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중국 모델’은 중국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널리 논의의 대상이 되어왔다. 당연히 한국도 마찬가지인데, 이는 무엇보다도 빠른 기간 내에 이뤄진 중국의 경이로운 발전 덕분이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은 중국 경제 위기론도 심심찮게 들렸다. 중국경제에 대한 회의적 전망이 나올 때면 전세계가 긴장하기도 하고 반대로 중국 경제가 호전되면 모두가 안심하곤 한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중국경제가 경착륙할 것이라는 비관론은 실현되진 않은 듯 하다. 그렇다면 중국은 이전처럼 세계경제성장의 엔진역할을 할 수 있을까? 혹은 중국모델이 가진 불안정성은 여전히 극복되고 있지 않은 것일까?
이에 관해 알아보기 위해, 이정구의 「중국모델에 대한 비판적 고찰」 (『사회과학연구』31, 43-58, 2013)은 참고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글이다. 물론 논문이 쓰인 당시와 약간은 상황에 변화가 있을 수 있고, 이 글만으로 중국경제가 지닌 리스크를 전부 파악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 글은 중국모델이 가진 근본적 문제점들에 대해서는 혜안을 제시하고 있으며, 이는 오늘날의 중국경제와 세계경제를 이해하는 데에도 반드시 짚고 가야 할 문제일 것이다.
중국경제의 개혁개방을 이끈 덩샤오핑이 그려진 선전시의 간판. 선전은 가장 성공적인 경제특구 중 하나로 알려져있다. 출처: Wikipedia
중국 모델에 대한
전세계적 관심과 그 정체
중국 경제는 개혁∙개방 정책이 처음 도입될 때까지만 해도 농업 중심의 후진국이었다. 하지만 1978년 개혁∙개방 이래로 30여 년 동안은 경제성과가 놀라울 수준이라,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 불리던 나라들이나 일본이 경험했던 고도성장과 비교해도 두드러진다. 이는 중국처럼 관료적 지령경제에서 시장화로 이행한 옛 소련과 동유럽권 경제와도 매우 대조적인 성과다.
게다가 중국경제는 (비록 시장경제이지만) 미국식 신자유주의 모델을 대체할 만한, 새로운 경제모델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베이징 컨센서스가 워싱턴 컨센서스를 대체하여 “신자유주의 체제에 대한 하나의 해독제 또는 대안”(44)이 될 수 있을 것이란 말이다. 이 때문에 중국 국가에 친화적인 학자들은 중국모델이 단지 중국 뿐 아니라 보편적 경제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들이 칭송하는 중국 경제 모델의 핵심은 무엇일까? 물론 애초에 중국 모델이라는 게 존재하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는 입장도 있고, 아직은 ‘모델’이라고 부를만한 정형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신중론도 있다. 물론 중국모델을 긍정하는 입장인 사람들은 중국의 정치경제체제가 정형성을 지닌 경로로 안정적인 발전을 구가해왔다고 생각하며, 이를 중국모델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특히 이들 중 극단적 중국 모델 옹호론자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의 세계경제는 미국 모델이 아닌 중국 모델의 승리를 입증했다고 보기까지 한다. 물론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중국 모델 옹호론자들은 서방에는 존재하지 않는 중요한 요소들이 중국의 폭발적 성장에 기여했다고 주장한다. 가장 정석적인 중국 모델 옹호론을 제시한 것은 판웨이다. 판웨이는 중국모델이 3가지 차원으로 이뤄져 있다고 분석한다. “첫째는 ‘국민 경제’가 독특한 경제모델을 구성하고 있으며, 둘째는 ‘민본’ 정치체제가 정치모델을, 마지막으로는 ‘사직’(社稷) 체계가 사회모델을 구성하고 있다. 그래서 사직, 민본, 국민의 삼위일체가 중국모델을 구성한다고 그는 주장한다(潘维, 2009: 6)” (46) 그에 따르면, 중국의 국민 경제모델은 기본적으로 국가의 토지통제, 국유화된 금융기업과 대기업, 자유로운 노동시장, 자유로운 상품/자본 시장의 조합이라고 한다. 또한 현재 중국공산당의 집권은 서방의 민주주의와 달리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민본정치의 이념에 근거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현대 민주 이념과 공평한 공무원 선발 그리고 부패하지 않고 단결된 정치집단과 독특한 정부 분업제도가 그 특징이라고 이야기 한다. 한편 판웨이에 따르면 ‘사직’체계, 즉 관민일체(官民一體)식의 사회체제가 가진 독특한 사회체제 역시 중국 모델의 중요한 구성요소다.
