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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ofinale전쟁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대재앙이다. 자연재해가 아닌 인간의 이기심과 잘못된 판단으로 발생하는 이 처참한 현상을 막기 위해 세계는 인류애와 이성을 총동원한다. 반면 국제 사회에서 주된 행위자인 국가는 언제든지 전쟁의 주체가 될 수 있기에 과거에 일어난 전쟁을 복기하고 미래 전쟁에 대비하는 일도 함께 수행한다.

손경호 국방대 군사전략학부 교수의 「걸프전쟁과 이라크전쟁 사이의 전쟁 패러다임 변화 고찰」(『서양사학연구』, 33, 2014)연구는 후자 쪽이다. 특히 이 연구에서 저자는 국가가 주체가 되어 수행하는 전쟁 양상의 변화라는 관점에서 걸프전쟁과 이라크전쟁을 비교한다. 군사사 연구자로서 저자는 역사 안에서 전쟁을 파악한 후 걸프전쟁과 이라크전쟁이 과연 동일한 패러다임에 속한 전쟁인지 질문을 던진다.

인류의 전쟁 패러다임은
어떻게 변화해왔는가

전쟁 양상을 구별 짓는 가장 큰 특징은 이전 전쟁과 차별되는 전쟁 수행 방식이다. 그러나 저자는 방식의 변화만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인식하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새로운 방식이 정착되고 확산되어야만 패러다임의 변화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일회적인 변화가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기 위해 필수로 거쳐야 하는 과정이 바로 조직의 변화이다. 군사조직은 스스로를 전쟁에 최적화 시키려는 성질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 분야 종사자들은 조직의 효율성을 제고시키는 변화가 나타나면 이를 채택하며, 이 변화가 최대의 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노력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패러다임의 변화를 판단하는 척도로 군사조직의 변화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전쟁 패러다임의 변화와 조직 변화와의 상관관계는 유럽에서 16세기 후반 진행된 군사혁명에서 분명하게 식별된다. 군사혁명은 그 태동이 화약무기의 본격적인 사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유럽에서 백년전쟁 무렵부터 사용된 화약무기는 낮은 명중률과 복잡한 장전 동작, 그리고 늦은 발사 속도로 인해 사용에 많은 제약이 있었다. 특별히 개인 화기인 머스켓Musket의 경우 한 발을 사격하기 위해서 많은 동작이 필요해 자신을 오랫동안 상대방 석궁수나 창병에게 노출시켜야 했다.

군사혁명은 본래 군사 분야의 변화가 사회분야의 변화 특히 근대 유럽에 있어 중앙 집권적인 절대 왕정의 형성을 유발한 현상을 지칭한다. 그 가운데 군사혁명이 지닌 군사 분야의 성과는 화약무기를 전쟁에서 본격적으로 사용하게 됨으로써 전쟁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전쟁 수행 방식의 변화와 이에 따른 군사조직의 변화가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166~167쪽)

이러한 상황을 타개한 것이 머스켓의 연속사격 대형이었다. 네덜란드의 모리스 나소(Maurice of Nassau, 1594-1625)와 스페인의 구스타프 대왕(Gustavus Adolphus, 1594-1632)은 수 개의 머스켓 사수로 구성된 오를 편성해 각 오의 사수들이 다른 단계의 장전 동작을 취하며 순차적으로 사격하는 방식을 고안하였다. 이를 통해 사수들은 일시에 탄을 발사할 수 있게 되었고 이것이 집속탄도의 효과를 가져와 막강한 살상력을 지니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나소와 구스타프의 공헌으로 전투 대형이 머스켓 사수들의 순차사격이 잘 구현될 수 있는 보다 단순한 조직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조직은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은 것이었다. 전쟁방식의 변화가 새로운 조직의 형성과 정착을 가져온 것이다.

인류가 경험한 전쟁방식의 변화와 그에 따른 조직의 변화는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특히 눈에 띄는 변화는 프랑스에서 만들어져 나폴레옹에 의해 진가가 발휘되었던 사단 편제였다. 나폴레옹은 군단 예하에 2-3개의 기병이나 보병 사단을 편성하고, 각 사단에는 2개의 여단을, 각 여단에는 2개의 대대로 구성된 2개의 연대를 편성하였다. 사단 제도는 단순함과 정형화된 편성을 바탕으로 대규모로 동원된 국민들을 쉽게 조직화하고 수용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었다. 이후 유럽의 전쟁은 자국의 국민들로 충원된 사단들이 격돌하는 패러다임으로 전환되었다.

