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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ofinale‘취향존중’, 줄임말로 ‘취존’이라는 말이 있다. 미적감각이나 취향은 주관적 요소이기에 서로의 취향에 간섭하지 말자는 뜻이다. 특히 자신의 일반적이지 않은 취향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를 방어할 때 쓰이곤 한다. 과연 취향, 그 중에 미적 판단은 주관적이기만 한 걸까? 그렇다면 아름다운 무언가를 보고 많은 이들이 공통적으로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근대미학의 큰 질문이기도 한 이러한 문제에 대해 맹주만 중앙대 철학과 교수와 김다솜 연구자는 「흄의 감성 미학과 공감의 원리」(『철학탐구』, 2015년 5월)에서 답을 구한다. 흄의 미학을 통해 우리는 미적 판단이 주관적이면서도 보편 판단을 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미적판단은
객관적인가? 주관적인가?

전통적인 이성주의 미학에서 미적 판단은 이성 판단이며, 이는 객관적 존재에 대한 사실 판단과 마찬가지로 인식판단이다. 인식판단이라는 것은 아름다움과 추함 즉 미추 판단에 객관적 기준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저자들은 이러한 입장은 오히려 미적 판단의 불일치 문제를 만족스럽게 해결해주지 못한다고 말한다. 우리의 미적 경험이 감정적 느낌과 관계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미를 사실 혹은 그것이 갖는 성질이 아니라 쾌락의 감정으로 보는 경험주의는 미적 판단은 객관적인 진위 판정이 가능한 판단이 아니라 쾌와 불쾌의 감각적 느낌과 관계하는 주관적인 감정 판단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만약 이러한 입장이라면 쾌/불쾌의 만족에 있어서 ‘맞다 틀리다’ 혹은 ‘옳다 그르다’와 같은 판단을 내릴 수 없게 된다. 이러한 18세기 경험주의 미학과 달리 칸트는 미적 판단은 감정 판단이지만 그것이 주관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동시에 선험적인 보편적 판단이라고 주장했다. 칸트가 이 문제를 공통감 개념으로 해결했다면, 흄은 공감 개념으로 해결했다.

우리는 무엇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나?

흄에게 ‘미’는 기본적으로 대상에 대해 우리가 갖는 호의적이거나 비호의적인 쾌의 느낌이며, 이런 느낌을 갖게 하는 근원은 일차적으로 대상이 아닌 우리 마음에, 다시 말해 감정에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서적 반응은 단순한 감각적 만족이나 느낌만으로 구성되지는 않는다. 즉, 미는 단적으로 사물 자체에 있는 성질이 아니며, 그렇다고 오로지 마음이 단독으로 만들어내는 감정도 아닌 감각과 대상이 상호 호응한 결과다.

이처럼 흄은 미추의 감정을 대상에 발견되는 성질과 인간 본성의 구조로부터 생기는 반응에서 성립하는 것으로 파악한다. 그러므로 관계적 속성에 대한 판단으로서의 미는 인상과 정념에서 성립하는 주관적인 것이지만 동시에 다른 정념이나 인상과 구분되는 특성도 갖고 있다는 것을 함축한다. 즉, 모든 대상이 미를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미적 대상에는 그렇지 않은 대상과 구분되면서 우리에게 미적 쾌락을 일으키는 특성 또한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흄에게 있어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특성은 무엇일까? 바로 유용성utility과 편의성convenience이다. 그러나 유용성 역시 미적 판단에서만 발견되는 속성이 아니므로 좀 더 엄밀한 성질이 미적 속성 또는 미의 관계적 속성으로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단순히 즐겁기만 한 것이 아니라 즐거움을 주면서도 아름다운 대상의 구분도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러한 엄밀한 성질이 감각과 결부된 정연함, 편의성, 구성 규칙, 안정성, 합목적성 등이다. 이 성질이 비록 어떤 실용적 편의성을 도모한 것이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보여주는 유용한 성질은 그런 목적과는 거리가 있는 속성을 지녔다는 점에서 미적 무관심과도 닮아 있다.

상상력을 통해
공감이 가능해진다

앞서 말했듯 흄에게 ‘미’는 어느 한쪽이 아니라 양자의 반응적 교감을 가능하게 하는 고유한 상호 관계적 속성에서 성립하는 유용성의 감정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경험주의가 가지는 난점 가운데 하나는 비록 미적 판단의 대상이 최종적으로는 관계적 속성이라 하더라도 각 개인의 본성적 성향의 차이와 주관적 반응의 상이함에 따라서 한 개인이 내리는 판단도 상대적이며, 따라서 보편 판단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흄은 상대주의자가 아니다. 이런 흄의 태도는 미적 판단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흄은 미적 판단에서도 취미의 기준에 기초한 보편 판단이 성립한다고 주장한다. 흄이 이렇게 주장할 수 있는 것은 그가 미적 판단을 공감 개념과 결합시키기 때문이다.

