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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ofinale정치인을 포함한 사회 저명인사들의 ‘유체이탈 화법’이 연일 논란이 되고 있다. ‘유체이탈 화법’이란 신체에서 정신이 분리되는 유체이탈 상태처럼 자신이 관련되었던 일을 남 이야기하듯 하거나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어처구니없는 자화자찬으로 일관하는 것을 비꼬는 말이다. 구경꾼처럼 제3자의 위치에서 말한다고 해서 구경꾼 화법이라고도 한다. (『트렌드지식사전5』, 김환표, 인물과사상사, 2015) 이를 듣는 청자인 시민들은 화자의 무책임함에 분노를 넘어 흔히 말하는 ‘멘탈붕괴’의 지경에 이르고 있다.

말을 하는 것도 듣는 것도 녹록치 않은 시대에 한나 아렌트의 연구를 바탕으로 하는 정치적 자유와 평등의 실현의 토대가 될 의사소통으로서의 말하기와 듣기에 관한 논문 한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윤은주의 「정치적 행위에서 다름의 인정: 말하기와 듣기의 관계」(『한국여성철학』 20, 2013) 이다.

 

인간으로 산다는 것과
언어

아리스토텔레스는 일찍이 『정치학』에서 인간은 언어 능력을 가진 유일한 동물이라며 인간이 공동체에서 인간다움을 표현하는 방법으로서의 언어에 대해 이야기한바 있다. 이것은 언어가 단순히 자신의 감정이나 의견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의견을 글이나 말을 표현수단으로 하여 상대방에게 전달하고 전달받음으로써 의사소통적 상황에 참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사소통적 행위를 통해 인간은 자신의 인간다움과 자기 존재를 인식하게 되고, 이 세계를 유지하고 이끌어나갈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인간으로 산다는 것을 언어와 행위를 하는 것으로 보았으며, 그것은 곧 정치이자 인간다움을 가지고 모두가 함께 사는 삶이다. 하지만,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인간다움을 상실하거나 박탈당한 채 살아가고 있다. 공적 영역에서의 행위로부터 소외되고, 자신의 의견을 말하거나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어 주는 의사소통으로부터 배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본 논문은 공동체적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행위와 언어에서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시선에서 시작한다.

자신의 의견을 말하거나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어 주는 의사소통으로부터 배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행위의 상실과
말하기-듣기의 변화

아렌트는 인간 활동을 노동, 작업, 행위로 구분한다. 노동과 작업이 인간으로 살기 위해 하는 생산적 활동이자 소비적이고 개인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사적 활동으로 나타난다면,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공적 활동으로서의 행위는 공동체에서 공동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의사소통적 행위로 나타난다. 세계는 단일성인 대문자 Man으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복수성인 소문자 man으로서의 인간이 구성한다. 아렌트는 <정치의 약속>에서 인간의 말하는 능력과 인간의 복수성이란 사실이 서로 조응한다고 이야기한다. 함께 살기 위해서는 서로를 알아야 하기에 말하고 듣고 쓰고 읽는 일련의 언어활동은 이의 주요한 매개체가 된다. 아렌트에게 있어 정치는 자유롭게 사유하고 표현하는 행위이다.

근대의 출현은 산업 혁명을 통한 자본주의의 발전을 가져왔다. 이러한 현상은 사람들의 관심을 경제적인 것으로 이동시켰으며, 인간 활동 역시 경제적 활동으로 대체되었다. 아렌트는 사적 영역인 경제적 활동이 공적 영역인 정치적 활동을 대신함으로써 정치적 행위가 노동과 작업에 그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고 본다. 이것이 바로 근대 이후의 사회적 영역의 등장이다. 정치의 실현이 곧 자유의 실현인 아렌트에게 있어 정치적 행위의 상실은 정치의 부재이자 그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없게 되는 자신의 부재이다. (윤은주, 2008. 다름의 인정과 차이의 지양: 아렌트의 정치 개념에서) 또한, 이는 곧 자유로운 의사소통의 부재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말하기-듣기의 특징도 변하게 된다. 근대 이전의 말하기-듣기는 그 영역에 따라 각각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근대 이후 내부 질서를 유지하고 경제 활동을 통해 더 많은 이익을 획득하려는 사적 영역에서의 말하기-듣기는 위에서 내려오는 명령을 전달하고 그것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가부장적 색채를 띠게 된다.

