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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傳統만큼 논란의 전통이 긴 주제도 드물 것이다. 서구에서도 그렇지만 동양에서는 전통이 더욱 문제적이었는데, 서구라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전통의 꼴사나운 모습을 누누이 지켜보면서 근대화를 이룬 나라들이기 때문이다. 한국, 중국, 다 마찬가지고 일본은 좀 다를까 싶지만 마찬가지의 속성을 지닌다. 여기까지가 20세기의 내용이다. 20에 1을 더한 21세기가 되자 전통을 바라보는 동양권 학자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특히 중국이 그러했다. 개혁개방이후 동북공정까지 숨 가쁘게 달려온 중국이 자신의 전통을 다시 일으켜 세운 뒤 먼지를 털고 의관을 제대로 갖추고자 한 것이 2000년대 들어서다. 하·상·주 단대공정 등 지난 10여 년, 한국과의 고대사 논쟁을 일으켜가며 중국이 추진해온 ‘고대의 재발견’ 노력은 여기서 굳이 일일이 재론하지 않는다. 그냥 한마디로 요약하도록 하자. “정말 열심히 달렸다.”

 

‘곰 토템’론으로 화려하게 등장한
예수셴

그 일사불란한 움직임 속에서도 유달리 ‘창의적’인 학자가 한 명 있으니 그의 이름은 예수셴葉舒憲이다. 동북공정을 주도한 중국 사회과학원의 비교문학연구실 주임을 맡았고 중국신화학회 회장이기도 한 그는 줄곧 역사 속에서 자극적인 반전을 시도하는 인물이다. 먼저 ‘곰 토템’ 논의를 들 수 있다. 지난 2006년 펴낸 저서에서 예수셴은 중국 문명이 곰 토템에 기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곰 토템이 중국 문명의 고고학적 출발인 홍산문화 및 황제 신화와 두루 연결되며 이후 문명의 토대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단군신화 등 북방 이민족의 신화를 이것의 변형으로 파악했다. 이를 두고 한국 고대사학계가 들끓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동북아 곰 신화와 중화주의 신화론 비판』(2009)이라는 관련 연구서를 내놓았고, 여기서 김선자 연세대 교수는, “홍산문화를 곰이나 용이 아닌 그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 전통인 매와 샤머니즘의 관련성 아래에서 읽어내야 한다”라고 주장함으로써 예수셴을 비판했다.

그 이후 몇 년 동안 예수셴의 연구는 ‘전통의 터미놀로지terminology’에 집중되었다. 앞서 ‘곰 토템’ 주장이 갖는 맥락은 이렇다. 유라시아로 시야를 넓혔을 때 한족뿐만 아니라 여러 민족 사이에 가장 보편적으로 퍼져 있는 고대 토템이면서 동시에 ‘황화’로의 귀류 현상이 관찰되는 토템이 바로 ‘곰’이었다. 이는 예수셴이 평소 주장한바, 중국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세계적인 것으로 그것을 위치 지을 수 있는 요소의 발견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곰 토템’의 고고논리학만으로는 그것의 ‘문명적 위상’을 확보하기란 무망한 일이다. 토테미즘은 과거 중의 과거이고 현대 중의 현대인 요즘의 과학혁명시대와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이야기일 뿐이다. 과거가 차곡차곡 쌓여 현대를 이룬다는 입장을 받아들이더라도, 현대에 공헌하는 것은 ‘먼 과거’보다는 ‘가까운 과거’이리라. 푸코가 말하지 않았던가, 인간은 18세기의 산물이라고.

예수셴, 출처: 리뷰아카이브

 

‘대전통/소전통’을
‘소전통/대전통’으로 반전

 