아울러 유럽의 국가들은 산업혁명을 경험하면서 그 성과를 군사 분야에 도입하기 시작했다. 막강한 화력을 지닌 대포들이 대량으로 생산되며 병력을 수송하기 위해 철도가 활용되었으며 통신을 위하여 전신이 활용되었다. 전쟁을 지휘하기 위해 독일은 참모집단을 활용했으며, 이 제도는 그 효율성을 인정받아 유럽으로 신속히 확산되었다. 유럽에서 전쟁은 잘 조직된 참모들에 의해 면밀히 계획되고 철도에 의해 기동하며 다량의 포화를 퍼부으며 상대에게 많은 피해를 강요하는 전쟁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어 갔다. 이러한 전쟁의 패러다임은 20세기까지 산업화전쟁의 형태로 유지되었다.

걸프전쟁에서 전쟁 패러다임 변화는
없었다?

걸프전쟁은 1990년 8월 2일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군이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후, 미군을 주축으로 한 다국적군이 7개월 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이라크군 철퇴를 목적으로 개시한 전쟁이다. 이 전쟁은 다국적군이 세계 제 4위의 육군을 포함한 이라크군에 압도적인 승리를 거둠으로써 종결되었다.

“전쟁 기간 동안 이라크군 전차의 손실은 약 3,800대에 달하였지만 미군의 전투 차량 손실은 단 15대에 불과 하였다” (170쪽) ⓒMichael Larson, U.S. Navy

이 전쟁은 첨단무기가 대량으로 사용된 전쟁이었다. 레이더에 포착되지 않은 스텔스기, 크루즈미사일 같은 정밀 유도무기, M1A1 전차, AV-8B 전투기, 아파치 헬기, 그리고 각종 정보를 종합하고 실시간대로 처리하여 제공하는 합동감시 및 목표물 공격 레이더체계(joint Surveillance and Target Attack Radar System, JSTARS)와 같은 무기들이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아울러 이 전쟁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통합된 전쟁이었는데, 슈워츠코프 대장의 지휘 아래 아랍권 국가를 포함한 다국적군이 통합되었고 우주로부터 공중, 해상, 그리고 지상군 작전이 체계적으로 통합되었다.

걸프전쟁은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쟁으로 이해되기 시작하였다. 또한 실질적으로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들도 다수 존재하는 듯 했는데, 혁신이 일어났던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첨단 무기체계의 등장이었다. 레이더 관측을 회피할 수 있는 F-117A 폭격기들은 전쟁 기간 중 42대가 동원되었는데 이들은 전체 다국적군 고정익 항공기 출격 횟수의 2%에 불과했으나 전체 전략목표의 40%를 공격하였다. 또한 걸프 해역 인근에서 발사된 토마호크 미사일은 원거리 정밀 유도무기의 대표적인 예로 장거리 공격임에도 어떠한 항공기 지원 없이 정확하게 목표를 공격하였다. 이스라엘에 배치된 4개 패트리어트 미사일은 날아오는 미사일을 공중에서 격추하는 놀라운 장면을 연출하였다.