흄은 도덕의 주제들과 마찬가지로 미적 판단의 경우에도 편파성에 주목한다. 편파성이란 일반적으로 우리가 자신과 관계가 있는 대상, 그리고 보다 가까운 관계에 있는 대상에 대해 그렇지 않은 대상보다 더 관심을 갖는 성향을 말하는데, 미적 대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우리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을 미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편파적인 성향으로부터 벗어나도록 돕는 인간 본성의 또 다른 능력이 있는데, 바로 상상력이다.

상상력은 우리로 하여금 무엇이든 중요하고 눈에 띄는 것에 대해서는 가리지 않고 그것을 향하게 만든다. 한 정념의 대상이 다른 정념의 대상과 관련되어 있을 때 우리는 한 정념에서 다른 정념으로 전이하는 것을 경험한다. 그러나 관념들의 경우에는 상상력이 발휘되지 않는다면 그 관념이 정념에 발휘하는 영향력도 상실하게 된다. 예를 들어 극장 안에서 관객들은 자신들이 실제로 겪는 일이 아님에도 공연에서의 사건이 마치 실제의 일인 것처럼 감정에 사로잡힌다. 관념일 뿐인 배우의 대사와 감정표현에 관객의 상상력이 개입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며, 이 때문에 공감이 가능해진다. 관념의 형식으로 통해 관객에게 전달되는 것은 인상이다.

관객의 마음에서 인상은 곧바로 2차 인상 혹은 반성인상으로 바뀐다. 『비극에 관하여』에서 흄은 공감을 통해 감정을 교정하는 훈련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비극의 장점이라고 말한다. 곧 실제 상황에서 그에 적합한 감정으로 반응하도록 극을 통해 훈련하고 교정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공감은 정서적 인상을 교정하도록 허락한다.

이처럼 미적 판단에 적용되는 흄의 공감의 원리는 그의 감성 미학 및 관계 미학을 넘어서 미적 판단의 보편성과 상호주관적 소통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공감의 미학이라 부를 수 있는 토대가 된다. 흄에게 미적 판단은 보편 판단인데, 그의 공감이론의 하나의 예술작품에 대한 미적 판단의 보편성이 어떻게 가능한지 혹은 미적 감상이 개인마다 다를 수 있는 취미나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적 비평의 대상인지에 대해서 잘 보여준다. (79쪽)

이처럼 흄은 비록 미적 판단이 참과 거짓의 대상은 아니지만 공감의 능력과 함께 취미의 객관적 기준은 존재한다고 본다. 또한 이러한 기준을 제시하고 미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들이 갖추어야 하는 조건을 제시하는데, 바로 1) 대상을 예리하게 지각하고 식별할 수 있는 섬세함, 2) 비평의 감각을 키울 수 있는 부단한 연습, 3) 다양한 종류의 미를 올바로 평가할 수 있는 폭넓은 경험을 통한 비교 능력의 계발, 4) 작품 외적 요소로부터 영향을 받아서 생길 수 있는 편견의 제거, 5) 전체와 부분의 비교와 이해 등에 필요한 지적 능력으로서의 양식이다. 흄은 이런 미를 감상할 수 있는 안목이 연습과 학습을 통해서 향상될 수 있다고 본다.

논문에서 저자들은 흄의 미학 이론을 통해 주체와 객체의 상호 관계적 속성으로서 넓은 의미에서의 미적 유용성, 인간 본성의 보편적 원리로서 공감의 능력, 그리고 다양한 비평적 취미의 계발 가능성에 기초해 예술 작품에 대한 해석과 보편적 소통의 원천적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렇게 취미의 ‘기준’이 있다는 것은 곧 이성적 논의가 가능하다는 의미이므로, 미적 판단의 보편적 일치 가능성은 작품에 대한 유의미한 미학적 논쟁을 허용하며, 이를 통해 더욱 객관적인 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저자들은 공감 미학과 취미 비평에 기초한 객관적 해석학이 구체적인 모습이 된다면 흄이 그 모든 것의 원천이 될 것이라며 흄의 미학에 대한 높은 평가를 내린다.

*함께 읽으면 좋을 논문

「취미에 관한 흄의 견해: 미학과의 관련을 중심으로」
최희봉, 2012, 『인문과학연구』, 34, 393-415.

「미적 감정과 상호주관성: 칸트와 후설의 비교를 중심으로」
박인철, 2012, 『철학』, 111, 121-157.

권성수 리뷰어  nilnilis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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