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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ofinale홍성욱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의예술을 바꾸는 기술, 기술을 바꾸는 예술: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상상력과 기술철학(『인문학논총』, 34, 2014)에서는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 사례를 분석해 한 예술가가 어떻게 기술을 이용해 자신의 예술을 새롭게 재창조했는지를 보이고 있다. 또한 거꾸로 백남준이 예술을 통해 기술과 기술에 의해 지배 받는 현대사회를 어떻게 바꾸고 새롭게 창조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를 드러낸다.

기술과 예술의
이별과 재회

기술과 예술의 공통적인 기원은 art이다. 르네상스 시기와 17세기 과학혁명 시기에 art는 기술과 예술 모두를 지칭했으며, 당시 엔지니어나 예술가는 모두 특수한 숙련기술을 체화한 사람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던 art는 과학혁명기를 거치면서 현재의 과학, 기술, 예술의 범주로 분리되었다. 과학과 기술은 인문학과 예술에서 멀어졌으며, 예술 역시 과학기술과 멀어지고 인문학에 더 가까워졌다.

그 후 18~19세기 일부 예술가들이 과학과 기술을 예술의 소재, 대상, 매체로 사용하기도 했지만 예술과 과학기술이 본격적으로 다시 가까워진 것은 20세기 이후이다. 20세기 예술은 대상을 보이는 대로 재현하는 것에서 해방되었을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의미의 아름다움을 드러내야 한다는 제약에서도 해방되었고, 이에 따라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예술적인 실험이 예술활동의 핵심이 되었다. 그리고 과학과 기술이 이 예술적인 실험에 필수 요소로 도입되곤 했던 것이다.

백남준이
TV를 만나기까지
“피카소가 20세기 전반을 지배한 거인이라면 백남준은 20세기 후반 예술의 무게중심이다. 그의 상상력이 세상을 바꿔 놨다.” 2012년 12월에 <백남준 – 글로벌 비저너리>라는 전시를 개최하면서 미국 스미스소니언 아메리칸 아트 미술관의 엘리자베스 브로운 관장은 이렇게 말했다. (40쪽) ⓒ Cindydag

백남준은 기술을 예술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던 예술가였다. 저자는 백남준이 엔지니어처럼 기계를 체계적으로 공부한 적도, 기술에 대한 철학적 사고를 훈련 받은 적도 없었기에 엄밀히 말해 엔지니어도 철학자도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반대의 관점도 함께 제시한다. 백남준은 당시 첨단기술인 비디오를 사용했으며, 로봇이나 비디오 이미지 합성기 같은 독창적인 기계의 발명에 기여하며, 비록 체계적이지는 않았을지 몰라도, 기술과 예술에 대해 깊이 고민했던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번득이는 영감을 내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백남준은 1932년 서울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어린시절 현대음악에 흠뻑 빠졌다. 해방 후 일본유학을 가 음악과 철학을 공부했으며, 1956년 독일로 건너가 전위적인 새로운 음악 세계에 눈을 떴다. 당시 백남준은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부수거나 존 케이지의 넥타이를 자르고 관객의 머리를 감기는 기이한 행위예술을 펼침으로써 자신의 예술 세계를 시작했다.

그런 그가 1961년 쾰른의 라디오 방송국을 방문하면서 최초 방송기술에 관심을 가졌고, “TV기술관련 책만 제외하고 모든 책을 창고에 넣어서 잠가버리고 오직 전자에 관한 책만 읽는”삶을 시작했다. 그리고 1963년, 독일 부퍼탈에서 그의 첫 전시인 <음악 전시회 – 전자TV>가 열렸다. 이 전시에서는 13대의 TV 모니터가 설치되었고, 백남준은 이 TV들의 내부회로를 변형해 독특한 이미지들을 만들어냈다. 미리 어떤 이데아를 설정하는 구상 미술이 아닌 그때그때 변하는 ‘방식’에 대한 끊임 없는 실험이었다.

 

사이버네틱스와
미디어의 역할에 대한 관심

백남준은 1964년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노버트 위너Norbert Wiener의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와 문명의 발전사에서 미디어의 역할을 강조한 맥루헌Marshall McLuhan의 생각에 큰 영향을 받았다. 사이버네틱스는 유기체와 자동기계의 작동에 모두 “피드백에 의한 통제”가 공통적인 요소로 개입해 있음을 강조했다. 백남준은 TV의 음극관에 이미 피드백의 원리가 구현되어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여기에 새로운 입력을 접속시켜서 굴곡된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또한 관객들이 직접 예술에 참여함으로써 예술가들의 작업에 피드백을 넣는 인터렉티브, 혹은 쌍방향의 참여예술을 발전시켰다.

백남준의 “TV철학”에 영향을 미친 두 번째 요소인 맥루헌의 매체이론은 “매체가 전달하는 내용보다 매체 그 자체가 특정한 영향을 사회에 미친다”는 내용이었다. 백남준은 맥루헌의 이론에서 TV가 가진 예술적 가능성을 감지했으며, 이를 관람객의 참여가 피드백이 되는 위너의 사이버네틱스와 연결시켰다. 백남준은 관람객이 자석을 이용해 기하학적인 곡선을 현란하게 춤추게 하는 <참여 TV>라는 작품을 1969년에 선보였는데, 이는 TV라는 매체를 훨씬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매체로 바꾸는 예술적 변형의 실험적 표현이었다.

