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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ofinale조선시대를 가리키는 용어로 절대 빠지지 않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사대事大다. 사대는 『맹자孟子』에서 유래한 개념으로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이 사대의 자세를, 조선은 중국 왕조에 대해 500여 년 동안 지독하고도 철저하게 유지했다. 이러한 조선의 사대를 현재의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 질문과 관련해서 이미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고 또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연구자에 따라 사대는 조선의 정체성停滯性과 타율성他律性을 강조하는 근거로, 혹은 조선의 주체적인 실리외교의 근거로 해석되어 왔다. 조선의 사대를 어떻게 분석하고 이해하느냐에 따라 조선의 ‘대외관계’는 물론, 조선시대의 성격이 결정되었던 것이다.

2011년에 이처럼 축적된 연구의 성과와 방향을 한 발짝 떨어져서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정다함의 「’사대事大’와 ‘교린交隣’과 ‘소중화小中華’라는 틀의 초시간적인 그리고 초공간적인 맥락」 (『한국사학보』, 42, 2011)는 사학사적인 접근을 통해 그 동안 진행되었던 연구들이 살펴보지 못한 부분을 지적하고 있다. 글쓴이에 따르면, 조선시대의 성격을 ‘어떤 것’으로 만들고 싶은 근대 국민국가 한국의 욕망이 조선의 ‘대외관계’를 이해하는 개념들을 제공했다. 사대, 교린交隣, 소중화小中華라는 개념은 조선시대 당시에도 사용되었던 개념들이지만, 기존 연구들의 진행 과정에서 개념들의 의미는 조선시대와 전혀 달라졌다. 이 개념들은 한국의 필요에 의해 다시 발명된 것이었고, 따라서 사실상 기존 연구들은 한국에서 다시 발명된 개념들에 투영된 조선시대 상像에 따라 연구를 진행했던 것이다.

기존 연구와 달리 글쓴이가 이 문제를 지적할 수 있었던 것은, 세계적 보편普遍, 이른바 ‘서구적 근대성西歐的 近代性’으로의 편입을 갈구해왔던 한국의 욕망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세계적 보편에 편입하겠다는 한국의 열망은 일제강점기에도, 해방 이후에도, 심지어 지금까지도 ‘근대화’라는 이름 아래 끊임없이 추구되어 왔다. 그 동안 조선시대를 바라보는 시각도 이러한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기 어려웠던 것이다.

조선과 명明
한국과 미국

한국의 역사학에서 조선시대를 다룰 때 사대가 중요한 쟁점으로 떠오르게 된 계기는, 일제가 식민지의 명분으로 내세운 정체성론과 타율성론이었다. 정체성론과 타율성론의 내용은 거칠게 요약하자면, 조선은 스스로의 힘으로 역사를 발전시킬 수 없다는 논리였다. 조선은 오랫동안 중국 왕조를 비롯한 외세에 사대하느라 주체적이지 못했고, 결국 일본의 도움 없이는 ‘근대화’도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해방 전후의 한국 역사학은 방어적 민족주의의 입장에서 조선을 철저히 피해자로 설정했다. 명明과 청淸에 대한 사대는 조선이 원해서 지속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외세의 강압에 의해 이루어진 일시적인 형식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50년대 이후에는 보다 적극적인 해석이 등장했다. 조선의 사대는 선진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한 수단이라고 보는 해석이었다. 글쓴이는 바로 이 급격한 변화를 포착하면서, 이 변화의 배경에 있는 한국과 미국의 관계에 주목한다. 당시 미국은 서구적 근대성을 대표하면서 헤게모니를 장악한 국가였고, 마치 명明·청淸이 그랬던 것처럼 한국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방어적 민족주의의 입장에 있었던 한국 지식인들은 그러한 미국의 영향력을 애써 부정했지만 현실을 완전히 외면할 수는 없었다. 글쓴이는 이 딜레마의 결과가 사대에 대한 적극적인 해석, 다시 말해, 조선의 유교적 전통에 대한 급격한 긍정일변도의 재조명으로 이어졌다고 판단한다.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서구적 근대성선진문물을 수용하는 대신 미국의 영향력을 인정해주고, 수용한 선진문물을 한국적 특수성과 융화하여 보편에 가장 가깝게 구현해낸다. 이 문장에서 한국을 조선, 미국을 명明·청淸으로 바꾸어도 문제가 없다. 한국의 현실과 조선을 바라보는 시각과 논리는 기본적으로 같았던 것이다. 이것을 바탕으로 조선의 유교적 전통에서 서구적 근대성을 발견하려는 시도가 이어졌고, 조선시대사는 ‘근대화’를 향해 나아가는 한국사의 내용을 뒷받침하게 되었다. 이처럼 사대는 조선시대 당시 개념을 귀납적으로 연구해 도출한 것이 아니라, 해방 이후 한·미 관계로부터 영향을 받아 다시 발명된 개념이다. 사대는 조선에 머무르지 않고 시·공간을 넘나들며 사용되는 개념인 것이다.

