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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ofinale한국현대사에 대한 주목할 만한 연구를 발표해온 박태균 서울대 교수가  미국의 관점에서 본 한국의 8·15(『군사』, 96, 2015)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한국의 입장에서 8·15는 일제로부터의 해방과 광복, 국가수립의 기초가 마련된 사건이지만 미국의 입장은 다르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박 교수는 최근 2~3년간 제출된 새로운 자료를 토대로 미국의 대 아시아 및 세계 전략의 바탕 위에서 당시의 사태를 면밀하게 짚어보고 있어 필독할 만하다.

카이로선언에 “위의 3대국은 한국민의 노예 상태에 유의하여 적절한 시기에 한국이 자유롭고 독립적이 될 것을 결의한다.”라는 내용을 그동안 한국의 독립에만 초점을 맞춰 이해해온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왜 다른 아시아 국가들은 제외하고  한국만 거명이 되었는지, 그것이 어떤 국가의 이해관계를 반영한 것인지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었다는 게 박 교수의 지적이다. 박 교수는 이것을 루스벨트의 아시아에 대한 구상과 전략을 이해한 바탕 위에서 분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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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11월 25일, 카이로에서 열린 카이로 회담에 참석한 중화민국 총통 장제스,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즈벨트,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 출처: 리뷰 아카이브

박 교수는 한국인들은 1945년 8월 15일이 해방을 의미하며, 이는 독립국가를 곧 수립할 수 있는 기회가 눈앞에 다가온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미국이 보는 관점은 달랐다고 말한다. 미국은 한국을 독립적으로 만들지만, 이는 일본 제국을 분할하기 위한 목적에 의해 달성되는 것이며, 더 중요한 목적은 미국의 개입을 최소화하면서도 어느 일국에 의해서 배타적인 주도권이 한반도에 관철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미국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상황이 다시 동북아시아에서 재현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루즈벨트는 원래 대서양 헌장 제3조에 있는 민족자결권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에 걸쳐 적용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유럽, 혹은 처칠은 식민지 지역에 민족자결권을 인정하거나 신탁통치를 실시하는 것은 유럽의 제국 질서를 와해하려는 미국의 새로운 정책이라고 보고 있었다.(그렇지만 대놓고 반대할 수는 없었다.)

장제스의 입장에서는 중국의 주변국이 유럽제국 내에 편입되어 있다는 사실이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장제스의 인도차이나 및 태국의 독립 제안에 대해서는 루즈벨트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상과 같은 당시 미국의 입장을 고려한다면, 카이로 선언의 내용은 중국의 주장을 수용하면서도 유럽의 입장을 고려한 것이었다.

당시 중국을 카이로에 불러낸 것이 미국이었고, 가장 중요한 의제의 하나가 미얀마 전선에서 일본군을 공격하는데 있어서 중국과 영국의 협조를 구하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미국으로서는 중국의 입장을 어느 정도 고려해주지 않을 수 없었다. 소련은 1939년의 할힌골 전투 이후 어떠한 역할도 수행하지 않았다. 특히 1941년 일본과 불가침 조약을 맺은 후 소련은 서부전선에만 집중하고, 동부전선에서는 어떠한 역할도 수행하지 않았다. 오히려 불가침 조약 이후 동부전선에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중국공산당 산하의 일부 게릴라 부대를 소련 영토 안으로 이동시킴으로써 일본과의 군사적 갈등이 발생할 수 있는 불씨를 제거하기도 했다.

따라서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의 제2차 세계대전은 미국이 절대적인 주도권을 가진 상태에서 진행되었다.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에 식민지를 갖고 있었던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그리고 동남아시아에 이해관계를 갖고 있었던 호주가 미국과 공동 작전을 펼치고 있었지만, 주력은 미군이었다. 독일에게 점령당한 프랑스와 네덜란드, 그리고 독일의 폭격에 시달리고 있었던 영국이 아시아 지역에서 군사적 활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했다. 인도차이나 지역에서 일본군이 진주한 1940년부터 1945년 3월까지 프랑스와 일본이 베트남 지배에 대해 공조했던 것도 이러한 상황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한국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는 1945년 8월 15일의 일본 패망이 곧바로 독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영국의 경우 인도에게 이미 제1차 세계대전 시 독립을 약속했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인도가 일정한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독립시켜 줄 수밖에 없었지만, 영연방의 틀 안에서 특수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인도차이나와 인도네시아에는 프랑스와 네덜란드가 복귀했다. 인도네시아의 독립운동 세력들은 1945년 독립을 선언했지만, 1949년까지 네덜란드를 상대로 독립전쟁을 벌여야 했다. 인도차이나 중 베트남도 1945년 독립을 선언했지만, 프랑스가 복귀하면서 1946년부터 1954년까지 독립전쟁을 치러야 했다.

