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tch

logofinale이전의 리뷰에서도 다룬 적이 있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 집권 하에서 이뤄진 일자리 정책은 노동자와 구직자들을 위한 것이라는 레토릭과는 달리 기업주들만을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선의’를 발휘해서, 실제로 그러한 정책들이 (청년)일자리의 확대를 위한 목적에서 설계된 것이고 또 실제로 일단 일자리 자체는 늘릴 수 있다고 가정을 해보자. 혹자는 이렇게 되물을 수 있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정책이 비록 ‘비정규직’을 늘리고 기존 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를 악화시키는 방향이라도, 아무튼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 아닌가’하고 말이다. 하지만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노동자들의 조건을 심각하게 후퇴시킨 바 있는 네덜란드의 경험을 살펴보면, ‘양’을 위해 ‘질’을 희생시키는 정책은 오히려 훗날의 노동자들이 홍역을 앓게 하는 심대한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한국에 소개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대학교 교수 마르틴 쾨너(Maarten Keune)의 논문 「양이 질을 압도하는가? 고용정책과 네덜란드의 폴더 모델」(『국제노동브리프』, 14(1), 2016)은 우리가 필히 우리가 참고해봐야 할 글이다(폴더 모델이란 말은 우리 말로 쉽게 번역하면 ‘노사협조주의’정도가 되겠다). 비록 박근혜 대통령 개인이 탄핵되었다고 하더라도, 향후 새로이 창출된 정권 또한 그의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기조를 수용한다면 (박근혜 퇴진 여론이 형성되는 과정에 어느 정도 작용한 바가 있는) 한국의 사회경제적 불평등에는 큰 변화가 생기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정책들이 지니는 잠재적 위험성에 대해서 여전히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특히 독일이나 네덜란드 식의 유연안정성 모델은 중도보수-중도진보 진양 양측에서 적잖은 사람들이 지지를 보내고 있는데, 과연 이것이 유효한 대안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 비판적으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쾨너 교수는 네덜란드 모델은 전형적인 ’유연안정성’ 모델이었지만, 지난 10년간 노동시장의 성과를 고려하자면 그것이 성공적 결과를 낳았다고 보긴 힘들다고 말한다. 기적을 이뤘다면서 전세계에서 찬사를 받은 바 있는 네덜란드의 경제/고용모델은 오늘날 그 고용 창출 역량이 부족하다는 지적과 함께, 고용의 질이 형편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네덜란드의 고용정책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반의 시점에 네덜란드 또한 전세계적 신자유주의화 물결로부터 자유롭지 않았고, 그에 따라 복지국가에 대한 공격과 금융화, 규제완화 등이 대폭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이 와중에도 네덜란드는 나름대로 복지수준을 유지시켜오기는 했고 노동시장제도의 개혁 역시 사측의 일방보다는 다양한 노사정 사이의 협의기구를 통해 이뤄지는 기조를 유지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상징적인 사건은 바로 바세나르 협악(Wassenaar Agreement)다. 이는 “1982년 노동조합과 사용자단체는 공공부문 임금과 최저임금을 낮추고 민간부문 임금교섭에 개입하겠다는 정부의 협박에 못 이겨”(39페이지) 이뤄진 것이라고 한다. 당시의 정책 목표는 실업 특히 청년실업에 대처하는 것과 더불어 네덜란드 기업들의 국제경쟁력을 높이는 것이었다. 당시 정부의 권고에 따라 노동자 측과 사용자측은 임금과 고용을 맞바꾸었다. 즉 노동조합은 임금 인상을 억제해서 생산성보다 임금이 느리게 인상되도록 하는 한편, 기업은 노동시간 단축과 시간제 일자리 확대 조기퇴직 등의 방식으로 일자리를 늘리는 “고용 재분배”를 추진토록 협의했다. 이 합의는 명백히 “소득보다 일자리에 우선순위”(39페이지)를 두고 이뤄졌다. 이러한 협의는 훌륭한 대타협의 사례로 여겨지긴 하지만, “경쟁력과 고용에 미치는 긍정적인 공급 측면 효과에도 불구하고, 국내수요의 제한, 노동에서 자본으로의 소득 이전, 인력의 질이나 혁신역량이 아닌 인건비의 강조 등에 의한 부정적 효과”(39페이지)를 피할 수 없었다.

