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문화/예술

[DBpia 2017 올해의 논문 복합학 분야 1위] 최효승‧손영미 조선대 교수

%ec%a1%b0%ec%84%a0%eb%8c%80-%ea%b5%90%ec%88%98%eb%8b%98%eb%93%a4-%ec%82%ac%ec%a7%84
DBpia 2017년 올해의논문 복합학 분야 1위는 최효승‧손영미 조선대학교 교수의 「인공지능과 예술창작 활동의 융복합 사례분석 및 특성 연구입니다. 최효승 교수는 과학과 예술의 동반 성장이 가능하다고 논문에 밝히고 있습니다. 최 교수의 논문과 인터뷰를 만나보세요.

 

DBpia ‘2017 올해의 논문상’ 복합학 분야는 조선대 미술대학 디자인학부의 최효승, 손영미 교수(공저)가 차지했다. 4차 산업혁명의 키워드 중 하나로 꼽히는 인공지능(AI)이 예술창작 활동에 진입한 사례를 정리하고 분석했다

초록

최근 컴퓨터의 발달로 인해 네트워크의 활성화, 정보의 혁명, 빅데이터의 등장, 혁신적인 딥러닝의 기술발전으로 인공지능은 눈부신 성장을 하고 있으며 인공지능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도 급증하고 있다. 테크놀로지와 예술의 융합은 오래전부터 계속되었으나 인공지능처럼 기계가 지능을 가지고 인간 고유의 능력인 창의적인 예술 활동을 직접 하는 경우는 없었으며 단순히 예술의 기계적 장치 수단으로써만 사용되었다.
그러던 것이 최근 인공지능의 영역은 단순한 기계적인 일처리 방식 분야뿐만 아니라 인간 고유의 영역이었던 창의성을 필요로 하는 예술분야까지 침범하였고 더불어 인공지능의 창의성에 대한 논란도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문이라는 각각의 고유한 영역안에서 오랜 기간 형성된 학문간의 장벽을 허물고 인공지능이라는 과학기술과 예술창작 활동을 융복합시켜 과학과 예술의 협력을 통한 동반성장을 도모하고 예술창작 분야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출하였다는 것에 그 의의가 크다 하겠다.
이에 본 연구는 인간의 고유한 능력이자 재능인 창의성이 인공지능 시대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으며 인공지능이 창의성을 요구하는 예술분야에서 어떠한 기술로 개발되었는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또한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현재 상황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한 예술의 특성을 살펴봄으로써 예술발달에 새로운 방향을 마련하는 자료로 활용하고 더불어 미래 인공지능 예술분야의 발전에 기여하는데 연구의 목적이 있다. 연구방법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기술한다.
첫째, 연구의 배경을 바탕으로 필요성과 목적에 대해 설정하고 구체적인 연구방법을 제시한다.
둘째, 인공지능의 정의와 역사에 대해 알아보고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인공지능 핵심기술 딥러닝에 대해 기술한다.
셋째, 인공지능을 활용한 예술분야에서도 특히 인공지능의 기술 개발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문학, 음악, 미술 분야를 선정하여 인공지능과 예술이 융복합 된 사례조사를 통해 인공지능 예술창작 현황에 대해 기술한다.
넷째, 인공지능 예술창작분야의 사례분석을 바탕으로 인공지능의 예술에 따른 표현특성을 도출한다.
그 결과 인공지능이 활용된 예술의 표현특성으로는 기존에 학습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창의성, 미적활동을 통해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유희성, 예술작품 제작과정에서 나타나는 노동의 해결책에 대한 편리성, 단순한 기술적 조작이나 새로운 기계학습의 프로그래밍 변화로 하나의 형태에서 전혀 다른 형태의 작품으로 바꿀 수 있는 가변성이 나타났다.
결론적으로 현재 인공지능의 창의성은 새로운 것을 창조했다기보다는 이미 주어진 데이터의 기계학습을 통하여 기존의 작품을 모사하여 재창조하는 수준이다. 즉 인공지능의 예술창작분야에 있어서 현재까지는 창의성이나 판단력, 직관 등 인간 고유의 영역을 대체할 수는 없으나 인공지능 예술창작의 기술 개발은 앞으로의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는 큰 성과라 할 수 있다.
정보화 기술(IT)시대에서 데이터 기술(DT)시대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시대의 인공지능기술 발달은 서비스산업과 노동가치의 상승으로 우리 삶을 높이는데 일조할 것이며 예술분야에서는 새로운 창작에 대한 영감을 주는 등 창작활동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이에 본 연구는 앞으로 지속적으로 인공지능이 창의성을 요구하는 문화예술분야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목차

Abstract
국문초록
Ⅰ. 서론
Ⅱ. 인공지능
Ⅲ. 인공지능과 예술
Ⅳ. 인공지능 예술의 특성
V. 결론 및 제언
Reference

저자들이 조사한 사례는 다채롭다. 일본에서 2012년 AI가 집필해 신이치 SF문학상 1차 심사를 통과해 화제가 된 소설 《컴퓨터가 소설을 쓰는 날》. 구글의 곡 쓰는 AI ‘마젠타 프로젝트’ 등이 눈길을 끈다. 이들 작품들에서 △창의성 △유희성 △편리성 △가변성이 공통으로 나타난다는 것도 흥미롭다. 저자들은 “과학과 예술의 협력을 통한 동반 성장의 가능성을 보여주고자 했다”며 “인공지능 기술 발전의 범위가 무한한 만큼 가능성 또한 매우 높다”고 전망했다.

올해 3월 나온 이 논문이 예술 창작과 인공지능이 융합돼 나타날 새 영역을 드러내 보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저자들은 “과학과 예술의 협력을 통한 동반 성장의 가능성을 보여주고자 했다”며 “인공지능 기술 발전의 범위가 무한한 만큼 가능성 또한 매우 높다”고 전망했다. 디자인학부에 소속돼 있지만, 저자들은 창의적 인재의 양성이 시급한 만큼 앞으로 이를 위한 교육을 연구하겠다는 다짐도 밝혔다.

<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논문 바로 보기 >>

한국과학예술포럼 저널지 논문 보기 >>

디비피아 페이스북 >>

디비피아 트위터 >>

[DBpia 2017 올해의 논문 예술체육 분야 1위] 나건 홍익대 교수

%eb%82%98%ea%b1%b4-%ed%99%8d%ec%9d%b5%eb%8c%80%ea%b5%90%ec%88%98
DBpia 2017년 올해의논문 예술체육 분야 1위는 나건 홍익대학교 교수의 1인 가구의 소비 패턴을 반영한 외식업 서비스 방향 연구입니다. 나건 교수가 논문을 내놓을 2015년 당시에는 ‘혼밥’이 생소한 개념이었으나 지금은 메가트렌드가 됐습니다. 인간공학 전문가 나건 교수를 만났습니다.


“ ‘혼밥’ 문화는 거역할 수 없는 ‘메가트렌드’ ”

DBpia ‘2017 올해의 논문상’ 예술체육 분야는 나건 홍익대 교수(국제디자인전문대학원)의 ‘1인 가구의 소비 패턴을 반영한 외식업 서비스 방향 연구’가 꼽혔다. 논문을 내놓은 2015년 당시에는 ‘혼밥(혼자 밥 먹기)’이 생소했지만, 이제는 대세다. 그때부터 그는 1인 가구가 어떤 소비 활동을 하는지, 필요한 서비스는 무엇인지를 다뤘다.

초록

본 연구는 급성장하고 있는 한국의 1인가구의 다른 라이프스타일에 따른 외식업 서비스 이용에 관한 연구로, 식생활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요소를 도출하고, 소비자의 소비지출패턴의 변화에 따라 외식 서비스 이용에 대한 차이가 있는지를 실증 분석하고자 하였다. 설문조사와 사용자 인터뷰를 통해 2030 세대의 식생활 라이프에 대한 요인분석 결과 “건강 추구형”, “유행 추구형”, “미각 추구형”, “안전추구형”, “편의 추구형”의 5개 요인이 추출되었고, 소비지출패턴의 유형으로는 “주거비지출 중심형”, “음식숙박지출 중심형”, “교통비지출 중심형”, “다양한 활동 지향형”의 4개의 유형이 도출되었다. 도출된 자료는 통계 처리를 위해 SPSS 22.0v 활용과 측정항목의 타당성 및 신뢰도를 검증을 요인분석 및 신뢰도 분석을 하였다. 요인 분석을 통한 군집 분석으로 외식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용자의 특성을 변수를 사용하여 분류할 수 있었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외식업체 서비스를 분석하고 2030 세대가 이용하는 서비스에 대한 선호도를 설문조사를 통해 “배달과 포장”을 선호함을 추출하고 이는 라이프스타일과 밀접한 관계로 볼 수 있었다. 2030 세대의 서비스 선호도에 따라 식생활 라이프 스타일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 요소와 소비지출패턴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 요소를 결부한 관점으로 외식업 서비스의 동향에 대해 분석하고자 했다.

목차

요약
Abstract
1. 서론
2. 1인 가구의 증가에 의한 환경 변화
3. 소비 주체의 변화에 따른 외식업 서비스 변화
4. 결론
참고문헌

나건 교수의 전문 분야는 인간공학이다. 쉽게 말해 보기 좋고, 쓰기 좋으면서 가격을 합리적으로 맞출 수 있는 방법을 찾는 학문이다. 삶의 환경이 변하면 인간이 사용하는 물건은 어떻게 바뀌어야 할지 연구한다. 이들에게 트렌드(Trend, 경향)는 중요한 주제다.

그런데 ‘트렌드’는 실체가 있긴 한 걸까. 나건 교수는 1960년대 미국 사회학자 에버렛 M. 로저스(Everett Rogers)의 이론을 빌려, 시장은 이노베이터(2.5%)와 얼리어답터(13.5%)가 움직일 때 꿈틀댄다고 설명한다. 이를 유행이라 한다. 유행이 뒤따라오는 이를 움직일 때가 바로 트렌드다. 트렌드 가운데 생명력이 긴 것이 ‘메가트렌드’다. 나건 교수는 그 예로 1인 가구를 꼽는다.

 

학생들에게 직접 보고 듣는 디자인 리서치 요구

“메가트렌드라고 해서 1인 가구를 막연하게 분석하지 않았다. 1인 가구가 어떤 스타일로 소비활동을 하는지 분석했다. 디자이너 학생들이 도록을 살펴보는 데 그치지 않고, 논문과 문헌을 찾고, 물건을 보고, 사람의 생각을 듣는 디자인 리서치를 하도록 했다. 예컨대 통계청 인구 추이가 유지될 시, 미래학자들이 2300년이 되면 인구가 소멸되는 1호 국가가 대한민국이 된다고 하지 않는가.”

1인 가구는 배달을 선호한다. 배달을 편리하게 해주는 애플리케이션이 ‘뜰’ 거라고 봤다. 지금은 수많은 앱이 명멸하고 ‘ㅂ’ 앱이 대세로 굳어졌다. 식당은 혼밥을 배려하는 1인석이 많아졌고, 편의점은 카페처럼 앉을 자리가 늘어났다. 선배가 밥을 사는 문화도 사라졌다. 지금은 실현된 이 모든 것을 논문에 담았다. 혼밥은 이제 분명한 메가트렌드다.

“For every trend that is counter-trend(모든 트렌드에는 반동이 있다)라는 말이 있다. 90%의 유행에는 10%의 반대가 있다. 시소놀이 끝에 어떤 흐름이 메가트렌드가 될지 본다. 그러나 흘러가는 세상의 흐름은 거역할 수 없다.”

<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논문 바로 보기 >>

디지털디자인학 저널지 논문 보기 >>

디비피아 페이스북 >>

디비피아 트위터 >>

‘현실화된 유토피아’란 무엇일까?

SAMSUNG CSC

logofinale요즘 대부분의 뮤지션들이 신규 음반 발매시 프로모션 내 뮤직비디오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뮤지션이 직접 출연하여 립싱크를 하는 기본 포맷의 뮤직비디오부터 노래 가사에 맞추어 새로운 드라마를 펼쳐내는 포맷의 뮤직비디오까지. 뮤직비디오의 유형은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이러한 뮤직비디오가 음반 프로모션의 항목으로 들어선 것은 1990년대 초반으로 변진섭, 서태지와 아이들이 제작을 시도하며 점차 활성화되었다. 음악의 다양성에 따라 여러 형태를 보이고 있는 뮤직비디오는 다른 영상 콘텐츠에 비해 시적인 영상 표현을 많이 담고 있다. 이는 뮤직비디오가 전하려는 것이 영상보다 음악에 우선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뮤직비디오는 음악적 요소를 직접적으로 감각시키는 한편, 음악적 요소와 긴밀하게 조응되는 회화적 요소, 곧 시각적 대상물을 객관적․구체적으로 전달한다고 할 수 있다.”(166쪽) 결국 “뮤직비디오는 음악화된 공간 이미지, 곧 현실과는 질적으로 다르게 감각되는 공간 이미지를 구현해냄으로써 수용자에게 특별한 체험을 안기는 영상 콘텐츠인 것이다.”(166쪽)

이러한 관점에서 건국대학교 김태룡 박사와 안숭범 교수는 뮤직비디오가 만들어 낸 공간 이미지의 함의를 분석했다. 뮤직비디오 속 공간 이미지를 유형화하고 의미를 검출하기 위해 미셸 푸코(Michel Foucault)가 제시한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s)’ 개념을 활용, 뮤직비디오에 구현된 헤테로토피아의 유형과 그 의미(『씨네포럼』 23, 2016)를 발표했다. 헤테로토피아는 현실화된 유토피아로 이야기되며, 현실에 존재하는 장소이면서 동시에 모든 장소들의 바깥에 있는 곳을 의미한다.

