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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ofinale일반적으로 남성으로 간주되는 오타쿠에 사실은 여성인구의 비율이 높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본에서는 후조시腐女子에 대한 관심과 관련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동인녀가 대중문화의 생산자이자 소비자로서 자리매김한지 오래지만 문화적 주체로 호명되지 못하고 있으며, 남성 오타쿠에 비해 관련 연구도 적은 상태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김효진 고려대 일본연구센터 HK교수의 「동인녀(同人女)’의 발견과 재현: 한국 순정만화의 사례를 중심으로」(『아시아문화연구』, 30, 2013)는 관련 연구의 중요한 초석이 되어준다. 논문에서는 2000년대 중반 이후 한국사회에서 ‘동인녀’가 ‘발견’되는 방식과 매스미디어 및 관련 작품의 동인녀에 대한 재현을 분석함으로써 일본 동인녀들과는 다른 한국 동인녀들만의 정체성을 밝히고 있다.

 

198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의 동인녀

동인녀는 일본의 야오이(やおい)·BL(Boys’ Love) 및 한국의 관련 장르 작품을 애호하는 여성을 일반적으로 부르는 명칭으로 동인同人과 여자의 女의 합성어이다. 본격적으로 야오이 만화가 한국에 수입된 것은 1990년대 초반이다. 그러나 동인녀는 한국에서 야오이가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이전인 198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한국 아마추어 만화시장에서 주요한 생산자이자 소비자로서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에서 1990년대 초반부터 독자적인 야오이·BL시장의 형성 및 이를 뒷받침하는 후조시腐女子 인구의 확대가 실현된 사례와는 달리, 한국의 동인녀들은 상업적 출판의 기회로부터 단절된 채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철저하게 내부자 지향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유지해왔다.

이러한 한국의 동인녀가 새로운 문화소비층으로 ‘발견’되고 재현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중반, 이들이 한국사회에서 동성애 관련 콘텐츠를 소비하는 새로운 문화소비층으로 대두하면서부터였다. 또한 2010년을 전후로 동인문화의 중심을 이루는 만화작품뿐만 아니라 TV 드라마 <응답하라 1997>에서 여주인공이 남성아이돌 그룹 멤버 간의 동성애적 관계를 묘사하는 팬픽을 쓰는 동인녀라는 설정이 등장하는 등 한국의 대중문화에서도 동인녀와 그들의 실천이 재현되기 시작했다. 한국 동인문화와 주류 대중문화의 관계가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야오이의 확산과 동인문화

저자에 따르면, 최초로 한국에 동인지 형태의 야오이가 유입, 수용된 것은 1980년대 이후이다. 그 당시 한국 순정만화의 발전을 견인했던 아마추어 만화동호회는 1970년대 급속하게 발전한 일본 소녀만화의 해적판을 소비하면서 동인지 문화를 만들어냈다.

동인문화는 1990년대 초반, 많은 순정만화팬들이 야오이 입문의 계기로 꼽는 오자키 미나미의 <절애>, <BRONZE>가 해적판으로 출판되면서 인기를 얻었고, 여기에 해외여행이 자유화되면서 더욱 폭넓게 확산되었다. 이에 따라 저자는 적어도 1995년 시점에는 한국 아마추어 작가들에 의한 야오이 만화 동인지가 제작되어 판매되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오자키 미나미의 <절애>와 <BRONZE>
매스미디어에서 재현되는 야오이

저자는 이 지점에서 흥미로운 사실을 언급하는데 바로 이 1990년대 중반부터 매스미디어에서 일본 성인만화 및 음란만화의 내용으로 ‘동성애’를 포함하는 기사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는 1990년도 초반의 기사들이 막연히 일본만화의 음란성만을 문제삼고 있는 것과는 구분되는 지점이다. <절애>, <BRONZE>의 해적판이 1993년도에 출판된 것을 생각해보면 약 1년간의 시차가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저자는 1990년대 후반 또 다른 변화를 포착했다. 바로 매스미디어에서 동성애가 주요 내용인 일본만화의 ‘구체적인 제목’까지 들어 비판을 한 것이다. 1998년 일본 대중문화 개방을 앞두고 한국 내부에서 일본의 ‘문화침략’에 대한 우려가 거세진 가운데 쏟아진 이러한 기사는 야오이를 어디까지나 나쁜 일본만화, 즉 일본 대중문화 유입의 폐해로 규정하고 이를 향유하는 팬들-동인녀들-을 ‘철모르는 어린애들’로 묘사하고 있다.