바세나르 협약 당시 네덜란드의 노동조합측 대표였던 빔 콕(Wim Kok). 후에 그는 노동당 정권 하에서 총리직까지 거머쥐게 된다. 사진 출처: 위키백과

 

한편 임금인상뿐 아니라 노동시장 정책 전반에 큰 변화가 생겼다. 정부는 당시에 실업수당수령자수가 너무 많다는 점을 들며 실업수당 수령 범위를 비롯한 복지 의존을 줄이고 소위 말하는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틀었다. 노동시장의 관리 주체도 많이 바뀌었는데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의 개입수준이 특히 증가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들 또한 단지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다기 보단 일단 “과거와의 단절인 경우가 많았으며” “시스템의 기능이 상당 부분 개선되었다는 증거는 거의 없다.”(40페이지) 요컨대, 똑 부러지는 묘안이 있어서 노동시장 제도를 대폭 뜯어고쳤다기 보단 과거의 케인스주의적 방식이 안되니깐 일단 우회전을 했는데 약발이 안 먹혔다는 것이다. 한편 2000년대 중반 들어서는 고령근로자의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서 우선 과거에 시행되었던 조기퇴직제도가 폐지되었다. 이와 더불어 연금제도 개혁 또한 병행되었는데, 연금 수급연령을 높이는 방향의 정책이었던지라 노동조합 측에서는 반대를 했지만 정부는 이를 강행했다. 그러나 연금개악으로 인한 고령 근로자 채용률을 높이는 성과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이 기간 고용률 자체는 늘었지만, 이는 주로 조기퇴직의 감소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80년대 그리고 최근까지 네덜란드가 추진해온 노동시장 관련 정책의 성과들은 이처럼 초라한 수준을 넘어서 해악적인 면모까지 있었다. 실업수당 수급자격 기준의 강화 등으로 인해 노동자들은 자신의 적성이나 경험, 능력 등을 고려하지 않고 일단 일자리가 나기만 하면 그러한 고용을 수용하는 선택지로 내몰리게 되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사람들을 극한 상황으로 내몰았다고 해서 고용 상황이 개선되었다고 보기 힘든 면도 있다. 금융위기 직전에도 공석인 일자리는 사상 최고수준이었지만 100만명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정규노동시장에 편입될 의사나 역량이 없는 상황이었다. 지난 몇 년간 한국 정치권 일각에서 쓰던 용어대로 번역을 하자면, ‘구직자들의 과도하게 높은 눈높이를 낮춰서 일단 취업을 최우선시하게’ 하는 정책들이 도입된다고 한들 결과적으로 고용창출은 그다지 잘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네덜란드 모델,
유연안정성의 환상

네덜란드 노동시장은 특히 90년대 말 들어서 유연안정성을 증진시키기 위한 수술에 들어갔고 관련된 법들 또한 의회에서 여러 건이 통과되었었다. 그 결과 “계약직을 사용하기는 쉬워졌”고 근로자 파견업체에 대한 규제도 줄었다. 그 대신에 “계약직, 파트타임 근로자, 파견 근로자의 근로조건과 사회보장 관련 권리가 신장”(42)되기는 했다. 그런데 이러한 정책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를 다소 증진시켰지만 비정규직 고용을 대폭 늘리는 방향 또한 동시에 가리키고 있었다. 이는 당시에는 노사정의 협약을 통해 이뤄진 일이었다. 이 역시 상기한 정책들과 마찬가지로 경쟁력 강화와 실업률 끌어내리기가 주된 목적이었다. 이 외에 주목할 점은, 우선 청년실업자 등 취약계층이 (계약직이라도)노동시장에 진입하게 한 후에 정규직으로의 전환을 쉬이 따낼 수 있도록 하는 ‘디딤돌’ 기능을 강화하자는 취지 또한 이러한 개혁에는 포함되어있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개혁의 성과는 고용률을 높이는 것으로 이어지기는 했다. 고용률 증가는 특히 여성 고용의 증가로 인한 것이고, 실업률 자체도 유럽에서는 상당히 양호한 편이다. 하지만 그 외의 노동시장 성과는 가히 충격적이다. 우선 전체 노동자 중에서 상시직에 해당하는 사람의 비율이 55.7% 밖에 안 되는데 덴마크나 독일은 물론 영국, 프랑스, 벨기에 등 여타 유럽 국가들에 비해 상당히 낮은 수치였다. 게다가 파트타임 고용 비중도 굉장히 높아져서 49.8%에 이르고 있다! 게다가 여성고용은 파트타임 고용은 약 75%를 차지한다고 하니, 네덜란드 여성 중에서는 전일제 일자리에 취업하고 있는 사람을 찾기가 훨씬 쉽다! 여성 외에도 이주민 등 소수자 집단 상당수가 이러한 유연화 정책의 타격을 정면으로 맞았다.

