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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ofinale누군가에게 고통스러운 전쟁의 참상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귀중한 연구 자료로 여겨진다. ‘소비에트 사회 체계’를 지속적으로 연구하던 미 공군 산하의 연구기관인 HRRI(인적자원연구소)은 소련 현지조사 연구를 직접 할 수 없어서 그 체제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는 데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국전쟁이 발발한 “한반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공산주의 진영과 자유주의 진영이 격돌했던 첫 무대였고, 전황은 후퇴와 진격 사이를 오가는 이른바 ‘톱질 전쟁’의 양상을 보였다.”(288). 이에 소비에트화를 일부라도 겪은 사람들, 적에 의해 지배받았던 경험을 갖고 있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연구 대상’이 한 곳에 모여있던 한국은 소비에트 체제를 연구하던 학자들에게 그야말로 귀중한 “실험장”으로 생각되었다.

김일환, 정준영냉전의 사회과학과 ‘실험장’으로서 한국전쟁: 미공군 심리전 프로젝트의 미국인 사회과학자들」(『역사비평』 , 118, 2017)에서 HRRI 연구팀이 발표한 보고서에 근거해 연구자들이 한국에서 어떻게 연구했고 그들의 연구 자료는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은 그들의 본국 미국에서 어떻게 활용되었는지”를 질문하고 분석한다. 저자는 그 동안의 냉전 사회과학에 대한 연구가 “군부와 학계 사이에 구축된 유착관계를 폭로하고 비판하는 데는 크게 기여했지만, 군학복합체가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지식을 생산해냈으며, 이렇게 생산된 지식이 이후 냉전적 학지(academic knowledge)로서 어떤 지식효과를 발휘하게 되는지를 추적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고 지적하며 보편적 지식을 위해 제거된 “생산의 맥락”을 드러내려 했다. (283쪽)

맥아더와 이승만
군학복합체의 탄생:
학자의 욕망과 “고객” 군부의 관심 사이에서

우선 한국으로 연구팀을 꾸려 오기에 앞서 HRRI는 공군 지도부의 승인을 받아야 했다. 그들은 ‘공군 사기 진작 및 심리전 평가’라는 전통적 이유를 들어 공군을 설득했고, 마침 내부적으로도 공중 폭격 및 민간인 피폭 문제 등의 영향력과 군 장병들의 사기 상태 대해 관심을 기울이던 공군의 수뇌부들은 연구팀 파견을 어렵지 않게 수락했다. HRRI 팀은 이제 한국의 소비에트 잔재를 연구하려는 학문적 목적을 이루는 동시에 그들 연구의 후원자인 공군 지도부의 관심을 맞추는 미묘한 줄타기를 하게 된 셈이다. 또한 연구팀 구성원의 면면을 살펴보면 언론정보학자 윌버 슈람(Wilbur Schramm), 심리전 연구의 전문가인 존 라일리(John W. Riley, jr.)와 일본 현지 연구를 수행한 바 있는 인류학자 존 펠젤(John C. Pelzel), 과거 HRRI 심리전부서 책임자였던 프레드릭 윌리엄스(Frederick W. Williams) 등 내부적으로도 다양한 학문적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음을 볼 수 있다. 이에 저자는 “이러한 이질적인 연구팀의 구성은, 현지에서 지식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나타났던 긴장과 불일치의 원천”이었음을 강조한다.(294쪽)

상이한 이해관계의 결합으로 출발한 HRRI 연구팀의 성격은 그들의 보고서에도 여실히 드러났다. 두 권으로 나누어진 보고서의 1권은 참여 연구자들이 개별적으로 수행한 연구들이 “각 지역에서 전개되었던 소비에트화 과정에 대한 연구, 그리고 그 체제로부터 ‘탈출’한 피란민들의 동기에 대한 연구”(295쪽)라는 주제 아래 모였다. 가령 슈람과 라일리는 정량적 방법론을 차용하여 한반도를 모두 포함하는 보편적인 ‘소비에트화’ 모델과 이에 대한 작전 지침을 제안하였고, 인류학자인 펠젤은 “한국 농촌 사회의 가족 구조 및 해방 이후 누적된 지역사회의 갈등과 긴장”에 초점을 맞추어 북한군이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분석했다. 문제는, 심리전 전략 -삐라 살포와 같은-이 효과적인지에 대한 평가가 일치하지 않는 점이었다. 예를 들어, 펠라는 심리전 전략의 한계를 지적한 한편, 슈람과 라일리는 통신 수단을 독점하여 공산당 정책을 선전하는 방식의 효과를 긍정했다.

