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080503_ROK_Protest_Against_US_Beef_Agreement_02.jpg

logofinale국민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고 정부가 일방적으로 체결했다는 비판을 받은 2008년 한미 FTA의 여러 내용 중 가장 많은 논쟁을 양산한 항목은 단연 쇠고기 수입 개방 문제였다. 쇠고기 수입이 광우병으로 야기될 국민의 안전 문제와 직결되며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당시의 한미 FTA 문제를 떠올리면서 광우병을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왜 하필 쇠고기였나? 협상안에 올라간 다른 여러 문제들이 쇠고기보다 덜 중요해서일까? 아니면 쇠고기가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라 더 민감한 이슈로 대두되었던 것일까? 하대청은 「’위로부터의 지구화’와 위험담론의 역사적 구성(『환경사회학연구 ECO』, 18(1), 2014)에서 역사적인 담론 분석을 통해서 “왜 유독 미국산 쇠고기만이 이슈가 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특정 시기에 특정 문제가 지배적인 담론이 되고 다른 담론은 그렇지 못한지를 이해하려면 논쟁 이전에 축적된 역사적 담론 배치를 고려해야만 했다.

 

 

스토리라인의 형성:
개방-보호에서 위험 인식으로 프레임 이동

쇠고기 수입과 광우병 위험의 관계는 과학적으로 검증하여 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초반의 예상을 깨고 몇 년 동안 첨예한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촛불집회로 상징되는 쇠고기 수입 반대 입장에서는 광우병 논란에 대해 ‘정부의 졸속 협상으로 실제로 증가한 위험’이라 주장한 반면, 정부와 미국 측에서는 ‘과장되고 만들어진 허위적 위험’이라 하며 대립했다. (236쪽) 이러한 대립은 현재까지도 그 간극을 좁히지 못한 채 지속되고 있다. 하대청은 2008년 광우병 위험이 실재하는가 아닌가의 문제는 특정한 맥락 속에서 구성되기 때문에 특정 위험이 논란이 되었다면 그 위험이 어떤 담론 내에서 논의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령 유럽의 죽어가는 나무는 과거 자연적 스트레스의 결과로 여겨졌지만 오늘날 산업사회에 대한 비판이 지배적인 사회에 와서는 그런 나무들이 ’산성비’의 증거나 환경오염의 결과로 논의된다.

한국에서 쇠고기를 둘러싼 무역 분쟁 논란은 2008년 FTA 협상과 함께 갑자기 생겨난 문제는 아니었다. 농민의 생존권 문제와 직결되는 이유로 미국산 쇠고기는 수입을 시작한 1976년을 이래 국제 무역 협상에서 중요한 화두였다. 특히 한국은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이후 미국산 쇠고기의 국내 수입이 꾸준히 증가하며 2001년 기준 한국은 미국산 쇠고기를 세 번째로 많이 수입하는 국가였기 때문에 80년대 이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줄곧 한미 간의 주요한 통상 현안으로 자리잡았다. 이런 상황의 한국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는 자연스레 농축산 농가들의 이익과 연결되어 ‘개방’ 대(對) ‘보호’ 담론 내에서 논의되었다. 즉, 교역을 자유화 해야 한다는 개방 쪽 입장과 국내 축산 농민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보호 쪽 입장의 대립이었다.

그러나 2003년 12월 말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전면 중단되며 논쟁의 양상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기존에 ‘개방과 보호’ 프레임 내에서 문제가 정의된 미국산 쇠고기 문제는 ‘위험과 안전’이라는 프레임 내에서 재설정 되었다. 과거 축산농가들의 피해를 해결하기 위해 ‘관세율과 보조금 등’을 어떻게 조율 할지에 대한 문제가 이제는 ‘수입 위험 분석, 위생검역, 소비자 안전’ 등의 이슈와 얽히게 된다. ‘축산업 취약성’에서 ‘건강 취약성’으로 문제의 초점이 이동하며 소비자 건강을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고자 하는 환경단체와 소비자단체들이 논쟁에 참여하였고 이들은 기존 축산농가 측과 연합 전선을 이루게 되었다.