“미셸 푸코는 1966년 12월에 라디오 채널 프랑스-퀼튀르의 프로그램인 ‘프랑스 문화’에 출연하여 ‘유토피아적 몸’과 ‘헤테로토피아’를 강의하며 최초로 헤테로토피아 개념을 제시하였고, 이후 헤테로토피아 개념은 건축, 디자인, 문학 등 분과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심미적 비평을 위한 개념어로 활용된 바 있다.”(166~167쪽)

음악에 시각적 스펙터클을 얹은 뮤직비디오
공간과 인간의 관계를 보는 헤테로토피아

완벽하고 이상적인 세계이지만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공간인 유토피아 중에 현실화된 유토피아가 존재한다고 말한 푸코는 “우리가 실제로 살아가는 공간들과 혼재되어 있지만 한편으론 절대적으로 다른 장소이며, 모든 장소의 바깥에 있는 장소”(168쪽), “또한 존재 자체로 자기 이외의 모든 장소들에 대항하며 이의를 제기하는 기능”(168쪽)을 하는 공간을 헤테로토피아라 명명했다. 즉, 헤테로토피아는 공간과 인간의 상관관계 속에서 변화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묘지 혹은 무덤의 경우 당사자의 종교적 신념에 따라 영원성의 헤테로토피아 혹은 한시적 헤테로토피아로 나뉠 수 있다. 그리고 박물관, 도서관 등은 영원성의 헤테로토피아와 관련되어있다고 볼 수 있고, 휴양촌 등은 한시적인 헤테로토피아 혹은 축제의 헤테로토피아로 분류될 수 있다. 이 외에도 푸코는 현실 공간을 더 환상적인 공간으로 비약시키는 곳을 환상의 헤테로토피아(푸코는 매음굴을 예로 들었다)로 명했고, 이와 반대로 현실을 무질서한 공간으로 격하시키는 곳을 보정의 헤테로토피아로 명했다.

“앞서 말한 개별 공간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은, 당대 사회의 역사적・문화적・종교적 조건 속에서 혹은 개인의 내밀한 경험과 의식적 지향 속에서 질적으로 다르게 의미 지워진 장소라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헤테로토피아는 물리적 좌표를 갖는 공간이지만, 인간의 내면에 전혀 다른 차원의 긴장을 견인하는 장소라고 말할 수 있겠다.”(170쪽)

뮤직비디오 속 공간도 이와 유사한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시대와 국적, 종교에 따라 시청자 각각에게 서로 다른 헤테로토피아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뮤직비디오 속 공간은 음악과 시너지를 이루며 이질감과 환상성을 증폭시키는 체험까지 선사한다. 즉, 청각적 소비물인 음악이 시각적 스펙터클에 얹어져 다감각 스토리텔링이 되는 것이다. 음악을 보조하는 프로모션 툴에서 독립적 콘텐츠가 된 뮤직비디오는 계속 진화하고 있다.

보정의 헤테로토피아가 된 학교
Another Brick In The Wall 2

동시대에 큰 충격을 안긴 핑크 플로이드의 <Another Brick In The Wall2>는 앨범이 2,300만 장 이상 팔리고 오랫동안 회자가 된 음악이다.

“뮤직비디오는 고압적인 선생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은 어린 학생의 환상과 현실이 교차되는 진행을 보인다. 영상 분량의 대부분은 학생의 환상인 셈인데, 공장처럼 규격화된 격자의 공간 속에 도열한 학생들이 훈육의 결과로 발을 맞춰 걸어가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리고는 같은 표정의 가면을 한 학생들이 기계 선반 위에서 굴러떨어지며 고깃덩어리로 분쇄되는 장면은 그 자체로 시각적 충격이 된다. 이후 장면이 전환되어 학생들은 교실 내 모든 기물을 파손하고 학교를 불태워버리지만는 이 모든 장면은 사실 영상 맨 앞에 등장했던 학생의 환상으로 밝혀진다.”(173쪽)

뮤직비디오 속에서 공장으로 착시되는 학교는 규격화되어 있고 폐쇄된 공간으로 등장한다. 이곳은 선생의 규율이 강요되고 어떠한 저항도 불가능한 지배 공간으로 표현되어, 위에서 말한 푸코의 보정의 헤테로토피아로 볼 수 있다. 학교라는 닫힌 세계를 부정적 이미지로 제시하여 1960~70년대 영국 사회를 날카롭게 이야기하려던 음악의 메시지를 강화한 것이라 볼 수 있다.

Another brick in the wall 뮤직비디오의 한장면 (출처: 네이버)
영화관, 묘지, 외딴 집에서 중첩된 헤테로토피아
Thriller

마이클 잭슨의 <Thriller> 뮤직비디오는 1999년 MTV에서 선정한 100대 뮤직비디오 중 1위를 차지한 작품으로, 이 뮤직비디오는 두 가지 헤테로토피아를 중첩시킨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두 젊은 연인이 산길에서 데이트를 하던 중 남자(마이클 잭슨)가 보름달 아래에서 갑자기 늑대인간으로 변해 버린다. 하지만 이것은 곧 영화관 스크린 속 공포영화의 한 장면으로 밝혀지고, 함께 영화를 관람하던 남자와 그의 애인은 영화를 보던 중 극장을 나와 집으로 향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두 연인은 묘지를 지나게 되는데 그때 무덤을 열고 나온 좀비들의 습격을 받게 된다. 이후 애인이 좀비의 모습으로 변한 것을 목격한 여자는 외딴 집으로 몸을 숨긴다. 하지만 그곳까지 따라온 남자와 좀비들은 여자를 공격하려 한다. 그때 여자가 소스라치게 놀라자 그의 애인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지금까지의 상황이 모두 환상이었음을 알려준다. 안도한 여자는 다시 애인과 함께 외딴 집을 나서는데, 그때 남자는 카메라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려 다시 늑대인간의 눈을 번뜩이며 현실과 환상 사이의 혼란을 초래한다.”(174~175쪽)

영화관, 묘지, 외딴 집 순으로 공간이 등장하는데, 각 공간을 기준으로 환상/현실, 삶/죽음, 에로스/타나토스라는 이항대립적 요소가 충돌한다. 먼저 묘지는 푸코가 시간의 분할과 관련된 헤테로토피아로 설명한 곳으로 삶/죽음, 인간/인간이 아닌 것, 기독교 신앙에 기반을 둔 부활/죽음에 대한 공포 사이의 헤테로토피아가 발화된다. 그리고 영화관 및 외딴 집에서는 심야 데이트를 하는 연인 관계에 대한 헤테로토피아를 발견할 수 있다. 은밀한 공간을 두고 남녀 사이에 벌어질 수 있는 긴장과 위기를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에로스/타나토스로 볼 수 있으며 위기의 헤테로토피아, 생물학적 헤테로토피아로 구분할 수 있다.

thriller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출처: 네이버)
환상과 위기의 헤테로토피아
Justify My Love & Toxic

마돈나의 <Justify My Love>와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Toxic>은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가사와 뮤직비디오로 유명하다. <Justify My Love>는 MTV에서 방영금지를 내렸고, <Toxic>은 심야시간에만 방송이 허락된 뮤직비디오이다. “이들 뮤직비디오의 ‘화제성’, ‘선정성’의 심층엔 현대사회에서 충돌하고 있는 ‘금기/위반에의 욕망’에 관한 보편적 상상력이 개입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178쪽) <Justify My Love> 뮤직비디오에서 “마돈나는 복도에서 처음 본 남자를 유혹한 후, 빈 호텔방으로 들어간다. 상의를 벗은 남자의 목에 걸린 복수의 십자가 목걸이는 지금 이 상황이 금기에 접근하고 있음을 환기시킨다. 그런데 그 순간 삽입되는 쇼트에서 마돈나는 또 다른 남자와 스킨십을 나누고 방금 전 유혹당한 남자가 그 광경을 지켜본다.”(178~179쪽) 이 뮤직비디오에서는 낯선 이성과의 만남, 집단 혼음, 동성애까지 상상이 펼쳐지는데, 이것을 시선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표현한다.

사회 윤리적으로 규제되고 있는 금기들이 깨지는 환상을 보여주는 위기의 헤테로토피아를 묘사한 것이다. 그리고 푸코가 매음굴로 예를 든 환상의 헤테로토피아 유형으로도 볼 수 있다. <Toxic>에서도 이와 유사한 헤테로토피아를 볼 수 있다. 호텔방, 비행기, 오토바이 등 상식을 벗어나는 이질적인 공간에서 금기를 깨는 행위는 오히려 금기를 환기시키는 역할을 하며 금기를 대면한다. 이 모든 공간이 비현실적 공간으로 ‘위기의 헤테로토피아’이면서 자신을 향해서만 ‘열려있는 모습을 한 헤테로토피아’라고 할 수 있다.

음악을 좀 더 효과적으로 표현하려는 뮤직비디오 본연의 목적을 넘어서, 이제는 뮤직비디오 그 자체를 하나의 별도 콘텐츠로 보아야 한다. 영화 같은 뮤직비디오로 인정받기도 하고, 음악보다 더 유명한 콘텐츠가 되어 글로벌 순위 차트를 아우를 수도 있고, 매우 실험적인 시도로 여러 분석 대상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에서도 헤테로토피아 개념을 활용하여 뮤직비디오 속 공간을 새로운 시선으로 볼 수 있었다. 뮤직비디오가 제작될 당시의 그 공간과, 분석을 하는 지금 시점의 그 공간은 엄밀히 같은 공간이지만 다른 공간이라 확실히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이 공간 즉, 헤테로토피아의 변화를 보며 시대상을 추론해볼 수 있을 것이며, 이후의 시대에 맞춰 새로운 헤테로토피아를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이지호 리뷰어  hwscjj@hanmail.net

<저작권자 © 리뷰 아카이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팩션은 사극아니다?

leejunik

logofinale

영화, 드라마 분야의 한 장르인 사극은 역사물, 시대극 등과 혼용되어 사용되고 있고, 퓨전 사극, 팩션 사극 등의 용어로 변용까지 되고 있다. 사전에서는 사극을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에서 제재를 빌려 온 장르”로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사극은 연구자, 시대에 따라 수많은 스펙트럼이 생길 수 있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를 좀 더 명확하게 규정하려는 시도가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수잔 헤이워드에 따르면 “장르는 단지 영화의 형태만이 아니고, 관객의 기대와 가설에도 관련된다. 개별 장르는 고정화된 양상으로 변함없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변화의 과정을 겪으면서 변형된다. 영화의 역사를 이해할 때 시대별로 다른 이해가 요구되는 것처럼 장르의 역사 또한 시대별로 차별화된 이해가 동반되어야 한다”(289~290쪽)
가변적인 상호 텍스트적 특성을 가진 사극이란 용어 및 하위 장르에 대한 합의를 위해 황영미 숙명여대 교수는한국 사극영화 장르의 유형 연구: 이준익 사극 영화를 중심으로(『영화연구』 68, 2016)에서 이준익 감독의 사극 5편 <황산벌>, <평양성>, <왕의 남자>,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사도>를 통해 그 유형을 구분하고 사극의 여러 혼란을 학술적 관점에서 정리했다.

과거의 시간을 다루는
사극과 시대극의 구분

사극을 정의할 때 가장 중요한 쟁점은 사극과 시대극을 어느 정도의 과거를 다룬 것으로 구분할 것인가이다. 주창윤은 이전 두 세대를 기준으로 역사 드라마를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시대극을 역사 드라마의 범주에 포함시키고자 했다. 하지만 본 연구의 저자는 “시대극은 근대 이전까지를 시대 배경으로 삼는 사극과는 시대 구분에서 변별되어야 하는 것으로 보인다”(293쪽)고 주장했다. 영어로 사극은 Costume Film으로, 서양에서는 사극을 역사적 장관과 볼거리로 특징지어지는 장르로 규정했다. 이러한 맥락으로 사극을 온전하게 구분할 순 없지만 이는 사극을 연구할 때 주의 깊게 살펴야 하는 특징이다. 수잔 헤이워드는 “시대극은 Costume Film과는 다른 보다 완만한 용어라고 할 수 있는데, Costume Film보다 현대물을 지칭할 때 사용된다. 그러나 이 현대물의 의상 약호와 세팅은 확연히 다른 시대를 배경으로 해야 한다고 규정하였다”(293쪽) 이 말에 따르면 시대극은 현대와는 다른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시기 상으로는 현대에 가까운 시기를 다루는 장르로 볼 수 있다. 여러 근거를 통해 대한민국에서 사극과 시대극은 일제강점기, 한일합병 즉, 근대를 기준으로 구분하는 것이 이 두 장르를 명확하게 나눌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출처: 한국 사극영화 장르의 유형 연구: 이준익 사극 영화를 중심으로, 294쪽)

