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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ofinale지금은 논의가 살짝 시들해진 감이 있지만, 복지국가는 이미 일종의 당위로 사람들의 뇌리에 자리 잡은 듯하다. 지난 대통령선거만 해도 이른바 ‘진보진영’의 전유물처럼 논의되었던 복지가 보수 정당의 후보들 입에서 오르내렸다. 너나 할 것 없이 ‘복지 공약’을 내세웠고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 또한 자신의 공약을 실현해 낼 것을 다짐했다. 그녀의 ‘증세 없는 복지’가 실현되지 않았다는 비판이 곳곳에서 제기되는 지금, 다음 대통령선거에서도 또 다시 복지국가 건설을 둘러싼 공약 전쟁이 펼쳐질 것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김공회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의 「복지국가와 조세: 그 계급적 성격과 정치경제학」(『진보평론』,  65, 2015)은 복지국가를 당위로 보았을 때 가려지는 부분들, 그중에서도 조세를 둘러싼 논의를 정리하고 이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논문이다. 연구자는 복지국가란 누구를 위한 것이어야 하고 무엇을 위한 것이어야 하는지를 냉철하게 짚고 있어, 복지국가 논의에 관심 있는 이들이 참고할 만하다.

복지국가는 그저 
경제 위기의 구원투수일 뿐인가

연구자는 우선 복지국가에 대한 논의가 경제성장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지적한다. 복지국가가 좌우파를 막론하고 이야기될 수 있었던 건 성장이 둔화된 현재 국면에서 복지국가가 일종의 해답으로 제시된 데 따른다. 우파조차 복지를 주장한 건 복지를 통해 성장을 견인한다는 발상에 바탕을 둔 것이다. 그렇다면 경제가 회복된 뒤에는 어쩔 것인가? 연구자는 이 질문이 ‘진보와 보수라는 스펙트럼을 가르는 리트머스 시험지’라고 본다. 반대로 말해, 경제 위기를 “단순한 자본수익성 저하, 자본 재생산의 위기가 아니라사회 전반의 재생산의 위기라고(54쪽, 강조는 본문)” 보는 데 좌우파가 합의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회 전반의 재생산의 위기’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복지국가를 제시했을 때, 복지국가의 기반이 될 조세는 단순히 기술적인 문제에 국한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복지국가와 조세의 연계는 사회 전반의 재조정/재구축을 불가피하게 불러 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복지국가를 만들기에 충분한 세금을 걷고 있을까. 국내총생산GDP을 기준으로 2013년 한국의 조세부담률은 17.9%로 나온다. 하지만 명목 국내총생산을 국세와 지방세의 합으로 나눈 비율을 나타내는 조세부담률로는 국가의 경제적 역할을 제대로 보여줄 수 없다. 이때에는 국민의료보험료와 같은 사회보장기여금이 제외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보장기여금을 포함한 국민부담률로 국가의 경제적 역할을 재검토해야 한다. 이렇게 도출된 2013년 국민부담률은 24.3%다. 이렇게 보았을 때 2013년 한국의 국민부담률은 조세부담률보다 약 6% 포인트 높다. 그러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2012년 조세부담률은 24.7%, 국민부담률은 33.7%다. 2012년 한국의 조세부담률이 18.7%, 국민부담률이 24.8%였음을 고려했을 때 모두 OECD 평균에 못 미친다.