이익투쟁의 각축장이 되어 버린 현대 사회는 그럼에도 함께 살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에 공생의 방법을 찾아가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자기에게 필요한 것 이상을 가지고 있을 때조차 타인들을 질투하면서 자신의 몫을 늘리는 데 집착하기도 한다. 또한, 우리는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싶어 한다. 그러나 어떤 말을 듣게 될까 두려워서 이견을 가진 사람들과의 대화를 회피할 방법을 찾기도 한다.

의사소통적 행위는 인간다운 삶을 지속시키는 행위이다. 올바른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는 동등한 입장에서 자유롭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이상적 대화 상황이 전제되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그것이 가능할까? 저자는 한나 아렌트의 연구에 근거하여 언어활동 또는 의사소통의 전제가 되는 요소들을 탐구하며 그 대안을 모색한다.

 

언어 활동의 전제,
사유활동과 상상력

저자는 언어활동을 기반으로 하는 행위에서 전제되어야 할 첫 번째 요소로 사유 활동을 제시하며, 한나 아렌트가 ‘악의 평범성’이라 이름 붙인 아돌프 아이히만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아렌트는 유대인 학살의 주범으로 전범재판소에 섰던 아돌프 아이히만이 유죄인 것은 수많은 유대인들을 가스실로 보냈기 때문만이 아니라,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아무런 사유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유 활동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방해받을 수 없는 철저하게 개인적이고 자유로운 영역에서 일어난다. 동시에 사람은 사유 활동을 통해 얻게 된 다양한 결과들을 말과 글을 통해 밖으로 표출하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음으로서 자기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매개체로 작동하는 것이 바로 언어이다. 사유의 내용을 언어로 표현하지 않으면 자신의 존재를 인식시킬 수 없으며, 사유하지 않으면 언어를 매개로 표현할 것 역시 부재하게 된다. 언어활동과 사유 활동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이며, 사유 활동은 언어를 통해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게 한다.

자신의 사유 세계에 갇혀있지 않고 장터에서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며 자신의 사유를 확장시킨 소크라테스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저자는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을 서로 주고받는 과정을 사유의 발전이자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게 하는 철학적 방법론으로 본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서로 주고받는 사람들의 관계가 문제 된다. 서로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드러냄으로써 자기 존재를 인식시키는 정치적 활동임에는 분명하지만, 올바른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는 동등한 입장에서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이상적 대화 상황이 전제되어야 한다.

 

불편부당성과
상상력의 대화

말하고 듣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해는 순수하게 객관적이라기보다 사회적 지위나 사적 이익·교육·문화·역사·지배 이데올로기 등 살고 있는 세계의 다양한 것들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저자는 이러한 영향 하에서 자유롭고 공평하게 의사소통적 관계를 효율적으로 유지할 수 있게 하는 두 번째 언어활동의 전제로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공평한 관점을 취하는 불편부당성(impartiality)의 태도를 제안한다. 불편부당성은 자신의 생각을 확장시키되, 다른 사람의 입장도 고려하는 태도이다. 불편부당성의 관점을 가지기 위해서는 ‘정신의 확장(enlargement of the mind)’이 필요하다. 이것은 자신이 가진 생각에 어떤 것을 보태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게 만들 수 있는 정신의 능력, 바로 상상력이다.

상상력은 너무 가까이 있는 것은 거리를 두어 편견이나 선입견 없이 보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고,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마치 그것이 우리 자신의 일인 것처럼 보고 이해할 수 있도록 심연의 다리를 놓아준다. 이러한 상상력이 발휘되는 곳이 바로 대화 상황이다. 비가시적인 대화 내용을 사유 과정에서 가시화시킬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상상력이기도 하다. 상상력이 없다면, 우리는 결코 세계에서 우리의 위치를 확인할 수 없을 것이다. 불편부당성의 적용과 상상력에 기반한 정신의 확장은 사적 영역에서의 사유가 공적 영역으로 나아갔을 때 그 역할이 더 강화된다.

