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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ofinale보통 사람들은 ‘과학사’하면 서양과학사를 떠올린다. 하지만 이 통념과 반대로 국내에서는 한국과학사나 동양과학사에 비해 서양과학사 연구가 활발하지 않다. 서양과학사라고 묶일 수 있는 주제로 매년 1000편이 넘는 논문과 수백 권의 책이 출판되는 상황에서 국내 연구자들은 외국학자들의 연구업적을 소화하고, 논문과 학회발표, 서양과학사를 알리기 위한 교재 집필이나 핵심 텍스트의 번역 등 많은 일을 소화하고 있다.

문제는 학문 활동 대부분이 개인적 차원에서 진행되기에, 본인 신념과 배경에 따라 연구가 진행되고 이러한 노력이 잘 조율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논문 출판의 한계도 한몫하는데, 19세기 이후 서양과학사를 연구하는 국내 서양과학사 학술지에서는 현대과학의 복잡하고 어려운 이론과 실험에 대한 논의를 포함하는 논문을 출판하려고 하지 않는다.

홍성욱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서양과학사가 겪는 이러한 진통이 오히려 새로운 모색을 실험하는 과정에서 오는 산고라고 해석한다. 그래서 경계를 넘는 과학: 국내 서양과학사 연구의 최근 동향들(『역사학보』, 215, 2012)에서 논문 작성 시점을 기준으로 2년간 출판된 연구들을 리뷰한 후 이를 바탕으로 서양과학사 연구에 관한 전망을 내놓는다.

 

역사를 통해 과학인문학,
과학예술의 상호작용

홍 교수는 과학과 인문학의 거리가 멀어지는 상황에서 그나마 과학자들 중에 인문학이나 예술과 접점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을 긍정적 현상으로 보았다. 그렇기에 과학과 인문학, 혹은 과학과 예술의 상호작용을 역사적으로 분석하는 연구는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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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스미스(1723~1790, 좌)와 아이작 뉴턴(1642~1727) 출처: 리뷰아카이브

 

이에 관한 사례로 김지원 연구자의 「애덤 스미스의 자연관과 뉴턴 과학에 대한 이해」(2010)를 소개하는데, 이는 경제학자이자 도덕철학자인 애덤 스미스가 아이작 뉴턴의 과학을 어떻게 이해하고 수용했는지를 분석함으로써, 스미스의 자연관 및 사회이론과 뉴턴 과학과의 연관성을 모색하는 연구다. 애덤 스미스는 뉴턴과 달리 자연에 존재하는 물질들이 자연법칙에 따라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닌 물질 속에 각인된 고유의 힘이자 우주를 구성하는 동인이라고 보았는데, 이는 사회경제 체계에 대한 이해로 연장되었다. 자연계 물질들처럼 그의 경제체계에서 인간들은 끊임없이 자신들의 욕구를 추구하면서 보이지 않는 손을 창출하는 능동적 존재들이 된 것이다.

임경순 연구자의 「과학기술과 예술의 만남」(2011)에서는 르네상스 시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과학과 예술 사이에 다층적이고 쌍방향적인 상호작용이 존재했다는 점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보이고 있다. 브루넬리스키나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기하학에 정통한 수학자이며 동시에 화가이자 건축가였다는 점, 갈릴레오가 망원경으로 관찰한 달의 분화구를 명암대조법이라는 회화적 기법을 이용해 묘사했다는 점 등을 예시로 들며 예술과 과학이 만나 수많은 창의적 아이디어를 만들었음을 강조한다.

 

주변과 변방에
대한 관심

홍 교수는 과학계 변방은 주류나 중심이 보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기에 새로운 패러다임의 출현과 수용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았다. 정성욱 연구자의 「잊혀진 전통과 신화화된 고립」(2010)이 대표적인 사례로 제시되었는데, 이 논문은 20세기 초중반 옥수수를 연구했던 미국의 유전학자 바바라 맥클린톡에 관한 연구다. 그녀는 여러 의미에서 과학의 주변에 속했는데, 남성 주류 과학계에서 여성이었다는 점, 초파리가 아닌 옥수수로 유전학을 연구했다는 점, 또 당시에 받아들여지기 힘든 ‘위치를 바꾸는 유전자’개념을 제창했다는 점이 그렇다.

