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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메모리얼
DBpia Report R은 세월호 3주기를 추모하며, 학계의 세월호 연구를 논문리뷰 연재기획 “세월호 메모리얼”로 돌아봅니다. 우리 사회는, 우리 개인은 세월호를 어떻게 기억하고 겪어내고 있을까요? 4월 한달, 매주 한편씩 발행되는 논문리뷰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소개되는 논문전문은 리뷰 발행 후 1주일 간 자유롭게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세월호 메모리얼 1 >>> 친구잃은 학생들은 그 후 어떻게 됐을까?
세월호 메모리얼 2 >>> ‘사회적 고통’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세월호 메모리얼 3 >>> 미디어는 세월호를 어떻게 다뤘나?

 

logofinale언론과 인터뷰를 해본 사람들은 안다. 기사화된 자신의 말이 뭔가 어색하고 인터뷰 당시의 맥락과 부합하지 않을 때가 있다는 것을. 강조했던 부분들은 사라지고 지나가는 말이 제목으로 뽑히거나 중요하게 인용되는 경우도 많다. 그렇게 만들어진 인터뷰가 ‘메시지’가 되어 대중을 향해 쏘아진다.

미디어는 ‘마사지’라는 말이 있듯, 미디어가 보여주는 현실은 사실 재현이다. 그런데 자각하기 힘들다. 가령, 세월호 같은 재난 특별방송에서는 생방송으로 현장을 비춰주기 때문에 여기에 방송사의 판단이나 기술적·능력적 한계, 시선에 의한 부각, 교묘한 조작이나 은폐 등이 개입됐다고 생각하기 힘들다. 대개 그러한 사실은 미디어비평을 통해 반추될 때에야 “그랬구나” 하고 알게 된다.

모든 ‘사건·사고’는 발생되는 순간 미디어를 통해 ‘사회적’ 맥락에 꽂혀버린다. 지난 3년 세월호와 관련하여 당사자들의 많은 고통이 있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공감도 매우 높았다. 하지만 이 ‘고통’의 문제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는 논문이 있다. 이현정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세월호 참사와 사회적 고통: 표상, 경험, 개입에 관하여(『보건과 사회과학』 43, 2016)에서 “참사의 고통은 다양한 사회 집단이 처한 맥락과 조건에 따라 다른 형태의 고통과 삶의 문제로 경험되거나 집단 간의 갈등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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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가 왜 거부됐는가

고통은 단순하지 않다. 복잡한 맥락을 가진다. 논문에서 가장 쉬운 예를 하나 들어보자. 세월호 사건 발생 직후부터 미디어를 통해 강조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대한 걱정과 우려 속에서, 보건복지부는 곧바로 ‘안산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를 설립했다. 그리고 이곳 전문가들은 참사로 자식을 잃은 가정을 방문하여 예방적 차원에서 가족들의 자살위험도를 측정했다. 여기엔 유족의 상황을 미처 고려하지 못한 두 가지 판단 미스가 있다. 첫째는 센터의 명칭이다. ‘정신건강’과 ‘트라우마’라는 단어가 정신이 건강치 못함과 트라우마가 ‘있다’는 걸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가족협의회의 요청에 따라 이 이름은 곧 ‘안산온마음센터’로 변경되었다. 둘째는 사전에 허락을 받지 않고 자살위험도 측정을 한 것이다. 이는 자살 예방적 측면에서는 필요한 조사였을지 모르지만, 자식을 잃고 집안에서 넋이 나간 채 고통을 겪는 부모들에게 폭력적으로 느껴진 측면이 있었다. “자살을 생각하거나 시도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은 자식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는 유가족에게 “왜 아직도 죽지 않고 살아 있느냐”는 질책처럼 들릴 수 있었던 것이다.

