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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ofinale다른 사람에게 마음이 있다는 걸 어떻게 아는가?

철학적 문제다. 사실 철학적 문제인 것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가끔 내가 보는 빨간 색을 다른 사람도 바로 그 색으로 보는지를 어떻게 아는가와 같은 의문을 품어본 적이 있다. 이건 시지각적 공통성을 증명해야 하는 일이니 감각의 차원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무튼 요즘 이러한 궁금증들을 풀려고 나서는 이들은 주로 철학 연구자들이다. 김태희 건국대 교수의 동물의 마음을 어떻게 아는가?: 상호주관성의 현상학에 기초하여(『철학논총』, 86, 2016)가 바로 그런 논문이다.

타자경험이 동물에게까지
확대될 수 있을까
출처: 위키피디아

서두에서 필자는 “남의 마음과 같은 ‘원본적으로 접근 불가능한 것’에의 접근은 대체 어떻게 가능한가?”라고 질문한다. 그리고 사람의 범주를 넘어 동물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를 묻는다. 이는 “우리가 일상적 인식과 실천에서 자연스럽게 지니고 있는 ‘타자경험(Fremderfahrung)’을 설명하거나 정당화하는 문제인데 논문은 이 과정에 대한 탐구다.

인간의 입장에서 동물은 확실히 경계적인 존재다. 생명이고 사회적 존재이고 그들만의 언어적 소통도 한다. 하지만 그게 확실히 사회이고 언어라고 말할 순 없다. 마음이란 더욱 그렇다. 기뻐하고 슬퍼하고 뉘우치고 후회하는 그런 마음이 동물에게 있을까? 있다면 어떻게 증명할까.

필자는 후설의 현상학을 도구로 추적을 시작한다. 후설 또한 이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했었다. “동물도 자기 죽음을 알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것이다. 동료나 가족이 죽는 걸 보고 자기도 죽는다는 걸 예감할까? 후설의 논리학 체계에서는 그런 추정이 가능하다. 바로 ‘이입감(Einfühlung)’ 때문이다. 그것은 다른 주체 안으로 나를 들여놓는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해 역지사지다.

필자에 따르면 이입감은 대개의 경우 능동적 종합인 유비추론(Analogieschluß)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수동적 종합인 쌍짓기(Paarung)에 의해 일어나는데 이때 의미전이가 생긴다. 그런데 동물은 인간과 달라 이런 의미전이로 바로 공통세계가 발생하는 게 아니다. 여기엔 번역이 필요하다. 인간은 우선 동물의 신체를 이해하고, 그 다음 이입감을 갖고 동물에 대한 다양한 매개적 해석을 가할 수 있다.

 

‘발생적 관점’에서 볼 때
인간과 동물의 공동세계구성은 가능하다

논문의 복잡한 철학적 논의를 다 따라가긴 버겁다. 결론적으로 필자가 강조하는 것은 ‘발생적 관점’의 중요함이다. 경계문제로서의 동물은 타자경험의 극한이면서 공동세계구성의 접경으로 드러난다. 이러한 정적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인간의 관점에서, 그것도 이미 발생이 완료된 정상적 성인의 관점에서, 경계현상인 동물에 대한 이입감을 수행하고 동물과의 공동세계구성을 수행한다. 그러나 발생적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이입감이나 공동세계구성 역시 발생을 통해 나타난다는 것이다.

발생적 관점에서 ‘세계’는 이미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며, 이 세계에 이르기까지 거쳐온 과거의 발생 단계들은 현재의 구조 층위들로 보존된다. (128쪽)
초월론적 현상학에서는 동물이라는 타자의 경험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분석하고 이러한 타자로서의 동물과 인간이 어떻게 세계를 함께 구성하는지를 분석한다. 나아가 이러한 타자경험과 공동세계구성 자체가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탐구한다. 이러한 세계에는 정상성/비정상성의 경계현상 구성을 통해 동물들도 속하며, 그것도 ‘종을 가로지르는 마음 읽기’로서의 상호이입감을 행하는 주체로서 속한다는 것이 동물성의 현상학이 도달하는 결론이다. (130쪽)

 

출처: http://dic.academic.ru/pictures/wiki/files/69/EdmundHusserl.jpg
에드문트 후설. 출처: http://dic.academic.ru/pictures/wiki/files/69/EdmundHusserl.jpg

 

‘동물의 마음’을 통해 논문의 필자는 데리다가 후설에게 던졌던 의문을 풀어보고자 했다. 그것은 후설이 “정상성에 부여하는 특권”에 대한 데리다의 의문이었다. 즉, 데리다가 볼 때 후설의 이론은 “어린이가 끝나는 곳에서 시작해 광기가 시작하는 곳에서 끝나는” 지극히 정상적인 개념을 전제하고 있으며 “보편적이고 초월론적 규범들”을 전제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논문에서 필자는 후설의 발생적 현상학으로 보면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다. 후설은 “보편적이고 초월론적 규범들”을 ‘동물에게 마음이 있는지를 알아내기 위한 추론법’인 이입감의 확장과 변용을 통해 얻어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것은 정상성의 기원을 비정상성에서 찾은 것이고, 정상성이 복수의 비정상성들을 매개로 발생함을 강조함으로써, 비정상성들이 정상성의 하부층위들을 구성해 하나의 전체를 이룬다는 걸 말해준다는 것이다.

과문하지만, 논문의 결론은 데리다가 후설을 해체하고자 했지만 해체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듯하다. 후설에겐 바로 ‘동물의 현상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강성민 리뷰위원  paperfac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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