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중민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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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진 사회 이론의 주인공은 ‘중민(中民, middling grassroots)’이다. 사회 변동에 따른 지적 관심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중민은 그의 사회학에서 늘 핵심 포지션을 차지해왔다. (…) 중민 이론은 1980년대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구상된 사회변동론이다.

김홍중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가 스승인 한상진 사회학의 핵심인 ‘중민 이론’을 본격적으로 해부한 논문 성찰적 노스탤지어: 생존주의적 근대성과 중민의 꿈(『사회와이론』, 27, 2015)을 발표해 주목을 끌었다. 위에서 인용했듯 한상진의 ‘중민 이론’은 ‘민중 이론’ 이후 한국 사회학의 자생적 이론으로서, 발전국가의 한 가운데서 발생한 중간층 계급을 개념화한 것으로, 이 글에서는 구체적으로 ‘386 세대’를 지칭하고 있다.

중민이론을 구성하는 세 가지 상이한 단계들은 i) 체제의 모순구조의 확정, ii) 변혁주체의 설정, iii) 실천노선과 방법의 규정이다. 여기서 첫 단계의 모순은 권위주의 모순(정치적 모순), 자본주의 모순(경제적 모순), 분단모순(민족적 모순)의 복합체다. 한상진은 1970년대 이래 폭발적으로 성장해온 민중론(민중사회학)을 비판적으로 계승하면서, 사회변혁의 역사철학적 주체로 설정된 민중을 사회과학적으로 재구성하고자 한다.

그는 한국의 발전국가가 자본주의적 경제 발전에 큰 성과를 거둔 ‘성공한’ 모델이며, 이 과정에서 젊고 학력이 높으며 사회 비판 의식이 제고된 집단, 그리하여 다양한 모순에 저항하는 세력을 스스로 육성해왔다는 역사적 아이러니를 지적한다. (…) 이들 중민은 높은 권리의식과 상징 해독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데올로기적 조작이나 선동에 쉽사리 현혹되지 않는 지성적 존재이며, 이들이 지향하는 변혁방법이 바로 ‘중민노선’이다. 이들은 지나친 급진주의와 양극화를 경계하면서 “전면적인 체제 부정이 아니라 신속한 체제 변혁”을 선호한다.

 

중민이론를 집대성한 한상진 교수의 "중민이론과 한국사회" 출처: 리뷰아카이브
중민이론를 집대성한 한상진 교수의 “중민이론과 한국사회” 출처: 리뷰아카이브

김 교수는 한상진의 ‘중민 이론’을 아주 기초적인 부분부터 자근자근 씹어가듯이 세밀하게 살펴보고 있는데 중민 이론이 거대 이론이나 사회철학이기보다는 “구체적이며 비판적인 현실 개입”적 이론이라는 점, 행위자들의 생활 세계, 그들의 심적 에너지, 상징적 의사소통 속에서 구성되는 의미들, 말과 말 그리고 힘과 힘이 부딪히면서 역사의 활로를 타개해나가는 정치적 과정은 중민이론이 각별한 이론적 관심을 던지는 지점들이라며 그 의미를 짚어나간다.

그리고 “중심中”과 “민중民”이라는 두 개념을 합치면서 “중산층이지만 기층 민중으로 자신을 이해하는 변혁 지향적 인구 집단”으로 정의를 명확히 내리고 그것을 통계적으로 추산하거나 다양한 의식조사를 통해 실증화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그리고 한상진의 이 이론은 이른바 “중심의 상상력”이라는 것을 내포하고 있었는데 “다양한 사회 세력의 중심”이자 “좌와 우의 중간지대, 민주주의라는 광범위한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 개혁 세력”으로 그 의미를 풍부히 해나갔으며 더 나아가서는 ‘중심’을 “내면의 도덕적 능력을 가리키는 동시에 복수의 행위자들이 소통하고 뜻을 결집시키는 공적 공간”을 의미하는 것으로 발전시켜나갔다고 그 이론적 추이를 살펴보고 있다.

“중심이란 결국 국민의 뜻을 안으로 모으는 공간과 힘을 말한다”는 한상진의 발언은 이것이 찰스 테일러의 공론장에 대한 사회적 상상과 맥을 같이 한다는 점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사회철학에서 ‘진정성(authenticity)’이라 불려온 윤리적 태도를 지니고 있었던 중민은 사실 기초적 안전을 지속적으로 위협받고 자신의 방어적 핵으로 수축해 들어가는 최소자아(minimal self)를 뚫고 나온 것이기도 하다. 한국사회의 생존주의적 근대성을 뚫고 등장한 어떤 가능성의 세력에 붙여진 이름이라는 말이다. 먹고사는 문제의 절박함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 물적 조건과 상징자본을 갖춘 중민은, 민중의 생존 문제에 공감하고 그것을 이해하고 민중과 스스로를 동일시 할 수 있는 도덕적 능력, 즉 자기 자신의 생존을 넘어선 지평에 삶을 관여시킬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현재 중민의 꿈은 그 기반을 잃어버렸다. “중민의 핵심”인 386세대가 정치권에 진입하면서 ‘중심화 변혁 모델’을 실연하는 듯이 보였지만, 국민의 신뢰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채 기득권을 추구하는 세력으로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논문의 마지막에서 필자는 “성찰적 노스탤지어(reflective nostalgia)”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그것은 상실된 집을 다시 복구하려는 욕망이 기저를 이루는 ‘회복적(restorative)’ 노스탤지어와 대척적 개념인데, 회복적 노스탤지어가 저돌적이고 건설적이고 확신에 가득 찬 감정이라면, 성찰적 노스탤지어는 “과거와의 거리가 확실하여 과거를 다시 재현할 수 없다는 전제를 인식하면서도, 과거에 대한 그리움 속에서 망실된 가능성을 다시 복구하려는 마음”이다.

이런 태도는 중민 집단을 역사적 대상으로 파악하는 시야 속에서 단련되어야 한다는 게 필자의 메시지다. 중민집단이 20대부터 50대에 이르기까지 체험한 내용들, 중민의 분화, 중민 집단의 가족구성 속 자녀의 주체성 형성 등을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88만원 세대’ ‘삼포세대’들은 중민(386세대)의 자식들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들 사이의 연결고리와 영향의 주고받음을 섬세히 살펴야, 젊은 세대 속에서 중민적 가치가 성찰적으로 되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다.

강성민 리뷰위원  review@bookpo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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