어떻게 읽고 어떻게 말하느냐, 혹은 어떻게 쓰고 어떻게 듣느냐에 따라 정치적 행위의 실현 여부는 달라진다. 이제 저자는 정치적 행위로서의 언어활동이 글과 말, 읽기와 쓰기, 말하기와 듣기로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한다.

 

정치적 자유와 평등의 전제로서
말하기-듣기의 능동적 참여

말을 매개로 한 언어활동인 말하기와 듣기는 화자와 청자 간의 1차적인 직접적 대면을 통해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고 이해를 하는 의사소통적 행위이며, 공론장 영역에서 화자와 청자가 서로 의견을 받아들이고 이해함으로써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게 하는 정치적 행위의 지위를 갖게 된다. 이 때 말하는 이와 듣는 이는 그 어떤 내외부적 조건에 의해 강제되지 않는 평등한 입장에서 자유롭게 말하고 듣는 관계에 놓여야 한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말하는 이에 비해 듣는 이는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려는 자세를 취함으로써 평등한 말하기-듣기의 관계에서 벗어난다. 또한, 말하기는 말하는 이가 일방적으로 말을 쏟아내고 듣는 이가 무조건 듣기만 하는 주입식의 관계로도 나타난다. 말하기-듣기의 관계가 내외부적으로 그 어떠한 강제나 차별적인 조건들에 굴하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주고받는 기회를 가질 때 의사소통적 행위는 올바른 정치적 행위로 받아들여진다. 말하기-듣기의 능동적 참여는 정치적 자유의 실현을 의미하며, 이 참여의 가능성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정치적 평등의 실현을 전제로 한다.

공론장에서의 말하기-듣기는 논쟁적 갈등이 촉발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부딪침을 전제로 한다. 부딪침은 다름의 또 다른 이름이다. 한 사람을 구성하는 내부적/외부적 요인은 그를 드러내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그 요인들은 ‘나임’을 규정하는 정체성의 문제이다.

 

다름을 인정하는
연대로서의 말하기-듣기

저자는 공적 영역에서의 말하기-듣기가 잘 되는 것은 올바른 정치로의 한 행보이며, 말하기-듣기는 정치적 행위 문제로 환원된다고 이야기한다. 말하기-듣기를 통해 서로가 다름을 확인하고, 다름의 인정을 통해 세계에서 삶을 지속시키는 연대성도 확보할 수 있다. 연대는 단지 같다고 여기는 사람들끼리 모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집단적 힘의 발휘를 넘어 서로 다른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공공의 문제로 함께 해결함으로써 인간다움을 실현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할 것이다.

저자는 이의 구체적인 실천 방안으로 소속된 영역만큼의 다양한 정체성과 말하기-듣기에서 누군가의 이야기를 고정된 생각으로 판단해서 들으려 하지 않고 이야기의 진정성을 이해할 것을 제안한다. 전적으로 사적인 이야기는 없기에 모든 이야기는 들을 만한 것이다.

공적 영역에서의 의사소통적 행위가 올바른 말하기-듣기로 구성되지 않는 것은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말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자기 방식대로 듣기를 고집했기 때문일 것이다. 말하기-듣기는 말하는 이와 듣는 이의 세계 내 존재를 확인하는 과정이며, 공적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과 이 세계를 유지하는 힘을 마련하는 과정이다. 저자는 이를 가능케 하는 인간다운 삶의 필요한 충분 조건인 경제적 안정을 위해 서발턴의 삶에 대한 연구를 제안한다.

본 논문 후반부에서 저자는 영화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2>에 나오는 대사를 인용한다.

말은 우리의 무궁무진한 마법의 원천으로, 상처주기도 하고 상처를 치유하기도 한다.

유체이탈 화법이 난무하는 시대, 어쩌면 무엇보다 절실한 대화의 전제는 진정성이 아닐까?

* 함께 읽으면 좋은 논문

「다름의 인정과 차이의 지양-아렌트의 정치 개념에서」
윤은주, 2008, 『철학』, 94, 55-82.

「정치적 행위와 자유: 한나 아렌트의 정치철학에 대한 비판적 소고」
정미라, 2014,『철학논총』, 76, 611-628.

김연정 리뷰어  equ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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