여기서 저자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나 관심을 가진 이들이 협력하고 정치적인 연합을 이룰 수 있는 “담론 연합(discourse alignment)”이 발생하며 새로운 아이덴티티와 정치적 주장이 생겨나는 순간에 스토리라인의 형성이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2008년 광우병 위험은 “아직은 실재가 아닌(not yet real)’, 울리히 벡이란 학자의 용어를 빌리자면 “예견되는 위험(anticipated risk)” 중 하나였을 뿐임에도 광우병 문제가 무엇보다 위험한 요소로 국민들에게 각인된 데에는 광우병 담론을 둘러싼 스토리 라인이 만들어졌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담론은 개념, 아이디어, 범주의 앙상블로서 이를 통해 사회적 물리적 현상에 의미가 부여되는 것이다. (239쪽)

위험과 관련한 문제들은 각 담론의 경쟁과 연합을 통해 담론이 형성되는데, 특히 복잡한 영향관계를 가진 위험 담론은 압축적 인과관계의 스토리라인을 통해 강력하게 인지된다. 예를 들어, 산성비를 야기하는 요소 및 산성비를 둘러싼 영향 관계 등은 실제로 매우 복잡한 메커니즘을 갖고 있고 특정 부분은 명확히 해명할 수 없음에도 우리는 보편적으로 산성비를 이산화탄소-산성비-환경파괴 라는 단순한 인과적 진술로 쉽게 이해한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스토리라인 때문에 위험의 실재성을 부정하는 식으로 이해하기 보다 저자가 강조하듯, 위험의 “중요성과 실재성이 특정한 담론적 구조 속에서 구성된다”는 점을 상기하며 논의를 이해 해야겠다.

 

위험담론과 정의담론의 협업:
‘위로부터의 지구화’에 대한 저항

‘개방과 보호’가 ‘위험과 안전’이라는 프레임과 합쳐진 쇠고기 수입 문제는 2006년 이후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과의 FTA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다시 변화를 겪는다. 당시 정부는 국민의 충분한 의견 수렴 없이 양자간 무역 체제의 경제적 이점만을 근거로 협상을 추진하고 초반에 부정했던 미국이 요구한 “4대 선결조건(쇠고기 수입재개, 스크린쿼터 축소, 자동차 배출가스 기준 완화, 의약품 경제성 평가계획의 잠정 유보)”을 양보한 문건이 뒤늦게 밝혀지는 과정에서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정부의 이러한 행태는 참여 정부를 지지했던 세력들이 이탈하고 분화하는 결정적 계기를 만드는 동시에, 쇠고기 수입 문제와 관련해서 위험-안전 담론이 보다 확고하게 자리잡는 계기를 만들었다.

정부는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협상이 과학적 검역의 문제라 하며 FTA협상이 가진 정치경제적, 사회적 함의를 최대한 배제하려고 했지만 이제 쇠고기수입 문제는 더이상 안전 문제의 보호만을 의미하지 않게 되었다. 문제를 계속해서 축소하려고만 하는 정부의 태도는 사람들로 하여금 ’굴욕적 외교’를 하는 정부에 실망하고 ‘주권’을 사수해야 한다는 위기감을 고조시켰다. 이제 ‘주권’ 논란이 포함된 광우병 위험 담론은 더이상 과학 분석의 대상만이 아닌, 동시에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경제적 이슈로 받아들여졌고, ‘개방-보호’와 ‘위험-안전’을 결합시킨 이전의 담론연합은 국가주권 이슈들을 한데 모아 ‘정의주장(justice argument)이나 ‘도덕성 주장(morality argument)’ 등과 쉽게 연계될 수 밖에 없었다. “경제적 지구화를 추진하는 위로부터의 강한 드라이브가 한미 FTA에 반대하는 반지구화 담론 및 쇠고기 안전을 우려하는 위험 담론과 ‘마찰’을 일으키면 서, ‘쇠고기 문제’는 중요한 국내정치적 현안이 되었던 것이다.” (257쪽)

이렇게 광우병 위험은 식품안전, 농업의 미래, 공동체의 미래상, 자연에 관한 윤리, 정치적 주권 등과 다양하게 얽힌 채 ‘위험의 다의성’이라는 특성을 보여 주었다. (260-261쪽)

 