교린交隣
피해자 코스프레

사대와 짝을 이루는 것이 교린이다. 명明이나 청淸과 같이 조선의 이른바 ‘상국上國’이 아니었던 국가 혹은 정치세력과의 관계망은 교린이라는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다. 대표적인 교린의 대상으로는 일본과 여진이 있다. 기존 연구의 교린 개념에서 조선은 선진문화의 전파자로서의 우월한 위치에 설정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일본, 여진과는 호혜적互惠的, 수평적 관계인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국가 혹은 정치세력 사이의 힘의 격차는 엄연히 있을 수밖에 없고, 실제로 위계질서도 명明·청淸과 조선의 관계만큼 뚜렷했다. 조선이 일본이나 여진을 대상으로 일으킨 정벌 전쟁들이 그 근거다.

글쓴이가 주목한 것은 그 관계망을 굳이 교린이라는 개념을 통해 수평적인 것으로만 설명하려했던 의도다. 글쓴이는 사대 개념을 다시 발명하는 과정에서 이미 조선의 유교적 전통에 대한 과도한 해석이 이루어졌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미 세종과 성종으로 대표되는 15세기 조선을 영광의 시기, 다시 말해, 선진문물의 수용으로 서구적 근대성의 일부를 획득한 황금기로 평가해버렸기 때문에, 정작 식민지로 귀결되는 조선 후기를 설명할 수 있는 논리가 빈약해졌다는 것이다. 이 빈약한 부분을 채우는 것이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이다. 이에 따르면 조선은 스스로 ‘근대화’할 수 있는 힘이 있었지만 일본 제국주의의 ‘야만적인’ 침략에 의해 그것이 좌절된 셈이다.

조선은 언제나 ‘근대화’의 피해자여야만 했다. 그래서 조선은 여러 차례의 정벌 전쟁을 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교린의 개념을 둘러싼 문화적 영향력만 강조될 수 있었다. 이처럼 교린 역시 사대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다시 발명된, 초시간적이고 초공간적인 개념인 것이다.

소중화小中華
조선과 한국의 현재

글쓴이는 청淸이 건국된 뒤 중화中華를 전유하여 스스로를 소중화로 자리매김한 조선과 그것의 인식론과 논리를 비판 없이 그대로 다시 전유하고 있는 한국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이렇게 볼 때 소중화 개념도 한국에서 다시 발명된 것이다. 다만 사대와 교린, 소중화로 설명되는 역사적 사실들이 결코 동아시아에만 국한되는 특수한 사례는 아니었다. 다양한 역사적 주체들 사이의 관계망 속에서 지식·가치의 패러다임에 따라 질서가 광범위하게 재편되는 것은 세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이었다. 다만 동아시아에서는 그것을 사대와 교린으로 불렀을 뿐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다시 발명된 개념인 사대와 교린은 동아시아의 특수한 현상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인식되었고, 초시간적이고 초공간적인 맥락에서 활용되면서 조선시대 당시 동아시아에 존재했던 여러 역사적 주체들의 관계망을 있는 그대로 살펴보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애초에 의도했던 일본 제국주의의 논리를 약화시키기는커녕 오히려 강화시키고 있으며, 세상을 이해하는 새로운 상상력의 가능성까지 제한하고 있다. 글쓴이가 제목에 썼던 것처럼 사대, 교린, 소중화 개념이 시·공간에 상관없이 초시간적, 초공간적인 맥락에 존재하는 개념으로 다시 발명되면서, 사대와 교린, 소중화는 조선시대 당대의 개념으로만 머물지 않게 된 것이다.

글쓴이에 따르면, 조선시대 당시 여러 역사적 주체들로 구성된 관계망의 역동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결국 서구적 근대성의 보편에 입각한 한국사의 상像을 깨뜨리는 작업이 필요하다. 서구적 근대성을 추구함으로써 의도적으로 은폐된 것은 무엇인지, 사대, 교린, 소중화의 개념과 같은 경우들을 통해 밝혀내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작업은 글쓴이가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한국의 현재와 ‘근대화’ 과정에 대한 재검토로도 이어지게 될 것이다.

탁월한 문제제기
쉽지 않은 독해

정다함의 연구는 ‘근대’ 및 근대 역사학에 대한 비판을 한국사에 적용시켜 문제제기를 구체적으로 진행시켰다는 점, 그리고 가끔은 단절된 것처럼 느껴지는 조선시대 연구의 현재적 의미를 환기시켰다는 점에서 연구사적 의의가 있다. 게다가 이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연구를 꾸준히 이어나가고 있기도 하다. 다만 이 연구는 복합적인 논리 구조에 대한 내용을 짧은 지면에 담고 있고 문장 자체도 긴 편이라 오해 없이 읽어내기가 쉬운 논문은 아니다. 그러나 천천히 정독해볼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함께 읽으면 좋을 논문

 「조공체제의 변동과 조선시대 중화-사대 관념의 굴절: 변화 속의 지속」
최연식, 2007, 『한국정치학회보』, 41(1), 101-121.

「한국에서 대중국관념의 변화: 중화주의, 소중화주의, 탈중화주의」
장현근, 2011, 『아태연구』, 18(2), 97-123.
이지훈 리뷰어  pen9uinis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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