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99%8d%eb%8c%801180x570

logofinale“홍대 앞에서 만나” 혹은 “홍대에서 만나”는 말을 자연스럽게 한다. 여기서 홍대 앞은 홍익대학교보다 넓은 지역을 의미하며, 홍대에서 만나자는 말은 홍익대학교에서 만나자는 말이 아닐지도 모른다. 홍대 혹은 홍대 앞은 말의 맥락만큼이나 복합적인 상징성을 띤다. 누군가에게 홍대 공간은 각각 인디음악을 라이브로 들을 수 있는 공간, 클럽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공간, 예술 문화 공간, 다양한 카페가 있는 공간 혹은 여느 노래 가사처럼 단순히 사람 너무 많은 공간일지 모르겠다. 이 많은 상징성은 짧은 시간에 생성된 것이 아니며, 오랜 기간 사람과 정책과 자본이 어우러져 지층처럼 쌓여온 것이다.

김수아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교수는 「홍대 공간의 문화적 의미 변화: 공간 이용자의 기억을 중심으로」(『미디어, 젠더&문화』, 30(4), 2015)에서 ‘홍대 앞’에 대한 사회적 담론과 연구들을 기초로 해당 공간에 현재와 같은 문화적 의미가 구성된 과정과 그 내용을 이용자들의 기억을 통해 기술하고 있다. 홍대 공간에 대한 연구는 도시계획, 문화연구, 건축, 경영, 도시학 분야 등 다양한 학제에서 연구되어 왔지만 공간 이용자들의 공간 경험과 그 기억에 관해서는 아직 많은 연구들이 축적되지는 못했다. 이러한 문제 의식 하에서 저자는 홍대라는 문화 공간의 특성과 시기에 따른 담론 변화를 탐구하기 위한 기초 자료의 하나로서 이용자의 기억을 수집, 정리하고 있다.

홍대공간 문화가
변해온 과정

홍대 공간의 변화는 우선 1984년 지하철 2호선이 들어서고 홍대입구역 부근이 상업지구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당시 홍대 인근은 임대료가 낮았고, 주거 건물 역시 아파트보다는 단독 주택이나 빌라 형태가 많아 옥탑방과 반지하 건물이 많았다. 미대생과 젊은 작가들은 이러한 공간을 작업실로 활용했고, 이 때문에 홍대 인근에서는 ‘108작업실(100만원 보증금 월세 8만원)’, ‘208화실(200만원 보증금 월세 8만원)’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이 시기 대중적인 담론 내에서 홍대 앞은 신세대들의 문화 공간으로 간주되었으며, 1994년 성수대교 붕괴에 따라 강북의 종점이 홍대입구역이 되면서 사실상 유흥 공간의 종점 역할을 하게 되었다. 한편 건전문화의 거리 조성 때문에 신촌 지역 라이브 클럽이 쇠퇴함에 따라 홍대 입구에 라이브 클럽들이 발생하고 융성하게 되었는데, 이때 홍대 지역의 미술 중심 문화가 음악 중심으로 이동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1990년대 후반의 변화를 추동한 것은 댄스 클럽의 형성이었다. 홍대 인근에 형성된 댄스 클럽의 연원을 선행 연구자 이무용은 미술 작업실에 두고 있다. 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작업, 술, 춤이 어우러지는 형태로 발전해 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초기 댄스 클럽은 외환위기 이후 다시 한국으로 들어온 유학생들과 자본의 유입으로 성격이 변화했는데, 일렉트로닉과 테크노 음악 중심의 클럽에서 힙합 음악 클럽으로의 변화도 1990년대 말부터 진행되기 시작했다.

저자는 2000년대 초반을 향락 소비문화 대 인디문화 그리고 정부의 (관광)문화 조성 정책 간의 충돌과 경쟁이 있는 시기라고 분류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홍대 인근의 지대 상승과 상업화 논란은 2000년대 후반 가속화되고, 지역 개발의 속도도 확연히 빨라지고 있다. 이러한 상업 자본의 홍대 공간 점유에 대한 저항이 부분적으로 지속되었는데, 가장 극적인 사례는 2009년 ‘지구 단위 계획 지역’ 때문에 철거 위기에 처하게 된 ‘두리반 투쟁’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홍대 공간 이용자들은 이 사건을 일종의 상징적 사건으로 받아들여서 두리반 철거를 막기 위한 문화 투쟁을 시작하였다.