한편 아오양은, 중국경제의 기적적인 고속성장을 가져온 중국모델에는 4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로, 정부가 소수 엘리트의 이익을 대변한 것이 아니라 사회의 장기적 이익을 추구해왔다는 것, 그에 따르면 이는 다른 개도국의 정부들과 큰 차이점을 드러내는 부분이다. 둘째로 재정분권인데, 지자체들이 각자의 재정권을 지님으로써 적극적으로 경제성장에 기여했다는 점이다. 셋째와 넷째로 그는 ‘중국식 민주주의’와 중국 공산당이 구체적 사업에 힘을 쓰는 정당이었다는 점 역시 강조한다. 이외에도 많은 학자들은 중국 경제가 단지 개혁개방 이후가 아니라 개혁개방 이전부터 성장의 바탕이 되는 요소를 고루 갖추고 있었다고 보는데, 이는 대체로 중국 정부와 공산당의 통치를 옹호하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이 외에도 저자는 다양한 중국모델 예찬론자들의 주장을 소개한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은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은 주장에 기초로 한다. 우선 중국모델은 중국경제의 부상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지만, 비단 경제제도뿐 아니라 정치사회 분야의 다양한 제도들을 포괄하는 것이란 주장이다. 둘째로, 중국모델은 서구와 확연한 차이를 지니고 있다. 셋째로 스탈린주의도 신자유주의도 아닌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시장경제’가 중국 모델의 경제적 측면이다. 넷째로, 이들은 중국 모델이 자유∙민주 등의 이념을 구현하지만 이는 서구식이 아니라 유교적 민본사상에 따른 통치모델을 통해서 구현되는 것이다. 다섯째, 중국모델의 이념은 기본적으로 마르크스주의이고 개혁개방이 이뤄진다고 해도 중국국가는 여전히 주도권을 쥐고 있으며 공산당이 기본적으로 영도세력이다. 마지막으로 중국모델은 비단 중국의 경험이 아니라 다른 국가들에도 적용 가능한, 보편적 요소 또한 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에 근거한 중국모델을 검토하려면, 중국의 고도 성장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중국 고유의 특성이라는 게 실존하는지, 이것이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한 것인지를 따져봐야 할 것이다.
중국모델론의
정치경제적 논점들
저자는 중국 모델에 대한 정치경제학적 주요 쟁점들을 추려내어 검토한다. 우선 중국이 개혁개방 전후로 연속성을 지니는가의 여부이다. 실제로, 중국은 1978년의 개혁개방 이전부터 상당히 높은 수준의 발전을 구가해왔다. 이미 개혁개방 이전의 30년 동안 연평균 6%에 달하는 경제발전을 이룩했다는 것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 경제발전을 이끈 ‘향진기업’ 역시 그 이전에 존재하던 인민 공사 산하의 사대기업에서 비롯된 것이다. 비록 이는 마오쩌둥의 유토피아적 이념을 실행하는 데에는 실패했었지만 개혁개방 이후에는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모델론자들의 주장처럼 1978년 전후의 연속성은 어느 정도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둘째로 검토해볼 내용은 중국의 발전모델이 스탈린주의 발전모델과 다른지 여부이다. 여기서 “스탈린주의적 방식의 경제성장이라 하면 소련의 원시적 축적을 이루기 위한 자원의 전략적 배분을 의미하는데, 그 실제 내용은 영국과 미국을 포함한 서방 선진국을 단시일 내에 딸라잡기 위한 전략이며, 구체적으로는 생필품과 경공업 비중을 극도로 축소하고 공업화를 앞당기기 위해 중공업 우선적인 정책을 펴는 것이었다.”(51) 저자는 그런데 대약진운동 시기에 경제 자원의 60%가 공업화에 투자되고, 심지어 공업화 속도를 낮추던 시기조차도 공업비중은 50%대였다고 한다. 특히 중공업의 비중은 늘 80~90퍼센트 대였다. 즉 동유럽과 소련의 케이스와 자신들의 케이스를 차별화하고자 한 중국모델 옹호론자들이 주장은 틀렸다.
