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enagers conducting an experiment in a chemistry laboratory

logofinale과학기술만큼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으면서도 시민과 동떨어진 분야도 없을 것이다. 이런 현상은 과거 과학기술을 전문가들의 영역으로 분리하여 일반 시민들은 과학을 잘 알지 못하는 무지한 대상으로 치부하고 과학을 잘 아는 전문가들이 그들을 계몽해야 한다는 역사적 인식의 연장선 상에 있다. 그러나 시민사회가 성장함에 따라 사회적으로 계속 불거지는 여러 문제들, 가령 유전자 조작 식품의 안전성, 원자력 발전소 등과 같은 과학기술의 문제가 더 이상 전문가들에게만 국한시켜 논의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인식 또한 증가하고 있다.

이영희「과학기술 시티즌십의 두 유형과 전문성의 정치: 과학기술 대중화 정책과 `차일드세이브`의 활동을 중심으로」 (『한국사회과학연구회』 , 10, 2014)에서 한국에서 과학기술과 시민의 관계가 어떤 역사를 거쳐왔는지를 정리하고, 오늘날 어떤 모습을 하고 있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차일드세이브’ 라는 사례를 통해 분석한다.

 

시티즌십과 전문성의 정치

최근 들어 과학기술에 대한 대중의 참여가 중요하다는 연구 주장들이 계속 나오고 있지지만 여전히 과학기술과 대중의 관계는 대중이 과학기술 지식을 결여하고 있다는 ‘결핍모형’을 전제로 하고 있다. 더구나 그 관계가 형성되는 과정 역시 실제 “지식권력이나 전문성 문제가 어떻게 개입되고 있는지” 등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생략하고 있다. 논문의 저자는 과학기술과 시민의 관계를 보다 동태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과학기술 시티즌십’ 그리고 ‘전문성의 정치’ 라는 두 가지 개념틀을 가져왔다.

우선 시티즌십은 “시민의 지위와 시민적 실천에 관련된 일련의 가치와 규범의 관계를 표현하는 개념”으로 크게 “지배 세력이 위로부터 시민들에게 부과하는 수동적(passive)” 형태와 “아래로부터 종속적 지위에 처해 있는 시민들에 의해 요구되어 사회적 쟁투를 통해 만들어지는 능동적(active) 형태” 2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77쪽) 다시 말해, “국가가 중심이 되어 위로부터 기회하고 실행해나가는 형태”, 그리고 “사회운동이 중심이 되어 아래로부터 형성해 나가는” 유형이다. (178쪽). 과거에는 이런 시티즌십 개념이 자유주의적 개념, 즉 권리만 다소 강조되는 경향을 보였지만 최근에는 여기에 시민의 의무와 책무, 덕성 등을 포함하여 균형을 맞추고 있는 추세이다. 이에 기반한 과학기술 시티즌십은 “과학기술의 사회적 형성과정에 보다 시민적이고 민주적이며 생태친화적인 가치들을 부여할 수 있도록 과학기술 발전에 대한 민주적 거버넌스를 잘 구축하고 그 속에서 시민들이 정당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179쪽) 다시 말해, 과학기술 시티즌십은 과학기술과 시민이 어떻게 관계맺음을 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방식이다.

두 번째로 저자가 설명하는 “전문성의 정치(politics of expertise)란 과학화, 기술화, 전문화를 특징으로 하는 현대 사회에서 과연 어떤 집단의 전문성(지식)을 사회적으로 가장 가치 있으며 믿을 만한 것으로 여겨야 하는가를 둘러싸고 사람들 사이에서 형성되는 갈등적 경합 과정”으로 정의된다. (181쪽) 이 역시 두 가지 형태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첫 번째가 전문가지식(expert knowledge) 내부에 한정하여 이루어지는 정치이고, 두 번째는 시민들이 일상적 삶의 경험을 통해 체득한 시민지식(lay knowledge)이 맞서는 형태로 전개되는 정치이다. 전자의 예시로는 새만금 개발사업의 환경영향에 대한 주류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 수 있고, 후자의 예시로는 삼성반도체공장 백혈병 산재인정을 요구하는 소송에서 일반 노동자들이 현장 경험에 기반하여 동원한 지식 투쟁의 사례를 생각해볼 수 있다.