그런데 ‘먼 과거’의 반란이 예수셴을 기수로 중국 땅에서 벌어지는 중이다. ‘대大전통-소小전통’ 논의가 그것이다. 원래 이 ‘대전통-소전통’ 개념을 제시한 이는 미국의 인류학자 로버트 레드필드Robert Redfield다. 그는 상층high·고전classic·엘리트learned 등 이른바 지배층/문자의 문화를 대전통great tradition으로, 하층low·민속folk·통속popular으로 묶이는 민중/구술문화를 소전통little tradition으로 분류했다. 이것이 1950년대의 일인데, 그 이후 이 개념은 “인류학·문학·철학·역사학 등 여러 분야에 수용되어, 대전통은 상층·주류·관방의 전통을 가리키는 한편 소전통은 하층·주변·민간의 전통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곰 토템은 오히려 아이누 족처럼 곰과 함께 살아가는 이들의 전통이 아닐까. 사진은 곰의 영혼을 신에게 돌려보내는 의식. (사진 출처: http://blog.joins.com/media/folderlistslide.asp?uid=oisam523&folder=12&list_id=12842714

그런데 예수셴은 이것을 역전시키고자 한다. 문자 이전의 수천 년의 시공간이 ‘대전통’이고, 이를 바탕으로 하여 성립된 것이 문자 이후의 ‘소전통’이라고 말이다. 이로써 수십 년간 학계에 통용되어온 개념이 호떡 뒤집히듯 뒤집혀버렸고 곧 엄청난 논란에 휩싸였다. 최근 이런 예수셴의 연이은 주장들을 소개하고 조목조목 비판한 국내 학자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이유진 연세대 인문학연구원대전통·소전통 담론의 전복인가, 변주인가?(『중국어문학논집』, 102, 2017)가 그것이다. 여기서 이유진 연구원은 흥미로운 이야기로 논의를 출발시키고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페터 빅셀의 소설 『책상은 책상이다』의 한 대목이다. 아래에 인용해본다.

‘언제나 똑같은 책상, 언제나 똑같은 의자들, 똑같은 침대, 똑같은 사진이야. 그리고 나는 책상을 책상이라고 부르고, 사진을 사진이라고 부르고, 침대를 침대라고 부르지. 또, 의자는 의자라고 부른단 말이야. 도대체 왜 그렇게 불러야 하는 거지?’ (…) ‘이제 모든 것이 달라질 거야.’ 그는 이렇게 외치면서, 이제부터 침대를 ‘사진’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 그 날 이후, 그는 아침에 눈을 뜨면 한참 동안 사진 속에 누운 채로 의자를 무엇이라고 부를지 생각했다. 그러다가 그는 의자를 ‘시계’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러니까 그는 아침에 ‘사진’ 속에서 일어나 옷을 입고, ‘시계’ 위에 앉아 양팔을 책상 위에 괴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의자는 시계라고 부르는데 책상을 ‘책상’이라 불러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책상을 ‘양탄자’라고 불렀다. 그러니까 그는 아침에 ‘사진’ 속에서 일어나 옷을 입고, ‘양탄자’에 놓인 ‘시계’ 위에 앉아 있게 된 것이다. _ 『책상은 책상이다』 중에서, 논문에서 재인용

무얼 말하려는지 금방 알 수 있다. 대전통-소전통 개념은 이미 수십 년간 학계에 공인된 개념으로 자리잡고 있는데 이것을 거꾸로 뒤집는다는 것은 ‘랑그 체계’에서 이탈하는 것이기 때문에 학문적 시민권을 얻을 수 없다는 얘기다. 만에 하나 이것이 가능하려면 그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증거’와 ‘열렬한 호응’이 있어야 한다는 게 이 연구원의 지적이다.

 

문헌은 증거능력 없다,
오직 유물과 도상

도대체 어떻게 이런 식의 도발이 가능한 걸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어 논문을 따라가본다. 예수셴이 주장하는 대전통/소전통 개념의 핵심은 무無문자전통/문자전통이다. 그는 『곰 토템: 중국 시조신화의 근원 탐구』에서 올빼미의 상징을 분석한 적이 있는데, “대전통의 문물과 도상圖像이 보여주는 올빼미의 문화사가 소전통의 한자 텍스트에서는 은폐되고 왜곡되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문자전통에 의한 무문자전통의 왜곡 현상을 수정하기 위해 ‘사중증거법四重證據法’이란 것을 제시한다. 루카치의 ‘최종 심급’ 개념을 떠올리게 하는 이것은 “문헌 자료(1중증거), 고고발굴로 출토된 갑골甲骨·금문金文·죽간竹簡·백서帛書 등의 문자 자료(2중증거), 구전과 의례 등 인류학·민속학 자료(3중증거), 실물과 도상 자료(4중증거)”로 분석 단계를 높여나간다는 것이다. 그는 이 가운데 “4중증거에 해당하는 고고학적 실물과 도상 자료를 법관이 중시하는 물증에 비유할 정도”로 신뢰한다. 그는 계속 “중화문화 내부의 다양성과 풍부함은 중원중심과 한자중심의 소전통에 의해 은폐되었”고 21세기 고고학의 발전으로 사중증거의 새로운 지식이 가져온 대전통의 재발견은 “공자와 사마천이 보고 싶었어도 볼 수가 없었던 중요한 실물 자료와 부호 정보를 보게 해준다”라고 말한다.

