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blog.naver.com/par73ever/220860317427

logofinale‘국민’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저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국가 주체로서 국민을 떠올릴 것이고, 누군가는 통치대상으로서의 국민을 떠올릴 것이다. 또 누군가는 단어 자체에서 몰개성과 권위주의의 향기가 난다며 거부감을 표할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공동체 위기 앞에서 연대할 동료 시민으로서 국민을 가까이 느낄 것이다. 이처럼 개인의 경험에 따라 어휘의 뉘앙스는 다르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무정부주의를 비롯한 다양한 가치관이 존재하더라도 어쨌건 현재 세계는 국가 단위로 돌아간다. 또 적극적으로 ‘탈’국민하고 싶은 요즘이지만 그렇다고 생활기반 없는 이민자나 난민이 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국민’이 무엇인지 최소한의 지표 정도는 합의 해야 하지 않을까? 조한상 청주대 법학과 교수의 「국민의 헌법적 의미: 객관주의와 주관주의를 중심으로」(『법학연구』, 48, 2012)에서 그 최소한의 지표를 엿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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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 열린 촛불집회 모습, 출처: http://blog.naver.com/par73ever/220860317427

 

‘국민’ 개념,
객관주의와 주관주의의 대립

‘국민’이란 일종의 집합명사로서 같은 종류의 사람이 모인 하나의 집합체를 지칭한다. 물론 ‘같은 종류의 사람’이란 거대한 통일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징표를 공유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느슨한 개념이라는 것이 더 맞겠다. 저자는 국민이 누구인지 대답하기 위해서는 이 징표가 무엇인지 밝혀야 한다고 말한다.

이와 관련해 저자가 기대는 틀은 ‘주관적 관점’과 ‘객관적 관점’이다. 이 두 관점은 국민 개념 생성 이래 늘 대립해왔다. 먼저 주관주의를 살펴보자. 주관주의는 “특정 국가가 추구하는 가치에 동의하는 사람들 또는 정치적으로 연대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의 집합”이 ‘국민’이라 주장한다. 다시 말해 국민은 특정한 국민정신, 국민의식 또는 국민감정과 같은 주관적·심리적 요소를 공유하고 있는 사람이다.

주관주의는 대체로 프랑스에서 유래한 이론이라고 본다. 특히 주관적 관점은 근대 초기 프랑스의 정치적 사건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데, 이 시기에 주권 개념이 확립되고 이러한 주권을 공유한 집합체를 국민이라는 범주로 확정하는 과정이 진행되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국민은 이상적 미래를 함께 꿈꾸고 행동하는 감정 및 정서공동체로서의 성격을 갖게 된다. 즉, 주관주의는 국민의 형성과 관련된 근대주의와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반대로 객관주의는 국민이 주관적 요소보다는 일정한 객관적 요소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집합이라고 보는 입장이다. 객관적 요소에는 언어와 전통, 관습과 정서, 종교와 같은 문화적 요소들이 포함된다. 객관주의는 대체로 독일에서 유래했다고 파악된다. 독일은 프랑스에 비해 뒤늦게 근대국가로의 통합을 달성하였으며, 정치적 의지에 의해서라기보다는 프랑스와의 전쟁을 하면서 근대국가로 발돋움 했다. 이 과정에서 국민을 규정하기 위해 독일어와 독일문화, 게르만족으로서의 혈통과 자부심과 같은 객관적 요소들을 강조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저자는 한국 역시 객관주의적 경향이 강하다고 본다. 대한민국의 건국은 프랑스보다는 독일의 과정과 유사했다. 즉 독립과 정부수립을 이루어나갈 국민을 규정하고 단합시키기 위해 이전부터 공유되어 오던 객관적 요소를 발견하는 작업을 했고 그 작업을 통해 국민 개념이 정립된 것이다. 다만 독일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 객관적 요소가 언어나 종교와 같은 문화적 요소보다는 혈연 내지 혈통을 강조하는 경향이 더 강했다는 점이다. 즉, 대한민국 국민은 한민족 혈통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짙게 배어있다. 이 생각은 오늘날까지도 남아있어, 많은 이들이 국민과 민족을 혼용하거나, 겨레나 동포와 같은 개념을 함께 쓰곤 한다.

 

객관주의의 문제점과
주관주의로의 전환 필요성

저자는 국민을 이해하는데 객관주의는 여러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본다. 특히 국민에 대한 객관주의적 관점은 권위주의와 연결될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다. 객관주의가 상정하는 국민의 징표는 개개인의 자유 및 의지와 무관한 또는 그것을 초월한 것들이다. 따라서 국민의 의지와 상관없이 국가 공동체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귀결되기 쉽다. 이러한 맹목적 복종은 종종 이웃 국가에 대한 배타성과 공격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저자가 드는 대표적인 사례는 나치의 침략과 만행이다. 그들은 혈통적 순수성이라는 객관적 요소를 바탕으로 국민을 개념화했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의 목적에 부합하도록 국민의 객관적 징표의 의미를 조작하고 강요했다. 그리고 유태인 등이 자신들의 혈통을 오염시킨다고 낙인 찍고 그들을 잔혹하게 말살하려 했다. 같은 객관주의적 특징을 갖고 있는 한국도 비슷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해방 이후 이범석과 민족청년단의 민족 지상·국가지상주의는 나치의 사상과 상당히 유사한 것이었다. 또한 이승만의 일민(一民)주의는 “한 백성인 국민을 만들어 민주주의의 토대를 마련하고 공산주의에 대항한다”는 명분을 내걸었으나, 역시 국가 이외의 다른 것을 희생시키는 권위주의적 속성을 가지고 있었다.

