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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ofinale‘법’이란 인간 생활을 규율 하는 이념적이고 역사적인 개념이다. 그러므로 인간을 향한 ‘법’은 특정한 ‘인간상’을 전제로 할 수밖에 없다. 모든 법 이론의 출발점과 귀결점에서 인간상을 규명하려는 이유가 여기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생각보다 복잡한 존재이다. 고로 단 하나의 인간상을 규명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김종덕 계명대 법학과 교수는 법에 있어서의 인간상에 관한 고찰(『법학연구』, 61, 2016)에서 인간상을 단 하나로 정립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논문에서는 역사 이래 다양하게 존재했던 인간상과 그 인간상이 어떻게 법 해석에 작용되는지 또 현대 법 체계에서 반영해야 할 인간상은 무엇인지에 관한 저자의 생각을 접할 수 있다.

 

자유의사를 지닌 존재,
인간 

인간은 동물과 달리 정신적 의식 활동을 하는 존재로 알려져 있다. 의식과 자유, 가치 인식, 책임 있는 자기결정과 자기실현은 인간만이 가진 특징이다. 특히 자유의사는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요소인 동시에, 형법상 책임비난의 근거가 되기도 하는데, 이는 인간상 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 모든 형벌의 기초인 ‘책임’은 자유롭고 윤리적인 인격체로서의 인간상에 그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증주의 근대학파나 객관심리학의 연구결과는 이러한 통념과 다른 의견을 내놓는다. 바로 인간 행동이 순수한 선택의 자유가 아니라 그 원인들의 조건반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반된 의견 속에서 저자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저자는 결국 절대적 의미에서 자유의사는 존재하지 않으며, 어느 정도 선천적, 후천적인 조건에 의해 자유의사가 제한 받는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형법상 책임개념의 정립과 보안처분이론의 합리적 설명을 위해서 타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상대적 자유의사론도 일정 부분 자유의사의 존재를 바탕으로 하기에 결국 두 가지 의견이 혼합된 ‘복합적·혼합적 인간상’을 정립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이기적인가,
공리적인가 

다음은 근대 법질서에 큰 영향을 미친 질문이자 인간상 정립을 위한 핵심적인 질문을 살펴보자. ‘인간은 과연 이기적인가? 공리적인가?’의 문제다.

근대에 들어 법은 개인을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인간으로 전제했다. 여기서 ‘합리적 인간’이란 “대단히 이기적일뿐만 아니라 자기의 사리추구에 있어서 아주 영리하여 개인적 이익만을 추구하며, 모든 사회적 구속으로부터는 자유롭고 법률적 구속에 대하여는 단지 잘 이해된 개인적 이익에 따라 스스로 그것을 수인했기 때문에 복종하는 인간상”을 말한다. 저자는 이를 간접적으로 성악설적인 인간형이며, 이 측면이 바로 법적 규율대상으로서의 인간상이라고 본다. 그러나 저자는 인간이 개인적 이익을 초월한 자신의 행위에서 행복감을 느끼는 정신적인 존재임을 또한 간과할 수 없다고 본다. 그러므로 인간을 개인적·이기적인 존재로만 파악하는 것은 한 측면만을 지나치게 부각한 관점임을 지적한다.

반면, 자유주의 법시대에는 새로운 인간상 즉, 공동체 속 집합적 인간, 공익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양보할 줄 아는 인간으로서의 면도 인정된다. 그리고 이 측면은 윤리의 규율대상이 되었다. 즉, 인간은 개인주의와 집합주의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인간은 이성적인가,
비이성적인가 

인간상 정립을 위해 필요한 또 하나의 중요한 질문은 인간은 과연 정말 이성적인 존재냐는 것이다. 근대 초기 인간상은 개인의지의 절대적이고 평등한 자유를 인정하며, 모든 인간을 이성적인 인격의 주체로 파악했다. 그러나 홉스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잘 알려져있다시피 인간의 자연상태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로 가정하며 비이성적이고 충동적인 존재로 파악했다. 고로 국가질서를 철저한 민주주의 관철보다는 권력통제를 제도화하는 편이 낫다고 본 것이다. 반대로 인간의 이성에 대한 신뢰와 낙관주의는 무정부주의와 급진적 민주주의의 중요한 전제가 된다. 물론 이 둘 사이에는 인간을 복합적이고 종합적 성격을 지닌 존재로 파악하는 무수한 관점들이 존재한다.

 

실정법에 나타난
인간상 

그럼 좀 더 논의를 구체적으로 따라 들어가 보자. 법의 세계에서는 인간의 어떠한 면을 강조하며, 어떤 인간상을 부각할까? 저자에 따르면, 법의 종류마다 인간을 보는 측면은 각각 다르게 나타난다.