상업 자본으로 인한 공간변화와
소비문화의 문제

저자는 홍대 문화 공간/장소가 어떠한 방식으로 변해왔는지에 대한 기억과 경험을 수집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해 20대-40대에 이르는 다양한 홍대 문화 경험자/생산자를 선정하여 심층 인터뷰를 수행했다. 인터뷰 대상자의 간략한 정보는 다음과 같다.

논문 99쪽

 

저자는 홍대 이용자들의 기억 속에서 홍대 공간의 의미 변화는 상업자본의 침투, 그리고 소비문화의 양상 변화와 관련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과거의 소비문화는 현재의 모습과 성격이 다르다고 주장한다. 홍대 출신의 미술가이면서 음악을 하는 B의 경우 댄스 클럽을 중심으로 활동한 20대를 회고하면서 1990년대 말의 댄스 클럽 문화를 단순한 소비 경험이 아닌 것으로 묘사한다. 당시 댄스클럽은 규모도 작고 음악 장르에서도 확실한 분화가 있었으며 궁극적으로는 소규모 취향 공동체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홍대 이용자들은 상업주의적 자본이 기획한 공간,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는 홍대의 이러한 공동체성을 이루지 못하며, 이런 소비 공간들이 초기 홍대 인디 문화의 주체들이 일군 문화적 의미들을 자본을 통해 흉내 내고 전유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공간의 문화적 의미를 자본이 훔쳐낸 한 사례라는 것이다.

이처럼 1990년대 말-2000년대 초반의 홍대 클럽 문화의 참여자들(공연자와 관객)은 일종의 공동체성을 형성하고 있었으며 유대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으로 회고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당시 문화 생산자들의 기억과 달리 당대 사회적 인식은 클럽 문화를 위험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언론들은 “대학가”와 “퇴폐업소”를 대비하는 구성을 통해 홍대 앞 새롭게 생겨난 소비문화가 대학의 교양과 지성을 해치는 것으로 간주하였다. 이 맥락에서 클럽 문화를 구성한 인디 밴드들과 주점 및 카페를 연 주체들은 향락 소비문화의 주체였고 대학가를 대학가답지 않게 만드는 존재들로 규정되었다.

관광자에 대한 배척과
문화적 진정성의 의미화

홍대 거주자들은 그들이 막 거주하던 시기에 형성된 홍대 공간을 당대의 상업적이지 않은 순수한 예술가들의 경험을 담은 공간이자 한국의 인디 문화 발전 역사를 담은 것이라고 홍대의 문화적 의미를 정의한다. 그러나 현재의 홍대 문화는 원래 존재했던 소규모 카페 자리를 프랜차이즈 카페가 대체하고, 예술적이고 실험적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판매하던 소규모 공간들이 대형 숍으로 변화됐으며, 이러한 상황은 ‘관광자’들에 의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진단이다.

A는 관광자들이 지속적으로 홍대를 찾는 이유를 어떤 공간을 점유하여 “잘나가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획득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가 관찰하기에, 2002년 이후 홍대 댄스 클럽의 주요 소비자들은 지방이나 서울의 타 지역에서 관광을 온 사람들이다. 홍대 클럽에 갔다 온 경험이 있어야 소위 ‘핫한 사람’으로 자기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를 진짜 경험과 가짜 경험을 구분하려는 시도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한편 이들 방문, 관광자 외에도 주요한 홍대 이용자는 외국인들이다. 홍대 공간은 외국인을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으로, 클럽과 바는 외국인들이 찾는 문화적 공간이 되고 있었다. 그러나 홍대 거주자들은 이에 대해서 불편함을 호소하였다. 대규모의 단체 관광객은 길을 혼잡하게 하고 클럽과 상점을 붐비게 한다. 거주자들은 스스로를 이러한 관광자들과 구분하며, 자신들은 홍대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주체로 생각하고 있었다.

