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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ofinale담배는 신대륙으로부터 전래된 이래 문학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담배와 관련하여 지금의 관념과 당대의 관념 사이의 차이는 상당하다. 당시에는 담배가 건강에 치명적이라는 인식이 보편화되어 있지 않았으며, 오히려 작가들과 일반인들의 흡연율은 지금보다 더 높았다. 이른 나이에 흡연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 담배는 당대의 문학에서 ‘청춘의 상징’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예술가들의 몽상과 쾌락을 위한 수단이기도 하였다. 또한 담배는 민족적·계급적 지향의식을 담는 좋은 수단이기도 하였다. 소래섭 울산대 국어국문학과 교수1920~1930년대의 문학과 담배(『한국현대문학연구』, 32, 2010)를 통하여 당대의 문학이 발견한 담배의 여러 의미를 살펴보았다.

담배의 유혹이 지닌 미학성

신대륙의 발견과 함께 담배가 유럽에 전래된 이래, 문학과 담배는 서로 뗄 수 없는 관련성을 유지해왔다. 특히 작가들에게 담배는 그저 기호품에 그치지 않고 창작을 위한 도구이자 시적이고 신성한 대상으로 여겨져 왔다. 리처드 클라인은 담배의 유혹을 미학적 측면에서 해명한 바 있다. 그는 담배의 심미적 매력, 즉 담배가 흡연가의 삶에 가져다주는 숭고하고도 어두운 미적 쾌락을 보장해주는 것은 담배의 무익성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숭고의 느낌은 단지 간접적으로 발생하는 쾌락이다. 그리고 이것은 짧은 순간동안 생명력이 봉쇄되는 느낌과 곧 그 뒤를 이어 그 생명력이 더 강하게 방출되는 것에 의해서 생산되는 것이다”라는 칸트의 말을 인용하면서, 담배는 해롭기 때문에 오히려 강렬한 매혹의 대상이 된다고 말한다.

1920~30년대 작가들의
흡연 경향

1937년 『조광』에 실린 「담배 피는 사람」이라는 글은 당대 작가들의 흡연 경향을 소개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당대 최고의 애연가는 탐정소설가 김래성. 그는 하루에 열 갑(100개비)을 피웠다고 한다. 월탄 박종화는 하루에 40개비, 하루에 30개비를 피우는 사람으로 서광재, 김진섭, 서항석, 임화 등이 있었다. 10개비를 피우는 작가로 박태원, 김광섭, 이헌구, 엄흥섭 등이 있었고, 채만식은 파이프로 40대 정도를 피웠다고 한다. 안회남은 하루에 한 개비만 피우는 ‘괴벽’이 있었고, 담배를 전혀 못 피우는 무연파는 이태준, 김상용, 주요섭, 김환태, 박용철, 윤기정, 유치진, 김남천 등이 있었고, 담배를 끊은 금연파로는 양주동과 박영희 등이 있었다.

그러나 당대 일반인들에 비해 당대 작가들의 흡연율이 크게 과한 것은 아니다. 개화기에 조선을 방문한 서양인들이 남긴 기록을 보면, 당시 조선인들의 흡연 경향을 놀라울 정도였다고 한다.

대한제국의 남자들이 얼마나 골초인가 하면, 그들이 50여 년 일생 동안 피우는 담배 연기만으로 우리나라 베를린 국립보건소 인원 전체를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게 할 만하다. 그런데도 조선 남자들은 모두가 괄괄하고 건강하게만 보인다. (독일인 에쏜 씨드가 1902년에 발표한 글 中)

당시 총독부가 연초전매수입으로 거둬들인 금액은 막대하여, 경상부이 세입항목 중에서는 철도수입 다음으로 큰 큐모였고, 지세수입보다 많았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특별히 ‘예술가들은 모두 골초’라는 고정관념은 적어도 1920~30년대에는 통용되지 않았던 것 같다.

청춘의 상징으로서의
담배

당시에는 담배가 건강에 해롭다는 인식이 엷었다. 때문에 담배에 대한 규제도 거의 없었다. 따라서 담배를 배우는 시기도 지금보다 훨씬 빨랐다. 『신천지』에서는 저명 인사들의 ‘애연지(愛煙志)’를 연재한 적이 있는데, 필자로 참여한 계용묵, 홍기문, 김용준, 김동명, 서천순, 손우성, 안종화 등의 고백에 따르면, 그들이 담배를 처음 접한 것은 빠르면 7~8세 때였고, 늦어도 중등학교 시기를 넘기지 않았다.

담배가 특히 미성년자들에게 해롭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미성년자들의 흡연을 금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졌다. 총독부는 1938년에야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금주·금연법을 제정한다. 그러나 이 법에서 규정한 미성년자란 만 12세 미만을 의미했으므로, 사실상 규제의 효과는 거의 없었다. 만 12세 이상인 경우에도 중학교 등에서는 흡연을 금지했지만, 학교 화장실은 항상 흡연자들로 북적였다고 한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면, 정지용의 <선취(船醉)1>이 지닌 의미도 더 분명해질 수 있을 것이다.

배난간에 기대 서서 회파람을 날리나니
새까만 등솔기에 팔월달 햇살이 따가워라.

金(금)단초 다섯 개 달은 자랑스러움, 내처 시달품.
아리랑 쪼라도 찾어 볼가, 그전날 불으던,

아리랑 쪼 그도 저도 다 닞었읍네, 인제는 버얼서,
금단초 다섯 개를 삐우고 가쟈, 파아란 바다 우에.

