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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ofinale세종은 워낙 집대성적인 인물이라 그 업적 관련 논의만 해도 정리하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또한 위대한 인물이라는 사실에만 초점이 맞춰지다보니, 정말 ‘위대한 인물’이라는 박제에만 갇혀, 더 유용한 논의로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 연구 논문은 인간으로서의 세종이 가진 공감능력, 감수성, 정치적인 균형감각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한다. 나아가 최종적으로는 21세기 대한민국이 겪고 있는 어려움 속에서 세종이 보인 공감능력, 감수성, 정치적 균형감각을 통해, 현재의 난국에서 가질 수 있는 의미를 짚어본다. 최근의 시국을 본다면, 한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에게 필요한 덕목은 다른 게 아니라 공감능력과 감수성, 균형감각과 같은 부류의 능력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강상규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일본학과 교수「공감능력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본 세종의 정치적 리더십: 한국정치에서 세종 리더십의 함의」(『한국동양정치사상사연구』, 15(2), 2016)에서 그러한 부분들을 어떻게 살펴보고 있는지 알아보자.

세종이 꿈꾸던 나라

재위 26년 세종이 내린 권농 교서를 살펴보면, 세종이 생각하는 좋은 정치와 비전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다.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삼는다. [……] 윗사람이 성심(誠心)으로 지도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백성들로 하여금 부지런히 힘써 농사에 종사하여 그 생생지락(生生之樂)을 완수하게 할 수 있겠는가. [……] 그리하여 우리나라의 근본을 견고하게 한다면, 거의 집집마다 넉넉하고 사람마다 풍족하며, 예의를 지켜 서로 겸양하는 풍속이 일어나서, 시대는 평화롭고 해마다 풍년이 들어 함께 태평시대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66쪽)

세종이 생각하는 좋은 정치는 ‘사람들을 살맛나게 하는 것[生生之樂]’이어야 한다는 것인데, 여기에 그의 비전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또한 세종이 지향하는 나라에 대해서는 첫째, 가정마다 풍족하여 근심이 없어야 하며, 둘째, 서로 존중하는 사회 풍토가 조성되어야 하며, 셋째, 평화롭고 풍요로운 태평시대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제시하고 있다.

세종 사후, 실록에 등장하는 세종에 대한 평가들을 보면, 세종 치세에 대한 칭송이 국정 운영의 모든 부분을 망라하고 있으며, 이상적인 왕도 정치를 이끌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그렇다면 세종이 성공적인 국정 운영을 이끌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그에 대해 공감능력과 감수성의 측면에서 살펴보고 있다.

발상의 전환
: 세종의 공감능력과 감수성

세종의 유명한 복지제도 중 하나가 노비 출산 휴가인데, 그에 대한 사례를 잠깐 보자.

옛적 관가의 노비에 대하여 아이를 낳을 때에는 반드시 출산하고 나서 7일 이후에 복무하게 하였다. 이것은 아이를 버려두고 복무하면 어린 아이가 해롭게 될까봐 염려한 것이다. 일찍 1백 일 간의 휴가를 더 주게 하였다. 그러나 산기에 임박하여 복무하였다가 몸이 지치면 곧 미처 집에까지 가기 전에 아이를 낳는 경우가 있다. 만일 산기에 임하여 1개월 간의 복무를 면제하여 주면 어떻겠는가. 가령 그가 속인다 할지라도 1개월까지야 넘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이에 대한 법을 제정하게 하라.(68-69쪽)

세종은 관청의 여자 노비가 임신을 하게 되면 7일의 휴가를 주었던 기존 제도를 개선해, 그 기간을 100일로 늘렸으며 출산 1개월 전부터 휴가를 주었다. 더 나아가 남편 노비에게까지 30일 간의 출산휴가를 주도록 하였다. 한 국가의 최고 지도자, 게다가 왕권 사회였던 당시 사회에서는 상식적으로 생각하기 힘들 만큼의 발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가장 힘이 없고 낮은 존재들의 삶을 헤아리는 배려가 무려 600여 년 전에 한 군주가 지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자각과 공감이 없이는 불가능한 판단이다.

또한 다음과 같이 죄수들에 대한 배려에서도 세종의 공감능력과 감수성을 엿볼 수 있다.

