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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올해 11월말에 공개될 것으로 예정된 한국사 국정교과서는 편찬 작업이 시작되기 이전부터 수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기존 한국사 검정교과서들의 내용, 특히 정치적 편향성을 국정제를 추진하는 주요 근거로 제시했지만, 교육계, 학계는 물론, 대중의 광범위한 지지를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이미 다른 여러 글에서 충분히 지적되었듯이 검정교과서의 내용에 대한 문제제기와 국정제로의 전환은 서로 별개의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설령 백 번 양보해서 검정교과서들의 정치적 편향성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하더라도 국정제로의 전환을 통해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국정제의 폐지는 경쟁을 통해 보다 풍부한 자료와 다양한 서술을 갖춘 역사교과서를 만들기 위한 것이지만, 무엇보다도 국가, 혹은 특정 정부가 단일한 시각으로 역사교과서를 편찬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국정제로 다시 전환하게 되면 다양한 역사적 시각과 정치적 견해를 공존하게 하려는 시도는 뭉개지고 만다. 이것은 국가를 위한 역사서술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근대 역사학의 성과를 무시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중시하는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뒤흔드는 일이다. 더군다나 검정교과서들이 정부의 집필기준과 교육과정을 완전히 무시하고 만들어질 수도, 만들어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다시 그 서술의 정치적 편향성을 지적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현재 한국의 정치 상황으로 볼 때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국정교과서 편찬이 제대로 마무리될지는 알 수 없지만, 작업이 마무리되더라도 국정제는 유지되기 어렵다. 앞으로 나올 국정교과서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국정제의 한계의 명확하다. 한국의 교육이 한 사람을 민주공화국의 국민으로 성장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국정제로의 역행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국정제가 다시 폐지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가. 그렇지 않다. 국정제 전환이 현안으로 떠오르면서 이미 논의되고 있었던 기존 검정교과서의 문제들, 앞서 언급했던 집필기준이나 교육과정의 한계, 교과서의 절대적인 양과 질의 부족, 서술의 다양성 부재 등은 상대적으로 축소되었다. 홍선이 연구자의 「‘한국사 교과서’ 조선 후기 신분제 내용의 획일과 고착」(『역사교육』, 137, 2016)은 바로 이러한 검정교과서들의 문제를 조선후기 신분제에 대한 교과서의 서술을 통해 살펴보고 있다. 이 연구는 국정제에 대한 반대를 명확히 밝히고 시작된다는 점에서, 국정제 폐지 이후의 역사교과서 편찬과 역사교육의 방향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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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신분제에 대한
네 가지 견해

한국사 연구가 시작된 시점부터 지금까지 조선후기 신분제는 중요한 연구 주제였다. 일제시기 조선후기에 나타난 신분이동현상은 조선 지배층의 무능함을 보여주는 현상으로 설명되었다. 그러다가 해방 뒤 일제의 이른바 ‘식민사학’에 대응하기 위한 논리로 내재적 발전론이 등장하면서 조선후기 신분제도 다시 검토되었다. 내재적 발전론에서는 하층민의 신분이동이 강조되면서 당시 신분이동현상은 한국사의 발전을 보여주는 현상으로 설명되었다. 최근에는 근대와 근대성에 대한 비판의 맥락에서, 내재적 발전론을 바탕에 둔 신분제의 재해석이 시도되고 있다. 이처럼 조선후기 신분제는 한국사학사韓國史學史 전체를 관통하는 논쟁적인 주제이다.

이 연구에서는 조선후기 신분제에 대한 견해를 크게 네 가지(문란설, 해체설, 안정설, 동요설)로 나누고, 그것을 기준으로 검정교과서, 그리고 검정교과서 이전 국정교과서의 서술을 살펴보고 있다.

