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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ofinale인간은 세상에 일어나는 일을 모두 보고 들을 수 없다. 그럼에도 무엇과 접촉하면 좋거나, 위험하거나, 불쾌할거라는 판단할 수 있는 이유는 경험 추론 이외에도 ‘남의 말’에서 정보를 얻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의 말을 너무 믿으면 팔랑귀라는 별칭을 얻어 나의 팔랑귀적 면모가 또 그렇게 남의 말로 전달될 소지가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지식 중 상당 부분은 남의 말, 즉 ‘증언’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겠다.

한상기 전북대 철학과 교수 역시 「증언에 관한 리드의 비환원주의」(『철학탐구』, 31, 2012)에서 ‘증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태어난 날, 가족관계 등 한 인간의 탄생 정보가 모두 지각해서 안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로부터 전해들은 것을 보면, 우리 삶에서 증언을 통해 얻은 정보를 제외하면 남은 정보가 많지 않다고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증언은 지식과 정당화의 원천으로서 인식론적으로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인식론 연구에서 ‘증언’의 지위는 그리 높지 않다. 특히 로크는 증언에 의존하는 관행을 노골적으로 비난한 바 있다. 흄은 로크보다는 증언의 인식론적 지위를 좀 더 높게 쳐줬다. 그렇다 해도 증언은 단지 지식과 정당화의 이차적 원천일 뿐 지각, 내성, 추론처럼 일차적이고 기초적인 원천은 아니라고 말한다. 즉, 증언에 기초한 믿음의 정당화는 다른 기초적 원천으로 환원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증언에 관한 흄의 이러한 의견을 환원주의적 견해reductionist view라고 한다.

전통적 인식론자들은 이렇게 로크와 흄 사이 어딘가에 있었다. 하지만 이들과 동시대인인 토머스 리드T. Reid만은 달랐다. 그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로부터의 특정 보고가 그르다는 것을 의심할 좋은 이유를 갖고 있지 않는 한 그 증언을 한 사람의 말을 언제나 승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리드의 이러한 주장을 흄과 대비해 비환원주의non-reductionism라고 부른다. 바로 이 리드의 비환원주의가 논문에서 집중적으로 소개되고, 비판적으로 음미되는 이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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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리드

다른 사람의 말을
무작정 믿어야 한다고?

흄으로 대표되는 환원주의자와 리드로 대표되는 비환원주의자 사이에 있는 핵심 쟁점은 무엇일까? 바로 증언이 인식의 원천이 될 수 있는지의 문제이다. 흄의 의견은 이렇다. “증언은 우리에게 지식을 제공할 수 있지만, 우리가 정보 제공자에 대한 실질적인 경험적 정보를 획득할 경우에만 그렇다.” 저자는 이것을 지식에 대한 개인주의적 연구방식이라고 말한다. 반면, 리드는 이 개인주의적 측면을 부정한 사회주의적 측면을 강조하는데, 바로 “우리는 다른 사람의 과거 실적에 관해 무언가를 알지 못하고도 다른 사람의 말을 믿는 일이 정당화된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주장이 가능할까? 저자는 비판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목표대로 리드의 이론을 곧바로 소개하지 않고, 리드의 비환원주의에 비판적 견해를 가진 현대 철학자 반 클리브J. Van Cleve의 논의를 따라간다. 반 클리브의 논의는 세 단계로 이루어진다.

첫 번째 단계,
진실성 원리와 경신성 원리

리드의 주장에는 진실성 원리와, 경신성 원리라는 핵심원리가 있다. 진실성 원리는 “우리는 우리가 옳다고 믿는 것만을 다른 사람에게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고, 경신성 원리는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옳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리드는 이 두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 한 가지 예시를 든다. 만약 흄의 주장에 따른다면, 어린이들은 어른들이 말해주는 무언가를 승인하기 전에 먼저 포괄적 경험을 해야 하고, 그 신빙성을 따지기 위해 귀납논증을 구성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필요한 증거를 수집하기 전에 아마 자동차에 치이거나 독물에 중독될 것이다.” (다른 순화된 예시는 없었을까 하는 생각은 들지만) 이를 통해 리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인간은 증언을 통해 훨씬 더 쉽게 지식을 얻을 수 있게 해주는 두 가지 본유적 경향을 갖는다”는 것이다. 또한 리드는 이러한 경향이 실제적 이점을 준다고 말한다.

두 번째 단계,
지각과 증언의 유비

두 번째 단계는 지각과 증언의 유사성을 검토하는 논증적 작업이다. 흄에 의하면 지각은 ‘정당화된 믿음’을 위한 일차적인 원천인 반면 증언은 그렇지 않다. 하지만 만약, 증언이 지각과 유사한 점이 있다면, 일차적인 원천으로도 간주될 수 있다는 논리이다.

리드는 『인간 정신에 대한 탐구』에서 감각에 의해 주어진 ‘자연의 증언’과 언어에 주어진 ‘인간들의 증언’ 사이에는 유사성이 있다고 공표한다. 리드가 보기에 ‘지각’은 두 종류이며, ‘언어’도 두 종류이기에, 이 둘 사이에는 집합 ‘수’에서 일단 유사성이 있다. 또한 지각에는 ‘원초지각’과 ‘획득지각’이 있으며, 언어에는 ‘자연언어’와 ‘인공언어’가 있는데, 각각은 유사성으로 대응된다.