이어 이유진 연구원은 그런데 전문자시대의 역사전통을 지칭하는 데 있어서 예수셴은 왜 굳이 ‘대전통’이라는 술어를 사용하고자 할까? 라는 질문을 던지고 아래와 같이 그 이유를 정리하고 있다.

예수셴은 자신의 시도가 기존 대·소 전통 개념의 문화엘리트주의를 겨냥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자신의 입장이 포스트모던과 포스트콜로니얼 관점에 입각한 것임을 강조한다. 대·소 전통 개념의 역전은 ‘무엇이 대大이고 무엇인 소小인가?’라는 가치 판단의 재정립을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문화엘리트주의를 대표하는 것이 문자 권력이라는 맥락에서 보자면, 문화엘리트주의에 반대하는 예수셴은 문자 권력이 만들어낸 전통을 ‘대’전통으로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여기서 ‘대’와 ‘소’에는 전통의 합법성과 정통성에 관한 가치 판단이 농밀하게 녹아들어가 있다. 전통의 합법성과 정통성을 가늠하는 지표로서 근원적 시간의 ‘시간성’은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공동체가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이어 온 사상·관습·행동이 바로 전통이라는 의미에서 그러하다.

예수셴은 페르낭 브로델의 『지중해』 등 프랑스 아날학파가 보여준 ‘장기지속longue durée’의 역사가 역사에 대한 거시적 관점으로 주목할 만하지만, 장기지속의 시간이 불과 500년에 불과하다며 무문자문화를 포괄하지 못하는 한계를 지적하기도 한다. 즉, 그는 대전통/소전통의 이항대립구조의 역사인식 틀을 통해 우리에게 익숙한 ‘장기지속 역사’의 개념마저도 수정하려 드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도출되는 틀에 예수셴은 ‘신화역사’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이 연구원은 말한다. 신화와 역사를 이어붙인 이 개념은 “역사와 신화의 대립을 해소하는 동시에 신화를 문학이라는 협소한 개념에서 해방시켜 중화문명의 근원을 탐색하는 열쇠”로서 기능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비로소 중화문명의 ‘본토성’이 제대로 보인다는 게 예수셴이 다음 걸음을 떼어놓는 지점이다.

 

‘옥玉’이라는
이데올로기

무엇이 본토성인가? 여기에 또 다른 새로운 콘텐츠가 제시된다. 바로 ‘옥玉’이다. 예수셴은 옥을 “중국 대전통의 원형부호”로 간주하는데 그 이유는 유구하고 연속적이기 때문이다.

옥기 제작과 관련된 ‘물질의 서사’ 연대가 8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주장은 유구성의 강조다. 한편 6000년 전 홍산紅山문화의 옥조각 신인상神人像에서부터 청나라 소설 『홍루몽』에서 가보옥賈寶玉이 옥을 물고 태어난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대전통이 끊이지 않고 이어져온 전승의 맥락은 연속성의 강조다.