저자는 이렇게 매스미디어에 만화의 제목까지 거명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이들 만화가 대중적인 인지도를 획득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본다. 가령 1999년 한겨레신문의 기사 「만화가 개인지 ‘백가쟁명’/잡지연재 인기 프로작가들」에서는 만화가 이명진의 개인지, 즉 동인지 활동을 소개하면서 ‘야오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이 기사에서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그 이전 기사들과 달리 야오이가 일본만화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 작가들이 창작한 야오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비록 비판적인 논조이지만 명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매스미디어에
동인녀가 등장하기까지

야오이가 매스미디어에 자주 등장하는 용어가 된 반면 야오이를 창작하고 애호하는 여성들을 의미하는 동인녀는 거의 등장하지 않으며, 이들은 주로 그 당시 화제가 되었던 아이돌 팬픽과의 관련성으로 인해 아이돌 팬덤 및 ‘빠순이’ 등으로 다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아이돌 팬픽과는 달리 동인지 제작 및 동인행사를 중심으로 하는 동인 인구들 사이에서는 동인녀라는 용어가 2000년대 초반에 널리 퍼져있었다. 2006년 출간된 박세정의 논문에 따르면 기존 만화동호회 중심의 ACA 이외에 1999년 동인이벤트 <코믹월드>가 시작되면서 동호회가 아닌 개인의 동인 이벤트 참가가 쉬워졌고 이와 함께 패러디 동인지 제작도 증가했다고 한다. 그리고 2000년대 인터넷을 통해 일본 동인문화에 보다 직접적으로 접촉하게 되면서 일본 동인계에서 사용하는 동인녀 등의 용어가 2000년대 초반에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

이때 동인녀는 원래 동인지 제작 및 유통에 관련된 생산자적인 측면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넓게는 동인계에서 많은 여성들이 좋아하는 ‘야오이 코드에 대한 감수성을 갖고 있는 여성’으로 정의된다는 점이다. 저자는 이러한 의미가 형성된 원인이 한국의 동인문화가 일본의 동인문화의 영향권에서 소비자로서 출발해왔으며 그 이후 지속적으로 일본의 관련 콘텐츠(야오이, BL 등)를 소비해왔다는 측면, 그리고 수적으로도 일본에서 수입된 관련 작품이 상업출판이 압도적인 반면 한국의 관련 콘텐츠는 아직 초창기이며 동인지 대다수가 남성간의 동성애적 관계를 다루고 있다는 측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의 동인녀가 직접적인 사례로 소개되기 시작한 것은 2005년 개봉한 <왕의 남자>가 천만을 넘는 관객을 동원하고 일반적으로 보수적인 것으로 알려진 한국사회에서 동성애를 다룬 영화들이 대중의 호응을 얻게 되고 이들의 소비력이 주목 받게 되면서부터이다. 이때 여러 미디어에서 ‘동인녀’라는 용어와 개념이 많이 사용되지만 1980년대 이후 30여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한국 동인문화와의 연관성 위에서 논의되기 보다는 ‘인터넷사이트에서의 오락’이라는 사이버스페이스의 유희적인 측면이 강조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었으며, 무엇보다 야오이를 장르로 보는 것이 아니라 동인녀를 가리키는 것으로 정의하여 오해를 불러올 소지가 있었다.

