 통한 수출 지원책 강화였다. 재계의 반응은 역시나 대환영이었다.

하지만 12∙7조치 역시 근본적 해결책이었다기 보단 단기적 지원책에 불구했으므로 효과가 지속되지 못했고, 각종 자본의 요구 사항은 이에 따라 늘어만 갔다. 정부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또 다른 수출 강화책들을 제시하는데, 종합무역상사 허용과 차관도입 확대가 대표적이었다. 그런데 이런 수출지원책들을 뒷받침할 자원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왔는가? 답은 바로 외자였다. 정부는 1974년 하반기부터 외자의 적극 도입을 시책으로 내세웠고 마침 당시 국제금융시장에는 ‘오일머니’가 차고 넘쳐났던 까닭에 이는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이에 따라 차관도입이 매우 가속화됐다.

그런데 수출지원 외에는 위기 타개책이 별도로 제시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수출에 그야말로 ‘올인’했던 이 정책들은 어떻게든 효과를 나타냈다. “이것이 과연 정부의 안목이 적중한 필연이었는지, 아니면 세계경제의 상승세에 따른 기막힌 우연이었는지는 쉽게 판단할 수 없다.”(272) 하지만 당시의 조처들은 수출업계가 아닌 기업들의 자금사정을 악화시켰고, 재벌과 중소기업 사이의 격차를 심화시켰으며, 경제구조 대외의존성 역시 심화시켰다. 논문저자는 이 결과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한다. “정부는 수출의 양적확대에 대한 자신감을 강화했고, 덕분에 한국경제는 1970년대 말에 도래할 이후의 더 큰 위기를 맞을 채비를 하게되었다.”(272) 이 외에도 저자는 이상의 정책들이 자본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비용이 서민들에게 전가되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물가 인상의 용인, 노동계급에 대한 ‘고통분담’ 등이 대표적이다. “석유 파동에 따른 기업부담 비용의 증대는 고스란히 일반 민에게 전가되었다고 볼 수 있다.”(276페이지) 매출액은 줄었어도 정부 시책 덕분에 기업들은 경상이익률 하락은 어느 정도 저지할 수 있었다.

박정희 정권의
경제위기 관리에 대한 평가

이처럼 저자는 대외의존 강화와 수출제일주의, 민에 대한 경제위기 비용부담 전가 등을 이유로 박정희 시기의 경제위기 대응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내린다. 이 시기의 경제위기 대응책은 또 다른 경제위기를 불러오는 미봉책들에 불과했다는 평가 또한 인상적이다. 1971~72년의 위기해소 계기가 1974~1975년의 위기를 불러왔다는 평가, 그리고 1974~1975년의 위기가 1970년대 말의 보다 심긱한 위기를 불러왔을 수 있다는 잠정적 평가는 곱씹어볼 만하다. 마치 닷컴버블 붕괴에 대한 미국정부와 연준의 대응책이 2008년 금융위기 발생에 일조했던 일들을 연상시키는 분석이다.

다만 수출제일주의에 대한 저자의 비판적 평가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이 든다. 대외의존도 심화(그리고 이와 관련된 재벌중심 구조)가 위기를 심화시키는 요인 중 하나로 작동했다는 점은 맞지만, 내수 지향적인(그리고 수출업계 외의 기업과 중소기업 중심적인)방식으로 박정희의 개발정책이 이뤄졌다면 경제위기나 기타 문제들이 완화되었을까? 수출제일주의를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재검토가 필요한 지점이라고는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과잉투자와 부채 문제에 조금 더 분석하는 집중이 필요하지 않은가 싶다. 그리고 저자는 일부 분석에 있어서 마르크스 경제학의 도구와 용어를 활용하는데, 기왕이면 한국 경제의 이윤율 변동 역시도 분석의 도구로 도입되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윤율 분석은 고속성장을 위한 과잉투자로 인한 경제위기 발발, 그리고 경제위기 시의 ‘자본 파괴’를 통한 새로운 성장국면의 시작 등을 연구하는 데에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특히 ‘자본 파괴’와 같은 구조조정 과정은 새로운 성장 국면을 만들 수도 있지만 까딱 잘못하면 불황의 심화로 이어질 수도 있으며, 그것을 미룰 경우 위기를 일시 지연시킬 수는 있을지라도 조만간 후폭풍을 맞이하게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성장과 위기 사이의 관계를 분석할 때 주목해야 할 요소다. 한국 경제의 고속성장을 분석하려면 이러한 과정이 어떻게 이뤄졌나를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을 보다 세세히 분석하다 보면 저자가 비판한 ‘비용 전가’ 문제에 대한 비판 역시 보다 꼼꼼히 제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또한 정부 정책의 효과가 어떠한 우연의 덕을 본 것인지 역시 파악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위와 같이 분석에서 보완되어야 할 점이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당시의 현실에 대한 묘사는 물론이오 분석 역시 박정희 시기의 성장과 위기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데에 있어서 상당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한편 저자는 당시 증권시장 기능 확대에 대한 분석과 70년대 말의 경제위기 분석을 향후의 과제로 내놓고 있다. 박정희 시기의 경제위기 대응책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위해 꼭 필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하며, 가까운 시일 내로 후속연구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함께 읽으면 좋은 논문

「한국 발전주의적 자본주의의 위기와 반-인플레이션 정치: 1970년대 말 박정희 정부의 경제안정화정책 전환의 정치적 의미」
김미경, 2016, 『아세아연구』, 59(4), 80-114.