이어서 2012년 주요국의 GDP 대비 조세수입의 항목별 비중을 들여다보면, 한국은 OECD 평균을 기준으로 개인소득세와 사회보험료, 소비세의 비중은 낮은 반면, 법인세와 재산세, 기타의 비중은 높다. 하지만 이상의 지표만 보고 개인소득세·사회보험료·소비세는 높이고 법인세·재산세·기타의 비중을 낮춘다는 식으로 단순하게 접근해서는 안 된다. 법인세의 규모가 크다고 할 때 세율이 높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법인소득액 자체가 크기 때문일 수도 있다. 법인소득액의 증가는 법인 수 및 소득의 증가로 해석할 수 있다. 이때 재벌과 대기업의 하청업체 ‘후려치기’ 등의 사회 현상은 잘 드러나지 않으며, 법인소득액의 증가는 법인의 양극화에 따른 결과를 반영할 뿐이다. 연구자는 그렇기 때문에 조세를 분석하는 데 있어 보다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연구자는 마르크스의 『자본』을 바탕으로 논의를 전개한다. 한 해의 총부가가치(다른 말로 하면 GDP)를 임금·이윤·이자·지대의 합으로 보았을 때, 각각의 수입에 대한 세금은 결국 총부가가치에서 지불된다. 즉 세금은 자본이 취하는 잉여가치로부터 공제하는 것, ‘잉여가치의 공제분’인 것이다. 그렇다면 잉여가치를 통해 자본의 재생산을 추구하는 자본가는 어째서 잉여가치의 공제를 받아들이는 것일까. 그건 국가의 기능이 자본가에게 이롭기 때문이다. 치안·국방 등의 기본적인 사회질서 유지와 도로·항만 등 경제적 인프라의 건설·유지·보수, 의료·교육 등 사회적 인프라 구축이 국가의 주요 기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중 복지국가는 세 번째 기능인 사회적 인프라 구축과 관련이 깊다. 그런데 여기서 세 가지 사항을 고려해야 한다. 첫 번째는 총자본의 이해와 개별 자본가의 이해가 완전히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자본가가 복지국가를 긍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실제로 노동자 또한 세금을 지불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의 세금은 노동력 재생산비용 이상의 임금을 받는다는 걸 전제하기 때문에 세금이 잉여가치의 공제분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세 번째는 노동자가 국가의 경제적 역할에 대해 중립적이라는 것이다. 국가가 사회적 인프라 투자를 적게 한다면 노동력의 재생산을 위한 기능 일부는 자본이 떠맡아야 하기 때문이다.

노동자가 국가의 경제적 역할에 대해 중립적이라는 말은 그동안 좌파가 복지국가를 옹호한 것과 모순되는 주장으로 보인다. 하지만 연구자는 복지국가가 자본의 노동력 재생산비용을 낮추기 때문에 총자본에 이롭다는 것을 강조하면서도, 노동력 재생산 비용의“절약분의 일부 또는 전부는 노동자들의 강력한 요구의 결과 노동자에게 돌아가 실질임금 상승을 낳을 수도 있고, 아니면 아예 노동시간의 단축에 따라 소멸될 가능성도 있다. 또한 이런 결과들은, 적절히 타협되기만 하면 잉여가치 증가와도 공존할 수 있다. 바로 여기에 복지국가에 대한 자본가와 노동자 간의 ‘범국민적’ 합의의 경제적 가능성이 있다(68쪽, 강조는 본문)”고 지적한다. 즉 복지국가란 계급투쟁의 장이며 그 자체로 완전무결하거나 가치중립적인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복지국가를 만드는 데 필수적인 증세에는 계급역관계가 들어 있다.
복지국가와 증세는 
계급투쟁의 전장戰場이다

그렇다면 복지국가의 재원을 확보하기 위한 증세는 정치적이고 전략적인 경합의 장일 수밖에 없다. 세금의 증대가 실질임금의 하락을 의미하는 한, 세금은 ‘잉여가치, 나아가 총노동에 대한 더 많은 통제’다. 이때 세금을 통한 국가의 경제적 역할이 진보적인 의의를 가지려면 ‘생산과 분배라는 이중의 차원’에서 자본을 통제해야 한다. 연구자는 조세와 소득 재분배의 중요성을 역설한 토마 피케티에게서 누락된 부분이 바로 이 지점임을 지적하면서, 생산 통제의 대표적인 사례인 국유화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한다.