만화 <오덕후 이야기 – 보통연애, 모두 하고 있습니까?>
사례 분석

저자는 총 3권으로 완결된 <보통연애>(2010~2011)를 구체적 분석작품으로 삼는다. 이 작품을 분석대상으로 삼은 이유는 1) 웹툰의 경우, 본격적으로 동인녀를 재현한다기 보다는 연재분량 중 한두 회 정도에 유머러스한 에피소드로서만 취급하고 있고, 2) 다른 만화단행본이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주위에 남학생을 대상으로 망상을 펼치는 여고생들의 학창생활이 중심인 반면, <보통연애>는 사회인인 여주인공의 일상과 사랑을 중심으로 한국의 동인문화를 구성하는 다양한 장소와 동인적으로 유명한 작품을 패러디하는 컷 등을 다양하게 재현하고 있으며, 3) 관련 블로그를 개설하여 독자의 경험담을 모집하는 등 작가 및 담당편집자가 실제 동인녀의 경험을 반영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던 작품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논문에 소개된 줄거리를 더욱 압축하면 이렇다. 여주인공인 강현수는 20대 후반의 직장인으로 평소에는 동인녀라는 사실을 숨기고 지내고 있다. 그녀에게 있어 직장에서의 자신의 모습은 어디까지나 ‘일반인 코스프레’로, 진실한 자신의 모습은 어디까지나 동인과 관련한 활동에 국한된다. 그러나 그녀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대로는 ‘보통 남자’와 ‘보통 연애’는 아마 할 수 없을 것이라며 불안해 한다.

그러나 우연히 회사동료인 남주인공 오덕민과 사적인 만남을 가지게 된 현수는 생각의 변화를 겪게 된다. 하지만 동인녀로서 자신의 본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무난한 대화만을 계속하는 현수에게 오덕민은 이별을 고하고, 자신이 보여준 일반인의 모습에 오히려 실망하는 오덕민으로 인해 현수는 혼란을 느끼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음 놓고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동인이벤트에서 현수는 상자를 뒤집어쓴 채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오덕민과 재회하고 그를 계기로 서로의 ‘진짜’모습을 서서히 알아가기 시작한다. 오덕후로서 자신을 스스럼없이 인정하는 오덕민에게 현수는 놀라움과 동시에 편안함을 느끼게 되고, 사귀지 않는 상태이기 때문에 서로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부담이 없어지면서 오히려 자신의 취향을 솔직히 털어놓으며 친밀한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대략적인 줄거리에서도 알 수 있듯이 <보통연애>는 전형적인 순정만화 공식-‘아무리 보잘것없는 자신이라도 그를 승인하고 인정해주는 남성을 만남으로써 행복을 찾는-을 충실하게 따라가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줄거리 요약은 이 작품이 갖는 매력의 일부만을 보여줄 뿐이라고 말한다. <보통연애>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즐거움은 사실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이다.

<보통연애, 다들 하고 계십니까?>, 한송이, 서울문화사
한국 동인문화의 패러디로서의
<보통연애>

<보통연애>가 독자에게 강하게 어필하는 것은 각각 오덕후와 동인녀를 대표하는 남주인공, 여주인공의 일상과 그들의 활동, 그리고 다양한 작품에 대한 패러디가 들어가 있는 개별 컷들이다. 독자들이 이 세계에 보다 많은 사전지식-패러디의 대상이 되는 작품 및 오덕후, 동인녀들이 공통적으로 지니는 성향 등-을 가지면 가질수록 더 깊은 독해와 공감이 가능하도록 작품이 구성되어 있다.