저자는 이러한 주장은 젠트리파이어의 진정성과 관련하여 해석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주킨Zukin은 젠트리피케이션 초기에 진입한 업종들이 형성해낸 진정성 개념을 언급한다. 사회적으로 형성된 그룹에게 원래 존재하는 일종의 정신 같은 것이라고 이야기되는 진정성은, 특정한 미학적 감각에 의해 형성되는데, 이것이 특정한 그룹을 배제하는데 사용되기도 한다. 바로 외부인을 관광자로 간주하면서 배제하는 것, 스스로에게 젠트리파이어의 정체성을 부여하는 것, 저자는 이것이 홍대 거주자들의 미학적 진정성의 일부임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문화백수’와
문화 생산의 문제

저자는 인터뷰에 응한 홍대 거주자들을 중심으로 나타나는 진정성, 젠트리파이어로서의 자의식은 여전히 문화 생산 공간으로서의 홍대를 강조하는 태도로 드러난다고 본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생산자로서의 위치를 유지할 수 없다는 절망을 드러내는 말로 ‘문화백수’를 언급한다. 이는 인디 문화 특히 소위 ‘홍대 인디 음악’의 생산과 소비 구조가 변화하면서 생긴 문제로, 문화백수는 현재의 불합리한 음악 산업 외부의 잔여물처럼 존재하게 된다. 홍대 거리에서 공연을 하던 과거의 문화 생산자들의 문화생산 기회는 줄어들었으며, 이제 다양한 일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가지만 문화 생산에는 기여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자학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홍대공간의 정체성을 상징했던 클럽. 출처: 리뷰 아카이브 ⓒMerongb10

하지만 저자는 여전히 문화 생산자로서 공간을 점유하는 능력을 강조하는 그룹들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E는 홍대 문화 공간의 다양한 이용자 중에서 특히 카페 공간을 일터 삼아 일하는 이들의 정체성을 이야기한다. 마포구 인근에 거주하는 E는 의식적으로 상수동의 일대 거리를 일하는 공간으로 구성하였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공간에 가는 것, 정해진 시간에 집으로 돌아오는 것과 같은 시간 조직 행위가 해당 카페를 전유하는 방식이 된다는 것이다. 홍대 인근의 카페 문화를 이끈 유명 카페 운영자인 D는 자신의 카페가 홍대의 인디 문화 생산자들에게 일종의 공동체 공간이자 작업 공간, 다시 말해 살롱이라고 자부한다. 저자는 이런 홍대 인디 문화의 특성은 1990년대 말-2000년대 초반 언론에 의해서 찬양되었던 바라고 말한다.

이들이 지속적으로 상업 자본에 의한 공간의 변화에 반대하고, 여전히 남아 있는 생산 공간을 유지하고자 하는 노력을 강조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이러한 생산적 공간의 의미는 홍대에서 찾기 어렵다. 그래서 이러한 주장들이 자연스럽게 홍대 몰락이라는 향수 담론과 연결된다. D와 E가 말하는, ‘문화백수’가 아닌 문화 생산자, 문화 생산 공간, 협업하는 공간이라는 의미의 홍대는 2000년대 초반에는 가능하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창의산업에 종사하는 고소득자, 즉 원초적 의미의 젠트리파이어가 공연장과 바, 그리고 식당이 모두 있는 특정 지역에서 거주하면서 예술가들과 환담하면서 영감을 주고 받는 일은 이제는 가능하지 않다(신현준, 2015). 소비 공간으로 변모한 홍대는 지리적으로도 분리된 단순 유흥 공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111쪽)
‘홍대 몰락’이라는 내러티브 구조와
홍대 향수 담론

저자는 현재의 홍대 문화와 공간에 대한 실망과 한탄은 이러한 맥락에서 향수 담론으로 이어진다고 본다. 홍대 거주자들은 현재의 홍대를 ‘망했다’고 표현하는데 저자는 이러한 ‘홍대의 몰락’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상 새로운 것이 아니라고 본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해당 홍대 문화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이 이야기는 반복/재생산되는 레퍼토리였다는 것이다.

M의 경우 최근 홍대의 상업주의화, 소비문화 공간화에 대한 비판 담론들이 생산적이지 않다고 본다. 이미 수차례 반복되어 온 비판이며 대학로나 삼청동 같은 서울시내 문화 공간에서는 진행되었고 이미 끝난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다만 홍대 인근 지역은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으나 단순히 ‘상업화에 대한 비판’과 ‘향수’를 생산한다고 대안이 모색되는 게 아니라는 말했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홍대 향수 담론의 문제는 ‘포스트 홍대앞’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말한다. 이미 홍대입구역을 둘러싼 공간과 문화는 달라져 있기 대문에 여전히 문화예술 공간으로서 그리고 자생적 문화 공간으로 의미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이 변화를 담아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문화 소비의 여성화’와
홍대 문화의 정체성 변화

홍대 인디 정체성을 1990년대 라이브 클럽과 댄스 클럽문화 그리고 소규모 갤러리에서 찾는 인터뷰 대상자들은 이때의 문화를 남성적이었던 것으로 회고한다. 당시 홍대 문화의 문화적 의미를 형성한 음악적으로 락과 펑크, 힙합, 미술 분야에서 전위 예술과 조각, 공간 설치 미술 같은 것들이 기본적으로 남성적인 특성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보다는 남성 소비자가 더 많이 눈에 띄었던 것이다.