연구자는 전력산업을 예로 들어 민영화된 산업과 국유화된 산업을 대조한다. 경제의 일부가 국유화된다 해도 전체 자본가가 얻는 총이윤의 양은 변하지 않는다. 국유화된 전력산업은 자본이 아니므로 전기요금은 이윤 부문을 제외하기 때문에 낮아진다. 전기요금이 낮아진 만큼 노동력의 가치도 하락하기 때문에 자본가는 전력산업 외의 모든 산업에서 그만큼의 이윤을 추가로 획득한다. 이를 통제하기 위해 국유화된 산업에서의 노동시간을 줄여 노동자를 추가적으로 고용함으로써 상품 가격은 그대로 유지하는 방법을 제시할 수 있다. 국유산업에서 생산되는 잉여에 대한 좀 더 ‘온건한’ 두 번째 방안은 전기요금은 그대로 유지하되 국유화된 전력산업에서 확보된 이윤을, 경제적 능력이 떨어지는 이들에게 전기를 무상 공급하는 쪽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단순히 공공요금을 낮추는 것만이 방법은 아니며, ‘이윤의 공적 통제의 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게 연구자의 주장이다. 이상에서 보았을 때 국유화 그 자체로는 자본을 통제할 수 없으며, “생산 영역에서의 ‘궁극적인’ 조치가 분배 영역에서의 면밀한 가격통제 등과 연결되지 않으면 그 진보적 의의가 퇴색될 수 있음(76쪽)”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증세에 대한 세 가지 논의, ‘증세 없는 복지론’과 ‘보편증세론’, ‘조세정의론’을 다시금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보편증세론’은 노동자와 시민의 자발적인 증세로 지배계급을 압박해 증세를 유도한다는 전략이다. 이 전략은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등 여러 명의 손을 거치면서 정교화되긴 했지만, 시민들의 자발적인 증세가 어느 정도 유효할지, 계급적 차이가 아닌 소득 수준에 따라 사람들을 구분하는 데 따른 정치적인 결과를 얼마나 고려하는지 등 문제점이 있다. 한편 범진보진영에게서 가장 광범위한 지지를 얻는 ‘조세정의론’은 가장 부유한 자들에게서 세금을 많이 거둬야 한다는 논의다. 문제는 누구를 부자로 정의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가 없다는 데 있다. 마지막으로 박근혜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론’은 말 그대로 증세 없이 복지가 가능할 수 있도록 지하경제 양성화 등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이 ‘증세 없는 복지론’을 그 자체로 무의미한 전략이라고 폄하할 수만은 없다는 게 연구자의 논점이다. 진보진영 역시 비과세·감면제도를 정비하고 지하경제를 양성화해 세수를 늘려야 한다는 데에선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 정부는 경제의 진보적 재편이라는 비전이 없기에 2015년 초의 ‘연말정산 대란’ 같은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무엇보다 연구자는 이와 같은 증세 논의가 “소득 범주의 물신화 경향을 보인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원에서의 재검토가 필요하다(80쪽, 강조는 본문)”고 역설한다. 누구에게서 복지재원을 끌어 낼 것인가, ‘누구의 호주머니’를 열 것인가 등의 논의는 임금이 잉여가치의 분배라는 것을 은폐하고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문제로 제기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복지국가를 만드는 데 필수적인 증세에는 계급역관계가 들어 있을 수밖에 없다.

연구자는 세금이 잉여가치의 공제분인 한, 누구에게서 세금을 걷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라고 보며, 바로 그런 의미에서 “증세란 총자본과 그 분파에 대한 총노동, 나아가 사회 전체의 투쟁(82쪽, 강조는 본문)”이라고 주장한다. 그 때문에 소득 범주를 물신화하지 않으면서 실질적인 증세를 끌어내기 위한 전략들, 예컨대 노동자의 힘이 약한 상황에서는 국가를 통한 ‘공공선’을 명분으로 자본을 압박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복지국가는 그 자체로 ‘순수한’ 당위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계급역관계를 고려해야 하는 투쟁의 장임을 다시금 확인하는 데 이 논문의 의의가 있다. 이는 국가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떼려야 뗄 수 없을 것이다. 이른바 ‘진보진영’의 보다 면밀하고 적극적인 연구와 정책 수립을 기대한다.

김주원 리뷰어  leopord8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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