사실상 <보통연애>의 뒷표지 및 본편에서 묘사되는 동인녀, 오덕후적 행동은 일본의 후조시, 오타쿠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모습이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의 콘텐츠에 집착하고 빠져드는 오타쿠, 그리고 야오이/BL작품을 애호하고 제작할 뿐만 아니라 모든 상황에서 남성간의 동성애적 관계를 망상하는 후조시들의 모습은 2000년대 이후 일본의 대중문화콘텐츠에서 주요한 테마 중 하나로 재현되어 왔다. 한국의 오덕후, 동인녀들 또한 그 근원을 일본의 오타쿠, 후조시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과 많은 공통점이 존재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저자는 <보통연애>가 한국인 독자에게 더욱 어필할 수 있는 것은 일본의 오타쿠, 후조시문화와의 공통점과 함께 한국의 오덕후, 동인녀들만이 지니고 있는 독특한 문화를 절묘하게 재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구체적으로 피러디의 대상에 드라마 <허준>, 영화 <놈놈놈>, 순정만화 <요정핑크> 등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현수가 좋아하는 작품 혹은 코스프레의 대상으로 등장하고 있다.

저자가 흥미롭게 보고 있는 것 중 하나는 동인녀로서의 정체성을 철저하게 숨기고자 하는 현수와는 달리 오덕민은 자신이 오덕후라는 점을 숨기고자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굳이 아니라고 해봐야 귀찮고, 포기하면 편합니다.”(2권 28쪽)라는 오덕민의 태도는 동인녀인 현수에게는 놀라움의 대상이다. 이는 동인녀는 자신의 취향을 즐기면서도 이를 문제시하고 있는 반면, 남성 오타쿠는 자신이 오타쿠라는 사실을 당연하게 처리하는 일본작품의 구도와도 공통되는 것으로 한일 동인문화에서 공통되는 젠더적인 측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동인녀와
부녀자腐女子 사이에서

저자는 최근 흥미로운 변화를 하나 소개한다. 바로 ‘부녀자(腐女子, 일본 후조시의 한자)’개념이 한국에서도 동인녀를 대체하는 용어로서 사용되는 빈도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2000년대 후반에 이르러 동성애가 점점 더 많은 대중문화의 소재로 등장하게 되면서 동인문화와는 별개의 맥락에서 동성애 관련 콘텐츠를 향유하고 즐기는 소비자층이 등장하게 되었다. 부녀자는 바로 이런 소비층을 가리키는 용어로 관련 장르인 BL이 점차 대중화되고 한국인 작가들이 만화와 소설로 BL을 상업적으로 출판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는 현 상황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매스미디어가 ‘발견’한 동인녀의 모습과 보다 닮아있는 부녀자의 등장은 한국 동인문화의 변모와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동인녀라는 용어가 동인지의 제작, 관련 이벤트의 참가 등 동인문화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참여와 희생을 전제로 하는 반면, 부녀자는 상업적으로 생산된 관련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부녀자일 수 있기 때문이다. 동인문화의 상업화 및 한국 BL시장의 확대 등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부녀자 개념의 등장과 확산 또한 일본 후조시 문화의 영향뿐만 아니라 2010년대 이후 한국 동인문화의 변화라는 측면에서 보다 세밀하고 정교하게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72쪽)

논문에서 저자는 동인녀가 내부적으로 변화하는 과정과 미디어의 시선이 동인녀를 발견하는 과정을 함께 서술한다. 또한 이러한 통시적인 관점 위에 사례 분석을 곁들여 한국에서의 고유한 동인녀 정체성을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한국사회에서 아직까지 야오이와 BL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남아있지만 논문에서 보듯 동인녀는 새로운 문화소비층으로 부상하고 있으며 그 영향이 주류 대중문화에 적극적으로 수렴되고 있다. 그렇기에 저자가 말미에 말했듯 동인녀, 부녀자에 세밀하게 접근하는 문화연구가 필요하며, 그로써 우리는 다양한 문화적 주체들을 편견없이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함께 읽으면 좋은 논문

「한국 동인문화와 야오이: 1990년대를 중심으로」

김효진, 2013, 『만화애니메이션 연구』, 30, 263-291.

「미소년을 기르는 여성들 : 인디/동인게임을 플레이하는 여성 게이머 연구」

장민지∙윤태진, 2011, 『미디어, 젠더 & 문화』, 19, 145-177.

권성수 리뷰어  nilnilis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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