역사성과 허구성의 정도로 구분할 수 있는
정통, 팩션, 퓨전 

사극은 역사와 극양식의 차이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정통 사극, 팩션 사극, 퓨전 사극 등 다양한 하위 장르를 발생시킨다. 강승묵은 “역사영화는 글로 기록된 공적 역사가 연결하지 못했던 역사의 유의미한 고리를 영상 재현 장치를 통해 새롭게 접목시킴으로서 공적 역사를 보완 또는 대체할 수 있는 대안적인 역사 쓰기”(294쪽)라 말했다. 더불어 “역사극은 역사와 극양식이 그려내고 있는 이질적인 의미의 파장이 겹치고 닿아있는 지점에서 만들어지는 예술장르”(294~295쪽)라며 “작가가 현실이라고 정의하고 범주화한 동시대의 환경 내에서 필요로 하는 과거의 사실을 박췌하고 주목하고 이를 연관성을 가진 극 장르로 변모시킬 수 있을 때- 물론 허구성의 창작 원리에 의해 예술적 형상화가 이루어졌을 때- 비로소 역사극이 탄생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는 셈이다.”(295쪽)라 했다. 즉, 이야기를 하기 위한 상상력으로서의 허구성과 사실의 인과관계의 조화는 사극의 태생적 특징이라 볼 수 있다.
사극을 언급할 때 함께 고려할 수밖에 없는 대상은 바로 팩션(Faction) 장르이다. 픽션(Fiction)과 팩트(Fact)의 합성어인 팩션은 유행어처럼 시작된 표현이지만, 이제는 하나의 장르 표현으로 자리잡았다. 우리말로는 각색실화로 표현되는 이 단어는 실화이자 허구라는 모순된 표현이지만, “이러한 신조어의 탄생은 사실은 진실이고, 허구는 거짓이라는 근대 사실주의 문법의 파괴를 의미한다.”(296쪽) 결국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한 영화라 볼 수 있는 팩션 영화는 팩션 사극도 포함한다. 그리고 역사적 사실과 허구적 플롯이 조화롭게 섞인 사극에서 팩션과 정통은 역사성의 경도로 구분될 수 있다.
팩션 사극은 간혹 퓨전이란 표현과 혼용되어 사용되고 있어, 퓨전 사극이라고도 불린다. 하지만 이는 엄밀히 다른 장르로 본 연구의 저자는 이 구분에 대해 정확히 논증하고자 했다. 본고의 연구자는 “퓨전 사극은 역사적 사실과는 상관없이 텍스트 내 시대배경만을 과거로 삼는 것으로 볼 수 있고, 이러한 점에서 외국의 코스튬 필름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299쪽)라며 퓨전과 팩션의 구분을 명확히 했다. 여기서 코스튬 필름은 역사적 장관과 볼거리로 특징지어지는 장르로 과거의 특정 사건보다는 시대와 일치하는 의상이라는 관습을 통해 역사상의 한 시기를 지칭하는 정도의 시대적 특징을 보이는 것이다. 이를 기반으로 퓨전 사극 역시 역사적 배경 혹은 인물을 빌려 창의적 스토리의 극을 제작, 현대적 요소나 판타지 요소를 융합시킨 것이 특징이다. 특히, 정통 사극과 달리 시대적 사건과 유명한 인물들을 제외하고 유명하지 않은 인물이나 민중 등 대중들에게 소외된 소재를 주제로 잡는 것이 특징이다.
마지막으로 정통 사극은 “정통 사극은 역사적 사실을 사료 등을 통해 객관적으로 제작하는 것을 뜻하며, 정사(正史)의 인물이나 내용을 서사의 기본으로 가져오는 것을 일컫는다”(301쪽) 주창윤은 “역사드라마가 역사를 서술하는 방식에 따라서 네 가지 유형의 하위 장르를 분류했다. 첫째, 기록적 역사서술방식은 역사적 자료를 일차적으로 사용하면서 작가가 역사가와 동일한 사건을 공유하는 것이다. 둘째, 역사-개연적 서술방식은 역사적 자료가 이야기의 중심으로 활용되지만, 작가의 역사적 해석(개연성)이 지배적으로 활용된다. 셋째, 상징적 역사서술방식은 역사적 재료보다 작가의 허구적 상상력이 우세하는 경우다. 정사의 기록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작가가 역사적 맥락을 배경으로 상상력을 활용한다. 넷째, 허구적 역사서술방식은 역사적 사건과 관계없이 역사를 배경으로만 사용했을뿐 이야기는 완전히 허구인 경우다.”(300쪽)고 구분했다. 그리고 이러한 구분을 두고 본고의 연구자는 첫째 유형은 정통 사극, 둘째 유형은 사실적 팩션 사극, 셋째 유형은 해석적 팩션 사극, 그리고 넷째 유형은 퓨전 사극이라 명명했다.

(출처: 한국 사극영화 장르의 유형 연구: 이준익 사극 영화를 중심으로, 302쪽)

이준익 감독의 정통 사극
사도

<왕의 남자>, <사도>, <동주> 그리고 6월 28일 개봉한 <박열>까지. 역사 속 인물을 중심으로 사극을 꾸준히 만들어 온 이준익 감독은 오래전부터 사극에 대한 남다른 시도로 다양한 영화를 선보였다. 이준익 감독의 사극 5편을 통해 연구자가 구분한 네 가지 사극의 하위 장르를 확인할 수 있다.

영화 사도 스틸 (출처: 네이버 영화)

우선, 이준익 감독의 <사도>는 조선왕조실록에 있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사도세자와 영조를 재조명했다. <사도>는 영조와 사도세자의 캐릭터를 부각시키며 임오화변을 전개시켰고, 그 원인을 사료를 바탕으로 전개했다. <사도>는 임오화변의 이유, 결과 등 역사적 사실로 남겨져 있는 사건의 정황과 연대기들은 모두 왜곡하지 않으며 스토리를 전개했다. 그리고 사도세자와 영조의 관계 등 심리상태와 감정 같은 역사적 사실로 기록되지 않아 알 수 없는 부분은 픽션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이처럼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지 않으면서도 역사적 사건을 살아있는 인물로 재현한 <사도>가 정통 사극의 특성을 모두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이준익 감독의 사실적 팩션 사극
황산벌, 평양성

이준익 감독은 삼국시대의 역사를 바탕으로 <황산벌>과 <평양성>을 만들었다. 이 두 편은 모두 “기존의 역사서술과 경쟁하면서 기존의 역사가 제시하는 가치에 도전하고 있다.”(304쪽) 또한 “더 나아가 대안의 역사(counter history)를 제시하고 있다.”(304쪽)고도 볼 수 있다. 2편 모두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면서 그 사이사이에 있는 빈틈을 영화적으로 메워 재해석하고 있는 사실적 팩션 사극이라 볼 수 있다. <황산벌>에서는 계백과 김유신의 대립으로 지배층의 모습을 풍자하기도 하며, <평양성>에서는 백제군 가운데 유일한 생존자인 ‘거시기’의 존재로 역사를 아래로부터 다시 쓸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결국 팩션 사극은 새로운 역사쓰기의 방법으로도 볼 수 있으며, 역사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 현재의 접점에서 역사가 전달하는 새로운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준익 감독의 해석적 팩션 사극
왕의 남자,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해석적 팩션 사극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는 사실적 팩션 사극과 같지만, 역사적 관점을 세우기보다는 특정 인물이나 사건만을 부각시켜 그것을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새로운 의미를 제시한 장르이다. 즉, “해석적 팩션 사극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되, 이를 극적으로 재해석하여 새로운 창조물로 재현하는 특성을 보인다.”(307쪽)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는 연산군일기 중 “공길 이라는 광대가 왕에게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 임금이 임금답지 않고, 신하가 신하답지 않으니 비록 곡식이 있은 들, 먹을 수가 있으랴’라는 말을하였다가 참형을 당했다(60권 22장)”(305쪽)란 기록에서 시작된 영화이다. 이 기록에 더해진 상상들로 완성된 <왕의 남자>는 역사적 기록을 바탕으로 새로운 창조물을 만들어 낸 해석적 팩션 사극이다.
다음으로 영화 <구름을 버서난 달처럼>은 기축옥사와 임진왜란 및 이몽학의 난 등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였지만, 시간적 재구성을 통해 극적 효과를 증폭시킨 해석적 팩션 사극이다. 결국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해석가감, 상상력의 정도에 따라 해석적, 사실적 팩션 사극으로 구분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이준익 감독의 사극영화 5편은 한국 사극영화가 보여주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니고 사극 하위 장르의 특성까지 보여 주고 있다. 역사의 해석과 상상력의 정도에 따라 구분될 수 있는 사극의 다양한 장르는 개인의 기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애매함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연구는 사극이 가진 허구성과 역사성의 조화점에 대한 중요성을 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며, 지표에 대한 필요성을 인지시켜주고 있다. 특히, 장르에 대한 연구는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후 어떤 혼란과 새로운 장르의 탄생이 거듭될지 기대가 된다.

이지호 리뷰어  hwscjj@hanmail.net

<저작권자 © 리뷰 아카이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멀티플렉스가 뜨면 도시는 변화한다

multi2_1

logofinale대한민국 전체 극장 스크린 수의 97.9%를 넘어선 3대 멀티플렉스 극장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가 최근 봉준호 감독의 신작 <옥자> 상영을 거부하면서 멀티플렉스 극장의 의미와 영향력에 갑론을박이 시작되었다. 한 극장에서 다양한 영화를 보여준다는 취지로 출발한 멀티플렉스는 국내 영화산업의 양적 성장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지만, 스크린 독과점 및 획일화된 문화 소비 등 영화시장의 구조적 폐단을 악화시켰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3대 멀티플렉스의 스크린 점유율은 2013년 90%에서 2015년 92.2%, 2016년 97.9% 으로 매년 확대되어 이제 멀티플렉스가 아닌 극장은 찾기 힘들 정도가 됐다.

많은 연구자들은 이러한 멀티플렉스의 급격한 확대가 소비공간의 활성화, 도심 공동화 현상 등 도시 변화로 이어지는 것에 대한 다양한 연구를 오래전부터 진행해왔다. 서울대학교 강은기 박사는 극장시설을 통해서 본 원도심 상징공간 재생과 장소성의 의미(『씨네포럼』, 24, 2016)에서 영화산업과 극장의 이해를 도시구조의 변화 관점에서 연구하였고, 나아가 영화관과 도시재생 방법에 관한 연구를 접목시키는 시도를 하였다.

 

도시의 구조를 바꾼 주체이자
도시의 변화를 반영한 주체인 멀티플렉스

대한민국의 극장은 60~70년대 도시화와 산업화에 따른 도시의 문화 시설로 생긴 대형극장을 중심으로 발달하기 시작했다. 이때는 극장당 스크린이 1개, 좌석은 1,000석 이상인 대형극장이 중심이었으나, 이후 TV 보급으로 대형극장은 감소하며 소규모 극장이 출현하게 되었다. 그리고 70년대에는 농촌인구의 감소로 읍면소재의 극장은 사라지고 대도시 극장들만 살아남게 되었다. 도시와 산업의 변화에 따라 극장의 형태, 규모가 변화하면서 80~90년대에는 영화법, 공연법 개정과 영화 제작 및 수입의 개방을 통해 더 큰 변화가 생겼다. 그리고 94~99년에는 대다수의 극장들이 폐업하고 멀티플렉스로 규모를 키우게 된다. 이러한 멀티플렉스 극장으로의 전환은 전국 도시의 경관을 바꾸어 놓았다. one-step-entertainment란 기준을 가진 멀티플렉스가 도시 중심부가 아닌 주거 밀집 지역인 부심, 교외, 신도심으로 입지를 잡았기 때문이다.
“멀티플렉스는 도시의 부분이 아닌 완성된 도시 개념을 한 건물 안에 집어 넣었다”(305쪽) 이러한 멀티플렉스는 파리의 아케이드 개념의 후손이었으며, 파리의 아케이드로 시작된 산책하는 문화, 소비공간의 재창조는 대한민국의 멀티플렉스에서도 이루어졌다. 그리고 자본주의 도시에 소비의 본질을 드러내는 공간의 역할도 제공했다. 결국 “멀티플렉스로의 전환은 기존 도시조직과 그 속의 기억적 가치에 대해 도시가 배타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영향력을 준 것이다.”(306쪽)

 

장소성, 상징공간의 해체로 이어진
멀티플렉스의 개발

도시 중심부를 벗어나 신도심으로 입지를 잡게 된 멀티플렉스는 원도심의 기능을 함께 이끌어왔고, 이로 인해 원도심의 붕괴를 가속화 시켰다. 그리고 정부는 원도심의 기능을 회복하고자 재개발 등을 시도했으나, 결국 이것도 장소성의 상실로 이어졌다. 장소성은 환경과 인간의 관계를 기준으로 살핀 공간 개념이다. 이것이 상실된 것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공유하는 기억과 의미를 가지고 있던 장소의 훼손에 의한 장소의 상실을 뜻한다”(308쪽) “장소성을 상실한 공간은 상징적 공간을 유휴공간으로 만들게 되고 집단적 기억이 존재할 수 있는 동력을 잃게 된다.”(308쪽) 이러한 무 장소성은 유동인구의 감소와 원도심에 대한 투자 감소, 노후화로 이어지면서 도시의 유령화를 초래했다. 이뿐만 아니라 멀티플렉스와 같은 거대 개발은 상징공간에도 영향을 끼쳤다. 집단적 기억에 의한 상징공간은 다양한 활동이 일어나고, 그 활동이 장소의 의미를 갖고 건축적 요소와 어우러졌을 때 발생되는 장소성이 그 도시를 대표하는 이미지들로 나타나게 되면 그곳이 도시의 상징공간이 되는 개념이다. 결국 무 장소성은 상징공간의 해체로도 이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개념을 대한민국의 사례로 적용해 볼 수 있다. 현재 CGV 피카디리가 된 피카디리 영화관은 장소성이 사라진 대표적 공간이다. 원도심의 영화관이 멀티플렉스로 전환되면서 규모를 확장하고 획일화된 프로그램을 끌어들인 것이다. 결국 영화 <접속>에서 전도연이 서 있던 피카디리 영화관 앞의 광장이 가진 장소성은 이제 해체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원도심 극장의 멀티플렉스 전환 시도는 이외에도 다양하다. 스카라극장, 화양극장, 단성사 등 지금은 사라진 극장들 대부분이 멀티플렉스 전환과 현상 유지 사이의 노력을 거쳤지만 결국은 아예 사라진 케이스이다. “대부분의 사라지거나 용도 변경된 영화관들은 원도심에 위치해 있다. 멀티플렉스의 도심 유입과 함께 주변 시설들이 사라지거나 멀티플렉스에 흡수되어 대기업 위주의 상업 공간만 남게 되는 도시의 획일화는 매력 없는 도시를 만들게 된다. 획일화와 무 장소성은 같이 간다.”(311쪽)

영화 접속 중 피카디리 극장 씬 (출처: 네이버)
도심의 재생을 이끌 수 있는
멀티플렉스의 영향력

자본과 인구의 이동에 수반되기에 아주 막을 수 없는 멀티플렉스의 개발이지만, 이 안에서도 도시공간의 기억과 상징적 의미를 유지하면서 시대적 변화를 따르는 방법에 대한 연구가 있었다. 도시의 정신적 가치를 지닐 수 있는 상징건물의 형태가 유지되면 건물의 유형이 사람들의 삶의 방식과 관련을 맺고 거기서 불변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한 건물이 인간 삶의 집합적 행위 양식을 시기에 따라 적절히 수용할 수 있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의미 또한 포함된다.”(312쪽)

멀티플렉스 도입이 대한민국보다 좀 더 빨랐던 국가에서는 관련한 법규정으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했다. 프랑스는 멀티플렉스 신설 조건을 다수 두어 원도심의 쇠퇴를 막고자 했다. 그리고 프랑스는 1988년에 폐관한 룩소 극장을 다시 활성화시켜 원도심 재생의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 외에도 나라별로 멀티플렉스 관련 법은 도시계획법 혹은 지방법으로 규정되어 진행되고 있다. 결국 멀티플렉스 개발은 영화산업을 넘어 지역 간 불균형, 국토 개발과 도시계획, 도시 환경 보존 문제 등을 아울러야 하는 도시산업인 것이다.

