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os

logofinale고문서를 읽다보면 “남장南掌”이나 “면전緬甸”과 같은 이상한 단어와 마주치게 된다. 도무지 뜻을 알 수 없는 이 단어들의 실체는 고대 국가의 이름이다. 남장南掌은 오늘날의 ‘라오스’이고 면전緬甸은 ‘미얀마’다. 조선시대 문인들도 이들 나라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조선이나 동남아나 중국에 조공을 바치긴 마찬가지였는데, 북경에 가면 자연히 이들과도 마주쳤던 것이다. 다만 연행사의 신분이어야만 가능했다.

고려대 국문과 박사과정에 재학중인 정내원 씨가 발표한 南掌과 緬甸에 대한 조선 문인의 다면적 인식(『국어국문학』 172, 2015)은 그동안 전혀 다뤄지지 않은 조선시대 사람들의 라오스·미얀마 인식을 다루고 있어 비상한 관심을 끈다.

일단 논문에서는 베트남이나 류큐(오키나와) 등은 16세기 후반 이수광李睟光 같은 학자들이 그쪽 사신과 나눈 필담을 모아 『안남국사신창화문답록安南國使臣唱和問答錄』 등을 묶어낼 정도로 교류가 있었으나 미얀마와 라오스와는 거의 없었다고 지적한다. 단순히 거리 문제만은 아니었다. 더 먼 나라 서양이나 중동 지역과는 교류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가장 큰 원인은 의사소통이었다. “죽간 열 편을 내어 보이니 검은 종이에 노란 글씨이며 (…) 그 글자의 형체가 가늘고 둥글었는데 마치 새 발자국 같기도 하고 주먹을 쥔 것 같기도 하니 괴상하고 망령됨이 매우 심하다” 이의봉李義鳳의 『북원록北轅錄』에 나오는 대목이다. 그쪽에서 한자를 전혀 모르니 필담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이의봉은 1760년 동지사冬至使로 북경에 간 인물이었는데 이때 라오스南掌 사신과 첫 만남을 가졌던 것이다. 그는 라오스 사신의 생김새와 옷차림새에 대해서도 묘사했다.

“눈빛은 겸손하고 치아는 고르니 안남安南 사람과 같다. 청淸 복장을 둘렀는데 황제가 하사했기 때문이다. 종행인의 나이는 모두 서른 이하며, 검푸른 눈썹을 가지고 있어서 외모가 물의 신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비교적 우호적으로 묘사했다. 호기심이 일어 이것저것 물어본 뒤에 이의봉은 가져갔던 청심환을 이들에게 선물했다. 반면 얼마 뒤에는 전혀 다르게 이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모양새가 다 짧고 작으며 얼굴색이 검다. 눈빛은 사나우며 발바닥은 나무뿌리처럼 무디고, 온몸에 교룡蛟龍과 호표虎豹의 무늬를 새겼다”며 두려움의 감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이들 국가에 대한 조선 사신의 시선은 대체로 이와 같은 쪽으로 흘러간다. 해가 흘러 1790년 유득공柳得恭이 서호수徐浩修와 함께 연행에 갔을 때 라오스南掌 사신을 또 만났는데 “몽고의 왕이 캉 위에 앉아 남장南掌 사람을 내려다보며 가만히 웃자, 남장 사람은 사나운 눈으로 그를 올려다 보았다. 한 사람에게 鐵馬를 달려 차고 밟는 형상이 있다고 한다면, 또 한 사람에게는 깊은 대나무 숲에서 독화살을 쏘는 뜻이 있었다. 남만과 북적이 서로 만나니 그 모양이 우스웠다”라고 했다. 논문의 저자 정내원 씨는 “조선 사신이 남장 사신을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 데에는 공감하기 어려운 개방적인 풍속에 대한 이질감 때문인 듯하며 이러한 균열은 쉽게 메워지지 못했다”라고 말한다. 아래의 인용을 보면 왜 그러했는지 알 것 같다.

프랑스 식민지인 1900년대 라오스 지역군.(위키피디아)

“남장南掌 사람은 매우 독하다. 고북구의 남천문 위에서 우리나라의 마두 한 사람이 우연히 성 아래로 침을 뱉었는데 때마침 남장 사람이 그 아래를 지나다가 얼굴에 맞았다. 그 자는 화를 내며 옷을 벗고는 자신의 성기를 흔들어대면서 올려다보고 무어라 무어라 지껄이는 것이었다. 그 사람들은 또한 음탕하다. 원명원에 있을 때 남장 사신이 역관을 통해 우리들에게 한 물건을 팔고자 했다. 그가 합盒 하나를 꺼내니 매미처럼 찌륵찌륵 우는 것이 청동 기물에 들어 있었다. 손바닥에 올려놓으니 더욱 울어댔는데 팔뚝으로 이어지더니 가슴에 와 잦아들었다. 물으니 그것은 이른바 면령緬鈴이란 것이었다. 동그랗고 입구가 없으며, 작은 호두 크기만 한데 겉면에는 금이 입혀 있었다. 금․은․동 세 물질을 녹이고 두드려 81개의 조각으로 만들어 봉합한 것으로 속에 작은 구슬이 있으니, 찌륵찌륵 소리가 났던 것은 그 구슬이 움직이는 것이었다. 용도를 물어보니 매우 외설스러웠다. 남장의 추잡함이 모두 이와 같았다.”

면령緬鈴은 동으로 만든 종 모양의 성기구다. 유득공은 종처럼 생긴 것이 저절로 소리를 내는 모습에 호기심을 가졌다가 그 용도를 알고 나서는 추잡스럽다고 여긴다. 더군다나 엄숙해야 할 장소인 대성전 내에서 남장 사신이 헐벗은 차림새로 다니는 모습을 목격했으니 경멸감은 더욱 확고히 굳어졌을 것이다. 정 씨는 유득공 이후 조선 사신들이 남장 사신들에게 느낀 인상은 ‘독毒’과 ‘음淫’의 이미지로 형상화된다고 말한다. “머리에는 관을 착용하지 않고 노란 비단으로 두 상투를 둘렀는데, 긴 상투를 드러내어 매우 우습다. 또 그 이빨에 옻칠을 하고 그 입술을 붉게 칠하고 그 귀를 뚫었으므로, 그 모습이 괴이한 귀신이나 흉악한 짐승 같아서 아주 밉살스럽다”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예의를 중시한 나라로서 당연히 그랬으리라 여겨지면서도 타 문화에 대한 조선의 경직된 인식이 갖는 한계를 두루두루 생각해보게 되는 대목이다.

강성민 리뷰위원  review@bookpo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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