먼저 헌법을 살펴보자. 헌법은 기본적으로 국민의 기본권과 의무에 관해 인간성을 보장한다. 여기서 인간성 보장이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최고 이상으로 두는 것이다. 이후 이를 자유와 평등이라는 관점에서 권리와 의무의 형식으로 열거하고 규정한다. 그렇다면 헌법은 인간의 생명권을 어떻게 다루고 해석할까? 생명권은 기본권 제한에 관한 일반적 법률유보규정인 헌법 제37조 제2항에 의해서도 그 본질이 박탈될 수 없다. 국가의 1차적 의무이자 마지막 의무는 헌법에 명문규정을 두었는지와 상관없이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이를 종합할 때 저자는 헌법이 원칙적으로 인간의 주체성과 인간생명의 절대성을 최우선으로 한다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민법은 어떨까? 근대사법에서는 권리자의 권리 행사는 ‘자유’에 맡겨져 있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자기의 권리를 행사하는 자는 누구도 해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법 격언이 이를 대변해준다. 즉 근대사법에서는 추상적으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현대 사법에서 권리행사의 자유는 무조건적이지 않다. 바로 다른 권리의 자유와의 관계에서 한계를 갖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근대 사법에서 소유권절대의 원칙이나 계약자유의 원칙은 오늘날 공익이나 다른 자유권에 의해 제한될 수 있다.

한편, 사회법에서 보는 인간상은 평등한 인격보다는 강자와 약자의 인간 모습이 강조된다. 예를 들어, 사회보장법의 영역에서 입법이나 해석은 사회경제적 약자를 도와주는 방향으로 이루어진다. 법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사회보장 이념을 실현함으로써 자본주의적 자유사회를 지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형법에서의 핵심은 인간상과 형벌관을 어떻게 이론화하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에 다른 법에 비해 인간성과의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형법은 바람직한 인간상을 설정하고, 그것을 어긴 자에 대해 처벌을 가한다는 면에서 윤리성이 가장 강한 법규범이다. 한편 형법은 모든 인간이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는 존재로 보기도 한다. 따라서 형법이 기초하고 있는 인간상은 추상적 인간상인 전인적·인격적 인간상을 토대로 구체적이고 현실적 인간상인 잠재적 범죄성을 지닌 인간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반면, 형법은 관용주의적 입장에서 불완전한 인간이 비록 죄를 저질렀더라도 후회하고 뉘우치면 용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정상적인 사회인이 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즉, 형법은 인간이 교육 등에 의해 개선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법은 인간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이처럼 저자는 다양한 인간상을 열거하고 그 인간상들이 법에 각각 어떻게 적용되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결론에 이르러 법에 있어서 인간상의 전제에 대한 변화를 제안한다. 가령 추상적인 주체이자 고립된 개체로 보았던 기존의 인간상은 현대에 이르러 더 이상 타당하지 않기에 이제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인간상이 제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변철학에서처럼 모든 인간이 일반적이고 동등한 평균형의 존재가 아니라 각자의 생활 영위에 따라 다양한 속성을 지니고 있기에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사회화된 집단적 인간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칸트의 형이상학적 양심이론에서처럼 선험적인 도덕법칙에 따라 선과 악을 인식하고 구별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을 인정 해야 하지만 이것이 인간을 전체적으로 지배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법에서 인간을 파악할 때에는 구체적 행태에 따라 때로는 모든 인간에게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평등성이 주어지는 인간상을 바탕으로 하고, 이에 추가하여 각 개인마다 각각 다른 특징과 능력 등을 지닌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인간상이 결합될 때에 비로소 법이 추구하는 법적 정의(평균적 정의와 배분적 정의)의 실현은 물론 합목적성(구체적이고 개별적인 합리성)의 실현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대법에 있어서는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인간상과 함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인간상이라는 양자 모두를 동시에 고려한 이른바 종합적 인간상을 전제로 함이 타당하다 할 것이다. (255쪽)

저자는 종합적인 인간상을 전제하는 것이 복잡 다양한 현대적 문제들을 효과적으로 설명하고 해결하는 데 적절하다고 주장한다. 더불어 시대마다 또 사회 혹은 과학 발달과 함께 변화한 인간상을 반영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을 당부한다. 이처럼 인간이 복합적이고 중층적이기에 종합적 인간상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이 일견 옳지만 종합적이고 중층적인 인간관이 법에 있어 명확하고 일관적인 판단 기준으로 기능할 수 있을지 다소 의문이 든다. 물론 명확한 기준은 때로 편협과 배제의 폭력을 불러올 위험이 있지만 반대로 종합적 인간상이라는 것은 모호한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닐까? 이 문제와 관련한 저자의 깊은 논의를 만나보고 싶다.

 

권성수 리뷰어  nilnilis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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