「박정희는 경제발전의 공로자인가?: ‘산업화, 민주화’ 담론과 ‘공과’론의 함정」
박승호, 2013, 『내일을 여는 역사』, 52, 79-97.

오키시오정리는 타당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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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ofinale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위기를 분석함에 있어서 특히 이윤율이 경향적으로 저하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특히 자본의 유기적 구성, 즉 기술이 진보함에 따라 이윤율이 하락할 수 있다는 것은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에 있어서 중요한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그러나 신기술을 도입하는 자본가가 이윤율을 하락하는 기술을 도입할 리 없을 수 있다. 이러한 문제는 실제로 오키시오에 의해 수리적으로 논의되어, 마르크스의 이윤율 하락설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왔다. 이는 이른바 오키시오 정리라고 불리는 것으로,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이 기술된다.

[su_quote]구 균형가격으로 계산할 때 높은 이윤율을 얻는 신기술의 도입은, 실질임금바스켓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한, 새로운 균형가격 하에서 이윤율을 상승시킨다. (Nakatani and Hagiwara, 1997)[/su_quote]

그러나 이러한 오키시오정리는 오키시오의 마지막 논문(Okishio, 2000)에서 두가지 제한적인 가정에 기초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즉, (1) 실질임금률이 일정하다는 것, (2) 새로운 생산가격이 성립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마지막 논문은 오키시오정리를 오키시오 자신이 제한적으로만 성립될 뿐이라며 비판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류동민은  「오키시오정리에 관한 연구」(『경영경제연구』, 29(2), 2006)에서 오키시오의 마지막 논문(Okishio, 2000)에서 밝히고 있는 오키시오정리의 가정에 주목한다. 이에 따라 오키시오 정리가 무엇인지 확인하며, 오키시오의 연구가 정합적임을 밝힌다.

 

반사실적 명제로서의
오키시오정리

앞서 지적하였듯이 오키시오정리는 흔히 마르크스의 이윤율저하설을 비판하는 근거로 활용되어 왔다. 그러나 이는 오키시오정리에서 이윤율 저하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님을 간과하는 것이다. 오키시오정리에 따르면 실질임금률의 상승은 이윤율을 저하시킬 수 있다. 앞선 논의는 실질임금이 고정일 때를 전제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질임금률이 일정하다는 전제는 오히려 반사실적(counterfactual) 상황에 해당하는 것이다. 따라서 오키시오정리에서 말하고 있는 대우명제는 “만약 장기적으로 이윤율이 저하한다면, 그것은 실질임금률의 상승 때문일 수밖에 없다”이다.

그렇다면 실질임금률이 어떠한 동태적 관계를 가지고 변화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Laibman(1996)은 실질임금률의 변화율이 노동수요의 변화율과 노동공급의 변화율 간의 차이와 상관관계를 가진다고 보았다. 즉 이들의 부호는 같다. 노동수요변화율이 노동공급변화율 보다 크면 실질임금률이 상승하는 구조인 것이다. 한편, 자본의 유기적 구성을 증가시키는 편향적 기술변화는 노동수요를 줄일 것이므로 실질임금률의 변화율은 마이너스가 될 것이다. 즉 기술이 진보가 진행되는데 실질임금률이 일정하다는 가정은 그 자체로 반사실적 상황인 것이다.

 

오키시오정리에 관한
가지 상이한 기준

Roemer(1981), Foley(1986), Laibman(1997)은 실질임금률이 일정하다는 가정을 임금몫이 일정하다는 가정으로 대체하여, 비용절감적인 기술의 도입이 필연적으로 이윤율을 경향적으로 저하시킨다는 것을 논증하였다. 이러한 결과를 단일재 모형을 기초로 표현하면 <표1>처럼 나타낼 수 있다.

K, W, P, Y는 각각 실물자본스톡, 임금, 이윤, 순생산물이다. 단 여기서 K/Y는 마르크스가 말한 자본의 유기적 구성과 동일한 것이 아니라, 대리변수이다. ‘OT’는 오키시오 정리(Okishio Theorem; OT)의 상황을 나타내며, ‘Roemer 등’은 가정을 수정한 Roemer(1981), Foley(1986), Laibman(1997)에서의 상황을 나타낸다.

