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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ofinale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대중’은 어떻게 의미규정 되어야 할까. 교육수준의 향상으로 소위 인텔리로 분류되는 지식인 집단이 더 이상 대중을 계몽시키거나 그들의 목소리를 ‘대신’ 내어주는 기능을 전담할 수 없게 된 지금, ‘대중’을 어느 곳에 위치시켜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은 계속되어야 한다.

한국에서 ‘대중성’이라는 개념이 처음 담론의 장으로 나와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이다. 대중성 담론은 대개 한국 전쟁 이후 시장경제의 유입에 따른 소비현상이 문화자본을 향유하는 ‘대중’의 출현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에만 주목하는데, 이에 따라 대중성에 대한 논의는 거의 언제나 자본주의 체제나 새로운 매체의 등장에 따른 집단적인 ‘반응’으로 읽혀왔다.

손혜민의 「자본의 순환, 문학의 교환」(『상허학보』, 45, 2015)는 50년대에 출현한 “대중적 감수성”을 ‘정치적’인 맥락에서 읽을 것을 제안한 글이다. 필자는 50년대 대중성 담론의 새로운 면―특히 정치성―을 지적하며, “새로운 주체로서 ‘대중’의 표상, 그리고 실재하는 대중의 경험과 욕망이 놓인 지형도”를 그리고자 한다.

‘도시대중’의 출현과
‘민족성’ 탐색

1950년대 한국은 전쟁이라는 시대적 격변을 경험한 이후 농지개혁이라는 제도의 도입에 따라 “대규모의 인구이동”, “신분제 유제의 해체”가 이루어지며, 같은 시기 ‘전후 헌법’을 통한 시장경제체제의 도입으로 ‘신흥 자본가’가 등장한 격변의 시기를 맞이한다. 또한 전쟁이라는 실존에의 체험은 “‘죽음’ 아래 모두가 평등”하다는 ‘평등주의’를 확산시키는데 일조하였으며, 이 두 가지는 서로를 추동하는 힘으로 작용하였다. 즉, “‘수평성’과 ‘평등주의’에 대한 믿음은 계급/계층 상승에 대한 치열한 경쟁으로 이어지면서, 시장자본주의적 발전의 잠재력으로 발현”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자리에서 ‘대중성’이 출현하게 된다. 소위 대중적 풍속을 가져온 것은 ‘문화’를 소비하는 도시거주민에 의해 주도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도시에 살며 일정 수준 이상의 교육을 받은 자들이고, 따라서 이 시기 ‘대중성’은 자본주의와 매우 유착된 양상을 보인다. 임화는 일찍이 1940년에 “자본주의 사회의 산물로서 대중소설의 의의”를 밝힌 바 있는데, 이처럼 임화를 위시한 KAPF진영들에게 ‘본격소설’과 구분되는 ‘대중소설’의 출현은 ‘자본’이라는 측면에서 일련의 “패배감”과 “위기의식”을 안겨 주는 것이었다.

50년대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대중성’이 보다 적극적으로 ‘문학에 대한 위기’로 읽히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 있는 작품이 바로 신문소설이며 그 중에서도 정비석의 <<자유부인>>을 들 수 있다. 백철은 이에 대해 “지적 비판수준의 저하성”, “아메리카니즘에의 경박한 모방적 유행성”이라는 말로 폄하하기도 하였다. ‘신문’이 당시 “문단을 재편하는 새로운 매체 권력으로 부상”했다는 점에 주목한다면 ‘신문’에 연재되는 소설을 흥미본위의 상품으로 간주하는 것은 몹시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러나 한 편에서는 김말봉이나 조흔파 등 소위 ‘대중작가’들이 ‘대중성’을 문학의 한 요소로 주장하는 논의들을 펼쳤고, 이에 대중소설의 의의가 수면위로 부상하기도 했다.

자유부인, 1956

 

이 시기 김동리는 ‘대중소설론’이라는 글을 통해 대중성의 ‘재미’라는 요소가 본격소설에도 필요한 것이라 주장하였지만, 여전히 ‘통속소설’에 대한 ‘본격소설’의 우위성을 전제하며 ‘엘리트주의적 예술론’에 천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동리를 비롯한 문단에서의 ‘대중성’ 논의는 ‘문학’의 본질은 무엇이며 또한 ‘문학자’의 자질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러한 질문 속에서 ‘본격소설’과 구분되는 ‘대중소설’은 “타자화도 동일화도 불가능한 무정형의 타자”로 간주되기에 이르렀다. 이는 동시에 문학에서의 (대중성과 구분되는)예술성 역시 “선험적인 당위로 채워질 수밖에 없는 빈 기표”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한국문학에서 이러한 “빈 기표”는 언제나 ‘민족성’의 이념으로 부축되는 것이었다.