일단 각 종류의 정의를 살펴보면, 원초지각은 “우리가 어떤 학습에 선행해 갖는 지각이다.” 손 위에 딱딱하고 둥근 공을 올려놓았을 때, 우리는 촉각을 통해 딱딱하고 둥근 대상에 대한 직접적인 믿음을 가질 수 있다. 반면, 획득지각은 말 그대로 획득되는 지각이다. 가령 “정육점 주인은 어떤 시각적 모습의 돼지고기를 저울에 올려놓으면 일정한 무게를 지닐 것이라는 것을 배운다.” 즉, 축적된 경험은 나중에 비추리적인 믿음으로 이어지게 된다.

인공언어와 자연언어는 어떻게 다를까? 인공언어란 “약정에 의해, 또는 계약과 협약에 의해 의미가 고정되는 어떤 표시들의 체계”다. 반대로 자연언어란 “모든 계약이나 협약에 앞서 그저 자연의 원리들에 의해 모든 사람이 이해하는 의미를 갖는 작지만 필수적인 불가결한 표시체계”이다. 쉽게 말해 어떤 맥락에서 짓는 미소는 승인이나 찬성을 의미하는 자연언어의 표시일 수 있다.

그렇다면 리드는 획득지각과 인공언어 사이의 유사성, 원초지각과 자연언어 사이의 유사성을 어떻게 설명할까? 먼저, 원초지각과 자연언어. “자연은 표시와 표시된 것 사이의 실제적 연관을 확립해왔다. 그리고 또한 자연은 우리에게 표시에 대한 해석을 가르쳐왔다.” 쉽게 말해 선천적으로 획득되는 본유적 원리라는 것이다. 원초지각과 마찬가지로 자연언어도 본유적 원리다. 그 근거는 유아가 미소를 보고 승인의 표시라는 것을 알고, 찡그린 얼굴이 화의 표시라는 것을 안다는 점이다. 원초지각과 자연언어 사이 유사성의 또 하나의 근거는 “모든 기후, 모든 국가에서 똑같은 의미를 갖는다”는 점이다.

그 다음은 획득지각과 인공언어 사이의 유사성. 앞의 경우가 본유적 원리에 의한 것이라면 이 경우에는 경험과 귀납을 통해야만 한다는 점에서 공통 특성이 있다. “쇠막대기의 붉은 빛이 열을 표시한다는 것이나 해변에 있는 사람의 작은 크기가 그가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표시한다는 것은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들이다.” 이것이 획득지각의 예시라면, 인공언어는 “표시들은 분절된 소리인데, 이 소리와 표시들이 표시하는 것 사이의 연관은 인간의 의지에 의해 확립된다. 그리고 모국어를 배울 때 우리는 이 연관을 경험에 의해 발견한다.” 즉, 획득지각과 인공언어는 모두 경험에 의해 알려진다.

이러한 지각과 언어의 유사성을 따져봤을 때, 인간들의 언어에 의한 ‘증언’ 역시 지각과 마찬가지로 ‘정당화된 믿음’의 ‘일차적 원천’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리드의 주장이다.

세 번째 단계,
증언에 기초한 믿음이 인식적으로 기초적인가?

세 번째 검토에서는 저자와 반 클리브의 리드에 대한 비판적 견해가 본격적으로 서술된다.

반 클리브에 따르면, 리드의 경우에 지각과 증언을 기초로 믿음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이야기할 때 어디까지가 심리적 메커니즘에 대한 기술이고 어디까지가 인식론적 규범에 관한 이야기인지가 분명하지 않아 보인다. (169쪽)

특히 증언에 기초한 믿음은 리드에게 인식적으로 기초적인 원천의 자격을 갖는데, 반 클리브는 이러한 리드의 견해가 정당화될 수 없다고 본다. 논문에서는 복잡한 반 클리브의 논증이 압축적으로 제시되는데, 이를 더 간명하게 한 마디로 말하자면, “증언은 선천적 원천이 아니기 때문에 기초적인 믿음의 원천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초적 믿음의 원천은 궁극적이어야 한다. 즉 이 원천의 도움 없이는 다른 어떤 원천도 그 주제에 관해 지식이나 정당화를 제공하지 못한다.”

저자는 리드의 주장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리드가 증언에 기초한 믿음의 심리적 메커니즘에 대해 말한 거의 모든 것을 승인할 수 있다”고 말한다. 게다가 진실성 원리와 경신성 원리의 실제적 이점에 대해서 크게 공감한다. 그러나 저자는 “증언은 인식적 의미가 아니라 실용적 의미에서만 정당화된다고 리드는 주장해야 한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흄과 리드가 증언에 관해 상반된 견해를 지니고 있었지만, 두 사람은 대단히 중요한 핵심 신조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둘 다 지식의 원천으로서의 증언이 매우 중요하며, 우리가 증언을 통해 지식을 획득할 수 있다고 보았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드의 견해에 대한 반 클리브의 지적에 대해 성공적인 반박 논증이 제시되지 않는 한 현재 시점에서 리드의 비환원주의는 적절한 정당화 논거를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175쪽)

*함께 읽으면 좋은 논문

「지식과 정당화의 원천으로서의 증언: 흄과 리드」
한상기, 2012, 『범한철학』, 64, 281-305.

「리드의 인격 개념」
김종원, 2015, 『철학탐구』, 39, 133-157.

권성수 리뷰어  nilnilis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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