정성욱 연구자는 바바라 맥클린톡이 속해 있던 20세기 초중반 미국 유전학계를 살펴봄으로써, 미국 유전학계가 하나의 동질적인 집단이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내고 이를 통해 그녀를 둘러싼 신화와 기존의 해석 모두를 비판한다. 맥클린톡은 옥수수를 이용한 유전학 연구를 고집하면서도 자신이 발견한 새로운 유전자를 통해 옥수수 유전학과 주류 유전학의 가교를 만들어 옥수수 유전학에 관한 관심을 환기하고자 했다. 그녀의 이 시도는 실패했지만, 통념처럼 그녀가 여성이었거나 고립되어서가 아니라, 당시 미국의 서로 다른 유전학 전통이 빚은 분열과 갈등의 결과였다는 것이 정성욱 연구자의 해석이다. 이 밖에도 맥클린톡의 옥수수와 주류 초파리 연구를 통해 실험대상에 따라 실험이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을 보이는데, 홍성욱 교수는 이 지점에서 과학사와 과학철학, 과학사와 과학사회학의 접점이 될 수 있는 중요한 주제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본다.

성한아 연구자의 「고전을 넘어 경험을 추구하다」(2010)에서는 16~17세기 근대 초기의 자연사와 식물학 연구를 분석해 그 중요성을 드러내 주변적이라고 간주된 분야의 중요성을 복원한다. 근대 초엽 높은 수준의 스페인 과학이 시간이 지나면서 선진국 대열에서 탈락하고 학문적 관심 밖으로 밀려났지만, 스페인 대학의 식물학자들이 직접 야외 조사 연구를 시작해 이 경험을 바탕으로 얻은 새로운 지식들을 식물도감에 실어 ‘경험적 탐구’의 한 가지 전형을 제시했다. 스페인이 과학혁명에 아무런 역할도 못 했던 것처럼 이해되던 경향을 극복할 단초를 제공한 것이다. 이를 통해 홍 교수는 서양의 관점에서 주변부에 불과한 한국-동양과학사가 서양과학사와 접점을 찾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고해보기도 한다.

 

탈경계와 지식의
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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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리뷰아카이브
현재 대학의 학과가 제공하는 물리학, 수학, 화학, 생물학 등의 학문 분류를 고정된 범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융합’, ‘학제간 연구 대한 요즘의 사회적 요구를 유행에 불과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홍성욱 교수는 과학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런 분과형태가 대학에 자리 잡은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며, 이전에는 학제 사이를 뛰어넘는 융합연구가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고 말한다. 

정혜경 연구자의 「탈국경적-학제간-협동생태적 연구로서의 동물행동학의 발달」(2011)에서는 학제간 연구 사례로 20세기 초중반 동물행동학의 발달 과정을 추적한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동물행동학은 독자적인 연구분야가 아니었으며 각국의 학자들에 의해 동물학, 생물학, 심리학 분야에서만 간헐적으로 진행되었다. 그러한 와중에 1938년 옥스퍼드에서 열린 국제 조류학 학술대회를 계기로 각국의 연구자들이 소통하고 교류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전공과 개성을 지닌 인물들 사이의 역동적 교류가 이루어졌고, 동물행동학이라는 다학제적 학문 분야가 부상했다.

박형욱 연구자의 「칼로리, 노화, 수명: 다학제적 노화 연구 프로그램의 탄생」(2012)도 학제간 연구에 관한 대표적 사례로, 20세기 초 노화(老化)학자 C. 맥케이가 칼로리 감축과 노화의 관계에 대한 연구 프로그램을 만드는 과정을 추적하면서, 다학제적 분야로서 노화학이 가능했던 요인들을 드러내고 있다.

홍성욱 교수는 논문 안에서 다양한 성격의 국내 과학사 연구를 언급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다양한 연구가 학계의 장점이 될 수도 있지만, 소통을 매개할 수 있는 공통적인 요소가 드물기 때문에 개별 연구자들의 지적인 고립을 가져올 수 있다고 보았다. 홍 교수는 장점을 살리고 약점을 극복하는 방안으로 공통의 역사 서술적 테마를 찾는 것을 제시하는데, 논문에서 시도했듯 ‘주변’, ‘학제간 연구’ 등의 테마로 묶는 것이 그것이다.

이런 시도는 일반 서양사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의 흥미를 수도 있으며, 서양사 논문을 싣는 학술지에 특집호 기획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런 적극적인 노력은 개별 연구자들이 흥미를 가진 주제에 관한 자발적인 연구를 지속시키면서, 국내에서 이루어지는 서양과학사 연구의 독자를 확장하고, 동시에 소통과 토론의 빈도와 질을 높일 있을 것이다. (412쪽)

이 논문은 2012년에 작성됐기에 최신 연구동향의 사례라고는 볼 수 없지만, 그 문제 인식만은 현재에도 유효하다고 본다. 독자적으로 진행되는 서양과학사의 소중한 연구들이 좀 더 통합적인 인식 안에서 이루어지길 바라는 홍성욱 교수의 바람이 담겨 있으며, 개별 연구사례를 통해 서양과학사와 그를 통해 유추해볼 수 있는 동양·한국 과학사의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다.

권성수 리뷰어  nilnilis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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