최근 제주 구도심 재생의 이슈가 된 제주 극장은 1978년 폐관되었지만 제주의 근현대사가 담긴 상징공간으로서 그 가치가 다시 검토되고 있다. 극장 자체의 역할을 되살려 원도심형 멀티플렉스로 재생할 것인지, 새로운 용도로의 전환이 필요한 것인지는 지역 상황에 따라 검토될 것이다. “인간 삶의 집합적 행위 양식을 시기에 따라 적절히 수용할 수 있는 도시적 건축이 장소성을 가진 상징공간으로서 도시적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316쪽)

영화를 소비하는 방법의 획일화, 예술로서의 영화의 다양성 하락 등 영화산업의 측면에서 논의되어온 멀티플렉스 극장은 도시계획, 도시건축의 측면에서 새로운 차원의 개념이다. 이처럼 대부분의 산업들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쏠림 현상, 자본에 따른 불균형 등으로 논의되는 개념들은 우리 도시 전반으로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결국 이는 우리 사회의 건강함을 위해 함께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이다.

이지호 리뷰어  hwscjj@hanmail.net

<저작권자 © 리뷰 아카이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페미니즘은 폐허에서 다시 피어난다

mass2_1

logofinale2010년대 이후 한국 담론장에서 유행처럼 번져온 키워드는 바로 재난, 재앙, 파국, 천재지변, 폐허 등으로 이어지는 종말론적 사건들을 암시하는 심상들이다. 어쩌면 이러한 상황은 후쿠야마가 역사의 종언, 자유민주주의적 자본주의의 영구적 승리를 선언한 이후로 예고되어 있었을 것이다. 자본주의와는 다른 세계, 다른 질서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표지하는 일말의 가능성이 비치지 않을 때, 가능한 것으로 현상하는 정치는 단독적이고 일회적이며 반성 불가능한, 은총처럼 개시되는 사건의 정치학, 혹은 메시아주의이고, 그 반대급부에서 나타나는 것은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심상들에 거리를 두면서도 이와 관련된 유비들을 체현하고 있는임옥희의 「재난 이후, 추락의 재의미화: 페미니즘은 어디로」(『여성학연구』, 25,  2015; 이 논문은 후에 저자의 저작 『젠더 감정 정치』(2016)의 부분으로 묶여 나왔다)은 흥미롭게도 재난 이후의 젠더정의와 페미니즘정치의 가능성을 사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헌데 어째서 저자는 재난과 페미니즘을 연결하고 있는 것일까?

우선 그는 2014년 4월 16일의 세월호 사태로부터 한국사회의 “미래가 가라앉고 있는 듯한 묵시록적인 비전”을 보게 된다고 말하며, 이를 1997년의 IMF, 2008년의 미국발 금융위기와 병치한다. 그는 어떤 기대와 희망도 갖기 힘든 조건이 편재할 때, 파국의 상상력이 도처에 함께 편재하게 된다고 말하며, <지구를 지켜라>에서 등장하는 편집증에 시달리는 주인공, 인간사냥꾼들로부터 달아나며 방랑하는 「더 로드」 문화의 영역에서 발견되는 사례들을 열거한다. 그런 한편 저자는 재난이 신의 심판으로 간주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초래한 재앙” 또한 그러한 천재지변으로 여겨짐으로써 재난의 효과는 개인이 감내해야할 책임이 되며, 재난의 일상화와 동시에 비극은 과잉상태와 과소상태에 빠진다고 말한다.

 

종말론 대잔치

이런 상황에선 마르크스주의의 종언에서부터, 페미니즘의 종언 등 갖은 종언의 시리즈들이 들끓는데, 저자는 페미니즘 또한 종말상태에 빠졌다고 진단한다(이 논문이 발행된 2015년 초만 하더라도 영트위터 페미니스트들의 소요에서부터 시작된 페미니즘의 대약진(?)이 가시화되기 이전이라는 점을 떠올려야 한다). 저자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재난이 망각되는 것인데, 그는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것들은 일어나지 않은 사건처럼 취급된다”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법의 제정이 아니라, 오래오래 잊지 말고 기억하고 애도하는 것”이라 말한다.

잠시 다른 접근을 소개하자면, 이와 대조적으로 서동진은 세월호 유가족들을 비롯한 일군의 사회운동단체들이 세월호와 같은 사안을 통해 주체화되는 것과 별개로, 많은 이들이 파국, 재난과 같은 심상과 사건들에 우리가 매료당하는 이유를 캐물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바 있다(「변증법의 낮잠」, 2014). 요컨대 삼풍백화점 이후 한국사회, 와우아파트 이후 한국사회, 성수대교 이후 한국사회라는 식의 문제설정은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현 시점엔 재난을 둘러싼 ‘애도의 공동체’와 ‘애도의 정치학’이 저항의 유의미한 준거로 격상되느냐는 것이다. 그는 제임슨 식 표현으론 역사 감각에 해당될 법한 적대 혹은 규정적 부정성의 상실이, 재난과 파국에 관련된 ‘사건event’들을 소비하도록 하는 기제가 아닌지 질문하며, 세월호를 둘러싼 지식인들의 반응이 역사에 대한 실어증에 가까운 것이 아닌지 추궁한다(한편 이러한 서동진의 문제의식은 주체-객체, 표상, 재현, 개념으로부터 도피하며 존재론의 실체화로 나아가는 사변적 실재론, 객체지향적 존재론 등 그레이엄 하먼, 브루노 라투르를 위시한 신유물론의 흐름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이러한 주장에 비추어볼 때, 본 논문의 저자(임옥희)는 어떤 희망도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시기에 조응하는 의식형태가 바로 “파국의 상상력”이라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파국’과 관련된 담론들을 이데올로기로서 규정하면서도, “일어나지 말아야 할 재난들이 날마다 일어난다”고 말할 때는 ‘파국(재난)’을 일종의 세계에 대한 객관적인 묘사인 것으로 자연화시키는데, 이는 그가 양자 사이에서 동요하고 있거나, 개념상의 혼란에 빠져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듯하다.

이어 저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국은 새로운 꿈을 동시에 품고 있다고 말하며 벤야민의 환등상 개념을 인용한다. 즉 “파국적 상상력의 충격이 마비를 초래한다면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환등상’과 같은 꿈에서 깨어나도록 해준다”는 것이다. 파국적 상상력은 환등상의 고착에 봉사하는 화석화된 신화인 동시에 미래의 창조적 가능성을 암시하는 회복과 치유이며, “폐허에 남겨진 사물들과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바닥모를 추락의 순간은 꿈에서 깨어나는 각성의 순간이기도 하다.” 이때 파국은 종언이면서 시작인 것으로 간주된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마찬가지로 “페미니즘의 종언은 한편으로는 몰락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시작”으로 볼 수 있고, “페미니즘의 다양한 스펙트럼의 편차와 틈새로 인해, 다양한 페미니즘으로 귀환할 것”이라 주장하는데, 이러한 진단 직후 페미니즘의 귀환정도가 아니라 페미니즘의 광풍이 불어닥친 상황을 생각하면 꽤 의미심장하다(허나 메르스갤러리에 이어 메갈리아에서부터 워마드, 혹은 트위터 등지의 성폭력아카이브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전선(?)이 남녀 간의 투명한 대립으로 상상되며, 그로부터 어떤 물질적인 원인과 기제도 찾지 못하는 상황을 보고 있노라면 역시 지식인의 역할은 파국을 논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전선을 철저히 상징화하고 원인을 규명하는 일에 가까울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제 저자는 위와 같은 맥락에서 “추락한 페미니즘”을 둘러싼 논자들(조앤 스콧, 낸시 프레이저 등)을 언급한 뒤, “매춘, 성노동, 성폭력, 성희롱, 강간을 비롯한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대상화하고 물신화하는 것에 대한 페미니즘의 저항은 젠더 정의의 실천이 아니라 남성을 거세하려는 ‘불편하고 편파적인’ 젠더당파성으로 읽”히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음을 지적하고, 이러한 역설을 드러내 보여주는 존 쿳시의 소설 「추락」을 검토한다. 저자에 따르면 가야트리 스피박이 비평한 적 있는 이 소설은, 페미니즘의 정치학에 화두를 던져준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파국의 재의미화
숭고한 결단?

「추락」의 주인공 데이비드 루리는 이혼한 중년 남성이자 전형적인 가부장적 백인 지식인으로서, 커뮤니케이션학과의 부교수로 재직하며 따분하게 학생들을 가리키는 인물이다. 그는 이따금 매춘으로 성욕을 해결하며 사랑을 믿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날 한 여학생과 잠자리를 하게 되고, 그녀가 루리를 신고함으로써 성희롱혐의를 지고 진상규명위원회에 추궁 당하게 된다. 적당히 합의하고 심리 상담을 받으며 사과를 한다면 교수직을 유지할 수 있지만, 그는 외려 무엇이 잘못된 일인지를 되물으며 자신을 변호한다. 그는 자신이 법적으론 유죄임을 인정하지만 그에 반성하지는 않겠다고 말하며, 중년 남성의 사랑을 불가능한 것으로 단죄하는 페미니즘적 윤리에 반발한다. “사랑을 권력관계로 해석하고 나이를 초월할 수 있는 낭만적 사랑과 에로스를 세대간의 거래로 정치화하는 페미니즘적인 해석을 그는 수긍할 수 없”는 것이다. 루리는 몰락을 경험하고 딸 루시가 사는 케이프타운 고지대의 흑인거주지로 건너간다. 루시는 레즈비언이며, 꽃 농사를 지어 팔고 동물복지와 관련된 활동을 하며 살고 있다. 자신이 하는 일을 못마땅하게 보는 아버지에게 루시는 완곡하게 자신의 활동이 사회적으로 위계 지어진 ‘좋은 일’보다 못할 것이 없음을 어필한다. 그녀에게는 “여기에서의 삶이 유일한 삶”이며, 이를 “동물과 함께 나눈다”는 것이다. 그녀에게 인간과 동물의 차이와 분할은 없고, 따라서 더 높은 삶의 기준이 무엇인지에 관해 부녀는 완전히 다른 안목을 가지고 있다. 그러던 중 흑인 강도들이 루시의 집에 칩입하여 루리를 가둬놓고, 루시를 강간한다. 루리는 경찰에 신고해야한다고 말하며 강간범들을 처벌하여 정의를 실현해야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루시는 이를 역사적 부채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으로 받아들이며 신고를 원치 않는다. 루시는 강간으로 인해 생겨난 태아를 지우려하지도 않고, 강간을 사주한 흑인 농장주의 세 번째 부인으로 들어가겠다고 말한다. 루시는 아버지에게 자신이 밑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하겠다고 말하며, 이는 단순히 굴욕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잘라 말한다. 루리는 자신이 저주했던 결혼, 가정, 아이 등이 딸을 통해 되돌아옴을 확인하고, 자신이 끌고 다녔던 수컷강아지를 안락사 시키는데, 이는 모든 소여의 질서로부터 추락한 루리 자신의 상징적 죽음을 암시한다. 모든 체계와 상징으로부터 이탈하여 무nothing의 상태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su_quote]루시는 정상적인 이성애가부장제가 규정했던 것들을 전부 깬 인물이다. 레즈비언이면서 강간으로 임신한 아이를 낳고, 강간을 당했음에도 도무지 그것을 고발하고 정의를 바로잡으려는 짓도 하지 않는다. 그녀는 인간의 품위를 측정하는 화폐인 이성애정상성에 부착된 재생산과 애정가치를 완전히 치욕으로 몰아넣는다. 그녀는 강간을 치욕 속에서 받아들이는 것을 역사의 부채를 변제하는 것으로 간주한다.(19쪽)[/su_quote]

저자는 소설이 그리는 타자로서의 루시는 추락의 의미를 재의미화하는 존재라고 말한다. 이때 “역사의 부채를 여자를 통해서 갚아야”하느냐는 질문이 제기될 수 있지만, “역사의 부채를 상환하기 위한 알레고리적인 인물로 읽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저자에게 루시의 결단은 페미니즘이 다시 시작할 지점을 암시하는 환유적 표지이다. “루시는 부채의 역사를 상속함으로써 미래를 약속하는 자”이며, “그녀는 자신의 의지로 그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자유를 선택”하고, “부채의 청산과 더불어 치욕 속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 루시의 선택”이라는 것이다. 즉 “우리 모두 누군가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주체가 아니라는 점에서 치욕적이라고 한다면 그녀는 순순히 그 점을 인정한다”는 말인데, 이는 상징계를 갖지 않는 동물과 그녀가 맺는 도착적인 수평적 관계에서부터 암시된다. 그녀는 대상과의 모든 거리와 차이를 존재론 속에서 동일한 것으로 만든다. 모든 사물들이 ‘존재하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인간과 동물의 거리는 삭제된다. 언어와 기호, 상징, 재현의 지배를 유발하는 기제를 끝까지 상대하고 그것을 탐색하기를 포기하는 순간, 목가적이고 관조적인 영성주의와 관계하는 동일성이 그 자리를 채운다. 언어가 수반하는 동일성은 지배와 공모하는 현실적인 환상이지만, 반대로 존재론이 수반하는 비위계적 동일성을 택한다고 해서 현실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또한 그조차도 결국 언어를 매개로 사고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나는 저자가 루시의 선택을 지나치게 낭만화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그녀에게 역사의 부채는 전적으로 개인적인 고행(흑인들에 의한 욕보임)을 통해서, 주관적으로만 해소될 뿐, 결코 백인들의 식민통치와 지배의 흔적을 객관적으로 지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역사의 부채를 객관적으로 지양하는 것이라기보다 역사로부터의 도피에 가깝다. 그런 점에서 루시의 실천은 급진성을 담지한 세속화된 시민의 저항윤리가 아닌, 전근대적 소승불교의 구도자와 유사하다. 오히려 모든 상징(여기엔 지배와 위계가 포함되지만, 인권 또한 포함된다)을 거부하는 순간 도래하는 것은 추상적 상징의 위계적 배열 보다 끔찍한 구체적인 인격적 예속(강간을 모의한 농장주에게 보호를 받고자 하는)인 것이다. 이런 견지에선 “자기 자신에게 타자라는 점을 인정함으로써 굴욕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야말로 심리의 영역에서 코페르니쿠스적인 혁명”이기에 상호주관성과 주체의 탈중심성을 강조하는 버틀러식의 테제는 외려 소여의 지배와 공모한다. 차라리 우리는 부르주아적 주체 개념으로부터 달아나는 순간 ‘나’와 대상세계와의 비판적 거리마저도 소멸하게 된다는 역설을 떠올려야하는 것이 아닐까.