또한 저자는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모델이 중국에 고유한 것인지 묻는다. 천즈우에 따르면, 중국의 발전모델은 사실 여느 개도국의 발전모델처럼 ‘후발성의 이점’을 향유한 것이다. 또한 세계화의 진전에 따라 생산의 전 지구적 재배치가 벌어지는 과정에서 선진국의 생산 일부가 후발 국가들에게 넘어오는 과정 역시 개도국들에게는 꽤 보편적인 경험이었는데, 이 부분은 중국의 경제성장에도 상당히 중요한 요인이었다. 따라서 ‘중국 특색’이라는 것은 그다지 특색이 있지 않다.
그렇다면 중국 경제의 발전을 이끈 동력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이 저임금 노동력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저자는 농촌의 잉여 노동력은 이전부터 존재했으므로, 1990년대 이후 가속화된 중국의 경제성장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다른 요소를 봐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국가 주도의 대규모 투자와 수출주도형 성장모델이 있을 것이다. 이 과정 속에서 중국에 대한 다국적기업들의 FDI도 상당히 늘어난 점 역시 주목할 만한 요소이다.
하지만 위와 같은 특징들을 기초로 성장을 구가해온 중국경제의 미래는 마냥 밝지만은 않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로 중국은 수출에만 의존해서 수요를 확보하기가 어려워졌다. 이에 따라 내수 위주의 성장전략으로 전환할 필요가 생겼는데, 이는 중국 경제의 모순을 낳는다. 왜냐하면 내수 위주의 성장전략을 구사하기 위해 필요한 여러 전략적 전환은 기존에 중국 경제모델이 가진 장점들을 여럿 포기하는 일을 수반할 것이고, 이는 매우 큰 난점을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간단한 예로, 중국 정부가 내수를 확대하려면 소득분배를 보다 평등하게 바꿔야 할텐데 실질임금의 인상은 중국에 투자할 다국적기업들의 투자유인을 줄인다. 내수확대와 수출증대는 동시에 성취하기 힘든 목표이다. 중국경제의 고도성장을 이끌어왔던 바로 그 요소들이 오늘날 중국의 발목을 잡고 있는 셈인데, 중국모델이 보편적으로 적용가능하며 또한 미국식 경제모델을 대체할 수 있는 케이스라는 중국모델 옹호론자들의 주장은 바로 이 점에서 받아들이기 힘들다. 오히려 세계경제위기는 미국모델의 몰락과 중국모델의 승리를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대안으로 제시된 바 있는 중국모델마저도 시험대에 오르게 되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더군다나 중국의 국가주도 경제는 시장화의 압력을 충분히 저항하지 못하고 있으며, 고도성장 과정에서 가려졌던 계급갈등과 불평등 문제 등도 다시금 심화되고 있다. 따라서 저자는 중국 모델은 외부에서도 관심을 잃을 전망이 크고, 중국 국내정치의 시각으로 봐도 지배층에 대한 대중적 불만이 커지고 있기 때문에 위기를 겪고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 논문에서 지적된 바로는 중국 경제가 오늘날 직면한 위기를 전부 조망할 수는 없다. 예컨대 중국의 부동산 거품이 거시경제의 불안정성을 심화시키고 있는데, 이런 점이 기존의 중국모델과 어떤 연관성을 지니는지에 대한 소개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이 부분 역시 논문의 저자가 언급한 부분과 크게 동떨어진 문제는 아닐 것 같다.
이상에서 살펴본, 그리고 앞으로 확장시켜 마땅한 중국모델에 대한 비판적 고찰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문제를 제기한다. 바로 오늘날의 세계경제위기에서 헤어나오고자 한다면 워싱턴 컨센서스도 베이징 컨센서스도 아닌, 보다 근본적인 대안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함께 읽으면 좋은 논문
「중국 발전국가론에 대한 비판적 검토」
이정구, 2012, 경희대학교 국제지역연구원 『아태연구』, 19(2).
「세계 경제 위기하의 중국」
이정구, 2009, 경상대학교 사회과학 연구원 『마르크스주의 연구』, 6(3).
김종현 리뷰어 mrkim_sam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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