문란설은 사카타 히로시四方博(1900~1973)로 대표되는 견해로, 조선 지배층의 부패와 무능력으로 인해 조선후기 신분제가 해체되었다는 것이다. 문란설은 양반을 의미하는 유학幼學이라는 신분이 전체 인구의 70%나 된다는 호적戶籍 연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해체설은 김용섭(1931~), 정석종(1940~)으로 대표되는 견해로, 문란설과 마찬가지로 양반이 전체 인구의 70%에 이르렀다고 보지만, 문란설과 달리 그 요인을 상품화폐경제의 발달과 농업 경영의 변화로 본다. 반면 안정설과 동요설은 기존의 호적 연구에 대한 비판을 제기하면서 조선후기에도 신분제가 큰 틀에서는 유지되었다고 이해한다. 안정설은 송준호(1936~), 에드워드 와그너Edward Wagner(1924~2001)로 대표되고, 동요설은 권내현, 김건태로 대표되는 비교적 최근의 견해이다. 다만 안정설은 하층민의 신분 상승이 매우 희소한 현상이었다고 보았고, 동요설은 일부 하층민들의 신분 상승으로 신분제가 동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인구 비율 자체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고 보았다.

획일된 서술
부족한 자료

기존의 검정교과서들과 그 이전의 국정교과서에서는 해체론을 바탕에 둔 서술이 일반적이었다. ‘식민사관’을 비판하고, 근대로 나아가는 한국사의 발전을 효과적으로 설명하는 내재적 발전론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학계의 최신 연구 성과가 일부 반영되기도 했지만, 해체론을 바탕에 둔 서술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학계에서는 시대의 변화와 연구의 축적으로 조선후기 신분제를 설명하는 새로운 견해가 계속 등장했다. 최근에는 문란설과 해체설이 심각한 비판을 받으면서 안정설과 동요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러나 이 연구에 따르면, 기존 검정교과서들은 이러한 연구 성과와 흐름을 거의 반영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근대, 근대성에 대한 비판과 실증의 축적으로 인해 학계에서는 설득력이 떨어지고 있는 해체론에 입각한 서술이 더욱 강화되고 있는 것이 확인된다. 관련 내용을 서술할 때 문장 표현도 교과서마다 대동소이할 정도로 고착되어 있고, 다양한 견해의 내용이나 배경도 소개되고 있지 않다.

검정교과서들에 활용되는 시각자료도 한정적이고 중복된다는 점도 확인되었다. 물론 시각자료의 절대적인 숫자 자체는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지만, 검정교과서마다 사용하는 시각자료가 비슷하고 또 이미 학계에서는 다르게 해석되는 시각자료도 그대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시각자료를 인용하는 효과가 크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의
‘한국사 교과서’

이 연구에서는 국정제를 폐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다원적 관점에 입각한 다양한 교과서 제작이 이루어지지 못한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첫째는 국가의 통제이다. 비록 외형적인 제도는 국정제를 벗어나기는 했지만, 검정교과서가 정부의 집필기준과 검정기준에서 자유롭기는 어렵다. 물론 강제성은 없지만 현실적으로 정부의 지침을 따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입시와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는 현재 교육과정에서 학계의 다양한 논의를 풍부하게 반영하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다. 둘째는 대안 담론의 부재이다. 내재적 발전론에 대한 비판은 충분히 이루어진 상태라고 볼 수 있지만, 그것을 대체하는 담론은 아직 등장하지 못했다. 거대 담론에 기대는 역사서술을 지양하는 것이 현재 역사학의 흐름이기도 하지만, 일부 정치인들과 언론인들이 내재적 발전론에 포섭되지 않는 비판적 논의들을 모두 ‘식민사관’의 아류로 치부해버리는 태도도 대안 담론의 등장을 어렵게 하고 있다.

이처럼 현재 추진되고 있는 국정제가 다시 폐지되어도 역사교육을 둘러싼 문제들은 산적해있다. ‘한국사 교과서’는 그러한 문제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역사교육의 목적이 무엇인가, 입시에서 자유로운 역사교육이 왜 필요한가, 그리고 어떻게 가능한가, 교과서에 어떤 자료를 어떻게 선정해서 얼마나 인용할 것인가, 학계의 논의를 역사교육에 얼마나 반영할 수 있을 것인가 등등 아직도 논의해야할 질문들이 끝없이 이어져있다. 이 연구에서 지적하는 것처럼 현재 국정제를 둘러싼 ‘한국사 교과서’ 논의는, 역사교과서와 역사교육의 근본적인 정비라는 맥락에서 볼 때 이제 겨우 시작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함께 읽으면 좋은 논문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의 집필기준과 검정시스템」
주진오∙김도형∙허동현, 2004, 『역사교육』, 92, 265-273.

「내재적 발전론과 조선 후기사 인식」
권내현, 2015, 『역사비평』, 111, 417-442.

이지훈 리뷰어  pen9uinis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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