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민주화성회에 참여하기 위해 학교정문에서 전경과 대치하고 있는 전남대생들. 나경택 Na Kyung-taek (1980.5.15) / 출처: 5.18 기념재단

logofinale‘학살’에 관하여 성공적인 애도란 가능한 것일까. 죽은 자를 잊고 ‘살아내는’ 것이 애도의 가능 조건이라면, 그것이 학살과 같은 ‘무고한’ 혹은 ‘대의적인’ 죽음과 관계될 경우, 타자의 ‘타자성’을 제거하는 일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자유롭지 못하다. 망각이 곧 ‘폭력’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학살과 관련된 모든 것을 ‘기억’하는 일은 그 자체로 어떤 의미망을 구축할 수 있는 것일까.

기억(‘역사적인’ 것)은 영원한 불면이자 경계하는 불면증, 어떤 위대한 일도 일어날 수 없는 상태이며, 심지어 바로 이 목적에 봉사한다고 말해질 수도 있다.(니체)

김정한은 「5·18학살 이후의 미사(未死) : 아직 죽지 못한 삶들」(『상허학보』, 47, 2016)에서 바로 이러한 딜레마에 주목하며, “그 자체로 정치적 행위의 가능성을 보장하지 않는” 기억과 “상징적 폭력”으로서의 망각을 공명시킨다. 그리고 이러한 공명 속에서 우리는 바로 미사(未死)의 존재들, 즉 ‘아직 죽지 못한’ 그리고 ‘죽음 보다 더 나쁜 삶’을 살아가는 존재들을 발견하게 된다.

미사未死
아직 죽지 못한 삶

5.18학살을 통하여 우리는 미사(未死) 존재들과 마주하게 된다. 필자는 세 가지 사례들과 더불어 미사(未死)의 구체적인 얼굴들을 보여주고자 한다.

첫 번째는, 광주에 있으면서도 시민혁명에 ‘함께’하지 못한 자의 고백이다. 그는 “비겁하게 혼자만 살아남아 있다는 죄책감과 자책감, 부끄러움과 자기혐오에 끝없이 시달렸”으며, 여기에는 “시련”과 더불어 “책임”의 무게가 가중되어 그 고통을 배가 시켰다.

광주시 바깥에 있었던 국민들은 부채감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도 있다. (…) 그런데 광주 사람들에겐 그 여지가 없다. 그들은, 우리는 그 자리에 있었으니까. 그리고 약속을 했으니까. (…) 우리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 그러니까 5·18은 우리에게, 광주 시민에게 피해자로서의 시련만 시험으로 준 게 아니라 그 이상의 시험을, 피해자로서의 시련도 부족해서 우리한테 책임까지 준 것이다. (…) 바깥에서는 모르는 죄의식. 미안하고 부끄럽고 (…) 그건 아무도 모른다. (370-372쪽)

두 번째는, 5.18항쟁에 시민군으로 참여했으나 이후 모진 고문을 당하여, 자살 시도와 고문 후유증으로 심각한 정신이상 증세를 호소하는 자이다.

“10년이 지나고 20여 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까지도 그는 계속해서 1980년 5월 27일 최후의 밤을 복기하고 있었”으며, 이것이야 말로 영원히 끝나지 않는 “형벌”그 자체였다.

마지막은, 5.18에 직접적으로 가담하지는 않았으나, 일전의 6.25전쟁을 통해 학살과 고문을 경험했던 자가 6.25와 5.18을 동일시하며 ‘두려워’하는 사례이다. 그녀는 같은 이유로 자신의 아이들이 데모에 나가지 못하게 지켰다. 하지만 그럼에도 5.18의 기억은 그녀에게 언제나 ‘공포’의 사건으로 각인되어있다.

죽음보다 나쁜 삶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생존을 위한 단순한 삶이 아닌, ‘정치적인 삶’을 이른바 ‘좋은 삶’의 모델로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필자는 ‘좋은 삶’으로서의 ‘정치적인 삶’이, 과연 학살을 경험한 자들에게 유의미한 것인지에 대해 질문한다. 이는 앞서 언급한 세 가지의 사례를 떠올려보면 쉬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힘이란 그것에 복종하는 사람을 사물로 만드는 것이다. (…) 이 힘은 분명히(누구/무엇을) 죽일 것이다. 또는 아마도 죽이게 될 것이다. 또는 언제든지 자신이 죽일 수 있는 존재에 대해서만 머물게 될 것이다. 아무튼 힘은 사람을 돌로 변화시킨다. (…) 그 사람은 살아 있고 영혼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사람은 사물이다.(에티엔 발리바르)

학살은 일종의 ‘힘’이다. 여기에는 죽이는 힘뿐만 아니라 죽이지 않는 힘 또한 있다. 죽이지 않는 ‘힘’은 곧 “사람을 사물로 만드는 권력”이 되어, 죽임당하지 않은 사람들의 삶을 죽음보다 더 나쁜 삶으로 만들어버린다. ‘힘’을 마주한 사람들이 오로지 ‘힘’에 의하여 사람이 아닌 ‘사물’로 현상화 되고 이로 인해 그들이 ‘죽음보다 더 나쁜 삶’을 살게 된다는 사실은, 정치적인 삶의 의미와 가능성에 대한 주장에서 소거된 ‘죽지 못한 자들’의 목소리라 할 수 있다. 실상은, 경험한 폭력 그리고 언제고 경험할 수 있는 폭력 앞에서 시민 주체의 저항성은 무력화되고 이는 곧 “정치주체의 불가능성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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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진 시민을 곤봉으로 내려치고 군화발로 짓밟아대는 공수부대원. 황종건 Hwang Chong-gun (1980.5.19) / 출처: 5.18기념재단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필자는 미사(未死)의 존재를 거듭 상기시킨다. “5.18을 무장투쟁과 같은 국가 혁명의 모델로 상정할 때”나 “군사독재에 맞서는 민주화운동의 상징으로 인정할 때”나 미사(未死)의 존재는 언제나 투명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말이다. 죽음을 경험했으나 죽지 않은 자, 그렇지만 ‘시민다운 시민’으로도 생존해 있지 못해 유령처럼 떠돌 수밖에 없는 미사(未死)의 존재들을 오늘 날 우리는 ‘학살’과 ‘투쟁’의 역사에서 어디에 위치시켜야 하는 것일까.

필자는 ‘아직 죽지 못한 사람들’을 대하는 “정치와 윤리가 무엇이어야 하는지는 적절하게 사유되기 어렵다”고 말하며 이에 대처하는 방법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거듭되는 질문만으로 미사(未死)의 존재들의 타자성을 완전히 복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죽지 못한 자들’을 향한 애도가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유되어야 하며, 그것이 단순히 기억 혹은 망각에의 투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에는 공감하는 바이다.

우리에게 더 중요한 문제는 극단적 폭력에 의해 창출되는 ‘죽음보다 더 나쁜 삶’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미사(未死)의 존재는 어떻게 저항할 수 있는가, 그 저항의 조건은 무엇인가를 사유하는 데 있다. (…) 우리는 죽음보다 더 나쁜 삶을 살아가는 타자들과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183쪽)

 

*함께 읽으면 좋은 논문

「국가폭력과 트라우마의 발생 기제: 광주 ‘5·18’ 피해자를 대상으로」
최정기, 2008, 『경제와사회』, 77, 58-78.

「국가폭력에 대한 기억투쟁: 5·18과 4·3 비교연구」
이성우, 2011, 『OUGHTOPIA』, 26(1), 63-86.

 

이단비 리뷰어  ddanddanbi6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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