 

위로부터의 과학기술 시티즌십과 전문성의 정치:
정부 주도, 계몽과 구분짓기

‘과학기술 시티즌십’과 ‘전문성의 정치’ 개념을 정리했다면 이제 과학기술과 시민사회가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모습을 갖게 되었는지 살펴볼 차례이다. 1960년대부터 추진해온 과학기술 대중화 정책은 대표적인 위로부터의 과학기술 시티즌십으로 197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973년 박정희 군사정부는 위로부터 조직된 일종의 ’전 국민의 과학화 운동’을 추진했고, 과학기술 대중화를 위해 과학기술풍토조성사업과 국립과학관 건립, 한국과학기술진흥재단의 설립 등의 정책을 시행하였다.

1970-80년대 정책의 특징이 ‘국민 대중’을 계몽시켜야 하는 대상으로 상정한 데 반해, 1980년대 후반부터는 “과학기술(정책)의 국민적 수용성(public acceptance)을 강화시키기 위한 사업들에 강조점”을 보였다. (188쪽) 운동 대상의 주체와 범위가 확대된 ‘과학기술 국민 이해 증진사업’, ‘과학기술문화 확산사업’ 등이 시행되었고, 더불어 환경이나 원자력 문제와 같이 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슈들은 정부가 직접 나서거나 특정 과학기술에 대한 대중화를 전담하는 기관을 설립하여 대국민 홍보사업을 추진하였다. 원자력이 안전하고 원자력은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메세지를 홍보하는 원자력문화재단이 그 대표적인 예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까지 이어진 과학기술 대중화 정책을 과학기술 시티즌십의 시각에서 평가, 즉 과학기술에 대한 시민의 역할이 무엇이었는가를 중점적으로 살펴보면 1980년대 중반까지 시행된 정책에서 시민들은 “근대화의 역군이자 산업전사”로 호명되었고, 국가 개발의 미명 하에 과학기술을 부지런히 익혀 국가발전에 이바지할 것을 요청 받았다. 반면 1980년대 후반 이후 민주화 사회가 시작한 이래 시민들은 “과학기술을 이해하고 지지할 줄 아는 ‘과학화된’ 국민’이 될 것을 요구 받았다. (187-188쪽) 그러나 두 시기 모두 시민들이 전문가들 또는 정부로부터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피동체로 호명되는 점에서 과학과 시민의 관계는 여전히 “위로부터 동원되는 하향적 과학기술 시티즌십”을 전제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전문성의 정치 역시 과학에 대한 전문성은 과학자들과 같은 특정 전문가 집단만이 공유할 수 있는 것으로만 존재했고, 전문가들이 내린 결정을 시민들은 무조건적으로 따라야 했다.

“… 오로지 과학기술 전문가들과 기술 관료들만이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전제하고 비전문가로 인식되는 일반 시민들이 그에 대해 도전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것, 이처럼 전문성 및 전문가를 문제화하는 것이 금기시되고 오로지 전문성에 대한 숭배만이 장려된다는 사실 그 자체가 바로 전문성 정치의 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190쪽)

요컨대 ‘위로부터의 과학기술 시티즌십’과 ‘전문성에 대한 경합이 사실상 부재한 정치 구조’에서 시민들의 능동적 참여는 찾아보기 힘들고, 과학과 전문성의 권력은 더 공고화 될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본 논문이 분석하는 ‘차일드세이브’는 기존의 구조에 저항하여 새로운 형태의 능동적인 시민과학 활동의 대표적 사례라 볼 수 있다.

 

아래로부터의 과학기술 시티즌십과 전문성의 정치:
전문가와 경합하는 “차일드 세이브”

2011년 동일본 후쿠시마에서 일어난 원전 사고는 시민들로 하여금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경각심을 다시금 일깨우는 사건이었다. 특히 일본과 근접한 지리적 요건을 갖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원전 사고로 인한 피해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차일드세이브는 방사능 위험 문제를 심각히 여긴 주부들이 조직한 시민과학 활동으로 여기에 소속된 시민들은 “스스로를 시민과학 활동의 주체로 내세우며 정부와 공공기관의 방사능 전문가들과 방사능 위험 문제를 둘러싸고 격돌”했다. (191쪽)

아래로부터 상향적으로 과학기술 시티즌십을 형성한 대표적인 사례인 차일드세이브 단체의 초기 주요 멤버들은 좋은 식재료에 관심이 많았던 한 요리 커뮤니티의 주부 멤버들이었다. 후쿠시마 원전 사건 이후 일본산 먹거리 등을 포함하여 원전 피해를 염려한 일부 멤버들은 그들이 키우는 아이들을 방사능 위험으로부터 지켜야 한다는 의무 때문에 적극적인 자세로 문제에 임했다. 그러나 정부와 원전 전문가들은 ‘안전하다’는 답변만 반복할 뿐이었고, 회원들은 결국 직접 방사능 위험 문제를 학습하고 문제를 진단하기로 결정한다.