저자는 걸프전쟁에서의 선진적인 교리 즉 새로운 전쟁 수행 방식이 적용된 것도 중요하게 평가될 수 있는 요소로 파악한다. 전쟁 기간 중 지상군이 사용한 작전개념은 유럽에서의 소련군을 상대로 개발한 공지전투AirLand Battle 개념이었다. 이 개념은 공군과 지상군의 통합적 운용을 골자로 하는 작전개념이다. 걸프전쟁에서 공지전투는 성공적으로 수행되었는데, 이 배경에는 미국이 합동성 향상을 위해 추진한 노력이 있었다. 즉 각 전구에 속한 부대들이 군을 떠나 해방 전구사령관들의 직접적인 지휘아래 놓이도록 지휘체계를 간명하게 정리한 것이다. 이러한 조치를 통해 미군은 합동작전에 더욱 적합한 체계를 갖게 되었으며 이는 공지전투를 보다 원활하게 수행하는 토대가 되었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특징들에도 불구하고 걸프전쟁을 전후해 전쟁 패러다임의 변화를 증명할 수 있는 새로운 군사 조직의 출현은 그다지 두드러지 않았다고 평가한다. 바로 걸프전쟁에 참전한 부대들이 제2차 세계대전이나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부대들과 큰 차이가 없는 부대 구조를 가졌기 때문이다. 즉 사단의 편제와 장비만 바뀌었을 뿐 사단이 적 전투력을 기동과 화력으로 파괴하는 전투 개념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걸프전쟁은 패러다임의 변화를 완성할 수 있는 군사 조직의 변화가 빠져 있었다.

정보통신기술의 역할 역시 걸프전쟁이 정보화전쟁으로 분류되기 어려운 한계를 지녔음을 보여준다. 걸프전에서 정보통신기술은 다국적군이 전력의 우위를 달성하는데 직접적으로 활용되지 않았다. 정보통신기술은 그저 복잡한 지휘통제체계를 유지하는데 주로 활용되었으며, 다른 수준에 속한 부대나 지휘기구에 동시에 정보가 전파되거나 다른 전투 개체 사이에 전술정보를 공유하여 합동으로 임무를 수행하는 방식 등, 정보통신기술이 직접적으로 전투력으로 변환되는 본격적인 정보화전쟁의 양상이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라크 전쟁에서 미군의 공식적인 공격은 바그다드 시간 3월 20일 05:35에 사담 후세인이 머물 것으로 예상되었던 이라크 근교의 도라 농장에 대한 토마호크 미사일과 F-117 스텔스 전투기에 의한 폭격으로 시작되었다” (175쪽)

 

정보화전쟁으로의 패러다임 변화,
이라크전쟁

걸프전쟁이 종결된 지 10여 년 후 다시 미국은 이라크를 상대로 전쟁을 개시했다. 미국은 이라크가 9·11테러를 지원한 것으로 판단하고 이라크가 보유하고 있는 대량살상무기가 테러단체와 연결되어 다시 미국을 공격하기 이전에 선제공격으로 이를 무력화하고자 하였다. 결국 미국은 전쟁 개시와 동시에 이라크를 압도하여 4월 9일 수도 바그다드를 점령하였으며 5월 1일에는 부시 대통령이 항공모함 에이브라함 링컨호에서 종전 선언을 하면서 끝났다.

물론 미군은 걸프전쟁 이상으로 많은 첨단무기를 활용하였다. 또한 새로운 전쟁 수행 방식을 시도했는데 이는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에 근거하고 있었다. 미국은 이 전쟁에서 그동안 개발해 오던 신속결정작전RDO 개념과 효과중심작전EBO 개념을 실전에 적용하였다. RDO는 전쟁 개시 이전에 적의 도발을 억제하다가 전쟁이 발생하면 지식, 지휘통제, 그리고 작전을 상호 연계하고 결합하여 과도한 국가자원의 소모를 회피하고 최소의 인명피해와 물리적 파괴로 단시간에 신속히 전쟁의 목적을 달성하는 방식이다.

EBO는 적의 군사력을 파괴하기보다는 효과를 중시하여 실제 지휘관의 의도에 필요한 적의 핵심적인 노드(node, 통신망, 혹은 네트워크의 연결점)에 영향을 미치는 전쟁개념이다. 미군의 이라크 전쟁은 정확한 정보의 획득과 유통을 기반으로 불필요한 파괴를 피하고 표적을 정확하게 공격하여 원하는 효과를 얻는 정보화전쟁의 방식으로 수행된 것이다.