 

전문가의 ‘진리’ vs. 현장의 ‘반응’

전문가들이 생각하는 ‘진리’는 현장에서 먹히지 않을 때가 많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쪽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논문에서 이현정 교수는 동서양의 차이로 간단히 설명한다. 미국에서는 재난이나 사고로 자식을 잃은 부모는 스스로 ‘피해자’라 인식하는 문화가 확고히 형성돼 있다. 그래서 구조와 위로의 손길에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런데 한국은 그렇지 않다. 자식과 부모의 일체화가 훨씬 강도가 높고, 부모는 ‘죄의식’에 휩싸여 있다. 배가 가라앉을 때 뛰어들어 구하지 못했다는 등 ‘자책의 심리구조’가 훨씬 강고하다. 이런 부분을 감안하지 않은 ‘보편적 의료 개입’은 따라서 삐걱거릴 수밖에 없다.

이처럼 순수하게 돕고자 이뤄진 ‘전문가의 개입으로 인한 상처’는 논문의 제목 ‘사회적 고통’에서 일정한 부분을 차지한다. 물론 더욱 큰 부분은 우리 사회의 공격적, 신경질적 반응에 있지만 말이다. 논문에 나타난 사례들을 간단히 짚어보면서 그것들이 어떻게 ‘사회적 고통’을 만들어나가는지를 살펴보자.

저자의 말대로 고통은 문화적으로 표상되고 소비된다. 표상에 개입하는 게 미디어라면 소비하는 건 대중들이다.

 

사실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버젓이 ‘전원 구조’라는 대형 오보를 냈으며, 부모와 오빠를 잃은 6살 어린 아이의 얼굴 사진을 그대로 보여줬고, 겨우 구조되어 나온 학생에게 ‘친구가 죽은 사실을 알고 있느냐’며 인터뷰를 요청했다. 사고의 원인이나 대책에 대한 논의보다 사망자 보험금이 얼마인지 계산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피해자들의 슬픔과 인권을 무시한 채 선정적인 보도를 일삼았다. (68-69쪽)

 

미디어의 표상은 시간이 지나면서 편가르기 현상을 보인다. 진영 정치화된 양극단, 즉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측과 반대로 혐오하는 측의 입장이나 정서를 조장하는 이데올로기적 담론을 생성하고 확산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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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경향신문 추모페이지 http://sewol.khan.co.kr/memorial/
양 극단을 오간 미디어, 생존자·유가족에 무관심 

미디어는 사고 현장인 진도를 떠나 안산으로 돌아온 생존자들과 유가족들이 그 이후부터 얼마나 다른 사회경제적 조건 속에 놓이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관심했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가까운 친지나 이웃과의 관계가 어떻게 변했는지, 직장이나 학교생활에서는 무엇이 달라졌는지, 신체적·정신적 질병의 발병이나 사고 자체로 인한 트라우마와 그것을 관리하지 못하거나 외적 충격으로 재차 발생하는 곁가지 트라우마의 양상에 대해서 거의 다루지 않았다. 반면 미디어는 아래와 같은 것에 주목했다고 저자는 질책한다.

 

단식과 집회에 참여하는 유가족들의 투쟁적인 모습과 배·보상금 수혜자로서의 이미지는 모든 언론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되었다. 또한 유가족들이 참 사를 통해 삶과 가족, 나아가 물질중심주의의 현대 사회에 대해 갖게 된 남다른 반성 과 깨달음에 대해 조명하기보다는, ‘노동계급 출신’ 또는 ‘외국인 밀집 주거지역이 많 은 안산 거주민’이라는 사회경제적으로 능력이 부족하고 불쌍한 희생자의 이미지만을 강조하면서 타자성을 강화시켜왔다. (…) 결국 단순하고 과격한 이미지로서의 고통의 생산, 유가족들의 진영 정치 프레임으로의 포섭, 참사에 대한 배금주의적인 해석, 그리고 참사 피해자들에 대한 거리두기 및 타자화가 반복되는 속에서, 대중들은 점차 생존자 및 유가족의 고통에 대해 ‘피로’와 ‘지루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69-70쪽)

 