글로벌 타자의 몫과
글로벌 젠더정의를 위하여

그러나 저자는 “치욕 속에서 평등해지고 내가 타자를 관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언제나 타자에게 포획된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이 추락의 시학이라고 한다면, 추락 가운데서 ‘마법적으로’ 구원으로 나갈 수 있는 비상이 가능해질 수 있을 것”이라며, 루시의 행위를 긍정하고, 이를 “지구적 젠더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페미니즘의 단초로 출발할 것을 제안한다. 그는 “신자유주의 시대를 사는 여자들은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 비체로 떠”도는 상황을 지적하며, 그 예로 제 1세계 남성들을 욕망하는 우크라이나 여성들, 한국의 남성들을 욕망하는 베트남 여성들, 외국인 신부를 거느린 스위스 남성들이 기거하는 태국의 스위스마을을 예로 든다. 이어 그는 하층 이주노동자들의 초국가적 이동이 ‘아래로부터의 초국적 실천’을 유발하며, 이는 “다국적 혼종성을 재영토화” 하는 것이라 주장한다. 즉, “결혼이주는 사랑, 신뢰 등의 감정교환과 송금 같은 물질적 지원이 새롭게 교환가치를 획득하는 ‘초국적 호혜관계’의 한 형태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글로벌 경제질서 속에서 몫 없는 자들로서의 여성들의 몫을 찾기 위해 낸시 프레이저가 말하는 ‘지구적 젠더정의’를 실현해야 하고, 그 방안은 ‘최소수혜자 차등원칙’에서부터 시작해서 “비체화되어 배제된 사람들, 잉여, 좀비, 유령으로 떠도는 사람들”과의 연대를 통해 모색되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핵심 주장이다. 이러한 연대를 모색하는 것이 페미니즘의 시작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저자의 주장을 따라, 지구적 차원의 ‘젠더정의’ 혹은 지구적 규모의 젠더윤리학을 설립해야할 필요가 있을지 모른다.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 ‘글로벌 자본세’를 부과할 것을 역설했듯, 세계화 이후 정치적, 경제적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은 더 이상 일국적 차원의 해법으로는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국민국가가 강제할 수 있는 법 제정의 효과와 위상을 무시할 수도 없다. 결국 우리는 양자를 동시에 사고해야 하는 것이다.

아마도 추락을 대하는 루시의 태도를 논한 저자의 주장은 페미니즘이 폐허 속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비추는 유비에 가까울 것이다. 허나 이제 저자의 바람대로 페미니즘적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는 시점에, 우리는 그 이상으로 나아가야 할 것 같다. 전통적으로 경험은 이성에 대비되는 것으로서 저평가되어 왔기에, 말할 수 없는 것, 상징화에 저항하는 것, 언어 외부에 있는 것, 남성의 부정항으로서만 존재하는 것 등으로 특징지어진 ‘여성’ 주체에 관한 논의는 마찬가지로, 경험의 소멸을 한탄하고 경험의 계기들을 강조한 벤야민의 논의에 매료당해 왔을 것이다. 그리고 저자가 보여준 루시의 결단에서 볼 수 있듯, 파국적인 사건에 대한 침잠은 그와 한 짝을 이루고 있다. 허나 그런 속에서 글로벌 젠더정의를 제정하고 설립하는 일은 이뤄질리 만무하다. 세계적 차원의 불평등을 인지시켜주고, 일국적 규모 이상의 젠더적 양태를 일깨워주는 것은 결국 추상적인 이성이기 때문이다. 경험적이고 구체적인 사건, 혹은 반대로 말해질 수 없는 사건 자체가 정치의 대상이 되는 한 페미니즘은 남녀 대립의 구도 이상의 전선을, 혹은 대립을 구조화하는 기제로 나아가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취해져야할 첫 번째 단계는 파국을 논하지 않은 채 정치를 사유하는 일이 아닐까. 외려 과거-현재-미래로 이어지는 일련의 연속적 시간성 속에서 정치를 사유하는 일이 아닐까.

 

*함께 읽으면 좋은 논문

「구원 없는 세계에서 살아남기: 2000년대 한국문학에 나타난 ‘재난’과 ‘파국’의 상상력」
정여울, 2010, 『문학과 사회』, 92, 333-346.

「증오, 폭력, 고발: 반지성주의적 지성의 시대」
서동진, 2017, 『황해문화』, 94, 87-103.

정강산 리뷰어  wjdrkdtks93@hanmail.net

<저작권자 © 리뷰 아카이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자산어보에는 왜 물고기 그림이 없을까?

dasan2_1

logofinale2000년대 중반 서울대미술관에서 일본 에도시대를 주제로 전시를 한 적이 있다. 이때 내 눈을 사로잡은 건 난학蘭學의 실체였다. 대략 17~19세기에 쓰인 박물학 저술들 가운데 섬세한 컬러도판으로 식물이며 동물을 그린 것이 적지 않아 무척 놀라웠다. 이게 난학의 수준이구나, 했다. 그렇게 감탄하면서도 심정이 참 복잡했다. 우리의 잃어버린 300년이 생각나서였을까?

전근세 해양사 분야의 권위자인 김문기 부경대 교수가 『玆山魚譜』와 『海族圖說』- 근세 동아시아 어류박물학의 갈림길(『역사와경계』, 101, 2016)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을 반갑게 읽으면서 잊었던 그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제목의 『자산어보玆山魚譜』와 『해족도설海族圖說』은 서로 다른 책이 아니다. 둘 다 정약전이라는 한 사람이 지은 같은 책이다. 그런데 왜 제목이 다를까? 말하자면 『해족도설』은 애초에 구상했던 책의 제목이고, 『자산어보』는 방향을 틀어 최종 완성된 책의 제목이기 때문이다. 해족도설과 자산어보의 사이, 여기에 어떤 비밀이 감춰져 있다.

동생, 해족도설이란 걸 지어볼까 하네
형님, 글로 자세히 쓰시고 그림은 그만두시지요.

『자산어보』의 저자 정약전과 그의 동생 정약용 사이의 우애는 잘 알려져 있다. 형은 흑산으로, 동생은 해남으로 유배되어 편지를 왕래하며 서로 의지했다. 정약전은 그 까마득한 절해고도 바닷가에 앉아 물고기에 대한 전문서를 구상했다. 그것은 바로 그림이 곁들여진 ‘도설圖說’의 형태였다. 정약전은 자신의 계획을 동생에게 전하고 의견을 물었는데 동생이 부정적인 견해를 담아 편지를 보내왔다. 인용해보면 아래와 같다.

책을 저술하는 한 가지 일은 절대로 소홀히 해서는 안 되니 반드시 매우 유의하심이 어떻겠습니까? 『해족도설』은 아주 기이한 책으로 이것 또한 하찮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도형圖形은 어떻게 하시렵니까? 글로 쓰는 것(文字)이 그림을 그려 색칠 하는 것(丹靑)보다 나을 것입니다. 학문의 종지宗旨는 먼저 그 대강大綱을 정한 연후에 책을 저술하여야 유용하게 될 것입니다.

정약전이 애초에 보냈던 편지는 남아 있지 않다. 위의 정약용의 답장에 대한 반응도 알 수 없다. 다만, 그림 없이 나온 『자산어보』라는 책이 정약전의 생각을 말해줄 따름이다. 1960년대 말, ‘한국생물학사’를 정리했던 이덕봉은 김려金鑢(1766~1822)의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와 더불어 정약전의 『자산어보』를 ‘근대과학적 어보의 쌍벽’으로 “실학파의 저술 중 가장 근대과학적인 관찰을 거친 기록”이라고 평가했고 이는 아직도 유효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것이 한글로 번역된 1970년대 말 이후 『자산어보』에 대한 평가는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심지어 중국과 일본에서도 판본 비교연구가 진행되었고 급기야 “동아시아 최초의 수산생물 전문서”라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저자는 지금까지의 연구는 중국과 일본의 어보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성급하게 평가를 내린 부분이 적지 않다. 예컨대, “동아시아 최초의 수산생물 전문서”라고 한 평가는 중국과 일본의 어보들을 검토하면 무색할 지경이라고 지적한다.

그 이유는 일차적으로 시각적 재현이 없다는 점이다. 왜 정약전은 애초의 계획대로 하지 않았을까. 그간 학계에서는 이를 두고 그림을 그리기 어려워서였다고 생각해왔다.

이어 논문에서는 『자산어보』의 저자 비정 문제(정약전 외에 공저자 2명이 있었다. 한 사람은 오랜 세월 세밀한 관찰에 따른 정확한 지식을, 다른 한 사람은 문헌에 의한 보충을 담당한 듯하다), 명칭이나 묘사 등에서의 원칙과 사례 등을 개괄하고 있는데 무엇보다 손에 잡힐 듯이, 바로 앞에서 보는 듯이 감각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자산어보』의 가장 큰 특징이라 강조한다.

동시대 중국의 학의행과 일본의 탄슈와 비교
자산어보 지나치게 높은 평가

이어 저자는 정약전과 동시대에 살면서 어보를 남긴 중국의 학의행郝懿行(1757~1825)과 일본의 쿠리모토 탄슈栗本丹洲(1756~1834)의 작업과 비교 검토를 시도한다. 가계와 학문, 벼슬, 그 외의 삶의 여건 등을 꽤 자세히 비교한 다음, 정약전의 『자산어보』, 학의행의 『기해착記海錯』, 탄슈의 『율씨어보栗氏魚譜』가 출현하기까지 지식의 흐름을 훑어보는데 매우 자세하고 유용하다. 중국 산둥 반도 해양생물을 기록한 『기해착』에는 해양생물 45종, 해양식물 2종, 광물 2종으로 전체 49종을 싣고 있다. 해양생물에는 물고기뿐만 아니라 돌고래, 게, 해파리, 해삼, 담채, 물개, 새우, 굴 등이 포함되어 있다. 학의행은 명칭을 검증하고, 고적을 인용하여 고증하고, 자신의 관찰에 의거하여 평가하고, 이전 사람들의 정오正誤를 판단하고, 자신의 견해를 진술했다. 저자는 이를 전반적으로 살펴본 뒤 몇 가지 한계를 지적하는데, “생물형태나 습성에 대한 묘사가 지나치게 간략, 과장이 심해 사실과 부합하지 못함” 등으로 볼 때 『자산어보』에 미치지 못한다. 물론 『자산어보』도 어느 정도는 이러한 약점을 지니고 있다.

정약전이나 학의행이 문인관료였던 것에 반해 구리모토 탄슈는 의사이자 본초학자였다. 총 20권인 『율씨어보』는 5권이 없어져 15권만 전해진다. 여기서 그림만 680점이 실려 있고 채색된 그림들이 매우 사실적이라고 한다. 주로 선어鮮魚를 재료로 그림을 그렸지만 입수가 불가능한 것은 건어乾魚를 사용했고 어떤 경우라도 실체를 성실하게 생생하게 그려냈다. 탄슈의 어보들이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은 오늘날 어류학자들이 그의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 어떤 물고기를 그렸는지 쉽게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정약전이나 학의행도 세밀하게 관찰하고, 미비한 부분은 현지사람에게 물어보았던 점은 탄슈와 동일하다. 그들이 탄슈에 못지않은 뛰어난 관찰자였음에도, 그들의 어보에 실린 기록들은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다. 그들이 서술하고 있는 해양생물이 오늘날 무엇인지 정확하게 비정하기 어려운 것이 많다는 사실이다”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그들 사이의 차이는 바로, 어류지식의 ‘도상화’ 여부였다.

16세기 이래로 유럽의 동물, 식물지식의 체계화에서 도상은 핵심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17세기의 과학혁명이 ‘16세기의 문화혁명’에서 배태되었음을 지적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박물학의 전성시대에 등장한 경이로운 박물도감들은 지식의 체계화에 도상이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남송대에 활약했던 정초鄭樵는 일찍이 이를 주목해『통지通志』를 저술하면서 “그림(圖)은 날실(經)이고 글(書)은 씨실(緯)이니, 한 가닥의 날실과 한 가닥의 씨실이 서로 섞여서 무늬(文)를 이룬다. 그림은 식물이며 글은 동물이니, 한 식물과 한 동물이 서로 문드러져서 변화를 이룬다”라고 말한 바 있다.

『자산어보』 중엔 ‘조사어釣絲魚’라는 것이 등장한다. 이에 대한 묘사를 보면 도상이 없을 경우 아무리 묘사가 자세하더라도 쉽게 짐작하기 힘든 경우가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조사어란 무엇일까? 몸의 일부인 ‘낚시줄(釣絲)’을 늘어뜨려 다른 물고기를 유인하여 잡아먹는 물고기이다. 정약전은 이 물고기의 사냥방법에 깊은 인상을 갖고, ‘낚시하는 물고기(釣絲魚)’라는 한자이름을 만들어냈다. 다행히 정약전은 속명을 기입해 두었다. 바로 ‘餓口魚’이다. 사실 우리가 이것이 ‘아귀’라는 것을 알고 글을 보면 모양을 떠올릴 수 있겠지만, 이 심해어를 쉬이 접할 기회가 없었던 조선시대의 지식인들은 이 글만으로 그 형체를 대충이나마 그려내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이다.