옥을 맡은 관원이 마음 써서 고찰하지 아니하고 심한 추위와 찌는 더위에 사람을 가두어 두어 질병에 걸리게 하고, 혹은 얼고 주려서 비명에 죽게 하는 일이 없지 아니하니, 진실로 가련하고 민망한 일이다. 중앙과 지방의 관리들은 나의 지극한 뜻을 받들어 항상 몸소 상고하고 살피며 옥내를 수리하고 쓸어서 늘 청결하게 할 것이요, 질병 있는 죄수에게는 약을 주어 구호하고 치료할 것이며, 옥바라지할 사람이 없는 자에게는 관아에서 옷과 먹을 것을 주어 구호하게 하라. (71쪽)

역시 왕권 국가의 한 나라의 군주가 일개 백성, 그것도 죄인이 겪을 아픔에 대한 공감능력이 없이는 이러한 발상이 이루어지기 힘들다. 죄인들이 죄를 지었다고 인간답지 않은 처우를 받으며 방치되는 것에 대해 오히려 그들의 안위를 보호하고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조세 면제와 관련된 대목에서도 그의 공감능력과 감수성이 잘 드러난다.

임금으로 있으면서 백성이 주리어 죽는다는 말을 듣고 오히려 조세를 징수하는 것은 진실로 차마 못할 짓이다. [……] 더욱이 감찰을 보내어 백성의 굶주리는 상황을 살펴보게 하고서 조세조차 면제를 해주지 않는다면, 백성을 위하여 혜택을 줄 일이 또 무엇이 있겠는가. (71쪽)

세종은 국정운영도 중요하지만, 어려운 상황에 놓인 백성들을 구제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라는 인식을 분명히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 역시 백성들의 삶에 대한 공감능력과 감수성, 결단력이 없으면 단행하기 어렵다.

 

세종의 고민: 한글

세종의 특별한 감수성과 공감능력으로 이루어진 여러 일들 중에서도 가장 일대 사건은 한글 창제이다. 유명한 훈민정음의 서문 내용을 다시 한 번 상기해보자.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한자)와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우매한 백성들이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 이를 딱하게 여기어 새로 28자를 만들었으니, 사람들로 하여금 쉬 익히어 날마다 쓰는 데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다. (73쪽)

잘 알다시피 당시의 문자는 한자였고, 한자는 교육 받은 지배 계층 양반이 아니면 쉽게 익힐 수 없는, 어려운 문자였다. 따라서 문자를 모르는 백성들도 일상에서 벌어지는 사회적 관계에서 많은 불이익과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구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었음을 자각하고, 오랫동안 고민했던 것이다. 더욱이 당시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았고, ‘중화의 논리’가 흐르는 시대적 분위기를 생각해보면, 역시 그 추진력에 놀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그 추진력이 백성들에 대한 남다른 감수성과 공감능력에서 기인한 것임은 이제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세종의 정치적 균형감

다른 시대에 비해 유난히 세종 대에 훌륭한 위인이 많다. 그것은 그 위인들이 그 시대에 하필 많이 태어나서일까? 그 이유는 세종의 인재 선출 능력, 또한 인재들의 능력을 최선으로 끌어내는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세종은 매사에 중국 중심의 세계적 흐름을 눈여겨보고 존중하면서도, 그들과 다른 조선적인 것을 추구했다. 조선 최초의 농서 『농사직설(農事直設)』의 서문 내용에 이러한 입장이 잘 나타나있다.

세상의 풍토들이 서로 같지 아니하여 곡식을 심고 가꾸는 법이 각기 적성이 있어, (중국의-필자) 옛 농서와 같을 수 없다 하시며, 여러 도의 감사에게 명하시어 각 지역의 경험 많은 농민들을 방문하게 하여, 토양에 대한 증명된 자료를 갖추어 아뢰게 하셨다. [……] 농사외의 다른 내용은 섞지 아니하고 간략하고 바른 것에 힘을 써서 산야의 백성에게도 환히 쉽사리 알도록 하였다.(75쪽)

 