참사 이후 사회적 애도기간이 지나가 조정국면에 들자, 일베의 야료가 시작되었다. 희생자와 그 가족들을 희화화하는 일종의 모독행위들이다. 그리고 이른바 ‘어르신’들의 막말이 강타했고 유가족이 웃는 모습이 미디어를 통해 왜곡돼 보도되기도 했다.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의 간극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의 간극도 컸다. “자녀를 잃은 유가족과 자녀가 살아 돌아온 생존자 가족 사이에는 과거의 친밀감으로 도저히 그 거리를 좁힐 수 없는 살얼음 같은 차가운 긴장과 적대가 흐르기도 한다. 같은 학교나 학원을 다녔던 희생자의 형제자매들과 생존 학생들 사이에도 마찬가지의 불편함과 불신이 존재하며, 간혹 갈등의 폭발로 인해 이미 다치고 상처받은 마음에 또 다른 생채기가 생기기도 한다.” 부모들은 진상규명 운동을 위해 싸우는 동안, 집안에 홀로 ‘방치’된 다른 자녀들에 대한 걱정으로 심리적으로 불안했고 위축되었다.

친척, 친구, 이웃으로부터 받은 상처는 고통의 또 다른 축을 이룬다. 잘못된 언론 보도를 보고, 유가족이 엄청난 배상금을 받았다고 착각하는 친척이나 친구들은 비싼 상품의 구매나 투자를 권유하거나, 심지어 어려운 생활 처지를 도와달라며 돈을 요구하기도 했다. 사고 전에 아이가 늘 인사했던 동네 어르신들은 온통 세월호 이야기로 뒤덮인 안산을 불만스러워하면서 “아이가 죽은 게 무슨 벼슬이냐”고 소리치기도 했다. 이럴 때면, 유가족들은 관계에 대한 허망함에 안산을 완전히 떠나버리고 싶은 마음이 울컥 치밀었다고 한다.

 

정부와 미디어는 배상금 금액을 부풀리고 마치 국민의 혈세로 지급하는 것처럼 흑색선전을 일삼지만, 유가족들의 상당수는 혹시라도 그 돈을 받으면 진상규명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마음에 신청을 거부해왔다. 사실 부모들을 더욱 가슴 아프게 하는 것은 정부가 배상금을 책정할 때 단원고 희생 학생들의 삶의 가치를 그들이 되고자 했던 꿈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 없이 ‘도시일용직노동자’를 기준으로 책정했다는 사실이다. 단지 가난한 노동자 계급의 부모를 가졌다는 이유로, 아이들이 스스로의 꿈과 노력은 무시된 채 ‘노동자 계급’으로 취급되는 것을 보면서, 유가족들은 또 한 번 상처를 받았다. (73쪽)

 

그 외에도 무수한 고통들이 이어졌다. 진상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생기는 고통 등등 헤아릴 수 없다. 저자는 따라서 “‘유가족의 고통’ 또는 ‘생존 학생의 고통’이라고 명명된 내용들이 이들 각자의 고통, 나아가 세월호 참사가 야기 시킨 사회적 고통을 완전히 드러낼 수도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나아가 “참사가 불러온 사회적 고통의 상당한 부분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아직 언어나 증상으로 표현되기 어려울 수 있다. 지금 우리가 현상적으로 접하는 고통이란 빙하의 아주 작은 일부분일 지도 모른다”라고 매듭지었다.

논문의 저자 이현정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는 2014년 5월 초부터 안산시를 중심으로 광화문, 진도, 동거차도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지역에서 현장연구를 수행해왔다. 특히 피해자의 고통을 최소화하고자 하는 실천적 목표에 공감하는 의료인류학자로서, 트라우마 치료기관인 ‘안산온마음센터’와 세월호 참사 관련 기록수집 시민단체인 ‘416기억저장소’(현재 4.16가족협의회 산하기관) 두 기관의 활동에 참여해왔다. 국가와 미디어를 불신하는 유족 및 관련자들의 기억을 ‘학자적, 교육자적 양심’으로 차곡차곡 모아가는 작업을 진행중인 것이다. 최근 유족의 동의를 얻어 일반 대중에게 공개되고 있는 ‘416기억저장소’의 기록물은 우리에게 아마 날것으로 보여줄 것이다. 사회적 고통이 어떻게 표상되고 소비되고, 그리고 전문가들의 이름으로 이뤄지는 개입이 어떤 지점에서 사회적 고통을 완성해나가는지를 말이다. 근대 학문의 분과학문적 체제가 갖는 문제점에 대한 지적 역시 오늘날 학문 시스템에 대한 반성을 불러온다.

강성민 리뷰위원 paperfac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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