사실 미국은 이라크전쟁 이전부터 새로운 전쟁 수행방식에 부합할 수 있는 군사변혁을 추진하고 있었으며 이라크전쟁은 미국이 그동안 추진했던 개혁의 성과를 검증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노력 중 하나가 미 육군의 포스21이다. 포스21은 디지털 장비로 연결된 전투 체계를 구비하면 상대방보다 빠른 속도로 작전할 수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하였다. 또한 이러한 체계는 기갑전력이나 무인비행기 같은 추가적인 장비의 보충 없이 보다 위력적이고 생존성이 높은 형태로 단위 부대를 개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다. 이에 따라 미 육군참모총장인 설리번 장군은 제4사단을 시험사단으로 지정해 1993년부터 시험 평가 및 교리개발을 하도록 실시하였다.

결과적으로 제4사단의 디지털 사단 시험은 어느 정도 미래 디지털 부대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었다. 다만 미 육군은 1997년 디지털 사단의 가능성을 인지하고 전 사단을 이에 맞추어 개편하려고 했으나 여건이 제한되어 이라크전쟁에는 완전히 개편된 디지털 사단들을 전개시킬 수 없었다. 디지털 사단의 편제는 일견 기존 사단의 편제와 비교해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저자는 이 사단은 적어도 화력과 생존성을 네트워크로 보강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본다.

미 육군은 후세인 정권 제거 이후 출현한 무장단체들의 반란을 진압하는 와중에 더욱 극적인 구조적 변혁을 추진하였다. 미 육군은 냉전이 종식되고 대규모 기동전의 위협 대신 테러나 소규모 습격 등을 위주로 하는 반란전 등 각종 다양한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지구 어디라도 신속하게 투입될 수 있는 형태로 사단을 개편하기 시작한 것이다. 미군은 2003년 제3사단을 대상으로 한 시험에서 확신을 얻어 사단을 여단 단위 전투팀으로 편성했다. 이들 여단전투팀은 어떠한 부대와도 자유롭게 조합되어 운영될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며, 특기할만한 것은 이 팀이 합동작전 지휘가 가능한 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자체적으로 네트워크 지원 중대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라크전쟁 기간 동안 활용된 정보통신기술의 역할 역시 주목한다. 걸프전쟁과 달리 이라크전쟁에서 미국은 단순한 의사소통만을 위해 정보통신기술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지휘정보를 공유하며, 감시체계의 데이터를 전송하고, 정밀유도무기에 공격임무를 부여하기 위해 정보통신기술을 사용했다. 덕분에 걸프전쟁에서는 전장가시화 비율이 15%에 불과했으나, 이라크전쟁에서는 70%에 달하게 되었다.

이라크전쟁에서는 정보를 최대한 활용하여 전쟁의 효율을 극도로 높이는 전쟁방식이 등장하였으며, 새로운 방식의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군사조직의 변화가 나타났다. 특별히 변화의 대상이 좀처럼 변하기 어려운 육군의 사단 이었다는 점에서 이는 주목할 만한 변화로 인식되어야 한다. 아울러 이라크전쟁에서는 정보통신기술의 역할이 급격하게 확대되어 전투력 향상에 직접적으로 작용하였다. 이러한 특징들은 이라크전쟁을 걸프전쟁과 달리 새로운 패러다임에 속한 전쟁으로 인식하도록 해 준다.(180~181쪽)

결국 저자에 따르면 걸프전쟁은 산업화전쟁의 최첨단 형태였으며, 이라크전쟁은 정보화전쟁의 첫 전쟁인 것이다. 정보전쟁에 이르러 전쟁의 효율성은 극적으로 상승했으며, 이미 세계 각국은 미국의 정보화전 체계를 따라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논문은 부시 대통령 부자가 대를 이어 수행한 걸프전쟁과 이라크전쟁을 비교하고 있지만 화약무기가 사용된 시기부터 패러다임을 일별해 하나의 인류 전쟁사를 바라볼 수 있게 한다. 논문에서 보듯 인류의 전쟁이 효율을 추구하며 발전해왔듯 그 효율이 극대화 돼 전쟁이 발생하지 않는 지점까지 이르기를 고대한다.

*함께 읽으면 좋을 논문

「정보화시대의 전쟁패러다임과 한국국방의 비전」
정춘일, 2001, 한국지역정보화학회 학술발표대회 논문집 , 203-209.

「미래전쟁 양상 변화와 지상군 역할」
이승호, 2015, 『전략연구』, 22(3),  107-137.

권성수 리뷰어  nilnilis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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