대중성과 예술성을 마주 세우고, 예술성을 규정하려는 시도는 거듭 실패한다. 주지하다시피, 대중성에 기입된 자본주의 체제와 예술의 상품화는 이미 예술이 존재하는 근본 조건으로서 예술성의 내부에 틈입되어 있는 까닭이다. 그러나 이 논의의 문제의식을 충분하게 설명하기 위해서는, 단정 수립 이후 시행된 무차별적 전향과 한국전쟁을 겪으며, 사상 검증의 공포가 야기한 담론 공간의 협애화를 지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반자본주의적 상상 및 기획불가능한 곳에서, ‘대중성’이 불러온 위기의식은, 곧 자본주의 체제 아래 예술의 불가능성을 고민하는 것으로 이어진 것이다. (60페이지)
정치 주체로서의
‘대중’

50년대 ‘대중성’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은 이를테면, ‘신세대’, ‘현세에 사는 대중’, ‘범위가 넓어진 문학 독자’ 등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이 공유하고 있는 지점은, 그것이 “현대문학의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한국문단은 “독자층의 저변이 확대되면서 독자의 확보가 어려워진 기묘한 역설”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위기의식은 영화의 등장과 더불어 구체화되기 시작한다. “외국영화”라는 새로운 문화자본은 대중들을 시공간적 제약을 벗어난 ‘보편’의 장으로 이끌었는데, 이로 인해 ‘대중’들이 “근대의 시차도, 지리적 위계도 존재하지 않는” 보편에 살게 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즈음 문학의 세계화에 대한 논의 그리고 번역을 통한 국제시장 진출에 대한 논의가 들끓게 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즉, “세계주의 아래 ‘국민문학’을 고민하는 보편-특수에 대한 감각”이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발현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필자는 특별히 백철의 논의에 주목하며 ‘문학성’과 ‘예술성’이 배제된 ‘대중성’에 대한 논의의 흐름을 환기시킨다. 백철은 문학계 내부의 주장과 같이 새로운 매체(영상)에 따른 문학의 위기를 진단하였지만, 그는 엘리트주의의 이분법(‘제한된 유식층’과 ‘지식수준이 높지 않은 다수의 독자’)을 해체하며, “다수의 지적인 독자 대중의 존재”를 읽어낸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가진다. 구체적으로 말해 그는 ‘대중’을 “민주주의적인 역사에 계열하고 있는” “역사적 주체”로 상정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이것이 ‘대중’의 조건에 자본주의 체제가 아닌 ‘민주주의’를 위치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보며, 이를 1960년대 4.19혁명이 보여준 “대중의 정치적 가능성”이라는 흐름과의 연결고리에 주목한다.

물론 이것은 소비대중에서 ‘청년세대’의 ‘저항성’ 또는 ‘전복성’의 단초를 찾을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대중’이라는 무형질의 관념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라는 두 가지 체제의 교섭을 통해 정치적 상상력을 얻게 되는 일련의 흐름들을 살펴야, 1960년대의 대중과 청년세대의 등장을 연속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민주주의’라는 체제가 정치적 자유를 상상케 했다면, ‘자본주의’ 체제는 거대한 문화자본으로 이루어진 시장 아래 운집하는 무형질의 ‘소비대중’을 상상케 했던 것이다. (66-67페이지)

본문은 비록 50년대의 소비대중과 60년대의 정치 주체로서의 청년세대를 연속적으로 읽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지적하는 데서 그치지만, 이는 50년대 자본주의 체제 속 ‘대중성’이 세계화 그리고 민족성이라는 이념과 맥락이 닿아있는 지점을 더욱 세세하게 독해할 수 있는 작업의 밑그림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50년대 문학의 장에서 ‘이미’ 소비대중의 정치적 가능성이 ‘예고’되고 있었다는 사실은 60년대의 ‘시민성’과 ‘민주주의’를 독해함에 있어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지점임에 틀림없다.

*함께 읽으면 좋은 논문

「1960~70년대 한국의 대중사회화와 대중문화의 정치적 의미」
송은영, 2011, 『상허학보』, 32, 187-226.

「한국사회의 대중과 새로운 정치주체의 형성」
김정한, 2014, 『황해문화』, 85, 86-100.

이단비 리뷰어  ddanddanbi6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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