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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ofinale여태껏 자유민주주의는 현대사회가 도달해야 할 이데아이자 제일원리인 듯 작용해왔다. 그러나 세계적인 금융위기를 겪은 후 많은 이들은 자유민주주의의 ‘자유’가 진정 우리가 생각하던 그 자유인지, 민주주의를 작동하게 하는 그것인지 의심하게 됐다. 경제위기는 곧바로 유럽과 미국에서 이민자 혐오 및 극우정당의 득세를 가져왔고, 일부 학자들은 지금껏 당연시 여겨왔던 자유민주주의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세계 속 한국 역시 자유민주주의 위기에서 예외가 아니다. 신자유주의에 따른 양극화 및 저성장에서 허덕이는 한국은 세계적 풍랑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국가적 애를 쓴다. 그러나 세계 발 풍랑뿐 아니라 국내 발 풍랑도 거세기는 만만치 않다. 절차적 민주주의라는 기본 조건을 충족하기는커녕, 비선 실세가 국정에 개입했다는 정황은 과연 우리가 어디쯤 표류하고 있는 것인가 좌표조차 가늠할 수 없게 한다. 어디부터 잘못된 것일까? 분명 한국적 맥락이 있을 것이다. 함규진 서울교대 윤리교육과 교수는 「한국적 민주주의의 형성과 민본주의의 역할」(『정치정보연구』, 19(1), 2016)에서 한국적 민주주의가 부진한 이유 중 하나로 전통적 민본주의의 영향을 꼽는다.

‘민본주의적 정치관’이란 무엇인가

‘한국적 민주주의’는 박정희 정권이 독재 강화를 위해 전통사상의 요소를 동원한 이론으로 알려져 있다. 저자는 정치사적 관점에서 이러한 인식이 타당하지만, 그 탄생 시기만은 개화기 이후로 보고 있다. 비주체적으로 민주주의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지식인과 대중에게 광범위하게 공유되었던 ‘민본주의적 정치관’이 배경이 되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한국적 민주주의’가 오늘날에도 폐기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는 점이다. ‘민본주의적 정치관’의 영향 하에 남아있는 문제점으로 저자가 꼽는 것은, 과도한 지도자 중심주의, 이미지 정치, 정당 제도화의 미비, 당선자의 위임민주주의적 행태 등이다.

저자는 해방에서 현재까지 시대별로 ‘민본주의적 정치관’이 민주주의와 어떻게 관계를 맺어왔는지 추적한다. 본격적인 추적에 앞서 저자는 우선 ‘민본주의적 정치관’의 세부 내용을 살펴본다. 논문 내용에 따르면, 민본民本이라는 표현은 엄밀히 말해 동아시아 전통사상사에 없다. 다만 『서경』이나 『회남자』에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다’라는 언급이 근대 이후 재해석 되는 과정에서 재구성되었을 뿐이다. 그렇기에 학자들의 입장이 다양할 수밖에 없는데, 저자는 숱한 학적 입장들을 분석해 자주 거론되는 세 가지 요소를 분류한다.

첫째는 민권론(民權論)으로서의 민본사상이다. 이는 『맹자』, 『순자』, 『여씨춘추』의 논설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백성에게 일정한 정치적 권력, 권한이 있다는 내용이다. 둘째는 위민론(爲民論)으로서의 민본사상이다. 이는 민권과 무관하며, 민본사상이란 ‘국민 복지를 위한 정치’라는 명분을 강조하는 이념일 뿐이라는 시각이다. 셋째는 덕치론(德治論), 애민론(愛民論)으로서의 민본사상이다. 이는 위민을 실천하는 군주의 마음가짐에 주목하는 것이다.

저자는 민본론은 다양하게 제시되는 이론이지만, 민주주의 개념과는 등치될 수 없다고 말한다. “민주주의 국가는 국민 외에 주체(가령 신이나 군주, 특권계급 등)를 포함할 수 없으나, 민본의 국가는 민을 근본으로 여겨 중시한다고 해도 민과 구별되는 주체의 존재를 허용”하기 때문이다. 이에 저자는 민본사상의 가능한 요소 가운데 ‘민권론’을 ‘맹아적’ 민권론 또는 민주주의론으로 구분하고, 위민론과 애민론만을 민본사상의 구성요소로 상정한다. 즉, 국가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민생의 안정에 두려는 이념과 위정자가 도덕적으로 모범이 되면서 사적 욕구에 따라 권력을 전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념을 민본사상-민본주의의 축으로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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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공간에서의 민본주의와
민주주의

해방공간에서 한반도 남부는 ‘미국식’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비주체적으로 이식되었다. 국민 다수에게 민주주의 문화는 생소했고, 정부 주도 하에 사회경제적 개혁이 민생 안정과 사회적 균평均平을 목표로 추구되었다. 저자는 특히 이 시기에 민본주의적 정치관이 두드러졌다고 보는데, ‘일민주의’를 제창했던 이승만이 주도권을 쥐게 됨으로써 ‘유덕한 최고지도자 일인에 대한 지지와 복종’이라는 민본주의 특징은 더욱 강화되었다.

1954년 제2차 헌법 개정에서 국무총리제 폐지, 중임제 제한 폐지까지 이루어낸 이승만은 국부國父라는 이미지와 반공, 반일의 정치노선을 권력 정당화 자원으로 삼으며 권위주의적 정권을 운영하게 된다. 또한 일민주의에서 줄곧 강조해온 “정부가 민생을 해결해야 하며, 해결해 나가고 있다”는 점을 들어 정권의 정당화에 이용했다. 이승만은 청년 개화파 시절부터 남녀차별과 신분차별을 비판해왔으나, 노-소간 및 군-신간의 유교 전통적 위계질서관은 존중되고 계승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자유주의와 평등주의의 강령을 선택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사회 저변에 침잠해 있는 유교적 가치관에 부응하는 한편, 스스로를 ‘나라의 큰 어른’, ‘애민적 군주’의 위상에 올려놓은 것이다.”