 

TV에서 비디오로,
비디오에서 비디오 신디사이저로

TV는 방송국에서 제작한 내용만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광고방송을 내보냈고, 시청자는 ‘소비자’로서 이런 광고를 소비해야 했기에 인터렉티브 매체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60년대 중엽 대중용 비디오의 등장은 예술가들을 들뜨게 만들었다. 진보적인 예술가들은 비디오가 TV에서 가능하지 않았던 피드백을 가능케 하며, 새로운 형태의 예술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주목했다. 비디오는 되감기, 빨리 감기 등을 통해 시간을 통제할 수도 있었으며, 과거를 녹화하는 데에도 사진보다 우수했다. 백남준 역시 TV를 비틀고 조롱하는 데 비디오라는 매체를 이용했다.

백남준은 1963년 부퍼탈 전시 직후부터 TV 이미지들을 합성할 수 있는 신디사이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상당한 수준의 엔지니어링 전문 지식을 갖춘 그는 마침내 엔지니어 슈아 아베Shyua Abe와 함께 비디오 합성기를 개발했다. 백남준이 이 합성기로 구현하려 했던 요소는 단순히 영상을 합성하는 것이 아닌 멀티 인풋과 아웃풋의 방식으로 열린 시스템을 만들려는 것이었다. 이는 “관객들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닫혀있지 않은 전자 환경” 혹은 “일종의 쌍방향 비디오 게임의 원형”이었다.

또한 백남준에게 이 신디사이저는 미학적으로도 만족스러운 것이었는데, 컬러영상이 가능해짐에 따라 캔버스에 물감을 통해 구현하는 회화보다 훨씬 더 강렬하고 다이너믹하게 움직이는 영상을 재현할 수 있었다. 그는 1970년대에 자신의 영상합성기를 이용해 독특한 이미지를 만들기 시작했으며, 바로 이 시점에서 그는 가까운 미래에 비디오 아트가 전통 회화를 대체할 가능성을 목도했다. 백남준은 비디오 아트가 현대 기술 사회에서 기술의 발전 방향을 뒤틀 수 있는 잠재력을 가졌으며, 사회를 급진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이것은 그가 오랫동안 생각한 예술의 본령이기도 했다.

국립현대미술관에 설치되어 있는 《다다익선》(1988년) ⓒ 최광모

 

기술시대의
예술의 역할

백남준은 비디오 아트를 이용해 TV에서 쏟아지는 무의미한 영상을 변형하고 색을 입힌 뒤에, 이를 잘게 쪼개서 수많은 이미지를 쏟아냈다. 이것은 더 많은 정보를 생산함으로써 입력과잉 시대의 문제에 대응하는 전략이었다. 1970년대 이후 백남준 작품에는 아무런 의미도, 철학적 깊이도 없었다. 백남준이 만든 이미지의 소음들은 세상을 날것으로 보여주는 메체이자 메시지였다. 백남준은 TV가 그들의 삶과 가족의 대화를 지배하는지도 모르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 이게 너희가 사는 진짜 세상이야’라고 까발려주려 했던 것이다.

“기술은 그를 낳은 부모를 배반하는 자식이다. (…) 백남준은 이러한 기술의 ‘반역’을 잘 알고 있었다. 비디오 합성기나 비디오 아트 모두 세상에 던져진 순간, 통제할 수 없는 궤적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 모두는 상업화되고, 탈정치화되고, 일상화되었다. (…) 이렇게 되면서 비디오는 어느새 오래된 기술(예술)의 일부가 되었고, 비디오 예술은 정보 자본주의를 주도하는 첨단 기업들이 선호하는 장르가 되었다. (…)

예술과 일상의 간극은, 마치 첨단기술과 일상의 간극처럼, 벌어지고 좁아지고를 반복한다. 우리는 초기 비디오 아트의 급진성이 사라진 사실에 대해서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는데, 이러한 요동과 변화는 항상 새로운 세대에 의한 새로운 예술을 잉태하는 태동이 되기 때문이다. 백남준과 그의 동료들에 의해서 시작된 비디오 아트는 예술의 일상이 되었고, 지금의 예술가들은 이를 비틀고 전복하기 위해서 애를 쓰고 있듯이.” (62~63쪽)

저자는 백남준의 기술철학과 예술활동의 궤적을 통해 예술과 기술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재설정되고, 새롭게 탄생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로써 독자는 백남준의 예술세계를 이해함과 동시에 예술과 기술의 다차원적인 상호작용을 목도할 수 있다. 분리된 학문 간 다양한 융합이 시도되고 있는 지금 백남준이 보여준 과학기술적, 예술적 상상력은 중요한 학문적 힌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권성수 리뷰어  nilnilis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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