종래에는 중국의 옛 농서에 의존하여 지방의 지도자들이 권농에 종사하였으므로 실제로 풍토에 따른 농사법의 변경이 어려웠다. ≪농사직설≫은 우리 실정과 거리가 있는 중국 농사법에서 탈피하는 좋은 계기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당대의 농서는 농사와 관련된 사람들의 지혜나 지식을 모아서 정리하여 좋은 책으로 만든다는 정도의 의미가 아니다. 당시 세종이 조선의 각 지역의 농사 관련 자료를 정리하여 중국과 다른 독자적인 조선의 농서를 편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조선은 중국과는 토양, 기후 등 다른 것이 많기 때문에, 조선의 생산력, 또 민생의 근간이 되는 농업기술의 지역적으로 축적된 지식과 지혜를 정리하여 생산력을 높이고, 나아가 삶이 보다 안정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한 작업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른바 ‘보편과 특수의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상황에 맞는 적절한 절충이나 종합하는 뛰어난 능력을 세종이 갖고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76쪽) 이러한 세종의 태도는 조선 사람들의 건강을 다루는 의약서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세종이 지향했던
중화문명 속의 조선

세종은 조선이라는 나라를 단지 독자적이고 주체적인 방향으로 이끌고자 하지는 않았다. 그보다 당시 세계질서 그 자체였던 중화 문명과의 유기적 관계 속에서 절묘한 균형감각과 상생적 차원에서 조선이라는 나라를 경영하였다. 이는 다음과 같은 사례에서 확인된다.

(맹사성을 비롯한 신하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세종의 중국에 대한 사대적 태도를 비판하는 데 대하여 임금이 말하기를-필자) 이는 지교(智巧)한 말이나, 정대(正大)한 언론은 아니다. 나의 사대(事大)하는 마음이 지극히 정성스러운데 어찌 털끝만큼이라도 할 만한 일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78쪽)
내(세종-필자)가 지성으로 사대(事大)하였고, 철이 난 이래로 조금도 거짓된 일을 행함이 없음은 천지신명이 다 아는 바이거늘, 하물며 이 일에 있어서 감히 속이는 마음을 두리오.(78쪽)

세종은 단지 자신의 이상을 위해서만 어떤 정책을 시행하고, 나라를 이끌어가지 않았고, 당대 중화문명의 질서를 존중하면서 사대교린(事大交隣)의 명분과 원칙을 충실히 견지해가는 가운데 조선의 안위와 평화를 지켜가기 위해 주력하였다. 이것이 더 현실적으로 이상적인 방향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세종의 균형감각은 종묘제례악에도 반영되어 있다. 중국적인 감성을 존중하면서도 그들과 다른 우리만의 감성을 발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필자는 세종의 높은 문화적 자존의식과 우리다움에 대한 고려는 단순히 자주론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되며, 사안에 따라 중화문명의 기준과 우리다움에 대한 자존감의 적절한 균형 속에서 재해석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세종은 늘 실용과 실질을 강조하면서도, 원칙과 실용 중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않는 문제의식, 균형감각을 발현해냈으며, 이것이 세종을 오늘날에도 다시 보게 하는 근원이라 할 수 있다.

현대 사회와 세종의 리더십

우리는 앞부분에서 세종이 꿈꾸는 좋은 나라, 좋은 정치에 대해 세 가지를 들었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의 정치는 얼마나 우리들을 살맛나게 이끌고 있는 것인가? 지금의 대한민국은 세종이 말하는 좋은 나라의 세 가지 요건에 얼마나 긍정적으로 부응하고 있는 것인가?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는 사회문제, 정치적 갈등 등, 이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이며,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 것일까?

물론 세종의 시대와 21세기 대한민국은 다르다. 직면한 과제도 다르고, 그 과제에 대해서 다른 시각, 다른 시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다음과 같은 필자의 주장이 이 글의 핵심 내용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종이 우리에게 유효한 것은, 세계적 대세와 우리다움의 균형을 만들어 나가고, 국민들의 삶과 일상의 애환을 깊이 공감하는 능력을 키우지 않고서는 정치가 어떠한 신뢰할 만한 해결책이나 지속 가능한 희망도 만들어낼 수 없다는 사실일 것이다. (86~87쪽)

*함께 읽으면 좋은 논문

「동아시아의 전환기 경험과 새로운 세기의 시대정신: 과거와 미래의 대화」
강상규, 2010, 『한국학연구』, 32,  221-258.

「세종은 백성들의 ‘삶의 질’을 어떻게 높였나」
박현모, 2009, 『정신문화연구』, 32(2), 111-136.

최종원 리뷰어  zwpow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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