그러나 ‘사사오입 개헌’ 등 ‘민주주의 게임 법칙’을 우회함으로써 권력을 유지 강화하려던 욕망은 ‘민주시민의식’을 자극해서 4.19혁명을 발발시켰고, 마침내 이승만 정권은 붕괴했다. 이때 한국정치문화에서 일인중심적 권위주의가 아니라 절차적 책임성의 실현을 강조하는 민주주의를 ‘정상’으로 여기는 의식이 정립되었다고 볼 수 있다.

군사정권에서의 민본주의와
민주주의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정당성 확보를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그런 노력은 반공주의의 재강조와 함께, 경제제일주의의 천명과 관련 정책 추진으로 실현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박정희는 민주주의와 민생 경제를 상반되는 것으로 제시했다. 물론 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다만 ‘경제발전이 되지 않는다면 공산화의 위험이 있다’며 경제가 민주주의를 선행한다는 입장을 내세웠으며, “민주주의를 빙자한 서구의 노라리풍”이 한국경제를 파탄에 이르게 했다며 민주주의와 민생 경제를 상반되는 것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또한 “걸핏하면 무슨 성토대회다, 농성단식이다, 데모다, 무슨 무슨 투쟁이다 하고 소위 현실참여라는 명목하에 거리로 뛰어 나오기를 좋아하는 폐단이 망국의 풍조”라며 정상적인 민주주의 정치과정을 평가절하하기도 했다.

더불어 박정희는 1970년대에 접어들 무렵, “민주주의는 창달되어야 하되 이로 인하여 우리 고유의 윤리와 도덕이 파괴되어서는 안 된다”며 전통사상을 재강조했다. 그 재강조 대상은 충, 효로 집약되었고, “서구와는 판이하게 다른 문화권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우리로서는 서구의 정치 풍토나 사조를 그대로 추종하는 대신, 우리의 정치 전통과 문화의 바탕 위에서 자주적으로 미래의 방향을 설계해 나가야 한다”며 ‘한국적 민주주의’ 차원에서 유신 권위주의 체제를 정당화했다. 저자는 이러한 박정희의 ‘한국적 민주주의’는 위민에 정치의 목적을 두고, 그러한 정치는 강력하고 ‘애민적’인 정부(최고지도자)의 지도와 국민 대중의 일치된 지지, 호응에 의해 실현된다는, 민본주의적 정치관에 따라 정리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민주화 이후의 민본주의와
민주주의

민주화 이후, ‘정상적인 민주주의’의 조건이 권위주의 시대에 비해 현저하게 개선되었다. 그러나 그 수준은 실질적으로 “정치와 대중을 연결하는 유일한 매체가 투표로 국한”되는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으며, “국민 대다수는 아직도 경제성장 위주의 경제우선주의와 정치 지도자 개인의 도덕적 무흠결성을 중시하는 ‘민본주의적’ 정치문화에 침잠해 있으며, 정당정치, 의회정치, 시민사회 운동, 그리고 이념정치와 지방정치에 대한 신뢰 및 관심은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러한 실정에 미루어볼 때 저자는 형식적 민주화가 이루어진 지 30년이 다 되어 가고 있지만 지역주의와 이미지 정치, 그리고 ‘당쟁’수준의 ‘진영 대결 정치’가 한국정치의 특성으로 남으면서 민주주의의 심화가 더디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저자는 국민을 자유롭고 평등하며 합리적인 의지를 가진 개인으로 상정하는 자유민주주의 틀에서 다수 서민 대중의 소외가 초래되는 경향이 다분한 현재, 서구적인 정치문화를 확립하는 것이 반드시 올바른 대안인지 의심한다. 오히려 현재는 ‘위민’의 이념으로는 묵과할 수 없는 상황이며, 민본주의적 정치관이 공동체주의적인 온정주의 정책과 사회문화로 이어지게끔 유도할 수 있다면 한국 정치사회에 유익하지 않을지 질문을 던진다.

민주주의가 있어왔고, 오늘날 ‘충분할 정도로 있는 듯’ 보이지만 민주주의의 효용과 진정성이 끊임없이 의문시되는 현 시점에서, ‘더 순수한, 더 많은 민주주의’가 오늘날 한국정치의 대안이 될 것인지, 권위주의에게 이용되어 온 민본주의를 재조명하고 ‘더 진정성 있는 한국적 민주주의’를 수립하는 일이 대안일지, 더 숙고해야만 할 필요가 있다. (295쪽)

과연 민본주의는 권위주의에 이용된 것일까? 아니면 민본주의의 본래 속성이 권위주의와 영합하기 좋은 토대인 걸까? 자유민주주의의 ‘자유’가 자본에 종속될 자유로 왜곡될 여지가 있는 것처럼 모든 개념이 그 자체로 순수하지 않기에, 현재 한국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세세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본 논문은 한국 민주주의 역사를 관통하는 하나의 줄기를 명확히 보여준다.

 

*함께 읽으면 좋은 논문

「한국자유민주주의에서 민주주의 결핍에 대한 지표적 분석: 박근혜정부의 전반시기를 중심으로」
정용하, 2016, 『한국민족문화』, 58, 387-422.

「한국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 `자유민주주의`의 위기」
유종성, 2014, 『동향과 전망』, 90, 9-44.

권성수 리뷰어  nilnilis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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