반면 일본에서는 여러 도보에서 아귀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넣고 있다. 밑에서 본 것, 옆에서 본 것, 낚시줄이 없는 다른 종의 아귀 등을 작은 점 하나까지 빼놓지 않고 그렸기 때문에 그림만으로도 이 물고기가 무엇인지 단박에 알 수 있다. 탄슈의 『율씨어보』도 마찬가지다. 정약전은 귀상어에 대해서도 매우 공들여 서술해 중국 어보의 설명을 뛰어넘지만, 중국 어보에는 귀상어가 그려진 것이 있다. 설명이 부족해도 그림을 보면 단박에 알 수 있는 것이다.

‘윤리학’적 입장이 싹트는
‘생물학’적 입장을 압도하다

 

탄슈의 『율씨어보』에 실린 물고기 도상

앞서 그간 연구자들이 『해족도설』이 그림 없이 글자만으로 완성된 이유가 그림 그릴 줄 아는 이를 구하기 힘들어서였을 거라고 추정해왔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저자는 이것만으로는 불충분하며 좀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본다. 그것은 ‘문자文子 우위의 문화’라는 시대환경이다. 정약용은 『해족도설』을 구상했던 정약전에게 학문의 종지를 지키라고 충고했다. 효제라는 유교덕목을 근본으로 삼는 것, 그것이 학문의 종지였다. 이를 바탕으로 농포農圃‧의약醫藥‧역상歷象‧산수算數‧공작工作 등에 활용되어야 하며, 만약 이를 벗어난다면 저술할 가치가 없었다. 정약용은 윤리학의 입장에서 생물학을 지향했던 형을 경계했던 것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물고기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아니었다. 그것이 현실의 성리학질서에 어떤 교훈을 주고 기여할 수 있는가였다. 저자는 아래와 같이 최종 결론을 내리며 사라져버린 해족도설을 아쉬워한다.

정약전은 동생의 이런 의견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두었다. 그는 윤리학자이기보다는 생물학자이기를 원했다. 그렇다고 동생의 충고를 완전히 무시하지 않았던 것은 두어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홍어가 교합 중에 한 쌍으로 올라오는 것을 설명하면서, “암컷은 먹을 것 때문에 죽고 수컷은 음탕함 때문에 죽는 것이니, 음란함을 탐하는 자들에게 경계가 될 만하다”고 했다. 전복을 설명하면서, 전복을 노리던 쥐가 전복에게 붙잡혀 밀물에 빠져 죽는 것을 보면서 “다른 사람을 해치려는 도적에게 경계가 될 만하다”고 했다.167) 이 두 사례를 제외하면 정약전은 자연과학자의 길을 묵묵히 걸어갔다. 다만 안타까운 점은 그림에 부정적이었던 동생의 충고를 받아들여 해족도설을 포기했던 점이다. 문자(譜)라는 ‘청각’에서 도상(圖)이라는 ‘시각’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갈림길에서 멈춰버린 것이다.

요즘 다산 정약용을 실학의 집대성자로 보는 기존 시각에 의문을 제기하는 연구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실학의 성리학적 집대성자로 더 좁혀 엄격히 바라보고 있다. 김문기 교수의 이번 논문은 이러한 연구들과 함께 읽고 생각을 갈무리해나간다면 좋을 것이다.

강성민 리뷰위원  paperface@naver.com

<저작권자 © 리뷰 아카이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작가주의 비평은 여전히 유효한가?

director2_1

logofinale「영화 작가주의에 대한 비판적 연구」 (『씨네포럼』, 22, 2015)는 동국대학교의 김영일 씨가 주저자로, 같은 대학교 김정환 교수가 교신저자로 이름을 올린 2015년 논문으로, 영화 비평 이론으로서 작가주의의 유효성을 다른 예술 분야 비평 이론과의 비교 및 영화 작가주의 비평 이론 등장의 역사적 맥락의 두 차원에서 검토하고 있다.

 

작가주의 영화 이론 등장의
역사적 맥락

영화에 있어 작가주의란 비평의 방법론이면서 동시에 창작의 방법론이기도 했다. 작가주의는 2차대전 이후 프랑스에서 프랑소와 트뤼포를 위시한 『카이에 뒤 시네마』지 필진들에 의해 주창되었다. 이들이 작가주의, 혹은 그 의도가 좀 더 분명히 드러나는 초기 명칭인 ‘작가정책’을 입안한 것은 영화를 예술의 독립적인 한 장르로서 자리매김시키고자 하는 기획이었다.

비시 프랑스 정권기를 거치며 프랑스의 영화인들이 대거 해외로 망명함에 따라 프랑스 예술영화의 전통은 단절되었고, 영화 시장은 시나리오 작가가 각본을 쓰고 감독은 각본에 충실하게 기술적인 촬영의 역할만을 담당하는, 상업적이고 문학 의존적인 형태의 영화가 지배하게 되었다.

이같은 풍토에서 영화는 대중 엔터테인먼트로만 여겨졌다. 2차대전 종전 이후 프랑스 영화계에서 설정된 과제는 이같은 인식을 타파하고 영화를 예술로서 (재)격상시키는 것이었는데, 특히 ‘카이에’ 그룹의 경우 그를 위한 전략 면에서 영화를 ‘종합 예술’로 파악하는 것을 거부했다. 이는 기존에 영화가 문학에 종속되는 하위 장르로 간주되었듯이 다른 예술들에 종속 내지 파생되는 것으로 여겨지게 되어 영화라는 예술 장르의 고유성을 주장하지 못하는 논리로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작가정책을 주창한 평론가이자 누벨바그를 주도한 감독이기도 했던 프랑수아 트뤼포(1932~1984). 위키미디어 공용, Natinaal Archief, by Jac. de Nijs / Anefo, CC BY-SA 3.0 NL
작가정책을 주창한 평론가이자 누벨바그를 주도한 감독이기도 했던 프랑수아 트뤼포(1932~1984). 위키미디어 공용, Natinaal Archief, by Jac. de Nijs / Anefo, CC BY-SA 3.0 NL

 

트뤼포가 주도한 카이에 그룹의 전략에서 영화의 예술로서의 격상을 위해 필요한 것은 두 가지였는데, 첫째는 영화만이 갖는 장르적 특수성을 찾아내 부각하는 것이었고, 둘째는 예술로서의 영화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간주되며 그것을 통해 인정받고 칭송받는 ‘주체’를 창조하는 것이었다.

영화의 장르적 특수성, 즉 ‘영화성’은 영화가 ‘영상’을 이용하는 예술이라는 사실에서 주로 발견되었다. 그에 따라 시나리오 작가는 영화의 재료를 제공할 뿐인 역할로 격하되고, 영상으로서의 영화를 제작하는 일을 총괄하는 감독이 영화 예술의 주체로 부각되었다.

이로써 영화는 감독이라는 이름의 한 작가가 자신의 개인적인 감각과 경험, 사상을 지극히 사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하나의 형식으로서 소설, 회화 등 다른 예술과 함께 어께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같은 맥락에서 카이에 그룹은 감독이 영화 제작의 전 과정에 개입하여 지배적인 영향력을 가저야 하며, 그럼으로써 영화를 통해 감독 개인의 고유한 스타일을 나타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평의 중심적인 대상은 작품에게서 작가, 즉 감독에게로 옮겨갔으며, 심지어 개별 작품 자체의 완성도가 떨어진다 하더라도 그 감독이 작가적 감독이라면 작품은 감독의 고유한 스타일을 드러내는 매개로서 가치를 높게 평가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작가적이지 않은 감독의 수작보다 작가적 감독의 졸작이 더 가치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작가주의 비평가들은 작가적인 감독과 그렇지 않은 감독을 구별하는 작업에 했으며 일부 ‘급진’적인 비평가들의 경우 작가들을 서열화하기도 했다. 이같은 경향은 트뤼포에게서부터 이미 발견되는데, 『카이에』에 실린 1954년 논문에서 트뤼포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입장을 피력하며, 이 입장들은 작가주의 경향의 뼈대를 형성하게 된다.

“첫째, 영화에서의 작가는 오직 하나뿐이며 그것은 바로 감독이다. … 둘째, 이 정책은 선입관에 의거하고 있으며 가치 평가적이다. 작가는 실패작에도 불구하고 작가로 남을 수 있지만, 작가가 아닌 감독은 영화가 성공해도 작가로 인정받을 수 없다. 작가와 작가가 아닌 부류의 감독은 절대 섞일 수 없으며 그 구분은 불변한다. 셋째, 작품에 앞서 작가가 존재하고, 작품 없이도 작가는 평가받을 수 있다. 또한 비범한 작가의 실패작은 평범한 작가의 성공작보다 더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프랑수아 트뤼포의 1962년작 영화 ‘쥘과 짐’의 한 장면.
문학 비평 이론들과의
비교 및 비판

김영일 씨에 따르면 작가주의 영화 이론은 작가에 초점을 둔다는 점에서는 문학 비평 이론 가운데 전기적 비평과 비교할 수 있으며, 작품의 스타일에 초점을 둔다는 점에서는 형식주의 비평과 비교할 수 있다.

그러나 전기적 비평은 작가가 살아온 시대상과 사회상을 아울러 살피면서 그것들이 작가와 작품세계에 끼친 영향을 중요하게 보며, 형식주의 비평에서는 미학적 실체가 언어적 형식 속에 이미 있었던 것으로 간주하여 작가를 작품으로부터 분리하고 작품 자체에만 주목한다.

두 문학 비평 이론 모두에서 창조성의 원천이자 작품 속 모든 미적 가치의 주인으로서의 ‘작가’라는 존재는 해체되는 셈인데, 이 점에서 작가주의 영화 이론의 작가 개념은 두 문학 비평 이론 모두와 구별된다. 즉, 김영일 씨가 보기에 작가주의 영화 이론은 문학을 비롯한 타 예술 분야의 비평 이론에서는 닮은꼴을 찾아볼 수 없는, 영화 비평에서만 존재하는 특이한 이론인 것이다.

한편으로 전기적 비평은 시대상과 사회상이 작품에 끼치는 영향을 중요하게 여기는 데 비해 형식주의 비평에서는 작품 외적인 요소를 철저히 배제한다는 점에서 둘은 상극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작가주의 영화 이론에서는 둘이 “행복하게 결합”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 점을 김영일 씨는 의아하게 여긴다. 김영일 씨는 그럴 수 있었던 이유로 앞서 설명한 작가주의 영화 이론 등장의 역사적 맥락을 들면서, 작가주의가 “논리적인 귀결에 의해 만들어진 비평적 방법론이라기보다는 필요에 의해서 요청된 영화 비평의 태도”이기 때문이라고 비판한다.

문학 비평에 없는 이론적 틀이 영화 이론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언급하는 것만으로 해당 영화 이론에 대한 비판이 충분히 이루어진 것이라고 볼 수는 당연히 없다. 단지 그 이유만으로는, 역으로 문학 비평에 기존에 없었던 이론이 영화 이론으로부터의 영향으로 새롭게 도입될 수 있는 가능성도 순전한 논리의 영역에서는 부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 리뷰가 그같은 기획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1999년에 『씨네포럼』 제 1호에 실린 김준기 씨의 논문 「영화의 작가에 관한 연구(1)」에서 다루고 있는 것처럼, 창조성의 단일한 원천으로서의 ‘신적인 작가’라는 관념이 예술 이론에 있어서 해체된 것은 근대 철학에서의 데카르트적 주체가 현대 철학에 이르면서 해체되어 온 것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롤랑 바르트는 구조주의에서 후기구조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작가의 죽음’을 선언한다. 바르트는 작품과 텍스트를 구별하고 둘을 기호학적으로 이해하면서, 텍스트라는 ‘기표’는 어느 한 단일한 ‘기의’에 고정적으로 결합할 수 없고 무수히 많은 의미들에 대응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기존에 작가가 작품의 의미를 독점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하나의 올바르고 객관적인 해석만이 존재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져 왔던 것에 대한 비판으로서, 다양한 비평(가)들이 존재할 수 있고 그 비평가들이 텍스트 속에서 “놀고 작업하고 생산하고 활동하는 데”에서 무수히 많은 다양한 의미들이 생산될 수 있다는 주장인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바르트의 시각에서는, 의미들은 텍스트와 작가 이전에 이미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었다가 텍스트 속에서 잠시 교차한 뒤 다시 무수히 많은 다양한 의미들로 흩어져 나가는 것이고, 작가란 단지 의미들 가운데 일부가 통과해 가는 한 지점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르트는 이후 몇몇 감독들에 대한 ‘작가론’에 해당하는 글을 쓰는데, 이는 창조적 원천으로서의 ‘작가’ 개념은 해체되었다 할지라도 여전히 “의미들이 일시적으로 고정되는 지점”으로서의 ‘작가성’은 존재하며, 그 위치는 작가에게서 이동되어 텍스트와 독자 사이의 유동적 관계 속에 놓이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푸코는 바르트가 작가를 해체했다고는 하나 작가가 사라진 자리를 “선험적인 익명성”으로 바꿔놓았을 뿐으로, 여전히 마치 이전의 ‘작가’처럼 절대적인 특권을 갖는 무언가가 텍스트를 둘러싼 의미와 해석들 속에 있게끔 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것으로 보인다.