미국의 입장에서 한국의 1945년 8월 15일이 갖는 의미는 일반명령 1호에 의해서 잘 표현되었다. 일본 패망 직후인 8월 17일에 승인된 일반명령 1호에는 일본으로부터 항복을 받아야 하는 행위자들을 규정하고 있으며, 한국의 분단을 규정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38선 이북 지역의 일본군 사령관은 소련군 극동군사령관에게 항복해야 하며, 38선 이남지역의 일본제국 총사령부는 미 육군 태평양사령부에 항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명령 1호에는 분할해서 항복을 받는다는 내용은 있지만, 분단을 규정한 내용은 없었다. 편의상 분할을 통해서 일본군으로부터 항복을 받도록 규정된 지역은 한반도뿐이 아니라 인도차이나, 만주 등도 그러했다.

일반명령 1호에서 분할해서 항복을 받도록 규정된 인도차이나 지역과 만주는 이후에 ‘분단선’ 또는 ‘분단’으로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게다가 미국으로서는 38선을 중심으로 한 분할 점령은 소련군이 더 이상 한반도의 남쪽으로 내려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

한반도가 미국의 관점에서 볼 때 우선순위에 있는 국가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일본의 항복을 받는 지역을 구분하면서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지역에 대해서는 미국이 전 지역에 걸쳐 일본의 항복을 받았다는 점, 그리고 그렇지 않은 지역에 대해서는 분할하거나 다른 나라 사령관에게 항복을 받을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잘 드러난다. 일반명령 1호에 의하면 미군이 온전히 일본군의 항복을 받는 지역은 일본의 주요 4개 섬과 부속도서, 필리핀이었다. 이 지역 외에 미국이 항복을 받도록 되어 있는 지역은 38선 이남의 한반도였고, 이는 전술한 바와 같이 소련군의 남진을 멈추기 위한 조치였다.

카이로 선언에서 일반명령 1호로 이어지는 미국의 한반도 정책은 삼성조정위원회(SWNCC) 문서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이 지침은 일본의 항복에서부터 신탁통치체제가 수립될 때까지의 한국에서의 민정에 관한 기본방침을 규정한 것으로 카이로 선언과 포츠담 선언에 근거하여 태평양 미 육군 사령관이 모든 권한을 행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도 미국의 전략적 관점에서 한반도가 우선적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문제는 한국이 자유롭고 독립적이 될 때까지 미군정의 연장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것이었다. 미국 정부로서는 전략적으로 우선 순위가 떨어지는 한반도에 군사정부를 유지할 만큼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지점에서 몇 가지 원칙이 재확인되었다. 첫째로 한국과 같이 과거 식민지 지역에서 독립국가를 세울 때까지의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나타나는 어렵고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군사정부를 수립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둘째로 미국 시민들이 군사적 필요에 의해 상정된 기간을 넘어서 한국에서의 군사 점령이 연장되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신탁통치안은 미국의 한반도 정책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방안이었다. 커밍스나 개디스, 그리고 매트레이 등이 모두 동의하듯이 당시 미국의 정책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어서 신탁통치는 전략적으로 가장 적합한 정책이었다.

신탁통치 실시 문제는 또한 당시 미국의 현실적인 고려이기도 했다. 미국으로서는 1945년 이후 패전국의 식민지였던 지역, 승전국의 식민지였지만 승전국이 더 이상 구식민 제도를 유지하기 어려웠던 지역을 모두 관리할 수 없었다. 또한 자유민주주의와 민족자결주의, 그리고 자유무역 등 미국의 가치관이 반영된 국제질서를 위해서는 구식민지 방식으로 세계를 관리하는 것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았다. 따라서 신탁통치 방식은 당시 미국의 다양한 전략적 목표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방안이었다고 볼 수 있다.

강성민 리뷰위원  review@bookpo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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