물론 파트타임 노동자들의 조건이 개선되는 조처들도 여럿 도입되기도 했고, 맞벌이 부부 등 일부 개인들에게는 선호되기도 했다. 하지만 “파트타임 일자리의 상당 부분은 매우 임금이 낮은 일자리이며, 이러한 일자리는 소득과 관련된 문제를 야기한다 ··· 가구가 빈곤해지지 않으려면 다른 소득원이 파트타임 고용으로 인한 소득을 보완해야 한다. 파트타임 일자리의 약27%가 저임금 일자리”(44-45페이지)이다. 비단 파트타임 고용의 성장 외에도, 파견근로, 대기근로, 기간제 계약직 등도 굉장히 늘어났고, 그에 따라 고용불안정성도 약화되었으며 이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와 관련해서 “사회보장 및 교육에 대한 접근성 약화, 담보 대출 접근성 약화 등(45)” 추가적인 불이익을 면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경제가 어려워지니, 비정규직 노동자로 취업을 해도 정규직으로 전환을 시켜줄 기회를 주겠다는 ‘디딤돌’의 약속 또한 무색해졌다. 당사자가 아무리 정규직으로 전환을 희망해도 경제위기 시기에는 좀처럼 그대로 이행되지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네덜란드는 “질이 높은 일자리와 불안정하고 질이 낮은 일자리” 사이의 양극화가 생겨나서 “청년층과 저학력층이 타격을 받는 불평등 사회”(46)가 되어버렸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 2013년경 추진된 사회적 협약에서는 오히려 과도한 유연성의 억제가 주요 의제였다. 하지만 이와 더불어 실업수당 수령자격을 2년으로 단축하는 방향 또한 추진되었다.

 

네덜란드의 교훈,
그리고 한국

이 글의 후반부에서 다뤄지는 2013년 협약에 대한 논문저자의 서술은 사실 다소 과하게 장미빛인 측면도 있지 않은가 싶다. 사실 과도한(특히 불법∙편법적인) 유연성을 억제하겠다는 것이지 근본적 방향을 바꾸겠다는 선언도 없었고, 과거의 교훈에도 불구하고 실업수당에 대한 제약이 이야기되다니 말이다. 하지만 그 동안의 네덜란드 노동시장 정책에 대한 쾨너 교수의 평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첫째,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이 고용창출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생각과 다르게, 실제로 그런 효과가 있다고 한들 늘 성공적이지는 않다는 것이다. 특히 조기퇴직 제도는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둘째, 유연안정성 정책이 실업률을 끌어내리고 고용률을 증진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다른 의도치 않은 해악적 결과를 불러온다는 점이다. 저임금 비정규직/파트타임 일자리가 대폭 증가하였고 특히 이러한 일자리가 사회적 약자들에게 훨씬 많이 쏠려있는 게 네덜란드의 상황이다. 쉽게 말해 네덜란드는 고용문제를 해결하는 대신에 사회적 차별과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 빈곤문제 특히 워킹푸어 문제의 대두 등을 대가로 치러야 했다. 아무리 좋게 봐도 이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했다기 보단, 한 문제를 다른 문제로 맞바꾸기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전혀 노동시장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빈곤과 불평등이 심화되었으니 시각에 따라서는 오히려 노동시장 상황이 결과적으로 악화되었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고 본다.

따라서 다양한 정치적 입장에서 긍정적으로 그려지는 네덜란드 모델에 대해서 우리는 심각한 제고가 필요하다. 나날이 고공 행진하는 청년실업을 마주하고 있는 한국경제에는 다른 대안이 필요하다. 적어도 이번에 소개한 논문을 통해서 확인한 바만 보자면 네덜란드에선 이런 노력이 충분히 기울여지지 않은 것 같은데, 우선은 양질의 공공부문 일자리를 많이 창출하는 게 급선무일 것이다. 또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재분배 역시 저임금 일자리나 파트타임의 양산으로 나아가선 안 된다. 노동시간을 단축하면서도 임금총액은  국제노동기구(ILO) 권고안대로 최대한 보전시켜야 한다. 적어도 그렇게 해야 일자리를 지키고 늘리면서도, 다른 사회적 해악과의 ‘맞바꾸기’가 일어나지 않게 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함께 읽으면 좋은 논문

「박근혜 정부 노동개혁과 청년 실업:정책의 도구화와 반복되는 실패에서 벗어나기」
김성희, 2015, 『노동연구』, 31, 5-37.

「노동시장제도와 청년 고용: OECD 주요 국가 노동시장의 제도적 상보성, 1985~2010」
류기락, 2012, 『경제와 사회』, 96, 252-287.

Reporter, R

깊.게 판 진짜 지.식 @깊지라고 불러주세요.

RRESEARCH, REPORT, LIBRARY의 R입니다.

Leave a comment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