푸코는 ‘작가’와 “작가-기능”을 분리하는데, 그럼으로써 사회와 담론들로부터 영향받는 상대적인 주체로서의 ‘작가’를 상대적으로나마 인정하면서, 이데올로기적으로 비판할 수 있고 분석할 수 있는 어떤 것이 다시금 있게끔 하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논쟁을 거치면서 작가주의 영화 비평이란 이미 그 최초의 형태를 벗어나, 작가가 더 이상 창조적인 의미의 근원이 아니라 사회와 담론들의 산물임을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텍스트 해석에 있어 중요하게 고려할 수밖에 없는 여러 맥락들이 모이는 지점으로서 ‘작가’라는 개념의 유용성을 인정하여, 다소 상대적이고 유예적인 차원에서 작가에 대한 분석을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만약 그렇다면 김영일 씨의 작가주의에 대한 비판은 어쩌면 다소 허수아비 때리기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생긴다. 초기에 작가주의 비평가들이 영화를 예술로 격상시키고자 하는 인위적인 의도에 따라 영화 감독을 고전적 의미의 작가로서 신격화시킨 것에 대해 김영일 씨의 비판이 유효하다 할지라도, 그같은 논쟁의 지점들이 이미 영화 비평 내부에서의 비판을 통해 해소되거나 혹은 다른 논쟁의 지점으로 이행하여 과거의 것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끝으로 한 가지 정도 더 지적하자면, 김영일 씨가 다소 도식적으로 구별하고 있는 “논리적인 귀결에 의해 만들어진 비평적 방법론”과 “필요에 의해서 요청된 영화 비평의 태도”는 딱 잘라 분리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영화를 독립적인 예술 분야로 격상시켜야 한다”는 당위 명제는 “영상 예술은 고유한 예술 분야로서의 가능성을 가진다”는 사실 명제로부터 ‘논리적으로 귀결’되는 것일지도 모르는데, 오늘날 후자의 명제는 의심의 대상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같은 반박의 지점은, 카이에 그룹에게 있어서는 이론적 분석과 창작의 실천이 함께 이루어졌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것일 수 있다. 비평 뿐만 아니라 창작의 영역까지도 넘나든 카이에 그룹의 실천은 누벨바그라는 형태로 영화사의 한 시대를 풍미했고, 감독을 영화 예술의 주체로 부각시킴으로써 영화의 고유한 예술성이 인정될 수 있으리라는 이들의 예측은 그 실천 속에서 적어도 어느 정도는 입증되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같은 이론과 실천의 결합은 어쩌면 앞으로의 창작과 비평에 있어서도 다시금 요구될지도 모른다.

강병준 리뷰어  iyyaggi@gmail.com

<저작권자 © 리뷰 아카이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무의식도 정치적이다!

fredericjameson2_1

logofinale비판이란 어떤 대상을 아무런 관련도 없어 보이는 다른 대상과의 관계 속에서 고찰하며, 그들을 서로 관련짓기 전까지는 보이지 않았던 의미를 탐색하는 일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그렇다면 비판이 잘 수행될 때, 가장 개인적이고 독립적으로 여겨지는 것에서도 사회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을까? 여기에 기꺼이 그렇다고 대답할 동시대의 학자를 꼽아보자면, 우선 프레드릭 제임슨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알다시피 그는 정치적 무의식 Political Unconscious: Narrative as a Socially Symbolic ACT』(2015/1982)을 통해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라는 신좌파적 클리셰를 정반대의 방향에서 증명해 보여준바 있다.

정윤길의 제임슨과 무의식: 비유를 넘어 매개로서의 무의식(『현대사상』, 11, 2013)은 바로 이러한 제임슨의 작업을 다룬다. 그 목표는 문화, 예술, 혹은 일상적 실천들의 범주에서 무의식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정치적 기제를 추적하는 작업인 정치적 무의식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된 제임슨의 ‘무의식’ 개념에 집중하여 그가 알튀세르와 라캉을 독해하는 방식을 검토하고, 그것이 제임슨에게 미친 영향을 살펴본 뒤 제임슨의 강점과 한계를 설명하는 것이다.

 

쉽게 제거할 수 없는 총체성
제임슨의 이데올로기 비판

저자는 우선 제임슨의 작업이 지닌 특징과 그 매력을 기술한다. 그에 따르면 제임슨의 작업은 “인류의 역사 역시 하나의 서사로 결합되게 마련이라는 기본적인 믿음을 거침없이 주장하는 대담성”에 그 정수가 있으며, “총체성에 대한 탈근대주의의 비판을 사회적 총체성과의 연관을 잃어버린” 증상으로 규정한다는 점에서 여타의 이론들과 구별된다. 이는 전형적인 마르크스주의적 독법으로서, 세계의 현상 형태를 윤리적으로 단죄하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사건과 행위들이 역사 속에서 그러한 모습으로밖에 드러날 수 없었던 필연성을 인지하며, 그것이 동시에 지금과는 다른 모습일 수 있음을 밝히는 사유 방식이다(종교는 인간 의식의 산물이 실체화되어 인간을 지배한다는 점에서 부정적이지만, 동시에 현실의 불평등을 고발하고 있다는 점에서 진리의 계기가 있다는 마르크스의 종교비판이 그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이어 저자는 제임슨에 대한 제임스 캐버너James Kavanagh와 테리 이글턴Terry Eagleton의 상반된 평가를 대조하고, 그의 이론이 “데리다의 성찰을 전유하면서도 해체주의를 압도하고 있다는 점, 과거의 윤리 비평을 다시 회복시키려 한다는 점”, “일종의 ‘알튀세르 혁명’을 전파하고 있다는 점”에서 영미 비평가들의 평가가 나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허나 사실 이 차이는 기본적으로 헤겔의 총체성을 생산적으로 독해하는 제임슨에 비해 이글턴은-<Holy Terror>(2005) 이후론 보다 헤겔을 보다 긍정적으로 언급하긴 하지만-그 방법론에 보다 비판적인데서 연원하는 듯하다.

이후로는 구조주의적 계기를 지닌 레비스트로스와 초기 푸코가 모두 자신의 작업에서 (프로이트에 의해 제기되었던 정신분석학의 개념인)무의식이란 개념을 차용했던 사례가 제시되며, 구조주의와 무의식의 상동적인 관계가 언급된다. 저자에 따르면 구조주의의 가장 큰 미덕은 “전체로서 하나의 정체성 대신 그들 사이의 관계성을 그리고 개별적 구성 요소보다 그들이 결합해서 만들어내는 전체적인 구조를 사고할 수 있는 시각을 갖게 한” 점에 있다. 아도르노의 표현을 빌려 부연하자면 구조주의는 ‘객체의 선차성’을 주장하며, 개인에 대한 사회의 우위를 강조하고, 결과적으로 주체를 구성하는 지위에서 구성되는 지위로 설정하여 나름의 방식으로 주체 범주에 대한 비판을 수행하는 점에서 유사하게 소급되는 일련의 학문적 경향을 일컫는다고 볼 수 있다. 즉, 단순화를 무릅쓰고 말하자면 19세기 말의 심리학에서부터, 20세기 초 소쉬르 등의 언어학을 거쳐 레비스트로스, 푸코, 라캉, 알튀세르 등에서 발견되는 일종의 연속적인 요인들의 흐름이 이에 해당된다. 물론 이중 스스로를 의식적으로 구조주의자로서 선언한 인물은 없다는 점에서, 이는 사후적으로 연구자들이 명명한 일종의 공통적인 연구 방식의 경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구조주의의 한계:
무의식이라는 은유

허나 저자는 구조에 대한 개체의 자율성과 개별성 즉 개별 요소들의 정체성을 사고하기 위한 답변이 구조주의에 부재하며, 신광현의 연구(“텍스트의 무의식: 프레드릭 제임슨의 경우”, 2005)를 참조하여 구조주의의 논자들이 무의식을 일종의 초월적인 은유로서 사용함으로써 정작 해명되어야 할 체계로서의 구조를 쉽게 전제한 채 논의를 전개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즉, 의식과 무의식이라는 개념쌍이 단순히 개인/사회에 유비됨으로써 구조와 요소의 관계에 대한 개념적 사고를 차단한다는 것이다.

한편 그는 탈중심화된 구조, 부재하는 원인으로서의 구조의 이론가로서의 알튀세르를 언급하며, 이를 마르크스주의 내부에서 무의식 개념을 도입한 가장 중요한 사례로 꼽는다(허나 정신분석과 역사유물론, 프로이트와 마르크스주의를 동일한 지평에서 사고하려했던 시도는 이미 20세기 초중반에 아도르노를 위시한 프랑크푸르트학파에 의해 취해진바 있다. 저자가 알튀세르를 무의식과 마르크스주의를 대표적 사례로 소개하는 것은 한국적 좌파담론의 편향이라는 배경에서 비롯된 것임을 지적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는 알튀세르 또한 마찬가지로 개별 현상 형태들에 의식을, 중층결정되는 모순의 작용에 무의식을 유비하게 된다고 주장하며, 알튀세르의 ‘징후적 독해symptomatic reading’ 개념을 비판하고 이 경우 결국 구조는 요소들의 타자에 머물러 본질로서 실체화 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사회 구조를 사회현상의 무의식으로 보는 것은 구조의 구조성을 보지 않는 잘못을 저지르는 일”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맥락에서 제임슨이 알튀세르와 다른 방식으로 라캉의 무의식 개념을 수용하려한다고 말한다. 도달 불가능한 타자성과 언어 외부의 무nothing를 표현하는 라캉의 실재계는, 제임슨에 와서 “총체성 또는 역사 자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전환된다. 라캉에게 언어 외부를 지칭하는 ‘실재’에 대한 인식이 항상 언어를 통해서만 이뤄지듯, 제임슨에게도 역사(실재)는 텍스트(문화, 예술 등을 포함하는)를 통해서만 감지할 수 있는 것이고, 따라서 텍스트는 상징계(지배체계), 상상계(이데올로기)를 경유해서만 역사를 운반한다. 허나 의식이 거하는 상징과 상상의 세계, 즉 지배와 전도의 세계 속에서 무의식은 역사에 닿고자 하며(<세기>에서 제기된 바디우의 “실재를 향한 열정”이라는 개념을 떠올려도 좋을 것이다) 소여의 체계들로부터 이탈된다(이는 실재가 상징화에 저항하고, 물자체가 기호와 일치할 수 없다는 점에서 필연적인 과정이다). 여기서 텍스트는 역사와 조우하고자하는 무의식을 동시에 담지하고 있고, 역사를 향한 욕망은 “이데올로기의 억압으로 마치 꿈에서처럼 치환, 보상, 투사의 작용으로 드러난다.”(A.로버츠, <트랜스 비평가 프레드릭 제임슨>) 동일화하고 위계와 지배를 설정하는 이데올로기에 저항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무의식은 정치적이며, 이미 모든 텍스트에 내재되어 있다는 점에서 편재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때 소외와 파편화, 지배와 억압을 동반할 수밖에 없는 (후기)자본주의 사회에서 실재, 역사에 대한 열정은 대상의 무의식의 측면에 있기에, 이제 쟁점이 되는 것은 그러한 열망, 유토피아를 향한 충동을 해석하는 작업이라는 것이 제임슨의 주장이다. 무의식의 지반, 역사성을 해명하고 그 저변을 넓히는 것이 관건인 것이다. 허나 저자에 따르면 이러한 제임슨의 결론은 “개인적 범주”와 “사회적 범주”, “개별 주체의 경험”과 “사회적 총체성”, 즉 주체와 객체의 분리가 이미 이뤄진 자본주의의 조건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양자를 종합할 수 있는 방안을 그린다기 보다는 그 불가능성을 말한다는 점에서 결국 총체성을 인식의 대상으로 한정하고 있다. 이는 틀린 말이 아닌데, 이유인즉 그러한 주/객의 분리가 자본주의 하에서는 필연적인 것임을, 따라서 자본주의가 존속하는 한 분리의 간극을 끊임없이 좁히고자하는 열망 또한 필연적으로 발생한다는 것이 제임슨의 주장일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 사회, 역사
제임슨의 3단계 해석학

이제 저자는 제임슨이 대상을 해석하는 방식이 정치, 사회, 역사라는 범주로 나뉘며, 이는 각각 “ 첫째, 좁은 의미에서의 정치적 역사: ”특수한 시점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나 사건의 연대기적 연속체“, 둘째, 그와 연관된 사회적 맥락: 공시적 체계 내에서의 ”사회적 계급간의 구성적 긴장과 투쟁“,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광범위한 의미에서의 역사: ”일련의 생산양식과 원시 시대로부터 미래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인간 사회구성체의 운명“ ”에 조응한다고 말한다. 이들은 텍스트들에 나름의 방식으로 개입하고, 상이한 위상을 지니고 있으며, 각각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의 순서와 관련된 것이다.

첫 번째 단계, 정치적 역사의 범주는 개별 작품들의 발화와 일치하는데, 이는 형식주의적 비평, 혹은 구조주의적 비평과 비슷하지만 “작품이 사회적 모순을 상상적인 차원에서 해결하고자 하는 상징적 행위로서 파악된다는 점에서” 여느 형식주의와는 다르다.

두 번째 단계는 개별 텍스트에서 사회 질서로 확장되고, 이때 사회 질서는 각 텍스트를 내외재적으로 규정하는 “계급담론의 차원에서 작동하는 것”이다. 여기서 “텍스트는 변증법적으로 변형되어 더 이상 좁은 의미에서의 개개의 텍스트로 이해되지 않고, 보다 큰 집단적이고 계급적인 담론의 형식으로 재구성”되며 “계급 담론과 개별 텍스트간의 관계는 랑그와 파롤의 관계로 재정립된다.” 즉, “첫번째 차원에서 텍스트가 하나의 규정, 말하자면 텍스트의 형식적 무늬와 구조에 내재적인, 실재적 사회 모순에 대한 상상적 해결책으로 보인다면, 두 번째 차원은 계급 담론의 랑그에 대해서 텍스트를 빠롤 또는 개별적 발화로 취급한다.”

세 번째 단계는 “전체로서의 인류의 역사, 혹은 일련의 생산양식”과, “원시시대로부터 미래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인간 사회구성체의 운명”에 집중된 방식이다. 여기서 개별 텍스트는 전체로서의 역사 속에서 독해된다. 이 역사는 마르크스주의에서 ‘생산양식’으로 표현되는 것이지만, 제임슨의 용례는 구조적 인과성, 기계적 인과성, 표현적 인과성과는 구별되는데, 외려 그에게 생산양식은 “사회 각 층위들의 상대적 자율성과 불균등 발전을 통하여, 통시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모든 생산양식의 흔적들과 미래의 맹아가 공시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사회 구성체의 형식을 띤다.” 즉 그는 상부구조의 상대적 자율적 공간을 인정하고 그들을 섣불리 경제로 포섭하지 않으면서도 경제적인 것과 그들 간의 총체적 연관을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론이 상대하는 것은 ‘문화혁명’인데, 문화혁명은 “사회 형성이 새로운 사회생활 양식을 위해 주체를 재교육하거나 재프로그램화하는 과정을 지칭”하며 새로운 실천을 생산할 새로운 주체를 암시한다.

 

텍스트의 역동성의 부재
제임슨의 한계?