L의 진단에 따르면 홍대 문화의 성격에서 여성성이 두드러지게 된 것은 카페 문화의 발전과 관계가 깊다. 2000년대 이전 홍대 인근이 밤의 문화적 성격이었다면 이후에는 카페 중심으로 발전하면서 낮의 문화이자 여성의 문화로 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제 홍대 앞은 여성 소비자들이 낮에 카페를 중심으로 시간을 보내다가 오후 늦게 열리는 공연 표를 사는 패턴으로 움직이게 되었다.

저자는 밤의 문화와 낮의 문화의 구분은 오히려 여성의 활동 가능한 영역이 여전히 젠더적으로 결정되어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본다. 홍대 문화의 ‘가장 찬란한 시절’(즉 밤의 문화)이 남성 중심적으로 서술되어 있다는 점, 현재 홍대 공간의 소비를 주로 여성과 관련시키면서 그것이 문화를 타락시키거나 혹은 변형시킨다는 것은 생산과 소비를 이분법적으로 대립시키는 것이다. 저자는 이것을 ‘혐오’의 담론 내에서 보지 않는다고 해도, 남성과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성별을 중심으로 문화의 위계를 두는 시각이 반영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홍대 문화의 변화 과정에 대한 해석은 남성 주체와 여성 주체 간에 엇갈리는 점이 발견되는데, 저자는 해석의 타당성을 확보하고 문화 현상의 실천성을 검토하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어져 온 문화 소비 패턴과 젠더의 문제를 실증적으로 검증하면서 그 함의를 이론적, 실천적으로 점검하는 작업들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지역과 공간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그것을 만들어가는 것은 누구인지, 그것이 단순하게 자본과 소비에 의해 전유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것을 생각해볼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와 실험이 시작된 상황에서, 이제 중요한 과제는 서로 다른 ‘세대’와 ‘계급’ 그리고 ‘젠더’라는 고유한 교차성의 문제(박미선, 2014)가 어떻게 이 공간의 구성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살피는 것이다. 홍대앞연구네트워크(2015)가 보고서에서 밝히는 바와 같이 홍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시공간적 경험은 차이가 있고 그 차이를 이해하고 담론화하는 법을 아직 개발하지 못한 상황에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문화적 실천을 수행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어떻게 대표되고 들리게 되는가에 대한 학술적 기록과 질문이 더욱 필요해지고 있다. 작품과 영상물 등 실천으로 수행되는 흐름들 외에 학술적 개입 활동이 늘어나야 한다는 의미에서이다. (119쪽)

저자는 본 연구가 인터뷰 대상자의 연령대와 경험이 다양하며 제한적인 사료를 사용했기에 하나의 목소리로 일반화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이 한계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이 연구는 홍대 공간 이용자들이 스스로 구술한 생산과 소비라는 틀 속에서 문화적 의미를 구성하려는 시도들을 기록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포스트 홍대 앞이 시작된 지금 자본과 소비에 전유되지 않은 새로운 장소와 대면하기 위한 다양한 실천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본 논문과 같은 학술적 개입이 더욱 확실한 지표가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

*함께 읽으면 좋은 논문

「서울시 문화공간의 담론적 구성: 홍대 공간을 중심으로」 
김수아, 2013, 『서울연구원 정책과제연구보고서』 , 1-89.

「장소성 인식 특성이 행동 의도에 미치는 영향 분석」
임하나·강도원·최창규, 2013, 『한국도시설계학회지』, 14(2), 113-126.

권성수 리뷰어  nilnilist@gmail.com

<저작권자 © 리뷰 아카이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porter, R

깊.게 판 진짜 지.식 @깊지라고 불러주세요.

RRESEARCH, REPORT, LIBRARY의 R입니다.

1 thought on “홍대 공간의 문화적 의미는 어떻게 변해왔나?”

Leave a comment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