객관주의의 문제점은 과거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 한국의 경우 경제수준이 높아지면서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유입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국적을 취득해 대한민국 국민이 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한국 사회의 내부 구성이 이전보다 훨씬 다양해지고 있음에도 강한 혈통주의는 그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장벽으로 기능한다. 나아가 객관주의적 관점은 인종차별, 외국인에 대한 배타적 시각을 조장할 위험까지 내포하고 있는데, 급기야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CERD)는 한국의 단일민족사상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저자는 국민을 이해하는 관점이 주관주의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본다. 무엇보다 헌법상 국민은 ‘주권자’로서의 지위를 가지며 정치적 자유를 비롯한 기본권의 주체로서의 지위도 가지고 있다. 저자가 보기에 이러한 국민의 헌법적 지위는 주관주의와 호응하는 면이 크다. 즉, 대한민국이 추구하는 가치에 대한 동의, 정치적으로 연대하고자 하는 의사, 국민으로서 부담해야 하는 책임의 감수 등을 위한 의지를 공유하고 있다고 입증된다면 혈통과 같은 객관적 요소 없이도 원칙적으로 대한민국 국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저자는 주관주의를 채택한다고 하더라도 객관적 요소들이 완전히 무시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주관적 의지를 보유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으며, 그 판단을 시도하는 것 자체가 위험한 면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 국민으로서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 여부가 불분명할 때 이를 추측하기 위한 단서가 필요하며 잠정적인 기준이 필요하다. 결국 혈연이나 언어, 문화와 같은 객관적 징표에 기대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객관적 요소나 주관적 요소 어느 한쪽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양자간의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주장하는 절충설이 제기되는데, 저자는 이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물론 주관적 의지가 핵심이며, 객관적 요소는 이를 보완하는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는 조건도 함께 덧붙인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의의가 있다. 객관주의를 통해 국민을 이해한다면 국민은 우연히 형성된, 고착화된 집단으로 인식되기 쉽다. 주관주의를 강조함으로써 공동체 의식, 연대감, 책임 등의 주관적 요소는 국민에게 본질적으로 요구되는 항목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금 소모적이고 약탈적인 갈등과 분열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러한 갈등을 보다 양질의 갈등으로, 그리고 합의 내지 타협으로 이끌 주체는 깨어있는 국민이다. 주관주의 중심의 절충설로의 전환은 변화를 주도할 국민을 새롭게 인식하는 초석이 될 수 있다. (93쪽)

이후 저자는 주관주의 중심 절충설에 입각해 법제도의 변화 방향에 대해 논의한다. 대한민국 국민의 혈통을 이어받았지만, 외국 국적을 취득했거나 지속적으로 보유하는 이들이 대한민국 국민의 의지가 있는 것인지에 대한 판단과 또 국민으로서 또는 그에 준하는 지위를 인정하는 데는 지금보다 신중함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며, 귀하적격심사 역시 높은 장벽이 되지 않는 선에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의지도 심사할 수 있는 수단으로 개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외국인이든 내국인이든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과 같은 ‘인간의 권리’는 누구에게나 인정되어야 할 부정할 수 없는 조건이다. 이러한 전제 하에서 누구를 한 국가의 ‘국민’으로 볼 것인가는 배타적 원리로 정해져서는 안 될 것이다. 국민 권리와 책임은 다양한 국가만큼 다양 방식이 존재할 것이고, 한 국가가 지향하는 이데올로기 및 가치도 그만큼 다양할 것이다. 주관주의적 관점에 따르면 그것에 동의하고 국민이 되는 것은 자발적 의지와 선택에 의해야만 한다. 또 그에 따라 헌법적 권리와 기본권 그리고 의무가 이어질 것이며, 공동체 내 자발적 연대나 갈등도 건강하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조건이 필요하다면, 역시 “생득적인 객관적 징표보다는 자발적 의지에 따른 주관주의적 관점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한다. 다만 대한민국이 지향하는 가치라는 것은 미리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닌 자발적 의지의 집합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그 가치 역시 계속 개선되고 생성되는 것이라는 전제를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함께 읽으면 좋은 논문

「사회통합을 위한 국민 개념 재고」
도회근, 2013, 『저스티스』, 134, 429-449.

「민족의 개념에 관한 정치사회학적 고찰」
조홍식, 2005, 『한국정치학회보』, 39(3), 129-145.

권성수 리뷰어  nilnilis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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