이러한 주장의 귀결은 결국 역사와 실재에 대한 접근이 “정치적 무의식 속에서의 서사화”를 거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에게 예술작품은 “사회적으로 상징적인 행위”이며, 그 정치적 무의식이 해석되어야만 그 의의가 현현하는 것이기에, 그자체로 총체성에 대한 인식에 있어 실천적인 함의를 담지하지는 못한다. 즉, “무의식의 비유가 중요해지면 중요해질수록 작품의 한계는 한층 더 구조적인 것으로 미리 전제되어 버린다”는 말이다.

[su_quote]제임슨처럼 해석이 작품의 표면에 숨겨진 심층을 찾는 작업이라 여기는 경우 작품은 작품의 표면으로 환원되고 작품의 심층은 해석자의 전유물로 취급되기 쉽다. 작품의 표면으로 환원된 작품은 자기도 모르는 채 숨기고 있는 심층적 의미나 자기의 본질을 결정하는 심층적 구조에 의해 탈신비화되어야 할 대상으로 격하된다. (151쪽)[/su_quote]

[su_quote]이런 예술적 실천성은 애초에 과학적 인식과는 차별되는 방식으로 제한된 성취를 이룰 수 있을 뿐이다. 예술적 재현을 통해서 총체성에 가장 근접할 수 있다는 루카치(G. Lukács)의 입장과 비교해보면 총체성이 작품의 무의식의 영역에서 상징적으로만 드러날 가능성이 있다는 제임슨의 시각이 작품의 실천성에 얼마나 큰 제한을 두는지 쉽게 알 수 있다. (152쪽)[/su_quote]

저자는 제임슨을 향해 위와 같은 식의 비판을 개진하며, 그에게 비판적 작가론, 실천적 문예론이 부재함을 지적하고, 텍스트 자체의 역동성에 주목하는 데리다 식의 해체론보다 닫혀있는 것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요컨대 제임슨의 작업이 비평가, 해석자의 역할을 과잉표상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로 미뤄보아 그는 제임슨의 이러한 경향이 실은 아도르노에 기대고 있으며, 제임슨의 작업에 깊은 영향을 주고 있는 아도르노의 문예론을 둘러싼 쟁점들을 모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도르노에 따르면 예술작품의 진리계기란, 예술적 부정성에 있는 것으로, 이는 그때그때 존재하는 세계를 없애가지며, 즉 대상을 언어가 아닌 방식으로 보존하며(mimesis) 무의식적으로 세계의 모습을 그 내부에 담지 하되, 세계가 다른 방식으로 전개될 수 있었음을 증언함으로써(예술적 부정성) 모순을 응축하고 있는 한에서 간취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에게 예술적 실천은 본질적으로, ‘실천’이라는 언표로 그것을 지시하려할 때 외려 실패하게 되는 것이다(어떤 측면에서 <정치적 무의식>은, 사회의 모순을 누구보다 기민하게 상연해보여준 인물로서 프로이트를 꼽았던 아도르노와의 분업 속에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회는 개인의 내면에서 상연된다:
정치성은 작품의 무의식에서 상연된다

이어 논의되는 것은 제임슨의 인식론에 대한 개괄이다:

“우리가 아무리 역사를 무시하고자 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를 소외시키는 역사의 필연성은 결코 우리를 망각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역사는 그것의 결과를 통해서만 감지될 뿐, 물화된 힘으로 직접적으로 느껴질 수 없다. 토대로서 또 초월할 수 없는 지평으로서의 역사는 어떤 이론적 정당화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역사는 필연성에 대한 경험이다. 이런 까닭에 제임슨은 역사와 서사의 문제, 그리고 그에 대한 해석의 문제를 추궁함으로써 문학적 서사 특히 로망스와 소설 속에서 끊임없는 서사의 흔적을 찾아내고 이 근원적 역사의 억압되고 묻혀버린 리얼리티를 텍스트의 표면으로 복원시키고자 한다. 텍스트의 모든 결절 구조 속에는 언제나 일련의 생산양식과 원시 시대로부터 미래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인간 사회구성체의 운명의 흔적과 예기들이 공존하고 있으며, 이런 이질적이고 파편화된 단자들이 그 자체로 형식을 구성하는 것이다. 즉 예술의 형식 속에 존재하는 불연속과 차이, 그리고 동일성은 그 자체로 역사의 흔적이며, 미래의 역사를 위한 맹아적 존재인 것이다. 이런 인식 속에서 제임슨이 주목할 수밖에 없는 것은 서사적 장르와 역사, 즉 생산양식과의 관계이다.”(156쪽)

이렇듯 제임슨에게 정치적 무의식은 집단적인 것이며, 역사는 효과를 통해서만 나타난다는 점에서 실재이지만 가시적인 실체는 아니다. 다시 말해 “역사는 사물이거나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과정이 아니라 의식과 행위자에 대한 구조적 한계, 말하자면 우리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지속적으로 부딪혀야 하는 한계”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전미래가 될 수 없는, 특정한 방식으로 서사화 되어야만 하는 역사는 이야기되는 것이지만, 삶은 일련의 선택과 조직화 방식을 요구하는 것이기에, 제임슨에게서 경험의 범주와 일종의 윤리학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그 한계라고 주장하며 글을 마친다. 우리는 저자의 주장대로, 제임슨에게 일종의 경험과 윤리학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경험은 그의 초기 작업에서부터 “깊이 없음”이라는 표현으로, 윤리학은 “역사 감각의 상실”이라는 개념을 통해 그 불가능성이 지적되었기 때문이다. 허나 불가능성을 논한다는 것은 실천적이지 않은 것과는 상관이 없다. 외려 현실 속에서 상황은 정반대로 펼쳐진다. 오늘날만큼 수많은 직능단체들과 서클, 지역조직을 통해 매초마다 동시다발적인 실천이 벌어지고 있는 때도 없지만, 정작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가 되는 것을 확실히 인지한 채 공동의 전선을 확인하지 않는 이상, 어떻게든 변화가 일어나고 있을 거라 믿는 행동주의적 실천의 비실천성은 외려 독이 된다. 오늘날 경험과 윤리학의 부재를 성토하거나, 급진성을 담지 한다고 자처하는 이들보다 그들의 아포리아를 사고하는 제임슨을 더 신뢰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제 우리는 진정한 미래는 차라리 모순 속에서만 발견할 수 있음을 인정해야하지 않을까. 가장 공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정치라는 범주가 작품의 내밀한 무의식을 통해 상연되는 것처럼, 이미 존재하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전치되고 굴절되지만 세계가 지금과는 다른 방식이어야 함을 증언하며 그 속에서 새로운 질서가 창조될 수 있음을 말하는 인식을 가리키는 이름이 바로 모순이기 때문이다.

 

*함께 읽으면 좋은 논문 

「프레드릭 제임슨의 포스트모던론 연구」
김현식, 2008, 『사회와 교육』, 44, 117-138.

「프레드릭 제임슨과 변증법」
정윤길, 2010, 『현대사상』, 7, 279-295.

정강산 리뷰어  wjdrkdtks93@hanmail.net

<저작권자 © 리뷰 아카이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타인을 노래하지 않는 시인, 윤동주

dongju-2

logofinale자기의식이란 간단히 말해 ‘내가 나를 의식하는 것’이다. 나르시시즘으로 바라볼 수도 있지만 좀 더 성찰적으로 해석하자면 이는 곧 주체인 내가 그 자체로서 누구인지를 묻는 것이다. 근대성이 바로 이런 물음에서 시작되었다. 서양에서 근대는 데카르트에 의해 정립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데카르트에게 자기의식은 곧 자기동일성이고, ‘나’는 바로 이 자기동일성 속에서 존재함으로써 모든 진리의 척도와 원형이 된다.

그렇다면 한국의 근대도 서양과 같았을까? 식민지 시대를 근대로 본다면 같지 않을 것이다. 자기동일성을 보편적인 자기의식으로 삼기에는 너무나 비극적인 자기상실의 시대였다. 자기를 잃어버렸다는 것이 자아에게 가장 큰 고통이 된 시대이기에 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시급한 질문이지만, 이 질문은 데카르트에게서처럼 주체의 자명성이나 자유에 존립하는 것은 아니었다.

식민지 시대 시인들 가운데 유독 자기의식을 자기상실로 받아들이고 이것을 시적으로 형상화한 시인이 있다. 바로 윤동주다. 김상봉 전남대 교수는 윤동주의 이러한 측면을 윤동주와 자기의식의 진리(『코기토』, 69, 2011)에서 분석한다.

타인을 노래하지 않는
시인

윤동주는 타인을 노래하지 않으며 오직 집요하게 자기에게만 몰입하는 시인이다. 저자는 이것을 분열의 자기의식이라 부른다. 이 분열의 자기의식이 또렷하게 표현된 시 「또 다른 고향」을 살펴보자.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내 백골이 따라와 한 방에 누웠다.
어둔 방은 우주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 속에 곱게 풍화작용하는
백골을 들여다보며
눈물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백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지조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짓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

고향에 돌아왔다는 것은 주체가 자기에게 돌아왔다는 의미다. 데카르트였다면 자기에게 돌아와 발견한 것은 자기동일성과 자기 자신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이 고향에 돌아와 만난 것은 자기가 아니라 제 백골이었다. 물론 이 백골은 타자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지만 그것은 부정된 자기, 주체의 능동성을 빼앗긴 자기이다. 여기에 진리는 없다.

하지만 비진리의 어둠 속에 잠겨 있는 주체는 결국 어둔 방에서 우주로 통한다. 세계가 어둠 속에서 꽃잎처럼 열린 것이다. 데카르트가 자기 내면의 빛으로부터 영원한 빛인 신에게로 나아갔다면 시인은 어두운 좁은 방으로부터 세계로 나아갔다. ‘나’는 오직 슬픔 속에서 ‘나’에게로 돌아가고 또한 슬픔 속에서 고립된 ‘나’를 넘어간다. 슬픔의 어둠 속에서 열리는 세계는 다른 종류의 보편이다. 이처럼 자기 속에서 세계를 여는 자아는 자기 속에서 분열을 감당하지 않으면 안 된다.

더 이상 시인에게 최종 안식처로서 고향은 없다. 그는 고향을 잃어버렸기에 하나의 고향은 끝없이 “또 다른 고향”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저자는 이런 사정을 「길」에서 찾는다.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데카르트의 길이 의식의 명증적인 자기확신의 길이라면 시인의 길은 자기상실로서 자기의식의 길이다. 하지만 자기란 잃어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잃어버렸다 하면서도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모른다. 또한 잃은 것이 자기이니 찾는 것도 오직 자기 속에서만 가능하다. 자기를 찾기 위해 두 손으로 제 주머니를 더듬지만 그것은 물건이 아니기에 거기에 없다. 결국 상실의 자기의식은 자기를 초월하여 외부를 지향하게 된다. 그 지향은 끝없이 자기를 찾아 나가는 길이며, 저자는 그것이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라는 표현으로 나타났다고 본다.

세계에서
소외된 자아

어쩌다가 시인은 이토록 치명적인 자기상실과 자기분열의 의식에 이르게 되었을까? 저자는 이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윤동주의 시가 변화된 과정을 살펴본다. 앞에 소개된 두 시는 모두 1941년 9월에 씌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3년전 시 「새로운 길」에서만 하더라도 시인이 말한 “나의 길”은 그저 “새로운 길”일 뿐이었다. 새로운 길은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하던 길이며, 외부 세계의 대상에 몰입한 의식의 길이었을 뿐이었다.

이러한 대상적 사물의 세계에는 막힌 담이 없다. 시간과 공간에 단절이 없는 것처럼 세계 내 사물들은 단지 새로울 뿐 본질적인 단절을 보여주지 않는다. 저자는 이를 진부함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윤동주의 시에 근본적 전환이 일어나는 시기는 언제인가? 저자는 『새로운 길』보다 한 해 뒤에 씌어진 「자화상」에서부터라고 본다.

산모퉁이를 돌아 논 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
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
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여기서 자화상은 의식의 자기복귀, 곧 자기의식의 시적 형상화이다. 저자는 이 시를 통해 윤동주가 대상의식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자기의식의 단계로 진입했다고 본다. 자기와의 만남이 외딴 우물에서 이루어진다는 것, 그것은 세계로부터 소외된 자기의식의 은유인 것이다. 시인은 세상에서 멀어져 외딴 우물로 와 “가만히” 들여다본다. 저자는 이 조심스러움이 세계로부터 소외된 모든 자기의식에게 너무도 자연스런 몸짓이라 말한다. 그러나 시인이 우물 속에서 먼저 보는 것은 자기가 아니라 달과 구름과 하늘과 파아란 바람 그리고 가을이다.

[su_quote]자기반성의 거울 앞에서조차 시인은 자기와 또렷이 대면하지 못하고 대상 세계인 자연을 먼저 보는 것이다. 거기 아직 자기는 없다. 다만 한 사나이가 있을 뿐. (102~103쪽)[/su_quote]

자기를 찾아 온 우물에서 낯선 사나이를 본 시인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갔으나 그가 가엾어져 다시 우물가로 돌아온다. 시인의 자기의식은 이처럼 돌아옴이 떠남이요 떠남이 돌아옴이다. “마찬가지로 자기에 대한 미움이 또한 자기에 대한 연민이요 사랑이다. 시인의 자기의식 속에서는 이 분열과 그에 따른 운동이 시간의 본질이다.” (104쪽)

서양이 근대적 주체를 강조한 데 반해 한국인에게 근대적 자기의식은 타자에 의한 자기상실과 그로 인한 내적 자기분열의 확인이었다. 분명 데카르트적 주체와는 다른 주체였으며, 그 주체를 잘 드러낸 시인이 윤동주였다. 저자에 따르면, 윤동주는 자기상실과 자기분열 속에서 기의 없는 기표 또는 한갓 은유로서 부유한다. 마치 “풀포기나 뜯고 있는 한 마리 양”처럼 말이다. 이 주체성의 은유를 저자는 철학자로서 개념적 사유 속에서 해석하고 있다.

권성수 리뷰어  nilnilist@gmail.com

<저작권자 © 리뷰 아카이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