이 연구원은 예수셴이 이런 ‘유구함’과 ‘연속성’ 양자를 ‘코딩coding’이라는 개념으로 발생학적으로 관련짓는다고 분석한다. 그에 따르면 역사의 단절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수만 년의 구전문화가 신흥의 문자문화 속에서 종결·대체된 과정이 살펴지고, 연속이라는 측면에서는 대전통 속의 신성물 숭배와 신화관이 한자 발생에 중요한 원형 코딩의 기초를 다져주었다. 그리하여 예수셴은 “문물과 도상이 구성한 대전통의 문화텍스트 코딩을 1급 코딩으로 간주하고, 문자 소전통의 맹아를 2급 코딩의 출현으로 간주하며, 문자텍스트인 초기 경전을 3급 코딩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경전시대 이후의 모든 글쓰기는 거듭하여 코딩된 것으로, 그 수를 헤아릴 수 없기에 N급 코딩(N-level coding)으로 통칭한다”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이 연구원은 이를 쉽게 사례로 설명해주는데, 예수셴에 따르면 “중국문화 속의 ‘개구리신蛙神 주제’를 ‘코딩 이론’에 따라 분석하자면, 양저문화의 옥조각에 보이는 개구리신이 1급 코딩, 한자의 ‘와蛙’가 2급 코딩, 고대의 경전인 『월절서』에 나오는 개구리 이야기가 3급 코딩이다. 『요재지이』의 「청와신靑蛙神」에서부터 모옌의 『개구리蛙』에 이르는 후대의 창작은 N급 코팅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뭔가 일목요연한 듯하면서도 예수셴의 이론이 매우 도식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하는 대목이다. 논문은 이런 입장이 예수셴에게서 독자적으로 발생한 게 아니라 기존 학계에 참조할 만한 논의들이 있어왔다며 그 맥락을 보강해주는데 그 부분은 직접 읽어보면 될 것이고, 우리의 관심은 이 연구원이 예수셴의 ‘개념화 작업’에 어떤 평가를 내리는가다.

 

탈서구가 곧 학문적 윤리는
아니다
문자가 새겨진 홍산문화의 옥 유물. 출처: 리뷰아카이브

 

논문의 뒷부분에서 여러 인터뷰를 통해 소개되는 바로는, 문자지식과 사회권력이 공모 관계에 있다는 것이 예수셴의 입장이다. 때문에 그는 문자전통이 구축한 감옥에서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인식상의 식민주의를 해체하고 패권 담론을 해체하는 학문 윤리의 역할”이라고 강조한다. 무문자전통을 ‘대’전통으로 끌어올린 작업이 과연 패권 담론의 해체라는 학문의 윤리성을 구현한 것일까? 논문의 필자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는 오히려 ‘또 하나의 패권’을 읽어낸다. 예수셴은 가장 최근의 글인 「옥석신화신앙과 화하정신」에서 결국 무문자전통의 ‘대’전통 탐색은 ‘중화’의 추구와 공명共鳴하는 것이라는 게 드러난다. 8000년의 옥문화를 강조하는 이유도 “중화문명이 어떻게 옥문화를 통해 ‘다원일체’를 실현했는지 밝히는 것”이 핵심적인 내용이라는 것이다. “옥문화의 연구성과가 ‘일대일로一帶一路’의 국가전략에 부응하고, 다민족의 단결·공영·호혜의 새로운 장을 열 것이라는 기대”도 내비친다. 이 연구원은 예수셴의 이런 의도가 그가 말하는 학문적 윤리와 얼마나 부합하는 것이냐고 묻는다. “전형적인 중국 담론과 중국 경험이 세계 평화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 필자로서는 이해할 수 없다”라고도 덧붙인다.

분명한 것은 새로운 ‘대전통’ 개념이 중국의 시공간적 범위의 확장과 연동된다는 사실이다. 중화의 유구함을 증명하기 위한 역사 끌어올리기, 유기체로서의 중화를 강조하는 다원일체론, 이는 중국의 시공간적 범위의 확장과 관련된다. 예수셴이 주장하는 대전통 개념은 바로 이러한 중국의 시공간적 범위의 확장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고대사나 사상 분야에서는 예수셴을 비롯해 리쉐친, 거자오광 등이 근현대에서는 간양, 왕후이 등의 학자가 반서구 내지는 탈서구적인 자세에서 중국적인 것을 재탐구하여 보편으로 끌어올리려는 다각적인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작업들이 얼마나 설득력을 얻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이유진 연구원의 이번 논문을 통해서 볼 때 중국적인 것의 보편화를 통한 현실 중국의 확장은 적어도 순수하게 문화적인 차원에서는 그 전파력을 쉽게 얻기는 힘든 것으로 보여진다.

강성민 리뷰위원  paperfac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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