 

 

이들은 온라인 자료 공유와 오프라인 강연을 통해 관련 지식을 습득한 이후 방사능 수치를 측정하는 기구를 구입하여 스스로 방사능 오염 측정에 나섰다. 노원구에서 한 회원이 측정한 아스팔트 길에서 기준치 이상의 방사능 수치가 나와 사회적으로 논란이 됐던 ‘방사능 아스팔트’ 사건은 차일드세이브 회원이 주도한 ‘시민과학(citizen science)’ 활동 중 하나이다. 처음에 위험성을 부정했던 관련 구청과 서울시는 이 민원을 받아들여 오염된 아스팔트를 제거했다. 또한 차일드세이브 회원들은 2012년 분유에 있는 방사능 수치를 측정하여 일동후디스 분유에서 미량의 세슘이 검출된 결과를 외부에 공개하는 등 특정 먹거리에 대한 방사능 위험 수치를 지속적으로 조사하였다. 더 나아가 이들은 정책 결정에까지 영향을 미치는데, 다른 환경 시민단체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의견을 개진하고, 국회 정책토론회에서 시민 패널로 참여하기도 했다. 방사능 안전급식 조례안이 통과되고, 후쿠시마 주변의 8개 현에 대한 수산물 수입 금지 조치 등은 모두 이런 활동의 결과물로 볼 수 있다.

 


차일드세이브 회원들이 학교 급식을 방사능 위험으로부터 지키고자 하는 노력으로 발간한 개정 제안서
차일드세이브 활동은 앞서 위로부터의 과학기술 시티즌십에서 나타난 정부 주도의 과학 대중화 활동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시민들 스스로가 지식을 습득하고 자체적으로 문제를 평가, 시민운동을 통해 정책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과정들은 과거 정부가 정책을 조직하여 시민들을 과학 시민으로 호명하고 가르쳤던 모습과는 상반된다.

“이처럼 차일드 세이브가 자녀들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 스스로가 방사능 위험이라는 문제 상황을 공유하고 학습하고 측정하는 시민 과학 활동을 수행하게 된 것은, 방사능의 측정과 위험도 해석이라는 주류 전문가들의 과학활동에 대한 신뢰성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 시민들 스스로 수행한 시민적 책무라고 할 수 있으며, 동시에 차일드세이브가 급식조례 개정 요구 운동이나 탈핵을 주장하는 시민운동에까지 참여하게 된 것은 바람직한 과학 시민이 되는 데 필요한 시민적 권리를 적극적으로 나서서 행사하는 행위의 하나로 볼 수 있다.” (196쪽)

차일드세이브 회원들의 활동은 기존에 전문가와 비전문가를 나누어 과학기술에 대한 문제를 전문가들의 영역에서만 논의하고 그 결과를 비전문가가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야만 했던 전문성의 정치와 다르게 시민들이 전문가들의 지식에 끊임없이 도전하고 갈등을 빚는 과정이었다. 이들은 전문가들의 판단을 일방적으로 수용하기 보다 의심하거나 스스로 확인하려 했고, 전문가들이 공표한 전문지식을 탈신비화하고 문제시했다. 전문성을 둘러싸고 전문가들과 시민들이 경합, 그 과정에서 시민들은 또한 대항 전문가들과 연대하여 주류 전문가 집단에 맞섰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하여 형성한 아래로부터의 과학기술 시티즌십과 이 과정에서 시민들이 전문가들과 경합하는 차일드세이브 사례는 “바야흐로 동원되고 계몽되는 과학기술 시민이 아니라 도전적이고 급진화된 과학기술 시민이 등장”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196쪽)

 

문지호 리뷰어  lunatea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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