논문의 저자는 1권에서 학자들이 보인 의견의 불일치가 2권에 가서 깔끔하게 정리된 양상을 보여준다. 흥미롭게도 2권은 학문적 관점에서 연구하던 저자들이 그들의 “고객”인 군부를 의식하여 고객의 필요에 맞게 수정 편집한 결과물로, 1권에서 보인 다양한 결들은 삭제되고 군의 심리전 작전을 옹호하는 식으로 결론이 정리됐다. 이 지점에서 논문의 저자는 질문한다. “민간인 연구자들에 의해 현지에서 이루어진 지식생산이 군 작전 지침으로 변환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내용의 선별, 목적의 전환 및 효과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이 문제는 2개의 보고서가 보여주는 HRRI의 ‘소비에트화 연구’와 ‘심리전 연구’ 사이의 긴장, 더 나아가 군학복합체의 현지 지식생산이 가지는 성격을 이해하는 데 대단히 중요하다.”(297쪽) 즉, 논문의 저자는 HRRI 연구자들이 얻은 자료 생산의 맥락과 그 중 어떤 자료들을 취하고 버렸는지를 살피며 보고서가 가진 복잡성을 드러내려 하는 것이다.

 

학문장 내의 정치:
로컬 지식의 탈맥락화

HRRI 연구팀이 한국에 체류한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들은 1950년 12월 9일에 한국에 도착해서 1951년 1월 15일에 출국, 한 달 남짓 머물렀는데, 초반에 서울에 잠시 머물며 남한 정부 관료를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한 후 각자의 연구를 위해 펠젤은 대전 지역으로, 나머지 인력은 부산으로 이동했다. 짧은 기간이었음에도 연구진들이 방대한 자료를 얻어 귀국할 수 있었던 데는 현지 미군 및 한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현지 보조 인력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예를 들어, 전쟁포로 1,250명의 심문 보고서가 담긴 ‘ADVATIS(전방연합군번역과)’의 포로 심문 보고서와 같은 경우, 연구자들이 보고서의 심문 자료를 참고 삼아 추가 인터뷰를 진행하거나, 설문 형식 역시 이 보고서의 양식을 차용하는 등 시간제약에서 오는 한계를 보완하는 데 매우 유용했다. 또한 피란민 1,319명을 조사했던 라일리는 공산주의에 대한 적대감의 원인과 정도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한국 정부과 UN의 관리 하에 있단 피란민 수용소와 한국인 사회과학자들의 협조를 매우 유용하게 사용했다.

“미국의 냉전 사회과학은 명시적인 ‘적’을 대상으로 삼았던 지식의 체계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지식이 주변부 사회에서의 폭력적 과정을 통해 어떻게 생산되었는지가 은폐되고, 탈맥락화된 이론적 명제의 형태로 중심부 사회의 사회과학장으로 환유하는 권력의 체계였던 셈이다.” (313쪽)

출처: 위키피디아

논문의 저자는 연구 과정에서 HRRI 팀 학자들이 가진 관심이 피란민들을 ‘공산주의 탈출자’로만 재현하고 타자화시켜 이들이 왜 공산주의를 탈출했는지 그 동기에만 집중하게 만드는 등, HRRI의 연구 자체가 철저한 ‘냉적전 인식틀’에 기반해 있었음을 주장한다. 결국 HRRI이 한반도에서 연구를 수행하는 와중에 접한 전쟁의 ‘중층적 맥락’이나 현지사회의 복잡성은 그들의 학문적 관심에 근거하여 차용되고 각색된 후 “‘소비에트화의 수동적 수용 혹은 탈출’이라는 이원적인 틀 속에 배치됨으로써 학문적 차원에서 냉전적 인식틀이 창출되고 강화되는 데 기여”(305쪽)되는 방식으로 현지에 대한 지식이 창출되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HRRI 연구팀이 1951년 5월에 보고서를 발표한 후 미국 내 여러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해체하게 되었지만, 연구팀 해체와는 별개로 그들 보고서의 내용이 미국 사회과학 학술장 내에서 어떻게 유통되었는지를 흥미롭게 드러낸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에서 생산된 로컬한 연구 결과가 미국에서 ‘탈맥락화’되어 학문장에서 요구하는 ‘보편적인’ 사회과학적 관점과 용어로 포장되었다. 가령 ‘1950년 겨울의 서울’은 ‘소비에트화된 국가’로 일반화되었고, 이 과정에서 군부와의 협력 관계 속에서 생산된 자료의 맥락 역시 숨겨진 것이다.

 

*함께 읽으면 좋은 논문

6·25전쟁기 미군의 삐라 심리전과 냉전 이데올로기
정용욱, 2004, 『역사와 현실』, 51, 97-133.

 

문지호 리뷰어  lunatea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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