메타포를 통해 실재하는 위험:
뼛조각으로 인지된 위험

앞서 설명한 스토리라인의 형성과 더불어 한국의 광우병 위험 논쟁에서 큰 역할을 한 메타포가 있다. ‘뼛조각’이 바로 그것인데 살코기 속에서 발견된 ‘뼛조각’이나 ‘등뼈’와 같은 이미지들을 통해 대중들은 광우병이 실재할 수 있는 위험임을 강하게 인식했다. 저자는 “현대 사회의 상당수 위험들은 인간의 지각으로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비가시적이며 그 도래나 현존을 정확히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런 위험을 인지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스토리라인과 같은 내러티브와 함께 메타포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고 하였다. 즉 수입된 쇠고기에서 발견된 뼛조각은 국내에서 공식적으로 발생한 적 없는 ‘예견된 위험’에 불과했던 광우병 위험이 “‘물질화되고(materialized)’, ‘육화되고(embodied)’, ‘언어화되었고(enunciated)’ 일반 대중이 위험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264쪽)

 

“죽은 나무라는 생물학적 현상이 환경위기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도 ‘산성비’라는 메타포가 있었기 때문이다.” (264쪽)

 

흥미로운 점은 애초에 ‘뼈없는’ 살코기만을 수입할 것을 요구하고 협상한 농림부 입장에서는 뼛조각을 제거한 이유가 위험예방 차원이라기보다 당시 뼈가 붙은 갈비의 수입이 전체 수입액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하여 축산업계 이익에 가장 큰 위협이라는 경제적 이유 때문이었다. 뼈의 위험성에 대해 심각하게 인식했다기 보다 경제적 이유와 더불어 당시 국내의 반발을 달래려 하는 목적이 있는 셈이었다. 그러나 협상 이후 재개된 수입산 쇠고기에서 계속 뼛조각이 발견되며 시민단체와 대항전문가들은 미국 측의 검역 통제 시스템과 농림부의 안일한 대책 등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처음에 뼈 제거를 수입위생조건으로 합의한 것은 한미 양측의 정부가 수출재개, FTA 협상, 국내 축산업계 배려 등을 정치적으로 계산한 결과였지만, 이후 뼛조각은 광우병 위험을 육화하는 핵심요소가 되었다.” (267쪽) 즉, 작은 뼛조각이라는 메타포가 위험을 가시화하고, 이를 정부가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모습은 대중들로 하여금 위험을 ‘가능성’만 있을 법한 정도에서 실재하는 사실이라는 인식을 강하게 갖게 하였다.

 

선택과 배제의 담론 구성 역사:
우리나라 쇠고기는 미국산보다 안전한가?

“자동차보다 더 해묵은 분쟁 분야”였던 미국산 쇠고기 문제는 미국의 광우병 발발 이후 ‘개방→농업 붕괴→위기’에서 ‘개방→쇠고기 위험→위기’로 스토리라인이 옮겨갔다. ‘국민 건강’이 핵심인 된 논쟁은 과거 축산농가만 이해관계에 얽혀있던 시기와는 결을 달리하며 쉽게 타협 불가능한 의제로 상정되었다. 광우병 위험 담론은 이후 국민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일방적인 협상 과정에서 ‘국가주권’을 포함한 정치사회적 함의를 가진 정의담론과 결합하며 관련 이해관계자들을 연대하게 하였다. ‘뼛조각’과 같은 메타포가 ‘예견되는 위험’의 실재성을 가시화되며 정부의 위험 통제 시스템에 대한 의문은 커져만 갔다.

저자는 이 논문에서 위험이 보편적이기 보다 국지적이고 맥락적인 조건에 따라 달리 정의되기 때문에 위험 담론을 역사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2008년 당시 국내 발병 사례가 한 건도 없었음에도 쇠고기 수입과 광우병 문제가 유독 큰 논란을 불러 일으켰는지, 대중이 어떻게 위험을 강하게 인지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이런 역사적인 담론 분석을 통해 배제된 것들도 있음을 상기시키며 미국산 쇠고기가 정치적 이슈가 되는 담론의 형성 과정에서 자연스레 배제된 항목들을 드러낸다. 가령, 우리는 위험통제 조치가 미국보다 더 미흡할 수 있는 국내산 쇠고기의 위험은 왜 전혀 문제 삼지 않았는지, 캐나다산 쇠고기나 중국산 멜라닌 같은 경우는 왜 논의가 더 심화되지 않았는지 등의 문제들 말이다.

역사적으로 구조화된 고유한 담론적 배치는 어떤 시점에서 특정 위험은 선택되어 지배적인 담론이 되게 하는 반면,다른 담론은 적절하지 못한 것으로 간주되어 배제 되도록한다. (271쪽)

문지호 리뷰어  lunatea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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