담배도 못 피우는, 숳닭같은 머언 사랑을
홀로 피우며 가노니, 늬긋 늬긋 흔들 흔들면서.
                                                    <선취1> 전문

여기서 화자는 식민지 조국에 대한 애정이 지극하면서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자신의 모습을 “담배도 못 피우는, 수탉 같은 머언 사랑”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당시 학생들은 어른들의 눈을 피해 어릴 적부터 담배를 피웠고, 그것은 모방 심리의 소산이자, 청소년기에 흔히 나타나는 반항심리의 표출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담배도 못 피운다는 한판은 그만한 치기조차 없는 자신의 나약함에 대한 자조적 표현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정지용은 <다시 海峽>이란 시에서도 “스물한 살 적 첫 航路에/ 연애보담 담배를 먼저 배웠다”라고 썼다. 이렇듯 정지용의 시에서 담배는 연애와 더불어 청춘의 상징으로 나타난다.

 

담배 연기의
여러 빛깔

당대의 문인들 중에서 담배에 가장 큰 관심을 보였던 것은 안서 김억이었다. 김억은 담배의 수요가 늘어나는 이유를 ‘자극성 추구’에서 찾는다. 인간은 끊임없이 자극, 즉 쾌락을 요구하기 때문에 담배가 필수품이 되었으며, 담배는 ‘제법무상’이라는 감상적 측면으로 인해 시적 정취가 있다는 것이다. 김억은 담배와 관련된 외국의 사례를 자주 소개하였고, 특히 <Thus think, then drink tobaco>란 외국 작품을 자주 언급했다. 김억은 <연초의 詩趣>라는 글에서 “생의 고난과 생의 피로를 충분히 경험한 사람이 담배에서 나오는 연기를 바라보는 필경에는 인생의 전 광경이 번역될 것이다”라고 썼다. 김억에게 담배 연기는 명상의 도구이자 인생의 무상함을 깨닫게 하는 가장 강력한 상징이었다.

동양에서 담배 연기는 전통적으로 ‘자운(紫雲)’으로 묘사되었다. 실제로 보라색 연기를 만들어내는 담배는 없지만, 담배 예찬론자들은 담배의 신비한 매력을 강조하기 위해 ‘자운’이라는 말을 즐겨 썼다. 그런데 김억은 담배 연기를 항상 검은색으로 묘사한다. 김억이 묘사하고 있는 검은 연기는 몽상과 현실을 교차시킨다. 그래서 담배를 피우면 피울수록 슬픔과 감상은 깊어지게 된다. 이는 김억에게서 술과 담배를 배웠다는 김소월의 작품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김억과 마찬가지로 김소월도 <담배>라는 시에서 담배 연기를 검은색으로 묘사한다. 검은색은 내면의 괴로움과 쓸쓸함을 드러내는 동시에 전설 속 여인의 서러운 죽음과도 맞물려 있다. 이 시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내면의 슬픔이나 죽음과 대면하는 행위인 동시에 그러한 슬픔을 치유하고 죽음을 무화시키려는 행위와도 같은 것이다.

민족과 계급의
슬픔을 담은 담배

식민지 시이게 담배와 관련되어 가장 널리 불리던 노래는 <담바고타령>이었다. 이 노래는 담배가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을 경제적으로 착취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는 점을 신랄하게 지적하고 있다. 이 노래에서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의 토지와 노동력을 정신을 마비시키는 담배와 교환한다. 식민지 시기 동안 이 노래가 널리 유행했던 것은, 이 노래가 일본 침략에 대한 소극적 저항의 한 방편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1921년 7월 일제가 연초전매제를 실시하게 되면서 연초업의 모든 부문이 일제의 통제 아래 놓이게 되었다. 초기에는 전매제에 대한 반발이 만만치 않았지만, 전매 수입은 식민지를 경영하는 총독부의 재정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일제는 철저한 통제를 통해 저항을 무력화시켰다. 이처럼 이 시기 연초 관련 산업은 민족모순과 계급모순이 중첩되어 있는 곳이었다.

임화의 「우리 오빠와 화로」에서 화자의 동생 ‘영남’이는 “地球에 해가 비친 하루의 모―든 時間을 담배의 毒氣 속에다 어린 몸을 잠그고” 산다. 임화가 영남이를 하필 연초공장 노동자로 설정했던 것도 연초공장이 당대의 모순을 전형적으로 함축하고 있는 공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담배를 계급주의적 관점에서 다룬 또 다른 시로 이순업의 「深夜의 獨白-담배를 피여 물고」란 작품이 있다. 화자는 자신이 처한 상실의 고통을 줄담배로 달래며, 계급적 저항의식을 다잡는다. 이 시에서 담배는 계급적 모순으로 인한 화자의 고통을 달래는 동시에 계급적 모순을 타개할 방도를 마련하기 위한 사색의 시간을 마련해준다.

이 논문에서는 담배를 다룬 1920~1930년대의 수필과 시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상의 논의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당대의 조선에 나타난 담배의 위상과 생활 속의 담배가 갖는 이미지였다. 이에 더해 당대 여러 문인들이 ‘담배’를 문학 속에서 어떻게 투영하였는지 잘 살펴볼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 문학에 나타난 담배의 미학적 특성을 보다 명확히 밝히기 위해서는 소설 텍스트와 같은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이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최종원 리뷰어  zwpow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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