다시 말해서 실질임금일정을 가정하는 오키시오의 기준과 임금몫일정을 가정하는 Roemer(1981), Foley(1986), Laibman(1997)의 기준, 두 가지 기준이 존재하는 것이다. Foley(1986)는 기술변화가 이윤율을 하락할지 아닐지는 선험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고 제기한다. 또한 ‘신해석’의 맥락에서 화폐임금과 “화폐가치”의 곱으로 정의되는 노동력가치가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기준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화폐가치가 일정하다는 주장도 제한적이거나 자의적일 수 있다. 먼저 오키시오학파는 실질임금률이 일정하다는 가정을 “노동자들의 효용수준이 저하하지 않는 한”이라는 것으로 보다 완화한다. 또한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면 화폐임금이 일정할지라도, 화폐가치는 변동하게 된다. 즉, 혁신의 결과로 화폐가치가 감소한다면, 화폐임금이 일정하더라도 노동력가치는 감소할 것이고, 따라서 이윤율은 상승한다.

Laibman(1997)은 이 새로운 조건이 “계급투쟁의 중립성” 조건으로 해석한다. 즉, 기술변화과정에서 계급 간 역관계에 변화가 없다면 임금분배몫도 일정하게 유지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역시 불합리한 측면이 존재한다. 이 문제는 일정한 임금몫과 경쟁적 노동시장의 가정이 양립불가능하다는 데에 있다. 즉, 특정 부문의 임금몫이 다른 부문에 비해 하락한다면, 해당 부문의 노동자들은 불만족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노력수준을 줄이거나 다른 부문으로 옮겨갈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착취율이 하락하고, 이는 자본가의 반대작용을 이끌어낼 것이다.

 

오키시오정리에의
경쟁균형과정 도입

오키시오정리에 대한 또 하나의 비판은 Fine(1982)이다. Fine(1982)는 기술변화를 낳는 과정이 균형의 외부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균형이 결코 달성되지 않는다. 따라서 기술변화의 전후를 비교하는 비교정학분석 자체가 무가치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제기는 오키시오의 마지막 논문(Okishio, 2000)에서도 확인되는 것이다. 오키시오는 시뮬레이션을 통해 특정한 파라미터 값과 초기조건 하에서는 자본간의 경쟁이 이윤을 소멸시킬 수도 있음을 보인다. 그의 시뮬레이션모형의 핵심은, 기술변화가 없는 경우에조차, 자본이동과 노동시장 사이의 상호작용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아래의 시뮬레이션은 전통적인 Nikaido(1985)의 안정성 조건이 만족하는지를 살펴본다. Nikaido의 안정성 조건은 소비재부문의 유기적 구성이 자본재부문의 유기적 구성보다 크다는 것인데, 시뮬레이션 결과 두 부문의 이윤율이 0으로 수렴하는 것으로 보아, 자본의 유기적 구성 간 격차가 해소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부문별 이윤율이 0에 수렴한다는 사실은 Nikaido의 조건이 생산가격의 성립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아래의 시뮬레이션은 동일한 가정 하에서 화폐임금과 실질임금이 수렴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또한 앞서 살펴본 실질임금률의 불변 가정과 화폐임금몫의 불변 가정이 동태적 관계 속에서 서로 수렴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즉 기술변화와 노동시장 간의 상호작용에 경쟁과정이 도입된다면, 오키시오의 분석틀이 일관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오키시오의 결론과
동태적 함의

오키시오정리는 흔히 마르크스의 이윤율저하설을 비판하기 위한 근거로 활용되어왔다. 그러나 이 정리는 반사실적 상황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해야 한다. 실질임금이 일정하다고 가정하는 정태적 상황을 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노동시장과 기술변화의 상호작용을 고려하는 동태적 관계를 도입해야만 한다. 한편, 실질임금률이 일정해야 한다는 반사실적 가정은 임금몫의 불변이라는 수정된 가정과 상충되는데, 서로 상충되는 여러가지 기준들도 역시 동태적 관계를 고려함으로써 해소될 수 있는 것이었다. 류동민(2006)에 따르면, 오키시오의 마지막 논문(Okishio, 2000)은 오키시오정리라고 불리는 그의 초창기 작업을 일부 비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이와 같은 동태적 관계를 고려함으로써 일관적임을 지적한다.

또한 한편으로 여기서 살펴본 오키시오의 연구는 Dumenil-Levy(1993)의 교차이원적 동학(cross-dual dynamics) 개념과 유사하다는 점 또한 발견할 수가 있다. 이러한 점은 오키시오정리가 가정하고 있는 두 가지 제한적인 가정이 오키시오정리가 가지는 의미를 반사실적 명제로 축소시켜버리지만, 또 동시에 경쟁동학을 도입한다는 점에서, Dumenil-Levy(1993)의 교차이원적 동학과 같이 마르크스경제학의 동학적 이론을 구성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함께 읽으면 좋은 논문

「현대자본주의의 동학과 오키시오 정리: 브레너 논쟁을 중심으로」
류동민, 2004, 『마르크스주의 연구』, 1(2), 244-265.

「한국의 잉여가치율 추이: 1993~2010」
유철수, 2012, 『마르크스주의 연구』, 9(4), 134-172.

박알림 리뷰어  allimpp@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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